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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왕비의 모든 챕터: 챕터 231 - 챕터 240

3038 챕터

제 231화

기라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한걸음 다가와 몸을 숙이고 “왕야. 소인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손을 뻗어 볼을 꼬집었다.“왕야!”기라(綺羅)가 놀라서 멍해졌다.“가보거라.”우문호가 손을 휘휘 저었다.보기엔 다 똑같은 얼굴인데 왜 원경릉의 볼은 꼬집었을 때 느낌이 다른 걸까?기라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왕야 잠이 오지 않으신다면, 소인이 잠향을 피워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그래라.”우문호는 자꾸 떠오르는 원경릉의 모습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기라가 피운 잠향에 그는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잠이 몰려왔다.몽롱한 기운이 감도는데 원경릉이 살금살금 들어와 침상 옆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 잠이 안 와. 나랑 같이 좀 걷자!”원경릉이 조용히 말했다.우문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동자를 보고 마음이 쓰였다.고요한 밤, 귓가엔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정원엔 길모퉁이마다 걸려 있는 양각 풍등(羊角風燈)의 불빛이 사방에 흩뿌려져있었다.두 사람은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밤바람에 겹겹이 일렁이는 호수 표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는 그녀를 감싸 안았다.“왜 아까 도망갔느냐?” 우문호는 작게 읊조리며 “너는 본왕을 보고 한 번도 마음이 동요된 적 없느냐?”라고 물었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당연히 있지. 널 좋아해.”“그런데 왜 도망갔어?” 그의 입술이 그녀의 뺨을 스치더니 이윽고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원경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의 앞에 서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비녀를 뽑고 긴 머리를 늘어뜨렸다. 밤바람에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흩날렸다.그녀가 손으로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저고리의 깃을 내리자 희고 수려한 어깨가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움푹 파진 쇄골이 드러났다.우문호의 숨이 빠르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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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2화

우문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사나운 얼굴로 “너…… 본왕의 이부자리를 빨아 오거라.”서일은 한쪽 눈을 손으로 감싸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문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남은 한쪽 눈에도 주먹이 날아왔다. 우문호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잔에 담긴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날이 밝지도 않은 어두컴컴한 시간, 서일은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며 이부자리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다.기라(綺羅)가 침상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우문호를 바라보니, 그는 화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와 눈을 마주치자 기라는 무서워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왕야께서 오늘 왜 이러시지?’기라는 벌벌 떨며 침상 위에 새 이부자리를 펴놓고 서둘러 나갔다.우문호는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였다.서일은 우물가에 쭈그리고 앉아 방망이로 연신 이불을 내리치며 울었다. 그 모습을 본 탕양이 멀리서 초롱(燈籠)을 들고 왔다. “서일.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왕야가 쓰라는 건 다 쓰고 이불을 빨고 있는가?”서일은 억울한 눈빛으로 탕양을 보았다. “탕어른께서는 어찌 주무시지 않고, 이 시간에 돌아다니십니까?”“잤다. 밖이 시끄러워서 나와 본 것이야.” 탕양은 서일의 옆에 앉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매번 왕야의 미움을 사는 거야?”라고 서일에게 물었다.서일은 한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네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왕야가 널 내보내고 다른 사람을 들일 수도 있어.”탕양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서일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잡고 있던 이불을 놓아버렸다.“탕어른! 그게 정말입니까? 왕야께서 설마 저를 내보내 버리려고?”“네가 이렇게 왕야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알다시피 왕야를 모시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 너 하나쯤 대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탕양은 어깨를 으쓱였다.서일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생각에 잠겼다.‘내가 비록 얻어 맞고, 욕을 먹어도 절대 이 자리를 남에게 내어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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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3화

“은화(银子)가 없는데 어떻게 여인을 부릅니까? 그곳은 은화로 계산을 합니다.”서일이 씩씩하게 말했다.“내일 회계방으로 와서 은화를 찾아가거라.” 탕양은 천천히 뒤를 돌며 “참, 왕야의 이불을 잘 빨아라.”라고 말했다.서일은 이런 생각을 해낸 자신이 대견해서 이불을 빠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원경릉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미치겠네! 도대체 우문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그녀는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렸다. ‘우문호를 정말 믿어도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폭력을 휘두르던 그가 한순간에 이렇게 바뀌다니? 하지만…… 그와 입을 맞추는 게 왜 이리도 좋을까?’마차를 타고 왕부로 돌아올 때, 그녀는 우문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 그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가 갑자기 입을 맞추는 바람에 그 평온함도 잠시였지만 말이다.만약 마차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면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원경릉은 자신이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문호의 숨결, 심장박동, 입술.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잠 못 들게 했다.‘제발 진정해!’그녀는 침상에서 내려와 찬물을 한 잔 마시며, 만약 계속 잠에 들지 못한다면 약 상자에서 수면제를 꺼내 한 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어 그녀는 약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그 안엔 수면제가 없었다.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다시 침상에 누웠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우문호 다섯 마리, 우문호 여섯 마리…….’다음 날, 두 사람 모두 일찍 눈이 떠졌다. 그 둘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온 채로 본관에서 마주쳤다.서로를 마주 보고는 넋이 나간 듯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서일도 눈 밑이 퀭한 채로 하품을 하며 본관으로 들어왔다. 때 마침 구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구사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판다 세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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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4화

