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씨 저택에 도착하자 차가 멈춰 섰다.강영수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 그는 너무나도 냉담했다.장소월은 대체 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녀도 차에서 내려 그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안에 들어가자 도우미가 달려와 그들을 맞이했다.“도련님, 소월 아가씨, 식사하세요.”강영수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위층으로 올라갔다.대체 왜 화가 난 걸까.도우미가 장소월의 책가방을 받으며 물었다.“아가씨, 도련님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음식 좀 준비해 주세요. 제가 영수한테 갖고 올라갈게요.”“네.”장소월이 밥과 반찬을 들고 강영수의 서재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어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풍적인 인테리어의 서재는 농후한 담배 연기로 뒤덮였고 그는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들고 창가에 서 있었다.강영수는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장소월이 음식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회사 일로 바쁘면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나갈게. 밥은 꼭 챙겨 먹어.”“거기 서.”그의 목소리를 들은 장소월은 심장이 떨려왔다.“할 말 있어?”그녀가 깍지를 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말했다.강영수가 들고 있던 담배를 버린 뒤 몸을 돌려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나 네 아버지가 입양한 아들에 대해 뒷조사를 좀 해봤어.”전연우?고요했던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란을 일으키는 순간이었다.그녀의 침묵에 강영수의 몸에서 풍기던 냉기는 그 차가움을 더해갔다.“그 사람에 대해... 나한테 할 얘기 없어?”그가 다가오자 장소월은 자신을 억누르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의 차가운 기운이 장소월을 사로잡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강영수는 그녀의 눈에서 무언갈 알아내려 유심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극히 평온했고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장소월이 물었다.“뭘 알아냈는데?”강영수는
도우미는 감히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들고 급히 방에서 나갔다.문 앞에서 마침 걸어오고 있는 장소월을 마주쳤다.“아가씨.”장소월이 음식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아무것도 안 먹었네요.”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들어가서 도련님을 챙겨주세요.”장소월이 굳게 닫혀있는 서재 문을 보며 말했다.“음식을 다시 만들어 올려다 주세요.”“네.”장소월은 약상자를 들고 복도를 걸어와 노크하려고 서재 문 앞에 멈춰 섰다. 머리 위 부드러운 노란색 조명이 그녀의 백옥같이 새하얀 얼굴에 비추니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 흩뿌려진 깨진 유리 조각을 본 순간 장소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발을 디딜 곳조차 찾기 힘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강영수가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장소월은 그의 손을 잡고 셔츠 단추를 풀어주었다.“의사 선생님의 말씀 잊었어? 넌 담배를 피우면 안 돼.”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도 남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상처엔 이미 딱지가 앉아 예전보다 많이 회복되었다.“여긴 왜 왔어.”“혼자 화내다가 몸을 망가뜨릴까 봐 걱정돼서 왔어.”목소리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지만, 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얌전히 앉아 그녀가 약을 발라주기를 기다렸다.장소월은 방 안 공기 때문에 숨이 막혀 면봉을 내려놓았다.“내가 가서 창문을 열 테니까 넌 옷을 벗어. 내가 약 발라 줄게.”그녀가 몸을 돌리자 강영수는 일어서 서재를 나갔다.창문은 도우미가 열면 되니 장소월은 곧바로 그를 따라나서 방 안에 들어갔다.침실에선 은은한 비누 냄새가 나고 있어 서재보단 훨씬 더 향긋했다.그녀는 이곳에 머물렀지만 그의 방에 들어간 적은 극히 드물었다.그녀가 강영수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마지막 남은 여광을 내뿜어 두 사람을 비추었다. 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강영수의 잠옷 단추를 잠가주었다.“너 졸업하면 우리 약혼 발표하자.”강영수는 장소월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잠시 고민한 뒤에야 대답했다.“그래.”그녀가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다음 날...서울시 모든 매체가 그들의 약혼 기사를 실었다.「강한 그룹 대표와 장씨 집안 아가씨 약혼 임박.」「측근 제보! 6월 강한 그룹 대표와 장씨 집안 아가씨 약혼!」「경축! 강한 그룹 대표 결혼 임박!」강영수가 장소월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서, 장소월은 신문을 들고 읽고 있었다. 큼지막한 제목이 신문 정중앙에 실려있어 주목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장소월은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다리에 올려놓고 있었다. 파란 머리끈으로 머리카락을 묶고 귓가에 잔머리를 포슬포슬 내려놓은 그녀가 옆에 앉아있는 남자에게 말했다.“영수야,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외부에 발표하는 일은 나랑 상의 후에 해도 됐잖아.”강영수의 검은 두 눈동자에 부드러운 자상함이 담겨 있었다. 늘 보던 눈빛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낯선 느낌이 드는 장소월이었다.“2개월밖에 남지 않았어. 어차피 알게 될 일인데 조금 빨리 발표한다고 문제 될 것 없잖아. 걱정하지 마. 아무도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오늘 이후로 장소월은 강한 그룹 대표의 약혼녀라는 이름을 더 얻게 된다.“넌... 기쁘지 않아?”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얼굴을 감싸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 눈빛엔 고집스러운 소유욕이 가득 담겨 있었다.장소월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니.”강영수가 빙그레 웃었다.“그럼 됐어.”학교에 도착한 뒤, 강영수는 평소처럼 그녀에게 키스했고, 장소월은 께름칙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전연우에 대해 조사한 이후부터 그녀를 대하는 강영수의 태도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자신의 여자를 빼앗아 가기라도 할까 봐 그녀에 대한 소유욕이 점점 더 강렬해
