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아이라인이 번져 정교하게 한 메이크업이 흉측하게 망가졌다.“... 한 시간 뒤 돈이 통장에 들어갈 거야.”“네. 부대표님.”송시아는 상대방의 손에서 USB를 받은 뒤 회사를 나섰다.회사 문 앞, 소민아가 떠나가는 전연우의 차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대표님, 천천히 가세요. 몸조심...”기성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싱겁기는!”소민아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헤헤 웃었다.“비서님이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라고요.”“저도 대표님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예요. 어느 날 저에게도 승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잖아요. 헤헤...”하지만 이어지는 기성은의 말이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었다.“왜요. 내 자리라도 꿰차고 싶어요?”“기 비서님, 전 그런 뜻이 아닙니다.”기성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근무 시간에 업무와 상관없는 말 하면 6만 원 깎을 거예요.”“뭐라고요?”소민아는 그 어이없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기성은이 멀찌감치 걸어간 뒤였다.“기 비서님, 잠시만요...”“선생님...”“사수님...”“남신님...”“제가 잘못했어요. 월급 깎으시면 안 돼요...”기성은의 그 말은 부유하지 않은 집안이 소민아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성세 그룹의 기자회견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성세 그룹 대표이사 전연우와 인하 그룹 아가씨 인시윤의 이혼 사실은 빠르게 서울시 모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이번 일엔 성세 그룹의 관여가 동반했다. 기자가 보도한 내용 모두 성세 그룹의 검사를 받고 진행되었기에 성세 그룹의 주식엔 조금의 영향도 가지 않았다.두 사람의 이혼 사실이 더 큰 화제가 되기 전에, 성세 그룹에선 연이어 유명 배우 소아린이 거물 스폰서와 즐기다가 하반신이 찢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터뜨렸다.신문에 소아린의 진단서까지 실려있었다. 하지만 사람들
전연우는 강씨 저택을 손에 넣고도 흔쾌히 내놓았다. 현재 전연우에게 별로 아깝지도 않은 것이었다.지금의 그는 돈, 지위, 명예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전연우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강씨 저택... 그는 필요 없다. 심지어 그녀에게 남원 별장보다 더 좋은 것을 줄 수도 있다.그녀가 눈앞에 있어야만 마음속에 안정이 깃든다. 그래야만 마음속 텅 비었던 곳이 꽉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화실 안, 촬영사가 별이의 첫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얼마 전에 찍으려던 사진을 미루다 미루다 오늘에야 찍게 된 것이다.별이는 꽃 속에 파묻혀 선녀 원피스를 입고 날개를 단 채 선녀봉을 들고 촬영사 뒤에 서 있는 장소월을 향해 배시시 웃으며 앉아있었다.장소월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색 오리 장난감을 들고 아이의 웃음을 유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가닥의 시선이 그녀의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고 말했다.“걘 알 필요 없어.”간단히 한 마디 말한 뒤 전연우는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은경애가 허벅지를 내리치며 말했다.“아이고, 크면 분명 여자아이들한테 인기 폭발일 거예요. 저 잘생긴 것 좀 봐요.”촬영사 보조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맞아요. 사모님처럼 예쁘게 잘 자랄 것 같아요.”장소월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닮았어도 그저 우연일 뿐이다.마지막 사진만 남겨놓고 촬영이 거의 끝나가던 때 촬영사가 말했다.“사모님, 아이와 함께 찍지 않으실래요?”보조가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사모님, 도련님을 무릎에 앉히고 찍으면 분명 잘 나올 거예요.”장소월이 동의하기도 전에 은경애는 이미 의자를 가져왔다.장소월은 더는 거절하지 않고 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촬영사가 사진을 찍으려던 그때, 전연우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심지어 입고 있던 잠옷을 벗어 던지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채 말이다.“대표님.”전연우는 고개를
“지금 뭐 하는 거야?”장소월이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범한 남자를 쳐다보았다.촬영사가 그 자연스러운 장면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았다. 오늘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장소월의 눈에 깃든 불만은 다른 사람들의 눈엔 그저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보였다.촬영이 끝난 뒤, 장소월의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전연우는 아이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그녀를 안아 화실에서 나갔다.화실 안 사람들은 모두 몰래 웃으며 부러워했다.장소월은 부끄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했다. 별장에 들어가고 나서야 전연우가 그녀를 소파에 내려놓았다.“앞으로 사람 많은 곳에서 그러지 마. 나 불편해.”도우미가 몸보신 한약을 데워오자 전연우가 받아들었다.“이제는 성세 그룹 안주인이라는 자리에 천천히 익숙해져야 해.”장소월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신문에 실린 내용이 다 사실이란 말이야? 또 인씨 집안을 협박해 거래했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은 인시윤과 이혼할 목적으로?”“이번엔 또 어떤 추악한 방법으로 인하 그룹 사모님이 동의하게 만든 거야? 목숨으로 협박했어? 아니면 인하 그룹으로?”장소월이 벌컥 화를 내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전연우가 그녀 입가에 가져간 한약이 담긴 숟가락을 무시해버린 채 말이다.전연우가 대답했다.“강씨 저택 집문서 줬어.”장소월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연우가 그녀를 위해 줄곧 눈독을 들였던 강씨 저택 집문서까지 양보했다고?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네가 어떤 목적으로 그런 일을 했는지 상관없어. 전연우... 똑똑히 말해줄게. 저번 생에서 난 너와 결혼했다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어. 이번 생... 아니 또 다른 삶이 주어진다고 해도 절대 다시는 너와 결혼하지 않아.”“전생에서 강한 그룹, 인하 그룹 모두 네 손에 무너져버렸어. 강용은... 너 때문에 자살까지 했고.”“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넌 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르는 그 추악한 짓 끊지 못해
