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떠나는 거야?”장소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영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서류 가방을 꼭 쥐고 있는 장소월의 손으로 시선이 향한 순간, 그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약혼식을 당장 취소하진 않을 거야. 필경 내가 너한테 졸라서 진행한 거니까. 돌연 취소하면 우리 강씨 집안 명성에 먹칠을 하는 거나 다름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취소할 거니까 기다려.”“앞으로 학교와 집을 제외하고는 아무 데도 가지 마.”장소월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차가 고장 나서 수리 맡겼어. 이건 도우미 아주머니가 네 차에서 가져온 거야. 적당히 마셔, 난 이만 방에 돌아갈게.”“거기 서.”장소월이 몸을 돌린 순간, 강영수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그녀가 물었다.“또 할 얘기 있어?”“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아?”장소월이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그건 네 물건이야. 나한테 열어볼 권리가 없어.”강영수가 그녀 앞으로 걸어가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그 권리 내가 지금 부여할게. 열어봐.”장소월은 한참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강영수가 위험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왜, 못 하겠어? 무서운 거야?”장소월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 봉투를 열었다.“안에 든 물건을 꺼내.”그가 명령했다.장소월은 그의 말대로 사진을 꺼냈다.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망측한 사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강영수가 그녀의 반응을 주시하며 뚫어지라 쳐다보았다.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장소월이 지극히 평온한 얼굴로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요즘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게 이것 때문이었어? 조금 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몇 장 봤었어.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 했었는지 알아? 내 뒷조사를 한 것 외에 또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일
“미안해... 네 뒷조사를 하는 게 아니었어. 그 사진을 보고 너한테 말 못 했던 건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야.”슬프고도 무거운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내가 그 일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네가 알면 매정히 떠나버릴까 봐 무서웠어.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널 지켜만 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난 너한테 상처 못 주겠어. 한 마디 독한 말조차 입에서 나오지 않아.”“소월아, 사랑해.”“널 너무 사랑해서, 사진 속 장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난 너와 헤어진다는 걸 생각해본 적도 없어. 약혼식을 취소하자는 것도 그저 홧김에 한 말일 뿐이야.”“나한텐... 너밖에 없어! 가지 마. 사실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 안 해. 내 곁에만 있어 줘. 난 널 잃고 싶지 않아.”그는 이미 많은 사람을 잃었다. 마지막 남은 사람까지 잃으면 얼마나 큰 절망에 빠져버릴지 모른다.“나한테 한 마디만 해줘. 모두 다 사실이 아니라고. 응? 거짓말을 해도 괜찮아.”강영수가 그녀를 꼭 끌어안고 애원하듯 말했다.어두운 방 안, 장소월이 눈을 떴다. 그녀의 말투는 여느 때와 같이 평온했다.“사진 속의 사람은 내가 아니야.”그녀가 말했다.“좋아!”“이젠 무슨 일이든 나한테 숨기지 마.”사진 속 사람은 확실히 그녀가 아니다. 저번엔 도저히 반항할 수가 없어 강제로 그런 옷을 입었었다. “알았어.”“가서 샤워하고 자. 안 좋은 냄새 나.”“조금만 더 안고 있을게.”그녀는 이제 정말 자야 한다. 아니면 내일 제시간에 깨지 못할 것이다.장소월이 눈을 감았다. 가슴 속 응어리가 씻겨 내려간 것 같은 후련한 마음에 곧바로 잠이 들었다.2시간 뒤, 샤워를 마치고 난 뒤의 청량하고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그 바람에 잠시 잠에서 깼지만 몸을 돌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이 지났고 어느덧 수능 날짜가 다가왔다.학교 문 앞은 아이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로 붐비었다. 그들의 기대와 긴장감이 현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시험 잘 봐
전생.그녀와 송시아가 처음 만났던 건 송시아가 먼저 전연우의 커피숍에서 만남을 청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당시 서울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해 주위 모두 빽빽한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중 절반 가까이 되는 회사들이 성세 그룹 소유였다.뜨거운 무더위에 연기가 나도록 펄펄 끓고 있는 도로, 그리고 저절로 얼굴을 찌푸리게 만드는 악취, 그야말로 꿉꿉하고 께름칙한 찜통 같은 여름이었다.성세 그룹 로비에 위치하고 있는 커피숍 안, 송시아가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카락을 질근 묶은 채 도도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누가 봐도 능력 있고 똑똑한 여장부의 모습이었다.그녀와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면, 장소월은 늘 열등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장소월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바로 남편의 믿음직스러운 비서 송시아다.송시아의 가소로운 듯한 눈빛에 장소월은 움찔하며 가방을 꽉 움켜쥐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왜 날 보자고 했어요?”송시아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빨간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나도 우아하고 매혹적인 이 사람을 거부할만한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0분 뒤 대표님과 함께 유럽으로 출장 가야 해요. 시간이 없으니 짧게 얘기할게요.”그들이 유럽으로 갈 거라는 걸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말해주지 않았다.송시아가 귀 옆 잔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전 대표님께서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고 있어요. 사모님의 장씨 가문에 입양되셨더라고요. 비록... 장씨 집안엔 이제 사모님 한 분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표님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아버님께선 아들을 잘 키우셨어요. 제가 존경할 수 있을 정도로요.”“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와 10년이 지나도록 줄곧 대표님의 옆에 있었어요. 그건 사모님께서도 익히 잘 알고 계실 거예요. 남천 그룹에서 시작해 지금의 대기업 성세 그룹이 되기까지, 분명 제힘도 적잖은 보탬이 되었을 거예요. 저야말로 대표님의 곁에 있어야 마땅한 사람이에요.”장
