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냉전과 구사의 충고원경릉은 꼭 이런 식으로 우문호를 대해야만 해?우문호는 얼어붙을 듯한 목소리로, “네 맘대로 해!”휙 돌아서 가버렸다.뒤로 원경릉의 공손한 목소리가 전해 온다. “전하를 배웅합니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이를 갈며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뭐 하자는 건데? 내가 너를 쥐면 터질까 불면 꺼질까 애지중지해야는 거야?원경릉은 돌계단에 서서 우문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자신을 건드리지 못한 게 한 건 우문호가 더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원경릉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방금 전에 두 기생이랑 재미 보고 나서 바로 원경릉한테 와서 수작을 부리다니, 그녀는 우문호의 애완동물이 아니다.원경릉이 천천히 방으로 돌아오니 기상궁이 조용히: “왕비마마, 왕야를 왜 이렇게 대하십니까?”원경릉이 기상궁을 보고, “내가 방금 예의에 어긋났던 점이 있었어?”기상궁은 말문이 막혔다.예의를 갖췄지요, 너무 갖춰서 문제지만요!우문호는 씩씩거리며 소월각으로 돌아왔는데 뭔가 목구멍에 걸린 듯 좀처럼 석연치가 않다.어제까진 사랑을 속삭이다가 오늘 돌변하다니 원경릉은 자기가 뭐 라도 되는 줄 아나?손으로 만지지도 못하게 하다니 입궁해서 황조모에게 아직 합방을 못했다고 말한 게 누군데?원경릉의 쌀쌀맞은 눈빛을 떠올리니 둘 사이 거리가 천리나 되는 것 같아 우문호의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다.밤새 두 사람은 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구사가 밖에서 기다리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마차를 가까이 대령하며 원경릉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원경릉은 오늘 청색에 검은 구름무늬 비단에 자수가 없는 깔끔한 옷을 입고 녹주는 원경릉이 편하도록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올려 뒤에서 보면 머리가 두 개 고리로 사려져서 간드러지면서도 청순하다.기다리고 있는데 우문호가 나왔다.원경릉은 바로 두 걸음 물러나 예를 갖추며, “왕야 안녕하십니까!”우문호는 밤새 치밀어 오른 화를 누르고 또 눌러서 겨우 억제했는데 원경릉의
아픈 회왕 앞에서 사랑싸움하는 두 사람우문호의 눈이 똥그래지다 못해 왕방울처럼 튀어나오며, “네 말이…… 네가 원경릉이랑 같이 서일이 여자들을 데리고 가는 걸 봤단 말이지?”“당연히 봤지. 우리가 봉사가 아닌데.” 구사가 불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우문호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그래서 원경릉이 화가 났다?”순간 너무 놀라 펄쩍 뛸 뻔했다.“화나는 게 당연하지 않아?” 구사가 의미심장하게 충고하며, “내가 그랬잖아, 밖에서 사람을 데려올 필요가 어디 있냐고, 네가 어떤 신분이야? 초왕부에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렇게까지 네 명성을 깎아 먹을 필요는 없잖아?”우문호는 가르침을 받는 숙연한 얼굴표정으로, “알았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게. 너는 먼저 회왕부로 가 있어, 나도 오늘밤엔 그녀를 데리러 갈게.”“그래, 모시러 가야지. 어젯밤에 회왕부에서 귀가길에 네가 있나 둘러보고, 없어서 얼마나 실망했는데. 그리고 초왕부에 와서 그 여자들을 봤으니 왕비마마께서 화가 안 나고 배겨?”우문호는 확실히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어젯밤에 데리러 갈 수도 있었는데 좀 튕긴 거 였다.구사는 충고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해가 지기 전에 우문호는 시간 맞춰 회왕부에 나타났다.원경릉은 마침 안에서 회왕이 약을 제대로 먹는지 뚫어지게 쳐다보자 회왕은 그녀 앞에서 약을 먹어 보이며 비꼬는 듯한 말투로: “이제 됐습니까?”원경릉은 눈을 내리깔고 환자와 싸우지 않았다.일어서는데 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못 본 척하고 사발을 들고 나가려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흘끔 보고 아무 말 없이 회왕에게 가서 얘기한다.“좀 좋아졌어?” 우문호가 침대 곁에 앉았다.원경릉이 빛과 같은 속도로 나가며 마스크 한 장을 우문호에게 던져주며, “써요!”우문호는 마스크를 원경릉에게 다시 던지며, “됐어.”원경릉이 우문호를 노려보며, “쓰시라고요.”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그럼 먼저 왜 나한테 화가 났는지 얘기를 해.”원경릉이 눈을 내리깔고 무심하게: “화 안
원경릉과 우문호의 냉전말을 마친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가자, 마차에서 설명하게.”“손 놔!” 원경릉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도록 화가 나고, 더럽혀진 손은 그냥 잘라줘 버리고 싶다.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잡혀 억지로 마차에 태워졌다.오늘 마부는 서일이 아닌데 어젯밤 일이 있은 뒤 서일은 강제로 쫓겨난 상태다.“나한테 변명할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우문호는 몸부림 치느라 새빨개진 원경릉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원경릉이: “먼저 날 놔줘, 안 그러면 말할 필요 없어, 난 한마디도 안들을 테니까.”우문호는 원경릉을 놔주고 진지하게 물으며, “네 맘속에 나는 어떤 사람이야?”“내 마음 속에 네가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내가 직접 봤다고.” 