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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지만 날카로운 나태웅의 눈빛을 마주하자 도망칠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고 비서, 괜찮아?”

그녀가 멍하니 있자 나태웅의 말투가 차가워졌다.

“아… 괜찮습니다.”

그녀가 다가가자 나태웅은 노트북 화면을 그녀에게 돌렸다. 화면에서 그녀가 배준우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날짜가 맞았다.

고은영은 머리 속이 완전히 하얘져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몇 초 정도 지나자 화면에 지저분한 점들이 생기더니 꺼져 버렸다.

안지영이 삭제한 부분일 것이다.

고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태웅에게 말했다.

“이 영상 맞아요. 안지영 씨랑 아침까지 지켜봤는데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그 방에 밤새도록 있었기에 그날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영상이 손상되었으니 고은영과 안지영, 그리고 매수한 보안센터 직원만 입을 다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고은영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태웅은 맞은편에 앉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영상 복구해 주세요!”

고은영은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와 나태웅을 번갈아 보았다.

“이분은….”

“강성 IT센터 팀장, 진재한 씨야!”

진재한!

그 이름을 들은 순간 고은영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기술자가 바로 진재한이었다.

배준우는 그를 본사로 데려오고 싶어했지만 진재한은 줄곧 제안을 거절해 왔다.

나태웅이 그 여자를 찾으려고 진재한까지 동원할 줄이야!

진재한은 노트북을 건네 받고 자신감 있게 휘파람을 불고는 말했다.

“이런 건 일도 아니죠! 맡겨만 주세요!”

고은영은 등 뒤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어렵게 정신을 차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제가 따로 할 일은 있나요?”

고은영의 질문에 나태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고 비서는 일단 나가서 일해!”

“네.”

그녀는 애써 정신을 추스르고 나태웅의 사무실을 나왔다.

밖으로 나간 그녀는 곧장 비상계단으로 달려가서 문을 닫고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밖에서 고객을 만나고 있던 안지영은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 지금 바빠!”

“지영아, 큰일 났어! 이번엔 정말 끝난 것 같아!”

“그 말을 몇 번이나 해? 이제 좀 진정될 때도 되지 않았니?”

안지영은 조그만 일에 일희일비하는 고은영이 못마땅했다.

고은영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실장님이 진재한 씨를 회사로 불렀어. 지금 사무실에서 영상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뭐?”

수화기 너머로 안지영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은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절규했다.

“어떡하지? 이제 우리 어떡해?”

눈앞이 깜깜했다!

영상이 복구된다면 배준우도 그녀가 그날 밤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동영그룹에서 대표를 유혹해 잠자리를 가졌다는 건 대역죄에 가까웠다.

“나도 몰라!”

안지영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녀도 고은영 못지 않게 당황했다.

영상이 정상적으로 복구되고 범인이 고은영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영상 삭제에 가담했던 그녀도 무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은영을 만난 게 인생의 큰 재앙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은영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자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당장 가서 휴가신청부터 내! 난 바로 회사로 갈게!”

안지영이 다급히 말했다.

일은 점점 예상범주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 간단한 거짓말로 진실을 덮을 시기는 지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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