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병실에서 밥을 먹었다. 장소월은 죽만 먹을 수 있었고, 소현아는 반찬 세 가지와 국 한 그릇을 와구와구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소월아, 너희 집 아주머니 음식 솜씨 진짜 좋구나.”“맛있으면 많이 먹어. 모자라면 내가 아주머니한테 더 해달라고 할게.”그때 은경애가 다시 들어왔다.“아가씨, 도련님 식사 남겨둘까요?”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느긋하게 죽을 먹으며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괜찮아요. 알아서 먹을 거예요.”“그래요.”은경애는 주방에 돌아가 설거지를 했다.소현아는 배불리 먹고 난 뒤 빵빵해진 배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월아, 나 내일도 너 보러 와도 돼?”장소월이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되지.”“오늘은 늦었으니까 집에 가서 쉬어. 아버지가 걱정하셔.”시간을 보니 어느덧 아홉 시가 되어가고 있었다.소현아는 장소월을 끌어안고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소월아, 네가 괜찮아져서 정말 다행이야. 너무 좋아!”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소현아는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여전히 낙관적이고 활달하다.장소월은 기력을 조금 회복한 뒤 휠체어를 타고 아이를 보러 옆방으로 갔다. 머리를 다쳐 끙끙 앓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니 장소월은 심장이 또다시 아프게 저려왔다. 그녀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너도 내가 그만 자고 깨어나길 바랐던 거지?”‘사실 나... 네가 날 엄마라고 부르는 걸 계속 듣고 있었어...’‘별아... 네가 정말 내 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넌 아니겠지... 난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니까.’‘난 오직 내 아이의 엄마만 되어줄 수 있어. 때문에 난 널 받아들일 수 없어. 미안해... 별아...’장소월이 옆방에서 돌아와 침대에 올라가려고 할 때, 병실 문이 열렸다. 장소월은 힐끗 그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어느덧 새벽 12시였다. 전연우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가까이
머릿속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장소월은 애써 그 고통을 견뎌내다가 결국... 움직이지 못했다.장소월은 손에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얼마 후, 전연우가 또다시 가까이 다가와 뒤에서 그녀를 품에 안고 조금 자세를 고쳐잡았다.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이 안 와?”장소월이 덤덤히 대답했다.“아니. 자.”말을 마친 뒤 그녀는 눈을 감았다.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니, 곧바로 잠이 들었다.깊은 밤, 전연우의 작은 움직임이 장소월을 깨웠다. 그는 밤새 그녀를 끌어안고 있다가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빼내고는 피가 통하지 않아 찡찡 저리는 팔을 문지르며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친 뒤 밖으로 나갔다.아침 여덟 시 반, 의사가 시간 맞춰 들어와 장소월의 몸 상태를 살폈다.의사가 말했다.“회복이 잘 되고 있어요. 너무 오래 누워있어서 조금씩 운동해야 해요. 전엔 깨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원기가 상한 거예요. 당분간 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으니까 2, 3주 병원에서 회복하면 퇴원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암세포가 재발하진 않았는지 검사받으러 오셔야 해요.”장소월이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선생님.”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푹 쉬세요.”“네.”은경애가 의사를 모시고 나가자, 전연우는 장소월과 함께 병실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녀는 스스로 먹을 수 있었음에도 전연우는 꼭 한 술 한 술 먹여주겠다고 고집부렸다.전연우는 손으로 그녀 입가에 묻은 죽 흔적을 닦아주었다.“다 먹고 나면 나랑 내려가서 산책하자. 오늘 날씨 좋아.”방 안엔 히터가 켜져 있어 별로 춥지 않았다. 장소월은 환자복을 입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을 뚫고 금색 찬란한 햇살이 부드럽게 비추어 들어왔다. 병원 마당엔 노란색 오동나무 잎들이 무성히 자라나 있었다. 그 광경은 장소월로 하여금 오동나무가 길 양옆으로 빼곡히 펼쳐져 있고, 바닥에 나뭇잎
