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991 - 챕터 1000
1049 챕터
제991화
하지만 눈을 감고 아무리 기다려봐도 생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몇 초 뒤 임유진이 슬며시 눈을 떠보니 강지혁이 그녀의 손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손 안 아파?”순간 임유진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코끝이 시큰해졌다.강지혁은 항상 이렇게 그녀를 누구보다 더 소중히 대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그 다정함에 푹 빠졌을 때는 그 누구보다 매정하게 버려버렸다.“날 사랑하는 게 아니면 나한테 키스하지도 말고 널 때린 손이 아픈지 안 아픈지도 물어보지 마! 네가 이럴수록 나는 네가 더 싫어지니까!”임유진은 그를 힘껏 노려보고는 그의 손에 잡힌 손을 거칠게 빼냈다.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희고 붉은 얼굴에 몇 가닥 붙어있고 그 사이로 빨간 입술을 꽉 깨문 그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명백한 거부였다.강지혁은 순간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몸도 비틀거리다가 속에서 뭔가가 올라올 것 같아 입을 꽉 틀어막은 채 허겁지겁 침대에서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그리고 문이 닫힌 순간 겨워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임유진은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뺨을 내리친 그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맞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때린 사람이 이렇게 아픈 걸까.화장실에서 들리던 토하는 소리가 점점 멎어갔다. 하지만 강지혁은 어쩐 일인지 한참이 지나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에 임유진은 혹시 그가 화장실에서 쓰러진 건 아닌가 싶어 그쪽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너... 너 괜찮아?”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임유진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강지혁, 내 말 들려? 혹시 잠든 거야? 셋 세고 문 열게.”그녀는 손가락으로 셋을 센 다음 혹시 몰라 한 번 더 노크했다.똑똑.“나 들어간다?”임유진은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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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2화
“그럼 걱정이 아니라 오지랖이라고 생각해.”임유진은 말을 마치고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다음 그를 침대까지 힘들게 끌고 와 눕혔다.강지혁은 확실히 어딘가 안 좋은 건지 침대에 눕자마자 마치 새우처럼 몸을 옆으로 웅크렸다. 잘생긴 얼굴은 고통 때문인지 잔뜩 일그러졌고 이를 꽉 깨문 탓에 얼굴에 힘줄이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복부를 꽉 감싸고 있었다.임유진은 문득 전에도 위경련 때문에 그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떠올랐다.혹시 또 위경련인 건가?사실 오늘을 돌이켜보면 그럴 만도 했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모자라 강현수와 술을 마실 때 그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니 아마 공복에 술만 들이켰을 것이다.“너 위 아파?”임유진이 묻자 강지혁은 입을 꾹 닫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조금 젖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비서님한테 연락해서 너 병원 데려가라고 할게.”“됐어.”그때 강지혁이 힘겹게 힘을 열었다.“너 나 안 사랑한다며, 나 원하지 않는다며, 내가... 싫다며? 그러면 내가 아픈걸 보고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임유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를 훑어보았다.지금의 그는 무척이나 약해져 있고 얼굴은 창백한 것이 툭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기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강지혁, 난 너랑 달라.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증오할 만큼 싫어해도 그 사람의 아픈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는 않아.”임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고 비서님한테 연락하는 게 싫으면 여기서 잠깐 기다려. 약 사올 테니까.”그녀는 말을 마치고 휴대폰과 열쇠를 들고 월세방을 나갔다.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작은 공간에 강지혁 혼자 남겨졌다.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왜 그녀의 말에 전혀 기뻐할 수 없는 거지?지금 약 사러 간 건 마음속에 남은 연민 때문인 걸까?그 순간 위가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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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3화
임유진... 유진아...이렇게 아픈데 왜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의 이름과 그녀의 웃는 얼굴만 떠오르는 것일까.왜 그녀의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 한마디에,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 한마디에 이토록 절망스러운 것일까.커다란 물웅덩이에 온몸이 빠진 기분이다. 어떻게든 발버둥 쳐보려고 해도 점점 더 깊게 가라앉아 기어코 질식해버릴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다.그때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걸음 소리와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그녀가 돌아온 걸까?늦은 밤에 그를 위해 약을 사러 갔다가 돌아왔던 그때처럼?그날 힘겹게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임유진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약 먹어. 약 먹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임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고 이내 가녀린 손이 몸을 부축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강지혁은 코끝에서 스치는 익숙한 그녀의 향기에 천천히 두 눈을 떴다.