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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1화

임미연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정유진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 아이가 지찬 오빠 핏줄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걸까? 그렇다면 지찬 오빠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인가?’옆에 있던 사람들도 서로 당황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어르신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유진, 똑바로 말해라. 네가 이 아이를 의심하고 있는 거냐?”정유진은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미연 씨가 아이를 낳고 나면 친자 확인을 해보면 될 거예요. 임미연 씨, 어때요?”임미연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모습을 본 큰며느리의 얼굴도 굳어졌다. 정유진의 차분한 태도를 보니 진실은 이미 명확해 보였다. 설마 이 아이가 강지찬의 자식이 아니라는 건가? 더 큰 문제는 그동안 이 아이가 강지찬의 아들이라 믿고 정유진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온 자신들이 너무 부끄러워졌다.큰며느리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임미연에게 화살을 돌렸다. “미연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네 할머니는 널 아끼지만, 강씨 집안의 어르신이시기도 해. 혈통 문제에서는 절대로 너를 편 들지 않으실 거야. 빨리 사실을 말해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말이야.”임미연은 겁에 질려서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아이는 정말로 지찬 오빠 아이예요. 제가, 제가 맹세할게요!”정유진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시간도 늦었고 이렇게 하죠. 제가 호텔에 식사를 예약해 둘게요. 고모할머니와 이모님들은 식사하시고 돌아가세요. 저는 죄송하지만 회사 일이 있어서 함께하지 못하겠네요.”그리고 임미연에게 덧붙였다. “아이 문제는 급할 필요 없어요.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히 진실이 밝혀지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미연 씨를 미행하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을 거예요.”그 말을 남기고 정유진은 미소를 짓고 일어났다. 임우연에게 마무리를 부탁한 뒤 그녀는 회사를 나섰다.“...”정유진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정유진이 아니었다. 그녀는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줬고 그들이 한마디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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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오늘도 또 그 사람들이 귀찮게 했어?” 강지찬이 정유진을 품에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정유진은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 해결됐어요.” “우리 아내가 점점 더 대단해지네. 이거 어쩌면 좋지? 평생 너한테 기대고 싶을 지경이야.” 정유진은 그제야 째려보며 말했다. “너무 오버하지 마요.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데 나 정말 정신없어요.” 강지찬은 사랑하는 아내의 허리를 놓고 싶지 않은 듯, 계속 붙들고 있었다. “며칠만 더 참아줘. 드러난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따로 움직이면 더 수월해질 거야.” 정유진은 그가 나름의 계획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당연히 지지했다.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강지찬이 연우만 집에 있는 것을 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지아는 아직도 안 들어왔어?” 정유진은 설명했다. “원준 씨가 교통사고가 났잖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간호 중이에요.” 강지찬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는 다시 정유진에게 물었다. “며칠 후에 있을 온씨 집안 생신 연회, 옷은 준비됐어?” “오늘 도착했어요. 아직 지아는 입어보지 않았지만요.” 이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무거워졌다. 최신애의 생일에 강지아가 갈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다. 다음 날, 강지아는 집에 돌아왔고 정유진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갈 거예요. 왜 안 가겠어요.” 강지아가 과일을 먹으며 말했다. “안 가면 사람들이 내가 쫄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에요.” 정유진은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그때 유정 씨가 분명히 있을 거야.” “있으면 있는 거죠, 뭐.” 