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임소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강이한 이놈...”노여운 나머지 임소미는 마치 분노에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가슴이 벌렁벌렁 기복을 이루었다.임소미는 비록 강이한에 대해 불만이 많았지만, 이 타이밍에 더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가 말을 더 하면 이유영이 더 괴로워할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결국 그녀는 수많은 불만을 다 배속으로 삭혀버렸다.“너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 아이가 놀래. 방법은 내가 생각해 볼게.”수만 가지 생각을 거친 후에, 생각했던 많은 말들은 다시 뱃속으로 삼켜버렸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쳐다보았다.이유영이 대꾸하기 전에 임소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거잖아. 그 사람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였어.”“...”“그런데 그놈이 알았다고 해서 뭐? 그놈은 아이를 빼앗을 자격이 전혀 없어!”“맞아요. 자격이 없어요!”외숙모가 이렇게 말하자 이유영은 그나마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하지만 가슴속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었다.강이한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유영은 마음속으로 제일 잘 알았다. 일단 아이가 그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면 그는 무조건 과분한 행동을 할 게 뻔했다.비록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이날 밤, 이유영은 방안에서 온밤 아이를 안고 있었다. 자기 품속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코에 기다란 눈매, 딱 봐도 아주 예쁜 아가씨인 것이 보였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저도 모르게 강이한과 이온유가 같이 지내던 화면이 떠 올랐다. 정말이지 강이한은... 좋은 아버지가 될 것이었다.하지만... 전에 강이한이 이유영과 한지음을 대할 때의 차별을 생각하면 이유영은 저도 모르게 두 아이를 대입하게 되었다.‘만약 두 아이를 한 곳에 놓고 본다면 축소판의 나랑 한지음이 되지 않을까?’이렇게 생각한 이유영은 가슴이 더욱 턱턱 막혔다.이튿날 아침, 아침 식사 자리였다.“일은
“왜?”“유라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이유영이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그러자 부드럽던 임소미의 눈빛은 이 질문을 듣자마자 순간 굳어져 버렸다.“갑자기 걔 얘기는 왜 꺼내?”말투는 이미 조금 안 좋아졌다.“아무리 화가 크게 냈었다고 해도 지날 때가 되었잖아요.”다들 가문 간의 재산분쟁이 제일 큰 골칫거리라고 하지만 이유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열 글로벌의 경영을 맡으면서부터 이유영은 비록 일에서 뜻대로 되는 일은 없었지만, 딸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었다.그래서 이유영은 외숙모와 외삼촌이 하루빨리 정유라와 모순을 화해해서 정유라를 집에 돌아오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화를 내는 게 아니야!”“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유라는 지금 도대체 어디에 있어요?”특히 2년 전부터 정유라는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다.그중에 도대체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이유영은 줄곧 사정을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매번 외숙모 또는 외삼촌에게 물을 때면 그들은 이 주제를 항상 피하면서 얘기를 꺼렸다.지금...임소미는 이유영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그만 물어봐.”또 이 대답이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유라를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데 왜 지금은 유라 얘기를 묻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하시는 거지...!?’‘2년 전에 도대체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외숙모.”이유영은 자신의 따뜻한 손바닥으로 임소미의 손등을 감쌌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임소미의 감정을 달래주려고 하였다.임소미가 뭐라고 입을 열려고 하는 때,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순간, 임소미는 갑자기 해방을 받은 것처럼 말했다.“네 외삼촌의 전화야. 먼저 전화 좀 받을게!”이유영은 눈빛이 흔들리는 임소미의 눈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또 이렇게 얘기를 빼시네.’“월이. 아.”이유영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이유영은 정말 정유라가 정씨 가문으로 돌아왔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딸과 놀아줄 시간이 더 생길 수 있었다.매번 외삼촌이 병원을 다녀오는
여기까지 말한 임소미는 잠시 멈칫하였다.이유영을 바라보는 임소미의 눈빛에는 애절함이 스쳐 지나갔으며 심지어 숨결도 조금 무거워졌다. 그녀는 이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게 분명했다.그래서 2년 전, 진실을 알았을 때 임소미는 도대체 마음속으로 어떤 고통을 감당하면서 이유영을 받아들였을지 상상이 가곤 하였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사실, 이때 임소미가 마저 얘기하지 않아도 이유영은 대충 마음속으로 답안이 서군 하였다! 정유라는 외숙모의 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사실 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의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필경 전에 이 가족의 감정은 엄청나게 좋았다. 정유라가 제멋대로 굴어도 그들은 언제나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관용했다.‘왜 갑자기 유라를 내버린 거지?’2년이었다!이 2년 동안 이유영은 시도 때도 없이 임소미와 정국진이 냉담하게 정유라를 대하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역시 2년 전, 외삼촌의 몸이 서서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외숙모!”