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435 챕터

제71화

자리에 다시 앉은 정 씨 어르신의 얼굴에는 방금 전의 엄숙함이 사라졌다. "자네 은영이 요리 실력은 본 적 있는가?"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정 씨 어르신이 다시 말했다."은영이가 덤벙거리는 아이라 아무것도 잘 못해서 나는 자네가 이해 못 해 줄 줄 알았는데.""선생님~!"정설호의 말을 들은 고은영이 얼른 그의 말을 막았다.덤벙거린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자신이 다른 이에게 걱정만 끼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정 씨 어르신은 배준우에게 앉으라고 한 뒤, 아주머니에게 밥을 준비하라고 했다."너희 결혼 배항준 그놈이 허락 안 할 것 같은데?"배항준 그놈?강성에서 배항준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정설호밖에 없었다.하지만 자신의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정설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배준우를 보며 배 씨 집안의 내부 갈등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자네가 정말 굳이 은영이랑 살겠다고 한다면, 그 놈한테서 잘 보호해 줘야 해.""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그래, 그럼 우리 은영이를 자네한테 주겠네. 하지만 자네가 은영이한테 잘 대해주지 않는다면, 나도 은영이 할머니 부탁을 저버릴 순 있다는 거 알아두게."정설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고은영의 할머니는 정설호의 절친이었기에 어르신도 고은영을 자신의 손주로 생각하며 정성스레 키우셨다. 고은영은 할머니 생각을 하니 눈물이 고였다. 배준우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설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배준우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두 사람은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설림에서 나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기 전, 어르신이 배준우를 보며 경고했다. "은영이가 비록 내 손주는 아니지만, 내가 키운 손녀나 마찬가지니 누구도 괴롭혀서는 안 돼!"정설호라는 든든한 할아버지가 있었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뒤를 따라갔다.다리가 제법 긴 그녀였지만 고은영은 다친 덕분에 걷는 것이 아직은 불편했다.배준우는 절뚝거리는 고은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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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고은영이 배준우의 다리 위에 앉은 순간,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배, 배 대표님…""너 원래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사람이었어?"빠르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는 고은영의 말을 들은 배준우가 물었다."네, 그럼요. 저 원래 말 잘 들어요."고은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대답을 들은 배준우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만졌다."방금 어르신이 뭐라고 했는지 다 들었지?"배준우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어르신이 한 말이 너무 많아 고은영은 순간 배준우가 무슨 말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어르신께서 너를 나한테 주겠다고 했잖아. 그러니 앞으로 네 보호자는 나야.""저 이제 보호자.. 필요 없..는데요."고은영은 배준우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에 버벅거리며 말했다."그 머리를 하고도 보호자가 필요 없다고?"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 머리라니, 자신이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는 말인가?하지만 웃을 듯 말 듯 한 배준우의 눈을 마주하니 고은영은 말대꾸를 하지 못했다."그러니까 앞으로 내 말 잘 들어. 뭐가 됐든 나한테 숨기지 말고, 알겠지? 이제 내가 네 보호자니까."배준우가 보호자라는 말을 강조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고은영은 부정하지도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녀는 왜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가짜 결혼을 약속했었던 두 사람이 대체 왜. 앞에서 운전하던 나태웅은 뒷좌석의 두 사람의 말에 집중하느라 몇 번이나 신호등도 못 보고 직진할 뻔했다.왜 예전에는 배준우가 이렇게 여자를 홀릴 줄 아는 줄 몰랐는지.고은영이 입술을 물고 강한 척하는 모습을 보던 배준우가 웃었다."그 집 열쇠는 받은 거야?"배준우가 집 얘기를 꺼내자 고은영이 몸을 떨었다."아, 네!""그 집 계속 가지고 싶어?""원래 제 집이에요!"정 씨 어르신은 고은영 할머니의 부탁을 받아 고은영을 3년이나 돌봐줬기에 그녀는 더 이상 그를 걱정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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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진 씨 아주머니께서는 전화를 받고 고은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님, 오셨어요."아주머니께서 공경하게 고은영에게 인사를 건넸다.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배준우의 시선에서 벗어났다."어디로 갈까요?"나태웅이 배준우에게 물었다.배준우는 고은영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태웅은 그 눈빛을 따라 눈길을 돌렸다가 웃음을 터뜨렸다."고 비서는 겁이 많아서 이런 거 감당못할 텐데요."고은영이 겁이 얼마나 많은지는 동영 그룹 전체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배준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겁이 많다고? 전혀 안 그런 것 같은데."나태웅은 의아하게 배준우를 바라보다 그가 왜 갑자기 결혼 소식을 선포했는지 기억이 났다.어제 량천옥이 하원으로 와 고은영을 괴롭히려고 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고은영이 당하기는커녕 량천옥만 잔뜩 화가 나서 별장에서 쫓겨나왔다고 들었다.나태웅은 량천옥 같은 사람을 고은영이 어떻게 처리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동영상도 보신 건가요?"나태웅이 다시 배준우에게 물었다.동영상 얘기가 나오자 배준우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나태웅은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그가 동영상을 이미 확인했음을 알아차렸다."설마 정말 고 비서가 그런 겁니까? 고 비서한테 그런 담량이 있다고요?"