All Chapters of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Chapter 181 - Chapter 190

1150 Chapters

제181화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이준혁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반짝거렸다.그는 윤혜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의사의 증언과 검사 보고서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저 남자까지 보고 있으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이준혁의 망설임을 눈치챈 윤혜인은 마음에 큰 돌이 박힌 듯 너무 답답했다. 그녀가 진실을 얘기해도 역시나 그는 그녀를 믿지 않는다. 그래도 윤혜인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했다. 이러다가 한구운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윤혜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당신이 날 안 믿어주는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이 아이는 정말 당신 아이가 맞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구운을 보며 울먹였다.“그러니까 제발 선배가 치료부터 받을 수 있게 해줘요.”윤혜인이 매번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구운이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는데 지금은 그녀 때문에 이렇게 다치기까지 하다니.윤혜인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한편, 이를 지켜보던 이준혁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는 윤혜인의 턱을 확 낚아채더니 그녀의 고개를 돌린 채 싸늘하게 말했다.“윤혜인, 지금 저 남자를 위해 또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야?”윤혜인은 이준혁을 힘껏 밀어내며 가까스로 말했다.“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한구운은 고통스러운 윤혜인의 모습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그 손 놔요!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그래요, 그래요!”싸늘하게 웃던 이준혁은 곁에 있던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렸다.“때려. 죽어도 내가 책임질 테니까 멈추지 말고 때려!”이준혁의 말에 경호원들은 한구운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했다. 구타 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지만 한구운은 윤혜인이 걱정할까 봐 끝까지 이를 꽉 깨물고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참고 있었다.“그만해요! 제발 그만해요!”윤혜인은 오열하면서 소리를 질렀지만 경호원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윤혜인은 고개를 돌려 이준혁에게 싹싹 빌었다.“이준혁 씨, 제발 그만하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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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선배의 도움도 받지 말고 폭우속에서 죽을 때까지 서있으라는 건가?“그러니까 네 말은 저자가 네가 임신한 걸 알고 네 남편인 척했던 게 다 오해라는 거야?”이준혁은 어이없다는 듯이 비꼬았다. 윤혜인은 그런 이준혁을 보며 그가 전혀 믿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이준혁 씨, 이 모든 건 처음부터 오해였어요. 선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에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믿지 않을 뿐이에요.”씁쓸하게 웃던 윤혜인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만약 이 말을 한 사람이 임세희 씨였다면 당신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바로 믿었겠죠.”임세희가 언급되자 이준혁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여기서 세희가 왜 나와?”밤은 깊었고 바람도 차가웠다. 윤혜인은 덜덜 떨리는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언제든지 날아갈 잎새 같았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궁금해서요. 왜 이준혁 씨는 임세희 씨를 그렇게 굳게 믿고 있으면서 내 말은 한마디도 믿어주지 않는 건지. 2년이에요. 이준혁 씨, 2년이라는 시간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엔 부족해요? 당신 눈에 내가 그렇게 더러운 사람이에요?”실망 가득한 윤혜인의 목소리에 이준혁은 가슴에 뭔가 박힌 듯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이준혁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똑같은 상황에서 만약 상대방이 윤혜인이 아닌 임세희였다면 그는 그녀를 위해 혼수까지 챙겨줬을 것이다.하지만 윤혜인에 대해서만은 그럴 수가 없다.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몰래 보는 것만으로도 이준혁은 그 남자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이 순간, 이준혁은 설마 이게 사랑이라는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그는 자신이 평생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살게 될 줄 알았다.한편, 눈앞에 있는 이준혁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윤혜인은 더 이상 그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았다.지금까지 벌어진 일들로 그녀가 그의 마음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그녀가 바람을 피워서 창피하다고 생각된 것뿐이다. 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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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품에 안긴 윤혜인은 종이장 마냥 가벼웠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순간 긴장한 이준혁은 겁이 나서 손바닥에 힘조차 주지 못했다.“왜 그래? 어디 아파?”윤혜인은 그의 손목을 잡더니 힘겹게 말을 꺼내며 애원했다.“배… 배가 너무 아파요… 제발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말을 하던 윤혜인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이준혁은 바로 그녀를 안아 들더니 병원안으로 들어갔다.“이준혁 씨.”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한구운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혜인이 좀 잘 지켜줘요.”걸음을 멈춘 이준혁은 고개를 돌려 싸늘하게 대꾸했다.“당신 걱정이나 해요. 다시 한번 내 여자를 넘보면 그땐 손 하나 부러트리는 걸로 안 끝납니다.”