이 순간, 이유영은 임소미를 달래주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할지 몰랐다.예전에 이유영이 아이를 잃어버린 건 아이가 배속에서 나오기 전이었다. 근데도 이유영은 그 트라우마에서 하마터면 걸어 나오지 못했다!반명 외삼촌과 외숙모는?이 2년 동안 어떤 고통을 엮었을까!?정유라가 그들의 자식이 아니면 그럼 그들의 진짜 자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외숙모는 또 어떤 고통을 감당하였을까?“유영아 그거 알아? 내가 그때 낳은 건 사실 쌍둥이였어. 내 아이들은...”여기까지 말한 임소미는 이미 감정을 공제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녀는 흐느끼면 울기 시작했다.더는 얘기를 이어 나가지 못할 상황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의 가슴도 바늘에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아이가 둘이었어요?”“응.”그러니까 아이가 두 명이었다.그동안 임소미가 정유라를 얼마나 아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임소미가 자신이 낳은 아이가 사실 쌍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
그건 외삼촌 도와 회사를 경영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그리고 이유영을 키워준 부부에 대해서... 임소미는 당연히 감사했다.그들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엄청 아름다운 존재였다. 특히 정국진의 언니는 죽으면서도 이유영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이유영을 수호해 주었다.이유영은 운이 좋았다!“유영아...”임소미는 깊게 숨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는 2년 전 파리에서 생긴 엄청난 변화를 빠짐없이 이유영에게 알려주었다.뒤로 들을수록, 이유영의 안색은 하얗게 질렸고 심장도... 한데 쪼여 들었다.이제야 이유영은 2년 전 그때, 자기가 청하시에서 커다란 사고를 당하고 있었을 때 외삼촌도 그녀를 돌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원래 그 당시 외삼촌과 외숙모도 일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에 처해 있었다.그들은 갑작스럽게 자기들이 정성스럽게 키운 딸이 기실은 원수의 딸이며 자신들의 쌍둥이 딸과 아들은 행방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 당시의 충격은 생각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클 게 뻔했다!청하시의 일은 지현우와 루이스에게 맡겼고 정국진은 이유영이 위험에 처하면 안 된다는 명령을 내린 뒤, 자식을 찾는 일에 뛰어들었다.하지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렇게 인산인해인 세상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었겠는가?결국...유전자 풀의 대비를 통해, 이유영을 찾아낸 순간, 정국진은 정말 미친 듯이 청하시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큰불 속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데려왔다.그 뒤의 일은 이유영도 알고 있었다. 외숙모는 보통 이상으로 이유영에게 잘해 주었고 정유라에 대해서는 신경을 일도 쓰지 않았다.하지만 이유영은 그저 매번 정유라 얘기를 꺼내면 외숙모가 화를 내는 것만 알았지, 임소미와 정유라 사이에 도대체 어떤 모순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원수의 딸이었구나!’이건 어떤 개념이지...“어떻게?”임소미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이유영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못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운 게 분명했다.하지만 임소미에게는 2년이나 기다린
모든 것들이 다 너무 갑작스러웠다.뒤에 임소미가 한 얘기를 듣고서야 이유영은 외숙모가 왜 갑자기 이 소식을 자기에게 알려주는지 알게 되었다.나머지 쌍둥이 아이를 찾은 것이었다!2년! 고통을 받으면서 2년이나 지났는데 드디어... 그래도 찾아냈다. 임소미는 기쁘고 감격스러웠다.“유영아.”“우리 돌아가요.”이유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외숙모도 아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임소미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응!”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얼른 짐을 정리하라고 했다.하지만 이유영을 바라볼 때, 그녀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너도 나랑 같이 돌아가자!?”강이한도 다 아이의 존재를 알아버린 이상, 아이도 더는 퀘벡에 숨겨둘 필요가 없었다.이유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비행기 안에서, 임소미는 월이를 품속에 안고 있으며 눈에는 온통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이유영은 전에 외숙모가 월이를 아끼는 것을 보면 조금 이해 못 했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이런 지나친 편애는 사실 아이가 자신의 외손녀였기 때문이다.2년 동안, 외숙모는 정성을 이유영에게 쏟아붓지 않으면 월이에게 쏟아부었다.예전에는 이해가 안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유영아.”“네?”“난 지금 어떻게 그 애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임소미는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고!?’이 점에 대해서 이유영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사실 지금 이유영은 어떻게 외숙모를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임소미의 곁에 있는 건 단지 임소미가 자기를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임소미는 이유영의 품에 기댄 채 감탄을 늘어놓았다.“이러니까 다들 딸이 보배라고 하는 거구나. 하지만 그것도 친 딸이어야지.”예전에 그녀는 정유라에게서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정유라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때 임소미는 일편단심 정유라를 사랑해서 정유
