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어진 말은 더욱더 놀라웠다.낙태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낙청연에게 말했다.“이걸 나한테 줄 수 있겠느냐?”다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그것은 원래 낙청연이 낙태부에게 주려던 선물이었고 겨우 그림 한 폭이었다.하지만 낙청연은 낙태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지고 싶은 것은 그 초상화를 통해 본 것들이었다.낙청연은 싱긋 웃으면서 답했다.“당연합니다. 이것은 원래 태부 할아버지의 생신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습니다. 태부 할아버지께서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이 초상화를 볼 수 있지요.”그 말에 낙태부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낙청연을 보는 눈빛마저 자애로워졌다.“그래. 이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참으로 고맙구나. 아주 마음에 든다.”그 말에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낙태부가 겨우 이런 일로 낙청연을 손녀로 인정하다니?낙해평은 경악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낙청연을 바라봤고 자리에 앉아있던 낙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옷소매를 꽉 잡았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낙태부가 갑자기 낙청연을 자신의 손녀딸로 인정하다니?지금껏 낙월영은 낙해평과 함께 태부부를 여러 차례 방문했었지만 낙태부와 만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낙태부도 종래로 그녀에게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손녀로 인정할 리는 더더욱 없었고.낙청연이 뭐가 그리 잘났길래? 겨우 그림 한 폭으로 낙태부의 손녀딸로 인정받는 것인가?낙월영은 증오심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낙월영뿐만 아니라 정원에 있던 사람들 모두 믿지 못했다.부진환은 그 초상화를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그 초상화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길래 낙태부가 이렇게나 기뻐하고 심지어 낙청연을 손녀로 인정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낙태부는 낙청연의 아버지도 인정한 적이 없었다.낙해평은 곧바로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둘째 삼촌.”낙태부는 낙해평을 보자 미소를 거두어들이며 화제를 돌렸다.“오늘 다들 이 늙은이의 70세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와줘서 고맙네. 더는
“태부 할아버지께서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과거의 악몽에 얽매이게 된 것인지 아십니까?”’낙태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초상화를 보면서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넌 그 이유를 알고 있느냐?”낙청연은 화폭을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부적 하나를 꺼내 화폭의 끄트머리에 붙였다.아—처참한 비명이 낙태부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두 모자가 나무 아래서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던 초상화는 순식간에 두 사람이 불길 속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모습으로 돌변했다.그에 겁을 먹은 낙태부는 순간 몸을 움찔 떨면서 그 초상화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긴장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저건 무엇이냐?”낙청연은 느긋하게 초상화를 주워 들더니 그것을 접어 옆에 놓으며 말했다.“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그림들이 다 이러하지요. 이것이 바로 태부 할아버지께서 매일 밤 악몽을 꾸는 이유입니다.”그 말에 낙태부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낙청연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이란 말이냐?”낙태부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번에 왔을 때 전 이미 보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때 태부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셨지요. 그래서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입니다. 이 초상화들은 전부 태워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 초상화들은 다른 사람이 손 써놓은 것이었다. 배후에 있는 자는 아마도 진짜 두 모자를 가두어놓은 초상화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 그림들은 그 초상화의 살기가 물든 것일 터였다.낙태부는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말한 대로 해야겠다.”평정을 되찾은 낙태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대체 누가 그를 해치려는 것일까?“아이야, 이 그림들을 통해 누가 날 해치려는 것인지 알 수 있느냐? 이렇게 많은 그림들이 전부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은 아니겠지.”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려 할 리가 없었다.낙청연은 잠시