회왕이 일어나지 않자, 원경릉은 밖에 나가 지난밤 시중을 든 사람에게 물었다. 시동은 간밤에도 피를 토한 적은 있었지만 기침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희상궁은 회왕이 약을 먹은 현황을 말했다. 저녁 식사 후에 한 번, 한밤중에 깨어나서 각혈 후에 또 한 번 복용했고, 오늘 아침은 아직 약을 먹지 않았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상궁님 수고하셨네요. 가서 주무세요. 낮에는 제가 지켜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희상궁은 고개를 저으며 “필요 없습니다. 회왕님이 약을 복용하는 시간 외에는 저도 잠을 잤습니다. 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는 노비(魯妃) 마마께서 보낸 사람이 시중을 들었습니다.” 라고 말했다.“그렇군요. 그럼 노비 마마는요?” 원경릉이 물었다.“주무십니다. 어젯밤 마마님께서 밤새 돌아다니셨습니다.”원경릉은 의아했다. 오늘 노비는 원경릉을 감시하지 않는 거지?그녀는 어제 노비가 그녀를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노비가 완전히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비가 끝끝내 나타나지 않자, 원경릉은 아마도 어제 회왕의 상태가 호전되면서 노비가 생각을 바꾼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희상궁과 원경릉의 대화 소리에 뒤척이며 기침을 두 번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시동이 수건을 들고 급히 달려갔다. 회왕은 시동의 도움을 받아 세수와 양치를 마친 후, 간단하게 머리를 정돈하고는 좁쌀죽을 먹었다.우문령은 마스크를 쓰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여섯째 오라버니. 초왕비가 왔습니다.”회왕은 원경릉을 보고 활짝 웃었다.“알겠다. 근데 넌 왜 이렇게 일찍 온 것이냐?”“며칠 내내 제가 회왕부에서 살다시피 한 것을 이제야 안 겁니까?” 우문령이 입을 삐죽거렸다.“어? 그래?” 회왕은 눈에 웃음을 머금은 채 우문령을 바라보며 “현모비(賢母妃)께서 여기 와 있다고 뭐라고 하지 않으시냐?” 라고 물었다.“모비는 항상 저를 꾸짖잖아요. 그래서 부황에게 이미 허락을 맡았죠.” 말을 마치고 우문령이 방석 위에 앉으며 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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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5화

회왕이 약을 복용한 이후 별다른 부작용은 보이지 않았다. 원경릉은 약 복용량을 좀 더 늘려 결핵균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바늘은 무엇이죠? 어의가 쓰던 것이랑 다른데?” 우문령이 다가와 물었다.“이건 결핵에 효과가 좋은 약입니다. 치료 기간은 보름 정도고, 일반적으로 이걸 사용하면 전염성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그 이후에 약을 바꿔 반년 정도 치료하면 완치가 가능합니다.”원경릉이 설명했다.우문령이 눈을 부릅뜨고 원경릉을 보았다.“진짜로 완치가 가능하다고요? 여섯째 오라버니의 병이 낫는다니, 정말 다행입니다!”원경릉은 미소를 지으며 회왕을 바라보았다. 회왕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했다.“병세를 보아하니 완치의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모든 병에 맞서 싸우려면 환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특히 환자의 낙관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저는 많은 환자를 만나봤는데 그중에는 이미 손을 쓰기 늦은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가 강해 오래 사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왕님 주변에서 이렇게 응원을 하는데 꼭 건강을 되찾으셔야죠.”원경릉의 말을 들은 회왕은 고개를 살짝 들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예. 초왕비 말이 맞습니다.”원경릉은 그가 아직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왕은 오랜 병치레 때문인지 시종일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원경릉은 회왕에게 약물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회왕은 겉으로 보면 치료에 협조적인 듯했지만 사실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자신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했으면서도 이것은 잠깐이고, 자신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병이 호전된 것을 보고 기뻐할 때, 그들을 따라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공허했다.“모두 나가주시지오. 제가 왕야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원경릉이 말했다.원경릉이 정색을 하며 말하자 우문령과 시동, 그리고 희상궁이 바쁘게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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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6화

