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상사의 아이를 임신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1190 챕터

제11화

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직!”그녀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목걸이를 하지 않았지만 여름이라 그걸 본 직원이 적지 않을 것이다.나태웅이 회사 직원들에게까지 탐문조사를 할까 봐 걱정이었다.“그거 주면 안 되지!”“하지만 나 실장님 태도가 아주 강경했어. 안 가져가면 분명 날 의심할 거야.”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미칠 것 같았다.사실 자신의 말이 억지라는 건 알 고 있었다.나 실장은 자타공인 회사의 2인자였다.배준우가 조사를 하라고 지시한 일은 전부 나 실장이 도맡아서 했고 한 번도 배준우를 실망시킨 적 없었다.하지만 그걸 넘기면….“아, 정말 답 없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고은영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의 기억에서 그날 밤을 지우고 싶었다.그녀는 머리를 싸매고 있는 안지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걸 넘겨야겠지?”“지금 상황에 아무래도 넘길 수밖에 없어!”만약 그걸 안 넘긴다면 나 실장은 결국 고은영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은영 위주로 조사를 시작한다면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였다.게다가 고은영은 그와 같이 이 임무에 합류하게 되었다.안지영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친구가 사실대로 자백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고은영은 고통스럽게 머리카락을 쥐여뜯었다.“내가 그거 하고 다니는 거 본 동료들이 수두룩할 텐데.”회사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그녀라는 게 들통날 것이다.안지영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고은영에게 말했다.“그럼 네가 말해봐. 이제 어떻게 할 거야?”고은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울지 마. 지금 너 달래줄 기분 아니야.”“하지만 정말 무섭다고!”“그래, 알아.”겁 많은 고은영이야 무서운 건 당연하고 안지영도 이제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주문한 메뉴가 나왔지만 두 사람 다 입맛이 없었다.안지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대표님이 사실은 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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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수화기 너머로 배준우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집으로 가서 서류 좀 가져다 줘. 그리고 옷장에 있는 자주색 넥타이도 좀 부탁해.”“네, 알겠습니다.”고은영은 공손히 대답한 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문이 열리자 그녀는 안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차키 좀 빌려줘. 대표님 집으로 좀 가봐야 해!”“대표님도 참, 평소에 집으로 심부름도 자주 보내면서 업무용 차 한대도 안 뽑아 주다니!”안지영은 불평하면서도 순순히 차키를 꺼내 고은영에게 건넸다.차키를 건네 받은 고은영은 담담히 대답했다.“서류만 가지고 나올 거야. 차비 받으면 나중에 너 다 줄게!”“요즘 기름값 엄청 비싸다고! 그깟 차비 얼마나 준다고!”안지영이 투덜거렸다.그녀는 예전부터 회사의 복지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배준우는 짠돌이 중의 짠돌이었다.고은영이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내 사비로 기름 한번 넣어줄게.”“매달 대출로 400만원이나 갚는 주제에 무슨 돈이 있어서!”“그러니까 좀 도와줘.”“불만도 얘기하면 안 돼?”안지영이 뾰로통하게 말했다.고은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어려서부터 곱게 자란 이 재벌 아가씨는 회사에 입사한 순간부터 배준우가 짠돌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사실은 그냥 회사에 불만이 많은 거였다.엘리베이터를 나선 고은영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했다.비서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녀는 배준우의 오피스텔에 방문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블랙톤 위주의 인테리어는 적절한 소품들로 잘 조화를 이루어 너무 삭막해 보이지는 않았다.고은영은 일단 서재로 가서 서류를 챙긴 뒤, 익숙하게 옷방으로 가서 옷장을 열었다.그런데 장롱 문을 열자마자 툭 하고 무언가 떨어져 나왔다.고은영은 허리를 숙여 떨어진 물건을 주워들었다.하지만 물건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포장지도 안 뜯은 콘돔이었다!줄곧 잊고 싶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그녀는 얼른 그것을 도로 장롱에 넣었다.평소에 금욕적으로 보이는 배 대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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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나태웅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은영은 그와 함께 조사를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그녀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나태웅이 귀찮은 듯이 말했다.“이제 일하자!”“네, 나 실장님!”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나태웅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말없이 배준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자리로 돌아온 고은영은 업무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휴게실에서 봤던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앞으로 조심해야겠어. 이러다가 정말 크게 사고 한번 칠 것 같아!’무슨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지 나태웅은 한 시간 뒤에야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왔다.그가 나오자 마자 고은영의 업무용 전화가 울렸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대표 사무실 쪽을 바라보다가 남자의 냉랭한 눈빛과 마주쳤다.고은영은 얼른 고개를 숙이고 전화를 받았다.“네.”“들어와!”