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아의 동공이 순간 확장되었다. 그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간 그 순간에야 남자의 잔인함을 깨달았다.“안 돼요... 이러면 안 돼요... 강지훈 씨... 날 죽이면 안 돼요!”주인님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절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한다.똑똑똑.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현아 아가씨가 아프시답니다.”강지훈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짐승들 소굴에 던져버릴 거야.”소현아는 고통스럽게 몸을 웅크리고 소파에 누워있었다.“선생님, 제 아기 죽은 거예요?”“저 너무 아파요!”다급한 군화 소리와 함께 강지훈이 위층에서 걸어 내려왔다. 순간 이유 모를 걱정이 피어올랐다.“대체 무슨 일이야?”“아기라니?”소현아는 베개를 안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겨우 배를 끌어안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아파요.”강지훈이 소파에 앉자 소현아는 그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그가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아픈 건데?”소현아는 그의 손을 잡아 아직 소화되지 않은 훠궈로 꽉 차 있는 불룩한 자신의 배에 가져갔다.“여기 아파요.”강지훈이 의사에게 시선을 돌렸다.“어떻게 된 거예요?”“소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강지훈이 그녀를 달랬다.“잠깐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자리를 옮긴 뒤 의사가 말했다.“조금 전 기록을 살펴보니 저 아가씨는 내분비 기능 이상으로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은 것 외에도 머리에 외상이 남아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대뇌에 자극이 오면 심리적인 장애로 번질 수 있습니다.”“아마 얼마 전 몸과 마음에 심각한 물리적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런 병은 발작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일단 발작하면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강지훈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이 깃들었다.“그럼 뱃속 아이는요?”의사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소현아 씨
거실 전체에 농후한 훠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예전의 북경 감옥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냄새다.“넌 언제면 좋겠어?”소현아가 말했다.“그럼... 제가 소월이 보러 갈게요! 소월이는 너무 바쁘거든요. 방해하기 싫어요.”소현아가 작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제를 돌렸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아기 어떻게 됐는지 얘기했어요? 아직 제 뱃속에 살아있는 거예요?”강지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아기 좋아해?”소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해요.”“그럼 당분간 여기 있어. 의사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한대.”소현아가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걱정어린 얼굴로 망설이다가 말했다.“하지만 엄마아빠가 보고 싶단 말이에요. 집에 가고 싶어요.”“의사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배가 계속 아플 거야. 내일 사람을 보내 부모님 모셔오라고 할게. 어때?”“그럼 됐어요. 엄마가 아빠는 심장이 안 좋아서 아무 데나 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요.”소현아가 몸을 뒤집어 강지훈의 허리에 지탱하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강지훈 씨, 저 이 집에서 산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저 정말 가야겠어요. 마지막으로 3일만 더 있다가 갈 거예요. 아니면 엄마아빠가 정말 걱정하실 거예요.”소현아는 얼른 일어나 앉았다. 훠궈 냄새를 맡으니 뱃속에서 또 꼬르륵 소리가 울려 퍼졌다.“또 배고프네.”소현아는 조금 전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졌는지 또다시 채 먹지 못한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소월이도 이곳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강지훈은 이미 사람을 시켜 소현아의 뒷조사를 마쳤고 그렇게 소씨 집안 모든 상황에 대해 알게 되었다.강지훈이 말했다.“내일 안에 그 사람을 북경 감옥에 데려와.”“네.”열한 시 반.서재, 섹시한 자태의 도우미가 요염하게 몸을 배배 꼬며 커피를 들고 강지훈에게 다가갔다.“주인님
소현아는 옷장 안에 조그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갔나?”그녀가 작은 입을 움직인 그 순간, 옷장 문이 돌연 벌컥 열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들어왔다. 소현아는 겁에 질려 목걸이 시계를 꽉 움켜쥐었다.“저... 일부러 본 게 아니에요. 강지훈 씨, 날 때리지 말아요. 다시는 먹을 것 찾으러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을게요.”소현아는 옷장의 구석까지 비집고 들어가 머리를 감쌌다.“나와. 너 해치지 않아!”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이 이마를 깊게 찌푸렸다.“약속 지켜야 해요.”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그녀를 보며 강지훈은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비켜줘요.”소현아는 옷장에서 나온 뒤 목걸이 시계를 쥐고 강지훈과 멀리 떨어졌다.소현아가 그의 발밑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에만 서 있어요. 다가오지 말고.”“안 움직일게.”강지훈은 종래로 이렇게 여자의 말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소현아는 목걸이 시계를 열어 사진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녀가 다시 목에 걸고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미안해요. 강지훈 씨. 정말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그냥 배가 너무 고파서 내려가 먹을 것을 찾으려 했던 것뿐이에요. 두 사람이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걱정 말아요... 다음엔 신음소리가 들리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을게요.”“맹세할게요!”소현아는 주먹을 말아쥐고 머리 옆으로 가져갔다. 강지훈에겐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있었다.“강지훈 씨, 돌아가 주무세요. 저도 잘 거예요. 피곤해요.” 강지훈의 방은 소현아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강지훈이 방으로 돌아간 뒤.침실 안, 여자 한 명이 바닥에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주... 주인님!”강지훈이 여자를 힘껏 걷어차 버리고 포악함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닥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나뒹구는 여자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더더욱 잔혹한 처벌이 가해질 거라는 걸 너무나도
