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은란이 한 입 삼키고는 말했다.“맛있네. 잠시만, 내가 레시피 물어보고 올게.”“그럼 우리도 직접 해먹을 수 있잖아.”서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30분 뒤, 장소월은 깨어나 전연우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병이 나 성격이 더 까칠해졌다.베개가 날아가 전연우의 얼굴을 가격할 때 서재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서철용이 말했다.“이제 괜찮아진 것 같네.”장소월과 서철용의 관계는 친구라 할 수 없었다. 그를 대하는 장소월의 태도는 늘 그래왔듯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그의 옆에 임신한 여자가 있는 걸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전연우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베개를 맞았는지 모른다.서철용도 더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배은란과 함께 방을 나섰다.전연우가 뜨거운 물을 잔에 부었다.“약 먹고 나서 침대에서 내려와. 너 아직 몸 안 좋아. 작업 완성하고 싶으면 성세 그룹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 명 데려와서 시킬게.”“네 입으로 말한 거야. 약 먹으면 침대에서 내려갈 수 있다고.”“응. 약속해.”장소월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약을 잡아 입안에 넣고 물로 꿀꺽 삼켜버렸다.다음 그녀의 행동을 알고 이미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그는 그녀에게 따뜻한 양말을 신겨주었다.“집에 가만히 있었는데도 병이 나다니. 널 어떻게 하면 좋니.”그녀에게 한 겹 또 한 겹 옷을 입혔다.“이러다 더워 죽겠어.”“말 안 들으면 아무 데도 못 가.”장소월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폭군, 미친놈, 양아치.”“한 번 앓고 나니 입이 사나워졌네? 어떤 폭군이 너한테 이렇게 양말 신겨주고 옷 입혀준대? 양심도 없어.”또 한 겹의 베이지색 실모자가 그녀 머리 위에 씌워졌다. 며칠 동안 그녀의 머리카락은 꽤나 많이 자라있었다.조금 전 전연우는 이미 도우미에게 최대한 창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었다.남원 별장 마당, 서철용은 도우미에게 담요 하나를 부탁해 배은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
훔쳐 온 감정은 종래로 오래 가는 법이 없다.그 이치는 서철용 또한 잘 알고 있었다.배은란에게 있어 서철용은 좋은 사람이었던 적이 없다. 그 위치는 늘 서민용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서민용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크나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최면은 심신이 약해진 시간 일시적으로 효과를 본 것이다. 그녀가 결심하고 조작된 기억 속에서 걸어 나와 서민용이 존재했다는 흔적을 찾기만 한다면 바로 기억을 회복할 것이다.지금 그녀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지고 끊어져 있다. 어떤 기억은 문득문득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하지만 그녀는 서민용의 이름을 잊어버렸다.그날 다시 깨어난 이후로 배은란은 다시는 서민용이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기억을 되찾았을 때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서철용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자신이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배은란이 곁에 있기를 원하면서도 그녀와 접촉하기를 무서워했다. 자아 모순에 빠져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임신 불안증 때문에 그래.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어. 내가 최대한 프로젝트 시기를 뒤로 미뤄두고 집에서 같이 있어 줄게. 응?”서철용은 그녀의 손을 손바닥에 감싸고 입김을 호 불어 따뜻하게 해 주었다.“당신이 함께 있어 준다니까 너무 좋아. 하지만 나 때문에 당신 일 방해받는 거 싫어.”배은란이 진심 어린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서철용은 그녀의 손을 코트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괜찮아. 요즘 별로 안 바빠.”서철용도 이번 기회를 빌려 배은란을 데리고 나와 바깥 구경을 할 생각이었다. 이러다 바빠지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말이다.다른 사람의 집에서 밥을 먹는 건 배은란에게 있어 이번이 처음이었다.서철용과 전연우의 대화 주제는 모두 사업이라 장소월은 전혀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방금 약을 먹었던지라 온몸이 뜨거워지고 열이 나 머리가 살짝 어지러운 것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장소월이 고기 한 점을 집으