도우미는 모두 숨을 죽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말이다.그래서 대표님은 사모님을 소중하게 아껴주는 반면 사모님은 한 번도 그를 다정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다.아이를 안고 문밖에 나서기 바쁘게 은경애의 귀에 그릇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품 안 아이가 깜짝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아이가 또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릴까 봐 얼른 멀리 몸을 피했다. 분위기가 얼어붙자 도우미들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이제 거실엔 잔뜩 경직되어 있는 두 사람만 남았다.그녀의 손목을 잡은 전연우의 손이 경련했다. 그녀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괴로움을 보니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들 사이엔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전연우는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부단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예전 그녀에게 범했던 잘못을 생각하면서 말이다.또 어쩌면 장소월의 눈물이 전연우를 통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일 지도 모른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전연우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전연우가 장소월을 끌어당겨 품 안에 안았다. 장소월은 고통스럽게 반항하며 그로부터 벗어나려 했다.“이거 놔! 전연우... 이거 놔!”전연우는 그 어떤 일이든 굳이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장소월과 다툼의 도화선이 늘 강영수가 되니 이제 어쩔 수가 없었다.“강영수 비행기 추락 사건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야. 정말 사고였어. 이미 사람을 시켜 자세히 조사하라고 했으니 곧 너한테 진실을 알려줄게.”“진실? 그건 충분히 조작 가능한 거잖아. 지금 넌 모든 것을 손에 넣었어. 네가 하지 못하는 일이 뭐가 있겠어?”장소월이 그의 품에 꼭 안긴 채 차갑게 한 글자 한 글자 쏘아붙였다.“전연우... 네가 제일 잘하는 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 죽이는 거 아니었어?”“이번엔 또 누구한테 뒤집어씌우고 그런 말을 늘어놓는 거야?”“날 사랑한다고? 나랑 결혼하겠다고? 너 인시윤과 결혼한 지 반년도 안 지났어. 인시윤은 수년 동안 너한
전연우가 장소월을 안고 방 안에 가보니 이미 도우미들이 다시 그녀에게 한약 한 그릇을 준비해 두었다.전연우는 그녀를 침대에 내려놓고 지긋이 바라보았다. 보기엔 어떠한 감정적 파동 없이 평온했다.“일주일 뒤 프랑스에서 웨딩드레스가 올 거야. 입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골라도 돼.”장소월이 증오가 가득 일렁이는 새빨간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꺼져!”전연우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방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쿵 하고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장식품이 문을 가격하고 떨어져 두 동강이 났다.모든 것이 조용히 가라앉고 밤이 어두워졌을 때,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세면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장소월은 무명지에서 반지를 빼내려 날카로운 가위로 베고 또 베었다. 그녀는 연이어 밀려오는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더러운 반지를 빼내기 위해 손가락을 난도질한 탓에 손가락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고 허연 뼈까지 모습을 드러냈다.정신이 아찔해지도록 전해져오던 고통은 차가운 얼음물을 만나 마비가 되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녀가 드디어 가위로 반지를 빼내 변기에 버리려 팔을 휘두른 순간, 갑자기 몸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버렸다...은경애는 엉엉 울고 있는 별이를 안고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물소리를 듣고 욕실을 향해 걸어왔다.“아이고, 아가씨. 도련님은 정말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이 늙은 몸이...”욕실 앞에서 문을 두드렸으나 반응이 없자 불길한 예감이 든 그녀는 문을 벌컥 열었다. 순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욕실 바닥 전체가 피로 뒤덮여 있었다.은경애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그때 전연우는 회사에 있었다.은경애의 전화를 받은 순간 회의실에서 발표를 진행하고 있던 임원의 목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대표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옆엔 커다란 사이즈의 콜라까지 놓여 있었다. 도우미들이 입을 막고 몰래 쿡쿡 웃어댔다.“저기 봐요. 주인님이 사육하는 애완동물 진짜 재밌다니까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는 것밖에 없어요.”“얼굴에 살이 뒤룩뒤룩 붙어 먹음직한 돼지 같아요.”소현아는 그들의 목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건 맞지만 바보는 결코 아니다. 도우미들이 그녀를 돼지처럼 먹기만 한다며 조롱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녀는 못 들은 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그녀 또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소현아는 이제 닭발을 먹고 있어도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소현아는 마치 귀먹은 토끼처럼 우울감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집에 너무 오래 머물러 그들의 미움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매일 다른 음식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기도 좋지만 말이다. 