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481 - 챕터 490

1149 챕터

제481화

다음 날 아침.신문의 모 구석 모퉁이에 황준엽이 감옥을 탈출하려 독을 먹었다가 그 양을 조절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다.시끌벅적 붐비는 거리에선 회사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들의 손엔 모두 같은 신문이 쥐어져 있었지만 그 기사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오늘은 금요일이다. 장소월은 평소보다 비교적 늦게 일어나 밖에 나가지 않았다.도우미는 편지함에서 오늘 아침 신문을 가져와 강영수의 습관대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교복을 입고 오렌지 주스를 들고 주방에서 나오던 장소월이 신문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때, 도우미가 말했다.“도련님.”강영수가 소매 단추를 잠그며 위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길고 곧게 뻗은 모습이 늘 그렇듯 매력적이었다.“학교에 돌아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내가 좋은 과외선생님을 붙여줄게. 집에서 공부해도 똑같아.”“괜찮아. 집에만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황준엽의 사망 기사를 읽은 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음의 동요 또한 없었다. 그저 그의 죽음이 조금 의아할 뿐이었다. 그는 예전 호텔에서 강영수에게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지 않았던가.오늘 신문을 통해 그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강영수가 사람을 시켜 손을 쓴 건가?아니, 그는 전연우가 아니다. 장소월은 곧바로 생각을 떨치려 손을 휘저었다.그녀는 강영수에게 다가가 그의 넥타이핀을 정리해 주었다. 다이아몬드 테두리에 중심에 박혀있는 붉은색 보석, 그리고 가슴팍까지 늘어뜨린 순금 체인까지... 모두 남자의 고귀함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강영수가 장소월의 이상함을 감지하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그의 시선이 탁자 위 신문에 닿자 낯빛이 어두워졌다.“아니야. 오늘 학교에 나가자마자 시험이 있어서 걱정하고 있었을 뿐이야. 성적이 잘 안 나올까 봐 좀 무섭네.”강영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너무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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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2화

소현아가 손에 딸기 바구니를 들고 연속 장소월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반가움에 너무 빠르게 달렸는지 앞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장소월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녀를 기다려주었다.“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까부터 계속 기다렸단 말이야. 우리 집에서 심은 딸기를 먹어봐.”장소월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딸기 하나가 입안으로 들어왔다.“고마워. 맛있네.”소현아는 장소월에게 달라붙어 끊임없이 그녀의 귓가에서 쫑알거렸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만 하면 곧바로 그녀를 찾아왔다. 소현아는 장소월과 만나는 것 외엔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걸까?장소월은 앞만 보고 길을 걸어갈 뿐, 소현아와 대화를 나눈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녀는 소현아가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위험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연우는 이미 소현아로 그녀를 협박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녀는 감히 그 어떤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장소월은 아무도 자신의 약점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강영수는 그녀가 시야 속에서 사라진 뒤에야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저 여자는 어느 집 아가씨야?”진봉이 대답했다.“소씨 가문입니다.”“어느 소씨 가문?”진봉이 말했다.“저도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요, 노부인께서 목축업 쪽 전문가를 찾아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공교롭게도 소월 아가씨의 옆에 계신 친구분의 부친이셨어요.”강영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화가 났음에도 내색하지 못하고 애써 참아내는 소월이의 모습은 처음 봐. 저 친구는 내가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네.”진봉이 말했다.“대표님, 소월 아가씨 친구분의 뒷조사를 해볼까요? 아가씨한테 접근한 목적이 불순한 것일까 봐 걱정됩니다.”“그럴 필요 없어. 소월이도 그 정도 분별은 할 수 있을 거야.”만약 장소월이 정말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아까처럼 화를 삼키진 않았을 것이다.또한 요즘 연속 며칠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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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3화