두 사람은 2시간 동안 동영상을 봤지만 고은영이 배준우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가는 모습 외에는 복도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안지영은 뭐래?"배준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돌아갔다고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몇 시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때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꽤 늦은 시간이라고 하였습니다.""하!"나태웅의 말을 들은 배준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꽤 늦은 시간? "정말 고 비서라면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겠는데요. 그 여자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들은 이미 원하던 결과를 얻은 거잖아요."어느덧 시간도 한 달 반이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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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배준우는 자기 세상에 외부인이 있는 것을 싫어했기에 이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고은영은 화장실에서 긴장감에 잘못 깨물어 피를 봐버린 입술을 살피고 있었다. 손이 닿자마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해져왔지만, 정작 당시에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많이 아파?"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배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영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황해 손을 떨었고 면봉이 상처 위를 스쳤다. 따끔거리는 고통에 그녀가 반사적으로 면봉을 놓쳤다.그리곤 고개를 돌려 언제부터 그곳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배준우를 바라봤다.배준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긴 다리를 움직여 성큼성큼 고은영에게 다가갔다.고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지만, 그녀의 등 뒤에는 바로 세면대가 있어 그녀는 피할 곳이 없었다.고은영은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세면대 부근을 꽉 잡았다.배준우는 이미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거리가 그녀는 그의 뜨거운 온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덥고 습한 숨이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고 고은영은 더욱 긴장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의 턱을 잡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두 눈이 마주친 순간, 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그 눈을 피하려고 했다."배, 배 대표님…"조금은 거친 손가락이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말해, 아파, 안 아파?""안 아파요."고은영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아프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그녀는 사실 ㅅ무척 아팠다.다음 순간, 배준우가 힘을 줘 고은영의 입술을 문질렀고 그녀가 신음을 내뱉었다."아, 아파요…"억지로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하는 고은영을 보며 배준우가 다시 물었다."다음에도 거짓말할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고은영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CCTV 영상 때문에 배준우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이런 느낌은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다.배준우가 다시 고개를 숙여 상처 난 고은영의 발등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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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고은영은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짧은 그 몇 마디 말로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된다는 그녀의 말을 들은 배준우의 표정이 조금 복잡해졌다.배준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은영이 긴장감에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 대표님은 배고픈적 적 없으시죠?"면봉을 들고 있던 배준우의 손이 멈칫했다.그리고 그의 눈 밑으로 차가움이 스쳐 지나갔다."없어."차가워진 분위기에 고은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약을 바꾸고 나니 고은영의 발등도 훨씬 좋아졌다."오늘은 샤워하지 마."배준우가 약상자를 옆으로 치우며 말했다."그래도 세수는 해야죠."샤워를 하지 않는 건 너무 괴로웠다. 하지만 뜨거운 물이 데인 상처에 닿는 그 느낌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결벽증이야?""심하지는 않아요."결벽증을 가진 아이가 물이 그렇게 모자라는 곳에서 자랐으니 참 힘들었겠다고 배준우는 다시 생각했다.화장실로 들어간 배준우는 머지않아 뜨거운 수건 하나를 들고나와 고은영에게 건네줬다."오늘은 이걸로 대충 씻어."고은영은 순간 멍청해져 배준우가 든 수건도 가져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내가 대신 닦아줘?""아, 아닙니다. 저 혼자 할 수 있어요."고은영이 얼른 수건을 가져오며 말했다.얼굴을 가린 손바닥으로 뜨거워진 볼의 온도가 느껴졌다.그녀는 이는 자신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항상 차갑기만 한 배준우 대표에게도 다정한 모습이 있다니.얼굴을 가린 수건이 차가워질 때쯤, 배준우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언제까지 씻을 예정이야?""아, 이제 다 됐어요."그녀는 배준우가 방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고은영이 난감한 얼굴로 수건을 배준우에게 건네줬다.하지만 대표님이라는 말을 들은 배준우의 표정이 다시 차가워졌다.순간 내려앉은 분위기에 고은영은 다시 반성하기 시작했다.그리고 배준우가 화장실로 들어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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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왜요? 대표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온몸을 감싸는 한기에 고은영이 순간 정신을 차렸다.