“희연아, 내 말 좀 들어봐. 내 계획은 완벽했어. 다 그 멍청이 때문이야. 희연아... 나 살려줘.. 날 이곳에서 꺼내만 준다면 네가 하라는 것 뭐든 할게.”제7 감옥 안, 노원우는 죄수복을 입고 눈앞 예쁘게 꾸민 여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하고 있었다. 몇 달을 감옥에서 살아온 그는 이제 이곳 생활에 진저리가 나버렸다. 본래 준수했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고 아래턱엔 거뭇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제 더는 여자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하는 형편없는 모양새였다.경호원을 대동하고 온 여자는 선글라스를 걸고 교만하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오늘 경고하려고 온 거야. 아버지께서 재판이 열리는 그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내뱉지 말라고 하셨어. 아니면 네 그 가난뱅이 친척들 또한 너랑 똑같이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너...”노원우는 낯선 사람 대하는 듯한 냉랭한 여자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아버지께선 네 능력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 하지만 이제 이용가치가 떨어졌으니 쓸데없이 너한테 힘을 쓸 필요는 없지. 그리고... 겁도 없이 그런 사람을 건드리다니.”그녀는 더이상 그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선글라스 속 눈을 까뒤집었다.“아니... 이러지 마... 희연아... 너 내 아이 가졌잖아. 이렇게 날 버리면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게 되잖아.”“아이? 하하하...”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내가 아직도 남겨뒀을 거라 생각해? 노원우, 자기객관화 좀 해.”노원우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유리창에 내던져버렸다. 매정히 떠나는 여자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뒤덮였다.끝났다. 이제 완전히 끝났다.노원우가 경찰과 함께 감옥에 다시 돌아가려던 그때,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제7 감옥 경찰은 한눈에 그가 서울 북경 감옥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북경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수다. 그곳에 발을 들인
또한 그닥 총명하지 못한 소현아는 어느새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이번에 강지훈은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그녀에게 있어 그 사진의 중요함을 과소평가했다.부관이 올라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반신욕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보고했다.“소장님, 데려왔습니다.”별장은 감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강지훈은 어두운 복도 끝을 힐끗 보고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이어갔다.음침하고 축축한 감옥에 들어가니 조금 전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린 노원우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반대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 말했다.“여... 여기 어디예요? 왜 날 이런 곳에 데려온 거예요? 당신들은 누구죠?”강지훈이 부관의 손에서 몽둥이를 받아들었다. 그가 휘둘자 노원우의 아우성이 감옥에 울려 퍼졌다.강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분출하기라도 하는 듯 한 번 또 한 번 몽둥이를 휘둘렀다.머릿속에서 자신에게 강렬히 저항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맴돌았다.“나 다시는 지훈 씨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난 지훈 씨가 싫어요!”강지훈은 자신이 언제부터 애완동물의 생각을 이렇게나 신경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 반이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눈도 그쳤다.강지훈이 분노를 모두 분출했을 때, 십자가에 묶여있던 남자는 이제 모든 힘이 풀려 단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바닥 전체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강지훈이 분부했다.“쉽게 죽게 하면 안 돼.”“네.”강지훈이 감옥을 나가 별장에 도착하자 도우미가 황급히 달려왔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소현아 씨가 없어졌어요.”강지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없어졌으면 나가 찾아!”남자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왔다.위층에 올라가 복도를 밟을 때까지 강지훈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소현아가 있던 방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방안을 꽉 채웠던 그녀의 체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차디찬 한기만 감돌고 있었다
‘사진 속 그 기생오라비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했던 거야?’꽁꽁 얼어버린 손이 겨우 녹아내리자 강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펴보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찢어진 사진 조각을 본 순간 그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모두 창밖에 던져버렸다.“깨어나면 이 죄 반드시 물을 거야.”시내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온몸은 이제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하지만 열 시간이 넘게 실종된 끝에 겨우 주워온 생명이니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었다.소현아는 머리가 어지럽고 의식이 흐릿했다.“나... 나쁜 자식...”강지훈의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이마에 올려졌다.“깼어?”“강지훈 씨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말하지 마.