강지아는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했지만 최신애가 마치 미래 며느리를 소개하듯 주유정과 팔짱을 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생각만큼 대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유진은 그녀의 얼굴빛이 달라진 걸 보고 살며시 손을 잡아줬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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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강지아가 허리를 굽혀 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 뒤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그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두 여자 중 한 명은 매우 당황한 표정을, 다른 한 명은 ‘내가 잘못 말했나?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강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키가 큰 편이었고 강지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마주 보고 있는 여자들보다 반 머리 정도 더 컸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문득 정유진이 귀찮게 구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표정이 떠올랐다. 담담한 표정.그래서 그녀도 그렇게 해보려 했지만 역시 어린 탓에 눈빛에 무의식적으로 경멸의 기색이 묻어났다.“내가 바보라고? 그럼 남 뒤에서 험담하는 당신들은 뭐지? 교양 없는 애들인가?”이 두 소녀도 모두 서울의 유명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교양 없다는 말을 듣는 건 매우 창피한 일이었다.문제는 그들이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다는 거였다. 남 뒤에서 말하다 현장에서 들킨 거니까.“너, 네가 잘났다고 생각하지 마. 유한 오빠는 널 싫어해. 오빠는 줄곧 유정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어.”이 말은 최근 강지아의 머릿속을 수없이 맴돌던 말이었기에 그녀에겐 별로 상처가 되지 않았다.“온유한이 주유정을 기다리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강지아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언제 온유한을 좋아한다고 했어? 울면서 온유한과 결혼하고 싶다고 한 적 있어? 이 세상에 온유한만 남자인 것도 아니고.”두 소녀는 그녀의 날카로운 반박에 할 말을 잃고 치마를 들고 도망쳤다.강지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이때 치마가 연우에 의해 살짝 당겨졌다.“연우, 방금 고모 멋있었지?”연우는 옆을 가리키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치즈스틱 드실래요?”“!!”온유한은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대화를 다 들은 것 같았다.뭐 들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강지아는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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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이번 연회에 주유정의 가족이 많이 왔다. 그녀의 부모님, 외할아버지 가족, 그리고 두 사촌 오빠까지.최신애가 주씨 가문에 보이는 열정을 보면, 마치 온유한과 주유정이 곧 결혼식장에 들어설 것 같은 분위기였다.이를 본 강지찬의 얼굴은 얼어붙은 듯했다.“어?”이때 최의현이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유한이 주유정 외할아버지와 대화하고 있었는데, 어디 갔지?”이때 온씨 가문의 친척들과 주씨 가문의 친척들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한 가족처럼.한규진이 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나갔어. 그런데 지아는?”“아마 어디 숨어서 몰래 울고 있겠지.”강지아는 울고 있지 않았다. 호텔 곳곳에 사람들이 있어서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마찬가지로 심심해하던 서원준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그녀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와, 어디서 온 미인이야, 정말 예쁘다.”강지아는 축 처진 모습으로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옆에는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오늘 어때요? 아직도 아파요?”“당연히 아프지.” 서원준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네가 가자마자 아프기 시작했어. 이상하지 않아?”강지아는 웃음이 났다. “내일 다시 보러 갈 테니 오늘은 그냥 참아요.”“술 마시지 마. 취하면 위험해.” 서원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강지아는 눈을 굴렸다. “오빠랑 언니랑 같이 왔는데, 내가 취해도 누가 감히 나한테 뭘 어쩌겠어요?”서원준은 화면 속 꽃 같은 얼굴을 보며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걱정돼서 그러지. 착하지, 술 마시지 마.”그가 마시지 말라고 하니까, 원래는 별로 마실 생각이 없었던 강지아가 오히려 병을 들어 꿀꺽꿀꺽 몇 모금 마셨다.서원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대에서 내려와 잡으러 가는 척했다. “너 기다려.”강지아가 놀라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너 잡으러 가는 거야.”“미쳤어요?” 