“고... 고마워요. 저도 함께 식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장소월은 3층 창가에 서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철용 옆에 있는 임신한 여자를 어딘가에서 본 듯 낯이 익었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서철용이 이렇게까지 꽁꽁 숨겼을 줄은 몰랐다.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니...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본 서철용의 그녀에 대한 감정은 분명 가짜가 아니었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서철용은 전연우와 연합해 그녀에게서 엄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박탈해버린 사람이다. 이제 오해 하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간단히 사과 한마디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한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은 전연우와 함께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살다 죽어야 하거늘.언제 가까이 다가왔는지 전연우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몸이 많이 회복된 것 같네. 이제 며칠 동안 나한테 빚졌던 거 갚아야 하지 않겠어?”“내가 빚졌다고? 전연우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난 너한테 빚진 거 없어. 오히려 네가 나한테 빚졌지!”얌전히 있다가 또 불같이 화를 내는 장소월이었다.전연우는 이미 오랫동안 그녀의 몸에 손도 대지 못했다. 대다수 깊은 밤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계속 이렇게 나가다간 정말 중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그녀가 침실에서 나가는 것을 본 전연우가 쫓아가려던 순간,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문밖에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전화를 귀에 가져간 채 서재로 들어갔다.“말해.”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상대방이 떨리는 목소리로 우물쭈물하며 말했다.“전... 전 대표님, 기사 내용은 이미 대표님 말씀대로 작성해 신문사에 보냈습니다. 한 시간 뒤면 신문에서 기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핸드폰 기성은한테 줘.”기성은이 전화를 받았다.“대표님.”“두 시간 뒤 기자회견 할 거라고 공표해.”“네.”전화를 끊은 뒤 전연우는 옷을 갈아입고 장소월의 화장대 밑 서랍에서 명품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찼다. 떠나기 전 그는 화실에서 바삐 작업을 하고
순식간에 모든 플래시가 전연우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당당히 회의장으로 걸어 들어가 중앙에 자리 잡고 앉았다. 송시아는 성세 그룹 부대표의 자격으로 전연우의 오른쪽에 앉았다.전연우의 등장은 회의장 전체를 흥분으로 들끓게 만들었다.기자들마다 오늘 아침 갓 인쇄된 신문지를 들고 있었다. 전연우가 앉자마자 기자들이 물었다.“대표님, 오늘 기사 내용 사실인가요? 정말 인하 그룹과의 혼사를 깨신 건가요? 만약 사실이라면 이제 인하 그룹은 협력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전연우가 의연히 대답했다.“저와 인시윤 씨의 이혼은 인하 그룹과의 협력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두 회사의 사업 영역이 확연히 다른 만큼 저희의 협력은 계속될 겁니다.”“그렇다면 대표님과 인시윤 씨 사이 감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사실인 건가요?”기성은이 기자의 말을 끊었다.“대표님의 사생활에 관한 일은 묻지 말아 주세요. 이번 기자회견에선 회사 운영에 관한 질문만 받겠습니다.”기자가 핸드폰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인터넷엔 이런 루머도 떠돌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인시윤 씨와 이혼하시는 이유는 4년 동안 숨겨둔 정인 때문이라고요. 그분은 4년 전 프랑스에서 유학하다가 몇 개월 전에 돌아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얼마 전 그 여자분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여자분과 아이가 생겼기 때문에 이혼 발표하시는 거 아닌가요?”송시아가 가소롭다는 듯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전연우가 장소월을 언제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 얼굴을 내밀지 못하던 전생처럼 이번 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장소월... 인생을 두 번이나 살았음에도 넌 발전이라는 게 없구나. 전연우를 제외하면 너한테 남는 게 대체 뭐야?’그 말에 밑에 앉아있던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카메라맨들은 서울의 지배자의 반응을 단 하나라도 놓칠세라 그에게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었다. 이런 기자회견은