“유영아!”이유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임소미는 이유영의 품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갑작스럽게 실망에 찬 임소미의 눈빛을 보며 이유영은 가슴이 덜컹거렸다.“왜요?”아무래도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람이어서, 임소미가 슬퍼하는 것을 보니 이유영도 마음이 아팠다.임소미는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날 엄마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이유영은 순식간에 온몸이 굳어져 버렸다.‘엄마?’모든 것이 너무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이유영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비록 그녀는 임소미를 아끼는 건 맞지만 지금의 현실을 아직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임소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사실 마음속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이유영이 멍해 있는 것을 보니 임소미의 눈 밑에는 애처로움이 스쳐 지나갔다.“미안해. 내가 너무 조급하게 몰아붙이면 안 되는 건데!”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임소미는 이유영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면서 그녀가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길 얼마나 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매번 이유영이 자신의 부모가 자기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를 듣고 있으면 임소미의 가슴속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감사하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다.감격스러운 건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이유영에게 잘해주어서, 아무리 자기가 이유영의 곁에 없었지만, 그들이 여전히 공주처럼 그녀를 대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하지만 반대로 두렵기도 했다. 그들이 너무 좋아서 이유영이 마음속으로 자기를 받아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임소미의 눈에 든 애처로움을 보면서 이유영은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것만 같았다.이유영은... 임소미의 이런 모습을 제일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애처로움은 이유영에게 가시가 되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이유영은 자기의 아담한 체구로 임소미를 품에 안았다. 따뜻한 체온 덕분에 임소미는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듯싶었다.“제가 이렇게 해서 마음이 조금 나아질 수
이유영은 끊임없이 임소미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외삼촌과 외숙모가 하루 사이에 갑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고, 그리고 이유영은 줄곧 자기를 외동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어떤 형제자매가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어 한지음이라는 존재를 계속 인정하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다고 하니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니었다.“외숙모.”“응?”“저...”이 순간, 이유영은 새하얘진 얼굴로 임소미를 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왜냐하면 그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만약 내가 외삼촌과 외숙모의 친딸이면 한지음은 왜 나와 혈연관계가 있었던 거지? 어떻게 내 여동생이었던 거지?’이유영은 순간 가슴이 꽉 쪼여 들었다.눈앞의 대문을 바라보며 순간... 이유영은 마치 심연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많이 달라지겠지...?’“왜?”임소미는 이유영을 바라보면서 이유영의 이상함을 감지하였다.“한지음은, 제 여동생이에요!”이유영은 임소미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비록 조금 잔인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이유영은 시작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싶었다.“너희 유전자 검사를 해봤었어?”“아니요. 근데 제가 한지음의 딸과 혈족관계 검사를 해봤는데 수치가 높게 나왔어요.”이유영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말했다.한지음의 딸 이온유를 말하는 것이었다.그 당시 이유영은 너무도 믿기지 않아 유전자 검사를 했었다. 그러자 혈족관계 검사에서 수치가 높았던 것이 떠 올랐다.그러니 한지음은... 이유영의 동생이 맞았다!지난번에 안 그래도 이유영은 혈연관계가 의심스러워 바로 유전자 검사를 했었다. 그 결과 이온유와 이유영은 친족관계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그 말인즉, 한지음은... 이유영의 동생이 맞았다!‘그럼 한지음도 아버지의 딸이라는 건데, 이렇게 되면 외숙모, 외삼촌이랑 관계가 있을 수 없는 건데...’혼란스러웠다! 이유영은 너무
그래서 산전 검사에서도...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이유영은 임소미를 안아주었다.“괜찮아요. 우리 일단 들어가 봐요.”“그래.”비록 이때 두 사람은 모두 것이 너무 혼란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모든 의심은 다 헛되고 말았다.모든 두려움과 불확실함, 그리고 의심은 정국진과 같이 서 있는 여진우를 본 순간, 다 사라지고 말았다.“유영아, 유영아...”임소미와 이유영은 거실에 선 채, 주방 안의 정국진 맞은 쪽에 앉은, 이유영과 똑같이 생긴 남자를 보았다.그 순간, 모든 의심은 다 사르르 사라졌다.아까 집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임소미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 모든 의심은... 연기가 되어 삭 사라졌다. 이유영도 마찬가지였다.두 사람은 그저 넋 놓고 멍하니 바라보았다.외동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면 기분이 어떨까?이유영의 마음속은 충격으로 가득 찼다....