화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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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최신애는 주씨 가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유한이는 어디 갔어요? 이렇게 많은 친척들이 왔는데, 사람들 눈을 피해 어디로 간 거예요.”온혁진이 말했다. “친구들 만나러 갔겠지. 이제 다 큰 어른인데 계속 간섭하지 마.”“안 간섭하고 되겠어요?” 최신애는 아들이 또 강지아랑 어울리러 갔을까봐 걱정됐다.오늘 많은 친척들이 왔는데 최신애는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여보, 지아를 금혁이한테 소개해주면 어떨까요?”온혁진이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당신 친정 조카 말이야? 그 바보 같은 녀석?”최신애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혁이가 왜 바보예요? 그래도 해외에서 졸업했잖아요. 게다가 생긴 것도 나쁘지 않고 지아랑 나이도 비슷해요.”“흥, 그 3류 대학 졸업장은 국내 2류 대학보다도 못해. 그걸 어떻게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 온혁진은 매우 반대했다. “우리 집안이랑 강씨 집안은 오랜 세월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어. 당신이 지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이해하지만 절대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지 마.”최금혁이 최신애의 친정 조카라서 온혁진은 그 녀석이 고등학교 때 여자애를 임신시켜서 고소당하고 국내 학교에서 버티지 못해 해외로 보내졌다는 걸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강씨 가문이 그런 녀석인 줄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최신애는 오히려 자기 조카와 강지아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며, 정말로 소개해 주려고 했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강지아와 최금혁을 불러오게 했다.한편, 온유한은 강지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주씨 가문 쪽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온유한은 서원준처럼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진심이었다.하지만 여자는 신기한 생물이라 때로는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설명할 수 없다니, 그렇게 복잡한 건가?“내가 설명해 달라고 했어? 굳이 그럴 필요 없어.”지금 설명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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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아, 지아구나. 몇 년 만에 보니까 알아보지 못했네.”최금혁가 급히 일어나 강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강지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만난 적 있어요?”“최금혁이라고 해. 아줌마 친정 조카란다.” 최신애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지아야, 네가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만난 적이 있어. 그 후 금혁이가 유학을 갔다가 최근에 돌아왔거든. 아줌마가 두 사람 나이도 비슷한 것 같아 서로 소개 해주고 싶었어. 그냥 친구 한 명 더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강지아는 머리카락을 만지는 척하며 최신애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이해했다. 그녀가 온유한에게 집착할까 봐 걱정돼서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는 거였다.바보 같은 사람을 친정 조카에게 소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가?강지아는 미소를 지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어릴 때 엄마를 잃었잖아요. 저를 아껴주고, 제 친구 관계까지 신경 써주시는 사람은 역시 아주머니 뿐이에요.”최신애의 얼굴색이 살짝 변했다.예상 밖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강지아가 이렇게 뼈 있는 말을 할 줄이야.그녀는 알아차렸다. 강지아가 그녀의 위선과 참견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하지만 그녀의 멍청한 조카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강지아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우리 고모가 널 아끼서 그런 거지. 우린 다 한 가족이잖아.” 최금혁이 휴대폰을 꺼냈다. “지아야, 연락처 좀 교환하자. 나중에 내가 너 재밌는 데 데려갈게.”표정이 음흉해 보였는데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이를 깨달은 강지아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휴대폰을 안 가져왔어요.”그녀는 최신애를 향해 말했다. “아주머니, 죄송한데 오빠한테 말씀 좀 전해주시겠어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간다고요.”최신애도 어색해하며 속으로 강지아가 은혜를 모른다고 원망했다.‘금혁이가 뭐가 안 좋다는 거지? 잘생기고 집안도 괜찮은데.’옆에 있던 온혁진이 상황이 좋지 않음을 눈치 채고 급히 말했다.“지아가 몸이 안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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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강지찬과 정유진이 도착했다.