식탁 위, 장소월이 아이에게 계란찜을 먹이려 하자 별이는 손을 뻗어 그녀 손에 있는 숟가락을 잡았다. 전연우는 빠르게 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밥이나 먹어.”별이는 그를 향해 악 소리치고는 작은 손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손이 그릇에까지 들어갔고, 장소월이 재빨리 그릇을 잡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엎을 뻔했다.“말 안 들어?”남자가 위험한 눈동자로 아이를 쳐다보았다.장소월은 휴지 몇 장을 뽑아 별이의 손을 닦아주었다.“아직 어린아이야. 왜 그렇게 사납게 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잖아.”“밥 먹이는 일은 도우미한테 맡겨.”장소월이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으니, 전연우는 아이에게까지 마음을 써야 했다.별이는 전연우에게 겁을 먹고 억울한 듯 입꼬리를 축 내리뜨렸다.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장소월은 밥도 채 먹지 못하고 아이를 안고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그때 마침 은경애가 분유를 풀어 가져왔다.“아가씨, 이것 좀 먹이면 울음을 그칠 거예요.”“알겠어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이제 휴가 내고 싶으면 저한테 말해주시면 돼요.”은경애는 손을 휘저었다.“아이고. 전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냥 밥하고 아이만 보는 걸요.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자유롭다니까요.”은경애는 지금까지 아이를 제대로 보지 못해 다치게 한 일로 죄책감에 장소월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었다.이제 보니 장소월은 그녀를 별로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연우는 닭죽을 들고 장소월의 옆으로 다가왔다. 장소월이 고개를 들어보니, 전연우가 이미 그릇을 들고 와 숟가락을 그녀 입에 가져왔다.“일단 죽부터 먹어. 먹고 나서 달래.”“나 배불러.”“조금만 더 먹어. 말 들어.”“진짜 안 먹을 거야! 짜증 나게 하지 마.”장소월은 아이를 안고 도망쳤고, 전연우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그녀가 방 안으로 숨어든다고 해도, 전연우는 틀림없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녀에게 먹이고야 말 것이다.장소월은 그의 고
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아이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엔 모성애가 가득 차 있었다.장소월은 여전히 전연우와 함께 안방에서 지냈다. 이제 장소월은 정말로 이 남원 별장의 여주인이 된 것 같았다...그들은 분명 부부가 아니다. 하지만 평소 부부가 하는 일을 하고 있다.남원 별장의 도우미는 모두 바뀌어 다들 장소월을 전연우의 아내로 알고 있었다.하여 그들은 모두 장소월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유독 은경애만큼은 줄곧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장소월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들이 편한 대로 호칭을 정하게 했다.별장엔 경호가 더 강화되어 장소월은 여전히 아무 데도 나갈 수 없었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아이가 한 명 더 생겨 그녀의 족쇄가 된 것, 그 하나였다.장소월은 남원 별장에서 몸조리를 한 끝에 이젠 예전의 기력을 되찾았다. 다만 큰 병을 앓고 난 뒤라 몸이 약해져 층계를 오를 때에도 거친 숨을 내쉬었다.장소월은 아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별이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져 선명하게 엄마라고 발음하고 있었다.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사모님, 조금 전 대표님께서 전화하셔서 오늘은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모님에게 잊지 말고 약 드시고 일찍 쉬라고 하셨습니다.”장소월은 도우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차갑게 주방에서 걸어 나가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앞으로 그런 건 저한테 얘기할 필요 없어요.”그녀는 물을 한 컵 따르고는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만약 장소월이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탁자 위 전화기가 통화 중인 상태라는 걸 발견했을 것이다.도우미는 그녀가 위층에 완전히 올라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난 뒤에야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대표님, 사모님께서 올라가셨습니다. 혹시 더 분부하실 일 있나요?”성세 그룹 대표 사무실.전연우는 금테 안경을 걸고, 검은색 셔츠 위에 와인색 조끼를 입고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깊은 눈동자 속엔 서늘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었다.예전과 유
