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언젠가 다시 만나요: Chapter 561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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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 속에 빠져서 일시적인 미련 때문에 손을 놓지 못할 뿐 사실 오래전부터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사람들도 말하지 않는가? 연애는 3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3년이나 5년을 넘기면 그 어떤 결과도 없을 거라고...감정의 마지막에 서로를 잡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감각하게 변한 습관뿐이다.하지만 조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배현수에게 습관의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매번 볼 때마다 여전히 두근거렸다.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그에게 화를 내야 하는 게 맞지만 무책임하다고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가만히 껴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화를 내는 순간 진짜로 모든 게 끝일까봐 무서웠다.사람의 마음은 정말 복잡한 것 같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한 순간 그 감정이 바로 변하기 때문이다.조유진은 고개를 들어 배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현수 씨, 내가 이렇게 잡고 있는 이유는 현수 씨가 나와 결혼하지 않을 거지만 다른 사람과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약속조차 지키지 않으면 미워할지도 몰라요.”이것은 그와 상의하는 것이 아니라 귀띔이고 통보였다.배현수는 그녀의 뒷덜미를 살며시 잡고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난 영원히 네 거야.”영원히...모든 사랑과 설렘은 오직 그녀에게만 줬다. 그녀를 미워했던 시절에도 다른 사람에게 준 적이 없다....대제주시.심미경은 강이찬에게 이혼을 통보한 천우 별장에서 짐을 싸고 나왔다.그곳은 강이찬의 집이지 그녀의 집이 아니다.이 사실을 알게 된 조윤미는 혼수 예물 비용 4억원을 심미경의 계좌에 넣어주며 몸을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심미경은 일단 작은 아파트에 세들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강이찬과 이혼하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다만 강이찬이 무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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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문밖에 서 있는 강이찬은 가슴이 아팠다. “미경 씨, 아이가 없어진 것은 내 탓이에요. 그동안 이진이에게 뭐든 오냐오냐하다 보니 미경 씨에게 허튼짓까지 하게 만들었어요.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요? 이혼만 아니면 뭐든지 다 할게요.”현관문에 등을 기댄 심미경은 어둠 속에서 살짝 웃으며 말했다.“원주에 있을 때도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했었잖아요. 그 말만 믿고 다시 돌아갔던 건데... 지금 또 이러면 내가 이찬 씨를 어떻게 믿어요? 예전에 당신 마음속에 조유진이 있었던 거? 상관없었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깨끗하게 비우기만 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은 강이진이 사주한 교통사고라는 것을 알고 그 우리 아이를 죽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나를 속이고 강이진이 도망가게 놓아줬어요. 더 이상 이찬 씨를 믿을 수 없어요.”심미경에게 강이찬은 신용불량자와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심미경은 그더러 놓아달라고 한다.맞는 말이다. 만약 그와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마음속의 죄책감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끊임없이 덮쳐와 그를 삼켜버릴 것 같았다.술을 많이 마신 강이찬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알코올에 마비가 되었는지 쓸쓸하게 들렸다.“전에 나에게 물었었죠? 결혼하는 이유가 죄책감 때문인지 아니면 당신을 진짜 사랑하기 때문인지... 미경 씨, 내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지만 처음에 미경 씨와 함께 있게 된 것은 확실히 미경 씨에게서 조유진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중에는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머릿속에 그렸던 모든 미래는 늘 미경 씨와 함께했어요.”잠시 멈칫한 강이찬은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사실 미경 씨는 조유진과 닮지 않았어요. 외모, 이목구비, 성격... 전부 똑같지 않은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려 했었던 것 같아요. 잘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어요. 조유진은 조유진이고 미경 씨는 미경 씨예요. 