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1206 챕터

제121화

병실을 나온 수현은 윤아의 손목을 잡고 병실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윤아는 온 힘을 다해서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진수현. 무슨 짓이야?”수현은 수심 가득한 눈으로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늘은 이만 가지.”윤아는 그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아까 할머님 모습 못 봤어? 할머님은 요양원을 떠나고 싶어 하셔. 여기 계시고 싶지 않아 하신다고.”윤아는 바로 전에 일로 할머님이 요양원을 떠나고 싶지만 가족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계속 계시는 거라 추측했다. 할머님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시지만 막상 돌아갈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윤아는 매주 주말마다 할머님을 뵈러 오면서도 그의 기분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조금 일찍 알아챘다면 집으로 모시고 가서 보살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수술 전날인 오늘 할머님이 쓰러지시는 일은 없었겠지.“알아.”수현이 낮게 말했다.“너도 봤잖아. 할머니는 지금 나에게 화를 내고 계시는 거야.”수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 떠오른 듯 말을 보탰다.“너에겐 아니고.”윤아는 멈칫했다.확실히 방금 할머님이 안 좋은 소리는 모두 수현에게 했었다. 윤아에게는 늘 그랬듯 친절하게 대하셨지.생각을 마친 윤아는 더 마음이 아팠다. 분명 기분이 안 좋으신데 자신에게까지 감정을 감추려 하신다니.“그니까 오늘은 할머니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드리자. 우린 이만 돌아가서 방을 정리하고 내일 다시 모시러 오자.”윤아는 생각에 잠겼다. 수현의 말은 모두 맞다. 하지만 밤은 유독 길고 어둡다. 그녀는 기나긴 밤 동안 혼자 계실 할머님이 혹여 마음이 더 안 좋아지실까 염려되었다.고민 끝에 윤아가 입을 열었다.“오늘 밤에 모시고 가는 건 어때?”“오늘 밤?”“그래. 아직 시간은 이르잖아. 방 정리는 도우미분들한테 부탁하고 할머님께 두 시간 후에 집으로 모시겠다고 말하는 건 어때? 생각 정리하시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실 거야.”수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럼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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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덕분에 방 준비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윤아가 집사와의 통화를 마치자 때마침 수현의 핸드폰이 울렸다.유유히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가 차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점차 걷혔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방금까지 활기가 넘치던 차 안이 삽시에 조용해지며 오직 핸드폰 벨 소리만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분위기가바뀐 걸 눈치챈 수현은 곁눈질로 윤아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심 공주. 전화 좀 받아줘.”그의 말에 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거절했다.“직접 받아.”“나 운전하잖아.”“차 옆에 세우고 받아.”수현은 그녀의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전화 좀 대신 받아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아니.”이렇게 된 마당에 윤아도 더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근데 내가 도와주기 싫어.”수현은 윤아의 막무가내인 모습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마침 주변에 차를 세울만한 곳이 있어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차를 세운 수현은 검은 눈동자로 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전생에 네 원수지.”수현은 투덜대며 핸드폰을 꺼내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어머니네.”수현의 말은 들은 체도 안 하던 윤아가 어머님이라는 말에 몸을 발딱 세우며 물었다.“그럴리가...”한참동안 받는 사람이 없는 탓에 전화벨 소리는 자동으로 끊겼다.수현의 시선은 윤아의 청초한 얼굴에 머무른 채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러면 누군 줄 알았어?”윤아는 얼굴을 돌리며 화제를 바꿨다.“어서 전화나 다시 걸어.”수현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어머니께 다시 연락했다.신호음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전화를 받는 이선희. 수현이 스피커모드로 해놓은 덕분에 그녀의 목소리가 차에 울려 퍼졌다.“현아. 나와 네 아빠 방금 비행기에서 내렸어. 지금 바로 요양원으로 갈 건데 네 할머니는 좀 어떠시니?”“수술 못 했어요.”수현은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는 미간을 찌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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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아니나 다를까 수현도 선희의 부드러운 말투에 모든 화가 눈 녹듯 사르르 풀려버렸다.