구경꾼들도 점점 많아져 온혁진과 최신애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온유한이 강지아를 꼭 안고 있는 걸 보자 주유정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곧바로 표정을 바꾸고 웃는 얼굴로 최신애에게 다가갔다.“다들 왜 여기 모여 계세요?” 주유정이 최신애의 팔짱을 끼며 웃으며 말했다. “저쪽에 생일 케이크가 준비됐어요. 아주머니, 이제 초를 불어야 해요. 여러분도 여기 서 있지 마시고 다 같이 가서 케이크 먹어요.”온혁진도 서둘러 사람들을 재촉했다. “그래요 그래요, 다들 케이크 드시러 가요.”하지만 강지찬이 움직이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있었다.표정이 매우 좋지 않았던 강지찬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강지아의 감정은 이미 안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온유한의 품에서 빠져나와 오빠와 언니 곁으로 걸어갔다.오늘은 최신애의 생일이었다. 진심이든 아니든 최신애는 예전에 그녀를 정말 아껴줬고 그녀 역시 최신애에게서 모성애를 느꼈었다.이런 날 소란을 피우는 건 철없는 행동일 뿐이었다.그녀는 미소 지었다. “오빠, 난 괜찮아. 아까 갑자기 머리가 좀 아팠어.”정유진은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순순히 꾸짖는 척했다. “어제 옷을 얇게 입었다고 했잖아, 역시 감기 걸렸구나? 머리 아직도 아파? 안 되겠다 싶으면 먼저 집에 가.”강지아는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럼 언니는 좀 더 놀다 가요. 난 연우를 데리고 먼저 갈게요. 애들은 일찍 자야 하니까.”“그래, 의사 선생님께 집에 들르라 할게.”정유진은 끝까지 연기에 동참했다.막 가려는데 연락처를 얻지 못한 최금혁이 다시 다가왔다.“지아야, 내가 데려다줄까?”장형준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최금혁을 막았고 강지아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최금혁은 현장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여전히 외쳤다. “지아야, 나중에 내가 찾아갈게!”최신애는 얼굴이 푸르락붉으락해지며 화가 났다. 처음으로 조카가 정말 멍청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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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최의현은 당장이라도 최금혁에게 주먹을 날리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인간쓰레기, 외국에서 몇 년 동안 정신없이 놀다가 졸업장도 돈으로 샀다고 하던데.”“재작년에 어린 여자 모델이 최씨 집안에 배불뚝이가 되어 찾아갔대. 최금혁 아이라고 우겼다잖아. 그 아가씨도 이참에 최씨 집안으로 시집갈 생각이었나 봐. 하지만 외국에 있는 최금혁이 절대 인정하지 않아 최씨 집안은 결국 돈을 주면서 겨우 내쫓았대.”“최신애 아주머니는 무슨 생각이었대? 최금혁더러 설마 지아를 꼬시라고 한 것은 아니지?”“아저씨도 별로 신경 안 쓰신대. 주유정이 돌아온 이후로 최씨 아주머니는 미친 사람 같아. 무슨 짓을 하는지 좀 봐.”한규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유한과 주유정을 이어주는 게 주목적이긴 한데 너무 성급한 것 같아.”경은우의 안색도 안 좋아졌다.“정말 체면이 없다니까.”조금 전, 강지찬이 지아와 온유한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면 오늘 최신애는 생일잔치에서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최신애는 굳은 얼굴로 케이크에 첫 칼집을 낸 뒤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아마 지금쯤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생일파티에 온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몇 년 동안 유지한 사모님의 단아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뻔했다. 모두 강지아 탓이다.주유정은 물 한 잔을 조심스럽게 건넸다.“유정아, 말해봐. 금혁이를 지아에게 소개한 게 정말 잘못이야?”최신애는 마치 잘못을 뉘우치는 듯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주유정은 당연히 그녀 편이다.“잘못이라니요. 금혁 씨는 이모님이 제일 아끼는 조카잖아요. 게다가 금혁 씨는 잘생기고 회사에서도 일도 잘하고요. 귀여운 지아를 보면 누구라도 중매를 서주고 싶어 할 거예요.”최신애의 마음은 그제야 위로가 되었다.“그래도 네가 나를 잘 아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만 금혁이가 예전에 철이 없어서 여러 번 사고를 치다 보니 사람들이 금혁이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아. 다 내 탓이야. 지아의 결혼은 당연히 오빠와 새언니가 챙길 텐데, 내가 참견하는 것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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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온유한은 얼굴 반쪽이 퉁퉁 부은 최금혁을 옆으로 끌어내렸다.찬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최금혁은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형, 내가 누굴 건드렸다고 그래? 고모가 나에게 강지아를 소개해줬어. 그런데 그 계집애가 정말 클수록 예뻐지는 것 같아, 옛날 그 어리바리한 모습 하고는 완전히 달라...”말을 마치기도 전에 온유한이 그의 멱살을 잡았고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최금혁은 여태껏 형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형, 형. 