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회왕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들었죠? 이제 아시겠습니까? 본왕이 비관적인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제가 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요.”“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던 상관없습니다. 제 판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판단을 하는 제가 당신을 고치는 사람이고요.” 원경릉은 의자를 끌어다가 회왕의 침상 옆에 앉았다.회왕은 그녀를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초왕비도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지 않습니까? 초왕비도 비관적인 것 아닙니까?”원경릉은 자신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게 회왕님 눈에는 거슬리십니까?”“거슬리는 건 아니고, 그냥 본왕이 병을 퍼뜨리는 죄인이 된 것 같아요.”“이 병에 걸린 게 죄가 아닙니다. 죄인이라뇨. 회왕님은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면보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 것은 저를 보호하려는 겁니다. 제가 병에 걸린다면 회왕님은 누가 치료합니까? 저는 회왕께서 병에 걸린 후 3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압니다. 폐가 아파 거동도 힘드셨을 거고, 기침도 심하게 하셨을 겁니다. 긴 기간 동안 많은 어의들이 왕야의 병을 고치려고 시도했겠습니까? 그때마다 효과가 있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약을 바꾸면 또 효과가 있다가 다시 병이 나빠지고 했을 겁니다. 과거의 반복됐던 실패로 왕야께서 저를 신임하지 않으시는 거죠?”회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원경릉은 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왕야께서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없으시면 제가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결핵은 굉장히 위험한 병입니다. 왕야께서 의지를 가지고 협조해 주셔야만 나을 수 있습니다.”“본왕이 협조를 안 한다고?” 화가 나 빨개진 얼굴의 회왕이 고개를 돌려 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했다.“겉으로만 협조하는 척하는 거 압니다.” 원경릉이 일어나 그의 침상으로 가서 그가 방금 기침을 한 수건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축축한 알약이 있었다.회왕은 자신이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원경릉은 몸을 돌려 몇 발자국 걸어가다 멈춰 서더니 갑자기 의자를 집어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의자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어지더니 회왕을 노려봤다. “너만 성깔 있는 줄 알아? 나도 성깔 있어! 내가 네 병 치료해 주면서 네 눈치까지 봐야 해? 네 병을 고친다고 나한테 콩고물이 떨어지는 줄 알아? 천만의 말씀이야! 너는 너 하나만 죽으면 그만이지? 너 죽고 난 다음에 이 황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너랑 같이 순장되는지 알기나 해? 그리고 이 약들이 얼마나 비싼 건 줄 알아? 어디 감히 약을 뱉어? 밖에 얼마나 많은 결핵 환자들이 약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이 시간부로 네가 약을 뱉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내 손으로 널 죽여버릴 거야! 제발 주위를 좀 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를 아끼고 걱정하고 있잖아! 기왕비가 네가 죽을 거라고 한 헛소리는 믿으면서, 주변에서 널 응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거야? 현비가 반대해도 매일 여기로 출퇴근하는 우문령을 봐! 미안하지도 않니? 제발……제발 철 좀 들어!” 원경릉은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서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중에는 잠에서 깨자마자 회왕부로 달려온 노비 마마도 있었다. 밖으로 나온 원경릉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기왕비가 달려와서는 그녀를 멈춰 세웠다.“초왕비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제가 언제 죽을 거라고 말했습니까? 사람을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세요.”원경릉은 뻔뻔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기왕비는 회왕의 병세가 호전되기를 바라는데도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겁니까? 아직 치료 중인 사람 들리라고 쩌렁쩌렁하게? 지금 와서 왜 딴 소리입니까? 분명 문 앞에서 회왕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회왕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말했잖아요? 