내가 미경 씨와 결혼하기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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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강이진이 아이를 죽이는 장면을 꿈에서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하지만 강이찬은 옆에 서서 모든 것을 외면했고 슬퍼하거나 마음이 약해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심미경은 아이를 구해달라고 강이찬을 목청껏 불렀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강이진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녀를 향해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어쩌면 그날 교통사고의 트라우마가 너무 큰 탓일지도 모른다.짐을 싸고 나온 지 며칠 동안, 그녀는 한숨도 못 잤다.강이찬에 대한 감정이 더욱 복잡해졌다.그는 아이의 친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아이를 죽인 공범이 되었다.그를 마주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망의 감정이 넝쿨처럼 가슴속에서 천 갈래 만 갈래 퍼져나갔다.강이찬은 떠나려 하지 않았고 심미경은 문을 열지 않았다.한 명은 문밖에서 다른 한 명은 집 안에서 밤새도록 이렇게 대치해 있었다.다음 날 아침,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어두웠던 강이찬의 눈빛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그는 심미경을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미경 씨, 우리 집에 가요. 네?”심미경은 두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초췌한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 기복도 없었다.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내 결정은 변하지 않아요.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어요. 아니면...”“아니면요?”강이찬은 자기가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할 것이다.심미경은 덤덤한 얼굴로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너무 가벼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아니면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리던가...”죽은 아이를 다시 살려오면 그를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른다.강이찬은 많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심미경의 두 어깨를 잡고 말했다.“아이를 갖고 싶으면 나중에 한 명 더 가지면 되잖아요. 지금 의료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요. 국내에서 치료가 안 되면 해외로 가요. 그래도 안 되면 시험관 아이도 해볼 수 있고요.”이때, 심미경이 그의 말을 끊었다.“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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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조유진은 밤늦게 엄씨 사택에 돌아왔다.1시 반이 되면 돌아오려 했지만 떠나기 전, 배현수가 뒤에서 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키스했다.키스를 하다 보니 조유진도 저도 모르게 그의 행동에 응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참이나 더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배현수 때문에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엄씨 사택으로 돌아오자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아침 식사가 식탁에 차려졌다.삶은 달걀의 흰자만 좋아하고 노른자는 싫어하는 선유는 흰자만 발라서 먹은 뒤 노른자만 조유진의 접시에 담아 놓았다.조유진은 노른자를 한 입 베어 물자 갑자기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다.옆에 있던 엄창민은 그녀가 원래부터 노른자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한마디 했다.“먹기 싫으면 먹지 마.”조유진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입맛이 없어 죽만 몇 숟가락 먹었다.선유는 작은 손을 뻗어 조유진의 이마를 만졌다.“엄마, 어디 아파?”조유진은 녀석의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어젯밤에 좀 추웠나 봐. 빨리 밥이나 먹어.”“응. 알았어. 이게 다 아빠 탓이야. 한밤중에 호텔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조유진을 바라보던 엄창민은 어젯밤 배현수의 부탁이 떠올랐다. 그는 몇 초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너와 선유를 스위스에 보내겠다던데, 너와는 얘기가 된 거야?”조유진은 순간 넋이 나간 얼굴로 물었다.“현수 씨가 오빠에게 그 말을 했다고요?”엄창민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나더러 너와 선유를 스위스에 피신시켜 달라고 했어. 너의 생각은 어떤데?”조유진은 당연히 가고 싶지 않았다.엄창민에게 선유와 자기를 스위스로 데려다주라고 하는 것은 꼭 마치 두 모녀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 같았다.순간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아직 별생각이 없어요.”엄창민은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분석했다.