남자는 간단하게 지시를 내린 뒤,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은영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다음 회의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연 순간, 벌써 풍겨져 나오는 숨막히는 압박감에 그녀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했다.“대표님, 다음 회의에 필요한 자료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죠.”말을 마친 그녀는 공손히 서류를 배준우에게 건넸다.남자는 긴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그 무심한 동작에 고은영의 긴장감은 다시 고조되었다.배준우가 말이 없자 그녀는 점점 더 조여오는 압박감을 느꼈다.한참이 지난 뒤, 그녀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을 때, 배준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아까 뭘 봤지?”“아니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고은영은 다급히 말했다.상사 앞에서 당신의 나체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을 마주했다.그런데 그의 눈빛에서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 건 착각일까?고은영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재차 말했다.“정말 아무것도 못봤어요.”“그래?”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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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지만 날카로운 나태웅의 눈빛을 마주하자 도망칠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고 비서, 괜찮아?”그녀가 멍하니 있자 나태웅의 말투가 차가워졌다.“아… 괜찮습니다.”그녀가 다가가자 나태웅은 노트북 화면을 그녀에게 돌렸다. 화면에서 그녀가 배준우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날짜가 맞았다.고은영은 머리 속이 완전히 하얘져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런데 몇 초 정도 지나자 화면에 지저분한 점들이 생기더니 꺼져 버렸다.안지영이 삭제한 부분일 것이다.고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태웅에게 말했다.“이 영상 맞아요. 안지영 씨랑 아침까지 지켜봤는데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없었습니다.”그녀가 그 방에 밤새도록 있었기에 그날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영상이 손상되었으니 고은영과 안지영, 그리고 매수한 보안센터 직원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고은영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태웅은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이 영상 복구해 주세요!”고은영은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와 나태웅을 번갈아 보았다.“이분은….”“강성 IT센터 팀장, 진재한 씨야!”진재한!그 이름을 들은 순간 고은영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기술자가 바로 진재한이었다.배준우는 그를 본사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진재한은 줄곧 제안을 거절해 왔다.나태웅이 그 여자를 찾으려고 진재한까지 동원할 줄이야!진재한은 노트북을 건네 받고 자신감 있게 휘파람을 불고는 말했다.“이런 건 일도 아니죠! 맡겨만 주세요!”고은영은 등 뒤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이번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그녀는 어렵게 정신을 차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제가 따로 할 일은 있나요?”고은영의 질문에 나태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고 비서는 일단 나가서 일해!”“네.”그녀는 애써 정신을 추스르고 나태웅의 사무실을 나왔다.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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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고은영은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고 눈알이 새빨개진 상태로 비상계단에서 나갔다.비서실 직원 민초희가 그녀를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고 비서님, 울었어요?”“아… 아니에요! 괜찮아요!”고은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민초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많이 힘들면 장기 휴가 신청하고 쉬는 것도 방법이에요!”동영그룹 직원이라면 배준우 밑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물론 급여는 다른 곳보다 월등하게 많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위치였다. 고은영은 감격한 표정으로 민초희를 바라보며 말했다.“감사해요. 안 그래도 지금 휴가 신청하러 가는 길이었어요.”더 이상 회사에 있다가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민초희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자리로 돌아갔다.고은영도 자리로 돌아가서 휴가 신청서를 작성한 뒤, 나태웅의 사무실로 갔다.영상이 어디까지 복구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휴가를 내려면 나태웅의 동의가 필요했다.그 뒤에 배준우에게 보고를 올린 뒤,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은영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나태웅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 차갑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영상 파손 정도가 심각하네요.”“복구가 불가능해요?”나태웅이 심각한 말투로 물었다.고은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었다.진재한도 복구가 불가능하단 말인가? 그렇다면….고은영이 안도의 숨을 내쉬던 순간, 진재한이 말했다.“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3일 정도면 될 것 같네요.”“진 팀장에게 3일이나 쓰게 하다니. 장난을 친 자가 실력이 좀 되나 보네요!”나태웅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고은영은 다시 참담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지금 당장은 복구하지 못했지만 3일 뒤에 만약 그가 성공적으로 복구해 낸다면?진재한도 정색하며 말했다.“네 실력이 상당한 자입니다.”“알았어요. 3일 드리죠.”