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섭정왕의 왕비로 환생하다: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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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그러나 이것은 절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낙청연은 방 안에 앉아 있었는데 눈꺼풀이 심하게 떨렸다.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아예 그만뒀다.“왕비 마마, 왜 이렇게 불안해하십니까?”등 어멈이 걱정스레 물었다.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하늘이 보였다. 낙청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밤, 낙월영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네가 보기에 왕야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으냐?”등 어멈은 그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그렇다면 왕비 마마께서는 왜 가짜를 주신 것입니까?”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마치 억울함과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듯이 말이다.“분이 풀리지 않아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또 원래 낙청연의 화풀이도 해주고 싶었다.부진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이 연모하는 이를 구하려고 했다. 심지어 낙청연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를 해치면서까지 말이다.그게 너무도 억울했다.그가 그럴수록 낙청연은 낙월영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낙월영과 부진환 두 사람 모두 자신을 괴롭혔으니 말이다.자신도 편히 지내지 못하는데 두 사람이 편히 지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말이 끝나자마자 처소 밖에서 통곡하는 소리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등 어멈은 그 소리에 순간 안색이 돌변하더니 얼른 자리를 옮겨 상황을 살펴보려 했는데 누군가 거세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온몸에서 분노와 살기를 내뿜고 있는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온몸을 휘감은 난폭한 기운은 그를 지옥에서 온 수라처럼 보이게 했고 사람들은 그의 모습에 겁을 먹어 감히 그의 얼굴을 직시할 수가 없었다.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방문 쪽으로 향했고 경악한 얼굴로 부진환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흉포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는데 눈에는 핏발이 섰고 이마에는 파란 핏줄이 돋아있었으며 미간 사이에는 은은하게 혈선(血線)이 보였다.부진환은 아예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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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낙청연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녀는 눈썹을 까딱이면서 부진환을 바라봤다.“천산설련은 이미 왕야께 드리지 않았습니까? 왕야께서 진정 필요하신 건 천산설련이 아니라 제 목숨 아닙니까?”낙청연의 냉혹한 목소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그러나 그 말투가 부진환의 화를 돋웠는지 부진환은 또 한 번 손을 들어 낙청연의 뺨을 때렸다.“내 앞에서 또 연기를 하는 것이냐! 아니면 태부부에서 너에게 가짜 천산설련을 줬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비릿한 향을 풍기는 피가 낙청연의 입가에서 뚝뚝 떨어졌다. 피로 얼룩진 그녀의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낙청연은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부진환의 모습을 보고 냉소를 흘리며 대꾸했다.“왕야, 이렇게 가다가는 곧 죽을지도 모릅니다.”부진환의 눈동자는 더욱 탁해져 있었고 정서적으로도 이성을 잃고 많이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갖고 있던 용의 기운도 더는 그를 보호할 수 없었고 상황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 심각했다.그러나 부진환의 노여움은 점점 더 정도가 심해졌다. 그는 낙청연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화를 돋우고 자신을 도발한다고 생각했다.그는 화가 난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다.“수색하거라!”부진환의 명령을 받은 호위들은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가 방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지면서 수색을 시작했다.낙청연은 바닥에 앉은 채로 호위들의 자신의 방을 뒤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마치 범인의 처소를 뒤지듯 굴었고 왕비의 존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등 어멈과 지초는 완전히 겁에 질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낙청연 대신 부진환에게 사정하고 있었다.그러나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는 부진환의 눈에는 울먹이고 있는 낙월영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왕야… 천산설련이 없으면 전 어떡합니까? 제 얼굴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까?”낙월영의 눈물은 멈춘 적이 없었고 그녀가 쓰고 있던 면사포는 이미 눈물로 푹 젖어있었다.부진환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그러졌다.“없으면 내가 사람을 보내 다른 곳에서 구해 오게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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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낙청연은 미간이 떨렸다. 부진환의 두 눈에서는 탁한 기운이 물씬 풍겼고 심지어 살벌한 기세까지 섞여 있었다.낙청연은 돌연 은침 하나를 꺼내 들더니 몸을 일으켜 부진환의 목덜미에 침을 꽂았고 부진환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들의 안색이 달라졌다.“왕야께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낙월영은 대경실색하면서 화를 냈고 소유는 긴장한 얼굴로 부진환을 부축했다.“무슨 짓을 하신 것입니까?”낙청연은 유유자적한 얼굴로 입가의 피를 닦아내더니 몸을 숙이고 부진환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왕야께서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걸 보아내지 못한 것이냐? 지금 기절시키지 않으면 기혈이 역류해 죽었을 것이다.”