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엔 커다란 사이즈의 콜라까지 놓여 있었다. 도우미들이 입을 막고 몰래 쿡쿡 웃어댔다.“저기 봐요. 주인님이 사육하는 애완동물 진짜 재밌다니까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는 것밖에 없어요.”“얼굴에 살이 뒤룩뒤룩 붙어 먹음직한 돼지 같아요.”소현아는 그들의 목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보다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건 맞지만 바보는 결코 아니다. 도우미들이 그녀를 돼지처럼 먹기만 한다며 조롱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그녀는 못 들은 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그녀 또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소현아는 이제 닭발을 먹고 있어도 맛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의 소현아는 마치 귀먹은 토끼처럼 우울감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집에 너무 오래 머물러 그들의 미움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래도 집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매일 다른 음식을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여기도 좋지만 말이다. 어느새 뱃속 아기도 많이 자라있었다.하지만 그때, 배에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아이고! 내 배!”“배가 너무 아파요.”도우미는 당황스러움에 서로 시선을 맞추다가 이내 웃음기가 사라진 굳은 얼굴로 말했다.“음식 때문일까요?”다른 도우미가 말했다.“해산물과 야채는 모두 신선한 거라 문제없어요. 병이 난 거 아닐까요?”도우미가 소현아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얼른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요.”소현아가 흐느꼈다.“내 아기... 흑흑... 내 아기가 죽은 것 같아요.”아기?사람들은 순간 긴장감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제야 일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도우미 한 명이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보고했다.위층 서재, 강지훈이 빔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짧은 십여 분의 영상이 끝이 났다.송시아가 검은색 군복을 입은 강지훈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재밌네. 난 저런 사람은 아무한테도
송시아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간 그 순간에야 남자의 잔인함을 깨달았다.“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 강지훈 씨... 날 죽이면 안 돼요!”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절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똑똑똑.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현아 아가씨가 아프시답니다.”강지훈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짐승들 소굴에 던져버릴 거야.”소현아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소파에 누워있었다.“선생님, 제 아기 죽은 거예요?”“저 너무 아파요!”다급한 군화 소리와 함께 강지훈이 위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순간 이유 모를 걱정이 피어올랐다.“대체 무슨 일이야?”“아기라니?”소현아는 베개를 안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겨우 배를 끌어안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이 소파에 앉자 소현아는 그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아픈 건데?”소현아는 그의 손을 잡아 아직 소화되지 않은 훠궈로 꽉 차 있는 불룩한 자신의 배에 가져갔다.“여기 아파요.”강지훈이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떻게 된 거예요?”“소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강지훈이 그녀를 달랬다.“잠깐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자리를 옮긴 뒤 의사가 말했다.“조금 전 기록을 살펴보니 저 아가씨는 내분비 기능 이상으로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 외에도 머리에 외상이 남아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대뇌에 자극이 오면 심리적인 장애로 번질 수 있습니다.”“아마 얼마 전 몸과 마음에 심각한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병은 발작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일단 발작하면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강지훈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깃들었다.“그럼 뱃속 아이는요?”의사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소현아 씨
거실 전체에 농후한 훠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예전의 북경 감옥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냄새다.“넌 언제면 좋겠어?”소현아가 말했다.“그럼... 제가 소월이 보러 갈게요! 소월이는 너무 바쁘거든요. 방해하기 싫어요.”소현아가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제를 돌렸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아기 어떻게 됐는지 얘기했어요? 아직 제 뱃속에 살아있는 거예요?”강지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아기 좋아해?”소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해요.”“그럼 당분간 여기 있어. 의사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한대.”소현아가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걱정어린 얼굴로 망설이다가 말했다.“하지만 엄마아빠가 보고 싶단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어요.”“의사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배가 계속 아플 거야. 내일 사람을 보내 부모님 모셔오라고 할게. 어때?”“그럼 됐어요. 엄마가 아빠는 심장이 안 좋아서 아무 데나 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요.”소현아가 몸을 뒤집어 강지훈의 허리에 지탱하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강지훈 씨, 저 이 집에서 산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저 정말 가야겠어요. 마지막으로 3일만 더 있다가 갈 거예요. 아니면 엄마아빠가 정말 걱정하실 거예요.”소현아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훠궈 냄새를 맡으니 뱃속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또 배고프네.”소현아는 조금 전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졌는지 또다시 채 먹지 못한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소월이도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강지훈은 이미 사람을 시켜 소현아의 뒷조사를 마쳤고 그렇게 소씨 집안 모든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강지훈이 말했다.“내일 안에 그 사람을 북경 감옥에 데려와.”“네.”열한 시 반.서재, 섹시한 자태의 도우미가 요염하게 몸을 배배 꼬며 커피를 들고 강지훈에게 다가갔다.“주인님