낙청연은 잠시 놀랐다.낙운희가 경솔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낙태부는 표정을 굳히면서 어두운 안색으로 호통을 쳤다.“운희야. 네 모습을 보거라. 어딜 봐서 대갓집 규수 같아 보이느냐?”“할아버지. 낙청연은 저희 집안에 잘 보이려고 온 것입니다. 절대 저 헛소리를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낙운희는 흥분하며 말했다.낙청연이 어머니의 믿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 낙운희는 화병으로 며칠을 앓았었다. 그런데 낙청연이 이제는 자신의 할아버지까지 속이려 하고 있었다.낙태부의 안색은 더욱더 안 좋아졌다. 그는 엄숙한 얼굴로 그녀를 호되게 꾸짖었다.“네 방으로 돌아가거라.”“할아버지!”낙운희는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돌아가라는 데도!”낙태부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낙운희는 발을 구르다가 몸을 돌려 떠났다.그녀는 감히 할아버지한테 대들지 못했다.낙운희가 도망가자 낙태부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쟤가 제일 문제란다. 쟤 어머니가 너무 엄하게 가르쳐서 그런지 성격이 참 반항적이야. 하지 말라고 할수록 더 기를 쓰고 하려고 하지. 낙월영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데도 낙월영과 계속 왕래하더구나.”그 말에 낙청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태부 할아버지는 밖의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예를 들면 낙운희가 낙월영과 가까이 지내면서 낙월영의 부추김에 따라 낙청연을 비웃고 괴롭히는 일 같은 것을 말이다.낙운희는 성격이 워낙 제멋대로였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가시 돋친 말에 원래도 자신감이 없던 낙청연은 그녀를 아주 두려워하게 됐다.“할아버지, 이제 이것들을 태울 준비를 하세요.”낙청연은 말머리를 돌렸다.“그래.”낙태부는 낙청연이 총명하다고 생각했고 보면 볼수록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일부러 그녀에게 고자질할 기회를 줘서 낙운희를 단단히 혼내 그녀의 분풀이를 해줄 생각이었는데 낙청연은 그 점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면서 화두를 돌린 것이다.잠시 뒤 낙태부는 하인을
낙청연은 웃는 얼굴로 초상화를 낙태부에게 건네며 말했다.“할아버지, 오늘 받은 그림 중에서 왕야의 그림만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남겨두시지요.”그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낙태부는 감개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그 많은 사람들이 초상화를 선물로 줬는데 그중에 왕야의 그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문밖에 서 있던 사람은 그 의미심장한 말이 다르게 들렸다.부진환의 눈빛이 싸늘해졌고 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낙청연이 일부러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는 주먹을 꽉 쥐더니 몸을 돌려 떠났다.낙태부의 말을 들은 낙청연은 급히 설명했다.“할아버지, 이 그림은 왕야께서 직접 그리신 뒤 줄곧 곁에 보관해 두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들이 손을 못 썼을 것입니다.”그 말에 낙태부는 뒷짐을 지면서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왕야를 왜 그렇게 감싸고 도는 것이냐? 내가 너한테 왕야가 의심스럽다고 한 적 있느냐? 부진환은 지금 섭정왕으로 권세가 대단하고 수완도 인정사정없지만 내가 가르쳤던 아이다. 나에게 불만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날 상대하지는 않겠지.”그 말과 함께 낙태부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까지 나와 우리 가문을 상대하려는 걸 보면 아마 우리에게 큰 원한이 있는 모양이구나.”낙청연 또한 그 문제를 생각해 보았으나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다.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낙씨 가문을 겨냥한 사람에게는 분명 큰 원인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집안 비밀과도 연관 있을지 몰랐기에 쉽게 물어볼 수 없었다.“할아버지, 사람을 보내 오늘 수도의 어딘가에 불이 붙지 않았는지 알아보게 하세요. 불길이 센 곳일수록 이 배후가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일 가능성이 큽니다.”그 말에 낙태부는 깜짝 놀랐다.“그럼…”그의 시선은 거센 기세로 타오르는 화로에 멈췄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꼭 잡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자를 고생스럽게 만들 수는 있지요.”수도는 아주 컸고 어디에 불이