다시 자리로 돌아간 고은영은 휴대폰으로 안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복귀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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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고은영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반면 배준우는 해커까지 동원했다는 얘기에 잠시 표정을 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체할 시간이 없어.”고은영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태영은 그 의미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 일이 있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그 여자가 숨었다는 건 아마 임신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여자의 배후도 그걸 바라고 행동했을 것이다.그렇다는 건 그 여자는 자신에게 가장 유력한 무기를 들고 나중에 배준우를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그럼 어떻게 할까요?”배준우는 계모가 추천한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결국 이 순간을 위해서 그 난리를 부렸던 거잖아? 그럼 계획을 무효로 만들어야지!”그 여자가 자신의 측근을 그에게 결혼상대로 들이밀기 전에 결혼하면 그만이다.세 사람 중 고은영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나태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럼 결혼상대를 물색할까요?”고은영은 순간 놀라서 사레들려서 쿨럭거렸다.무거웠던 흐름이 그녀의 요란한 기침소리에 잠시 끊어졌다.배준우와 나태웅이 인상을 쓰며 바라보자 고은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서둘러 사과했다.“죄송합니다!”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도망치듯 배준우의 사무실을 나갔다.너무 충격적이 소식이었다.어떻게 저런 분위기에서 결혼상대를 슈퍼에서 물건 고르듯이 얘기할 수 있지?사람이 짐승도 아닌데 성별만 여자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은영은 휴게실로 달려가서 생수를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나태웅과 배준우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태웅이 물었다.“생각해둔 상대가 있나요?”배준우는 담배 한모금 길게 들이마시고 서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친모가 돌아가신 뒤, 계모라고 들어온 여자는 어떻게든 그를 통제하려고 했다.지금 그 여자는 동영그룹 전체를 손아귀에 잡고 흔들려는 게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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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손상된 영상을 떠올린 나태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배준우에게 물었다.“고 비서가 사모님 측근일 가능성은요?”하필이면 고은영이 CCTV를 조회한 뒤에 그날 밤 영상만 손상되었다는 게 어쩐지 의심스러웠다.나태웅의 질문에 배준우는 코웃음쳤다.“겁이 많아서 그런 짓을 저지를 여자는 아니야.”나태웅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평소 고은영은 수상할 정도로 배준우를 두려워했다. 배준우의 계모처럼 계산적인 사람이 저런 허술한 상대를 측근으로 골랐을 리 없었다.“그럼 고 비서한테는 제가 말할게요.”“회사 내부에는 잠시 비밀로 해!”나태웅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결혼 자체가 계획의 일부인데 숨기는 게 당연했다.모든 게 끝나면 배준우야 타격이 없겠지만 고은영의 입장은 많이 난처해질 것이다.나태웅은 자신의 상사가 그래도 양심은 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비록 고은영을 이용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이혼한 뒤의 그녀의 처지도 고려한 결정이었다.한편, 자리에 돌아온 고은영이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나태웅이 그녀에게 다가왔다.“내 사무실로 잠깐 와봐!”“네, 실장님.”고은영은 또 혼나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일부러 분위기 깬 것도 아니고… 누가 신성한 회사에서 결혼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래?’그녀는 투덜거리며 나태웅의 사무실로 향했다.“실장님, 저 왔어요.”“문 닫아.”나태웅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영은 순순히 문을 닫고 지시를 기다렸다.나태웅은 그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내일 출근할 때 가족관계증명서 챙겨서 와. 고은영 씨는 내일 배 대표님이랑 혼인신고 할 거야.”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고은영은 너무 당황해서 또 사레가 들려 켁켁거렸다.나태웅은 실성한 것 같은 그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상사의 이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 순간 의심이 갔다.하지만 이렇게 허술한 사람이었기에 이 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의심을 치워버렸다.고은영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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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고은영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제가 싫다고 하면요?”결혼에 대해서 그녀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절대로 쉽게 결정할 리 없고, 강요에 의한 결혼이라면 더더욱 사양이었다.결혼은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비록 연기라고는 하지만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나태웅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아까 대표님이 하신 말씀 잘 들었지?”만약에 그녀가 거절한다면 강성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고은영은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나태웅의 서늘한 눈빛을 보자 거절의 말을 다시 삼켜야 했다.그녀가 말이 없자 나태웅이 물었다.“가족관계증명서 발급해 놓은 거 있어?”“언니한테 있어요.”고은영이 말했다.나태웅은 시간을 확인하고 계속해서 말했다.“오후에 반차를 주지. 가서 가져와.”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배준우가 원하는 바는 명확했다.