두 눈에 그녀가 가득 담긴 순간 공허했던 마음이 단숨에 뭔가로 꽉 찬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이 여자를 갖고 싶다고, 이 여자를 곁에 두고 싶다고 소리치고 있었다.임유진은 약을 강지혁의 앞에 내려놓고 말했다.“이건 한 알만 먹으면 되고 이건 두 알 먹어야 해.”그녀가 약을 손에 올려놓고 건네주자 강지혁은 약을 보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며 오로지 그녀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임유진은 그 눈빛이 어쩐지 가슴을 꾹 짓누르는 것 같았다.“왜? 혹시 약 먹기 싫어서 그래?”전에 그가 약 먹는 걸 싫어한다는 말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만약 내가 앞으로 평생 누나가 원하던 동생이 된다고 하면? 그래도 날 버릴 거야?”강지혁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유진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녀는 손에든 약을 가만히 내려다보더니 “응.”이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어딘가 초연한 웃음을 지었다.“나한테 너는 동생이 될 수 없어.”임유진은 강지혁과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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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4화
얼마나 지났을까, 가시지 않을 것 같던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았다.강지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침대에서 내려와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왔다.숨소리가 고른 것을 보니 이미 잠이 든 것 같아 보였다.그는 허리를 숙이고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아 침대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춥지 않게 옆에 있던 이불도 덮어주었다.강지혁의 시선은 임유진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아까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만약 그녀와 모든 게 끝이 나면, 그러면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아까 살 이유가 뭐였는지 잊어버렸다.강지혁은 과거의 자신을 비웃듯 실소를 터트렸다.그의 생사는 여전히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다.헤어지기만 하면 인생의 주도권을 다시 돌려받고 그녀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낱 여자의 배신 때문에 목숨까지 포기해 버리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다.그는 줄곧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그저 정신승리일 뿐이었다....다음 날, 고이준은 아침 댓바람부터 강지혁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임유진의 집 앞으로 왔다. 그러자 거기에는 벌써 강지혁이 대기하고 있었다.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강지혁의 뺨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고이준은 그걸 보더니 숨을 헙하고 들이켜고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 빨간 자국은 누가 봐도 누군가의 손바닥 자국이었다.강지혁이 임유진에게 뺨을 맞았다는 사실에 고이준은 지금 상당히 놀라버렸다.S 시에서 강지혁의 얼굴에 손을 올리고 자국까지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쥐도 새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다.하지만 상대가 임유진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지난번 임유진의 친구 한지영도 강지혁의 뺨을 때리고서 별 탈 없었으니 임유진이 때린 건 아마 벌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다.잔인하고 매정한 강지혁이 임유진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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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5화
언젠가 임유진이 강현수에게 활짝 웃어주며 다정하게 포옹하고 자신과 했던 것들을 강현수와 하며 심지어 강현수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이러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강지혁은 견딜 수가 없다.사랑이라는 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거라는 걸 그는 톡톡히 느꼈다....임유진은 알람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어느새 소파가 아닌 침대 위에 있었다.강지혁이 침대까지 옮겨다 준 걸까? 물어볼 것도 없이 그 가능성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 방 안에는 강지혁이 어디에도 없다.머리맡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약이 없어진 걸 보니 그래도 다행히 약은 먹은 것 같았다.다만 나머지 약은 가져가지 않고 탁자 위에 그대로 있었다.지금쯤 아픈 건 다 나았을까?임유진은 속으로 그를 걱정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아침이 되었으니 고이준도 함께 있을 테고 정말 아픈 거라면 진작에 병원을 갔을 테니 그녀가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임유진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로펌으로 출근했다.사무실에 도착하니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힐끔힐끔 그녀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녀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그러다 평소 궁금한 건 못 참던 여자 동료가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유진 씨 정말 강현수 씨랑 사귀는 거예요? 어제 퇴근했을 때 유진 씨 데리러 온 거 보고 다들 부러워죽겠다며 난리예요. 우리뿐만이 아니라 강현수 씨를 노리고 있는 연예인들도 엄청나게 부러워할걸요?”임유진은 한껏 과장하며 부러운 표정을 짓는 동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뒤에 쓸데없는 사족을 많이 붙이는 건 그녀가 강현수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이다.아무 말 없는 임유진을 보며 여자 동료가 다시 뭐라 얘기하려고 입을 열려던 그때 옆에 있던 누군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어머, 한나 씨, 왜 그래요?”정한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사무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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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6화