낙태부는 그 말에 미간을 구겼다.“너희 어머니는… 몇 번 만난 적 없어서 인상이 없구나. 하지만 아주 훌륭한 여인이었다. 그때 난 낙해평이 무슨 덕을 쌓았길래 너의 어머니처럼 대단한 인물과 혼인을 올린 건지 감탄했었지. 하지만 난 너희 어머니와 별로 교류한 적이 없었기에 다른 인상은 없구나.”그 말에 낙청연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드러났다.“솔직히 얘기하면 이것들은 제 어머니가 남기신 책에서 배운 것입니다. 피상적으로만 조금 배웠지요.”그 말에 낙태부는 더욱 놀라며 말했다.“너희 어머니가 할 줄 알았던 것이구나. 어쩐지. 승상부에서 대단한 스승을 모셨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네가 어찌 이런 것들을 할 줄 아는 것인가 의아했다.”낙태부는 낙청연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지난 몇 년 동안 억울한 게 많았을 텐데 앞으로 낙해평이 또 못살게 굴면 날 찾아오거라. 이 할아버지가 네 편을 들어주마.”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그리고 그는 밖에 대고 소리쳤다.“여봐라, 가서 낙해평을 불러오너라.”낙청연은 잠깐 멈칫하더니 낙태부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낙태부는 여유로운 얼굴로 의자 위에 앉았고 낙청연을 부르며 말했다.“앉거라.”낙해평은 낙태부가 자신을 만나려 하자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들뜬 얼굴로 내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그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긴장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둘째 삼촌!”낙태부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너에게 물으마. 낙청연은 네 친딸이 맞느냐?”낙해평은 영문을 몰랐고, 그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낙청연을 보니 괜히 마음이 복잡했다. 아버지는 서 있는데 딸은 앉아있다니.“네.”“그래?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주워온 게 아니더냐? 네가 싫다고 한다면 나는 청연이더러 낙용과 흥원(興元)이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게 할 생각이다. 앞으로 이 아이는 너와는 상관없으니 청연
낙해평은 비명을 지르더니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얼굴이 잿빛인 종복은 눈가가 시퍼랬고 두 눈은 동태눈 같은 것이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았다.“왜 소리도 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냐! 건방진 것!”낙해평은 자신을 진정시켰다. 승상으로서 종복에게 겁을 먹어 놀랐다는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체면이 서지 않았다.낙해평은 화를 내면서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를 뜨려 했다.그런데 낙해평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종복은 뻣뻣한 목을 돌리더니 동태눈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뭘 쳐다보는 것이냐!”낙해평은 버럭 성을 냈다.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창백하다 못해 잿빛을 띠는 손이 그를 덮쳐왔고 낙해평은 바닥에 쓰러졌다.낙해평은 정원에서 나온 지 몇 걸음 되지 않았기에 낙청연은 그 비명을 들었고 미간이 떨렸다.“할아버지, 제가 밖에 한번 나가 보겠습니다.”낙태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은 초상화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낙청연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는데 비명은 없었지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황폐한 낡은 정원으로 들어서자 낙청연은 소름 돋는 살기를 느꼈다. 태부부에 있는 더러운 것들은 이미 다 치웠을 텐데 여기에 왜…문을 여는 순간 한데 뭉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낙해평이었다.“아… 윽…”낙해평은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낙청연은 불길한 기분에 얼른 앞으로 나서면서 종복의 어깨를 잡았다.“넌 누구냐? 감히 태부부 안에서 암살하려 하다니!”그녀는 누군가 기회를 노려 낙해평을 죽이려는 줄 알았다.그런데 낙청연이 그 종복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그녀는 심장이 철렁했다.저건 분명…시체였다.그 종복은 고개를 돌리더니 돌연 낙청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낙청연은 잽싸게 그를 걷어찼다. 체중의 우세를 이용해 낙청연은 그 종복을 바닥에 쓰러뜨렸고 그를 바닥에 누른 채로 부적 하나를 그 종복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그제야 날뛰던 종복이 비로
