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901 - 챕터 910

1153 챕터

제901화

고급스러운 검은색 박스 안,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붉은색 보석이 박혀있는 반지가 누워있었다. 반지는 520개의 다이아몬드 조각을 정교하게 이어붙여 만들었는데 한 단계 한 단계 세심하기 그지없는 기술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으면 반지 전체가 무너지고 부서지기 때문이었다.이 붉은색 보석은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것이었다.그 가치는 6천억 원에 달했다.장소월이 잠들지 못해 몽롱한 정신으로 뒤척이고 있을 때, 침대 옆쪽이 밑으로 쭉 꺼져내려갔다. 손이 누군가의 손에 살포시 끌려가더니 이어 무명지에 차가운 온도의 무언가가 느껴졌다.눈을 떠보니 전연우는 어느새 무명지에 붉은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순간 정신이 든 그녀는 곧바로 손을 빼내며 몸을 일으켰다.“뭐 하는 거야?”그녀는 무명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내려 했다.전연우는 묵묵히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가 피곤함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청혼...”장소월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전연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랑 인시윤의 결혼은 마무리됐어. 내일 외부에 공표할 거야.”장소월은 몇 번 시도했으나 마음처럼 반지가 쉽게 빠지지 않았다.그녀는 베개를 잡아 그의 얼굴에 던져버렸다.“전연우, 너 정말 미쳤구나.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넌 인씨 집안을 이용했고, 인시윤을 죽이기까지 했어.”“그럼 난? 난 어떻게 이용해 먹을 생각이야? 지금 내 모든 것은 이미 네 것이 됐잖아. 장해진도 죽었고, 남천 그룹도 손에 넣었어. 대체 왜... 왜... 날 놓아주지 않는 거야?”전연우는 손을 뻗어 흥분하고 있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장소월의 병은 아직도 채 낫지 않았다.전연우의 무거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장해진의 죽음은 나와 관련 없고, 난 남천 그룹에 손대지 않았어. 그냥 네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남천 그룹을 관리만 하고 있을 뿐이야.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돼.”“난 싫어... 그런 건 필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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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2화

문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이어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대표님.”전연우는 문 쪽을 힐끗 보고는 아직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는 장소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부드럽게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나 일 처리하러 가야 해. 금방 돌아올 거야.”전연우가 몸을 일으키자 장소월은 베개를 들어 그의 등에 던져버렸다. 전연우는 등에 충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에겐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은 충격이었다.베개가 떨어지자 전연우는 뒤돌아 주워올린 뒤 툭툭 털고는 그녀의 등 뒤에 다시 놓아두었다. 장소월은 일부러 그와 맞서기라도 하는 듯 새빨갛게 핏줄이 선 눈으로 날카롭게 그를 쏘아보았다.“난 너랑 결혼 안 해. 절대 안 해!”전연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착하지, 응?”전연우는 방에서 나간 뒤 잊지 않고 문을 닫았다. 복도는 방음이 좋지 않아 경호원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간 뒤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경호원이 보고했다.“어떤 놈이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전연우의 음산한 눈빛에선 조금 전의 그 따뜻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어디 있어?”“아래에 있습니다. 대표님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아래층엔 기자가 바닥에 짓눌러져 있었는데, 그 옆엔 고가의 카메라가 놓여있었다.“이거 놔요!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경고하는데 나랑 같이 있던 사람이 당신들 신고했어요. 날 보내주지 않으면 다 감옥에 처넣을 거예요.”전연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고하려면 해봐.”그가 고대 군왕 같은 장엄한 기세를 내뿜으며 정장을 입고 느릿하게 내려왔다.기자는 전연우를 본 순간 겁에 질려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장씨 가문의 입양아였던 전연우, 그리고 성세 그룹 대표님인 지금의 전연우... 그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장씨 가문의 개에서 시작해, 이젠 한 손으로 서울 하늘도 가릴 수 있는 거물이 되었다.전연우를 눈으로 직접 본 순간, 기자는 곧바로 겁을 먹었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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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이렇듯 악랄한 날씨에 두 다리까지 잃어 기어갔다면 길에서 요절했을지도 모른다. 인적 드문 외딴곳에 있는 이 별장 구역을 벗어나려면 어두운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러다 혹시 들짐승이라도 만나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릴 수 있다.전연우는 정말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그는 아직도 다리 뒤편이 욱신거렸다. 경호원이 얼마나 힘주어 눌렀는지 알 수 있었다.전연우는 아래층에서 담배를 피우고 냄새를 모두 없앤 뒤에야 위로 올라갔다.3층 복도 끝, 장소월의 얇은 몸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전연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장소월이 물었다.“대체 언제면 사람을 해치지 않을래?”“분명 다른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꼭 손을 잘라야만 했어?”장소월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 가득 담긴 냉기 그리고 실망감이 그의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그가 설명했다.“처음이 있으면 두 번째도 있는 법이야.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한테도 경고한 거야. 무사히 돌려보냈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여길 기웃거렸을 거야.”전연우가 이곳의 경계를 강화한 이유는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너랑 장해진은 똑같아. 죽을 때까지 손에 묻은 그 피 씻어내지 못할 거야. 넌 항상 그랬어. 절대 바뀌지 않아.”장소월이 차갑게 그를 쳐다보고는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잠갔다.전연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피곤한 듯 이마를 꾹꾹 눌렀다.새벽 3시, 하늘에서 조용히 눈송이가 내려오고 있었다.전연우는 창가에 서서 소복이 내려앉고 있는 하얀 눈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또 1년이 지났다.그날 밤, 전연우는 서재에서 이불을 깔고 눈을 붙였다.남원 별장에 돌아와 그녀와 함께 자지 않은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장소월 역시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방에 돌아간 뒤 반지를 빼내려 갖은 방법을 사용했다. 가는 손가락 주위는 발갛게 부어올라 통증이 느껴지기까지 했다.바디 워시, 샴푸 등 미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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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4화