소현아는 옷장 안에 조그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갔나?”그녀가 작은 입을 움직인 그 순간, 옷장 문이 돌연 벌컥 열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들어왔다. 소현아는 겁에 질려 목걸이 시계를 꽉 움켜쥐었다.“저... 일부러 본 게 아니에요. 강지훈 씨, 날 때리지 말아요. 다시는 먹을 것 찾으러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을게요.”소현아는 옷장의 구석까지 비집고 들어가 머리를 감쌌다.“나와. 너 해치지 않아!”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이 이마를 깊게 찌푸렸다.“약속 지켜야 해요.”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그녀를 보며 강지훈은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비켜줘요.”소현아는 옷장에서 나온 뒤 목걸이 시계를 쥐고 강지훈과 멀리 떨어졌다.소현아가 그의 발밑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에만 서 있어요. 다가오지 말고.”“안 움직일게.”강지훈은 종래로 이렇게 여자의 말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소현아는 목걸이 시계를 열어 사진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녀가 다시 목에 걸고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미안해요. 강지훈 씨. 정말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그냥 배가 너무 고파서 내려가 먹을 것을 찾으려 했던 것뿐이에요. 두 사람이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걱정 말아요... 다음엔 신음소리가 들리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을게요.”“맹세할게요!”소현아는 주먹을 말아쥐고 머리 옆으로 가져갔다. 강지훈에겐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있었다.“강지훈 씨, 돌아가 주무세요. 저도 잘 거예요. 피곤해요.” 강지훈의 방은 소현아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강지훈이 방으로 돌아간 뒤.침실 안, 여자 한 명이 바닥에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주... 주인님!”강지훈이 여자를 힘껏 걷어차 버리고 포악함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닥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나뒹구는 여자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더더욱 잔혹한 처벌이 가해질 거라는 걸 너무나도
“희연아, 내 말 좀 들어봐. 내 계획은 완벽했어. 다 그 멍청이 때문이야. 희연아... 나 살려줘.. 날 이곳에서 꺼내만 준다면 네가 하라는 것 뭐든 할게.”제7 감옥 안, 노원우는 죄수복을 입고 눈앞 예쁘게 꾸민 여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하고 있었다. 몇 달을 감옥에서 살아온 그는 이제 이곳 생활에 진저리가 나버렸다. 본래 준수했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고 아래턱엔 거뭇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제 더는 여자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하는 형편없는 모양새였다.경호원을 대동하고 온 여자는 선글라스를 걸고 교만하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오늘 경고하려고 온 거야. 아버지께서 재판이 열리는 그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내뱉지 말라고 하셨어. 아니면 네 그 가난뱅이 친척들 또한 너랑 똑같이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너...”노원우는 낯선 사람 대하는 듯한 냉랭한 여자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아버지께선 네 능력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 하지만 이제 이용가치가 떨어졌으니 쓸데없이 너한테 힘을 쓸 필요는 없지. 그리고... 겁도 없이 그런 사람을 건드리다니.”그녀는 더이상 그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선글라스 속 눈을 까뒤집었다.“아니... 이러지 마... 희연아... 너 내 아이 가졌잖아. 이렇게 날 버리면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게 되잖아.”“아이? 하하하...”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내가 아직도 남겨뒀을 거라 생각해? 노원우, 자기객관화 좀 해.”노원우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유리창에 내던져버렸다. 매정히 떠나는 여자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뒤덮였다.끝났다. 이제 완전히 끝났다.노원우가 경찰과 함께 감옥에 다시 돌아가려던 그때,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제7 감옥 경찰은 한눈에 그가 서울 북경 감옥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북경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수다. 그곳에 발을 들인
또한 그닥 총명하지 못한 소현아는 어느새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이번에 강지훈은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그녀에게 있어 그 사진의 중요함을 과소평가했다.부관이 올라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반신욕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보고했다.“소장님, 데려왔습니다.”별장은 감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강지훈은 어두운 복도 끝을 힐끗 보고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이어갔다.음침하고 축축한 감옥에 들어가니 조금 전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린 노원우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반대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 말했다.“여... 여기 어디예요? 왜 날 이런 곳에 데려온 거예요? 당신들은 누구죠?”강지훈이 부관의 손에서 몽둥이를 받아들었다. 그가 휘둘자 노원우의 아우성이 감옥에 울려 퍼졌다.강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분출하기라도 하는 듯 한 번 또 한 번 몽둥이를 휘둘렀다.머릿속에서 자신에게 강렬히 저항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맴돌았다.