하지만 배준우는 그저 방으로 들어가며 고은영에게 일찍 자라는 말만 남겼다."네, 알겠습니다."배준우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고은영은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그녀도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배준우가 다시 나왔다.고은영은 그렇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배준우를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부르려던 찰나, 배준우가 그녀를 안아 들더니 손님방으로 향했다.그가 일부러 고은영을 데리고 이 방으로 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은영은 배준우의 가슴에 닿은 얼굴을 붉혔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침대에 눕히더니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일찍 자.""네."고은영이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배준우는 그런 고은영을 남겨두고 방문을 닫고 나섰다.그리고 머지않아 밖에서 화가 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또 다시 본가의 사람과 전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고은영은 자신과 어머니의 사이도 충분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준우와 그의 가족 관계는 더욱 혼란스럽다고 생각했다.그때, 고은영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서정우였다.그 전화번호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은영은 머리가 아파 전화를 끊으려고 했지만, 난감해하는 고은지의 목소리가 생각나 끝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누나 결혼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그녀는 발달한 인터넷 세상을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서정우가 그 멀리에서도 순식간에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말이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푹 쉬었다.하지만 서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형부가 정말 강성의 제1 재벌 배준우 도련님이야?""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래?"고은영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왜 나랑 상관이 없어, 누나. 나 누나 동생이잖아, 누나가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얼마나 아껴줬는데."서정우의 말을 들은 고은영은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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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고은영은 담이 작은 것 뿐이지 멍청하진 않다. 옳고 그른 것을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조보은이 그때 그녀를 버렸기에 그녀는 더 이상 조보은과 그 어떠한 연관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건 틀린거이다. 머지않아 밖이 조용해졌고 고은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하지만 발등에 상처를 달고 밖에서 추운 바람을 맞은 데다가 설림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본 덕분에 고은영은 그만 열이 나고 말았다. 목이 말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러 가려고 했지만, 두 발이 바닥에 닿은 순간, 그녀는 그만 쓰러져 버렸다. 일부러 문을 닫지 않고 잠을 자던 배준우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깨어났다.그리고 불을 켜더니 고은영의 방으로 달려갔다.고은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려고 해도 몸은 물을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고은영이 다시 쓰러지려던 찰나, 배준우가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고은영을 안아 들었다."대표님, 저 목말라요..."꺼져갈 듯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배준우는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곧 고은영의 뜨거운 온도를 감지한 배준우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너, 열나?""물, 물 먹고 싶어요."고은영의 목은 마치 바늘을 삼키고 있는 듯 아팠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거실로 나가 컵에 물을 부어줬다.그리고 약상자를 꺼내 온도계를 꺼냈다.배준우가 다시 돌아와 보니 고은영은 물을 다 마시고 빨개진 얼굴을 한 채 다시 잠들어 있었다."고은영, 고은영?"배준우가 그녀를 계속 불렀지만, 고은영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배준우가 고은영의 온도를 재보니 그녀의 온도는 39.8도까지 올라갔다. 그는 얼른 다시 해열제를 찾으러 갔다.하지만 집에는 해열제가 없었기에 배준우는 가정의에게 전화를 걸었다.가정의는 고은영이 39도 이상까지 열이 올랐다는 소식을 듣더니 얼른 몸을 일으켰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지금 가보겠습니다, 그동안 물리적으로 열이 떨어지게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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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할머니, 제가 말 잘 들을게요, 정말 말 잘 들을게요…"고은영은 무슨 꿈을 꾸는지 같은 말만 반복했다.배준우는 점점 더 빨개지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결국 그녀의 옷을 벗기기로 했다.옷이 얇아지는 느낌에 고은영은 추위를 느끼곤 몸을 웅크렸다.배준우는 점점 드러나는 새하얀 피부에 목이 말랐다. 예전에는 고은영이 담 작고 잘 먹는 여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렇게 많이 먹는 것 치곤 몸매가 좋았다.어쩐지 회사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더라니..배준우는 고은영이 왕따를 당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미 잊은 듯했다.따뜻한 수건이 고은영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자마자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고은영의 숨소리도 드디어 한결 편해졌다.그렇게 고은영은 저녁 내내 열이 내렸다 올랐다 반복하다 어렵게 안정을 되찾았다.