“스위스로 가는 것은 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해. 그곳이 상대적으로 안전하니까. 최근 드래곤 파에서 SY그룹과 성행 그룹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배현수도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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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럴 가능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백소미가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을 거야. 엄씨 집안에서 선유를 납치해봤자 어디도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엄창민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사람은 찾았어요. 남교의 폐가 건물에서 납치범이 직접 배현수 씨더러 와서 데려가라고 하네요.”...배현수와 조유진은 재빨리 남교로 달려갔다.한쪽 폐가 건물에서 인사불성이 된 선유가 쓰러진 채 의자에 묶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납치범은 손에 총을 들고 선유의 머리에 겨누었다.조유진은 깜짝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총은 일단 내려놓으세요.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해봐요.”납치범은 조유진을 가리키다가 배현수에게 물었다.“혼자 오라고 했잖아. 왜 여자까지 데리고 온 거야?”배현수는 옆에 있는 조유진을 보고 말했다.“유진아, 일단 먼저 나가 있어.”“하지만...”조유진이 가려고 하지 않자 납치범은 흉악한 표정으로 선유의 작은 머리를 총구로 가리켰다.“안 가면 이 총으로 당신 딸 머리를 쏴버릴 거야.”조유진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지만 납치범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걱정된 그녀는 배현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조심해야 해요. 밖에서 기다릴게요.”배현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응, 선유 데리고 나갈게.”저 멀리 걸어가는 동안에도 조유진은 세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폐가 건물에는 납치범과 배현수, 그리고 일찌감치 정신을 잃은 선유만 남게 되었다.배현수는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한 얼굴로 ‘납치범’에게 걸어가며 말했다.“나 좀 몇 대 때려줘.”‘납치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배 대표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배현수는 옆에 있는 선유를 힐끗 보고는 다시 말했다.“얼굴만 좀 세게 때려줘, 안 그러면 들켜.”“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배 대표님, 저를 탓하지 마십시오.”...20분 후, ‘펑’하는 굉음과 함께 폐가 건물에서 귀를 찌르는 듯한 총소리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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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선유는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보니 큰 문제는 없었다.잠에서 깬 녀석은 눈을 비비며 의아한 얼굴로 조유진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가 왜 병원에 있어?”조유진은 녀석을 덥석 껴안으며 다급하게 물었다.“선유야, 어디 아픈 데는 없어?”선유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가슴을 치며 말했다.“그냥 좀 졸려, 엄마 내가 오래 잤어? 머리가 왜 이리 띵해?”조유진은 선유의 작은 어깨를 잡고 뚫어지게 봤다. 하지만 녀석의 얼굴은 너무 평온했다. 어린 얼굴에는 납치된 흔적이 전혀 없었다.처음에 조유진은 녀석이 너무 놀라 넋이 나간 거라고 생각해 다독이며 말했다.“선유야, 엄마 아빠가 다 있으니까 겁내지 마.”“엄마, 겁날 게 뭐가 있어? 아빠, 아빠도 왜 그렇게 날 쳐다봐요? 설마 내가 무슨 큰 병에 걸렸어요?”눈이 휘둥그레진 선유는 작은 입을 벌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현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실수로 넘어져 쓰러지는 바람에 엄마가 많이 놀란 것 같아. 지금은 괜찮아.”선유가 ‘납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보고 조유진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괜히 어린 아이의 마음에 트라우마라도 남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엄씨 사택에 돌아간 후, 선유는 아무렇지 않은 듯 태블릿을 껴안고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녀석의 곁을 한참 지키고 있던 조유진은 녀석의 팔팔 뛰는 모습에 그나마 안도감을 느꼈다.하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들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의구심을 풀 수 없었던 조유진은 선유를 보고 물었다.“선유야,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 나?”사과를 먹고 있던 선유는 무심한 얼굴로 대답했다.“무슨 기억?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이상한 말만 하는 거야? 혹시 어디 아픈 거야?”