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희의 부탁을 들은 송휘재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그녀를 홱 밀쳐냈다.“대표님 스케줄을 알아내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부탁은 절대 못해요. 그러다가 대표님이 아시게 되면 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거예요.”더군다나 송휘재는 윤혜인의 가르침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회사에 있을 때 윤혜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이준혁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일일이 알려줬기에 그가 이렇게 빨리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임세희가 지금 이렇게 더럽고 치사한 짓을 시키다니. 그는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절대 윤혜인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잔뜩 흥분해 있던 임세희는 송휘재의 말에 화가 나서 그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고 송휘재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빨간 손자국이 생겼다.“왜? 감옥 가고 싶어?”임세희의 말에 송휘재는 덜컥 겁이 났다. 그는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기에 절대 감옥에 갈 수는 없다.“한가지 부탁만 들어줄게요.”송휘재가 덜덜 떨면서 말하자 임세희는 피식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놈, 이 구렁텅이에 빠져놓고 쉽게 발을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꿈도 참 야무지네.임세희는 송휘재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꼬셨다.“휘재 오빠, 나 아직 만족 못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얼른…”말을 하던 임세희는 차오르는 흥분에 얼굴까지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원망과 독기로 가득했다.나쁜 계집애, 넌 이제 곧 내연녀 타이틀을 달고 평생을 살게 될 거야.한편, 인하 마을에서.마을에 도착한 윤혜인은 꽃집에서 하얀 국화꽃을 주문한 뒤 떡집에 가서 외할머니가 좋아하는 떡까지 구매했다.떡집 사장님은 바로 윤혜인을 알아보았다. 사장님은 귀엽고 예쁜 여자아이가 인상이 깊었다.“아가씨, 지금 막 나온 떡이에요. 가래떡도 한 팩 줄 테니 먹어봐요. 이번에는 절대 울면서 먹지 말고.”사장님은 떡을 챙겨주며 허허 웃었고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카드 결제요.”이준혁이
이준혁의 말에 윤혜인도 고집을 부리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여기서 잘 거예요. 제가 잔다고 했지 준혁 씨에게 자라고 하지는 않았잖아요.”그녀는 이곳에 어렸을 때의 즐거움 추억들이 많았다. 이준혁은 이곳을 누추하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윤혜인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그건 안 돼. 여긴 습기가 너무 심각하고 세균들도 많아. 넌 지금 임신 상태…”윤혜인은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다가 참다못해 그의 말을 끊었다.“준혁 씨, 이럴 필요 없어요.”찬물을 확 끼얹은 윤혜인을 보며 이준혁이 실눈을 뜬 채 물었다.“내가 어쨌는데?”“아이를 신경 쓰는 척하지 않아도 돼요.”“내가 신경 쓰는 척한다고?”표정이 살짝 변한 이준혁은 가까스로 차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듯했다.“아니에요?”윤혜인이 되물었다.그는 그녀 뱃속의 아이가 원망스럽고 싫어서 그녀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강요했던 사람이다. 뱃속의 아이가 그의 아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전혀 믿지 않았으면서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일 필요는 전혀 없다.이준혁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며 억지로 화를 눌렀다.“윤혜인, 괜히 시비 걸지 마.”그는 그녀와 싸우기 위해 몇 백 킬로미터를 달려 이곳으로 온 건 아니다. 한편, 윤혜인은 저택에서 하루 지내고 싶다는 게 왜 이준혁에게는 시비로 들리는건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모든 걸 이준혁의 뜻대로 해야 할까?뱃속의 아이를 살리고 없애는 것조차 그의 뜻대로 해야 한다니. 그녀는 이렇게 구속받는 인생이 너무 지긋지긋했다.“이준혁 씨, 대체 누가 시비를 거는 건데요? 시간이 그렇게 많으면 계단에서 떨어진 애인이나 보러 가요. 어차피 준혁 씨는 그 여자가 하는 연기도 좋아하잖아요. 이곳에서 괜한 소리 듣지 말고 가요.”윤혜인의 말에 이준혁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네 그 잘난 선배에게 고자질하려고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거 아니야?”“좋을 대로 생각해요.”윤혜인은 어차피 믿지도 않은 이준혁에게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반대로 화가 잔뜩 치밀어
