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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고은영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반면 배준우는 해커까지 동원했다는 얘기에 잠시 표정을 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고은영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태영은 그 의미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 여자가 숨었다는 건 아마 임신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여자의 배후도 그걸 바라고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그 여자는 자신에게 가장 유력한 무기를 들고 나중에 배준우를 찾아올 가능성이 컸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배준우는 계모가 추천한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이 순간을 위해서 그 난리를 부렸던 거잖아? 그럼 계획을 무효로 만들어야지!”

그 여자가 자신의 측근을 그에게 결혼상대로 들이밀기 전에 결혼하면 그만이다.

세 사람 중 고은영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태웅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결혼상대를 물색할까요?”

고은영은 순간 놀라서 사레들려서 쿨럭거렸다.

무거웠던 흐름이 그녀의 요란한 기침소리에 잠시 끊어졌다.

배준우와 나태웅이 인상을 쓰며 바라보자 고은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서둘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도망치듯 배준우의 사무실을 나갔다.

너무 충격적이 소식이었다.

어떻게 저런 분위기에서 결혼상대를 슈퍼에서 물건 고르듯이 얘기할 수 있지?

사람이 짐승도 아닌데 성별만 여자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은영은 휴게실로 달려가서 생수를 찾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태웅과 배준우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태웅이 물었다.

“생각해둔 상대가 있나요?”

배준우는 담배 한모금 길게 들이마시고 서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친모가 돌아가신 뒤, 계모라고 들어온 여자는 어떻게든 그를 통제하려고 했다.

지금 그 여자는 동영그룹 전체를 손아귀에 잡고 흔들려는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탈 나실라….’

배준우가 담배를 비벼 끄더니 말했다.

“고 비서한테 내일 가족관계증명서 가지고 나오라고 해.”

나태웅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다시 물었다.

“고 비서요?”

배준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태웅은 그가 왜 굳이 고은영을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골출신이라 배경도 없고 사람이 순수해서 여느 재벌 영애들보다 컨트롤하기 쉬웠다.

어차피 이 결혼은 연막작전일 뿐이다.

배준우가 목표한 바를 이룬 뒤에 다시 시골로 돌려보내면 된다.

“고 비서가 순순히 그러자고 할까요?”

나태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비록 평소에 많이 덜렁거리고 겁도 많은 그녀였지만 일할 때만큼은 자기주장이 확실한 여자였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그 어떤 상황이 와도 불합리한 건 못 참는 게 그녀의 장점이었다.

단순하게 배준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하자는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고은영이 거절할 수도 있다는 얘기에 배준우가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싫으면 퇴사해야지!”

나태웅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일에는 고은영의 실수도 있었으니 이 일로 압력을 가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 CCTV 영상을 확인한 사람도 고은영뿐인데 그녀는 배준우의 방에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이 어쩌다가 손상되었는지도 조사해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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