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아는 옷장 안에 조그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갔나?”그녀가 작은 입을 움직인 그 순간, 옷장 문이 돌연 벌컥 열리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들어왔다. 소현아는 겁에 질려 목걸이 시계를 꽉 움켜쥐었다.“저... 일부러 본 게 아니에요. 강지훈 씨, 날 때리지 말아요. 다시는 먹을 것 찾으러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을게요.”소현아는 옷장의 구석까지 비집고 들어가 머리를 감쌌다.“나와. 너 해치지 않아!”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이 이마를 깊게 찌푸렸다.“약속 지켜야 해요.”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그녀를 보며 강지훈은 애써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비켜줘요.”소현아는 옷장에서 나온 뒤 목걸이 시계를 쥐고 강지훈과 멀리 떨어졌다.소현아가 그의 발밑을 가리키며 말했다.“거기에만 서 있어요. 다가오지 말고.”“안 움직일게.”강지훈은 종래로 이렇게 여자의 말대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소현아는 목걸이 시계를 열어 사진을 확인하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녀가 다시 목에 걸고 옷 안으로 집어넣었다.“미안해요. 강지훈 씨. 정말 일부러 본 건 아니에요. 그냥 배가 너무 고파서 내려가 먹을 것을 찾으려 했던 것뿐이에요. 두 사람이 그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걱정 말아요... 다음엔 신음소리가 들리면 절대 가까이 가지 않을게요.”“맹세할게요!”소현아는 주먹을 말아쥐고 머리 옆으로 가져갔다. 강지훈에겐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는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있었다.“강지훈 씨, 돌아가 주무세요. 저도 잘 거예요. 피곤해요.” 강지훈의 방은 소현아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강지훈이 방으로 돌아간 뒤.침실 안, 여자 한 명이 바닥에 꿇어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주... 주인님!”강지훈이 여자를 힘껏 걷어차 버리고 포악함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닥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나뒹구는 여자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더더욱 잔혹한 처벌이 가해질 거라는 걸 너무나도
“희연아, 내 말 좀 들어봐. 내 계획은 완벽했어. 다 그 멍청이 때문이야. 희연아... 나 살려줘.. 날 이곳에서 꺼내만 준다면 네가 하라는 것 뭐든 할게.”제7 감옥 안, 노원우는 죄수복을 입고 눈앞 예쁘게 꾸민 여자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애원하고 있었다. 몇 달을 감옥에서 살아온 그는 이제 이곳 생활에 진저리가 나버렸다. 본래 준수했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고 아래턱엔 거뭇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이제 더는 여자의 흥미를 끌어내지 못하는 형편없는 모양새였다.경호원을 대동하고 온 여자는 선글라스를 걸고 교만하게 팔짱을 끼고 말했다.“오늘 경고하려고 온 거야. 아버지께서 재판이 열리는 그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내뱉지 말라고 하셨어. 아니면 네 그 가난뱅이 친척들 또한 너랑 똑같이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너...”노원우는 낯선 사람 대하는 듯한 냉랭한 여자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아버지께선 네 능력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 하지만 이제 이용가치가 떨어졌으니 쓸데없이 너한테 힘을 쓸 필요는 없지. 그리고... 겁도 없이 그런 사람을 건드리다니.”그녀는 더이상 그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선글라스 속 눈을 까뒤집었다.“아니... 이러지 마... 희연아... 너 내 아이 가졌잖아. 이렇게 날 버리면 아이는 아빠 없이 자라게 되잖아.”“아이? 하하하...”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 내가 아직도 남겨뒀을 거라 생각해? 노원우, 자기객관화 좀 해.”노원우는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유리창에 내던져버렸다. 매정히 떠나는 여자를 보는 그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뒤덮였다.끝났다. 이제 완전히 끝났다.노원우가 경찰과 함께 감옥에 다시 돌아가려던 그때, 검은색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제7 감옥 경찰은 한눈에 그가 서울 북경 감옥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북경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형수다. 그곳에 발을 들인
또한 그닥 총명하지 못한 소현아는 어느새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하지만... 이번에 강지훈은 자신을 과대평가했고, 그녀에게 있어 그 사진의 중요함을 과소평가했다.부관이 올라와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반신욕을 하고 있는 남자에게 어두운 얼굴로 조용히 보고했다.“소장님, 데려왔습니다.”별장은 감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다...강지훈은 어두운 복도 끝을 힐끗 보고는 멈추지 않고 걸음을 이어갔다.음침하고 축축한 감옥에 들어가니 조금 전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정신을 차린 노원우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반대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 말했다.“여... 여기 어디예요? 왜 날 이런 곳에 데려온 거예요? 당신들은 누구죠?”강지훈이 부관의 손에서 몽둥이를 받아들었다. 그가 휘둘자 노원우의 아우성이 감옥에 울려 퍼졌다.강지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분출하기라도 하는 듯 한 번 또 한 번 몽둥이를 휘둘렀다.머릿속에서 자신에게 강렬히 저항하던 여자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맴돌았다.“나 다시는 지훈 씨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난 지훈 씨가 싫어요!”강지훈은 자신이 언제부터 애완동물의 생각을 이렇게나 신경 썼는지 알 수가 없었다.시간은 어느덧 한 시간 반이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눈도 그쳤다.강지훈이 분노를 모두 분출했을 때, 십자가에 묶여있던 남자는 이제 모든 힘이 풀려 단 한 글자도 내뱉지 못했다. 바닥 전체가 피로 흥건히 물들었다.강지훈이 분부했다.“쉽게 죽게 하면 안 돼.”“네.”강지훈이 감옥을 나가 별장에 도착하자 도우미가 황급히 달려왔다.“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소현아 씨가 없어졌어요.”강지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없어졌으면 나가 찾아!”남자가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왔다.위층에 올라가 복도를 밟을 때까지 강지훈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소현아가 있던 방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방안을 꽉 채웠던 그녀의 체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차디찬 한기만 감돌고 있었다