원경릉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네가 본 게 뭔 데? 서일이 여자 둘을 데리고 가는 것만 봤잖아. 그럼 서일이 그 둘을 데려가기 전에 일은?”원경릉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우문호를 노려보며, “그래,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 내가 직접 못 봤네. 하지만 나도 바보가 아니야, 딱 보면 몰라?”“딱 보면 뭐?” 우문호는 곁으로 바짝 다가와 숨조차도 눌러 버릴 듯 거의 원경릉을 바닥에 깔아 눕히기 일보직전이다.원경릉은 우문호를 밀어낼 수 없어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서, “이 얘기 하고 싶지 않아, 우리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게 최고야. 기회를 봐서 나랑 이혼해 줘. 우리 편하게 각자 인생을 살자.”원래 이랬어야 했는데 요 며칠 의외의 사태가 발생해서 둘이 어쩌면 뭔 가에 씌었던 거다.서로 미워했던 두사람이 귀신이 홀린 게 아니고 서야 이럴 수는 없다. 우문호가 천천히 손에 힘을 빼고, “이게 네 진심이야?”“그래!” 원경릉은 우문호를 보지 않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게 내 진심 맞아, 화원에서 있었던 일, 마차에서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 보니 귀신에 홀렸던 것 같아.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우리 원래 약속과 어긋나는 일이었어.”
회왕을 병문안 온 주명취와 손왕손왕도 요 근래 손왕비를 데리고 회왕부를 찾았다.손왕비는 특히 아리땁고 농염한 미모의 소유자로 몸매도 좋아서 손왕 곁에 있으면 미녀와 야수 같은 기시감이 든다.손왕비는 자주 오지 않지만, 한 번 올때 마다 예물을 많이 가져 오는데 딱 봐도 세심하게 정성을 들인 티가 난다. 가져온 예물과 약재는 전부 폐병환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주명취도 한 번 왔다 갔는데 제왕과 같이 왔다.우문령은 호시탐탐 주명취를 주시했는데 심지어 회왕 방에 가서 병문안을 할 때조차 옆에 착 붙어서 허튼 수작 부리지 못하도록 지켜봤다.주명취는 원경릉과도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예의 상 회왕의 상태가 어떤지 묻고 예를 갖춰 감사인사를 한 후 나갔다. 두 사람은 불쾌한 일이 전혀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회왕의 태도가 가장 눈에 띄게 바뀌었다.어의가 말한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자신이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고 심지어 각혈도 하지 않으며 기침은 하지만 상당히 횟수가 줄어들어 앞으로 더 버틸 수 있다. 가장 기쁜 건 노비로, 요며칠 원경릉을 아주 신처럼 떠받들며 원경릉이 먹고 쓰는 것을 노비가 나서서 가장 좋은 것으로 준비했다.그러나 원경릉은 가슴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이 날 오후 원경릉은 회왕에게 주사를 놓은 후 회왕부 마당에 앉아 혼자 멍하니 있었다.사실 원경릉은 7~8일이 지나도록 둘이 한번도 마주치지 않은 게 영 어색했다. 원경릉이 초왕부로 돌아오면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적막한 봉의각으로 늘 그렇듯 기상궁과 녹주 뿐이다. 다바오를 빼면 같이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다.원경릉은 심지어 우문호와 다투고 지내던 나날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원경릉은 난간에 기대어 화원 한 켠을 바라다 봤다.짙은 나무그늘에 가려진 곳으로 바로 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키스한 곳이다.그날의 상황, 매 순간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원경릉은 모두 그려낼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다.우문호 입술의 체온, 손가락의 굳은 살 하나하나까지 전부
오해를 알게 된 원경릉원경릉이 손왕을 째려보며, “방금 마음 속으로 감동했는데.”“감동할 필요 없어, 난 돈이 없거든.” 손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매달 용돈이 고작 은자 한 냥이라고.”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손왕이 천천히 멀어져갔다.원경릉은 심란해 졌다. 왜 항간에 그런 소문이 돌지? 아무래도 탕양이나 서일을 찾아서 물어봐야겠다.구사가 원경릉을 초왕부에 데려다 주자 그녀는 기상궁에게 서일을 찾아오라고 했다.기상궁이: “서일은 이미 초왕부에 없습니다.”“초왕부에 없다고? 왕야께서 출장을 보내셨나?”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아니요, 서일이 왕야의 심기를 건드려서 왕야께서 역정을 내셔서 쫓겨났지요.” 기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이 의외라며, “서일이 어쨌는데?”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게 서일 이 사람이 또 꽤 성실하다. 비록 일처리가 미덥지 못하지만 말이다.기상궁이 불편한 기색으로: “서일은 입이 가볍고 일처리가 야무지지 못해 어디서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왕야의 방에 기생 둘을 데려다 놓는 바람에 왕야께서 역정을 내시고 두 여자와 서일을 같이 내쫓으셨지요. 다음날 서일이 초왕부로 돌아오니 왕야께서 한사코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하셨습니다.”원경릉이 경악하며, “뭐라고?”“불쌍하긴 좀 불쌍하지만 왕야를 모신 게 몇 년인데 아직도 왕야의 성품을 모르다니, 확실히 남겨둬서는 안돼지요. 왕야는 잠자리 시중조차 마다하시는 분인데 기방의 여인이 웬 말입니까?”원경릉은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러니까 우문호가……. 그날 두 여자를 직접 내쫓았다고?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그럼 원경릉이 우문호를 잘못 탓한 거네?머리속에서 화원과 마차 장면이 무한 반복 재생되면서 며칠간 억눌렀던 그리움이 미친듯이 터져버렸다.원경릉은 비로소 자신이 정말로 아주 아주 우문호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알았다.원경릉은 바람같이 나갔다.“왕비마마 어디 가세요?” 기상궁이 뒤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어디 좀 가게, 나 밥 안