“나...”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 운 것 같은 새빨간 그녀의 눈을 본 서철용은 곧바로 마음이 녹아내렸다.“소월 씨가 아프대.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돼서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 내가 가봐야 해.”배은란이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이번엔 나도 같이 데려가면 안 돼? 절대 귀찮게 하지 않을게. 난 철용 씨 곁에만 있으면 되거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한 나랑 아기 곁에 있어 줘. 응?”아파트 주차장 안, 서철용이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 있었다.“나한테 꼭 붙어있어야 해. 사람들을 봐도 긴장하거나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너한테 아무 짓 안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 사고 안 칠게.”배은란은 드디어 그와 함께 간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어젯밤 폭설이 내렸던지라 서철용은 그녀가 추워할까 봐 차에 히터를 따뜻하게 틀어주고는 목수건을 정리해주었다.“불편하면 바로 나한테 말해.”“응.”서철용은 그녀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본 순간, 잠시 마음이 저릿해졌다.차가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어젯밤 내렸던 도로 위 눈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남원 별장에서 차가 멈춰서자 배은란이 먼저 서철용의 손을 잡았다. 서철용이 힐끗 쳐다보니 그녀가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미끄러울까 봐.”도우미가 의료 상자를 받아들었다.서철용은 배은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미끄러우니까 조심해. 넘어지면 안 돼.”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진찰을 마치자 배은란이 그의 청진기를 의료 상자에 넣었다.서철용이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전연우에게 입을 열었다.“심각한 건 아니고 열이 좀 높아. 해열제를 놓았으니까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야.”서철용은 조금 전 그녀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를 보았다. 이렇게나 빨리 손에 넣었다니.전연우와 같은 사람은 낭만이라는 걸 몰라 절대 장소월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서철용이 배은란에게 말했다.“아래로 내려가서 잠깐 나 기다려줄래. 심심하면 마당에서 산책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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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배은란이 한 입 삼키고는 말했다.“맛있네. 잠시만, 내가 레시피 물어보고 올게.”“그럼 우리도 직접 해먹을 수 있잖아.”서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30분 뒤, 장소월은 깨어나 전연우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병이 나 성격이 더 까칠해졌다.베개가 날아가 전연우의 얼굴을 가격할 때 서재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서철용이 말했다.“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장소월과 서철용의 관계는 친구라 할 수 없었다. 그를 대하는 장소월의 태도는 늘 그래왔듯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그의 옆에 임신한 여자가 있는 걸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전연우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베개를 맞았는지 모른다.서철용도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배은란과 함께 방을 나섰다.전연우가 뜨거운 물을 잔에 부었다.“약 먹고 나서 침대에서 내려와. 너 아직 몸 안 좋아. 작업 완성하고 싶으면 성세 그룹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 명 데려와서 시킬게.”“네 입으로 말한 거야. 약 먹으면 침대에서 내려갈 수 있다고.”“응. 약속해.”장소월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약을 잡아 입안에 넣고 물로 꿀꺽 삼켜버렸다.다음 그녀의 행동을 알고 이미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그는 그녀에게 따뜻한 양말을 신겨주었다.“집에 가만히 있었는데도 병이 나다니. 널 어떻게 하면 좋니.”그녀에게 한 겹 또 한 겹 옷을 입혔다.“이러다 더워 죽겠어.”“말 안 들으면 아무 데도 못 가.”장소월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폭군, 미친놈, 양아치.”“한 번 앓고 나니 입이 사나워졌네? 어떤 폭군이 너한테 이렇게 양말 신겨주고 옷 입혀준대? 양심도 없어.”또 한 겹의 베이지색 실모자가 그녀 머리 위에 씌워졌다. 며칠 동안 그녀의 머리카락은 꽤나 많이 자라있었다.조금 전 전연우는 이미 도우미에게 최대한 창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었다.남원 별장 마당, 서철용은 도우미에게 담요 하나를 부탁해 배은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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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화