‘사진 속 그 기생오라비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했던 거야?’꽁꽁 얼어버린 손이 겨우 녹아내리자 강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펴보았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찢어진 사진 조각을 본 순간 그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모두 창밖에 던져버렸다.“깨어나면 이 죄 반드시 물을 거야.”시내에 거의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천천히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온몸은 이제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하지만 열 시간이 넘게 실종된 끝에 겨우 주워온 생명이니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었다.소현아는 머리가 어지럽고 의식이 흐릿했다.“나... 나쁜 자식...”강지훈의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이마에 올려졌다.“깼어?”“강지훈 씨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말하지 마.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소현아는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정신을 잃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병실로 옮겨진 뒤, 의사는 그녀에게 해열제를 놓았다.강지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면 깨어날 수 있어요?”간호사가 말했다.“아가씨의 몸 상태에 달려있어요. 충분히 휴식하면 곧 깨어나실 거예요.”강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흉측한 그의 인상을 보고는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아 곧바로 의료기기들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부관이 말했다.“소장님, 소씨 집안 쪽에서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아가씨를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강지훈이 못마땅한 듯 이마를 찌푸렸다.“내가 말한 거 안 보냈어?”“보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선 단호히 거절하며 아가씨를 보내 달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오직 나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애완동물이야. 소씨 집안에 알려줘. 오늘부터 소현아는 소씨 집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들이 어떤 조건을 요구하든 모든 들어준다고 해.”“네.”서울시 경찰서.소현아가 사라진 시간 동안 소정국은 줄곧 그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소정국과 명세진은 경찰서에서 답변을 들은 뒤 또다시 실망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경찰서를 나섰다.소정국이 고통스럽게 심정을
그들의 애원에도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죄송합니다. 이건 저희가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단 계약서는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마음을 굳히시면 적혀있는 번호로 언제든 전화주세요. 저희 쪽 사람들이 연락드릴 겁니다.“어르신, 사모님, 진지하게 고민해 보십시오.”그들이 나간 뒤, 소정국은 분노에 차올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하늘이 무서운 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고. 내 딸을 납치해 가둬놓고 저런 황당무계한 말을 지껄이다니.”명세진은 눈물을 닦은 뒤 얼른 그를 부축해 소파에 앉혔다.“여보, 흥분하지 말아요. 우리 현아는 복이 많은 아이니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소정국의 호흡이 거칠어지자 명세진은 재빨리 그의 호주머니에서 심장약을 꺼내 먹였다.소현아의 생사가 명확하지 않은 이때, 소정국마저 쓰러진다면 집안 전체가 허물어 내릴 것이다.“여보, 현아의 그 친구가 찾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소정국도 번뜩 장소월의 얼굴이 떠올랐다.“성세 그룹 그 아가씨 말이야? 하지만... 우리에겐 성세 그룹에 연락할 방법이 없어. 어떻게 그 아가씨한테 도움을 청하겠어.”“그리고... 그 아가씨는 이미 한 번 우릴 도와줬는데...”명세진이 말했다.“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잖아요. 현아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을 찾아가는 거예요.”소씨 가문은 서울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서울에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내로라하는 명문세가이니 말이다.그저 지극히 평범한 집안일 뿐인 그들이 어떻게 성세 그룹에 연락이 닿을 수 있겠는가.그들은 소현아가 좋은 집에 시집가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평안하게 살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들은 소현아가 대체 어떻게 그 염라대왕을 건드렸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소씨 가문에서도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사람마다 모두 입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서울에서 권세로 유명한 강씨 집안은 별로 없다. 정계에 있는 그 강씨 집안을 제외하면 말이다.강씨 집안과 맞서는 건 그야말
