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라는 것을 알게 된 두사람기라가 쫓아와서, “왕비마마께서 술시에 소월각에 오셔서 줄곧 돌계단에 앉아 두 시진이 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직도 안 돌아가시고 계세요.”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며, “왕비에게 무슨 중요한 일이 생겼느냐?”“여쭤봤지만 말씀을 안하세요. 왕야께서 오시는 걸 기다리신다고만.” 기라가 쫓아오며 말했다.우문호는 날듯이 소월각으로 들어가니 과연 원경릉이 돌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고, 머리를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댄 채 벌써 잠이 들었다.밤이슬이 찬데 무릎을 끌어 안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추워 보인다.발자국 소리를 들었을까, 원경릉이 살포시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더니 기둥에 기대 천천히 일어서며 약간 불안한 자세로, “돌아왔어?”“왜 여기 있어? 무슨 일이야?” 우문호는 자신을 쌀쌀맞게 대하던 원경릉을 떠올리고 초조함과 애절한 마음을 꾹 누르고 물었다.“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원경릉의 모습이 애처롭다.우문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들어가서 얘기하자.”우문호는 원경릉을 쓱 보더니 옆으로 걸어갔다.원경릉은 우문호를 졸졸 따라 들어가면서 연달아 두번이나 재채기를 했다.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원경릉이 갑자기 뒤에서 우문호를 꽉 껴안았다.우문호는 당황해서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원경릉은 콧소리를 섞어: “추워, 좀 안아도 돼?”우문호가 고개를 든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니 눈빛이 맑고 애처롭다.우문호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원경릉을 가슴에 끌어 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가슴팍에 묻자 마치 눈처럼 차갑다.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원경릉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물었다.“구사랑 싸웠어.” 우문호가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전히 원경릉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밤늦게 여길 달려와 두 시진이나 기다리지를 않나, 며칠전엔 우문호를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고 그토록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말이다.원경릉은 ‘어’하더니 왜냐고 묻지 않고 우문호를 풀어주며: “상처 치료해 줄게. 피나.”우문
원경릉과 우문호의 밤원경릉은 딴 데를 쳐다보며, “신경 쓰였단 말이야, 다른 여자랑 같이 있었는 줄 알고.”우문호의 눈에 불꽃이 튀며, “왜 신경이 쓰여? 나한테 이혼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원경릉이 한동안 생각하고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나오지 않아, 풀이 죽은 채로 일어나서, “됐어, 나 갈께. 왕야 잘 자.”원경릉이 나가려고 할 때 우문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가지마!” 우문호는 일어나 그녀를 가슴에 안고 입술을 부딪히며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그것, 깊은 입맞춤을 했다.기라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고 아무도 왕야와 왕비를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이 입맞춤에 며칠간 가슴을 짓누르던 그리움이 모두 터져 나왔다.원경릉은 우문호에게 안겨 침대로 갔다.원경릉은 그제서야 화들짝 고개를 들어 우문호의 그윽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눈빛과 마주쳤다.“괜찮겠어?”원경릉은 순간 숨이 멎는듯 해서 눈을 피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응!”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이 고요하다.악상자에 긴급 피임약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원경릉은 두 손을 우문호의 가슴에 올리고 문득 이 문제를 생각했다.“졸려?” 우문호는 원경릉의 귓가에 속삭였다.“아니!” 원경릉 대답하며 왠지 그를 볼 수가 없다.원경릉은 그렇게 떼를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럴 땐 너무 늠름해서는 안된다.우문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가며, “나도 안 졸려.”며칠 간 원경릉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오늘밤도 잠자긴 글러버린 것 같다.