여기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물어볼까요?”기왕비는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모두 입 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노비 쪽으로 달려와서는 그녀의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부채질을 했다. 한참 뒤 노비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기왕비를 가리키며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너는 왜 회왕에게 그런 말을 한 거야? 힘도 없는 우리 가문이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회왕이 살아나면 네 앞길을 막을 것 같으냐? 그래서 내 아들의 실낱같은 희망마저도 빼앗는 것이야?”노비는 지금까지 아무도 기왕비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다.기왕이 태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황실 안에 있는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다들 쉬쉬하며 모른 체했다. 노비의 말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은 기왕비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기왕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조용히 노비를 응시했다. “노비 마마, 예부터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노비 마마께서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며칠 동안 제가 걱정이 되어 회왕께 신경을 쓴 것이 되레 화를 불렀네요.”기왕비는 고개를 숙여 노비에게 인사를 하고는 원경릉을 쳐다보았다.“먼저 가보겠어요. 여섯째를 잘 돌봐주시지요.”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그래 저게 진정한 기왕비의 모습이지.’원경릉은 또 한번 기왕비의 처세에 감탄했다.기왕비가 떠난 후, 많은 사람들이 노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노비는 창백한 얼굴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치료를 계속하세요. 만약 회왕이 약을 먹지 않는다면 입에 물을 부어서라도 먹이세요. 기왕비 말대로 여기 몇 사람이나 회왕이 살 거라고 믿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어미로서 목숨을 걸어서라도 내 아들을 살리고 싶습니다.”노비는 남에게 미움을 사는 성격이 아니기에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기왕이나 기왕비같은 권력있는 자들의 심기를 거스를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노비는 기왕비가 일부러 회왕부에 들락날락하며 걱정하는 척 연기를 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게 아니기에 그냥 두었다. 하지만 오늘같이
“이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원경릉이 한숨을 쉬며 어깨를 으쓱했다.“잘 싸웠어요.” 우문령도 기왕비가 눈에 거슬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무모했네. 기왕비에게 미움을 사다니……. 앞으로 기왕비가 초왕 내외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입니다.” 낙평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오늘 일이 아니라도, 기왕 내외가 우문호와 나를 가만뒀을까? 전에도 우문호를 암살하려고 했는데?’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고개를 돌려 낙평공주를 보았다.“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회왕의 치료니까, 거기에 몰두 할 겁니다.”“일리가 있네요. 그럼 일단 치료에 몰두하세요. 근데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본궁은 도와줄 수 없어요.” 낙평공주가 원경릉을 보고 말했다.“제가 도와줄게요!”우문령이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번쩍 들자, 낙평공주가 우문령의 이마를 한대 쳤다.“너는 좀 조용히 있어라. 앞으로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러느냐!”앞으로 황실에서 누가 권력을 쥐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낙평공주는 쉽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원경릉은 낙평공주의 행동을 보고 그녀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우문령은 어려서 잘 모르는 걸까? 아니면 천성이 이런걸까? 원경릉은 후자가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노비가 회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원경릉이 다시 회왕부로 치료를 하러 들어갔을 때 회왕의 태도가 조금 바뀐게 느껴졌다. 하지만 원경릉 마음 한구석엔 이것도 잠깐이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그녀는 회왕이 약을 뱉어내는지 감시하느라 술시(戌時)까지 회왕부에 있었다. 