목소리에는 살기가 가득했기에 곁에 서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이내 이준혁은 병원안으로 들어갔고 뒤따라가던 경호원은 상처투성이가 된 한구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그들은 죽일 각오로 때렸는데 한구운은 한쪽 팔이 빠진 것 말고는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다니. 경호원은 한구운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숨긴 게 아닌가 의심됐다.하지만 한구운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한구운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운전할 사람 한 명 보내. 그리고 그 사람한테 얘기해. 내가 그 일을 동의한다고.”전화를 끊은 한구운은 다리를 쫙 뻗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약점이 생긴 남자는 휘두르기 너무 쉽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준혁이 벌써 저렇게 미쳐 날뛰다니. 그럼 나중에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르면 과연 이준혁은 어떻게 될까?어두운 불빛속에 눈을 감고 있던 한구운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생각만 해도 너무 흥미진진했다.한편, 병원에서.응급실에 누워있는 윤혜인을 보며 주치의가 이준혁에게 물었다.“이준혁 씨, 몸에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약물로 낙태를 진행할까요?”“일단 어른부터 살려요. 어른에게 문제없으면 그때…”말을 하던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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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흠칫하던 윤혜인이 되물었다.“뭐가 아니에요?”이때, 간호사가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304호 윤혜인 환자분 약물 교체해 드릴게요.”들어오던 간호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흠칫 놀라다가 이내 빠르게 달려와 이준혁을 보며 언성을 높였다.“이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환자분 지금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몰라요? 그렇게 자극하면 어떡해요! 얼굴도 반반하게 생기신 분이 여자한테 손찌검을 해요?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를 겁니다!”말을 하던 간호사는 살짝 겁이 났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기세 등등한 모습에 고고한 자태까지 자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때리는 걸 보고도 방관할 수는 없다. 환자가 겨우 깨어났는데 이렇게까지 폭력을 쓰는 걸 보면 집에서도 주먹을 자주 휘두르는 게 분명하다.간호사는 자신의 딸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윤혜인을 보며 순간 연민이 두려움을 이겨버렸다.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환자분 괴롭히지 말고 당장 병실에서 나가요!”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진 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든 채 화가 잔뜩 났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병실을 나섰다.간호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윤혜인 손등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이때, 이준혁의 말이 마음에 걸린 윤혜인은 간호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제 뱃속의 아이는…”간호사는 알코올 솜으로 손등을 닦으며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문제없습니다. 다만 환자분 몸 자체에 영양가가 많이 없어서 아이의 발육이 조금 늦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환자분께 영양액을 수액하는 겁니다.”윤혜인은 간호사의 손을 덥석 잡더니 흥분한 듯 다시 물었다.“그럼 제 뱃속의 아이가 무사하다는 말씀인가요?”“그럼요.”간호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며 대답했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던 윤혜인은 자신의 귀가 믿어지지 않았다.이때, 간호사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남편분이 참 너무하네요. 아침에 젊은 간호사들이 남편분이 잘생기고 아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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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이준혁은 조금 전까지 얌전하게 죽을 받아먹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차가운 목소리로 언제 이혼할 건지 물을 줄은 몰랐다.그는 윤혜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코웃음 쳤다.“배부르니까 이제 다시 싸울 힘이 생긴 거야?”“이준혁 씨, 이런 싸움이 우리에게 아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진 만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윤혜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을 이어갔다.“우린 이런 무의미한 싸움과 의심을 계속 하기보다는 평화롭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게 나아요.”“평화롭고 깔끔하게 헤어지자고?”이준혁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말을 곱씹자 윤혜인은 희망이라도 본 듯 얼른 말을 보탰다.“준혁 씨가 이혼을 동의하기만 하면 어떤 조건을 걸든 전 상관없어요.”뱃속의 아이는 이제 윤혜인에게 유일한 삶의 희망이고 위로였기에 그녀는 절대 이 아이를 잃을 수 없다. 만약 이준혁이 정말 아이를 빼앗으려고 마음먹으면 그녀는 이선 그룹의 법무팀을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다.그럼 그녀는 부양권을 받을 수 없다.이준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윤혜인, 이렇게까지 나를 벗어나고 싶은 거야? 한구운 그 남자에게 가고 싶어?”윤혜인은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배와 상관이 없다는 말을 입이 아프게 반복했는데 이준혁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그냥 그가 생각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그녀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이준혁은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윤혜인의 턱을 덥석 잡더니 차갑게 말했다.“윤혜인, 너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 내가 네 소원대로 이뤄지게 내버려둘 거 같아?”눈시울이 붉어진 윤혜인은 울먹이면서 물었다.“대체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어떻게 하길 바라냐고?”차갑게 코웃음을 치던 이준혁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넌 반드시 내 곁에 있어야 돼. 괴롭더라도 참아.”