전연우가 여기자 목에 걸려있는 기자증을 돌려보았다. 위엔 인턴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언제부터 엔조이 미디어에서 인턴 기자를 성세 그룹 기자회견장에 보냈죠?”하지만 상대방은 전연우가 전혀 무섭지 않은 듯 그의 손에서 기자증을 휙 잡아당겼다.“전 대표님, 인턴 기자는 참석할 자격 없나요? 아니면 제가 한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 절 협박하는 건가요?”그때 기자회견 총괄 매니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신입 기자라 잘 몰라서 이러는 겁니다. 제가 얼른 내보내겠습니다.”경호원이 나서려 하자 전연우가 손을 들어서 막아 세웠다.“난 성세 그룹 모든 임원이 한 일에 착오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해요.”감히 허락도 없이 성세 그룹에 들어온 기자는 그녀가 처음일 것이다.“내가 말하면 보도할 거예요?”미모가 꽤 수려한 기자가 아래턱을 치켜들고 말했다.“못할 것 없죠. 기자란 원래 듣고 본 일을 가감 없이 사실대로 보도해 사람들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람이잖아요.”기성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고했지만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연우와 맞섰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말려 올라갔다.“그 사람과 나 사이에 아기 있다는 거 맞아요. 사생활에 관한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그 사람의 생활에 영향 주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무대 위에 앉아있는 송시아의 얼굴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녀는 질투가 가득 일렁이는 눈빛으로 쏘아보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그가 인정하고 말았다!“두 집안의 혼인은 그저 각자의 이익만 위해서일 뿐 어떠한 감정도 개입되지 않았으니, 이혼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어요. 지금의 성세 그룹은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으니...”전연우가 바쁜 일이 있는 듯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이혼 위자료로 저희 성세 그룹 100분 1의 주식을 인하 그룹에게 제공하겠습니다.”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100분의 1이라고?성세 그룹의 주
“언제부터 내 일에 그렇게 간섭했어?”전연우가 차갑게 쏘아붙였다.송시아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툭툭 튀어 올랐다. 하얗게 덧칠한 파운데이션 위 새빨갛게 바른 립스틱... 그녀가 질투가 가득 일렁이는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기성은이 다가와 말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전연우가 시선을 옮겨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이 시간이면 그녀와 함께 저녁밥을 먹어야 한다.전연우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이어지는 기자회견은 인하 그룹 대표가 직접 나와 할 겁니다. 제 기자회견은 여기까지입니다.”그중 남자 기자 한 명이 물었다.“전 대표님, 아직 기자회견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시려는 건가요?”전연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미래의 제 와이프가 몸이 좋지 않아서요. 돌아가 함께 있어 줘야 해요.”전연우는 다른 기자들의 질문을 무시해버린 채 곧바로 회의장을 나섰다.전연우가 모습을 드러내서부터 지금까지 고작 십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거의 모든 질문 시간을 아까 그 신입 기자가 낭비해 버렸다.기자들은 가슴에 울분이 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다들 자리에 앉아 투덜거렸다.“왜 하필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는. 인터뷰할 수 있는 이런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도 모자라 심기를 건드리기까지 했어요.”“대체 어떤 학교 졸업생이길래 저렇게 상황파악을 못 하는 걸까요. 우리 기자들 체면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유분수지.”“그러니까요! 다음 인터뷰엔 절대 들어오지 못할 거예요.”“정말 짜증 나 미치겠어요. 엔조이 미디어는 대체 왜 저런 쓰레기 같은 사람을 받은 거예요?”전연우가 나가고 몇 분 뒤,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정아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는 어느새 수많은 백발이 자라나 있었다. 그녀가 남색 정장을 입고 여장부의 포스를 뽐내며 들어오고 있었다.송시아는 곧바로 전연우를 따라나섰다.문을 닫지 않은 회의실 안에서 인정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전연우 씨와 우리 시윤이의 이혼은 이미 사전에
