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훈 씨, 저 때리지 말아요.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때리면 오랫동안 너무 아파요... 나 맞는 거 싫어요.”소현아는 방 안 구석에서 커튼을 뒤집어쓰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이성을 잃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은 이유 모를 노기가 끓어올랐다.소현아는 더는 말도 하지 못하고 벽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라도 할 듯 점점 더 구석으로 움츠러들어 갔다.“앞으론 말 잘 들을게요.”“현아는 바보예요. 그러니까 현아랑 싸우지 말아요.”소현아는 급기야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그녀는 심지어 강지훈이 자신에게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그녀는 다시는 예전처럼 골방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너무나도 무서웠다.“쾅!”거칠게 닫히는 문소리에 소현아는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현아는 겁에 질린 얼굴로 침대를 바라보았다. 강지훈의 그 흉악했던 모습이 그녀로 하여금 예전 잔혹한 괴롭힘을 당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기다란 채찍이 그녀의 몸에 닿는다.공포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말을 듣지 않으면 밥 없어.말을 듣지 않으면 매 맞을 줄 알아.부관이 방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강지훈이 차에 타고 난 뒤 목적지를 말했다.“북경으로 돌아가.”“네.”한 시간 뒤 차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강지훈이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음산한 감옥 복도를 걸어갔다.부관은 오랫동안 소장님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었다.마치 몇 년 전 북경 감옥에 발령되었던 그때의 모습 같았다.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를 휘둘러 문을 쾅 열어젖혔다.무시무시한 소리가 공허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 충격에 천장에 매달려있던 백열등이 대롱대롱 흔들렸다.안에 갇혀 있는 노원우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방금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돌연 들려온 굉음에 깜짝 놀라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그의 눈에 옆에 있는 경찰관 손에서 몽둥이를 빼앗아 자신을 향해 걸어
소현아는 의식을 되찾은 뒤 또 어떤 자극을 받은 듯했다. 오후 간호사가 그녀에게 약을 챙겨주려 병실에 가보니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창가에 텅 빈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간호사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불길한 생각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창가로 달려갔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곳은 무려 15층이다!조심하지 않아 발을 헛디딘다면 뼈까지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간호사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며 소리쳤다.“소... 소현아 씨!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올라와요. 너무 위험해요. 만에 하나 떨어지면 큰일 나요!”소현아는 벽에 걸려있는 철난간을 잡고 있었다. 옆에 박혀 있던 못에 병원복이 걸려 아무리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천진난만한 얼굴로 간호사에게 말했다.“간호사 언니,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옷이 걸렸는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안 돼요.”간호사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가서 사람을 불러올게요.”그녀는 발 하나만 약간 튀어나온 곳에 디딘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간호사는 곧바로 문밖의 경호원들에게 알렸다. 경호원들은 소현아의 상황을 보고 있음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다. 훈련을 받은 용병들이긴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15층에서 내려간다는 건 그들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다.경호원은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총명하지도 않은 어리숙한 저 여자가 어떻게 내려가 저기에 매달려있단 말인가.병원에선 곧바로 강지훈에게 연락했다.강지훈은 자신이 잠깐 나간 사이에 그녀가 또 일을 저질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경호원으로부터 소현아의 소식을 들은 강지훈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정말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보군.”소현아는 사람들이 내려가 자신을 잡아가려 하자 또 어두운 방에 갇혀 매질을 당할까 봐 두려워 조심스레 옆으로 걸어갔
“소현아! 내가 말하고 있잖아!”소현아는 짜증이 끓어올라 고개를 들고 사납게 쏘아붙였다.“귀찮으니까 말하지 말아요. 내려가면 곧바로 집에 갈 거예요.”지금까지 강지훈을 이토록 화나게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를 제외하면 말이다.“민재야, 최대한 빨리 헬기 불러.”부관인 주민재가 말했다.“그 일은 전연우 씨한테 부탁해야만 합니다. 성세 그룹부터 여기까지 헬기가 오려면 단 십 분이면 됩니다.”...전화를 받았을 때 전연우는 장소월과 함께 검사실에서 나오고 있었다.기성은은 강지훈의 부하에게서 들은 말을 전연우에게 보고했다.전연우가 말했다.“무슨 상황인지 알아봐.”“네.”환자복을 입고 조용한 복도에 서 있던 장소월의 귀에 소현아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녀가 전연우에게 물었다.“현아한테... 무슨 일 있어?”전연우가 말했다.“아무것도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기성은은 헬기를 대동하고 병원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매달려있는 어리석은 그 여자를 발견했다.소현아는 머리 위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듣고는 강지훈 그 나쁜 놈이 잡으러 온 줄로 알았다.그녀는 급히 아래로 기어가다가 돌연 발을 헛디뎠다. 헬기에서 고리가 내려와 그녀의 옷을 걸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기성은은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위로 끌어올렸다.“이거 놔요. 나쁜 사람.”소현아는 온몸을 퍼덕이며 그에게 저항했다.“소현아 씨, 접니다!”