남천 그룹.대표 사무실에 들어온 기성은은 전연우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용히 옆쪽으로 물러섰다.남자의 길고 가는 눈엔 냉정함이 깊이 배어있었고 온몸에선 얼어붙을 듯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기성은은 핸드폰 너머 백윤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녀가 당황스러움과 무서움에 울부짖었지만 전연우는 그저 차갑고도 퉁명스럽게 쏘아붙일 뿐이었다.“넌 알 필요 없어.”“연우 오빠, 오빤 변했어요. 난 점점 더 오빠가 무서워져요.”이어 핸드폰에선 통화 연결음만 들려왔다.전연우가 핸드폰을 놓고 몸을 돌렸다.“무슨 일이야?”기성은이 보고했다.“강씨 집안에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전연우는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앉아 손깍지를 껴 무릎에 올려놓고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신경 쓸 필요 없어.”“강영수가 정말 뭘 알아낸다면 대표님께서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전연우의 입꼬리가 은은히 올라갔다. 그의 눈동자에선 의미를 알 수 없는 광이 뿜어져 나왔다.“난 도리어 그 자식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걸. 이번 일은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나가봐.”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학교.함께 식당에서 걸어 나오던 장소월과 소현아는 눈물범벅이 된 채 위층에서 달려내려오는 백윤서와 마주쳤다.그녀는 장소월을 힐끗 보고는 이내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장소월의 눈에 백윤서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들어왔다.전연우와 통화를 한 건가?전연우를 제외하고는 백윤서를 울릴 사람은 없다.소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윤서 왜 저러는 거야?”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월아, 우유 마셔.”소현아가 호주머니에서 우유 두 병을 꺼내 장소월의 손에 쥐여주었다. 장소월은 도통 거절할 수가 없었다. 소현아는 아예 장소월의 간식 담당이라도 된 것처럼 서랍에 간식거리를 잔뜩 챙겨두었다. 모두 장소월이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장소월이 수업하려 교실에 들어가려고 한 순간 복도 끝 누군가가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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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4화

장소월이 대답했다.“솔직히 해외에 나가는 건 강용한테 나쁘지 않아.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나도 왈가왈부할 수 없어. 강용이 나한테 해준 게 많다는 거 알아. 반드시 천천히 보답해 줄 거야. 그리고 친구로서 나도 강용이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 나가길 바라.”“강영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난 너희들과 어울려선 안 돼. 강용에 관해 이야기하면 더더욱 안 되고. 영수는 이미 날 위해 충분히 양보했어. 더 이상 영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강용이 떠난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난 너희들에게 분명 다시 만날 날이 올 거라는 걸 믿어.”“또한 강용도 그곳에서 잘 지낼 거야.”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생각과 입장이 있다. 누군가는 강용을 쫓아낸 강영수를 지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강영수도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가족과 친구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일 뿐이다.모든 인연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다.오부연이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 강영수의 옆엔 그녀 한 사람밖에 없다고 말이다.강용과 심유가 해외로 떠난 그날, 강일주는 분노하며 강영수의 따귀를 때렸다.그 후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렸다.다른 누구도 아닌 강영수의 아버지가 말이다...어쩌면 강용 모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두 사람에게 더 강한 가족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강일주는 강영수 역시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강영수는 아버지의 아들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강한 그룹도 짊어져야 한다.다른 사람의 눈엔 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차마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는 강영수이다.하지만 그들은 강영수 역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강영수도 사람을 필요로 한다.그녀는 여전히 그날 밤 자신의 품속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였던 강영수를 기억하고 있다. 당시 조명은 꺼져있었지만 그녀는 강영수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충분히 상상해 낼 수 있었다.“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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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5화