송시아는 두 손으로 책상을 탁 치고는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 전연우를 쳐다보았다.“천하 일성의 일은 내가 꾸민 거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강지훈에게...”그 뒤의 말은 차마 입에 담아내지 못했다.“그 일은 이제 없었던 거로 해요.”“제가 원하는 건 성세 그룹 안주인 자리예요.”전연우가 손에 들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성세 그룹 부대표 자리도 성에 안 차? 성세 그룹 안주인에 네가 가당키나 해?”“하하하...”송시아는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전연우 씨, 그런 말 할 자격이 제일 없는 건 바로 당신이에요. 전생에서 당신이 어떻게 장소월을 내쫓았는지 말해줬던 거 잊었어요?”“내가 한 번 더 얘기해줄까요?”“당신은 장소월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와 8년이나 바람을 피웠어요. 결국 장소월은 아이와 함께 저승으로 가버렸죠.”송시아가 조롱 어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인시윤을 제거한 건 아마 인시윤이 당신의 비밀을 알아서였겠죠. 전연우 씨, 당신은 무서웠던 거예요!”“장소월이 친오빠가 하려 하는 이 황당무계한 일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겠죠. 그래서...”“악!”송시아가 돌연 귀를 찢을 듯 소리쳤다.전연우가 서늘한 눈동자로 그녀의 머리를 잡고 책상에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전연우의 몸에서 사람을 비틀어 죽일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또다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면 지금의 위치를 박탈하는 건 물론이고 혀를 뽑아 지하에서 창녀로 뒹구는 게 어떤 기분인지 느끼게 해줄 거야.”“두 번의 인생을 거쳐 내 곁에 있었다니까 잘 알고 있겠지. 난 모든 사람한테... 너한테도... 자비를 베풀지 않을 거라는 걸.”“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건 바로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거야!”송시아는 확실히 적잖게 그를 도왔다. 그건 전연우가 지금까지 그녀를 참아줬던 이유이기도 했다.송시아는 목이 졸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얼굴은 터질 듯 시뻘게졌고, 머리는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아찔하게 어지러웠고, 눈앞은 점차 흐
새벽 12시, 돌연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휘몰아쳤다.거대한 소리가 남원 별장 전체에 울려 퍼지자 별이는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렸다.장소월은 토닥토닥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달래고는 소변에 젖은 침대 시트를 갈아주었다.우렛소리가 언제 그칠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어쩔 수 없이 별이를 데리고 전연우의 서재로 향했다. 몇 개월 사이 별이는 살이 꽤 붙어 조금만 안고 있으면 팔이 시큰해졌다. 하여 그저 소파에 앉히고 장난감으로 장난을 칠 뿐이었다.서재에선 괜찮았지만, 한 발자국만 나서면 또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장소월은 손가락으로 아이의 코를 톡톡 두드렸다.“별아, 우레가 그렇게 무서워?”“엄... 엄마...”장소월은 반응하지 않았다.“엄마...”“...”“아, 엄... 엄마...”장소월은 아이가 하품을 하는 걸 보고는 이제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안고 서재를 나섰다. 그 순간 문밖 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려보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녀는 못 본 척 서재 조명을 끄고 방으로 돌아갔다.서철용은 위층을 올려다보며 술에 절어 인사불성이 된 전연우를 차에서 끌어냈다. 그러고는 그의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들어가 소파에 매정하게 내팽개쳐버리고는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그깟 주량으로 나랑 술을 마시려고 해? 그러니까 송시아한테 당했지.”서철용은 복도를 힐끗 보고는 더는 머무르지 않고 열쇠를 내려놓은 뒤 별장을 떠났다.그가 차 운전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를 보고 전화를 끊어버리려는 순간, 별장 3층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장소월이 핸드폰을 귀에 대고 창가에 서 있었다.서철용이 전화를 받았다.“오랜만에 나한테 전화하네요.”얇은 잠옷을 입고 있는 장소월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약속 지킬 수 있어요?”서철용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당연하죠. 뭐든 말해요.”“그래요... 나 당신 도움이 필요해요.”서철용은 그녀의 말을 들은 뒤 흔쾌히