“알겠어요.”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진봉이 차 시동을 걸며 말했다.“강씨 집안엔 소월 아가씨와의 파혼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 3일 후 예정대로 약혼식을 진행할 겁니다. 대표님, 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약혼식을 망치려 하는 건가요? 소월 아가씨가 강씨 집안 사람이 되면 대표님에게 이득만 있지 해가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또한 파혼시키고 싶다면 왜 김남주의 그 비밀들을 강영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그럼 저흰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오늘 기분이 좋은지 머릿속 생각들을 진봉에게 털어놓았다.“소월이의 그 사진들은 강영수를 시험하기 위해 보낸 거야. 소월이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보려고.”결과적으로 강영수는 장소월에게 꽤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 배신을 감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강영수가 장소월을 용서할 거라는 걸 전연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말을 이어갔다.“소월이는 그저 나와 장씨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때문에 강영수가 김남주와 만나는 것도 눈감아줬어.”“하지만 애석하게도 장소월은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몰라. 사진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 강씨 집안 권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강영수는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 꿈에도 모르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함정을 파놓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 결국 최후엔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김남주의 비밀은 확실히 좋은 무기야. 하지만 그거론 턱없이 부족해. 아직 그걸 쓸 타이밍이 아니기도 하고.”“난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넣고 싶어. 그럼 절대 다시 강영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거야.”“10여 년 동안 내가 보아온 장소월은 그래.
장소월이 다가오자 강영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햇볕이 너무 따가웠던 탓에 서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 안 온도는 아주 시원했다. 강영수가 차가운 물을 장소월에게 건넸다.“시험 잘 봤어?”물을 한 모금 마시니 무더위가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괜찮은 거 같아.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어.”강영수는 그녀와 함께 이미 예약해 놓은 촬영 회사로 향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이번이 그중 한 번이다.촬영을 마치고 나자 녹초가 된 장소월은 차 안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강영수는 운전을 하다 그녀의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팔을 뻗어 얼굴을 감쌌다. 빨간불이 되어 정차한 다음엔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혀 그녀를 편히 눕혔다.그녀는 화장한 얼굴로 편안히 누워 강씨 저택에 도착했다.강영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안은 뒤 현관으로 들어갔다.도우미가 달려 나왔다.“도련님...”그의 품속 장소월을 본 순간 도우미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할 말 있으면 밤에 해요.”강영수가 장소월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 안에 들어간 뒤 강영수는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영수는 발신자 이름을 보고선 곧바로 전원을 꺼버렸다.요즘 시험 준비에 바삐 돌아친 데다 약혼식 등 많은 일까지 겹치다 보니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깊이 잠들지 못했었다.강영수는 화장대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려서야 겨우 클렌징 오일을 찾아냈다. 그는 세심히 성분표를 살펴본 뒤 비교적 온화한 클렌징 오일을 선택해 조금씩 장소월의 얼굴을 문지르며 화장을 지워냈다.은은한 레몬 향을 맡은 장소월이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뭐 하는 거야?”강영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화장한 채 자면 피부에 안 좋아. 내가 지워줄게. 금방이면 돼.”“응.”화장을 지우고 난 뒤 강영
인씨 가문.강영수가 약혼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인정아가 강씨 집안으로 전화를 걸었다.“어머님, 영수가 곧 약혼한다면서요? 왜 저한텐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전 영수의 엄마예요. 이렇게 큰일을 알 권리조차 저한텐 없는 건가요?”강씨 노부인이 말했다.“이건 영수의 결정이야. 난 간섭할 수 없어. 영수는 이제야 가까스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어. 엄마로서 정말 영수를 위한다면 조용히 있어. 너와 강씨 집안 인연은 이미 끝났어. 나 또한 네가 영수의 엄마니까 전화통화라도 해주는 거야.”“당시 영수는 고작 다섯 살이었어. 넌 그 어린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괴롭혔어.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까지 했지. 이제 와 자책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마. 우리 강씨 집안에선 이미 너라는 사람을 잊었으니까!”뚜뚜 통화음과 함께 전화가 끊겨버렸다.인정아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얼굴을 감쌌다.인시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엄마... 