훔쳐 온 감정은 종래로 오래 가는 법이 없다.그 이치는 서철용 또한 잘 알고 있었다.배은란에게 있어 서철용은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그 위치는 늘 서민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서민용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크나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최면은 심신이 약해진 시간 일시적으로 효과를 본 것이다. 그녀가 결심하고 조작된 기억 속에서 걸어 나와 서민용이 존재했다는 흔적을 찾기만 한다면 바로 기억을 회복할 것이다.지금 그녀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끊어져 있다. 어떤 기억은 문득문득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서민용의 이름을 잊어버렸다.그날 다시 깨어난 이후로 배은란은 다시는 서민용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서철용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은란이 곁에 있기를 원하면서도 그녀와 접촉하기를 무서워했다. 자아 모순에 빠져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임신 불안증 때문에 그래.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 내가 최대한 프로젝트 시기를 뒤로 미뤄두고 집에서 같이 있어 줄게. 응?”서철용은 그녀의 손을 손바닥에 감싸고 입김을 호 불어 따뜻하게 해 주었다.“당신이 함께 있어 준다니까 너무 좋아. 하지만 나 때문에 당신 일 방해받는 거 싫어.”배은란이 진심 어린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서철용은 그녀의 손을 코트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괜찮아. 요즘 별로 안 바빠.”서철용도 이번 기회를 빌려 배은란을 데리고 나와 바깥 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이러다 바빠지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말이다.다른 사람의 집에서 밥을 먹는 건 배은란에게 있어 이번이 처음이었다.서철용과 전연우의 대화 주제는 모두 사업이라 장소월은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약을 먹었던지라 온몸이 뜨거워지고 열이 나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장소월이 고기 한 점을 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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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고... 고마워요. 저도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장소월은 3층 창가에 서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철용 옆에 있는 임신한 여자를 어딘가에서 본 듯 낯이 익었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서철용이 이렇게까지 꽁꽁 숨겼을 줄은 몰랐다.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니...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본 서철용의 그녀에 대한 감정은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서철용은 전연우와 연합해 그녀에게서 엄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해버린 사람이다. 이제 오해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간단히 사과 한마디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한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은 전연우와 함께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살다 죽어야 하거늘.언제 가까이 다가왔는지 전연우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몸이 많이 회복된 것 같네. 이제 며칠 동안 나한테 빚졌던 거 갚아야 하지 않겠어?”“내가 빚졌다고? 전연우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난 너한테 빚진 거 없어. 오히려 네가 나한테 빚졌지!”얌전히 있다가 또 불같이 화를 내는 장소월이었다.전연우는 이미 오랫동안 그녀의 몸에 손도 대지 못했다. 대다수 깊은 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정말 중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그녀가 침실에서 나가는 것을 본 전연우가 쫓아가려던 순간,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문밖에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전화를 귀에 가져간 채 서재로 들어갔다.“말해.”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상대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전... 전 대표님, 기사 내용은 이미 대표님 말씀대로 작성해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한 시간 뒤면 신문에서 기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핸드폰 기성은한테 줘.”기성은이 전화를 받았다.“대표님.”“두 시간 뒤 기자회견 할 거라고 공표해.”“네.”전화를 끊은 뒤 전연우는 옷을 갈아입고 장소월의 화장대 밑 서랍에서 명품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찼다. 떠나기 전 그는 화실에서 바삐 작업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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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8화