“됐어요. 오늘 밤 저와 윤아가 할머니 모시고 집으로 갈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요양원에 가실 필요 없으니 댁으로 돌아가세요.“집으로 모신다고?”이선희는 뜻밖의 소식에 조금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윽고 말을 이었다.“윤아는 옆에 있니?”수현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윤아에게 눈짓했다. 스피커모드로 해놓았으니 윤아도 다 듣고 있었다.자신을 찾는 선희의 말에 윤아가 입을 열었다.“어머님.”윤아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로 선희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윤아도 있었구나. 수현이 할머니 일은 네가 참 고생이 많았어.”“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워요.”비록 김선월만큼 윤아에게 극진하지는 않지만 선희도 윤아를 대함에 있어서는 예를 갖췄다. 여태까지 윤아에게 쓴소리 한번을 안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윤아와 수현이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땐 그녀도 조금 놀랐다.“이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네. 난 그놈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이선희는 당시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결혼을 동의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윤아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다.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윤아는 그저 어머님이 진수현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하시는 말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어차피 가짜 결혼일 뿐이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그래. 어머님은 너희가 잘 보살피니 나와 수현이 아빠도 안심이야.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모여서 밥이나 먹자.”“네.”윤아는 흔쾌히 선희의 말에 동의했다.수현도 그녀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돌아가는 길에 수현과 윤아는 침묵을 유지했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보는 윤아.“실망이겠네.”수현:“?”갑작스러운 그녀의 쌀쌀맞은 말에 수현이 어리둥절해했다. 반면 윤아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할머님 수술이 미뤄졌으니 우리의 이혼도 미뤄졌잖아.”윤아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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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윤아는 방을 한번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좋네요. 식물들도 좀 가져다 놔주세요. 커튼은 더 차분한 색으로 바꿔주시고요. 수면에 도움 되는 향초도 준비해주세요.”범수는 고개를 끄덕였다.한 시간 가량 후에 윤아와 수현은 김선월을 모시러 다시 요양원으로 향했다.댁으로 모시겠다던 손자와 손자며느리의 말이 있고 나서의 두 시간 동안의 기다림 동안 선월은 드디어 요양원에서 나갈 수 있다는 기쁨과 동시에 지금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면 윤아와 수현에게 짐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집에도 필요한 의료장비를 갖추었겠지만 그런데도 요양원이 아니니 윤아와 수현이 그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선월이 한창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마침 간병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르신. 대표님과 사모님이 모시러 오셨어요.”그 말에 선월은 왜인지 조금 긴장되었다.두 간병인분이 기분 좋은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말했다.“어르신. 저희가 대신 짐 정리를 다 해드렸어요.”선월은 물건이 많은 편이 아니라 두 개의 캐리어로 충분했다.기뻐 보이는 간병인과는 달리 선월은 어딘가 울적해 보였다. 그녀가 입을 열어 말을 하려던 순간, 마침 윤아와 수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할머님?”윤아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캐리어를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수현에게 말했다.“할머님 캐리어 좀 들어줘.”수현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지만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다가가 캐리어를 들었다. 윤아는 선월에게 다가가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할머님이 계실 방은 이미 집사에게 말해서 다 준비해뒀어요. 돌아가시는 대로 바로 쉬실 수 있으세요. 저희 가 있는 동안 씻으셨어요?”선월은 고개를 저었다.마음이 뒤숭숭해 씻을 기분이 아녔다.“괜찮아요. 그럼 돌아가서 씻어요.”말을 마친 윤아는 선월이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서둘러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향했다. 나가는 중에 그녀는 수현에게 따라오라 눈짓을 보냈다.