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아! 내가 말하고 있잖아!”소현아는 짜증이 끓어올라 고개를 들고 사납게 쏘아붙였다.“귀찮으니까 말하지 말아요. 내려가면 곧바로 집에 갈 거예요.”지금까지 강지훈을 이토록 화나게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를 제외하면 말이다.“민재야, 최대한 빨리 헬기 불러.”부관인 주민재가 말했다.“그 일은 전연우 씨한테 부탁해야만 합니다. 성세 그룹부터 여기까지 헬기가 오려면 단 십 분이면 됩니다.”...전화를 받았을 때 전연우는 장소월과 함께 검사실에서 나오고 있었다.기성은은 강지훈의 부하에게서 들은 말을 전연우에게 보고했다.전연우가 말했다.“무슨 상황인지 알아봐.”“네.”환자복을 입고 조용한 복도에 서 있던 장소월의 귀에 소현아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녀가 전연우에게 물었다.“현아한테... 무슨 일 있어?”전연우가 말했다.“아무것도 아니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기성은은 헬기를 대동하고 병원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벽에 매달려있는 어리석은 그 여자를 발견했다.소현아는 머리 위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듣고는 강지훈 그 나쁜 놈이 잡으러 온 줄로 알았다.그녀는 급히 아래로 기어가다가 돌연 발을 헛디뎠다. 헬기에서 고리가 내려와 그녀의 옷을 걸지 않았다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기성은은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위로 끌어올렸다.“이거 놔요. 나쁜 사람.”소현아는 온몸을 퍼덕이며 그에게 저항했다.“소현아 씨, 접니다!”기성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녀는 안정을 되찾고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기성은 씨예요? 소월이는요? 소월이도 온 거예요?”“아가씨께선 지금 잘 지내고 계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텅 빈 옥상, 소현아가 기성은의 옷을 꽉 부여잡고 말했다.“기성은 씨, 저 집에 데려다주시면 안 돼요? 저 나쁜 놈이 절 때려서 머리에 혹까지 자랐어요. 저 정말 집에 가고 싶어요.”옥상 문이 벌컥 열리고 강지훈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소현아는 겁에 질려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 기성은의 등 뒤에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맞는 건 무서워? 소현아, 너 정말 미친 거야, 아니면 미친 척하는 거야?”강지훈은 말투가 약간 냉랭해졌을 뿐이지만 소현아는 심각하게 겁을 먹고 위축되어 있었다.“전 미친 게 아니라 바보라서 그래요. 강지훈 씨, 잘못했어요. 앞으론 창문으로 나가지 않을게요.”소현아는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썼다. 밖에서 봐도 이불 속 여자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는 것을 선명히 알 수 있었다.부관이 말했다.“소장님, 아가씨를 계속 이대로 놔두다간 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강지훈이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봐.”“일단 아가씨에게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가씨는 지금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전 그놈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집안까지 무너질 뻔한 큰일을 겪었습니다.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충격을 받을 때마다 뇌가 더 심각하게 망가집니다. 더욱이 그 손상은 비가역적이라 다시 회복되지도 못합니다.”“만약 또다시 자극을 받게 된다면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망가져 진짜 바보가 될지도 모릅니다.”소현아는 누군가 옆에서 자신을 바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전혀 화내지 않고 오히려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맞아요... 현아는 바보예요. 그러니까 바보랑 싸우지 말아요.”엄마가 말했었다. 누군가 그녀를 괴롭히려 한다면 자신이 바보라고 말하라고 말이다. 바보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기에 먼저 말하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부관이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강지훈이 고개를 들었다.“말해!”부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소현아 씨는 외모적인 면에서나 가정환경 면에서나 모두 그리 출중하지 않습니다. 서울엔 소현아 씨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선택지가 많고도 많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소현아 씨를 거두는 건 부담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소장님의 곁을 많은 여자분들이 스쳐
소현아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도망치려고 살며시 문밖을 나섰다.바로 그때, 복도 모퉁이에서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소현아 씨.”소현아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기성은 씨? 아까 가지 않았어요?”“이제 안심하세요. 아가씨는 안전합니다.”소현아가 기분 좋은 얼굴로 그에게 걸어갔다.“기성은 씨, 소월이가 날 데려오라고 시킨 거예요?”기성은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괜찮으시다면 제가 병원 밖까지 모시겠습니다.”소현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함께 갈게요.”소현아의 다리 안쪽 흥건해진 천을 본 순간 기성은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아가씨, 제가 잠시 기다릴 테니까 옷부터 갈아입으세요.”소현아는 고개를 숙여 살펴보더니 약간 미안한 듯한 얼굴로 설명했다.“기성은 씨는 그놈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저 너무 급해서 그랬어요. 그리고... 이건 엄마가 가르쳐주신 거예요. 오줌을 싸고도 쫓아내지 못하면 똥까지 싸려고 했어요.”기성은은 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아가씨, 소씨 집안은 서울에서 꽤나 명성이 있는 집안이에요. 밖에선 체면을 지켜야 해요.”소현아는 두 검지 손가락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하지만 엄마가 이렇게 하면 나쁜 놈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셨단 말이에요.”그토록 무해한 그녀의 모습에 기성은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제 생각이 짧았네요.”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기성은은 소현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종래로 보지 못했다.소현아가 옷을 갈아입은 뒤, 기성은은 그녀를 데리고 로즈 가든으로 향했다.“아가씨, 힘드시겠지만 이후 며칠 동안은 외출하지 마세요. 나쁜 놈들이 아가씨를 찾는 걸 포기하면 제가 자연히 집에 모셔다드릴 겁니다.소월이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무조건 그를 신뢰한 소현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 절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않을게요.”기성은은 그녀에게 열쇠를 건네