부진환의 맥을 낙청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상초열이 난 것 같기도 하고 화병이 난 것 같기도 했는데 호흡이 흐트러져 있었고 광증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이외에 몸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광증이라고는 해도 화로 인해 발광하는 정도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여봐라, 왕야를 처소로 옮기거라!”소유가 즉각 분부했다.부진환이 사람들에게 실려 갈 때도 낙월영은 울고 있었다.“왕야…”소유는 그런 그녀를 말렸다.“둘째 아씨, 왕야께서는 많이 피곤하신 것 같으니 오늘 밤은 편히 쉬게 두시지요. 약은 제가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게 하겠습니다. 여봐라, 둘째 아씨를 모시거라.”낙월영도 돌아간 뒤 소유가 떠나려고 할 때, 낙청연이 그를 불러세웠다.“소유, 내 너한테 할 말이 있다.”소유가 몸을 돌렸다.“왕야의 광증 증상은 아마도 낙월영과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데, 발견했느냐?”낙청연의 질문에 소유는 놀란 얼굴이었다. 낙청연은 얼굴 전체에 피를 묻히고 있었는데 그런 상태에서도 그녀는 왕야를 걱정하고 있었다.낙씨 가문의 둘째 아씨는 울 줄만 알지, 왕야가 자신을 도와주기만을 바라는데 왕비는 그런 낙청연에 비해 훨씬 나았다.낙청연은 소유가 넋을 놓고 있자 다시 물었다.“설마 왕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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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낙청연은 한 번 깨어나서 피를 토했다.다행히도 낙용 고고가 준 약초가 있었기에 그날 밤 상처가 심해지는 것을 제때 막을 수 있었다.다음 날 낙청연이 깨어났을 때 부진환은 아직도 혼미한 상태였다.낙청연은 탁자 옆에 앉아 탕약을 마시고 있었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양쪽 다 손해인데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어젯밤 부진환이 그녀를 때렸다고는 하나 그 역시도 자신의 화 때문에 몸이 많이 상한 상태였고 상황이 더욱 심각했으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다.부진환은 어젯밤 목숨을 건진 셈이었다.“왕비 마마, 왕야의 병증이 아주 심각한 것 같사온데 왕야께 문안을 가시는 것 어떻습니까?”등 어멈은 낙청연이 공로를 세운다면 부진환이 그녀를 좋게 볼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낙청연은 그녀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내가 가서 무엇하겠느냐? 왕야는 내가 왕야를 해칠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설사 내가 왕야를 구할 것이라는 걸 믿는다고 해도 왕야께서 내가 원하는 걸 준다고 확신할 수도 없지.”그녀는 부진환과 거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그러나 어머니의 유물을 낙청연은 지금껏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그래서 괜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약을 마신 뒤 낙청연은 화지를 펴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등 어멈은 그녀의 곁에서 먹을 갈았다.왕비가 그린 초상화를 봤을 때 등 어멈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왕비 마마, 낙태부께서는 이런 초상화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설마 낙태부의 돌아가신 아드님의 얼굴을 아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낙태부의 시선을 끌 생각이십니까?”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더니 붓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렇게 하면 낙태부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겠느냐?”등 어멈은 이목구비가 그려지지 않은 초상화를 보니 곤혹스럽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그녀는 왕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 뒤로 낙청연은 몸이 조금 나아지자 자주 밖에 나갔고 일부러 낙월영과 부진환을 피해 다녔다.그녀는 저택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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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왕야의 병세는 워낙 심각했기에 왕야께서 현저히 나아지기 전까지 소유는 낙월영이 왕야를 만나지 않았으면 했다.왕비의 말이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낙월영을 경계한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었다.연일 부진환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낙청연은 부진환이 병세가 심각해 밖에 피난을 갔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또한 낙청연은 낙월영을 최대한 피하고자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넓은 왕부에서 낙월영 혼자 온종일 울고불고 난리를 쳤지만 그녀를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부진환은 거의 한 달 동안 요양했고 낙태부의 생신 하루 전에 돌아왔다.그날 밤 낙월영은 감히 울지 못했다. 바로 다음 날 낙태부의 생신을 위해 태부부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낙월영의 얼굴은 아직 낫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면사포를 쓰고 연회에 가야 했다.오늘 외출할 때 낙청연은 부진환과 낙월영이 출발한 뒤 혼자 출발했다.—태부부에 거의 도착해서 보니 거리 전체가 평소와 달리 떠들썩했고 빈객들이 타고 온 마차들이 거리가 꽉 찰 정도로 가지런히 멈춰 세워져 있었다.낙청연도 미리 마차에서 내려 태부부의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얼마 걷지 않았는데 낙해평이 낙월영과 함께 동료 집안의 도령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낙씨 가문의 둘째 아씨께서는 재능과 외모 모두 출중하시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군요.”사람들은 낙월영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고 낙해평은 체면이 서는 기분에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었다.그러나 낙청연이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낙해평의 미소가 돌연 굳었다.낙청연이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분명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왜? 날 망신 당하게 할 생각인가? 불효녀 같으니라고.낙해평은 빠른 걸음으로 낙청연에게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를 힐문했다.“네가 여기는 웬일이냐? 내가 얘기했었잖느냐? 오지 말라고. 얼른 돌아가거라. 오늘이 어떤 자리인지 너도 알고 있겠지. 괜히 사람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돌아가.”낙해평은 목소리를 낮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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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들려오는 소리에 사람들은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단정한 차림새를 한 낙용이 기세 좋게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낙용은 대문 쪽으로 걸어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낙해평을 바라보며 말했다.