우문호의 몸에 있던 술냄새가 모두 사라지고 하늘이 서서히 뿌옇게 밝아오며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온다.날이 밝아 왔다.“오늘은 여섯째한테 가지 말고 좀 자도록 해.” 우문호가 원경릉을 안고 말했다.“안 갈 수 없는 걸. 오늘 주사 놔야 해.” 원경릉은 눈도 잘 떠지지 않는다.“그럼 내가 데려다 줄게, 주사 놓고 나면 좀 자.”“안 데려다 줘도 돼, 계속 자. 구사가 데려다 줄 거야.” 원경릉이 고개를 들어 우문호의 눈을 봤다. 어젯밤을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두 사람“난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꿈같아.” 원경릉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돌돌 말며, 사실 하나도 진짜 같지 않다고.“그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 우문호가 중얼거렸다.꿈만 같다 뿐이겠는가? 거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바뀐 것과 마찬가지다. 우문호의 손이 원경릉의 배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며, “너 전에 아바마마한테 그랬었지, 일년 안에 손자를 낳아서 안겨드리겠다고.”그건 대충 지어낸 말이었다.“자식은 하늘이 주시는 거라,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게 아니야.” 원경릉은 이렇게 말하며 사후 피임약을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 상자에 있어야 할 텐데.“그래, 가지고 싶다고 가지는 건 아니지.” 우문호가 말했다. 자식을 원하는 걸까? 물론 원한다.다름 아닌 이 꿈이 계속 되길 위해서 말이다.결국 두 사람은 일어나기 싫어서 뭉그적거리는 바람에 기상궁과 녹주가 이리로 와서 시중을 들고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특히 녹주는 호기심이 가득해서 침대를 흘깃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엉망진창이지 생각했다.그러다 바로 기상궁에서 머리를 한대 쥐어 박히고, “어서 가서 아침상 안들이고 뭐해?”녹주는 ‘에’하더니 바로 나갔다.아침을 먹으며 원경릉이 우문호를 흘끔 보고: “서일 있잖아……”“기라!” 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탕양에게 서일 다시 돌아 오랬다고 전해라.” “예!” 기라가 감동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봤다. 서일이 비록 좀 모자란 녀석이지만 서일이 있을 때가 역시 유쾌하고 활기찼다.우문호는 손에 들고 있던 계화꽃떡을 원경릉에 입에 밀어 넣으며, “먹어.”“배불러.” 원경릉은 아침을 별로 먹지 않는데다 어젯밤 수면까지 부족해서 식욕이 전혀 없다.“좀더 먹어, 너무 말랐어.” 우문호는 원경릉의 볼을 꾹 누르더니, “이 얼굴로 사람 만날 수 있겠어.” 원경릉이 우문호를 째려보며, “남 얘기할 형편이 아닐 텐데?”전에는 고양이가 할퀸 상태였지만 지금은 엉망진창이다.우문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만약
회왕의 호전오늘은 우문호와 구사가 같이 원경릉을 회왕부까지 데려다 주었다.두사람이 찰싹 붙어 있는 모습에 구사가 눈을 흘겼다.“보아하니 오늘 밤엔 내가 모시러 오지 않아도 되겠네?” 구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맞아, 오늘은 내가 데리러 올 거야. 넌 네 일 봐라.” 우문호가 말했다.구사는 한가했지만 오늘 얼굴로는 사람을 만나긴 글렀으니 조용히 숨어 지내는 수밖에.두 사람이 같이 마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문호는 시시콜콜 잔소리를 한다. “오늘 꼭 좀 쉬어. 회왕부에는 사랑채가 많으니까 하나 내 달라고 해서 적어도 한 시진 이상 두 시진정도는 자야 돼, 알았지?”“알았어. 걸으면서 내내 잔소리 잔소리.” 원경릉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우문호를 쳐다봤다.“좋아, 잔소리 그만 할게, 대신 잊지마.” 우문호는 씩 웃었다. 사실 좀 잔소리긴 했다.회왕은 초왕 부부가 같이 오는 것을 보는 게 실로 오랜만이었다. 며칠동안 같이 집에 있는 것도 본 적이 없다.마지막으로 본 게 둘이 싸우는 모습으로 그 뒤로 원경릉이 한동안 돌부처 같이 꼭 할말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오늘 고분고분 원경릉에게 마스크를 가져왔는지 묻자, 원경릉이 건네 주며, “며칠 지나면 할 필요 없어요, 보름 전후로 전염성이 떨어져서 거의 문제가 안 되거든요.”우문호가 기뻐하며, “그러니까 여섯째 병이 나았다는 뜻이야?”“여전히 계속 치료해야 해요. 적어도 6개월은 약을 끊어서는 안돼요.” 원경릉은 예전처럼 청진기를 꺼내 회왕을 진찰했다.“6개월 후에 죽는다고 해도 남는 장사네요.” 회왕이 알아서 옷을 걷어 올렸다. 하도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자동적으로 다음 행동이 나온다.“말도 안되는 소리.” 우문호가 혼을 냈다.노비가 웃으며 들어와, “맞아, 입을 틀어막던가 해야지, 종일 헛소리나 지껄이는구나.”우문호가 얼른 일어나, “노비마마를 뵙습니다.”노비는 웃음 띤 얼굴로 흐뭇해 하며 우문호에게, “넌 이렇게 바쁜데 동생을 보러 와줬구나, 정말 고맙다.”“가