“그건 모르는 일이죠.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사랑을 만난 걸 수도 있잖아요. 강현수 씨가 여자친구한테 이토록 지극정성인 거 처음 아니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현수 씨는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에 한 번도 부인하는 기사를 내지 않았잖아요. 이런 걸 종합해 보면 답 딱 나오지 않아요?”그럴싸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임유진을 부러워했던 눈길이 지금은 동정으로 변했다.정한나는 신이 나서 더 떠들어댔다.“그리고 배여진 그 여자 드라마 촬영할 때 강현수 씨가 같이 가줬대요. 물론 드라마 배역도 강현수 씨가 준 거고요. 그렇게 물심양면인데 만약 정말 유진 씨한테 마음이 있었다면 솔직히 우리 로펌에 출근시키는 것보다 로펌 하나 차려줄 것 같지 않아요? 앗...”정한나는 실컷 떠들어대다가 마지막에 못 할 말을 했다는 양 미안한 얼굴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미안해요, 유진 씨, 나도 그냥 해보는 소리예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정말 강현수 씨가 조만간 유진 씨한테 로펌이라도 차려줄지...”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속에는 강현수가 너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조롱으로 가득했다.정한나의 말에 주변 동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강현수가 정말 임유진을 좋아한다면 이런 곳에서 변호사 비서나 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그들은 임유진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모두 제자리로 가버렸다.임유진은 정한나의 말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했다. 정한나는 신이 나서 혼자 얘기하다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그때 누군가가 정한나를 향해 외쳤다.“어머, 한나 씨 지금 인기 검색어에 한나 씨 이름 올라왔어요!”그 말에 정한나가 뒤를 돌아 고개를 갸웃거렸다.기사를 확인한 동료들의 시선이 하나둘 정한나에게로 가서 꽂혔다.정한나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확인했다. 인기 검색어에는 그녀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세레나의 이름도 있었다.그 순간 그녀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동영상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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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7화
“한나 씨 우리한테는 유진 씨랑 사이좋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뒤에서 이런 짓을 해요?”“겉과 속이 다른 거죠. 뭐가 됐든 한나 씨 다시 봤어요.”동료들은 저마다 그녀에게 싸늘한 한마디를 내뱉고는 자리로 돌아갔다.정한나는 지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임유진을 로펌에서 내보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잘릴 판이었다.정한나는 자리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더니 결국 오늘도 월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한편 임유진은 정한나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아까부터 손에 있는 자료들만 정리했다.며칠 뒤면 이재하의 재판이 열리게 된다. 소지혜는 여태 자신이 가해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경찰 측에서 재수사한 결과 그녀가 가해자라는 증거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모든 일이...임유진은 문득 타자를 멈추고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어젯밤 그녀는 이 손으로 강지혁의 뺨을 내리쳤다. 그리고 강지혁은 이 손을 바라보며 아프지는 않냐고 물었다.아파도 맞은 사람이 더 아팠을 텐데 말이다.‘어제 약 먹고 나서 아픈 건 좀 나았을까...?’‘세상에, 왜 또 걱정하는 거야! 그만 걱정해. 아예 생각하지 마, 임유진!’임유진은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강지혁의 걱정을 떨쳐냈다.강지혁은 그녀의 인생에 잠시 들른 손님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다.그러니 그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강씨 저택.고이준은 지금 상당히 불안한 얼굴로 별채 앞을 서성거리고 있다.이곳으로 들어간 지 벌써 3시간째, 강지혁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오늘 있을 중요한 미팅 몇 건은 부득이하게 전부 취소되어 버렸다.오늘 임유진의 집에서 나온 뒤부터 강지혁은 어딘가 이상해졌다.고이준은 지금 임유진에게 전화해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체 무슨 충격을 받아 강지혁이 모든 일을 제치고 별채에만 들어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강지혁은 평소 특별한 날짜가 아닌 이상 별채 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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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8화
그때 적막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강지혁은 전화를 받고 상대의 말을 듣더니 담담하게 알겠다는 한마디를 내뱉고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다시 위패를 바라보았다.“저는 역시 아버지 아들이 맞나봐요. 한 여자를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그 여자에게 버림받으면 살아갈 이유를 잃는 것을 보면. 하지만 저는 아버지처럼 죽을 생각은 없어요. 절대.”말을 마치고 강지혁은 별채에서 나왔다.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대기하던 고이준은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제야 활짝 웃었다.“대표님, 나오셨어요?”“노인네 병원으로 갈 거니까 차 대기시켜.”강지혁은 큰 표정 변화 없이 지시를 내렸다.“네, 알겠습니다.”몇 분 뒤, 강지혁을 태운 검은색 승용차가 강씨 저택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VIP 병실.허약한 몸의 노인은 지금 병상에 누워 의사의 말을 듣고 있다. 노인은 자신의 몸상태를 나열하는 의사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 건지만 말해.”의사는 조금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답했다.