잔뜩 긴장한 윤혜인은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유일한 무기인 손전등을 손에 꼭 쥐었다.이때, 철컥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윤혜인은 집안 곳곳을 살폈지만 큰 가구도 별로 없었고 몸을 숨길 만한 곳도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안방 문 뒤에 숨어서 손전등을 높이 치켜들었다. 문밖에서 들리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상대방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윤혜인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으며 온몸이 덜덜 떨렸다.그녀는 상대방이 금전을 노리는 도둑이길 바랐다. 그러면 아무도 없는 듯한 집안 꼴을 보고 포기할 수도 있으니.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옆방 문이 조금씩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이내 그 공포스러운 발걸음 소리는 안방 입구에서 멈췄다.조금씩 비추는 달빛에 윤혜인은 문의 손잡이가 조심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그녀는 손전등을 꼭 잡은 채 주위 모든 것을 경계했다.그녀에게는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다. 실수를 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끼익.”나무로 만든 낡은 문이 조금씩 열렸고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의 얼굴이 윤혜인 앞에 나타났다.팍!윤혜인은 온 힘을 다해 손전등을 내리쳤다. 손전등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피하지 못한 남자는 손전등에 맞아 뒷걸음질을 쳤다.윤혜인은 그 기회에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지만 발을 내딛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헤헤… 우리 예쁜이… 헤헤…”상대방은 지력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였다. 힘이 굉장히 강한 그 남자는 단번에 윤혜인을 자신의 곁으로 확 잡아당겼고 휘청거리던 윤혜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래도 다행히 그녀가 팔꿈치로 바닥을 지탱하고 있었기에 배가 부딪치지는 않았다.그 남자는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의 발목을 잡은 채 침대로 끌어당겼다.깜짝 놀란 윤혜인은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다가 신고 있던 슬리퍼가 떨어지면서 발을 빼낼 수 있게 되었다
윤혜인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정장 외투안에 숨어 있었고 등 뒤에서는 주먹을 날리는 소리와 집으로 몰래 들어왔던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이 순간, 윤혜인은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이내 경찰차의 경적소리가 들렸다. 옆집에 있던 사람이 살려달라는 윤혜인의 비명소리를 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남자를 경찰차에 태운 경찰은 윤혜인과 이준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이 사람은 전과범입니다. 전에도 노숙자로 위장해서 예쁜 여자분들만 공격했거든요. 약간 모자란 사람처럼 연기를 하면서 여자를 괴롭히는 게 저 사람 관용 수법입니다.”아마도 윤혜인이 오후에 밖에 나와서 이불을 털 때 범인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경찰의 말을 들은 뒤 남자의 험악한 얼굴을 다시 마주하자 윤혜인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범인이 경찰에 끌려갈 땐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윤혜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침을 질질 흘렸다.“예뻐… 향기가 너무 좋아…”윤혜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범인을 보며 온몸이 덜덜 떨렸고 속도 울렁거렸다.이준혁은 재빨리 윤혜인을 안아서 차에 태운 뒤, 그녀를 위해 안전벨트를 묶어주었다. 이때, 윤혜인이 손을 거두려던 이준혁을 덥석 잡더니 울먹거리면서 말했다.“집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요.”“내일 와서 챙기자.”이준혁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다독이며 달랬고 윤혜인은 말없이 눈을 꼭 감았다.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그녀는 속눈썹마저 덜덜 떨었다.이준혁은 마을의 한 호텔을 예약했다. 그녀를 데리고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는 그녀를 보니 일단은 가까운 곳에 방 하나를 얻어서 얼른 쉬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호텔 방에 들어선 이준혁은 엉망진창인 시설과 환경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호텔은 마을에서 가장 평점이 높은 호텔이었다.이준혁은 호텔 직원에게 방에 있는 모든 물품들을 일회용 물품으로 바꿔달라고 한 뒤 욕조에 물을 받았다.그리고는 윤혜인에게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라고 했지만 조금
