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971 - Chapter 980

1603 Chapters

제971화 일어나기 어렵다

검은 천에 팔이 묶인 채 시선까지 가려져 하윤의 눈에는 그저 희미한 실루엣만 보였다.벗어나려고 마구 버둥대도 보았지만 오히려 남자의 악랄한 웃음만 불러올 뿐이었다.“착하지? 이러는 게 예뻐.”화가 난 하윤이 다리를 올려 도준을 차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남자의 손에 잡혀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심지어 도준은 커다란 손으로 꽉 잡은 하윤의 다리를 쓱 쓸어 올렸다.“그러고 보니 우리 혼인 신고하고 나서 합방도 안 했네?”“누가 도준 씨랑……, 읍…….”입을 가린 손바닥 사이로 하윤의 항의 소리가 흘러나왔다.“작게 말해. 목 아껴뒀다 이따가 소리 내.”“…….”하윤의 가슴에 떨어졌던 달빛은 결국 남자의 손에 부서졌다 남자가 원하는 모양대로 다시 빚어졌다.다시 샤워를 하고 난 뒤 하윤은 소원대로 편한 옷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하윤은 그것도 모른 채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곤히 잠들어 버렸다.다음날.도준이 깨어 났을 때, 하윤은 그의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도준의 커다란 옷 때문에 넥 라인이 비뚤어져 어깨를 훤히 드러낸 모습으로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어른의 옷을 훔쳐 입은 어린아이처럼 우스꽝스러웠다.도준에게 안겨 다시 침대에 누운 하윤은 열원이 갑자기 멀어지자 추운 듯 몸을 움츠린 채 머리를 베개 밑으로 파고들려고 했다.도준은 그런 하윤의 머리를 다시 베개 위에 올려 놓은 뒤, 하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그 힘이 컸는지 하윤의 잘 다듬어진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딱 봐도 단잠을 방해받아 불쾌한 모습이었다.결국 도준의 방해에 하윤은 흐릿한 눈을 비비며 깨어나더니 자리에 앉아 있는 도준을 보고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벌써 가요? 옷 돌려 줄게요.”하윤이 움직이려는 찰나, 도준은 하윤의 손을 잡아 다시 이불 속으로 집어넣었다.“됐어. 이 옷 입고 있는 게 예뻐. 그대로 입고 있어.”하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내 앞에서 옷 마구 벗으면 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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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2화 놀라서 오줌을 지리다

두 사람을 번갈아 일으켜 세우며 진땀을 뺀 후에야 두 사람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장옥분은 여전히 격동된 마음으로 눈물을 훔쳤다.“동생, 걱정하지 마. 내가 가진 건 없어도 은혜를 꼭 갚는 성격이거든. 물론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퇴원하면 꼭 변호사 비용과 병원비를 갚을 게.”“그럴 필요 없어요. 그때 언니가 구치소에서 저 많이 챙겨줬잖아요. 언니가 없었다면 저 그 안에서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저도 은혜 갚은 것뿐이에요.”“아니야. 이게 어떻게 비교가 돼?”장옥분은 흐느끼는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동생이 몰라서 그렇지, 동생이 나한테 정말 큰 도움을 준 거야. 나는 죽어도 상관없지만, 동생이 다정이를 그 놈들 손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우리 다정이의 인생은 아마 그대로 망가졌을 거야.”“다정이 참 철들었더라고요.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예요. 그런데…….”하윤은 다정을 바라보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정씨 집안 사람들 쉽게 나가 떨어질 것 같지 않던데, 앞으로 또 귀찮게 하면 어떡해요?”그 말에 장옥분이 놀란 듯 물었다.“설마 모르는 거야?”‘뭘요?’하윤은 어리둥절했다.“정씨 집안 사람들 어제 일로 한바탕 돈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어제 동생과 같이 왔던 남자가 오늘 찾아갔더니 놀라서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대.”‘도준 씨 말하는 건가?’하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러니까 어제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던 원인이 그 사람들 겁주러 가려던 거였어?’솔직히 도준의 성격에 장옥분과 다정의 생사를 걱정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 도준이 이렇게 번거로운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는 건 하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였을 거다.그걸 인지하는 순간, 차갑던 하윤의 마음도 사르르 녹아 더 이상 도준을 차갑게만 바라볼 수 없었다.장옥분은 하윤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산전수전 다 겪어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그 사람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이지? 조금 무섭다 뿐이지 생긴 건 정말 잘생겼던데.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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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3화 나이가 어려 달래기 힘들다