소현아가 병원 15층에 매달려있었다는 사실은 예상대로 당시 사람들이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에 의해 인터넷에 퍼져나갔다.성세 그룹이 만든 소셜 커뮤니티 플랫폼의 대대적인 확대와 스마트 반도체의 개발은 폴더폰을 도태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기능의 스마트폰이 시장을 점령하게 했다. 과학기술계에 한 단계 도약한 혁신의 바람이 분 것이다.전연우는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엘리트 개인 병원.서철용이 장소월의 무명지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좀 영리하게 행동할 수도 있잖아요. 앞으론 이런 무식한 방법으로 자해하지 말아요.”“지금 전연우에게 소월 씨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에요. 소월 씨가 다치면 전연우도 마음이 좋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결국 아픈 건 어쨌든 소월 씨잖아요.”서철용의 말투는 완전히 인생 선배가 하는 조언 같았다.장소월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서철용이 붕대로 상처를 감싸고 있을 때, 문밖에서 배은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철용 씨, 밥 먹어.”장소월은 곧바로 자신의 손을 거두어들였다.서철용은 몸을 일으켜 연고 뚜껑을 닫아 그녀의 서랍에 넣어주었다.“가서 밥 먹어요. 은란이 솜씨 꽤 괜찮아요.”배은란이 떠난 뒤 장소월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저분 배속 아기 당신 아이예요?”장소월은 서철용의 몸이 순간 경직되는 것을 포착했다.장소월이 조롱 섞인 얼굴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당신도 전연우와 똑같아요. 늘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죠. 그런 행동은 저분에게 상처만 줄 뿐이에요.”“나쁜 사람들.”“누가 또 너 화나게 했어?”전연우의 목소리가 병실 문밖에서 들려오자 장소월은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서철용은 서랍을 닫고 일어선 뒤 두 손을 의사 가운 호주머니에 넣고 자리를 떴다.전연우는 장소월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건넸다.“이제 시장에 있는 구형 핸드폰은 모두 도태됐어. 이건 회사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이야. 전생에서 쓰던 것과 비슷할 테니 쓰기
“책 읽다가 싫증 나면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게임도 넣어놨으니까 그걸로 스트레스 풀어.”“무슨 게임 좋아해? 나한테 알려주면...”그는 할아버지처럼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장소월은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놓았다.“전연우, 난 이런 거 필요 없어.”그는 늘 그래왔다. 1초 전엔 사랑한다고 고백해놓고 1초 뒤엔... 수시로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사람이다.“소월아, 지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언젠가는 꼭 받아들일 날이 올 거야. 난 시간 있으니까 기다릴 수 있어. 난 확실히 어떻게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지 잘 몰라. 네가 조금씩 나한테 가르쳐줘...”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장소월은 힘껏 그의 손을 내리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넌 정말 답이 없는 놈이구나.”전연우가 빙그레 웃어 보였다.“네 말이 맞아.”“정신병 환자!”“응.”전연우는 자신의 불안정한 정서를 통제하기 위해 연속 며칠 동안 감정을 다스리는 치료를 받았다. 그 목적은 오직 저번처럼 장소월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거였다.사실 전연우는 자신을 대하는 장소월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나, 언젠가는 그가 모두 소유하는 날이 올 것이다.전연우는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어야 돌아왔다. 그는 해외와의 시차를 고려해 시간 맞춰 몇 개의 회사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화상 회의에 사용된 통신 설비는 성세 그룹이 만든 것이었다. 전연우도 처음이라 익숙지 않아 평소엔 기성은이 늘 옆에서 도와주었다. 회의가 끝난 뒤, 외국 회사 임원들은 모두 전연우가 로그아웃하고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영상 속 대표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손으로 이마를 짚은 나른한 모습으로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장소월이 샤워를 마치고 머리카락 물기를 닦으며 욕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전연우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에서 마른 수건을 빼앗은 뒤 그녀의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기다리
장소월은 곧바로 그의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아버렸다. 화면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며 꺼졌다.전연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입고 있던 검은색 정장을 벗고 조금 전 장소월이 앉았던 의자에 기대에 앉았다.“이젠 전화번호도 실명제로 개설해야 해. 그래서 네가 원래 쓰던 번호는 없애버렸어. 앞으론 이 새 번호 써, 알았지?”그는 아무것도 아닌 듯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는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통보하는 듯했다. 분명 그녀의 번호이지만 그가 마음대로 결정해버렸다.장소월은 침대에 놓여 있던 베개를 잡아 그에게 집어 던졌다.“내 번호를 네가 뭔데 마음대로 바꿔? 전연우, 넌 미쳤어!”전연우는 피하지 않고 가슴팍에 베개를 맞았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그는 발밑에 떨어진 베개를 툭툭 털고는 원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네가 내 번호를 잊어버릴까 봐 나도 함께 바꿨어. 너랑 숫자 하나만 차이 나는 거로.”