장소월은 눈을 감고 그가 전해오는 한 번 또 한 번의 충격을 견뎌냈다.창문 밖 날이 밝을 때까지 말이다.격렬한 운동을 마친 뒤 전연우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술도 어느 정도 깬 것 같았다.그는 기진맥진해 축 늘어져 있는 장소월을 안아 욕실에 들어가 씻기고는 다시 침대에 눕혔다.어둠 속에서 전연우는 옆에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눈썹을 만지작거렸다.‘반드시 언젠가 너 스스로 내 옆에 남겠다고 하는 날이 올 거야.이제 더는 나한테서 도망치지 마.’“이번 생엔... 송시아 같은 사람은 없어. 오직 너와 나뿐이야.”“우리 사이에 아이가 없어도 괜찮아.”남자의 무거운 목소리가 어두운 방 안에 선명히 맴돌았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 두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운 장소월의 귀엔 닿지 않았다.그녀가 깨어났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옆에 있던 별이도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온몸을 쑤시는 근육통에 이마를 찌푸리며 일어나 앉았다. 옷이 가리지 못한 가슴 주위 피부는 온통 어젯밤 남자가 남긴 흔적으로 뒤덮여 있었다.몇 분 뒤, 은경애가 문을 두드렸다.“아가씨, 깨셨어요?”“들어오세요.”은경애는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대체 대표님이 얼마나 사납게 휘둘렀길래 사람이 저렇게 된단 말인가.그것도 이제야 간신히 몸을 회복한 사람을 말이다.은경애는 방으로 들어간 뒤 행여 찬바람이 들어올까 봐 문을 닫고는 옷장에서 따뜻한 가디건을 꺼내 장소월에게 덮어주었다.“정말 너무하네요. 아가씨, 힘들면 얘기하세요. 제가 의사 선생님한테 연락할게요.”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조금 쉬면 돼요.”그녀가 물었다.“별이는요?”“전 대표님은 아침 일찍 나가셨고 별이는 옆 방에 있어요. 제가 아가씨 몸보신 하라고 삼계탕 끓였어요.”장소월은 다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지금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알겠어요. 나가보세요. 전 조금 더 쉬고 싶어요.”은경애는 걱정스레 그녀를 쳐다보았다.“혹시 어디 불편하면
눈은 예전 강영수가 그녀를 찾아 파리에 왔던 그 날처럼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그녀가 자주 지나가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는 어깨에 쌓이는 눈송이를 툭툭 털어내며 그곳에서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렸다...“어머, 아가씨, 왜 우세요?”아까 방에 들어왔던 은경애는 바닥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러다 돌연 주르륵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급히 다가갔다.“아이고. 왜 이러세요.”은경애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 장소월은 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걱정 마세요. 전 괜찮아요.”은경애의 시선이 장소월의 손에 쥐어져 있는 사진첩 속 사람에게 향했다.“어머나, 누군데 이렇게 예뻐요?”그녀는 급기야 사진첩을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정말 예쁘네요. 선녀 같아요.”장소월이 말했다.“제 엄마예요.”“어쩐지. 아가씨도 선녀처럼 아름다우시잖아요.”이제 장씨 집안 예전 도우미들을 제외하고는 이 남원 별장의 안주인이었던 성예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었다.장소월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엄마는 늘 부드러운 사람이셨어요...”“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고, 모란꽃을 좋아했어요...”당시 연선우는 어머니를 위해 정원에 커다란 모란꽃밭을 만들었었다. 꽃 피는 계절 창밖을 내다보면 정원 가득 만연한 모란꽃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말이다.장소월은 은경애에게 자신의 많은 일을 털어놓았다.남원 별장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장소월은 퇴원한 뒤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장시간 억눌렀던 마음이 처음으로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그래서 아가씨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거였네요. 그것도 사모님 덕분이었어요. 아가씨... 그럼 사모님은 그 뒤에 어떻게 되셨어요?”“엄마는... 절 낳고 나서 돌아가셨어요.”“사모님... 대표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도우미가 문을 두드리고 일러주었다.은경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