구사의 사랑과 우문호의 사랑우문호는 지금 마음이 아프다.우문호는 평소처럼: “만약 정말 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그녀는 오직 널 괴롭힐 뿐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아.”“괴로워도 반드시 기쁜 일이 있을 거야.”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잔을 비우며 구사와 이미 공통의 언어가 없음을 발견했다. 그들의 우정은 이것으로 끝이다.하지만 마지막으로 구사를 가리키며 충고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게 최고야, 안 그럼 너 후회할 거다.”구사는 우문호를 잡아 끌며, “앉아서 나랑 더 마시자, 너 아무것도 몰라. 네가 주명취에 대한 게 진짜 사랑이었어? 아니, 넌 주명취가 그립고 안타까워서 어쩌지 못한 적이 없어. 하루만 안 봐도 하늘이 온통 회색처럼 느껴지는 거 말이야. 넌 그저 주명취가 초왕비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지. 됐다. 넌 그녀한테 당했으니 당연히 그녀한테 감정도 없겠지.”우문호는 구사를 밀치며, “너 정신 좀 차려봐.”말을 마치고 구사를 내버려둔 채 나간다.“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구사가 갑자기 우문호에게 무작정 소리쳤다.우문호가 돌아섰다. 이거 신선한 일이 아닌가, “누구야?”구사가 손가락을 하나 세우더니, “원경……”신발 한 짝이 정면으로 날아와 구사의 얼굴에 바로 떨어지고, 우문호는 분노한 사자처럼 달려들었다.구사는 영문도 모른 채 괜스레 한방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리가? 약간의 술기운을 빌어 우문호와 뒤엉켜 치고 받았다.두 사람 모두 무공을 연마했지만 시정잡배처럼 주먹다짐을 하고 결국 숨이 턱에 차도록 치고 받더니 땅바닥에 앉아 서로 한 맺힌 듯 노려본다.“너 간이 배밖으로 나왔어? 감히 내 왕비를 몰래 연모해?” 우문호는 모래를 거머쥐고 뿌렸다.구사는 화가 뻗쳐서, “너 미쳤어? 내가 언제 네 아내를 연모한다고 그랬어? 내가 좋아하는 건 원경병이라고, 네 처제.”이런, 오해였네? 우문호는 난감했다. 원경병이 어떻게 생겼더라? 기억이 안 나지만 초왕부에 온 적이 있는 건 확실하고 말투가 좀 날카로웠다.우문호는 다시 절친한 친구 말투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 두사람기라가 쫓아와서, “왕비마마께서 술시에 소월각에 오셔서 줄곧 돌계단에 앉아 두 시진이 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직도 안 돌아가시고 계세요.”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며, “왕비에게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느냐?”“여쭤봤지만 말씀을 안하세요. 왕야께서 오시는 걸 기다리신다고만.” 기라가 쫓아오며 말했다.우문호는 날듯이 소월각으로 들어가니 과연 원경릉이 돌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머리를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댄 채 벌써 잠이 들었다.밤이슬이 찬데 무릎을 끌어 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추워 보인다.발자국 소리를 들었을까, 원경릉이 살포시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더니 기둥에 기대 천천히 일어서며 약간 불안한 자세로, “돌아왔어?”“왜 여기 있어? 무슨 일이야?” 우문호는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던 원경릉을 떠올리고 초조함과 애절한 마음을 꾹 누르고 물었다.“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원경릉의 모습이 애처롭다.우문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들어가서 얘기하자.”우문호는 원경릉을 쓱 보더니 옆으로 걸어갔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졸졸 따라 들어가면서 연달아 두번이나 재채기를 했다.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원경릉이 갑자기 뒤에서 우문호를 꽉 껴안았다.우문호는 당황해서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원경릉은 콧소리를 섞어: “추워, 좀 안아도 돼?”우문호가 고개를 든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니 눈빛이 맑고 애처롭다.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원경릉을 가슴에 끌어 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가슴팍에 묻자 마치 눈처럼 차갑다.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원경릉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물었다.“구사랑 싸웠어.” 우문호가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원경릉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밤늦게 여길 달려와 두 시진이나 기다리지를 않나, 며칠전엔 우문호를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고 그토록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말이다.원경릉은 ‘어’하더니 왜냐고 묻지 않고 우문호를 풀어주며: “상처 치료해 줄게. 피나.”우문