예전에 결혼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낭만을 뜻하는 장미와 촛불 이벤트, 그리고 쌍방 부모가 한자리에 모여 상견례를 가지는 등등.하지만 이 모든 걸 생략하고 가족관계증명서부터 내놓으라는 상황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었다.협박의 의미가 명확했지만 고은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기간은… 얼마나 될까요?”나태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무슨 기간을 말하는 거지?”“위장결혼이라면서요?”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 기간은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나태웅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그건 대표님한테 물어봐야지.”지금 당장은 그 여자의 계획을 파탄내려는 의도지만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배준우의 의사에 달렸다.고은영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배준우에게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그녀에게 없었다.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나태웅의 사무실을 나왔다.사무실에서 서류를 처리하던 배준우는 창밖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는 고은영을 잠시 바라보았다.넋이 나간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나태웅이 들어오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잘 얘기했어?”나태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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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게다가 그녀가 갈 때 선물을 사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언니의 시어머니 때문이었다.빈손으로 가면 두고두고 언니한테 불평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고은영은 백화점이 가까워지자 언니를 다그쳤다.“많이 안 사. 빨리 사이즈나 말해줘. 샀다가 작아서 못 입으면 환불하기 더 귀찮아.”“은영아!”“빨리!”고은영의 태도는 단호했다.고은지는 어쩔 수 없이 사이즈를 알려주었다.전화를 끊자마자 안지영이 말했다.“언니도 강성 인근에 사시는데 한 달에 한번 정도밖에 못 보지않아?”“가정도 있는데 내가 자꾸 가면 부담될까 봐.”언니 고은지를 통해 고은영은 느낀 바가 있었다. 결혼은 두 가족의 결합이지 남녀가 사랑한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오늘 나태웅이 배준우와 결혼하라고 했을 때 거부감부터 들었던 것이다.지금 배준우가 성격도 고약하고 같이 일하기 힘들지만 어차피 직장상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런데 그와 결혼하게 되면 그녀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야 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안지영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친언니 만나러 가는데 왜 그렇게 눈치를 봐?”안지영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란 친구가 불쌍했다.유일하게 그녀를 예뻐해 주시던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언니는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친언니니까 언니가 입장 곤란해지는 건 싫어.”언니는 어렸을 적 고은영의 정신적 지주였다. 맛있는 거 생기면 항상 동생 먼저 챙기고 운 좋게 새 옷이 생겨도 먼저 동생에게 주었다.지금도 언니 집에 놀러 가면 어떻게든 맛있는 거 차려준다고 난리를 떠니 시어머니가 고깝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백화점에 도착하자 고은영은 같이 가주겠다는 안지영의 제안을 거절하고 홀로 들어갔다. 안지영과 쇼핑하면 대부분 그녀가 계산하기 때문이었다.이미 안지영에게는 신세를 많이 져서 자꾸 부담주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안지영이 그녀에게 카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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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늦은 시간이었다.고은영은 언니한테 가족관계증명서를 달라고 한 뒤, 작별인사를 전했다.침대를 정리하던 고은지가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벌써 가게? 자고 가지.”고은영은 고개를 흔들었다.“안 돼. 내일 또 출근이야.”“그런데 가족관계증명서는 왜 필요한데?”고은지가 물었다. 가족관계증명서가 꼭 필요한 일이 뭐가 있을까?“회사에서 연말에 단체여행을 해외로 가기로 했는데 여권이랑 비자 만들어야 해.”언니를 걱정시키기 싫었기에 고은영은 거짓말을 택했다.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사이고 위장결혼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가족관계증명서를 꺼내 건넸다.“다음에 올게.”“그래.”고은영은 언니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고은지는 아이를 낳은 뒤로 전보다 군살이 많아졌다.고은영은 그런 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심코 물었다.“언니는 혼인신고 할 때 어땠어?”순간 고은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고은영은 순간 뭔가 알 것 같았다. 고은지와 조용수는 선 보고 만난 사이였다. 그것도 계모인 조보은의 소개를 받아 결혼했다.아이가 벌써 다섯 살인데 아직도 혼인신고를 안 했다는 게 놀라웠다.언니의 씁쓸한 표정을 보고 있던 고은영은 다시 잠자는 조희주에게 시선을 돌렸다.“희주도 이제 유치원 다니니까 언니도 직장 찾아서 출근해.”그녀는 명문대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며 졸업한 언니가 이런 시골구석에서 농촌아낙으로 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솔직히 말하면 고은영은 언니가 조보은의 말만 듣고 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사실 조은지도 후회하고 있었다.시어머니는 정말 깐깐하고 맞춰주기 힘든 성격이었다.한참을 침묵하던 고은지가 말했다.“나도 출근하고 싶지. 그런데 애는 누가 픽업하겠어.”조희주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그녀도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려고 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그러면서 둘째를 또 낳으라고 재촉하는 상황이었다.고은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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