순간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도 공포스럽게 한기가 내려앉았다.소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허약하고도 창백한 얼굴을 돌려 공포가 가득 들어있는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은 노원우와 똑같은 나쁜 사람이에요. 더는 당신과 친구 하기 싫어요.”소현아는 환자복을 입고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문을 나선 순간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침대로 돌아와 누워.”“당신 말 안 들어요! 나 집에 갈 거예요!”소현아가 억울한 얼굴로 입을 삐죽거렸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 다가오지 말아요!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에요. 난 이제 당신이 싫어요.”소현아가 그를 피해 구석으로 달려가 옆에 있던 꽃병을 들고 방어했다.“더 가까이 오면 이 꽃병으로 때려버릴 거예요!”강지훈이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저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다니. 북경 감옥에서 그에게 들러붙고 싶어 용을 쓰던 애완동물과는 완전히 달랐다.“그거 내려놓고 이쪽으로 와. 네가 잘못한 건 없던 일로 해줄게.”소현아가 반달 모양으로 휘어진 눈썹을 깊게 찌푸렸다. 하지만 종이호랑이 같이 말랑말랑한 그 기세가 강지훈에게 위협이 되기 만무했다. 그에겐 그저 투정을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 내 부모님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변태! 양아치!”“죽여버릴 거야!”퍽.소현아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꽃병을 던져버렸다.강지훈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꽃병은 그의 귓가를 지나 뒤쪽 벽에 부딪혔다.“애완동물이면 애완동물답게 행동해야지. 현아야...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주니까 만만해 보여? 그래서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거야?”강지훈은 지금까지 그녀의 객기를 모두 인내했다. 하지만 방금 전... 그녀는 그의 몸에 손을 대려고 했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넌 내 애완동물이야. 너희 집 식구들 모두 내 애완동물이야.”강지훈은 지금 이 순
“강지훈 씨, 저 때리지 말아요.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때리면 오랫동안 너무 아파요... 나 맞는 거 싫어요.”소현아는 방 안 구석에서 커튼을 뒤집어쓰고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었다.이성을 잃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강지훈은 이유 모를 노기가 끓어올랐다.소현아는 더는 말도 하지 못하고 벽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라도 할 듯 점점 더 구석으로 움츠러들어 갔다.“앞으론 말 잘 들을게요.”“현아는 바보예요. 그러니까 현아랑 싸우지 말아요.”소현아는 급기야 그를 쳐다보지도 못했다.그녀는 심지어 강지훈이 자신에게 왜 화가 났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그녀는 다시는 예전처럼 골방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너무나도 무서웠다.“쾅!”거칠게 닫히는 문소리에 소현아는 화들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현아는 겁에 질린 얼굴로 침대를 바라보았다. 강지훈의 그 흉악했던 모습이 그녀로 하여금 예전 잔혹한 괴롭힘을 당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기다란 채찍이 그녀의 몸에 닿는다.공포스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말을 듣지 않으면 밥 없어.말을 듣지 않으면 매 맞을 줄 알아.부관이 방 안에서 걸어 나오는 사람을 보고는 그 뒤를 따라갔다. 강지훈이 차에 타고 난 뒤 목적지를 말했다.“북경으로 돌아가.”“네.”한 시간 뒤 차가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강지훈이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음산한 감옥 복도를 걸어갔다.부관은 오랫동안 소장님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전혀 보지 못했었다.마치 몇 년 전 북경 감옥에 발령되었던 그때의 모습 같았다.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를 휘둘러 문을 쾅 열어젖혔다.무시무시한 소리가 공허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 충격에 천장에 매달려있던 백열등이 대롱대롱 흔들렸다.안에 갇혀 있는 노원우는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채 방금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돌연 들려온 굉음에 깜짝 놀라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그의 눈에 옆에 있는 경찰관 손에서 몽둥이를 빼앗아 자신을 향해 걸어
소현아는 의식을 되찾은 뒤 또 어떤 자극을 받은 듯했다. 오후 간호사가 그녀에게 약을 챙겨주려 병실에 가보니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창가에 텅 빈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간호사는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불길한 생각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창가로 달려갔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곳은 무려 15층이다!조심하지 않아 발을 헛디딘다면 뼈까지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간호사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며 소리쳤다.“소... 소현아 씨! 뭐 하는 거예요! 빨리 올라와요. 너무 위험해요. 만에 하나 떨어지면 큰일 나요!”소현아는 벽에 걸려있는 철난간을 잡고 있었다. 옆에 박혀 있던 못에 병원복이 걸려 아무리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천진난만한 얼굴로 간호사에게 말했다.“간호사 언니, 와서 저 좀 도와주세요. 옷이 걸렸는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안 돼요.”간호사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아가씨,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가서 사람을 불러올게요.”그녀는 발 하나만 약간 튀어나온 곳에 디딘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간호사는 곧바로 문밖의 경호원들에게 알렸다. 경호원들은 소현아의 상황을 보고 있음에도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다. 훈련을 받은 용병들이긴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15층에서 내려간다는 건 그들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다.경호원은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총명하지도 않은 어리숙한 저 여자가 어떻게 내려가 저기에 매달려있단 말인가.병원에선 곧바로 강지훈에게 연락했다.강지훈은 자신이 잠깐 나간 사이에 그녀가 또 일을 저질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경호원으로부터 소현아의 소식을 들은 강지훈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정말 죽는 게 두렵지도 않나 보군.”소현아는 사람들이 내려가 자신을 잡아가려 하자 또 어두운 방에 갇혀 매질을 당할까 봐 두려워 조심스레 옆으로 걸어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