윤혜인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무력하게 말했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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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기껏 보러 왔는데 윤혜인은 눈길조차 주지 않자 이준혁은 또다시 화가 났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불을 홱 거둔 뒤 침대위로 올라갔고 깜짝 놀란 윤혜인은 굳어버린 표정으로 물었다.“왜 올라와요?”“그럼? 설마 내가 어젯밤에 침대 곁에 계속 앉아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이준혁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윤혜인은 거부감이 확 들었다. 두 사람은 지금 이렇게까지 감정 싸움을 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같은 침대에 눕는다는 건 너무 불편했다.침대에는 어느새 향기로운 냄새로 가득 찼다.“씻었어요?”이준혁은 윤혜인의 물음에 흠칫했다. 병실 욕실은 너무 불편했기에 그는 집에서 씻고 왔다.윤혜인 곁으로 슬쩍 다가간 이준혁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냄새 맡아볼래?”너무 가까이 붙어있은 탓에 윤혜인은 향기를 정확하게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씻고 온 게 분명하다. 이 남자 몸에는 항상 좋은 향기가 났다.이때, 이준혁의 뜨거운 입김이 윤혜인의 귓가에 쏟아졌고 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병실 침대에서 야릇한 짓을 했던 게 떠올라서 어느새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좀 옆으로 가면 안 돼요?”병실 침대가 작은 사이즈는 아닌데 이준혁이 올라오니 왠지 어린이 침대처럼 작게 느껴졌다.“안 돼.”이준혁은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윤혜인은 그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기에 일단 참을 수밖에 없었다.“저 내일…”윤혜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내일 너랑 같이 외할머니 보러 갈 거야.”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이었다. 이준혁이 언제부터 그녀의 생각을 꿰뚫어보기 시작한 거지?내일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지 7일째 되는 날이기에 윤혜인은 외할머니를 보러 가고 싶었다.그런데 이준혁도 같이 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침묵이 흐르던 그때, 이준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외할머니 일은 내가 잘못한 게 맞아.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어.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일찍 돌아왔을 거야.”윤혜인은 이준혁이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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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준혁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어떻게 된 일이에요?”이준혁이 다급하게 묻자 임씨 아주머니는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아가씨가 일어나자마자 어지럽다고 하시더니 계단을 내려올 때 정신을 잃고 굴러 떨어졌어요.”“구급차는 불렀어요?”“네.”이내 차량 스피커로 임세희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렸다.“흑… 나 머리가 너무 아파… 다리고 너무 아프고… 준혁 오빠 어디 있어요? 나 준혁 오빠 보고 싶어요…”혀 짧은 임세희의 목소리에 윤혜인은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으며 속이 울렁거렸다.이준혁처럼 여자를 많이 겪어보지 않은 남자만 이 사실을 모르고 이런 수법에 번번히 넘어갈 것이다.“어느 병원이에요?”이준혁의 물음에 윤혜인은 자신이 이 차안에 계속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쫓겨날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내려가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에 차문을 연 윤혜인은 길거리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핸드폰이 망가진 관계로 윤혜인은 기차표를 예매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버스 정거장으로 가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갈 생각이었다.이때, 뒤에 서있던 고급 외제차가 거대한 엔진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었고 그 모습에 윤혜인은 씁쓸하게 웃었다.역시 그녀의 추측대로 버림을 받은 것이다.임세희 이름 세자는 그녀가 영원히 뛰어넘을 수 없는 구렁텅이지만 이미 여러 번 버림을 받은 덕분에 이제는 큰 감흥도 없었으며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이내 윤혜인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췄고 윤혜인은 자연스럽게 차문을 열고 택시에 타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택시 뒤에서 귀를 자극하는 경적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윤혜인이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에 떠났던 고급 외제차가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차량 앞 유리창을 통해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그는 창문을 내리더니 윤혜인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리와.”멍하니 서있던 윤혜인 뒤로 다른 손님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재촉했다.“저기요, 타실 거예요 말 거예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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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한편, 병원에서.임세희는 병실 침대에 기대서 실실 웃으며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그녀는 일부러 무릎과 손바닥에 찰과상까지 만들었다.많이 아프긴 하지만 윤혜인 그 계집애를 괴롭게 할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가치 있는 일이다.임세희가 아침 일찍 이준혁이 윤혜인과 함께 그녀 외할머니를 보러 마을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그녀는 절대 윤혜인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이때, 병실 문 앞에서 복도를 지켜보고 있던 임씨 아주머니가 말했다.“아가씨, 오고 계십니다.”임세희는 얼른 손에 들고 있던 우유를 내려놓은 채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준혁의 비서 송휘재가 병실에 들어서자 임씨 아주머니는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휘재 씨, 준혁 도련님은요?”송휘재가 헛기침을 살짝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대표님은 지금 많이 바쁘셔서 저에게 임세희 씨를 보고 오라고 지시하셨습니다.”