원경릉과 우문호의 밤원경릉은 딴 데를 쳐다보며, “신경 쓰였단 말이야,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 줄 알고.”우문호의 눈에 불꽃이 튀며, “왜 신경이 쓰여? 나한테 이혼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원경릉이 한동안 생각하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나오지 않아, 풀이 죽은 채로 일어나서, “됐어, 나 갈께. 왕야 잘 자.”원경릉이 나가려고 할 때 우문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가지마!” 우문호는 일어나 그녀를 가슴에 안고 입술을 부딪히며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그것, 깊은 입맞춤을 했다.기라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아무도 왕야와 왕비를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이 입맞춤에 며칠간 가슴을 짓누르던 그리움이 모두 터져 나왔다.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안겨 침대로 갔다.원경릉은 그제서야 화들짝 고개를 들어 우문호의 그윽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과 마주쳤다.“괜찮겠어?”원경릉은 순간 숨이 멎는듯 해서 눈을 피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응!”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이 고요하다.악상자에 긴급 피임약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원경릉은 두 손을 우문호의 가슴에 올리고 문득 이 문제를 생각했다.“졸려?” 우문호는 원경릉의 귓가에 속삭였다.“아니!” 원경릉 대답하며 왠지 그를 볼 수가 없다.원경릉은 그렇게 떼를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럴 땐 너무 늠름해서는 안된다.우문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가며, “나도 안 졸려.”며칠 간 원경릉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밤도 잠자긴 글러버린 것 같다.우문호의 몸에 있던 술냄새가 모두 사라지고 하늘이 서서히 뿌옇게 밝아오며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온다.날이 밝아 왔다.“오늘은 여섯째한테 가지 말고 좀 자도록 해.”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말했다.“안 갈 수 없는 걸. 오늘 주사 놔야 해.” 원경릉은 눈도 잘 떠지지 않는다.“그럼 내가 데려다 줄게, 주사 놓고 나면 좀 자.”“안 데려다 줘도 돼, 계속 자. 구사가 데려다 줄 거야.” 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우문호의 눈을 봤다. 어젯밤을
손님들이 하나둘씩 떠나자, 경천 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 푸른 비단옷으로 갈아입었다.옅은 청색 옷자락에, 소매 끝에는 난초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나머지 부분은 어두운 구름 문양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옷감은 북당에서 온 것이었다."폐하, 꼬마 은인께서 궁문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삼 태감이 와서 보고했다."좋소."그는 거울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택수운천으로 가겠네."택수운천은 그가 즉위한 후, 궁궐 안에 지은 새 궁전으로, 세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궁전 옆에는 거월통천각이 있었는데, 이는 량주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거월통천각 안에 있으면 마치 손바닥에 달을 담을 수 있을정도로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거월통천각에서 멀게는 약도성과 량주가 인접한 산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녀가 생각날 때면, 늘 거월통천각의 가장 높은 층으로 올라가 풍경을 멀리 바라보곤 했다."진이야, 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있느냐?"그가 준수한 옷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먼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며 청색 옷자락이 휘날리자, 옷자락의 네 끝에 박힌 고급스러운 야명주가 그의 선명하고 잘생긴 얼굴을 비추었다.그때, 저 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궁 시위를 따라, 아치과 복도를 지나 거월통천각으로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젊은 금군 통령 진이가 그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습니다.""사모의 마음을 품어보거라.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느낌만큼 좋은 것이 없다."그는 그녀를 멍하니 보며 말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탓에 그녀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13세 전까지의 그의 인생에는 나라와 백성들 뿐이었지만, 13세 이후 그의 인새은 온통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녀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진이는 황제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다가오는 세 명을 보며