낙용은 허리를 숙여서 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이것은 우리 저택의 하인이 아니다. 아버지의 생신 연회를 준비하기 위해 임시로 불러온 사람인데 저택에 온 지는 5일 정도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얼굴이… 이렇게 무섭지는 않았는데…”낙용은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이 언제 저택에서 죽었는지…아니면 저택에 왔을 때부터 이미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또 어떤 이들이 임시로 불러온 이들입니까? 전부 한곳에 모이게 한 다음 즉시 통제해야 합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어쩌면 저번 초혼번 일이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걸 수도 있었다.그들은 곧 사람들을 통제했다. 비록 다들 눈을 뜨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하고 눈알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었고 적지 않은 계집종들이 겁에 질렸다.낙청연은 곧바로 사람을 시켜 밧줄로 그들을 전부 묶어두었고 그들의 입안에 부적을 집어넣었다. 다들 진짜 산송장인지 발버둥 치지 않았다.아까 낙해평을 공격한 그 종복은 예정보다 빨리 발작을 일으킨 것 같았다.그런데 사람 수를 확인한 관사가 말했다.“아계(阿桂)가 없습니다!”“아계는 어디 있느냐? 누구 본 사람 없느냐?”낙용이 다급한 어조로 묻자 한 계종이 앞에 나서면서 말했다.“조금 전 북상방(北廂房)으로 가는 걸 보았습니다. 큰아씨의 정원으로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낙용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랑랑…”“내 지금 당장 가봐야겠다!”낙용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말하자 낙청연이 그녀를 덥석 잡았다.“제가 가겠습니다, 고고.”“그래, 부탁하마. 랑랑은 절대 무사해야 한다.”낙용은 조바심이 나는지 걱정스레 말했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다그치며 북상방으로 향했다.—북상방.낙랑랑은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을 봐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간단히 국만 마시고 고개를 들어 계집종을 바라보며 말했다.“먹을 것은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별로 배고프지 않구나.”아계는 고개를 숙인 채로
부진환은 서상방(西廂房)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한참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휘휘 저으니 그림자는 사라졌다.그러나 길을 걷다 보니, 그림자는 또다시 나타났다.세, 네 개의 그림자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부진환의 시선은 희미해지기 시작했지만, 그림자들은 더욱 선명 해졌다. 낙태부……인 것 같았다.재빨리 쫓아갔지만 어째서인지 눈앞의 시선은 한층 더 희미해졌다.부진환은 발걸음을 멈췄다.하지만 귓가에 낙태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의 희미한 그림자가 그를 향해 돌아보고 있었다.“진환, 어서 오거라, 멍하니 서서 뭐하는 게야?”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예.”그는 힘껏 머리를 흔들더니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갔다.하지만 부진환은 자신이 지금 서상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낙청연은 거의 제일 빨리 서상방에 도착했다. 그녀는 문도 두드리지 않은 채 바로 뛰어 들어갔다. “랑언니!”문을 밀고 들어가니, 낙랑랑은 침상에 누워있었다!그녀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설마 늦게 온 건 아니겠지?심장은 마치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서 낙랑랑을 끌어안았다.낙랑랑의 몸을 만져보더니 너무 뜨거워서 낙청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낙랑랑의 두 뺨은 열로 인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호흡도 몹시 가빠졌다. 이건 분명히 미독(媚毒) 증상이었다.그녀는 급히 낙랑랑의 옷을 검사하였다. 심지어 그녀의 옷을 찢어서 한 번 더 보았다.보고 난 낙청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이다, 다행이다!다행히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그녀는 급히 물을 떠오더니 젖은 수건으로 낙랑랑의 이마와 목을 닦아주었다.다행히 미독 증상은 심한 편이 아니었고 살짝 가벼운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이었다.그녀는 낙랑랑을 안고 방을 나가려고 했다.때마침 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남자의 발걸음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