다시 병실로 돌아가는 정다정의 뒷모습을 보며 한민혁은 낮게 중얼거렸다.“그래도 두 모녀가 생각보다 단단해서 다행이네요.”“그러게요.”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솔직히 두 사람은 권하윤의 도움으로 더 편한 생활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모녀는 그러지 않았다.장옥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자 하윤은 얼른 민혁에게 물었다.“오늘 아침 혹시 도준 씨와 함께 정씨 집안 식구들 찾아갔어요?”“네. 그 집 식구들이 도준 형 때문에 겁먹어서 헛구역질을 해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하윤 씨는 모르죠? 저는 그 자리에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민혁은 아무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심지어 하하 소리 내어 웃다가 이내 뭐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어, 혹시 도준 형이 말 안 해 주던가요?”“안 했어요.”하윤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민혁은 하윤의 기색을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하윤이 화를 내지 않자 또 다시 도준의 칭찬을 이어갔다.“솔직히 그 정도 일에 도준 형이 직접 나설 필요는 없었는데, 그 사람들이 주제도 모르고 하윤 씨한테 손찌검했잖아요.”하윤은 어느새 마음이 풀려 저도 모르게 도준을 걱정했다.“그래도 그렇지 조 국장과 함께 시찰하러 온 사람들이 아직 안 떠났는데 정씨 집안 사람들이 또 소란을 피우면 어쩌려고 그랬대요? 여긴 경성도 아닌데,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는지.”하윤의 말에 민혁은 더 분발해서 말을 이었다.“그러게 말이에요. 그러니까 도준 형한테 전화해서 좀 뭐라고 해요.”민혁은 하윤이 얼른 도준의 연락처 차단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에 열과 성의를 다해 도준 편을 들었다. 도준이 이미 직접 손을 썼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그렇다고 민혁의 그런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하윤이 한참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끝내 도준의 번호를 눌렀으니까.대기음이 약 두 번 정도 울리는가 싶더니, 통화는 이내 연결되었다.“혹시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전류에 섞여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가볍고 느릿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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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4화 가만두지 않겠어

[뭐 갖고 싶은 거 있어?]권하윤은 문자를 보고 어리둥절했다.‘갖고 싶은 거?’아무리 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한마디에 하윤은 어안이 벙벙해 얼른 답장을 작성했다.[혹시 다른 사람한테 보낼 거 저한테 잘못 보낸 거예요?][나 다른 사람의 소원 같은 거 들어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분명 도준 씨 말투 맞는데?’‘그럼 정말 나한테 물어본 건가?’하윤은 잠깐 동안 생각해 보다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자 대뜸 대답했다.[딱히 갖고 싶은 게 없어요.][없으면 천천히 생각해, 생각 날 때까지.]하윤은 도준이 또 무슨 병이 도졌다고 생각해 더 이상 상대도 하지 않았다.강원에 있는 며칠 동안, 하윤의 주위는 늘 떠들썩했는데 경성에 돌아오니 순간 썰렁해졌다.그도 그럴 게, 며칠 전에는 집에 그나마 다정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혼자 남았으니 그렇게 느껴질만도 했다.다정이가 집에 돌아온 후 겪은 일을 들은 유정인은 한참 동안 흐느껴 울다가 문뜩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참, 이건 제가 전에 다정이의 베개 밑에서 발견한 건데, 그동안 보관하고 있었어요.”유정인이 건넨 종이를 받아 보니, 그 위에 다정이가 그린 그림이 있었다.연필로 간단히 스케치한 그림이었는데 어찌나 열심히 그렸는지 곳곳에 지우개 흔적이 남아 있었고, 심지어 여기저기 많이 구겨지기까지 했다.그림에 담긴 자신의 옆모습을 본 순간, 하윤은 눈시울이 약간 뜨거워졌다.모퉁이에 남겨진 글자체는 앳되고 미숙했다. [다정.]……이틀 동안 혼자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끝에, 사흘째 되던 날 저녁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시영 언니? 왜, 왜 그래요?”인상 속에서 늘 흐트러짐 없던 민시영은 양볼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심지어 하윤의 말에 손을 휘휘 저으며 술 냄새를 풍기기까지 했다.“많이 놀랐죠?”하윤은 시영을 부축해 앉히더니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 술은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눈에 취기가 가득한 시영은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오히려 일이라면 좋은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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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5화 주정뱅이를 손보다