“수업을 안 한다고? 그럼 수업 시간에 뭘 한다는 거야?”진봉이 대답했다.“학교 안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론 소월 아가씨는 다음 달에 진행될 서울 미술 아카데미 특별생 자격 심사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거기에서 1등을 한다면 역시 서울대에 직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미술 특별생 지원자는 300만 명에 달하는 반면, 합격 인원은 2,3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1등을 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합격하든 안 하든, 그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데.”“출발해. 회사로 가자.”교실로 향하던 장소월은 복도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모여 소곤대는 목소리를 들었다.“장소월은 정말 운도 좋아. 강영수와 끝난 줄 알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강한 그룹의 미래 사모님이 되다니. 진짜 부러워.”“강영수한테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 때문에 오랫동안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잖아.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약혼을 성사시킨 걸까.”“우리한테 그런 행운이 오지 않는 건 다 장소월처럼 예쁘지 않기 때문 아니겠어? 우리 엄마가 그러셨어, 예전 장소월의 엄마는 서울시 가장 아름다운 미녀였다고. 우리 아버지가 예전에 그 여자와 춤을 춘 적도 있었대.”“헉... 설마!”“정말이야. 그 여자가 죽었을 때, 재벌가 얼마나 많은 사모님들이 파티를 했는지 셀 수조차 없었대. 당시 그 여자는 서울시에서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었어. 권세를 쥔 사람이든, 부를 이룬 사람이든, 부인이 있든 없든, 모든 남자를 단 한마디 말로 침대까지 꼬드겨 올라갔대.”“와. 장소월이 엄마를 닮은 거구나! 태어날 때부터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였어.”“여우라고 해도 장소월은 그럴 만한 조건은 갖추고 있잖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얼굴도 못생겼으면서 입만 놀려대. 내가 보기엔..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고 차라리 술집에서 몸이나 파는 게 좋을 것 같아.”단모연이 어딘가에서 나타나 함부로 루머를 퍼뜨리는 세
“그래.”허이준이 끼어들며 말했다.“이 필기는 소월이한테 필요 없어. 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문제를 많이 풀고 모르는 문제에 부딪혔을 땐 물어봐.”“알았어.”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장소월은 사실 일찌감치 자신만의 계획을 세워놓았다.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단 한 갈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그녀가 하는 행동은 모두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첫 수업이 끝나자 장소월은 곧바로 교실을 나서 자신의 공간으로 향했다.한 달의 시간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약혼?말도 안 되는 소리!전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중간에 실려있던 한 쌍의 커플 사진도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김남주는?”기성은이 말했다.“대표님의 말씀대로 처리했습니다. 기사는 아마 오후쯤 나올 겁니다.”“하지만 제가 듣기로 김남주는 큰돈을 들여 해커를 고용해 예전 저희들의 전화번호를 역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뒤에서 자신을 도운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전연우가 검은 테두리의 안경을 벗고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조사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전연우는 워낙 철두철미한 사람이라 사람의 마음 또한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어 본다. 마침 잘 되었다. 이번 기회에 온실 속의 화초에게 바깥 세계는 생각처럼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줄 생각이다. 밖에 나가 둘러볼 순 있지만 반드시 그가 허락한 범위를 벗어나선 안 된다.장씨 저택을 떠나 다른 뒷배에 기댄다고 하여 날개를 달고 멀리 날아갈 수는 없다.때로는 강하게 교훈을 안겨줘야 머릿속에 단단히 기억하는 법이다.“해외에서 있었던 김남주의 일을 조사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기성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냈습니다. 예전 미국에서 일한 적 있는 조폭들한테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반년 전 김남주는 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누군가와 함께 왔었다고 합니다.”사진을 살펴보던 전연우의 입가에 의미 미소가 지어졌다.“보아하