장소월은 전연우가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어 가방에서 낡은 핸드폰을 꺼내 원래 번호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역시...들려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뿐이었다.장소월은 분노에 차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 번호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아이디가 연동됐는지 알기나 해? 왜 내 물건을 네 마음대로 건드리는 건데!”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전연우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새 핸드폰에 네가 쓰던 모든 자료 옮겨놨어. 인터넷 서칭 기록, 메일 모두 정상적으로 사용 가능해. 예전 메일함에 있던 자료들도 그대로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장소월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분노는 잠재울 수가 없었다.그 번호는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번호 안엔 엄마의 생일 숫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핸드폰을 꽉 잡고 차갑게 그에게 말했다.“다음부턴 마음대로 내 물건에 손대지 마.”말을 마친 그녀는 방에서 나가 거실로 향했다.등 뒤에서 전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시간에 자지
장소월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서철용은 대체 무슨 낯으로 저렇게 마음 편히 그녀의 마음을 받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장소월은 돌아가 옆방에서 잠이 들었지만 깨어났을 땐 원래의 병실로 되돌아와 있었다.그녀는 너무 뜨거운 온도 때문에 잠에서 깬 것이었다.몇 번이나 밀어내려 했지만 전혀 밀리지가 않았다.오른손 무명지에 무언가 느껴지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전연우는 그녀가 자고 있을 때 또다시 그 반지를 반대편 손가락에 끼워놓았다.빼내려 힘을 써보니 이번엔 선명하게 느슨함이 느껴졌다.어두운 방 안, 장소월은 그의 가슴에서 들려오는 심장박동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가 정말 빼내려 하자 전연우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허리에 올려놓았다.남자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얼른 자. 내일 검사 결과가 나오면 집에 가자.”전연우는 그녀가 반지를 빼지 못하게 막고 싶었다.장소월은 며칠 전부터 전연우의 무명지에 줄곧 반지가 끼워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디자인은 아주 심플해 장소월에게 준 반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빼지 않았다.장소월은 더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돌연 그녀의 머릿속에 병원에 들어오던 그 날 기성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전 오랫동안 대표님 곁에서 일해왔습니다. 저는 확실히 온실 속에서만 자란 아가씨가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습니다.”“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대표님에게 백윤서 씨와 결혼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있는 그분이 하필이면 원수의 딸을 사랑하다니요.”“몇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표님은 아가씨에게 한 잘못들 모두 갚았다고 생각합니다.”“아가씨가 줄곧 강씨 가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전 제 목숨을 걸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강씨 노부인의 죽음은 대표님과 무관합니다. 강영수도 마찬가지고요...”“당시 대표님께선 확실히 강영수 씨가 인씨 가문을 이용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고자
전연우가 직접 그녀의 무명지에 끼워주었던 반지가 또다시 그녀로 인해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그의 베개 아래에 놓였다. 평소 그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경계하며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최근 성세 그룹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쳐야 했다.심지어 전연우까지도 매일 한 시간 전에 출근해 오후 다섯 시 반이 되어서야 퇴근해 병원에 오고 했다.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일을 처리하는 데에 사용했다. 병실에서의 그는 단 두 가지 모습이었다. 회의를 하고 있거나, 서류를 보고 있거나.장소월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바쁘면 회사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되지 않은가. 그녀가 병원에 입원해 검사를 받고 있는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가 보다.새벽 여섯 시 반, 아직 밝아오지 않은 어둑한 하늘이었다.기성은이 서류를 가지고 병원에 도착하자 전연우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피곤한 듯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누르며 걸어오던 그는 텅 빈 거실을 보고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어디 갔어?”기성은은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대표님,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전연우는 불안한 마음에 방으로 다시 돌아가 신분증 등 중요한 문서들이 들어있는 서랍을 열어보았다.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기성은은 대표님이 이토록 화난 걸 보니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했다.그는 몇 초 뒤에야 대표님이 찾는 사람이 장소월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설명하려던 순간 전연우는 옆에 있던 의자를 힘껏 걷어찼다.그때, 밖에서 걸어들어온 장소월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아직 날도 밝지 않았는데 왜 또 정신병 발작이야?”그녀는 안으로 들어와 검사 결과 보고서를 거실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장소월이 돌아오자 기성은은 말없이 두 사람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장소월은 주방에 들어가 물을 한 컵 따랐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끓어 올랐던 남자의 분노는 그녀의 등장과 함께 곧바로 사그라들었다.그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