안왕은 보책을 받아 든 순간,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점이 이상한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일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보책을 펼쳐 안에 적힌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드디어 이상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굳어진 표정으로 경천 황제를 바라보았다.경천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조사를 통해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소. 그녀의 이름은 우문택란이오. 금나라 황후의 이름은 우문택란이네. 난 반드시 그녀를 찾아낼 것이오. 만약 그녀가 황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황후의 자리는 그녀를 위해 계속 비워둘 것이네.”위왕은 온몸에 식은땀을 흐르는 탓에 두 손을 급히 움켜잡았다. 방금 황제가 보책을 그의 손에 올리지 않아, 그가 받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정말 다섯째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안왕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이를 악물고 낮은 소리로 위왕에게 말했다.“방금까지도 어린 황제에게 어리석다고 했건만. 이렇게 계책에 능하고 이따위 교묘한 계책으로 우리 형제를 그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들다니...!”위왕은 또 한 걸음 물러서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술을 두 잔 마셔 조금 취한 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아니, 지금 들고 있는 그건 무엇이냐?”안왕은 단단한 그의 팔을 비틀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연회는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감정은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북당 황제의 작은 공주도 우문택란이라는 말을 꺼냈다.그 말에 다들 그 당시 금나라 황제를 구한 사람이 북당의 작은 공주가 맞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정말 북당 공주가 맞는다면, 금나라 황제도 참 배짱이 큰 것이다. 사실상 북당 황실이 금나라 황제를 구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경천은 위왕의 말을 듣자, 마치 마음속 큰 돌덩이가 내려간 듯 후련해 보였다. 그는 그러고는 궁인에게 술을 올리게 해 술잔을 여러 차례 돌린 후, 아래를 둘러보며 말했다.“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오늘 정혼연이 어찌 열리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오.”그러자 모두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혼연이든 혼례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이때, 위왕이 안왕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섯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다. 금나라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자가 황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진국왕이 아직 살아 있고, 이 황제가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맞소. 확실히 조금 병신같아 보이네.”안왕도 동의했다.참고로 ‘병신같다’는 표현은 안왕이 조카에게서 배운 단어였다.“이 이야기는 3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오.”이내 경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담겨져 있었다.“당시 금나라는 진국왕이 집권하고 있었는데, 그는 나를 대신해 금나라의 군주가 되려 했소. 이 사실은 여러분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때 난 진국왕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소. 진국왕이 왕위를 빼앗으려 나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하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반격에 나섰는데, 그 과정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소. 그때 나를 구해준 이가 바로 란이라는 소녀이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오. 그 당시 나는 란이의 정체도 몰랐고, 그저 약도성 사람이라는 것만 알았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소. 상처를 치료하며 그녀와 며칠을 함께 보냈고, 황권을 되찾으면 그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그녀가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진국왕에게 알려졌고, 진국왕이 사람을 보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렀소. 그리고 그곳에서 시신이 발견되었소.”모두가 진국왕이 불을 질렀다는 말에 멈칫했다.금나라 황제가 이렇게 비극적인 황권