“나 다시는 지훈 씨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난 지훈 씨가 싫어요!”강지훈은 자신이 언제부터 애완동물의 생각을 이렇게나 신경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 반이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눈도 그쳤다.강지훈이 분노를 모두 분출했을 때, 십자가에 묶여있던 남자는 이제 모든 힘이 풀려 단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바닥 전체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강지훈이 분부했다.“쉽게 죽게 하면 안 돼.”“네.”강지훈이 감옥을 나가 별장에 도착하자 도우미가 황급히 달려왔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소현아 씨가 없어졌어요.”강지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없어졌으면 나가 찾아!”남자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왔다.위층에 올라가 복도를 밟을 때까지 강지훈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소현아가 있던 방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방안을 꽉 채웠던 그녀의 체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차디찬 한기만 감돌고 있었다
‘사진 속 그 기생오라비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했던 거야?’꽁꽁 얼어버린 손이 겨우 녹아내리자 강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펴보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찢어진 사진 조각을 본 순간 그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모두 창밖에 던져버렸다.“깨어나면 이 죄 반드시 물을 거야.”시내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온몸은 이제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하지만 열 시간이 넘게 실종된 끝에 겨우 주워온 생명이니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었다.소현아는 머리가 어지럽고 의식이 흐릿했다.“나... 나쁜 자식...”강지훈의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이마에 올려졌다.“깼어?”“강지훈 씨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말하지 마.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소현아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병실로 옮겨진 뒤, 의사는 그녀에게 해열제를 놓았다.강지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면 깨어날 수 있어요?”간호사가 말했다.“아가씨의 몸 상태에 달려있어요. 충분히 휴식하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흉측한 그의 인상을 보고는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곧바로 의료기기들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부관이 말했다.“소장님, 소씨 집안 쪽에서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아가씨를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강지훈이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내가 말한 거 안 보냈어?”“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선 단호히 거절하며 아가씨를 보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애완동물이야. 소씨 집안에 알려줘. 오늘부터 소현아는 소씨 집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들이 어떤 조건을 요구하든 모든 들어준다고 해.”“네.”서울시 경찰서.소현아가 사라진 시간 동안 소정국은 줄곧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소정국과 명세진은 경찰서에서 답변을 들은 뒤 또다시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경찰서를 나섰다.소정국이 고통스럽게 심정을
그들의 애원에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이건 저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계약서는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마음을 굳히시면 적혀있는 번호로 언제든 전화주세요. 저희 쪽 사람들이 연락드릴 겁니다.“어르신, 사모님,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그들이 나간 뒤, 소정국은 분노에 차올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하늘이 무서운 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 딸을 납치해 가둬놓고 저런 황당무계한 말을 지껄이다니.”명세진은 눈물을 닦은 뒤 얼른 그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여보, 흥분하지 말아요. 우리 현아는 복이 많은 아이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소정국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명세진은 재빨리 그의 호주머니에서 심장약을 꺼내 먹였다.소현아의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이때, 소정국마저 쓰러진다면 집안 전체가 허물어 내릴 것이다.“여보, 현아의 그 친구가 찾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소정국도 번뜩 장소월의 얼굴이 떠올랐다.“성세 그룹 그 아가씨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성세 그룹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그 아가씨한테 도움을 청하겠어.”“그리고... 그 아가씨는 이미 한 번 우릴 도와줬는데...”명세진이 말했다.“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잖아요. 현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을 찾아가는 거예요.”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서울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내로라하는 명문세가이니 말이다.그저 지극히 평범한 집안일 뿐인 그들이 어떻게 성세 그룹에 연락이 닿을 수 있겠는가.그들은 소현아가 좋은 집에 시집가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평안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들은 소현아가 대체 어떻게 그 염라대왕을 건드렸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소씨 가문에서도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마다 모두 입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서울에서 권세로 유명한 강씨 집안은 별로 없다. 정계에 있는 그 강씨 집안을 제외하면 말이다.강씨 집안과 맞서는 건 그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