그때 방시연이 장소월에게 말했다.“그날 강용과 설채윤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강용이 고열 때문에 찬물로 샤워를 했을 뿐이야. 넌 두 사람이 무언갈 했다고 오해했겠지.”허철도 말을 보탰다.“맞아. 강용은 그 밤중에 너한테 쫓겨나 우리한테 연락했어. 그래서 우리가 강용을 병원에 데려다줬었어.”확실히 장소월에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고도 그녀는 너무나도 평온했다.설채윤이 주먹을 꽉 말아쥐고 말했다.“맞아! 하지만 상관없어. 나한테 이별을 말하지 않았으니 아직 우린 연인이야.”“장소월, 너도 너무 방심하진 마. 너와 강영수도 오래가진 못할 테니까.”그녀가 말을 마친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자리를 떴다.지극히도 침착한 장소월의 모습을 본 방시연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넌 하나도 화가 안 나는 것 같아.”장소월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와 눈을 맞추었다.“내가 왜 화내야 하는데?”방시연은 피식 웃기만 할 뿐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다들 돌아가고 장소월 한 사람만 남았다. 그녀도 교실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뗐을 때, 하얀색 셔츠를 입고 이어폰을 목에 건 매끈한 몸매의 소년이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허이준이 목을 긁적였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었어.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야.”안으로 돌아간 뒤 장소월은 한결의 부름으로 교무실에 갔다. 한결이 성적표를 꺼내며 말했다.“이 성적에 대해 나한테 설명할 말 있어?”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없어요.”“선생님도 너의 사생활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넌 어쨌든 내 학생이니까 조언 한마디 할게. 감정은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야. 선생님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아주 작은 시험이라도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이야. 너한테 한 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엔 반을 옮기지 마. 대신 앞으론 공부에 집중해야 해.”“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백윤서에게 물어봐. 윤서가 네 언니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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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6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씨 저택에 도착하자 차가 멈춰 섰다.강영수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 그는 너무나도 냉담했다.장소월은 대체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도 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안에 들어가자 도우미가 달려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 소월 아가씨, 식사하세요.”강영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대체 왜 화가 난 걸까.도우미가 장소월의 책가방을 받으며 물었다.“아가씨, 도련님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음식 좀 준비해 주세요. 제가 영수한테 갖고 올라갈게요.”“네.”장소월이 밥과 반찬을 들고 강영수의 서재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어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풍적인 인테리어의 서재는 농후한 담배 연기로 뒤덮였고 그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들고 창가에 서 있었다.강영수는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장소월이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회사 일로 바쁘면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나갈게. 밥은 꼭 챙겨 먹어.”“거기 서.”그의 목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심장이 떨려왔다.“할 말 있어?”그녀가 깍지를 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말했다.강영수가 들고 있던 담배를 버린 뒤 몸을 돌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나 네 아버지가 입양한 아들에 대해 뒷조사를 좀 해봤어.”전연우?고요했던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란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그녀의 침묵에 강영수의 몸에서 풍기던 냉기는 그 차가움을 더해갔다.“그 사람에 대해... 나한테 할 얘기 없어?”그가 다가오자 장소월은 자신을 억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의 차가운 기운이 장소월을 사로잡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강영수는 그녀의 눈에서 무언갈 알아내려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극히 평온했고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장소월이 물었다.“뭘 알아냈는데?”강영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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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7화

도우미는 감히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들고 급히 방에서 나갔다.문 앞에서 마침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을 마주쳤다.“아가씨.”장소월이 음식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아무것도 안 먹었네요.”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들어가서 도련님을 챙겨주세요.”장소월이 굳게 닫혀있는 서재 문을 보며 말했다.“음식을 다시 만들어 올려다 주세요.”“네.”장소월은 약상자를 들고 복도를 걸어와 노크하려고 서재 문 앞에 멈춰 섰다. 머리 위 부드러운 노란색 조명이 그녀의 백옥같이 새하얀 얼굴에 비추니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 흩뿌려진 깨진 유리 조각을 본 순간 장소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발을 디딜 곳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강영수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장소월은 그의 손을 잡고 셔츠 단추를 풀어주었다.“의사 선생님의 말씀 잊었어? 넌 담배를 피우면 안 돼.”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도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상처엔 이미 딱지가 앉아 예전보다 많이 회복되었다.“여긴 왜 왔어.”“혼자 화내다가 몸을 망가뜨릴까 봐 걱정돼서 왔어.”목소리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얌전히 앉아 그녀가 약을 발라주기를 기다렸다.장소월은 방 안 공기 때문에 숨이 막혀 면봉을 내려놓았다.“내가 가서 창문을 열 테니까 넌 옷을 벗어. 내가 약 발라 줄게.”그녀가 몸을 돌리자 강영수는 일어서 서재를 나갔다.창문은 도우미가 열면 되니 장소월은 곧바로 그를 따라나서 방 안에 들어갔다.침실에선 은은한 비누 냄새가 나고 있어 서재보단 훨씬 더 향긋했다.그녀는 이곳에 머물렀지만 그의 방에 들어간 적은 극히 드물었다.그녀가 강영수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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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8화