한편, 안왕과 위왕은 이미 명월전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부하들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왔기에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몸 전체가 먼지투성이였다.하지만 오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바로 궁에 들어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혼 연회가 예정보다 앞당겨 열리게 되었다고 했다.그들은 의아해하며 금나라가 막무가내라고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혼례라더니, 이제는 정혼식이라 하고, 심지어 약속했던 날도 지키지 않고 앞당겼으니 말이다.혼사라는 중대사가 이렇게 어린아이 장난처럼 진행될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신부가 북당 사람이니, 그들은 신부의 친정과도 마찬가지였기에 금나라의 일정을 따르며, 금나라의 계획을 지지하는 것이 맞았다. 다른 나라 사절들이 함께 있었기에, 그들은 무관의 신분으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친구를 사귀고 주변 무역 문제를 논의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다섯째가 특별히 당부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만나면 국사를 논하지 않더라도, 상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말했었다. 장사는 대화로 시작되는 일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보면 결국 성사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은 비록 처음에 다섯째의 이런 태도가 약간 뻔뻔하다고 느꼈었지만, 지난 10여년간 나라 경제가 눈에 띄게 번영했다는 사실을 차마 부인할 수는 없었다.다섯째의 말처럼 경제를 앞서게 만들어 백성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한 덕분에, 돈이 끊임없이 북당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그들이 다른 나라 신하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황제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안왕과 위왕은 금나라의 황제에 대해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 젊은 황제는 올해 열여덟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라 들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진국왕을 몰락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한 결단력과 꾀를 가졌을까?내시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밝은 황금빛 용포를 입은 젊은 황제가 시위에게 둘러싸여 등장했다.혼례복이 아닌 용포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혼례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그 중, 택란은 베일을 쓴 채 궁에서 준비한 마차에 올랐다.때마침 불이 하나둘씩 밝혀질 시간이라, 거리는 무척 떠들썩했다. 금나라 수도의 번화함은 약도성이 비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통행금지가 없어, 백성들이 밤늦게까지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택란은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들어 올려 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리에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장사에 열중하는 상인들, 주루나 주막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이런 활기 넘치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그러고는 순간 어린 황제를 본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3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해졌다.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3년 사이에 자신도 많은 변화를 겪었으니 말이다. 키도 훤칠해졌고 이제 얼굴도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한층 성숙하고 침착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약도성이 지난 몇 년간 겪어온 일들이 많았기에 당연히 성숙해질 수밖에 없었다.한편, 금나라 황궁에서는 이미 정혼 연회의 준비를 마쳤으나, 중요한 두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안왕과 위왕이었다.북당의 두 친왕이 도착해야만 연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한편, 경천 황제는 내내 택란을 만나고 싶어 했다.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와 재회할 순간만을 간절히 기다렸다.3년간 간절히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들떴지만, 첫 만남은 너무도 중요했다.