민시영은 잔에 든 술을 마시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모든 게 지루해서요…….”짤막한 말과 함께 시영의 기억은 오후로 되돌아 갔다.송민우의 프러포즈는 웅장하고 낭만적이었다.송민우의 반지를 받아 주며 환호 속에서 그와 포옹도 했다.심지어 저녁에는 송민우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기까지 했다.그러던 그때, 시영의 사촌이 술에 취해서 농담을 건넸다“캬, 역시 민우 씨는 배포가 남다르네요.”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이 말 한마디는 바다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하지만 시영만은 그 말을 정확히 들어 버렸다. 명성을 신경 쓰는 사람인지 물으면, 시영의 답은 당연히 ‘노’다.명성은 시영에게 있어서 프로젝트가 채택되기보다 의미 없었다.솔직히 사촌의 도발에 얼어붙은 분위기는 대충 말 몇 마디면 이내 반전시킬 수 있었다.하지만 방금 결혼을 약속했기에 굳이 제가 나서서 분위기를 풀 필요가 없었다.때문에 시영은 그저 송민우를 빤히 바라봤다.송민우 역시 시영을 바라보며 여전히 온화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술 취해서 꺼낸 말이니 신경 쓰지 마요.”……기쁜 장면이 눈 앞에서 막을 내리자, 시영은 얼른 슬픈 얼굴을 한 하윤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솔직히 저와 송민우가 결혼에 골인한다면 분명 순수한 의도는 아닐 거예요. 그런데…….”송민우는 오늘 벌어진 상황을 그저 묵인했다.어쩌면 송민우는 마음 속으로 시영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이미 시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다. 시영도 제 주제를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니까.하지만 이제 막 결혼을 약속했으면서 자기 약혼자를 모욕하는 말을 그저 묵인하는 건 안 되지.시영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같은 여자로서 하윤은 시영의 심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그럼, 그 사람하고 결혼할 거예요?”시영은 잔에 가득 든 술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해야죠. 저랑 송민우는 처음부터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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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6화 저리 가요, 도준 씨 싫어요

민도준은 몸을 숙인 채 권하윤의 목에서 나는 향을 들이켰다. 하윤 특유의 체향이 술향기에 섞여 조금은 특별한 단내가 나는 듯했다.마치 술에 담근 과일사탕처럼 저도 모르게 취해 버리는 그런 향이었다.그리고 그 순간 하윤을 데리고 목욕하러 가려던 생각은, 갑자기 드는 생각에 의해 대체되었다.‘밤새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생고생을 했는데, 대가를 받아내지 않으면 좀 억울하겠는데?’심하게 취해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하윤을 도준은 얼른 욕조에 눕혔다.얼음처럼 차가운 욕조 벽에 살이 닿은 탓에 하윤은 당황한 듯 손을 허우적대며 이것저것 만졌다. 그러던 와중 하필이면 수도꼭지를 잘못 다쳐 미처 온도를 조절하지도 못한 물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온도에 하윤은 낮은 비명과 함께 몽롱한 눈을 떴다.그 순간, 욕조 벽을 짚고 있는 남자의 울끈불끈한 팔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그 팔을 따라 올라가 보니 이내 하윤을 이렇게 만든 원흉의 얼굴이 보였다.하윤은 미간을 약간 찌푸린 채 도준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 듯 바라보았다.깊은 생각에 잠긴 나머지, 물에 젖은 자기 잠옷을 본 순간 갑자기 변해버린 남자의 눈빛은 눈치채지도 못했다.오히려 취기 어린 눈으로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꿈이 왜 이렇게 리얼하지?”방금까지만 해도 시영과 술을 마셨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 곳에 나타나지 말하야 할 남자가 나타났다는 건, 꿈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됐다.“쏴!”그때, 욕조에 흘러 드는 따뜻한 물이 하윤의 추위를 이내 쫓아냈다.흠뻑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고 긴 머리가 그대로 드리워 끝부분이 젖어 들었다.도준은 하윤이 사레가 들릴까 봐 일부러 물을 많이 담지는 않았다. 고작 반쯤 채워진 물 속에서 하윤은 흐리멍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누드 톤 슬립 원피스는 물에 흠뻑 젖어 하윤의 몸매 라인을 그대로 드러냈다.온풍기를 켠 욕실이 금세 더워졌다.심지어 등쪽에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난로가 꼭 붙어 있어 더 더워났다.하윤은 뜨거운 열기를 쫓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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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7화 날 바라봐 줘