대체 뭐 하는 거야?”“지아한테서 떨어져!”“왜? 강지찬이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 대시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은데...”“네가 대시한다고?”안경을 끼고 있는 온유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감히 한 번 해봐!”그는 하룻밤에 연달아 두 번이나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강지찬은 그렇다 치더라도 온유한은 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최금혁은 그제야 무슨 생각이 난 듯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더니 말했다.“설마 형, 형도 강지아 좋아해?”최금혁을 옆으로 내던진 온유한의 손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외삼촌의 외아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때려죽였을 것이다.“어쨌든 지아 옆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간다면 강지찬도 가만두지 않을 거고 나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런데 주유정 누나랑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최금혁은 진지한 얼굴로 묻더니 이내 얼굴을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형, 설마 양다리 걸치는 거야? 새 사랑과 옛사랑 모두 포기하지 못하겠어? 알았어. 이 동생이 졌네.”온유한이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최금혁은 센스있게 입을 다물었다.하지만 속으로는 그런 형을 하찮게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친척들이 그렇게 칭찬하던 사촌 형이었고 만약 열 번 중 아홉 번 매를 맞을 때마다 부모님이 온유한과 비교했기 때문이다.결국 형도 모든 남자들처럼 하체가 먼저 움직이는 동물이나 다름없었다.최금혁은 마침내 약간의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연회는 무사히 끝났고 강지찬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지만 연회 내내 얼굴색이 안 좋았고 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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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명성 건물로 돌아온 온유한은 옆집 베란다는 깜깜하고 인기척이 없는 걸 보고 강지아는 집에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다음날 휴일이라 좀 늦게 일어났다.아래층에 가서 아침을 먹고 강씨 저택으로 가서 강지아를 불러내 올까 고민하던 중 강지아가 심플한 캐주얼 차림으로 하품을 하며 문밖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눈이 마주친 순간 하품하던 강지아의 얼굴이 굳어졌다.“여긴 왜 왔어?”강지아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아마 온유한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내가 여기 사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오빠가 알려줬어?”계집애가 앞으로 혹시라도 본인을 피할까 봐 온유한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그저 ‘응’이라고 얼버무렸다.강지아가 물었다.“무슨 일인데?”“최금혁이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야. 내가 경고했으니까.”강지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응’하고 대답한 뒤 능숙하게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그녀는 가게 안에서 먹을 생각이 없었고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갈 계획이었다.어젯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저택에서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한밤중에 스스로 차를 몰고 명성 건물에 돌아왔고 밤을 새워 작업실 인테리어 설계도를 완성했다.지금은 아침을 먹고 잘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온유한이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왔다.“또 무슨 일인데?”“나 집에 초대하지 않을 거야?”강지아는 어이없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앞으로 우리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만약 오빠 엄마가 다음에 아무 남자나 데리고 와서 나한테 소개해 주면 우리 오빠가 아마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그녀를 쳐다보던 온유한은 손을 들어 엘리베이터를 누르더니 사람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강제로 끌고 들어간 후 엘리베이터 층을 눌렀다.일련의 동작들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내가 22층에 사는지 어떻게 알았어?”“이 집은 내가 너의 오빠와 같이 와서 보고 산 거야.”이 사람을 쫓아낼 수 없는 것을 안 강지아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하지만 온유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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