“승상 대감, 이분은 제가 모신 귀한 손님이십니다.”낙용은 낙청연을 바라볼 때 친절하고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낙청연의 손을 맞잡았고, 낙청연 또한 자연스럽게 낙용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다정하게 그녀를 불렀다.“고고.”낙용은 웃는 얼굴로 그녀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내가 얘기했잖느냐. 넌 오늘 연회에 마음껏 참석할 수 있다고. 누구도 널 막을 수는 없단다.”낙해평은 경악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을 바라봤다.주위의 다른 빈객들도 놀란 얼굴이었다. 그들은 낙태부가 낙 승상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기세 넘치고 가차 없는 성정의 낙용이 낙 승상을 고까워하지 않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낙 승상의 딸이 낙용을 고고라고 부른 것이다.고고라고 부르는 낙청연의 목소리는 더없이 맑았고, 그녀의 부름에 낙용은 웃음꽃이 피었다.낙해평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영문을 몰랐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순간 기뻐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낙용이 자신의 딸을 받아줬다는 것에 기뻤지만 낙청연이 자신 몰래 낙용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언짢았다.이렇게 큰일을 그한테 알리지 않았다니!낙월영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었지만 면사포를 쓰고 있었기에 그녀의 표정변화는 뚜렷하지 않았다.낙월영은 곧이어 웃는 얼굴로 낙용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에 팔짱을 끼려 했다.“고고…”낙청연도 그녀를 고고라고 부를 수 있으니 자신 또한 가능할 것이라 여긴 것이다.그러나 낙용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의 붙잡힌 팔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다들 넋 놓지 말고 안으로 드시지요.”낙용은 낙월영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팔을 빼내는 동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태도는 명확했다.낙월영은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에 당장 쥐구멍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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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낙태부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참을성 있게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비록 겉으로는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다들 낙태부가 선물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게다가 선물은 대부분 초상화였다. 열어보면 그 내용이 다양했으나 대부분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네를 타는 것도 있었고 장난을 치는 것도 있었으며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쉬는 것도 있었다. 초상화들은 전부 훌륭했으나 오래 보고 있으면 평범해 보였다.게다가 낙태부의 방 안에는 이미 백여 개가 넘는 초상화들이 걸려있었다.낙청연도 그 기회를 틈타 누가 준 초상화에 문제가 있는지를 관찰했다.몰랐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제대로 살펴보니 엉망진창이었다.거의 모든 초상화들에 문제가 있었다.화폭을 여는 순간 두 모자가 불길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비록 작은 소리였지만 귀가 따가웠다.옆에 있던 낙용은 낙청연의 안색이 좋지 않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엇을 보아냈느냐?”낙청연은 목소리를 낮춘 채로 낙용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이 초상화를 준 사람들을 전부 기록해두세요. 그리고 조금 이따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 사람을 시켜 알아보십시오.”낙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사람을 시켜 기록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의 주의력은 줄곧 초상화와 낙태부에게 올려지는 선물들에 있었고 누가 그 선물을 건네는지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또 하나의 초상화가 펼쳐지는 순간,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초상화에는 그 어떤 사악한 기운도 없었고 그저 평범한 초상화 같아 보였다.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그 초상화는, 지금껏 모자 둘이 유희하는 초상화들보다는 다소 초라해 보여도 그것들 중 가장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낙청연은 잠깐 놀랐다가 그 초상화를 바친 이가 부진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제가 재능이 없어 간단히 아이의 얼굴만 그렸고 사모(師母)님의 얼굴은 그리지 못했습니다.”부진환은 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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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그 뒤로 이어진 것은 폭소였다.“하하하, 반만 만들어진 것을 들고 온 것인가?”“참 어이가 없구먼. 이렇게 어이없는 선물은 또 처음일세.”포복절도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몸이 떨릴 정도로 격렬히 웃으며 낙해평에게 말했다.“낙 승상, 자네 딸 참으로 재미있구먼. 자네가 왜 딸을 태부의 생신 연회에 부르지 않았는지 알겠소. 정말 큰 망신을 당했구먼 그려.”낙해평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주먹을 꽉 쥐었다.낙청연이 오늘 여기까지 온 이유는 어쩌면 그에게 큰 망신을 주기 위한 걸지도 몰랐다.망할 자식!낙월영은 낙청연의 모습에 속으로 의기양양했다. 초상화를 선물로 드릴 것이면 그저 평범한 초상화나 준비할 것이지 완성도 되지 않은 물건을 선물이라고 드린다니, 생각이 없는 멍청한 인간이라 생각됐다.너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아버지,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때 언니를 그리 왕부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요. 저것 좀 보세요. 저희 가문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았습니까?”낙월영은 억울한 듯이 원망하는 어조로 말했다.낙해평도 후회가 됐다. 애당초 낙청연을 왕부로 돌려보내서는 안 됐다. 이런 불효녀 같으니라고! 내 말을 전부 흘려듣기나 하고!