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눈앞의 낯선 환경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단조로운 색을 가진 방을 고은영은 몇 번이고 훑어봤다.그리고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깼어?"배준우의 목소리를 들은 고은영은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삐걱거리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배준우와 눈을 마주한 순간,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아! 씁…"하지만 이불 안에서 발버둥 치다 결국 또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배준우는 금방 잠에서 깬 듯한 얼굴로 일어났다.그 모습을 본 고은영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그것보다 자신이 왜 배준우의 방에 있는 것인지.그리고 입고 있는 옷은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기억하기론 어젯밤 그녀는 이 옷을 입지 않았다.고열에 시달렸던 고은영은 어젯밤 일에 대해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상황 파악을 위해 머리를 굴리던 고은영이 눈물을 글썽이며 배준우를 바라봤다.그런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니 배준우는 당장 그녀를 잡아먹고 싶어졌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옷, 제 옷이 왜…""내가 벗기고. 바꿔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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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어지러웠던 머릿속이 더욱 어지러워지는 느낌이었다.배준우는 멍청한 그녀의 얼굴을 보다 귀엽다는듯 고은영의 볼을 꼬집으며 물었다. "배 안 고파?"고은영이 그런 배준우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배준우가 다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뜨거운 숨이 차가운 그녀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뭐 먹고 싶어?"고은영 입술에 맺힌 피를 닦아 낸 배준우가 더욱 다정해진 목소리로 물었다."면, 면이요."고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다정한 배준우를 그녀는 본 적이 없었기에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고은영은 생각했다."그래, 그럼 너 혼자 일어날래? 아니면 내가 안아줄까?"아침부터 이런 다정한 말을 듣고 있으니 고은영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저 혼자 일어날게요.""혼자 할 수 있겠어? 발에 상처도 어젯밤에 보니까 다시 덧난 거 같은데."배준우가 물었다. 고은영이 어제 열이 난 것도 밖으로 나돌아 다닌 덕분에 상처가 덧이 나 그랬던 것이었다."괜찮아요.""그래."배준우가 방을 나섰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침대에 앉아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어젯밤 자신이 언제 배준우의 방으로 온 건지 알 수 없었기에 배준우가 방을 완전히 나선 뒤에야 조심스럽게 자신의 옷무새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는 바지도 잘 입고 있었고 몸에도 이상한 흔적이 없었다.방금 전, 그녀는 정말 너무 놀랐다.배준우는 아주머니께서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을 싫어했기에 그가 출근한 뒤, 아주머니들이 집으로 와 청소를 했다.예전의 주방에는 거의 모두가 새것이었다.배준우는 아침에 기껏해야 빵조각 2개에 계란 하나, 따뜻한 우유를 먹는 것이 전부였다.하지만 오늘, 그는 처음으로 냄비를 꺼냈다.다른 이를 보살핀 적 없던 배준우는 면이 먹고 싶다던 고은영의 말을 듣고 기꺼이 주방으로 들어갔다.고은영과 비교해 볼 때, 그의 요리 실력이 훨씬 좋다. 고은영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배준우는 이미 면을 다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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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고은영이 버벅거리며 말을 했고 조심스럽게 배준우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곧 다시 고개를 숙였다.방금 전, 배준우가 보였던 다정함과 웃음은 모두 착각인 듯했다."내가 그렇게 무서워?"고은영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배준우는 잔뜩 겁을 먹은 고은영을 보니 갑자기 흥취가 생겼다.고은영이 언제쯤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을지."먹어."고은영이 더 이상 숨을 참기가 힘들다고 생각할 때 쯤, 배준우가 그녀를 놓아줬다.하지만 고은영은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었다."왜?"배준우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고은영을 잠시 보다가 물었다."저,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어서요."고은영이 눈을 감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뜬금없이 말했다."또 먹을 거 달라고 하네?"배준우가 웃으며 말했다.고은영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차린 듯했다.하지만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네, 먹고 싶어요."결국 고은영은 그냥 막 나가기로 했다. 심장이 곧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앞으로 나 무서워하지 마."배준우가 세게 고은영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하지만 고은영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만 해도 완전히 다른 두 얼굴을 가진 그를 보았는데.. 어떻게 무서워하지 말라는 건지. 고은영은 긴장한 덕분인지 아니면 어제 배준우가 그녀에게 열을 내려준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감기게 걸리고 말았다.배준우가 주방으로 들어가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사이, 고은영은 결국 참다못해 화장실로 들어가 모두 토해내고 말았다.십여 분이 지나 절뚝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고은영을 본 배준우가 물었다."어디 불편해?"고은영은 머리도 조금 아팠다."감기에 걸린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배준우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어젯밤 그녀의 열을 내려주기 위해 했던 것들이 생각났다.설마 그때 감기에 걸린 것일까? 열은 내렸지만 감기에 걸렸다니."계란 여기 있어, 아주머니께서도 곧 오실 거야."배준우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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