다음날.숙취로 인해 무거운 머리를 겨우 쳐드는 순간, 누군가 하윤의 볼을 만졌다.“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어나.”‘이 목소리는…….’그제야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난 하윤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도준을 보자 순간 멍해졌다.“도, 도준 씨가 왜 여기 있어요?”도준은 손등으로 하윤의 볼을 만졌다.“내가 아니면 어젯밤 술 주정은 누가 받아줬겠어?”하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어제의 기억을 한참 동안 더듬었다. 그제야 갑자기 무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오늘 실험 훈련 있는 날 아니에요? 도준 씨가 여기 오면 해원 쪽은 어떡해요?”도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계를 힐끗 쳐다보더니 여유롭게 대답했다.“아직 4시간 남았어. 정리하고 나와, 같이 가자.”“저도 같이요?”멍하니 있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얼른 이불을 걷으며 재촉했다.“더 꾸물대면 정말 늦어. 얼른 준비해.”비몽사몽 세수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다.‘어젯밤 일이 꿈이 아니었어? 도준 씨가 정말 돌아왔던 거야?’하윤은 입에 칫솔을 물고 얼버무리며 말했다.“제가 같이 가도 돼요?”도준은 화장실 문에 기대어 입가에 거품을 문 하윤을 보며 싱긋 웃었다.“내가 걱정되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보여주려는 거야.”확실히 지난번의 일 때문에 실험 훈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 나는 건 맞았다. 이런 불안함은 도준이 아무리 약속하고 장담해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런데 도준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게다가 전용기를 타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다.차에서 내린 하윤은 곧바로 전용기가 세워진 쪽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도준이 갑자기 하윤의 팔을 붙잡았다.시간이 너무 촉박한 탓에 하윤은 안달이 났다.“왜 그래요?”도준은 하윤더러 얼른 하늘을 보라는 듯 고개를 젖혔다.“눈 와.”눈꽃이 한 송이 한 송이 하윤의 얼굴에 떨어졌다.이건 경성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다. 아직 섣달이 채 되지 않은 터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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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8화 마음이 약해지다

권하윤은 깜짝 놀라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봤는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민도준의 손이 하윤의 얼굴을 돌렸다.“움직이지 마, 주물러줄게.”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하윤은 더 이상 버둥대지 않고 도준의 품에 파고들며 머리를 기댔다.작고 가냘픈 몸으로 도준의 커다란 몸에 기대니 그대로 삼켜질 것만 같았다.그때, 도준의 손바닥을 하윤의 관자놀이에 대고 느긋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저보다 두 배는 더 큰 손아귀의 힘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아팠지만 한참 문지르자 점점 편안해져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까지 나왔다.“편안해?”“그냥 그래요.”하윤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하지만 하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준의 다른 한쪽 손이 아래로 쓱 내려갔다. 이에 놀란 하윤은 눈을 번쩍 떴지만 크게 소리내지는 못한 채 아우성쳤다.“뭐 하는 거예요!”“다른 손이 놀고 있을 순 없잖아. 혈액 순환이라도 도와주려고 그러지.”“헛소리! 이렇게 혈액순을 돕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이거 민간요법이야, 걱정하지 마. 무슨 병이든 싹 다 낳게 해줄 테니까.”장난 섞인 도준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다른 꿍꿍이가 다분했다.하윤은 화가 난 나머지 발꿈치로 도준을 걷어찼다. 하지만 도준은 하윤의 그런 반항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제 멋대로 행동했다.그렇게 한참 뒤, 하윤이 나른해지고 나서야 도준도 손을 거두었다.가뜩이나 숙취가 있었는데 일찍 일어난 것도 모자라 한바탕 괴롭힘까지 당하자 하윤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도준은 그런 하윤을 제 자리에 눕히지 않고 그대로 꼭 안았다.착륙하면서 덜컹거리는 비행기 때문에 마지못해 눈을 떴을 때, 의자는 누울 수 있을 정도로 뒤로 젖혀져 있었고 곁에 있는 도준은 잠을 보충하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어제 밤새 운전한 것도 모자라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고, 이따가 또 실험 훈련까지 해야 하네.’충분히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하윤은 도준을 깨우는 대신 턱을 괸 채 도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하윤의 시선은 호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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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9화 의기양양하다