날이 제법 어둑해지자 그녀는 초왕부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우문호가 데리러 오지 않자 원경릉은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초왕부로 돌아가는 마차가 청석(青石) 길 위를 달리자 이리저리 흔들렸다. 원경릉은 도저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장막을 걷고 “마차를 세워라!”라고 외쳤다.마차가 멈추고 구사가 말에서 내렸다. “왕비님 무슨 일이십니까?”원경릉은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구사가 잠시 침묵하더니 “권력은 전부입니다!”라고 말했다.“전부?”아닐걸요. 제가 보기엔 권력이 있다고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원경릉이 빈정거렸다.“권력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권력의 끝인 황제가 되어도 만족을 모르고 하늘의 신과 권력을 비교하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의 욕심에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우문호도 이렇게 될지 모르겠다.“구사와 초왕의 친분이 두터운 것 같던데, 알고 지낸지 얼마나 됐습니까?”그녀가 구사에게 물었다.구사는 빙그레 웃으며 “꽤 됐지요.”라고 말했다.“어린 시절을 공유했다는 것은 귀한 경험이죠. 그럼 우문호와 주명취 사이의 일도 알고 있겠네요?”“알죠. 다 압니다.” 구사는 원경릉의 눈을 빤히 보며 “왕비는 뭐가 알고 싶은 겁니까?”라고 물었다.“알고 싶은 거 없어요. 그 둘 사이에 일을 내가 왜 알고 싶어 합니까.”구사는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소인은 왕비께서 초왕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줄 알았습니다.”원경릉은 뒤를 돌아보며“사서 고민하지 말자! 이게 내 좌우명입니다.”라고 말했다.구사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사서 고민하지 말자면서 왕야와 주명취의 일은 왜 물어보는 건가? 왕비의 말에 모순이 있다.“그만 걸을래요. 힘들어.” 원경릉이 말했다.구사는 장막을 걷어주며 “왕비. 잘 앉으세요.”라고 말했다.마차에 올라탄 원경릉은 장막을 치며 “구사 어른. 아침저녁으로 배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폐하의 명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구사가 담담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눈을 감고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정신을 가다듬었다.우문호는 원경릉보다 조금 일찍 왕부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원경릉을 마중 나가고 싶었지만, 어젯밤 그녀가 자신을 거절했던 일이 생각나서 차마 가지 못했다. 그 역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원경릉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회왕부에 가지 않았다. “왕야! 오셨습니까!” 서일이 문어귀에서 환
우문호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미인“소녀가 대감을 모시겠습니다!” 요염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온 몸을 우문호에게 찰싹 붙였다.그 순간 우문호는 우주의 모든 기운이 몸 안을 타고 흐르다가 뇌를 뚫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태산을 뽑을 기세로 노하며, “서일!”서일은 싱글벙글 웃으며 문 앞에서 수고했다는 칭찬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왕야가 소리치는 것을 듣고 천둥이 치나 황급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옆에 서 있던 기라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며 달음질쳐 안으로 들어갔다.서일은 그제서야 서둘러 기라를 따라 들어가며 무슨 일입니까? 너무 못 생겼나요? 마음에 안 드십니까? 하지만 마담이 그러는데 이 둘이 제일 잘나가는 명기(名妓)라고 했는데.서일은 할 수 있는 한에서 왕야에게 최선을 다했다.방안은 일진 광풍이 불어 닥친 후로 서일은 주눅이 든 채로 떨어진 옷을 주워 기방 아가씨들을 덮어주었다. 기방 아가씨들은 상당히 전위적이게도 홀랑 벗고 있다. 여자들을 데리고 복도를 지나는데 구사와 원경릉이 앞에서 걸어온다.원경릉이 서일이 데려온 두명의 여자를 보니, 양가집 규수 같지 않게 화장이 진하고 향수가 코를 찌르는 데다 행동거지가 떳떳하지 못하고 눈썹을 살짝 들어올려 그린 게 영락없이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직업 여성이다.서일 이 녀석, 덜렁인 줄로만 알았더니 이런 쪽으론 아주 ‘빠삭’하네.그래도 세상에 가슴 큰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을까?옆에 서서 여자들의 가슴에 눈이 고정된 구사가 정신을 차리도록 원경릉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구사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얼굴을 굳히더니 정색한 목소리로 서일에게, “서일, 초왕부에 어찌 함부로 바깥 사람을 데려왔단 말인가?” 서일이 거의 울 것처럼, “탕대인 생각이었어요, 왕야께 드리라고.”서일이 어젯밤 탕대인에게 물어봤는데 동의하고 은자도 탕대인이 줬는데 왜 왕야는 서일 한사람만 혼내십니까?이건 분명 탕양이 꽁지를 뺀 거다.원경릉은 서일을 보고, “탕양이 왕야께 드리라고 했다고?”