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소현아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병실로 옮겨진 뒤, 의사는 그녀에게 해열제를 놓았다.강지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면 깨어날 수 있어요?”간호사가 말했다.“아가씨의 몸 상태에 달려있어요. 충분히 휴식하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흉측한 그의 인상을 보고는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곧바로 의료기기들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부관이 말했다.“소장님, 소씨 집안 쪽에서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아가씨를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강지훈이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내가 말한 거 안 보냈어?”“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선 단호히 거절하며 아가씨를 보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애완동물이야. 소씨 집안에 알려줘. 오늘부터 소현아는 소씨 집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들이 어떤 조건을 요구하든 모든 들어준다고 해.”“네.”서울시 경찰서.소현아가 사라진 시간 동안 소정국은 줄곧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소정국과 명세진은 경찰서에서 답변을 들은 뒤 또다시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경찰서를 나섰다.소정국이 고통스럽게 심정을
그들의 애원에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이건 저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계약서는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마음을 굳히시면 적혀있는 번호로 언제든 전화주세요. 저희 쪽 사람들이 연락드릴 겁니다.“어르신, 사모님,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그들이 나간 뒤, 소정국은 분노에 차올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하늘이 무서운 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 딸을 납치해 가둬놓고 저런 황당무계한 말을 지껄이다니.”명세진은 눈물을 닦은 뒤 얼른 그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여보, 흥분하지 말아요. 우리 현아는 복이 많은 아이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소정국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명세진은 재빨리 그의 호주머니에서 심장약을 꺼내 먹였다.소현아의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이때, 소정국마저 쓰러진다면 집안 전체가 허물어 내릴 것이다.“여보, 현아의 그 친구가 찾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소정국도 번뜩 장소월의 얼굴이 떠올랐다.“성세 그룹 그 아가씨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성세 그룹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그 아가씨한테 도움을 청하겠어.”“그리고... 그 아가씨는 이미 한 번 우릴 도와줬는데...”명세진이 말했다.“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잖아요. 현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을 찾아가는 거예요.”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서울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내로라하는 명문세가이니 말이다.그저 지극히 평범한 집안일 뿐인 그들이 어떻게 성세 그룹에 연락이 닿을 수 있겠는가.그들은 소현아가 좋은 집에 시집가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평안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들은 소현아가 대체 어떻게 그 염라대왕을 건드렸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소씨 가문에서도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마다 모두 입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서울에서 권세로 유명한 강씨 집안은 별로 없다. 정계에 있는 그 강씨 집안을 제외하면 말이다.강씨 집안과 맞서는 건 그야말
순간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도 공포스럽게 한기가 내려앉았다.소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허약하고도 창백한 얼굴을 돌려 공포가 가득 들어있는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은 노원우와 똑같은 나쁜 사람이에요. 더는 당신과 친구 하기 싫어요.”소현아는 환자복을 입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을 나선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침대로 돌아와 누워.”“당신 말 안 들어요! 나 집에 갈 거예요!”소현아가 억울한 얼굴로 입을 삐죽거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다가오지 말아요!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에요. 난 이제 당신이 싫어요.”소현아가 그를 피해 구석으로 달려가 옆에 있던 꽃병을 들고 방어했다.“더 가까이 오면 이 꽃병으로 때려버릴 거예요!”강지훈이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저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다니. 북경 감옥에서 그에게 들러붙고 싶어 용을 쓰던 애완동물과는 완전히 달랐다.“그거 내려놓고 이쪽으로 와. 네가 잘못한 건 없던 일로 해줄게.”소현아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눈썹을 깊게 찌푸렸다. 하지만 종이호랑이 같이 말랑말랑한 그 기세가 강지훈에게 위협이 되기 만무했다. 그에겐 그저 투정을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 내 부모님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변태! 양아치!”“죽여버릴 거야!”퍽.소현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꽃병을 던져버렸다.강지훈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꽃병은 그의 귓가를 지나 뒤쪽 벽에 부딪혔다.“애완동물이면 애완동물답게 행동해야지. 현아야...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주니까 만만해 보여? 그래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거야?”강지훈은 지금까지 그녀의 객기를 모두 인내했다. 하지만 방금 전... 그녀는 그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넌 내 애완동물이야. 너희 집 식구들 모두 내 애완동물이야.”강지훈은 지금 이 순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