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누워있던 임세희는 송휘재의 말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언성을 높였다.“뭐라고?”조금 전의 말을 다시 반복한 송휘재는 마지막에 말을 조금 보탰다.“대표님이 임세희 씨에게 최고의 의사를 붙이라고 지시하셨습니다.”임세희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도 이준혁이 대충 비서만 보낼 줄은 몰랐다.임세희는 곁에 놓인 컵을 들어 송휘재에게 던지더니 소리를 질렀다.“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식! 준혁 오빠를 데려왔어야지!”재빨리 피한 송휘재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대표님의 결정을 제가 좌우지할 수는 없습니다.”이때, 임씨 아주머니가 중재에 나섰다.“휘재 씨,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저희 아가씨가 충격을 받아서 그래요!”“아주머니, 저놈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저 버러지 같은 놈은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한 자식이에요!”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 송휘재가 말했다.“맞아요. 전 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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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임세희의 부탁을 들은 송휘재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그녀를 홱 밀쳐냈다.“대표님 스케줄을 알아내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부탁은 절대 못해요. 그러다가 대표님이 아시게 되면 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거예요.”더군다나 송휘재는 윤혜인의 가르침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 윤혜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이준혁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일일이 알려줬기에 그가 이렇게 빨리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임세희가 지금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짓을 시키다니. 그는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절대 윤혜인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잔뜩 흥분해 있던 임세희는 송휘재의 말에 화가 나서 그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고 송휘재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빨간 손자국이 생겼다.“왜? 감옥 가고 싶어?”임세희의 말에 송휘재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기에 절대 감옥에 갈 수는 없다.“한가지 부탁만 들어줄게요.”송휘재가 덜덜 떨면서 말하자 임세희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놈, 이 구렁텅이에 빠져놓고 쉽게 발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꿈도 참 야무지네.임세희는 송휘재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꼬셨다.“휘재 오빠, 나 아직 만족 못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말을 하던 임세희는 차오르는 흥분에 얼굴까지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원망과 독기로 가득했다.나쁜 계집애, 넌 이제 곧 내연녀 타이틀을 달고 평생을 살게 될 거야.한편, 인하 마을에서.마을에 도착한 윤혜인은 꽃집에서 하얀 국화꽃을 주문한 뒤 떡집에 가서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떡까지 구매했다.떡집 사장님은 바로 윤혜인을 알아보았다. 사장님은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가 인상이 깊었다.“아가씨, 지금 막 나온 떡이에요. 가래떡도 한 팩 줄 테니 먹어봐요. 이번에는 절대 울면서 먹지 말고.”사장님은 떡을 챙겨주며 허허 웃었고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카드 결제요.”이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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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이준혁의 말에 윤혜인도 고집을 부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여기서 잘 거예요. 제가 잔다고 했지 준혁 씨에게 자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그녀는 이곳에 어렸을 때의 즐거움 추억들이 많았다. 이준혁은 이곳을 누추하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윤혜인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건 안 돼. 여긴 습기가 너무 심각하고 세균들도 많아. 넌 지금 임신 상태…”윤혜인은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참다못해 그의 말을 끊었다.“준혁 씨, 이럴 필요 없어요.”찬물을 확 끼얹은 윤혜인을 보며 이준혁이 실눈을 뜬 채 물었다.“내가 어쨌는데?”“아이를 신경 쓰는 척하지 않아도 돼요.”“내가 신경 쓰는 척한다고?”표정이 살짝 변한 이준혁은 가까스로 차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듯했다.“아니에요?”윤혜인이 되물었다.그는 그녀 뱃속의 아이가 원망스럽고 싫어서 그녀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강요했던 사람이다. 뱃속의 아이가 그의 아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믿지 않았으면서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일 필요는 전혀 없다.이준혁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며 억지로 화를 눌렀다.“윤혜인, 괜히 시비 걸지 마.”그는 그녀와 싸우기 위해 몇 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으로 온 건 아니다. 한편, 윤혜인은 저택에서 하루 지내고 싶다는 게 왜 이준혁에게는 시비로 들리는건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모든 걸 이준혁의 뜻대로 해야 할까?뱃속의 아이를 살리고 없애는 것조차 그의 뜻대로 해야 한다니. 그녀는 이렇게 구속받는 인생이 너무 지긋지긋했다.“이준혁 씨, 대체 누가 시비를 거는 건데요? 시간이 그렇게 많으면 계단에서 떨어진 애인이나 보러 가요. 어차피 준혁 씨는 그 여자가 하는 연기도 좋아하잖아요. 이곳에서 괜한 소리 듣지 말고 가요.”윤혜인의 말에 이준혁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네 그 잘난 선배에게 고자질하려고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거 아니야?”“좋을 대로 생각해요.”윤혜인은 어차피 믿지도 않은 이준혁에게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반대로 화가 잔뜩 치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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