창문 너머로 햇살이 마지막 남은 여광을 내뿜어 두 사람을 비추었다. 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강영수의 잠옷 단추를 잠가주었다.“너 졸업하면 우리 약혼 발표하자.”강영수는 장소월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잠시 고민한 뒤에야 대답했다.“그래.”그녀가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다음 날...서울시 모든 매체가 그들의 약혼 기사를 실었다.「강한 그룹 대표와 장씨 집안 아가씨 약혼 임박.」「측근 제보! 6월 강한 그룹 대표와 장씨 집안 아가씨 약혼!」「경축! 강한 그룹 대표 결혼 임박!」강영수가 장소월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서, 장소월은 신문을 들고 읽고 있었다. 큼지막한 제목이 신문 정중앙에 실려있어 주목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장소월은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다리에 올려놓고 있었다. 파란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귓가에 잔머리를 포슬포슬 내려놓은 그녀가 옆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영수야,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외부에 발표하는 일은 나랑 상의 후에 해도 됐잖아.”강영수의 검은 두 눈동자에 부드러운 자상함이 담겨 있었다. 늘 보던 눈빛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낯선 느낌이 드는 장소월이었다.“2개월밖에 남지 않았어.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조금 빨리 발표한다고 문제 될 것 없잖아. 걱정하지 마. 아무도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오늘 이후로 장소월은 강한 그룹 대표의 약혼녀라는 이름을 더 얻게 된다.“넌... 기쁘지 않아?”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얼굴을 감싸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 눈빛엔 고집스러운 소유욕이 가득 담겨 있었다.장소월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강영수가 빙그레 웃었다.“그럼 됐어.”학교에 도착한 뒤, 강영수는 평소처럼 그녀에게 키스했고, 장소월은 께름칙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전연우에 대해 조사한 이후부터 그녀를 대하는 강영수의 태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 가기라도 할까 봐 그녀에 대한 소유욕이 점점 더 강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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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9화

“수업을 안 한다고? 그럼 수업 시간에 뭘 한다는 거야?”진봉이 대답했다.“학교 안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소월 아가씨는 다음 달에 진행될 서울 미술 아카데미 특별생 자격 심사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거기에서 1등을 한다면 역시 서울대에 직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미술 특별생 지원자는 300만 명에 달하는 반면, 합격 인원은 2,3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1등을 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합격하든 안 하든, 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데.”“출발해. 회사로 가자.”교실로 향하던 장소월은 복도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여 소곤대는 목소리를 들었다.“장소월은 정말 운도 좋아. 강영수와 끝난 줄 알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강한 그룹의 미래 사모님이 되다니. 진짜 부러워.”“강영수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잖아.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약혼을 성사시킨 걸까.”“우리한테 그런 행운이 오지 않는 건 다 장소월처럼 예쁘지 않기 때문 아니겠어?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예전 장소월의 엄마는 서울시 가장 아름다운 미녀였다고.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그 여자와 춤을 춘 적도 있었대.”“헉... 설마!”“정말이야. 그 여자가 죽었을 때, 재벌가 얼마나 많은 사모님들이 파티를 했는지 셀 수조차 없었대. 당시 그 여자는 서울시에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었어. 권세를 쥔 사람이든, 부를 이룬 사람이든, 부인이 있든 없든, 모든 남자를 단 한마디 말로 침대까지 꼬드겨 올라갔대.”“와. 장소월이 엄마를 닮은 거구나! 태어날 때부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였어.”“여우라고 해도 장소월은 그럴 만한 조건은 갖추고 있잖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얼굴도 못생겼으면서 입만 놀려대. 내가 보기엔..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고 차라리 술집에서 몸이나 파는 게 좋을 것 같아.”단모연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함부로 루머를 퍼뜨리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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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0화

“그래.”허이준이 끼어들며 말했다.“이 필기는 소월이한테 필요 없어. 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문제를 많이 풀고 모르는 문제에 부딪혔을 땐 물어봐.”“알았어.”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장소월은 사실 일찌감치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놓았다.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단 한 갈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녀가 하는 행동은 모두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첫 수업이 끝나자 장소월은 곧바로 교실을 나서 자신의 공간으로 향했다.한 달의 시간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약혼?말도 안 되는 소리!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중간에 실려있던 한 쌍의 커플 사진도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김남주는?”기성은이 말했다.“대표님의 말씀대로 처리했습니다. 기사는 아마 오후쯤 나올 겁니다.”“하지만 제가 듣기로 김남주는 큰돈을 들여 해커를 고용해 예전 저희들의 전화번호를 역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뒤에서 자신을 도운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전연우가 검은 테두리의 안경을 벗고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조사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전연우는 워낙 철두철미한 사람이라 사람의 마음 또한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 본다. 마침 잘 되었다. 이번 기회에 온실 속의 화초에게 바깥 세계는 생각처럼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줄 생각이다. 밖에 나가 둘러볼 순 있지만 반드시 그가 허락한 범위를 벗어나선 안 된다.장씨 저택을 떠나 다른 뒷배에 기댄다고 하여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갈 수는 없다.때로는 강하게 교훈을 안겨줘야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하는 법이다.“해외에서 있었던 김남주의 일을 조사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기성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냈습니다. 예전 미국에서 일한 적 있는 조폭들한테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반년 전 김남주는 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왔었다고 합니다.”사진을 살펴보던 전연우의 입가에 의미 미소가 지어졌다.“보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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