원경릉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회왕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들었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본왕이 비관적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제가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던 상관없습니다. 제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판단을 하는 제가 당신을 고치는 사람이고요.” 원경릉은 의자를 끌어다가 회왕의 침상 옆에 앉았다.회왕은 그녀를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초왕비도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지 않습니까? 초왕비도 비관적인 것 아닙니까?”원경릉은 자신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게 회왕님 눈에는 거슬리십니까?”“거슬리는 건 아니고, 그냥 본왕이 병을 퍼뜨리는 죄인이 된 것 같아요.”“이 병에 걸린 게 죄가 아닙니다. 죄인이라뇨. 회왕님은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 것은 저를 보호하려는 겁니다. 제가 병에 걸린다면 회왕님은 누가 치료합니까? 저는 회왕께서 병에 걸린 후 3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압니다. 폐가 아파 거동도 힘드셨을 거고, 기침도 심하게 하셨을 겁니다. 긴 기간 동안 많은 어의들이 왕야의 병을 고치려고 시도했겠습니까? 그때마다 효과가 있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약을 바꾸면 또 효과가 있다가 다시 병이 나빠지고 했을 겁니다. 과거의 반복됐던 실패로 왕야께서 저를 신임하지 않으시는 거죠?”회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왕야께서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으시면 제가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결핵은 굉장히 위험한 병입니다. 왕야께서 의지를 가지고 협조해 주셔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본왕이 협조를 안 한다고?” 화가 나 빨개진 얼굴의 회왕이 고개를 돌려 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겉으로만 협조하는 척하는 거 압니다.” 원경릉이 일어나 그의 침상으로 가서 그가 방금 기침을 한 수건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축축한 알약이 있었다.회왕은 자신이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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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7화

원경릉은 몸을 돌려 몇 발자국 걸어가다 멈춰 서더니 갑자기 의자를 집어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의자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어지더니 회왕을 노려봤다. “너만 성깔 있는 줄 알아? 나도 성깔 있어! 내가 네 병 치료해 주면서 네 눈치까지 봐야 해? 네 병을 고친다고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지는 줄 알아? 천만의 말씀이야! 너는 너 하나만 죽으면 그만이지? 너 죽고 난 다음에 이 황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랑 같이 순장되는지 알기나 해? 그리고 이 약들이 얼마나 비싼 건 줄 알아? 어디 감히 약을 뱉어? 밖에 얼마나 많은 결핵 환자들이 약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이 시간부로 네가 약을 뱉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내 손으로 널 죽여버릴 거야! 제발 주위를 좀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를 아끼고 걱정하고 있잖아! 기왕비가 네가 죽을 거라고 한 헛소리는 믿으면서, 주변에서 널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거야? 현비가 반대해도 매일 여기로 출퇴근하는 우문령을 봐! 미안하지도 않니? 제발……제발 철 좀 들어!” 원경릉은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서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에는 잠에서 깨자마자 회왕부로 달려온 노비 마마도 있었다. 밖으로 나온 원경릉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기왕비가 달려와서는 그녀를 멈춰 세웠다.“초왕비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제가 언제 죽을 거라고 말했습니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세요.”원경릉은 뻔뻔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기왕비는 회왕의 병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는데도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겁니까? 아직 치료 중인 사람 들리라고 쩌렁쩌렁하게? 지금 와서 왜 딴 소리입니까? 분명 문 앞에서 회왕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회왕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말했잖아요? 여기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물어볼까요?”기왕비는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모두 입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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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8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노비 쪽으로 달려와서는 그녀의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부채질을 했다. 한참 뒤 노비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기왕비를 가리키며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너는 왜 회왕에게 그런 말을 한 거야? 힘도 없는 우리 가문이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회왕이 살아나면 네 앞길을 막을 것 같으냐? 그래서 내 아들의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빼앗는 것이야?”노비는 지금까지 아무도 기왕비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다.기왕이 태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황실 안에 있는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다들 쉬쉬하며 모른 체했다. 노비의 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기왕비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기왕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노비를 응시했다. “노비 마마, 예부터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노비 마마께서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며칠 동안 제가 걱정이 되어 회왕께 신경을 쓴 것이 되레 화를 불렀네요.”기왕비는 고개를 숙여 노비에게 인사를 하고는 원경릉을 쳐다보았다.“먼저 가보겠어요. 여섯째를 잘 돌봐주시지요.”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그래 저게 진정한 기왕비의 모습이지.’원경릉은 또 한번 기왕비의 처세에 감탄했다.기왕비가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노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노비는 창백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치료를 계속하세요. 만약 회왕이 약을 먹지 않는다면 입에 물을 부어서라도 먹이세요. 기왕비 말대로 여기 몇 사람이나 회왕이 살 거라고 믿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어미로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내 아들을 살리고 싶습니다.”노비는 남에게 미움을 사는 성격이 아니기에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기왕이나 기왕비같은 권력있는 자들의 심기를 거스를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노비는 기왕비가 일부러 회왕부에 들락날락하며 걱정하는 척 연기를 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게 아니기에 그냥 두었다. 하지만 오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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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9화