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정의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눈앞에 생생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사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조정을 되찾아 그녀와 혼사를 올리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물론 지금 그녀는 아직 어리기에, 혼담을 논하기엔 이르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생각이 훨씬 개방적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행복이라 여겼기에 의식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그래도 아버지의 아쉬움을 덜어주기 위해 현대에서 한 번, 즉위 후에 또 한 번 의식을 치렀다.주 아가씨는 객사로 돌아오자마자, 객사 일꾼에게 소식을 물었다.그러자 일꾼은 황제가 곧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했다.“혼례요? 정혼 아니었습니까?”“정혼? 정혼이라니? 그럼 이미 혼사를 올릴 나이가 되었는데, 어찌 바로 혼례를 하지 않다는 것이냐?”“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정혼한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미래의 황후가 북당 사람이 맞느냐?”일꾼이 말했다.“예. 북당 출신의 아가씨라고 합니다. 게다가 황제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들었습니다.“택란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경천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가 정말 은인의 언니라는 말을 믿다니 말이다.설사 그렇다고 해도 굳이 그녀와 혼례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혼사를 어찌 장난처럼 다룰 수 있단 말인가?택란은 경천 황제에게 크게 실망했다. 그저 정치적인 판단에서만큼은 어리석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택란은 원래 이틀 정도만 량주를 둘러본 뒤 바로 궁으로 들어가 알현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혼례 날짜가 다가오지 않았으니 며칠 더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궁으로 들어가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녀가 생명의 은인인 것을 알아차리면, 정혼식을 진행할지 말지 애매해질 것이기에, 택란은 며칠 동안 객사에 머물며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펴보는 한편, 참고할 만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그렇게 살펴보던 중, 주 아가씨가 정보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안왕과 위왕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칠 동안 다른 나라 사절들은 계속 장관에 묵고 있었는데, 택란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삼촌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 무렵 장관으로 갔다.그런데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이 이미 황
량주는 금나라의 수도가 된 이후 지난 2년간 크게 발전했다. 또한,금나라와 북당이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하면서, 북당 변방 도성의 백성들도 장사를 위해 많이 찾아왔다.이전에 택란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 위해 금나라에 왔었다. 하지만 그때의 량주는 지금처럼 북당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택란은 객사에 머문 뒤 주 아가씨와 냉명여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량주의 풍습과 문화를 살폈다.여기도 어쨌든 금나라의 수도 아닌가!진국왕은 물러나기 전까지 나라를 잘 다스렸고, 특히 발전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야망이 지나친 탓에 늘 약도성을 되찾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그리고 동시에 북막을 두려워하기도 했다.경천이 즉위한 후, 광산 자원 개발 외에도, 그는 농경지와 산지를 개간하려고 노력했다. 금나라의 서북부에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있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북당의 다른 도성을 본받아 사람들을 개간지로 보내고 그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주었다.나라가 상승세일 때, 그 분위기는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성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길 수 없는 법이었다.택란은 경천이 황제로서 매우 적합하다고 느꼈기에, 그가 이끄는 금나라는 분명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기에,그가 광산을 함께 개발하자는 제안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았다.택란은 이내 자신감을 얻었다. 궁에 들어가 알현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고, 량주 백성들이 북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과거, 약도성과 량주의 관계는 다소 안 좋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나라가 약도성에 사람을 침투시켜 많은 폭동을 일으켰기에, 약도성 백성들도 그들을 매우 싫어했다.그렇기에 지난 2년간의 교류를 통해, 택란은 그들의 원한이 천천히 사라지기만을 바란 것이었다.이제 북당 쪽은 문제가 없으니, 량주 백성들의 생각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택란은 물건을 사면서 점포 주인과 상인들에게 북당 약도성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그 중, 다