어느새 뱃속 아기도 많이 자라있었다.하지만 그때, 배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아이고! 내 배!”“배가 너무 아파요.”도우미는 당황스러움에 서로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웃음기가 사라진 굳은 얼굴로 말했다.“음식 때문일까요?”다른 도우미가 말했다.“해산물과 야채는 모두 신선한 거라 문제없어요. 병이 난 거 아닐까요?”도우미가 소현아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얼른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소현아가 흐느꼈다.“내 아기... 흑흑... 내 아기가 죽은 것 같아요.”아기?사람들은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제야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도우미 한 명이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보고했다.위층 서재, 강지훈이 빔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짧은 십여 분의 영상이 끝이 났다.송시아가 검은색 군복을 입은 강지훈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재밌네. 난 저런 사람은 아무한테도
송시아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간 그 순간에야 남자의 잔인함을 깨달았다.“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 강지훈 씨... 날 죽이면 안 돼요!”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절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똑똑똑.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현아 아가씨가 아프시답니다.”강지훈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짐승들 소굴에 던져버릴 거야.”소현아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소파에 누워있었다.“선생님, 제 아기 죽은 거예요?”“저 너무 아파요!”다급한 군화 소리와 함께 강지훈이 위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순간 이유 모를 걱정이 피어올랐다.“대체 무슨 일이야?”“아기라니?”소현아는 베개를 안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겨우 배를 끌어안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이 소파에 앉자 소현아는 그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아픈 건데?”소현아는 그의 손을 잡아 아직 소화되지 않은 훠궈로 꽉 차 있는 불룩한 자신의 배에 가져갔다.“여기 아파요.”강지훈이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떻게 된 거예요?”“소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강지훈이 그녀를 달랬다.“잠깐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자리를 옮긴 뒤 의사가 말했다.“조금 전 기록을 살펴보니 저 아가씨는 내분비 기능 이상으로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 외에도 머리에 외상이 남아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대뇌에 자극이 오면 심리적인 장애로 번질 수 있습니다.”“아마 얼마 전 몸과 마음에 심각한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병은 발작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일단 발작하면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강지훈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깃들었다.“그럼 뱃속 아이는요?”의사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소현아 씨
거실 전체에 농후한 훠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예전의 북경 감옥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냄새다.“넌 언제면 좋겠어?”소현아가 말했다.“그럼... 제가 소월이 보러 갈게요! 소월이는 너무 바쁘거든요. 방해하기 싫어요.”소현아가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제를 돌렸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아기 어떻게 됐는지 얘기했어요? 아직 제 뱃속에 살아있는 거예요?”강지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아기 좋아해?”소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해요.”“그럼 당분간 여기 있어. 의사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한대.”소현아가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걱정어린 얼굴로 망설이다가 말했다.“하지만 엄마아빠가 보고 싶단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어요.”“의사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배가 계속 아플 거야. 내일 사람을 보내 부모님 모셔오라고 할게. 어때?”“그럼 됐어요. 엄마가 아빠는 심장이 안 좋아서 아무 데나 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요.”소현아가 몸을 뒤집어 강지훈의 허리에 지탱하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강지훈 씨, 저 이 집에서 산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저 정말 가야겠어요. 마지막으로 3일만 더 있다가 갈 거예요. 아니면 엄마아빠가 정말 걱정하실 거예요.”소현아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훠궈 냄새를 맡으니 뱃속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또 배고프네.”소현아는 조금 전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졌는지 또다시 채 먹지 못한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소월이도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강지훈은 이미 사람을 시켜 소현아의 뒷조사를 마쳤고 그렇게 소씨 집안 모든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강지훈이 말했다.“내일 안에 그 사람을 북경 감옥에 데려와.”“네.”열한 시 반.서재, 섹시한 자태의 도우미가 요염하게 몸을 배배 꼬며 커피를 들고 강지훈에게 다가갔다.“주인님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