송시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아이라인이 번져 정교하게 한 메이크업이 흉측하게 망가졌다.“... 한 시간 뒤 돈이 통장에 들어갈 거야.”“네. 부대표님.”송시아는 상대방의 손에서 USB를 받은 뒤 회사를 나섰다.회사 문 앞, 소민아가 떠나가는 전연우의 차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대표님, 천천히 가세요. 몸조심...”기성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싱겁기는!”소민아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헤헤 웃었다.“비서님이 가르쳐 주신 거잖아요.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직접 체험하라고요.”“저도 대표님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거예요. 어느 날 저에게도 승진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잖아요. 헤헤...”하지만 이어지는 기성은의 말이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었다.“왜요. 내 자리라도 꿰차고 싶어요?”“기 비서님, 전 그런 뜻이 아닙니다.”기성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근무 시간에 업무와 상관없는 말 하면 6만 원 깎을 거예요.”“뭐라고요?”소민아는 그 어이없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기성은이 멀찌감치 걸어간 뒤였다.“기 비서님, 잠시만요...”“선생님...”“사수님...”“남신님...”“제가 잘못했어요. 월급 깎으시면 안 돼요...”기성은의 그 말은 부유하지 않은 집안이 소민아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성세 그룹의 기자회견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성세 그룹 대표이사 전연우와 인하 그룹 아가씨 인시윤의 이혼 사실은 빠르게 서울시 모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이번 일엔 성세 그룹의 관여가 동반했다. 기자가 보도한 내용 모두 성세 그룹의 검사를 받고 진행되었기에 성세 그룹의 주식엔 조금의 영향도 가지 않았다.두 사람의 이혼 사실이 더 큰 화제가 되기 전에, 성세 그룹에선 연이어 유명 배우 소아린이 거물 스폰서와 즐기다가 하반신이 찢겨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터뜨렸다.신문에 소아린의 진단서까지 실려있었다. 하지만 사람들
전연우는 강씨 저택을 손에 넣고도 흔쾌히 내놓았다. 현재 전연우에게 별로 아깝지도 않은 것이었다.지금의 그는 돈, 지위, 명예 모든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전연우를 만족시키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강씨 저택... 그는 필요 없다. 심지어 그녀에게 남원 별장보다 더 좋은 것을 줄 수도 있다.그녀가 눈앞에 있어야만 마음속에 안정이 깃든다. 그래야만 마음속 텅 비었던 곳이 꽉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화실 안, 촬영사가 별이의 첫돌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얼마 전에 찍으려던 사진을 미루다 미루다 오늘에야 찍게 된 것이다.별이는 꽃 속에 파묻혀 선녀 원피스를 입고 날개를 단 채 선녀봉을 들고 촬영사 뒤에 서 있는 장소월을 향해 배시시 웃으며 앉아있었다.장소월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노란색 오리 장난감을 들고 아이의 웃음을 유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 가닥의 시선이 그녀의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고 말했다.“걘 알 필요 없어.”간단히 한 마디 말한 뒤 전연우는 전화를 끊었다....옆에 있던 은경애가 허벅지를 내리치며 말했다.“아이고, 크면 분명 여자아이들한테 인기 폭발일 거예요. 저 잘생긴 것 좀 봐요.”촬영사 보조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맞아요. 사모님처럼 예쁘게 잘 자랄 것 같아요.”장소월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닮았어도 그저 우연일 뿐이다.마지막 사진만 남겨놓고 촬영이 거의 끝나가던 때 촬영사가 말했다.“사모님, 아이와 함께 찍지 않으실래요?”보조가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사모님, 도련님을 무릎에 앉히고 찍으면 분명 잘 나올 거예요.”장소월이 동의하기도 전에 은경애는 이미 의자를 가져왔다.장소월은 더는 거절하지 않고 별이를 안고 의자에 앉았다.촬영사가 사진을 찍으려던 그때, 전연우가 성큼 걸어 들어왔다. 심지어 입고 있던 잠옷을 벗어 던지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채 말이다.“대표님.”전연우는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