“많게는 6개월 정도고...”“적게는?”강문철이 되물었다.“적게는 4개월 정도로 보입니다.”“알았어. 이 교수가 제안했던 치료 받을테니 이만 나가 봐.”강문철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전부 내보낸 후 옆에 있는 비서에게 말했다.“이따 지혁이 오면 깨워.”“네, 알겠습니다.”한때는 S 시를 주름잡았던 전설의 인물이 지금은 잔뜩 쇠약해진 채로 병상에 누워 삶의 끝을 기다리고 있다.강지혁이 병실로 들어왔을 때 강문철은 자고 있었다.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야윈 모습이었다. 약 때문에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고 볼은 살이 없어 푹 꺼져있었다. 누워있는 그의 주위로 죽음의 기운들이 감싸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확실히 늙으셨네.’허약해진 강문철을 보며 강지혁은 어쩐지 복잡한 기분이었다.강문철의 비서가 지시대로 깨우려고 하자 강지혁이 제지했다.“좀 더 주무시게 놔둬. 깰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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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9화
“제가 누구와 함께 있든 그건 제 일이지 할아버지가 관여하실 일이 아니에요.”강지혁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콜록, 콜록...”강문철은 그 대답에 심기가 뒤틀렸는지 몸을 움직이다가 기침이 새어 나왔다.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말했다.“그렇게도 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으냐?”“왜요. 할아버지도 유진이가 내 목숨을 앗아갈 것 같으세요?”강지혁이 되물었다.강문철은 잠깐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강현수 그놈도 그 아가씨를 좋아하더구나. 걔는 아직 그 아가씨가 자기가 찾고 있던 여자인 걸 모르고 있다지? 만약 그놈이 그걸 알게 되면 너한테 승산이 있을 듯싶으냐? 네가 그때 헤어지기로 한 것도 그 아가씨가 언젠가 강현수 그놈 때문에 너를 배신할까 봐서가 아니냐?”강지혁은 강문철을 빤히 바라보았다.이 세상에서 아직 그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이 노인네가 틀림없다.“배신하지 못하게 하면 되는 일이죠.”“사람 마음이라는 건 그 누구도 모르는 거다. 너는 그 아가씨가 너를 배신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강문철이 정곡을 찌르자 강지혁이 입을 다물었다.“임유진 그 아가씨는 너를 망가트릴 거야.”강문철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건 맞지만 나는 죽어서도 강씨 가문이 그 여자 때문에 망하는 꼴은 못 본다.”“유진이한테 손댈 생각하지 마세요.”강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상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강문철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유진이 털끝이라도 건드리면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강씨 가문을 내 손으로 무너트릴 겁니다.”“너!”그 말에 강문철이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강지혁의 눈은 절대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무척이나 단호했다.“하, 그래... 콜록 콜록.”공들여서 키워낸 후계자가 고작 여자 하나 때문에 이때까지 강씨 가문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강문철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그래. 건드리지 않으마. 하지만 너도 언젠가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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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0화
윤이는 예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지영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탁유미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리기는 해도 자신이 유치원을 다닐 수 있게 된 게 눈앞에 있는 낯선 이모와 아저씨의 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고맙습니다, 이모.”윤이는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귀에 있는 인공와우가 아니었으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모를 만큼 똑 부러진 아이였다.“고맙기는. 참, 나는 한지영이야. 지영이 이모라고 불러.”솔직히 한지영은 아이에게 자신을 누나라고 소개하고 싶었지만 임유진이 이모가 된 이상 누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민망했다.“네, 지영이 이모.”한지영은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콕 집었다.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은 윤이는 볼을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반응을 보니 한지영이 싫지는 않은 듯했다.아이는 앙증맞은 두 손으로 한지영의 목을 감싸더니 그녀의 볼에 쪽 하고 뽀뽀했다.한지영은 마치 아기천사에게 뽀뽀 받기라도 한 듯 활짝 웃더니 결국 못 참고 아이를 꼭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연이의 흰 볼이 단번에 빨갛게 달아올랐다.백연신은 두 눈을 반짝이며 주접을 떠는 그녀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20살만 더 젊었어도 당장 침 발라 놓겠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아이에게 질투한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그 역시 잘 알고 있지만 제멋대로 피어오르는 질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결국 백연신은 한지영의 품에 안긴 연이를 한 손에 들어 올렸다.“다들 이제 식사하러 가시죠?”한지영은 갑자기 연이를 품에서 뺏어간 백연신에게 불만을 품었다가 그의 눈빛을 받고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백연신은 그들을 데리고 어느 고급진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룸에 들어가 주문을 마친 후 그는 유치원 원장의 연락처를 탁유미에게 건넸다.“내일 윤이 데리고 가시면 됩니다. 아이의 상황은 미리 얘기해뒀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고마워요. 정말 진심으로요.”탁유미는 재차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요 며칠 그녀의 줄곧 유치원 일 때문에 가슴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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