기성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는 안정을 되찾고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기성은 씨예요? 소월이는요? 소월이도 온 거예요?”“아가씨께선 지금 잘 지내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텅 빈 옥상, 소현아가 기성은의 옷을 꽉 부여잡고 말했다.“기성은 씨, 저 집에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저 나쁜 놈이 절 때려서 머리에 혹까지 자랐어요. 저 정말 집에 가고 싶어요.”옥상 문이 벌컥 열리고 강지훈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소현아는 겁에 질려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기성은의 등 뒤에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맞는 건 무서워? 소현아, 너 정말 미친 거야, 아니면 미친 척하는 거야?”강지훈은 말투가 약간 냉랭해졌을 뿐이지만 소현아는 심각하게 겁을 먹고 위축되어 있었다.“전 미친 게 아니라 바보라서 그래요. 강지훈 씨, 잘못했어요. 앞으론 창문으로 나가지 않을게요.”소현아는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썼다. 밖에서 봐도 이불 속 여자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것을 선명히 알 수 있었다.부관이 말했다.“소장님, 아가씨를 계속 이대로 놔두다간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강지훈이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봐.”“일단 아가씨에게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가씨는 지금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전 그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집안까지 무너질 뻔한 큰일을 겪었습니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충격을 받을 때마다 뇌가 더 심각하게 망가집니다. 더욱이 그 손상은 비가역적이라 다시 회복되지도 못합니다.”“만약 또다시 자극을 받게 된다면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져 진짜 바보가 될지도 모릅니다.”소현아는 누군가 옆에서 자신을 바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맞아요... 현아는 바보예요. 그러니까 바보랑 싸우지 말아요.”엄마가 말했었다. 누군가 그녀를 괴롭히려 한다면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바보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기에 먼저 말하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부관이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강지훈이 고개를 들었다.“말해!”부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소현아 씨는 외모적인 면에서나 가정환경 면에서나 모두 그리 출중하지 않습니다. 서울엔 소현아 씨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선택지가 많고도 많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소현아 씨를 거두는 건 부담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소장님의 곁을 많은 여자분들이 스쳐
소현아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도망치려고 살며시 문밖을 나섰다.바로 그때, 복도 모퉁이에서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소현아 씨.”소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기성은 씨? 아까 가지 않았어요?”“이제 안심하세요. 아가씨는 안전합니다.”소현아가 기분 좋은 얼굴로 그에게 걸어갔다.“기성은 씨, 소월이가 날 데려오라고 시킨 거예요?”기성은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괜찮으시다면 제가 병원 밖까지 모시겠습니다.”소현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함께 갈게요.”소현아의 다리 안쪽 흥건해진 천을 본 순간 기성은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아가씨, 제가 잠시 기다릴 테니까 옷부터 갈아입으세요.”소현아는 고개를 숙여 살펴보더니 약간 미안한 듯한 얼굴로 설명했다.“기성은 씨는 그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저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그리고... 이건 엄마가 가르쳐주신 거예요. 오줌을 싸고도 쫓아내지 못하면 똥까지 싸려고 했어요.”기성은은 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아가씨, 소씨 집안은 서울에서 꽤나 명성이 있는 집안이에요. 밖에선 체면을 지켜야 해요.”소현아는 두 검지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하지만 엄마가 이렇게 하면 나쁜 놈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셨단 말이에요.”그토록 무해한 그녀의 모습에 기성은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 생각이 짧았네요.”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기성은은 소현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종래로 보지 못했다.소현아가 옷을 갈아입은 뒤, 기성은은 그녀를 데리고 로즈 가든으로 향했다.“아가씨, 힘드시겠지만 이후 며칠 동안은 외출하지 마세요. 나쁜 놈들이 아가씨를 찾는 걸 포기하면 제가 자연히 집에 모셔다드릴 겁니다.소월이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무조건 그를 신뢰한 소현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 절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않을게요.”기성은은 그녀에게 열쇠를 건네
소현아가 병원 15층에 매달려있었다는 사실은 예상대로 당시 사람들이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에 의해 인터넷에 퍼져나갔다.성세 그룹이 만든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의 대대적인 확대와 스마트 반도체의 개발은 폴더폰을 도태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기능의 스마트폰이 시장을 점령하게 했다. 과학기술계에 한 단계 도약한 혁신의 바람이 분 것이다.전연우는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엘리트 개인 병원.서철용이 장소월의 무명지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좀 영리하게 행동할 수도 있잖아요. 앞으론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자해하지 말아요.”“지금 전연우에게 소월 씨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소월 씨가 다치면 전연우도 마음이 좋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결국 아픈 건 어쨌든 소월 씨잖아요.”