“이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잘 싸웠어요.” 우문령도 기왕비가 눈에 거슬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무모했네. 기왕비에게 미움을 사다니……. 앞으로 기왕비가 초왕 내외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입니다.” 낙평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오늘 일이 아니라도, 기왕 내외가 우문호와 나를 가만뒀을까? 전에도 우문호를 암살하려고 했는데?’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낙평공주를 보았다.“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회왕의 치료니까, 거기에 몰두 할 겁니다.”“일리가 있네요. 그럼 일단 치료에 몰두하세요. 근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본궁은 도와줄 수 없어요.” 낙평공주가 원경릉을 보고 말했다.“제가 도와줄게요!”우문령이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번쩍 들자, 낙평공주가 우문령의 이마를 한대 쳤다.“너는 좀 조용히 있어라. 앞으로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러느냐!”앞으로 황실에서 누가 권력을 쥐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낙평공주는 쉽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원경릉은 낙평공주의 행동을 보고 그녀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우문령은 어려서 잘 모르는 걸까? 아니면 천성이 이런걸까? 원경릉은 후자가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노비가 회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원경릉이 다시 회왕부로 치료를 하러 들어갔을 때 회왕의 태도가 조금 바뀐게 느껴졌다. 하지만 원경릉 마음 한구석엔 이것도 잠깐이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회왕이 약을 뱉어내는지 감시하느라 술시(戌時)까지 회왕부에 있었다. 날이 제법 어둑해지자 그녀는 초왕부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우문호가 데리러 오지 않자 원경릉은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초왕부로 돌아가는 마차가 청석(青石) 길 위를 달리자 이리저리 흔들렸다. 원경릉은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장막을 걷고 “마차를 세워라!”라고 외쳤다.마차가 멈추고 구사가 말에서 내렸다. “왕비님 무슨 일이십니까?”원경릉은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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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0화

구사가 잠시 침묵하더니 “권력은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다.“전부?”아닐걸요. 제가 보기엔 권력이 있다고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원경릉이 빈정거렸다.“권력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권력의 끝인 황제가 되어도 만족을 모르고 하늘의 신과 권력을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의 욕심에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우문호도 이렇게 될지 모르겠다.“구사와 초왕의 친분이 두터운 것 같던데, 알고 지낸지 얼마나 됐습니까?”그녀가 구사에게 물었다.구사는 빙그레 웃으며 “꽤 됐지요.”라고 말했다.“어린 시절을 공유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죠. 그럼 우문호와 주명취 사이의 일도 알고 있겠네요?”“알죠. 다 압니다.” 구사는 원경릉의 눈을 빤히 보며 “왕비는 뭐가 알고 싶은 겁니까?”라고 물었다.“알고 싶은 거 없어요. 그 둘 사이에 일을 내가 왜 알고 싶어 합니까.”구사는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소인은 왕비께서 초왕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줄 알았습니다.”원경릉은 뒤를 돌아보며“사서 고민하지 말자! 이게 내 좌우명입니다.”라고 말했다.구사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사서 고민하지 말자면서 왕야와 주명취의 일은 왜 물어보는 건가? 왕비의 말에 모순이 있다.“그만 걸을래요. 힘들어.” 원경릉이 말했다.구사는 장막을 걷어주며 “왕비. 잘 앉으세요.”라고 말했다.마차에 올라탄 원경릉은 장막을 치며 “구사 어른. 아침저녁으로 배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폐하의 명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구사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눈을 감고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정신을 가다듬었다.우문호는 원경릉보다 조금 일찍 왕부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원경릉을 마중 나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그녀가 자신을 거절했던 일이 생각나서 차마 가지 못했다. 그 역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회왕부에 가지 않았다. “왕야! 오셨습니까!” 서일이 문어귀에서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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