이준혁은 확신에 찬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김성훈은 전에 자궁 냉증이 있는 여자에게 임신한 날짜도 오차가 있을 거라고 했다. 물론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이준혁은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윤혜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2년 동안 이준혁은 윤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망울에 비춰진 그림자는 언제나 이준혁이었다.그는 턱으로 윤혜인의 머리카락에 비비적거리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혜인아, 미안해. 우리 앞으로 잘 살아보자. 응?”다정하고 자상한 이준혁의 목소리에 윤혜인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복잡했다. 체내에 있는 가장 약한 곳이 바늘에 찔린 듯했다.윤혜인은 매번 이준혁의 말에 상처를 받아서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이지만 그를 온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이 남자는 그녀가 10년 동안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그녀의 희로애락이 결정되었다.하지만 이준혁에게 받은 상처 또한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다.이 순간, 윤혜인은 한 마리의 어린 새 마냥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두 개의 자아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그녀에게 뱃속의 아이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설득했고 다른 한 사람은 더 이상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고, 이준혁이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그의 소유욕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 타일렀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던 윤혜인은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겼지만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안고 있던 이준혁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야심한 밤, 윤혜인은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두 눈을 번쩍 떴고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의 꿈속에 나타나 향기가 좋다고 하면서 그녀를 쫓아다녔다.“왜 그래?”침대 곁에 설치된 전등을 켠 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돌리며 물었고 입술을 꽉 깨문 윤혜인의 눈가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이준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고 차마 입 밖에 꺼낼 수 없었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말했다.“소파에 가서 자요.”무섭지만 않았다면 윤혜인은 절대 이준혁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와 달리 반응이 확실했다.조금 전에 많이 놀란 윤혜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이준혁은 그녀를 그만 놀리기로 했다. “샤워 좀 하고 올게.”침대에서 내려온 이준혁은 욕실로 들어가 찬물 샤워를 했고 나와보니 윤혜인은 또다시 자는 척하고 있었다.윤혜인은 진짜 잠든 모습과 자는 척하는 모습이 확연하게 달랐다. 충격을 심하게 받은 그녀는 오늘밤 쉽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침대로 다가가 허리를 숙인 이준혁은 그녀의 귓볼을 살짝 깨물었다. 화들짝 놀란 윤혜인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개띠에요?”왜 이렇게 자꾸 사람을 깨물지?이준혁은 핏자국이 난 팔을 그녀에게 보여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너한테 전염된 거 같은데?”윤혜인은 이준혁의 팔을 보며 반박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그녀가 깨문 것이 조금 더 심각했기 때문이다.이준혁은 아무 대꾸도 없는 윤혜인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네 그 튼튼한 이에 보험 좀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 어떤 무기보다 효과가 확실했다.눈살을 살짝 찌푸린 윤혜인은 이준혁이 왜 이 늦은 밤에 잠도 안 자고 이렇게 그녀에게 시비를 거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윤혜인이 귀찮은 듯 다시 눈을 감자 갑자기 다가온 이준혁은 그녀의 허리를 확 감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빚 독촉하러 왔어.”“빚은 무슨…”흠칫하던 윤혜인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설마 이 남자… 아니야! 절대 그럴 리는 없어!“날 네 번이나 깨물었으니 나도 한 번쯤은 복수해야지.”윤혜인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요.”윤혜인은 팔을 내밀며 말했다. 은은한 불빛 아래 그녀의 팔은 가늘고 백옥같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때, 이준혁은 그녀가 내민 팔을 꾹 누르더니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감싼 채 가까이 잡아당겼고 이내 고개