정씨 저택 안의 분위기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도라면, 다른 한편 소은지 쪽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소은지는 소월이 급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소은지 아가씨, 여섯째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이 말에 소은지는 멈칫하였다.‘왔으면 왔지!’하지만 소월의 모습만 보아도 오늘 밤 엔데스 명우가 쉽게 온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은지는 손에 든 수건을 내려놓았다.“왜 왔대요?”“도련님...”소월은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소월의 눈에는 눈물이 핑 고였으며 소은지를 위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괜찮아요. 왜 왔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엔데스 명우는... 이미 소은지를 한두 번 모욕한 것이 아니었다. 그 과정들은 모두 치가 떨릴 정도였다.‘왜 왔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여섯째 도련님은 설유나 아가씨, 의료진과 함께 오셨습니다.”“...”‘설유나? 설선비!’소은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소
서주가 이런 상황인데도 강이한은 굳이 파리로 찾아갔다.이유영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는 아마도 아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사건 이후, 아이의 마음속에서 강이한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정은 깊게 숨을 고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를 보셨습니까?”소월이...강이한의 머릿속에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유영 품으로 달려갔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이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이한의 가슴은 답답함으로 꽉 찼다.아무리 숨을 고르려 해도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소파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하나 피워 물며 무겁게 말했다.“그 사람... 소식은 들었어?”강이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 사람에 관해 묻기 시작하자 이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이한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염 선생님은 지금 우천에 머물고 있습니다.”“우천?”“네, 주소는 이미 알아냈습니다. 몇 년간 그곳에서 은거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염 선생님은 명망 높은 의학자였다. 그는 70세에 서주 국제병원에서 은퇴한 후 행방을 감추었는데 그의 진료는 항상 예약이 어려웠으며 그의 손을 거친 환자는 어떤 이유로 실명을 겪더라도 결국 시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강이한은 이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그는 한지음을 데려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염 선생님이 이미 은퇴한 후라,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 드디어 찾아내게 되었다. 강이한은 이유영과 함께 전생을 경험했기에, 이유영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유영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둠이었다. 수술을 계속 미뤄왔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차라리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것을 선택했다.수술이 실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만약 수술이 실패한다면, 평생 어둠 속에 갇히게 될 터였다.이유영은 이미 한 번 어둠 속에서 그 모든 고통과 무력함을
남자의 따뜻한 손끝이 이유영의 눈가를 살며시 스쳤다.아주 조심스럽게...이유영은 마치 그 온기가 자신을 태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여진우가 부드럽게 말했다.“의사 말로는 상황이 심각하대. 이번엔 제발 말 좀 들어줘, 응?”“응.”그동안 가족들은 계속해서 이유영이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유영은 전생에 겪었던 어둠 속에서의 공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이유영은 다시 과거의 어둠 속으로 빠지기 싫었기에 항상 핑계를 대며 수술을 미뤘다.사실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눈 수술은 본래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실패라도 한다면 이유영에게 남는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그 고통은 전생에 이미 충분히 겪었다.그렇기에 이유영은 다시는 그런 어둠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살고 싶지 않았다.그 어둠은.마치 악마의 동굴과 같았다. 그곳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 그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유영아.”“응?”“수술 전까지는 최대한 마음을 가볍게 가져봐. 그러면 수술에도 좋을 거야.”여진우의 말은 단호하고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그는 마치 곧 기증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말투였다.여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유영이 갑자기 그의 손을 붙잡았다.“왜?”여진우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모든 건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자, 알겠지?”이유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여진우는 잠시 멈칫하며 이유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유영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정씨 가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최상의 수술 환경을 준비하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이유영이 지금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이유영은 너무 많은 고난을 겪었다.강이한, 한지음, 이온유... 이들은 모두 이유영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유영은 이런 고