멀뚱히 서 있던 수현은 그런 윤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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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윤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선월의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 몰라 시선을 수현에게 돌렸다.뒷좌석에 앉은 윤아와 선월도 강소영을 본 마당에 운전석에 있는 수현이라고 못 봤겠는가. 게다가 그녀는 수현이 좋아하는 여자이니 더 신경을 쓸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수현은 곧바로 속도를 늦추고 대문 근처에 차를 세웠다.차가 멈추자 강소영은 들고 온 가방을 손에 쥔 채 운전석 쪽으로 다가와 작은 손을 뻗어 창문을 두드렸다. 수현이 창문을 내리자 소영은 바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수현 씨. 이제야 돌아왔네. 할머님은 좀 어떠셔? 미안. 걱정하지 말라곤 했는데 그래도 내가 직접 와서 물어보고 싶어서.”말을 마친 소영은 뒷좌석을 힐끗 훑어봤다. 조수석에 사람이 없으니 윤아도 함께 있다면 뒷좌석에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조수석은 자기를 위해 남겨둔 건가 싶어 으쓱해진 소영은 뒷좌석의 두 사람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한 명은 심윤아고 또 다른 한 명은...김선월을 알아본 소영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할머님이 왜 여기에?’뽐내러 온 김에 진씨 가문의 미래 사모님으로서의 주도권 행사를 하려고 했던 소영의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렸다. 어느새 그녀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소영의 머릿속엔 방금 한 말에 김선월이 오해라도 하면 어떡하나, 행여 그녀와 수현과의 사이에 방해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소영이 표정 관리를 못 하고 벙쪄있을 때 선월은 그녀를 의아한 눈길로 훑어보았다.윤아는 서둘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말했다.“할머님. 기억 안 나세요? 강소영 씨잖아요. 예전에 수현 씨 구해줬던 수현 씨 생명의 은인이요.”윤아의 말에 선월이 그제야 기억이 되살아난 듯 말했다.“소영 씨였네요. 전에 봤을 땐 아이 같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못 알아봤어요.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요.”소영을 알아본 선월은 다정다감한 말투로 그녀를 대했다. 소영을 완전히 생명의 은인으로 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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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수현이 입을 열면 티가 날까 봐 걱정된 윤아는 서둘러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요. 뭘. 타요 어서. 오늘 마침 할머님이 댁으로 돌아가시는 날이니 들어와서 좀 앉아있다 가요. 나중에 기사님 시켜서 댁까지 바래다 드릴게요.”윤아가 먼저 말을 꺼낼 줄 몰랐던 소영은 시선을 돌려 윤아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이해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고마워요. 윤아 씨.”말을 마친 소영은 차 뒷좌석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모두 마른 체형이라 셋이 함께 앉아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차에 타서부터 윤아는 김선월의 곁에 찰싹 붙어있었던 터라 옆자리는 공간이 많이 비어있었다.차에 탄 소영은 선월을 향해 밝게 인사했다. 윤아는 소영이 조수석에 앉을까 걱정했던 터라 그녀가 뒷좌석에 오르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눈치는 꽤 빠른 모양이다.“소영 씨. 이 노인네 때문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선월은 격식을 갖춰 소영을 대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나갔다.차는 유유히 별장 대문을 넘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차를 세운 후 수현은 도우미들이 미리 마련해둔 휠체어에 조심스레 선월을 태웠고 휠체어는 밀고 가는 사람은 자연스레 윤아였다. 차에서 내린 소영은 제법 화목한 가족 같은 그 광경에 저도 모르게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으나 곧 생각이 바뀐 듯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어르신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범수는 잔뜩 들떠 인기척이 들리자마자 도우미들과 함께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그러나 단란한 모습의 세 사람 옆에 웬 반갑지 않은 손님을 보고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다. 범수뿐만 아니라 다른 도우미들도 당황한 듯 서로 눈을 맞췄다. 그러나 큰 가문의 사용인들답게 김선월이 다가오자 바로 표정 관리를 하며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환영합니다. 어르신!”그들은 언제 준비한 것인지 환영식 무대까지 선보였다. 선월은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 세계급 국가급 가리지 않고 많은 공연을 보았지만, 요양원에 오래 있으며 무료했던 탓인지 사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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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나름 성대한 환영회가 끝난 후 모두 실내로 돌아왔다.