녀석은 작은 손을 내밀어 조유진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다시 자기 이마를 만졌다. 뜨겁지도 않고 열도 없었다.배현수가 들어와 조유진을 데리고 나갔다.“괜찮다니까 됐어. 혼자 놀게 내버려 둬.”조유진은 찜찜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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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높은 권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대부분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음침하고 통제욕이 강하다.게다가 술에 취하면 도도하고 악질적인 취미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한 부하가 아랫사람에게 지시해 시뻘건 가마를 들고 연회장에 들어왔다. 매우 경사스러워 보였다.그때 조범은 아직 충남시장이 아니었다. 그저 어느 한 구만 담당하고 있었다.그럼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은 굽신거리며 아부했다.“다음 선거는 꼭 조 시장이 될 거라는 믿음과 확신으로 가마를 갖고 왔습니다. 조 시장님, 타십시오. 이거 타면 분명 승승장구할 겁니다.”조범은 손사래를 치며 겸손한 척했다.“아직 이름도 안 나왔는데요. 정 대표님, 너무 일찍 부르시는 거 아닙니까?”정 대표는 술을 한 잔 따라서 조범에게 다가가며 극구 칭찬했다. “조 시장님, 올라간 후에 가마를 멨던 저희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술자리에서 그 무리는 소란을 피우며 조범을 끌고 가마를 태웠다.“자, 자, 자, 가마를 들어!”“우리 몇 명이 가마를 멘다고요? 그런데 가마를 오를 때 인간 계단을 만들어 줄 일꾼이 따로 있어야죠? 너, 이리 와봐!”그 사람은 구석에 서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종업원과 함께 서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다름 아닌 열일곱 살의 배현수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온몸에서 도도한 기운이 풍겼고 기세가 등등했다.움직이지 않자 그 사람은 언성을 높였다.“귀머거리야? 너 부르잖아!”옆에서 기다리던 배희봉은 얼른 다가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정 대표님, 가마를 메는 것은 저 같은 운전기사들이 더 잘해요. 저 아이는 내 아들인데 어린애라 아직 철이 없어요. 어린 애와 따지지 말고 저를 시키세요.”말을 마친 배희봉은 가마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더니 얼굴을 푹 파묻고는 전전긍긍하며 무릎을 꿇었다.조범은 여러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구두를 신은 채 배희봉의 굽은 등을 한 발로 밟았다.조범이 가마에 오르자 연회장은 환호성으로 달아올랐다.무릎을 꿇고 인간 계단을 만든 운전기사 배희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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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조유진은 자신의 안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배현수 곁에 머물 수 있었다.하지만 선유는?선유와 함께 모험을 같이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 막 납치범의 손에서 구해낸 선유였다.선유의 작은 얼굴을 보면 속으로 죄책감과 불안이 홍수처럼 밀려왔다.선유를 빌미로 그녀에게 이런 강요를 하는 것은 배현수도 어쩔 수 없었다.배현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약간 굳은살이 박인 그의 손끝이었지만 손길은 너무 부드러웠다. 그는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미안해, 너와 선유를 이 악랄한 싸움에 휘말리게 해서. 나만 아니었다면 너희들은 이런 것들을 감수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그를 올려다보는 조유진의 붉어진 눈시울은 아쉬움으로 가득 찼다.조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한번 물었다.“피하러 스위스에만 가면 되는 거예요? 현수 씨, 나에게 숨기는 거 없어요?”그녀는 자신이 온실 속의 화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배현수와 헤어진 6년 동안 충분히 고생했고 모든 것을 견뎌냈다.남자는 모든 감정을 숨겼다. 그의 눈빛에서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배현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문지르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없어. 이 위기만 해결하면 스위스로 데리러 갈게. 그때...”잠깐 멈칫한 배현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우리 혼인 신고를 하러 가자. 결혼도 하고.”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감돌았다.그냥 하는 말 같지 않았다.분명 약속하는 말이었다.하지만 왜 그런지 조유진은 믿기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럼 깍지 걸어요.”배현수는 잠깐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웃었다.“왜 갑자기 선유처럼 행동하는 거야? 깍지 걸면? 그다음에는 백 년 동안 변하지 말아야겠네?”조유진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네’라고 대답하더니 한마디 덧붙였다.“왜요, 못 하겠어요?”