원경릉은 뒤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고는 사식이가 정말 좋은 남자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서일이 비록 평범한 사람이긴 하지만, 그의 마음과 눈에는 오직 사식이만 있었다.그야말로 진실한 남편이다.물건을 산 뒤, 서일은 계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여기서 쓴 금액을 북당으로 돌아가 황후에게 얼마만큼의 금으로 바꿔 드려야 할지 열심히 계산했다.계산을 마친 후, 지갑형편이 다소 여유롭다고 느껴지자, 그는 귀걸이와 금팔찌까지 더 구매했다. 이곳의 디자인은 북당보다 훨씬 아름다웠다.한편, 금나라에서는 완안경천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웃 나라 사신들도 연이어 축하해주기 위해 도착했다.택란은 냉명여와 주 아가씨를 데리고 량주로 갔는데, 그들이 량주성에 도착하자마자, 누군가가 경천 황제에게 보고했다."폐하, 초상화 속의 아가씨가 이미 도착하여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근처에서 감시 중이며, 가까이 다가가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경천 황제는 어서방에 앉아 이 보고를 들으며 눈매를 약간 올리고는, 온화하고 잘생긴 얼굴에 빛을 발했다. "그녀가 왔구나. 마침내 그녀가 왔다!""폐하, 바로 부를까요?""아니. 사람을 보내 그녀를 계속 감시하도록 하거라. 절대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경천 황제 또한 손끝이 떨릴 정도로 감격했다. 수많은 밤, 그는 초상화를 보며 멍하니 그녀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랬기 때문이다.그 초상화는 그가 직접 그린 것이었다. 원래 그는 서화에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가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화가의 그림이 그녀와 닮지 않아, 직접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그렇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녀를 자신의 그림으로 완성했다.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보내 북당에서 한 부녀를 데려왔다. 그 중 딸이 자신이 란이의 언니라고 주장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택란과 닮은 점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전혀 닮지 않았다.친자매가 어찌 조금도 비슷한 부분이 없다는
원경릉은 병실로 돌아간 뒤, 서일을 따로 불러내서 물었다.당시에는 상황이 급박했던 탓에 서일이 어떻게 그 약을 가져왔는지, 약상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두 번째 약은 어디서 꺼낸 것이냐?"원경릉이 약상자를 열며 묻자, 서일이 약상자 두 번째 칸을 가리켰다."이쪽이였습니다. 그 당시 약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주삿바늘에 뚜껑도 씌워져 있었습니다."원경릉은 약을 세 번째 칸에 넣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세 번째 칸은 자동으로 수축하는 구조여서, 사용하지 않는 약을 넣고 약상자를 닫는 순간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반면 두 번째 칸은 평소 사용하는 약으로 꽉 차 있어, 추가로 주사를 넣을 공간조차 없었다.게다가 약상자를 10년 넘게 사용해 온 그녀였기에, 약을 어디에 두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익숙했다. 그녀가 약을 잘못 넣었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설령 잘못 넣었다 하더라도, 약상자는 위험성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능이 있어, 그 약이 서일 앞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서일은 원경릉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우문호의 병세가 다시 악화한 줄로 착각하며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제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그가 울기 시작하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 설마 또 무슨 약이라도 먹인 것이냐?""아닙니다..."서일은 빨개진 눈에 머리도 헝클어진 채로 원경릉을 바라보며 처량하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아직 낫지 않은 것입니까? 혹시 제가 폐하를 죽게 만든 것입니까?"원경릉은 웃음을 터뜨리며, 서일의 반응 속도가 정말로 느리다고 생각했다."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그런 일 없다. 그저 사실을 알아보는 것뿐이니, 괜히 걱정하지 말거라. 다섯째도 아주 좋아졌다. 단지 조금 더 검사가 필요할 뿐이다."서일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서일은 우문호에게 가서 울며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