여진우가 돌아왔을 때, 강이한은 여전히 정원 한가운데 서 있었고 떠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심코 집 안쪽을 힐끗 보았다.여진우는 주먹을 가볍게 쥔 채 천천히 강이한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선 순간, 공기는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지금 상황에 여기까지 올 여유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여진우가 말했다.서주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국진이 발을 뗀 이후 이유영은 서주와 거리를 두었지만 여진우만큼은 그곳의 변화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지금 서주는 강이한과 박연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서주의 혼란 속에서도 강이한은 이곳까지 올 결심을 한 것이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유영을 떠올리게 할 만큼 닮아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강이한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전생에, 강이한은 이유영과 여진우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사실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봤더라면 그들의 닮은 점을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랬다면 서주에서 여진우를 만났을 때 이유영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았을지도 모른다.“널 과소평가했어. 이렇게 빠져나올 줄이야!”강이한은 서주를 언급하며 말했다.여진우가 만약 능력이 없었다면, 이번 서주 사태는 여진우에게도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여진우는 담담히 말했다.“인생은 많은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때로는 중요한 것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해!”여진우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강이한은 여진우의 말을 곱씹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중요한데 포기한다고?여진우는 강이한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이어갔다.“하지만 너한텐 포기라는 건 없어 보이네.”“...”“예를 들면, 이온유...”이온유. 그렇다.강이한과 이유영 사이의 핵심 갈등은 연서였고 그 문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존재는 바로 이온유였다.강이한은 여진우를 바라보며 입술을 다물었다.여진우는 더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등을 돌려 집 안으로 걸어가며 조용히 말했다.“서주로
“정 선생임...”강이한은 믿기 어렵다는 듯 정국진을 바라보았다.강이한이 정국진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정국진은 냉정하게 말했다.“설마 또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꺼내려는 건 아니겠지?”과거에.강이한은 이유영 앞에서 여러 차례 그저 아이일 뿐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그저 아이일 뿐이니까 이유영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뜻인가? 월이가 희생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던 걸까?그 순간.정국진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강이한의 가슴에 무거운 돌처럼 내려앉았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깊이 찔러 들어왔다.누구나 이성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감정은 편애를 피할 수 없다.그리고 강이한의 편애는 분명히 한지음과 한지음의 딸에게 쏠려 있었다.그는 당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입장에서만 내린 판단이었을 뿐이었다. 이유영과 아이에게는 그의 모든 행동이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강이한, 이번이 마지막이다.”정국진은 강경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장 여기서 떠나!”그의 말투에는 명백한 경고와 위협이 담겨 있었다.정국진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이한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정국진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긴 대화 속에서 드러난 결론은 단 하나였다.강이한에게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유영과 월이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처음부터 끝까지.한지음도, 한지음의 딸도 그저 강이한에게 중요한 존재일 뿐이었다.월이와 이유영은 어떤 의무도 없었고 받아들일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강이한은?그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강이한과 이유영의 관계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백산 별장.임소미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달래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은 이제서야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월이는 강이한의 딸이었다. 그러나 그를 본