범수는 셰프에게 전달해 선월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라 했다. 물론 메뉴선정과 식자재 선택 모두 엄격한 기준을 통해 엄선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늦은 터라 선월은 두세 숟가락 뜨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애써줘서 고마워요. 모두.”선월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씻을 준비를 했다. 윤아가 얼른 다가가 도우려 했으나 선월이 그녀의 손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됐어. 씻는 거 하나 못할까 봐? 내가 몸을 못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뭘.”윤아가 입을 떼려 했으나 선월은 고개를 돌려 소영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영 씨. 시간도 늦었는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는 거 어때요? 윤아더러 도우미들 시켜서 묵을 방 하나만 더 준비해두라고 할게요.”바로 전에까지 음식을 깨작대던 소영은 선월의 부름에 후다닥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아니에요. 할머님. 제가 여기 있는 건 실례잖아요.”“실례라뇨. 집에 빈방이 많으니 소영 씨가 묵을 곳 하나 마련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게다가 소영 씨는 우리 집의 은인이니 맘 편히 있어요.”선월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소영은 더 거절하기도 민망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도 이 집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왠지 수현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소영이 입을 열기 전에 윤아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집사님. 강소영 씨가 머물 방 하나만 더 준비해주세요.”윤아의 말에 범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수현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침묵을 유지했다.잠시 후 선월을 포함한 대부분 사용인이 자리를 뜨고 그나마 남아있던 몇 명 도우미들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 덕에 윤아와 수현, 그리고 소영만이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소영이 윤아를 힐끗 보더니 시선을 수현에게로 돌리며 낮게 말했다.“수현 씨.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나 그냥... 갈까?”소영은 입으로는 가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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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소영은 잔뜩 불쌍한 척을 하며 수현을 올려다보았다.“수현 씨. 내가 뭘 잘못 말한 거야? 미안해. 윤아 씨가 화낼 줄 몰랐어. 역시 난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아.”말을 마친 소영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고는 휘청거리며 뛰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막아 세우는 수현.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괜찮아. 여기 있으라고 했으니까 그냥 있어. 윤아는 신경 쓸 필요 없어.“하지만….”“대표님. 강소영 씨 방도 준비를 마쳤습니다.”언제 왔는지 저 먼발치에 있던 범수가 달려오며 소영의 말을 끊었다.‘뭐? 벌써?’소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범수를 바라봤다. 간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방 정리를 다 했다니. 소영은 그들이 제대로 한 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네.”하지만 수현은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소영에게 말했다.“집사님과 함께 방으로 돌아가. 늦었으니 빨리 쉬고.”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윤아가 떠난 방향으로 가버렸다.“수현 씨...”소영의 부름에도 듣지 못했는지 쌀쌀하게 가버리는 수현.소영은 어느새 혼자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그녀는 윤아가 미웠다. 방금 그녀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바람에 일이 꼬인 것 같았다. 그러나 소영이 생각에 깊이 빠지기 전에 범수의 냉랭하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녀의 사색을 끊었다.“아가씨. 손님 방으로 모실까요?”소영은 범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부탁드릴게요.”하지만 범수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몸을 휙 돌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소영은 불쾌한 마음이 들끓었지만 애써 누르며 그를 뒤 따라갔다.