문이 살짝 열려 있었기에 이준혁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나중에 돌아가면 너 보러 갈게. 지금은 못 가.”상대방이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모르지만 이준혁은 조용히 듣고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가 통화를 하고 있다는 걸 그제야 눈치챈 윤혜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갔다.샤워 가운을 두르던 윤혜인은 오늘 입을 옷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 입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졌으며 더군다나 그 변태의 손길이 닿았기에 다시는 입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준혁이 방으로 들어왔고 전혀 눈치채지 못한 윤혜인은 그의 정장 외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그의 옷이 너무 큰 탓에 소매는 그녀의 무릎까지 닿았으며 그 모습은 마치 어른 옷을 몰래 입은 어린아이 같았다.이준혁이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제야 그의 존재를 발견한 윤혜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말했다.“입을 옷이 없어요.”서울이었다면 이준혁은 사람을 시켜 새 옷을 준비했을 텐데 이곳은 옷을 살 곳마저 마땅치 않았다.“저랑 같이 집에 옷 가지러 가요.”윤혜인은 옷을 챙기긴 했지만 전부 집에 두고 왔다.“이대로 나가려고?”이준혁은 윤혜인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안 돼요?”윤혜인은 곁에 있던 전신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준혁의 커다란 옷이 무릎까지 덮었으니 차에 타도 춥지는 않을 것이다.“뭐 문제 있어요?”윤혜인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목에 퍼렇게 멍든 자국만 제외하면 전혀 상관없었다. 이준혁 저 남자는 개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딸기를 심는다고 하던데 저 남자는 그녀의 목에 포도를 심어버렸다.입을 삐죽거리던 윤혜인은 머리카락으로 목덜미를 살짝 가렸다.이때, 이준혁이 뒤에서 그녀를 와락 안더니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뭘 가리고 있어?”윤혜인은 그와 말을 걸고 싶지 않아서 가볍게 무시했다. 이준혁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살짝 누르더니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을 보탰다.“이렇게 발가
“안 돼. 아이와 이혼만 빼고 뭐든 다 들어줄 수 있어.”이준혁이 단호하게 거절하자 윤혜인도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이 두가지를 제외하면 저도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재주가 생긴 거지? 어젯밤에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더니.그는 지금 이 순간, 윤혜인을 침대에 눕혀 화가 풀릴 때까지 뽀뽀를 하고 싶었다.한편, 이준혁의 무릎에 앉은 윤혜인은 그의 다리 근육들이 너무 딱딱해서 엉덩이가 불편했다.“저랑 옷 가지러 집에 가기 싫으면 저 혼자 다녀올게요.”말을 하던 윤혜인이 벌떡 일어나자 이준혁은 그녀를 덥석 잡아당기더니 샤워 가운으로 그녀를 꼼꼼하게 둘러싼 뒤 어깨에 업고 호텔을 나섰다.저택으로 돌아온 윤혜인은 옷을 챙기러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엉망진창이 된 방을 보자 어제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그녀는 이준혁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가지 마요.”윤혜인을 힐끗 쳐다본 이준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곁에 계속 머물렀다.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간 윤혜인은 문을 비스듬히 열어 두었기에 이준혁은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의 얇고 아름다운 등을 볼 수 있었다.이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동공이 흔들렸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윤혜인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이준혁은 부서진 문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저곳 찾다가 나사를 발견하게 되었고 옷소매를 위로 거두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문고리를 잡은 채 나사를 박기 시작했다.은은한 햇빛이 이준혁의 옆모습에 비춰 들었고 조각 같은 외모는 오늘따라 유난히 더 수려했다.윤혜인은 나사를 박던 이준혁을 보며 살짝 놀라웠다. 그가 이런 일까지 할 줄 알다니.“이리와.”이때, 이준혁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윤혜인에게 말했고 윤혜인이 다가가자 그는 나사 하나를 그녀에게 건넨 뒤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이준혁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한 방울의 땀은 윤혜인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괜히 부끄러워진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대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