순식간에 모든 플래시가 전연우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당당히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가 중앙에 자리 잡고 앉았다. 송시아는 성세 그룹 부대표의 자격으로 전연우의 오른쪽에 앉았다.전연우의 등장은 회의장 전체를 흥분으로 들끓게 만들었다.기자들마다 오늘 아침 갓 인쇄된 신문지를 들고 있었다. 전연우가 앉자마자 기자들이 물었다.“대표님, 오늘 기사 내용 사실인가요? 정말 인하 그룹과의 혼사를 깨신 건가요? 만약 사실이라면 이제 인하 그룹은 협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전연우가 의연히 대답했다.“저와 인시윤 씨의 이혼은 인하 그룹과의 협력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두 회사의 사업 영역이 확연히 다른 만큼 저희의 협력은 계속될 겁니다.”“그렇다면 대표님과 인시윤 씨 사이 감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사실인 건가요?”기성은이 기자의 말을 끊었다.“대표님의 사생활에 관한 일은 묻지 말아 주세요. 이번 기자회견에선 회사 운영에 관한 질문만 받겠습니다.”기자가 핸드폰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인터넷엔 이런 루머도 떠돌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인시윤 씨와 이혼하시는 이유는 4년 동안 숨겨둔 정인 때문이라고요. 그분은 4년 전 프랑스에서 유학하다가 몇 개월 전에 돌아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얼마 전 그 여자분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여자분과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이혼 발표하시는 거 아닌가요?”송시아가 가소롭다는 듯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전연우가 장소월을 언제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던 전생처럼 이번 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장소월... 인생을 두 번이나 살았음에도 넌 발전이라는 게 없구나. 전연우를 제외하면 너한테 남는 게 대체 뭐야?’그 말에 밑에 앉아있던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카메라맨들은 서울의 지배자의 반응을 단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에게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었다. 이런 기자회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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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9화

전연우가 여기자 목에 걸려있는 기자증을 돌려보았다. 위엔 인턴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언제부터 엔조이 미디어에서 인턴 기자를 성세 그룹 기자회견장에 보냈죠?”하지만 상대방은 전연우가 전혀 무섭지 않은 듯 그의 손에서 기자증을 휙 잡아당겼다.“전 대표님, 인턴 기자는 참석할 자격 없나요? 아니면 제가 한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 절 협박하는 건가요?”그때 기자회견 총괄 매니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신입 기자라 잘 몰라서 이러는 겁니다. 제가 얼른 내보내겠습니다.”경호원이 나서려 하자 전연우가 손을 들어서 막아 세웠다.“난 성세 그룹 모든 임원이 한 일에 착오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요.”감히 허락도 없이 성세 그룹에 들어온 기자는 그녀가 처음일 것이다.“내가 말하면 보도할 거예요?”미모가 꽤 수려한 기자가 아래턱을 치켜들고 말했다.“못할 것 없죠. 기자란 원래 듣고 본 일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보도해 사람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람이잖아요.”기성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고했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연우와 맞섰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말려 올라갔다.“그 사람과 나 사이에 아기 있다는 거 맞아요. 사생활에 관한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그 사람의 생활에 영향 주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무대 위에 앉아있는 송시아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녀는 질투가 가득 일렁이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그가 인정하고 말았다!“두 집안의 혼인은 그저 각자의 이익만 위해서일 뿐 어떠한 감정도 개입되지 않았으니, 이혼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어요. 지금의 성세 그룹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으니...”전연우가 바쁜 일이 있는 듯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이혼 위자료로 저희 성세 그룹 100분 1의 주식을 인하 그룹에게 제공하겠습니다.”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100분의 1이라고?성세 그룹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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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0화

“언제부터 내 일에 그렇게 간섭했어?”전연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송시아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 올랐다. 하얗게 덧칠한 파운데이션 위 새빨갛게 바른 립스틱... 그녀가 질투가 가득 일렁이는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기성은이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전연우가 시선을 옮겨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이 시간이면 그녀와 함께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전연우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이어지는 기자회견은 인하 그룹 대표가 직접 나와 할 겁니다. 제 기자회견은 여기까지입니다.”그중 남자 기자 한 명이 물었다.“전 대표님, 아직 기자회견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시려는 건가요?”전연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미래의 제 와이프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 돌아가 함께 있어 줘야 해요.”전연우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해버린 채 곧바로 회의장을 나섰다.전연우가 모습을 드러내서부터 지금까지 고작 십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거의 모든 질문 시간을 아까 그 신입 기자가 낭비해 버렸다.기자들은 가슴에 울분이 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다들 자리에 앉아 투덜거렸다.“왜 하필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는. 인터뷰할 수 있는 이런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도 모자라 심기를 건드리기까지 했어요.”“대체 어떤 학교 졸업생이길래 저렇게 상황파악을 못 하는 걸까요. 우리 기자들 체면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유분수지.”“그러니까요! 다음 인터뷰엔 절대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정말 짜증 나 미치겠어요. 엔조이 미디어는 대체 왜 저런 쓰레기 같은 사람을 받은 거예요?”전연우가 나가고 몇 분 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정아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수많은 백발이 자라나 있었다. 그녀가 남색 정장을 입고 여장부의 포스를 뽐내며 들어오고 있었다.송시아는 곧바로 전연우를 따라나섰다.문을 닫지 않은 회의실 안에서 인정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전연우 씨와 우리 시윤이의 이혼은 이미 사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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