차도가 생긴 회왕, 기왕비가 회왕에게 한 말처음 원경릉이 여섯째에게 주사를 놓는 것을 봤을 때, 그게 무슨 독약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지금에서야 그것이 생명을 구하는 양약임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물론 노비도 은혜로 사리분별이 흐려지진 않아, 원경릉과 초왕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있다.“기왕비가 요즘 통 안 오는구나.” 노비가 문득 말했다.원경릉은 고개도 들지 않고: “전 하나도 안 그립네요.”“듣자 하니 아프다 던데.” 노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파요?” 원경릉이, “무슨 병이에요?”노비는 고개를 흔들며, “그건 모르겠구나. 원래 어제 황후에게 문안인사를 가기로 했는데 기왕비는 못 갔다며, 진비 말로는 아파서 입궁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어제는 15일로 법도에 따라 왕비들은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한다.원경릉은 회왕의 병을 치료하고 있어 황제 폐하께서 면해 주셨다.기왕비에 대해 언급하자 모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특히 노비는 욕이 나왔다.회왕이 얼굴을 찌푸리며, “어마마마, 됐습니다. 그만 하세요. 벽에도 귀가 있다지 않습니까.”회왕은 참는 게 습관이 된 사람으로, 최대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했다.“됐다고?” 노비는 콧방귀를 뀌며 회왕에게: “아직 에미에게 사실대로 말을 안 하는데, 기왕비가 도대체 네 앞에서는 뭐라고 했니?”“다 지난 일이니 다시 언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정신이 멀쩡합니다.” 회왕은 약이 서서히 자신의 몸에 들어오자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오래 병석에 있으면 확실이 정신이 멍해지기 쉽다.다행히 다섯쨰 형수는 회왕이 멍하다고 포기하지 않았다.원경릉은 바늘을 빼고 회왕에게: “사실 저도 알고 싶어요, 기왕비가 도대체 뭐라던가요?”원경릉은 기왕비의 말하는 수법을 알고 싶었다. 기왕비 이 여자는 파악이 쉽지 않다.어쩔 때는 경박하게 느껴지고, 어쩔 때는 후안무치 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또 어쩔 때는 친절하고, 어쩔 때는 염치도 없다.원경릉까지 이렇게 얘기하니 회왕은 어쩔
회왕의 식중독원경릉이 나가서 노비와 몇 마디 말을 주고 받았다.“지금 눈으로 보기에 왕야의 병세가 호전되었기에 특히 드시는 음식에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절대로 누군가 수작을 부리게 해서는 안됩니다.”“누군가 회왕에게 손을 쓸 것 같은가?” 노비가 물었다.원경릉이 생각해 보더니, “단언하기 어려우나 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원경릉은 오늘 기왕비가 어제부터 아프다는 얘기를 노비에게 듣고 마음속으로 왠지 불안감이 싹텄다.기왕부부가 황위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사람은 다 안다.그들은 지금 우문호가 경조부 부윤의 위치에 있는 관계로 원경릉이 이번에도 회왕을 낫게 해서 공을 세울 까봐 지켜보고 있다.그래서 기왕부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회왕과 맞서고 회왕이 독에 당해서 죽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원경릉의 약에 독이 들었다고 지목해서 원경릉이란 주치의를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노비는 지금 원경릉을 매우 신뢰하고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으므로, 사람을 시켜 반드시 회왕의 식사를 각별히 예의주시하도록 했다.하지만 오후에 회왕은 아무 이유 없이 복통, 구토와 두통을 일으켰다. 이는 식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이다.다행히 약상자가 협력해서 생리식염수로 위 세척 후 회왕은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이번에 고생하며 회왕은 정말 죽다가 살아난 거나 다름 없었다.노비는 격노해서 사람을 시켜 철저하게 조사했다.하지만 회왕의 음식은 모두 노비 신변의 사람의 손을 거치고 이들은 노비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회왕부 가신이 말하길: “음식재료에 독을 탔을 가능성이 있고, 재료는 매일 일정하게 밖에서 사오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면 손을 썼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노비는 오늘 들여온 음식재료를 검사하니 음식 재료는 문제가 없고 대신 살코기 한 덩이가 맛이 변해 있었다.요즘 날씨가 춥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더운 날씨는 아니라, 이렇게 빨리 맛이 변할 리가 없다.역시 누군가 수작을 부렸다.그러나