-한편, 방으로 돌아온 윤아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조금 전 그 말을 내뱉을 때 소영의 황당한 모습과 수현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며 윤아는 내심 속이 시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강소영이 먼저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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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추운 날씨 탓에 윤아는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욕실 벽의 한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깨를 잡은 수현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떻게 움직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윤아는 애꿎은 힘만 빼고 결국 지쳐 거친 숨만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누르는 수현을 노려보며 냉소를 터뜨렸다.“뭐 하는 짓이야? 괜히 찔리니까 화내는 건가?”수현은 잔뜩 그늘진 얼굴로 윤아를 내려다보았다.윤아의 눈동자는 맑은 호수같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욕실의 불빛까지 더하니 반짝이며 바스러지는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그뿐만 아니라 오뚝한 콧날과 선홍빛의 입술도 수현을 홀려버릴 듯 반짝거렸다.그러나 윤아는 가시 돋친 장미같이 그 고운 입술로 뾰족한 말들만 내뱉는다. 가시 돋친 말들이 너무 아파 수현은 당장이라도 그녀의 그 작은 입술을 막아버려 다시는 말이 나오지 않게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그는 생각 끝에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어 윤아가 하려던 말을 끊어버렸다.“네...읍.”상체를 숙이는 수현을 보며 윤아도 불안한 예감이 들었으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윤아는 한 글자밖에 뱉지 못하고 덮쳐오는 그의 익숙하고 따뜻한 숨결에 잡아먹혔다.강소영이 돌아오기 전에 윤아는 수현이 키스하는 걸 거부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하기에.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그를 원했기에. 그 당시 윤아는 좋아하는 남자와의 키스였기에 꽤 수줍어했었다. 게다가 수현은 키스하는 방식도 그의 거침없는 성격과 닮아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덕분에 윤아는 종종 그와의 키스가 끝날 무렵에는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을 느끼곤 했다.지금도 수현은 화가 난 탓인지 오랫동안 참았던 탓인지 거칠게 윤아에게 입 맞춰왔다. 그녀의 얼굴을 잡은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말랑한 볼살을 짓눌렀다. 그의 숨결은 거칠고 다급했다. 마치 그녀에게 감정을 쏟아내듯 거침이 없었다.윤아는 온 힘을 다해 수현을 밀어내고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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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오해?”그날 직접 두 눈으로 봤는데 오해라니. 윤아는 수현이 낯짝도 두껍다고 생각했다.수현은 눈앞의 이 여자가 갑자기 이리 화를 내는 이유가 자신과 소영이 함께 밤을 보냈다고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자 왠지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걸 느꼈다. 그러자 방금까지도 흙빛이던 낯빛이 훨씬 나아졌다. 수현은 입술을 앙다물더니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 없었어. 그날 밤은…”수현은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가 그날 밤 일을 말하려 하자 윤아가 잽싸게 그의 말을 끊었다.“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전혀 궁금하지 않아. 그러니까 굳이 알려줄 필요 없어.”생각하는 그런 일이 없었다니. 윤아는 수현이 그날 자신이 현장에 없었다고 생각해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넘어가려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그녀는 현장에 있었고 두 눈으로 직접 소영이 그를 데리고 떠나는 걸 봤다.밤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모자라 이튿날 요양원에까지 늦게 오지 않았던가.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윤아는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언제 이렇게까지 꼬여버렸는지… 윤아는 점점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수현을 좋아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러나 윤아는 사랑에 눈이 먼 미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조금 전 수현에게 발정 났냐고 하던 자신의 모습은 정말 그녀가 봐도 끔찍했다. 전혀 그녀답지 않았고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순간이었다.마음이 진정되자 윤아는 바로 전에까지 그녀를 열 오르게 하던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해지며 점차 종적을 감추는 것을 느꼈다. 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도 다시 맑고 잔잔하던 모습을 되찾았다.수현도 윤아의 변화를 단번에 눈치챘다. 그녀의 차분함과 막연함 모두 수현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그는 윤아의 이런 모습에 가슴이 갑갑해나며 갉아 먹히는듯한 고통을 느꼈다.한참 후, 수현이 자소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나 이혼 절차도 끝내지 않고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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