민도준이 떠난 뒤에도 권하윤은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멀리에서 헬기 특유의 소리가 들렸고, 도준의 말대로 하윤은 첫번째로 내달리는 비행기를 보게 되었다.도준이 바로 그 안에 있다는 걸 생각하니 눈에 보이는 두꺼운 금속 덩이에서마저 생명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하지만 공중에서 소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하윤은 더 이상 그 비행기를 찾을 수 없었다.“펑.”폭발 소리가 들려왔다.비록 몇 백 미터 떨어져 있었지만 연속된 폭발 소리에 하윤은 귀가 저릿해났다.애타는 시선으로 좇아가 보니 선두에 선 비행기에서 연기가 하늘을 찌르며 폭발했다. 그 모습은 마치 새벽의 구름을 뚫고 나오는 태양 같았다.저도 모르게 그 안에 도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솔직히 하윤은 이것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었다. 비행기의 갯수를 세어 사람의 안부를 판단하는 게 최선이었다.시간이 1분 1초가 지났지만, 오랫동안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자 하윤의 심장은 점점 요란하게 쿵쾅거렸다.그때 옆에 있던 민혁이 안절부절 못하는 하윤을 얼른 위로했다.“끝나면 아마 영도의 연설이 이어질 것 같은데 잠깐 차 안에서 기다릴래요?”하윤도 이런 중요한 실험 훈련이 단기간에 끝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마지못해 차에 올라탔다.신호를 막아 둔 탓에 핸드폰도 사용할 수 없어 하윤은 창가에 기대 밖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러던 그때, 갑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소리가 들렸다.하윤은 뭔가 느끼기라도 한 듯 얼른 내렸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딛지 딛자마자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그때 헬리콥터에서 내린 도준이 안전모를 뒤로 던지더니 마중 나온 하윤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은 채 빙빙 돌았다.“성공했어, 자기야.”하윤은 도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봤었다. 포악한 모습,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피비린내 나는 모습, 그리고 미친 듯한 모습까지…….하지만 유독 이렇게 의기양양하고 멋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보니 눈이 부셔서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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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0화 정직하지 않은 취미

민도준은 권하윤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옆구리 살을 살살 긁으며 농담조로 말했다.“우리 같이 도망칠까?”하윤은 도준의 어깨를 툭 내리쳤다.“저리 가요.”‘도망은 무슨, 결혼도 했는데 뭔 놈의 도망이래.’“우린 이제 경성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급할 거 뭐 있어?” 도준은 마치 무슨 장난감을 주무르듯 하윤의 어깨선을 따라 주물럭거리며 의미 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일단 어디 가서 좀 쉬자.”……두 번째로 방을 잡은 상황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하윤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경성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집이 있는데 돌아가지 않고 방 잡는 건 또 무슨 취미래?’그때, 도준이 딱딱한 카드키로 하윤의 턱을 들어 올렸다.“해원이 자기 고향이잖아. 고향에 손님이 왔으면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그러면 뭐, 여기에서 유명한 음식이라도 대접할까요?”고개를 홱 돌리며 말하는 순간, 도준이 단단한 팔로 하윤의 허리를 감쌌다.“아니야, 난 네가 더 좋아.” “아!”도준은 그대로 하윤을 들러 멘 채 욕실로 향했다. 곧이어 닫힌 욕실 문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막아 버렸다.……두툼한 철문이 열렸다.“11072784번 수감자, 면회요.”유리로 분리된 공간 안, 특수 제작된 의자에 앉은 케빈 앞에는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무전기가 놓여 있었다.면회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케빈의 시선은 이미 유리 바깥쪽에 있는 여자를 휘감았다.시영의 시선도 오롯이 케빈을 향해 있었다. 죄수복을 입고 있는 남자를 보는 순간, 시영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끔거렸다.시영은 무전기를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말했다.“잡아.” 비록 들리지 않았지만 케빈은 그래도 바로 시영의 명령에 복종했다.수화기를 들고 경건한 듯 귓가에 갖다 대더니 마른 침을 몇 번 삼키고 나서야 입을 뗐다.“아가씨.”하지만 돌아오는 건 시영의 역겨운 듯한 눈초리였다.“무슨 자격으로 나를 아가씨라고 불러? 버려진 개 따위한테 그렇게 불리니 역겨워.”케빈은 아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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