회왕의 찬합과 함께 귀가하는 밤길사실 기왕의 속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황제일 텐데 왜 황제는 나서서 저지하지 않을까?만약 황제가 관여할 경우, 기왕이 이렇게 방자하게 굴지는 못할 것이 틀림없다.설마 황제의 의중이 정말 기왕에게 쏠린 것일까?그렇다면 다른 친왕들은 어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원경릉은 자기도 모르게 걱정에 쌓였다.황제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구나.원경릉이: “둘째 아주버님, 아바마마께서는 마음에 정해두신 바가 있으시겠지요?손왕은 어쩌다가 뜻밖의 견해를 내놓았는데 들어도 무방하다.손왕은 고개를 저으며, “모르지, 아바마마의 심중을 누가 헤아릴 수가 있겠어? 하지만 나에 대해서라면 아바마마께 혼나지만 않아도 천지신명에게 감사할 일이지.”하긴 그렇다. 황실 집안에서 뚱뚱한 먹보 역의 손왕은 분명 한심한 존재다.손왕은 장조림 한 덩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데 그게 딱 마지막 남은 거다. 원경릉은 조금만 먹었고, 나머지는 전부 손왕이 싹 비웠다.“드세요, 전 다 먹었어요.” 원경릉은 손왕이 더 먹고 싶어하는 걸 알고 말했다.손왕은 눈을 부릅뜨더니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만 먹을래, 살 빼야지.”“정말 그만 드세요?” 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손왕은 다시 한번 쳐다보고 여전히 느릿느릿 고개를 흔들며, “정말 안 먹어, 나도 한번 한다면 해.”손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내가게 했는데, 다시 보면 못 참고 먹을 것 같기 때문이다.손왕은 자신의 식욕을 제어하고자 했다. 사람이 자신의 식욕을 제어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밥을 먹고 원경릉은 마당에서 잠시 노닥거려도 여전히 우문호가 마중을 오지 않았다.구사도 오지 않았는데 구사는 오늘 오지 않는다고 아침에 얘기했다.거의 해시(밤 9시~11시)까지 기다리자 서일이 당도했다. 서일은 원경릉을 보고 자신이 왕야를 곁에서 다시 모실 수 있도록 사정해 준 것에 천만번 감사하며 큰 절이라도 올릴 자세다.원경릉은 서일의 말을 끊고, “왕야는?”“왕야께서는 바로 오시기 힘
마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손왕이 손을 뻗어 장막을 걷어 올리고 나오려고하자 서일이 이를 막아섰다.“나오지 마십시오. 문제가 생겼습니다!”손왕이 내밀었던 머리를 안으로 집어넣자마자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와 서일의 귓바퀴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서일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이 화살은 그의 머리를 관통했을 것이다.“자객이 있다!”서일이 급하게 머슴에게 마차를 몰라고 지시하고는 칼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실을 막았다. 원경릉은 자객이라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왕을 죽이려면 독약을 쓰는 방법 말고, 회왕을 치료하는 나를 죽이는 방법도 있겠구나…….’하루 종일 따라다니던 찜찜한 기분이 이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원경릉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적들이 회왕의 목숨뿐 아니라 그녀의 목숨도 노리고 있었다. 자객은 얼굴을 노출하지 않은 채 화살을 쏘아댔다. 서일은 화살의 개수와 속도를 보고 세 명 정도의 자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달리는 말이 화살에만 맞지 않는다면 적들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지만,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낀 말들이 울부짖더니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고 이내 마차가 뒤집혔다.희상궁은 온 힘을 다해 원경릉을 끌어안았다. 몸이 무거운 손왕은 뒤집힌 마차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원경릉이 손왕을 부축하려고 하자 화살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와 원경릉의 다리에 박혔다.주변은 캄캄했고, 마차 안에 등도 이미 꺼져버렸다. 이대로 조용히만 있으면 적들은 이들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원경릉은 통증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도중 화살이 또 한 발 날아와 그녀의 어깨에 꽂히자 원경릉은 끝내 소리를 질렀다. 희상궁은 두 발의 화살을 맞은 원경릉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서일은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돌진하며 “희상궁님 어서 왕비님을 데리고 가세요!” 라고 소리쳤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이 붙은 화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손왕이 화살을 두 발이나 맞은 원경릉을 부축하려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