서철용의 말투는 완전히 인생 선배가 하는 조언 같았다.장소월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서철용이 붕대로 상처를 감싸고 있을 때, 문밖에서 배은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철용 씨, 밥 먹어.”장소월은 곧바로 자신의 손을 거두어들였다.서철용은 몸을 일으켜 연고 뚜껑을 닫아 그녀의 서랍에 넣어주었다.“가서 밥 먹어요. 은란이 솜씨 꽤 괜찮아요.”배은란이 떠난 뒤 장소월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분 배속 아기 당신 아이예요?”장소월은 서철용의 몸이 순간 경직되는 것을 포착했다.장소월이 조롱 섞인 얼굴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당신도 전연우와 똑같아요. 늘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죠. 그런 행동은 저분에게 상처만 줄 뿐이에요.”“나쁜 사람들.”“누가 또 너 화나게 했어?”전연우의 목소리가 병실 문밖에서 들려오자 장소월은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서철용은 서랍을 닫고 일어선 뒤 두 손을 의사 가운 호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떴다.전연우는 장소월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건넸다.“이제 시장에 있는 구형 핸드폰은 모두 도태됐어. 이건 회사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이야. 전생에서 쓰던 것과 비슷할 테니 쓰기
“책 읽다가 싫증 나면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게임도 넣어놨으니까 그걸로 스트레스 풀어.”“무슨 게임 좋아해? 나한테 알려주면...”그는 할아버지처럼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놓았다.“전연우, 난 이런 거 필요 없어.”그는 늘 그래왔다. 1초 전엔 사랑한다고 고백해놓고 1초 뒤엔... 수시로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사람이다.“소월아, 지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언젠가는 꼭 받아들일 날이 올 거야. 난 시간 있으니까 기다릴 수 있어. 난 확실히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몰라. 네가 조금씩 나한테 가르쳐줘...”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장소월은 힘껏 그의 손을 내리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넌 정말 답이 없는 놈이구나.”전연우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네 말이 맞아.”“정신병 환자!”“응.”전연우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서를 통제하기 위해 연속 며칠 동안 감정을 다스리는 치료를 받았다. 그 목적은 오직 저번처럼 장소월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거였다.사실 전연우는 자신을 대하는 장소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 언젠가는 그가 모두 소유하는 날이 올 것이다.전연우는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어야 돌아왔다. 그는 해외와의 시차를 고려해 시간 맞춰 몇 개의 회사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화상 회의에 사용된 통신 설비는 성세 그룹이 만든 것이었다. 전연우도 처음이라 익숙지 않아 평소엔 기성은이 늘 옆에서 도와주었다. 회의가 끝난 뒤, 외국 회사 임원들은 모두 전연우가 로그아웃하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영상 속 대표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은 나른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장소월이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 물기를 닦으며 욕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전연우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에서 마른 수건을 빼앗은 뒤 그녀의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기다리
장소월은 곧바로 그의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화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며 꺼졌다.전연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입고 있던 검은색 정장을 벗고 조금 전 장소월이 앉았던 의자에 기대에 앉았다.“이젠 전화번호도 실명제로 개설해야 해. 그래서 네가 원래 쓰던 번호는 없애버렸어. 앞으론 이 새 번호 써, 알았지?”그는 아무것도 아닌 듯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는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통보하는 듯했다. 분명 그녀의 번호이지만 그가 마음대로 결정해버렸다.장소월은 침대에 놓여 있던 베개를 잡아 그에게 집어 던졌다.“내 번호를 네가 뭔데 마음대로 바꿔? 전연우, 넌 미쳤어!”전연우는 피하지 않고 가슴팍에 베개를 맞았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그는 발밑에 떨어진 베개를 툭툭 털고는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네가 내 번호를 잊어버릴까 봐 나도 함께 바꿨어. 너랑 숫자 하나만 차이 나는 거로.”장소월은 전연우가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 가방에서 낡은 핸드폰을 꺼내 원래 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역시...들려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뿐이었다.장소월은 분노에 차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 번호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아이디가 연동됐는지 알기나 해? 왜 내 물건을 네 마음대로 건드리는 건데!”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전연우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새 핸드폰에 네가 쓰던 모든 자료 옮겨놨어. 인터넷 서칭 기록, 메일 모두 정상적으로 사용 가능해. 예전 메일함에 있던 자료들도 그대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장소월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분노는 잠재울 수가 없었다.그 번호는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번호 안엔 엄마의 생일 숫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핸드폰을 꽉 잡고 차갑게 그에게 말했다.“다음부턴 마음대로 내 물건에 손대지 마.”말을 마친 그녀는 방에서 나가 거실로 향했다.등 뒤에서 전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시간에 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