남자는 침울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더니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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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조유진은 스위스에 간다는 사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시 돌아오게 되면 결혼하겠다는 배현수의 말에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았고 거부감도 덜 느꼈다.사람은 희망이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그녀의 기대에 찬 눈빛에 배현수는 울컥 목이 메어왔다.“이번에는 못 데려다줄 것 같아. 엄창민 씨가 바쁘면 내가 서정호와 몇 명 더러 너희 두 사람 데려다주라고 할게.”“그래요...”조유진은 다소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에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SY그룹에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의 짐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배현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귀띔했다.“스위스에 마당이 있는 집 하나를 샀어. 선유가 눈사람을 만들고 싶어 하면 마당에서 만들면 돼. 집사와 가정부도 다 구했어. 두 골목만 건너면 가게들이 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날씨가 추우니까 밖에 함부로 나가지 마.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집사더러 사 오라고 해. 너는 폐가 안 좋아서 감기 걸리기 쉽잖아. 내가 곁에 없으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몸 관리 잘해. 선유가 아무리 놀기를 좋아해도 혼낼 때는 가차 없이 혼내야 해. 마음 아파하지 말고.”늘 과묵하던 배현수가 오늘따라 말을 많이 했다.조유진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세 살짜리 아이 아니거든요. 나와 선유는 알아서 잘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유진아...”“네?”배현수는 그녀의 귀밑머리를 쓰다듬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수고했어.”그러자 조유진이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유와 고생하러 스위스에 가는 것도 아니고. 집사와 가정부까지 다 구했다면서요. 나와 선유가 6년 동안 둘이서 지내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아요.”그녀를 바라보던 배현수에게서 무심코 나온 한마디였다. 조유진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대꾸했다. 하지만 웃으며 꺼낸 이런 말들은 그의 마음속 가장 부드러운 곳을 칼로 찌르는 듯했다.이들이 헤어진 6년 동안 배현수는 선유에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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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밤이 되었다.납치 당했다가 풀려난지 얼마 안 된 선유를 보는 조유진의 마음은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녀석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걱정된 조유진은 선유와 한방에서 잤다. 잠자리에 들기 전, 녀석은 눈을 깜빡이며 조유진에게 물었다.“엄마, 우리 스위스에 꼭 가야 해? 아빠는 왜 우리와 함께 가지 않는 건데? 다른 이모와 결혼하는 거야?”조유진은 피식 웃으며 선유의 코를 톡 쳤다.“어린애가 하루 종일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빠가 다른 이모와 결혼했으면 좋겠어?”녀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아니! 새엄마 싫어. 아빠가 바람둥이일까 봐 그러지. 엄마, 우리 반에 아빠 엄마가 이혼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조유진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감정은 확실히 그렇게 견고하지 않다. 이혼율도 높으며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은 너무 평범한 일이다.많은 배우자들은 인생의 반을 함께 할 뿐 실제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하지만 그녀는 배현수를 믿는다.“아빠는 바람둥이가 아니야. 선유야, 우리는 아빠를 믿어야 해.”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빠가 좀 무섭기는 하지만 나에게 정말 잘해주시거든!”말을 마친 녀석은 한쪽에 있는 작은 가방에서 정교한 바비 인형을 꺼냈다.녀석을 껴안은 조유진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오기 전에 살림살이를 많이 챙겨왔네.”녀석은 작은 입으로 헤헤 웃으며 말했다.“이것은 아빠가 나에게 선물한 거야. 물론 내가 인형에 옷 입힌 거 보고 유치하다고 불평했지만 인형도 사주고 옷도 가득 사줬어. 엄마, 우리 스위스 갈 때 예삐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그치? 예삐 혼자 집에서 많이 심심할 거야.”“예삐까지 데려가면 따로 짐도 부쳐야 해서 좀 번거로워. 어차피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도 아니고 아빠도 집에 있을 텐데 예삐까지 데려가면 아빠 혼자 심심하지 않겠어?”선유는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하긴! 그럼 예삐는 그냥 집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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