김남주의 방송사 인터뷰는 30분도 되지 않아 서울 전체를 들끓게 만들었다.기자가 물었다.“그렇다면 남주 씨와 강한 그룹 대표님은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건가요? 그럼 이후엔 왜 헤어졌나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어요?”“확실히 이유가 있었어요...”TV 속 김남주의 얼굴은 너무나도 초췌했다. 예전에 짙은 화장을 한 채 활개 치며 다니던 모습과는 정반대되는 남자에게 버려진 한없이 나약한 여자로 대중들 앞에 섰다.회사 직원이 곧바로 이 일을 강영수에게 보고했다.시청자들이 그녀의 설명을 들으려 TV에 집중하고 있을 때, 돌연 생방송이 끊겨버렸다. 검은색 화면만 떠 있을 뿐 아무런 영상도,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지금 우릴 놀리는 건가? 대체 왜 이래?”“누가 알겠어! 그 여자 말대로라면 강한 그룹 대표는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 같은데 약혼은 왜 장씨 집안 딸과 하는 거지? 이건... 너무 하잖아!”“저 여자 정말 불쌍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청춘을 바쳤는데 결국 버려지다니. 설마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어 갈라놓은 건가?”...서울 신문사 본부,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우르르 들어와 말도 없이 사무실을 때려 부수고 전선을 끊어버렸다.직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구석에서 벌벌 떨며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경호원이 길을 열자 진봉이 인터뷰실로 걸어들어와 유리를 통해 안에 앉아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문이 열리자 김남주가 진봉을 보며 덤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랜만이에요. 진 비서님, 혼자 왔어요? 영수는요? 난 영수가 직접 날 보러 올 줄 알았어요.”진봉이 굳은 얼굴로 기자에게 말했다.“나가.”기자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진봉이 못마땅한 얼굴로 김남주를 쳐다보며 말했다.“전 김남주 씨가 대표님의 말씀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 김남주 씨한테 점점 더 불리하게 작용할 거예요.”김남주는 진봉의 말은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네일
경찰을 불러 감옥에 넣으려 하다니.김남주는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으며 경찰을 향해 아등바등 발길질했다.그녀는 결국 잡혀가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진봉이 회사에서 출발해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강한 그룹은 외부에 공식 발표를 진행했다.오늘 김남주 씨가 생방송에서 했던 말은 조사 결과 모두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이 시간 이후 누군가 또다시 강한 그룹에 관한 루머를 퍼뜨린다면 반드시 법적 책임을 지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 일에 대해 본부의 변호사는 강한 그룹 대표님의 명예를 실추시킨 김남주 씨에게 엄히 죄를 물을 것입니다. 또한 강한 그룹 대표 강영수님과 장씨 가문 아가씨 장소월님의 약혼식은 6월 20일 천하 제1호텔에서 진행할 것임을 밝힙니다.그 공식 발표가 온 도시를 들썩였던 소문들을 조용히 잠재웠다.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장소월은 하루 종일 학교 미술실에 박혀있었던 지라 가장 마지막으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차 안에서, 강영수가 그녀에게 물었다.“저녁 먹으러 어디에 갈래? 구영관 아니면 레스토랑?”“집에 가서 먹자. 저녁엔 공부해야 해.”강영수는 장소월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의 등 뒤로 확 끌어안아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왜 그래? 기분 안 좋은 일 있어?”장소월은 그가 아닌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나 공식 발표문 봤어. 너 왜 사실대로 발표하지 않은 거야?”“그것 때문이었어?”강영수는 의중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불필요한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야.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이제 와 언급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 또한... 난 이번 일로 너에게 영향 주고 싶지 않아. 곧 시험이잖아... 남은 두 달 동안 열심
강영수는 네 가지 반찬과 국 하나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먹기에 맞춤한 양이었다.“이것도 먹어봐.”강영수가 탕수육을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장소월이 한 입 먹고는 말했다.“맛있어.”“그래? 맛있으면 다 네가 먹어.”그가 한 요리를 처음 먹는 것 같지는 않았다.저녁밥을 먹은 뒤 강영수는 서재에서 회사 일을 처리했고, 장소월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공부했다. 수업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녀만의 계획은 있었다. 장소월에게 지금의 수업 진도는 큰 의미가 없었다. 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예전의 성적을 회복하는 건 확실히 쉬운 일이 아니다.다행히 그녀는 기초가 탄탄했기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강영수는 이어폰으로 진봉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대표님, 이번 주말 디자이너가 소월 아가씨를 직접 만나 약혼식 드레스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어떨까요? 그리고 메이크업에 관해서도 논의해야 해요. 대표님의 주말 일정은 이미 모두 뒤로 미뤄두었습니다.”“그래. 알았어.”장소월이 카펫 위에 앉아 시험지 몇 장을 풀고 채점, 수정까지 하고 나니 이미 열 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그녀가 탁자를 잡고 일어나 책을 정리했다.“다 했어?”강영수가 이어폰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응. 시간이 늦었어. 남은 건 내일 할 거야. 난 먼저 방에 돌아가 잘게.”“잠시만.”강영수가 셔츠 단추 두 개를 풀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소파에 앉혔다. 서재의 밝은 조명이 따뜻하게 두 사람을 비추었다. 장소월은 목덜미가 화끈 달아올랐다.관능적인 목젖이 아래위로 움직이더니 남자가 몸을 기울여 천천히 다가왔다.조명 아래 남자의 오관은 너무나도 준수하고 매력적이었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그녀를 감싸 안아 녹여버리기라도 할 듯한 기세로 뜨거웠다.장소월이 땀에 흥건해진 손으로 치마를 꽉 움켜쥐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얼굴에 있는 작은 모공까지 똑똑히 보였다. 심장이 당장 튀어나올 것 같아 눈을 질근 감았다.그 순간, 장소월은 머리가 백지장처럼 새하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