오늘이 지나면 왕야와 상의해 낙청연을 휴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낙청연이 내쫓기는 것도 그로서는 창피한 일이었지만 낙청연이 계속 이렇게 자신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부진환은 낙청연이 펼친 초상화를 보자 더욱더 미간을 구겼다.“잘못 가져온 것이 아니더냐?”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얼굴이 그려지지 않은 초상화를 보며 말했다.간단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낙청연의 손재주가 좋지 않다는 게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눈, 코, 입은 그려야지.이렇게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은 초상화가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게다가 하필 오늘 낙태부에게 이것을 드리다니.사람들의 웃음소리에도 낙청연은 꿋꿋했다. 그녀는 오히려 그 초상화를 들고 낙태부에게로 걸어갔다.“낙태부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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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하지만 이어진 말은 더욱더 놀라웠다.낙태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낙청연에게 말했다.“이걸 나한테 줄 수 있겠느냐?”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것은 원래 낙청연이 낙태부에게 주려던 선물이었고 겨우 그림 한 폭이었다.하지만 낙청연은 낙태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은 그 초상화를 통해 본 것들이었다.낙청연은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당연합니다. 이것은 원래 태부 할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태부 할아버지께서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이 초상화를 볼 수 있지요.”그 말에 낙태부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낙청연을 보는 눈빛마저 자애로워졌다.“그래. 이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아주 마음에 든다.”그 말에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낙태부가 겨우 이런 일로 낙청연을 손녀로 인정하다니?낙해평은 경악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낙청연을 바라봤고 자리에 앉아있던 낙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옷소매를 꽉 잡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낙태부가 갑자기 낙청연을 자신의 손녀딸로 인정하다니?지금껏 낙월영은 낙해평과 함께 태부부를 여러 차례 방문했었지만 낙태부와 만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낙태부도 종래로 그녀에게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손녀로 인정할 리는 더더욱 없었고.낙청연이 뭐가 그리 잘났길래? 겨우 그림 한 폭으로 낙태부의 손녀딸로 인정받는 것인가?낙월영은 증오심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낙월영뿐만 아니라 정원에 있던 사람들 모두 믿지 못했다.부진환은 그 초상화를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그 초상화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길래 낙태부가 이렇게나 기뻐하고 심지어 낙청연을 손녀로 인정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낙태부는 낙청연의 아버지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낙해평은 곧바로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둘째 삼촌.”낙태부는 낙해평을 보자 미소를 거두어들이며 화제를 돌렸다.“오늘 다들 이 늙은이의 70세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와줘서 고맙네. 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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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태부 할아버지께서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과거의 악몽에 얽매이게 된 것인지 아십니까?”’낙태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초상화를 보면서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넌 그 이유를 알고 있느냐?”낙청연은 화폭을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부적 하나를 꺼내 화폭의 끄트머리에 붙였다.아—처참한 비명이 낙태부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두 모자가 나무 아래서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던 초상화는 순식간에 두 사람이 불길 속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돌변했다.그에 겁을 먹은 낙태부는 순간 몸을 움찔 떨면서 그 초상화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긴장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저건 무엇이냐?”낙청연은 느긋하게 초상화를 주워 들더니 그것을 접어 옆에 놓으며 말했다.“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그림들이 다 이러하지요. 이것이 바로 태부 할아버지께서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이유입니다.”그 말에 낙태부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낙청연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란 말이냐?”낙태부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번에 왔을 때 전 이미 보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때 태부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셨지요. 그래서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입니다. 이 초상화들은 전부 태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 초상화들은 다른 사람이 손 써놓은 것이었다. 배후에 있는 자는 아마도 진짜 두 모자를 가두어놓은 초상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그림들은 그 초상화의 살기가 물든 것일 터였다.낙태부는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말한 대로 해야겠다.”평정을 되찾은 낙태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대체 누가 그를 해치려는 것일까?“아이야, 이 그림들을 통해 누가 날 해치려는 것인지 알 수 있느냐? 이렇게 많은 그림들이 전부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은 아니겠지.”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할 리가 없었다.낙청연은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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