강이한은 눈썹을 찌푸린 채, 여전히 이유영과 임소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었다.“그만 쳐다봐!”정국진이 말했다.정국진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호했다. 외조카와 친딸의 무게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많은 일이 있었다. 비록 이유영이 서주에서 돌아온 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정국진은 여진우를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지금 정국진의 태도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강이한은 정국진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방금...”“네가 본 대로다. 유영이의 시력은 급격히 악화했고 의사 말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 건 시간문제라고 하더군.”정국진의 차가운 말이 강이한을 가로막았다.강이한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숨 막히는 답답함에 사로잡혔다.이유영이...“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유영이 엄마 말로는, 박연준이 유영이를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더군.”알프산? 강이한의 표정이 굳었다.“...”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 강이한의 마음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했었다.이유영의 몸 상태로는 그런 추운 지역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다. 문제가 단순히 추위뿐만 아니라 두 눈까지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눈부신 설원과 강한 햇빛이 유영이의 눈에 치명적인 자극과 손상을 남겼어. 지금 시력이 이렇게 된 것도 그 탓이지.”정국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강이한은 이미 느끼고 있던 가슴속 고통이 정국진의 이 말로 인해 더욱 심해졌다.결국... 박연준이 이유영을 알프산으로 데려간 탓에 그녀의 시력이 이렇게 빠르게 악화한 것인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강이한은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혼란스러웠다. 얼어붙은 광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정국진은 강이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시 찾아오지 마라.”기회는 이미 넘칠 만큼 주어졌다. 강이한은 그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을
이유영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그대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허리에 전해진 강한 힘이 이유영을 단단히 붙잡아주었다.익숙한 기운이 스며들며 이유영을 감싸안았다.중심을 되찾는 순간, 이유영은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냈다. 그 사람은... 바로 강이한이었다.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와아아...”멀지 않은 곳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이유영의 차가운 눈빛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이유영은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월이야, 월이야.”이유영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엄마, 무서워요!”“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에요...”작은 아이는 두려운 목소리로 강이한을 보고 외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강이한은 아이의 입에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나쁜 사람... 이의 기억 속 자신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그래, 이게 바로 그가 아이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이것이 바로 그의 존재가 남긴 기억이었다.“그래, 맞아.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괜찮아. 엄마가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어떤 나쁜 사람도 월이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 다치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이유영은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강이한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그 고요한 광경이 가슴을 날카롭게 찢어놓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이 밀려왔다. 그때, 소란을 들은 하인들과 집사들이 급히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 역시 강이한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이내 임소미와 정국진도 급히 현장에 도착했다.임소미는 강이한을 보자마자 적대감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여긴 왜 온 거야?”임소미의 말투는 한 치의 호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유영이를 좀 봐.”정국진이 임소미에게 말했다.임소미는 강이한에 대한 불만이 아무리 많아도 이유영의 이름이 언급되자 그 감정을
임소미는 이유영이 백산 별장을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반산월로 돌아가는 것도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결국 이유영은 무력감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서재에서 정국진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두 눈은 지금...”정국진의 목소리에는 멈춘 말 속에 깊은 안타까움이 묻어났고, 이유영은 그 감정을 생생히 느꼈다.“아빠...”“수술은 빨리 받는 게 좋겠다. 그래야 네 엄마도 마음이 놓일 테니까.”“하지만 저는...”“걱정할 필요 없다. 네게 가장 뛰어난 의사를 붙여줄 테니.”정국진은 이유영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이유영을 달래며 말했다.사실 정국진과 임소미는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수술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모든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아빠...”“응?”“아빠... 저, 너무 무서워요.”그동안 가족들이 자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 이유영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이유영은 정말로 무서웠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그 고통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의 두 눈을 지켜 왔건만 결국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밀려왔다.