원경릉의 방을 찾아온 우문호우문호는 방에서 성질을 부리며 밥도 먹지 않았다. 오늘 관아에서 종일 시체를 보고, 멸문지화를 당한 사건의 자초지종도 들었으나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해 마음이 초조한데 돌아오니 서일이 벌인 이런 일에 맞닥뜨리고 나니 화를 참지 못하고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탕양은?” 성질을 부린 후 기라에게 화를 내며 물었다.기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왕야, 탕대인은 오늘 저녁에 외출했습니다.”우문호는 탕양이 원경릉을 마중 나갔다고 생각하고: “문지기에게 탕대인에 알리라고 해라, 돌아오는 대로 바로 소월각으로 오라고.”“예!” 기라는 석방을 받은 죄인처럼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우문호는 목욕을 하고 방에서 차를 마셨다.계속 밖을 보며 탕양이 왜 안 오지? 탕양이 안 온다는 건 원경릉도 안 왔다는 얘긴데.향이 하나 탈 정도 시간이 지나고 탕양이 비로소 총총히 들어와, “왕야, 부르셨습니까?”“어디 갔었어?” 우문호가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들어 탕양을 보니 원경릉을 마중하러 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복장이라 물었다.탕양이: “소인은 오늘 마을에 갔었습니다. 이제 곧 추수때가 아닙니까.”우문호는 ‘어’하더니, “마을에 갔었군, 아무 일도 아니다. 가봐.”탕양은 감히 머물지 못하고 서일 이 망할 놈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틈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우문호는 기라를 들라 해서, “왕비는 오셨느냐?”“왕야, 왕비 마마께서는 이미 오셔서 봉의각에 계십니다.”“돌아왔어? 언제 돌아왔지?”기라가 조심스럽게: “아마 그리 오래 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우문호는 기라를 내보내며, “알았다, 나가봐.”기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가며, 왕야께서 요즘 감정이 급변하셔.우문호는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지만 마음이 평온해지질 않는다.봉의각에 가봐야 하나? 가 말어? 가 말어? 가 말어?우문호가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문 밖에 기라가 급히 묻길: “전하, 어디를 가십니까?”“과식해서 마당이나 좀 걸으며 소화를 시켜야 겠다.”
둘의 냉전과 구사의 충고원경릉은 꼭 이런 식으로 우문호를 대해야만 해?우문호는 얼어붙을 듯한 목소리로, “네 맘대로 해!”휙 돌아서 가버렸다.뒤로 원경릉의 공손한 목소리가 전해 온다. “전하를 배웅합니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이를 갈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뭐 하자는 건데? 내가 너를 쥐면 터질까 불면 꺼질까 애지중지해야는 거야?원경릉은 돌계단에 서서 우문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자신을 건드리지 못한 게 한 건 우문호가 더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원경릉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방금 전에 두 기생이랑 재미 보고 나서 바로 원경릉한테 와서 수작을 부리다니, 그녀는 우문호의 애완동물이 아니다.원경릉이 천천히 방으로 돌아오니 기상궁이 조용히: “왕비마마, 왕야를 왜 이렇게 대하십니까?”원경릉이 기상궁을 보고, “내가 방금 예의에 어긋났던 점이 있었어?”기상궁은 말문이 막혔다.예의를 갖췄지요, 너무 갖춰서 문제지만요!우문호는 씩씩거리며 소월각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목구멍에 걸린 듯 좀처럼 석연치가 않다.어제까진 사랑을 속삭이다가 오늘 돌변하다니 원경릉은 자기가 뭐 라도 되는 줄 아나?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게 하다니 입궁해서 황조모에게 아직 합방을 못했다고 말한 게 누군데?원경릉의 쌀쌀맞은 눈빛을 떠올리니 둘 사이 거리가 천리나 되는 것 같아 우문호의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다.밤새 두 사람은 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구사가 밖에서 기다리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마차를 가까이 대령하며 원경릉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원경릉은 오늘 청색에 검은 구름무늬 비단에 자수가 없는 깔끔한 옷을 입고 녹주는 원경릉이 편하도록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올려 뒤에서 보면 머리가 두 개 고리로 사려져서 간드러지면서도 청순하다.기다리고 있는데 우문호가 나왔다.원경릉은 바로 두 걸음 물러나 예를 갖추며, “왕야 안녕하십니까!”우문호는 밤새 치밀어 오른 화를 누르고 또 눌러서 겨우 억제했는데 원경릉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