괜찮으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흥분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우리 오빠한테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네? 분명 용서해줄 거예요.”“오빠의 약혼식에 가고 싶으시면 제가 소월이에게 전화해 얘기할게요. 소월이가 갈 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신다면 어떻게 약혼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강영수도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인시윤의 그 말에 희망이 생긴 인정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시윤아, 이번 일은 너한테 부탁할게. 난 네 오빠한테 너무 큰 빚을 졌어.”“엄마 마음 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 오빠가 엄마를 용서할 날이 꼭 올 거예요.”그녀는 줄곧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 말인가.그녀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당시 그녀는 강일주의 배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강일주가 밖에서 심유와 외도하며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사생아까지 낳은
약혼식에 참석한 강영수의 친척은 그리 많지 않았다.강일주가 왜 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강씨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 빼곤 아무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예전 인정아와 강일주의 이혼 때문에 나라 전체가 들썩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도 서울 제1명문가인 강씨 집안 사생활에 대해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강씨 집안엔 강일주를 제외하고 두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여동생이 더 있었다.그들은 강한 그룹의 계열사를 맡고 있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장소월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장소월은 연장자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적잖은 봉투를 받았다. 그녀는 두둑하게 받은 봉투를 옆쪽 종업원에게 넘겨주었다.그녀가 받은 축의금은 서울 중심 구역에서 별장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정도의 금액이었다.강영수는 물질적인 면에서 종래로 그녀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강영수의 방 안 금고의 비밀번호까지 그녀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안엔 금괴와 평소 편히 쓸 수 있는 현금이 들어있었다.전연우가 백윤서의 귓가에 무어라 말하자 그녀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전연우는 새 잔을 갖고 와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주스를 부어주었다.보기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으나 실상은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장해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소월이는 자네한테 맡기겠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이란 모르고 자랐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지. 때론 천방지축 날뛰더라도 자네가 이해하고 보듬어주게.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강영수가 허리를 굽혔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모습이 더없이 준수했다. 목에 남아있는 문신 자국엔 장소월이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어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본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이나 강영수가 거부하는 바람에 장소월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강영수가 깊은 눈동자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소월이는 이제 제 와이프입니다. 어떤 행동을
“난...”장소월은 어찌할 줄 몰라 망설였다. 강영수에게 있어 인씨 집안은 지옥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월아, 엄마와 오빠가 화해하길 원하지 않는 거야? 너도 이제 어머니라고 불러야지. 우리 다 가족이잖아. 오빠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이번 일은 반드시 우릴 도와줘야 해. 엄마랑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장소월이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윤아,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이모님에 관한 건 내가 영수와 상의해볼게. 하지만 영수가 받아들일지는 보장하지 못해.”“장소월!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우리 엄마가 오빠랑 얼마나 화해하고 싶어 하시는지 몰라? 넌 우리 생각 따위 하지 않는 거지?”인시윤이 노기를 애써 꾹꾹 누르며 말했다.장소월이 예쁜 눈썹을 찌푸렸다.“시윤아, 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이모님께서 우릴 축복하고 싶으시다면 우린 마음속으로 고맙게 받을게.”“왜, 누구 전화야?”강영수의 온화한 목소리가 장소월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장소월이 방금 끊긴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금 전 일을 강영수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지금 그 일을 언급하는 건 그를 괴롭게만 할 뿐일 테니 말이다.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현아야.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 약혼식에 오지 못했잖아. 통화하면서 아쉽다고 울기까지 하더라고.”강영수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은 하늘에서 둥근 달과 찬란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듯 밝은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극히 드물다.“소월아, 나 정말 기뻐. 넌 이제 내 것이야. 절대 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장소월도 그의 등에 손을 올려 그를 끌어안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술 냄새가 강영수의 몸에 배어있었다.“그래.”앞으로 그녀의 인생엔 전연우도, 백윤서도, 강만옥도, 그리고... 송시아도 없을 것이다.더는 전생의 일이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