전생에서 눈을 떴을 때, 이유영을 감싼 건 끝없는 어둠뿐이었다. 그 공포와 혼란은 그녀를 미치게 할 지경이었다.지난 생에서 이유영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어둠 속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한순간에 어둠 속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가 어두워져 가는 과정을 느껴야 했다.그 느린 과정이 그녀에게는 더욱 고통스러웠다.“무서워하지 마라. 우리 모두 네 곁에서 함께할 거야.”“네...”이유영은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주르르 떨어졌다.그래, 두려워하지 말자. 이번 생은 전생과는 다르니까. 비록 전생의 운명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번에는 가족들이 곁에 있어.전생에는 어둠 속에서 이유영 곁에는 강이한
이유영은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진 원인이 바로 알프산 방문 때문이라는 사실도.알프산을 다녀온 후 이유영의 시력은 점점 더 악화하였고 자극을 받은 듯한 이상 증상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강한 빛도 견디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곳에 갈 생각을 했니?”임소미는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이제 이유영이 어디를 가든 임소미는 더 이상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 장소가 이유영의 눈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욱더.“엄마, 정말 별일 아니에요...”이유영이 조용히 말했다.“더 이상 말하지 마!”임소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잠깐 잊고 있었어요.”이유영은 진심으로 말했다.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이전에도 의사가 주의를 당부한 적이 있었지만, 눈 덮인 곳에 갈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점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러다 이번에 큰 자극을 받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줄은 이유영 자신도 몰랐다.“잊었다고? 그 잊음 때문에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가 있니?”임소미의 목소리에는 분노를 넘어선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임소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엄마, 미안해요!”“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나는 네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 바랄 뿐이야, 알겠니?”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이 잘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이유영은 그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이유영은 손을 뻗어 임소미의 가냘픈 허리를 감쌌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임소미는 여전히 이렇게 날씬하고 아름다웠다.임소미는 평소에도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알겠어요, 엄마. 화 풀어요, 네? 저, 수술받을게요.”“유영아...”“엄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네?”임소미의 품에 안긴 이유영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임소미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안쓰러웠다.임소미는 이유영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우지는 빠르게 물을 닦아냈다.손바닥에 남은 차가운 물기는 이유영에게 시력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다.언젠가 이유영의 두 눈은 완전히 어둠 속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그 공포는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서서히 퍼져 나왔다.아침에 물 한 잔을 쏟은 이후, 이유영은 하루 종일 우지와 우현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유영은 이제 옷장 속에서 강렬하고 선명한 색깔의 옷들만 겨우 식별할 수 있었다.나머지 색깔들은 이미 모두 희미한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었다.아침 식탁.우지는 조심스럽게 죽을 이유영 앞에 놓으며 말했다.“아가씨, 조심하세요. 아직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그뿐만 아니라, 이유영이 숟가락을 집으려고 할 때, 우지는 바로 숟가락을 건네주었다.“고마워요.”이유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거센 혼란이 몰아치고 있었다.가슴은 답답하고 꽉 막힌 것 같았다.그때, 임소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엄마.”“왜 아침 같이 먹으러 오지 않았어?”“좀 늦게 일어났어요. 엄마 먼저 드세요.”“그럼 오전에는 꼭 돌아와서 월이랑 같이 놀아 줘. 네가 이곳에 안 온다고 하면 월이가 속상해할 거야.”“네, 알겠어요.”월이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유영은 가슴이 더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월이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이유영의 마음속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전화를 끊고 난 후.이유영의 세계는 다시금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이유영은 곰곰이 생각했다. 여진우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마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만약 임소미와 정국진에게 이유영만 존재했다면... 그들은 얼마나 더 힘들어하셨을까?다행스러움과 무거움이 동시에 몰려왔다.아침 식사 후.이유영은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백산 별장으로 돌아갔다.임소미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