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어요.”백윤서가 차에서 내렸다.진봉이 차 시동을 걸며 말했다.“강씨 집안엔 소월 아가씨와의 파혼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아마 3일 후 예정대로 약혼식을 진행할 겁니다. 대표님, 전 이해가 안 됩니다. 왜 약혼식을 망치려 하는 건가요? 소월 아가씨가 강씨 집안 사람이 되면 대표님에게 이득만 있지 해가 되는 건 없지 않습니까? 또한 파혼시키고 싶다면 왜 김남주의 그 비밀들을 강영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겁니까? 그럼 저흰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요.”전연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오늘 기분이 좋은지 머릿속 생각들을 진봉에게 털어놓았다.“소월이의 그 사진들은 강영수를 시험하기 위해 보낸 거야. 소월이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할 수 있을지 보려고.”결과적으로 강영수는 장소월에게 꽤 깊은 마음을 갖고 있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 배신을 감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강영수가 장소월을 용서할 거라는 걸 전연우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전연우가 말을 이어갔다.“소월이는 그저 나와 장씨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야. 때문에 강영수가 김남주와 만나는 것도 눈감아줬어.”“하지만 애석하게도 장소월은 아직도 나에 대해 잘 몰라. 사진은 그저 시작일 뿐이야. 강씨 집안 권세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강영수는 그저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이 얼마나 독하고 악해질 수 있는지 꿈에도 모르지.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맹수가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함정을 파놓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은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다 결국 최후엔 죽음이라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김남주의 비밀은 확실히 좋은 무기야. 하지만 그거론 턱없이 부족해. 아직 그걸 쓸 타이밍이 아니기도 하고.”“난 장소월의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넣고 싶어. 그럼 절대 다시 강영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거야.”“10여 년 동안 내가 보아온 장소월은 그래.
장소월이 다가오자 강영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대부분의 학생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장소월은 햇볕이 너무 따가웠던 탓에 서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조수석에 올라탔다.차 안 온도는 아주 시원했다. 강영수가 차가운 물을 장소월에게 건넸다.“시험 잘 봤어?”물을 한 모금 마시니 무더위가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괜찮은 거 같아. 예상보다 어렵지 않았어.”강영수는 그녀와 함께 이미 예약해 놓은 촬영 회사로 향했다.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사진을 찍어본 적이 몇 번 없었다. 이번이 그중 한 번이다.촬영을 마치고 나자 녹초가 된 장소월은 차 안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강영수는 운전을 하다 그녀의 몸이 옆으로 기우는 것을 보고는 팔을 뻗어 얼굴을 감쌌다. 빨간불이 되어 정차한 다음엔 조수석 의자를 뒤로 젖혀 그녀를 편히 눕혔다.그녀는 화장한 얼굴로 편안히 누워 강씨 저택에 도착했다.강영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안은 뒤 현관으로 들어갔다.도우미가 달려 나왔다.“도련님...”그의 품속 장소월을 본 순간 도우미는 곧바로 입을 닫았다.“할 말 있으면 밤에 해요.”강영수가 장소월을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방 안에 들어간 뒤 강영수는 조심스레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영수는 발신자 이름을 보고선 곧바로 전원을 꺼버렸다.요즘 시험 준비에 바삐 돌아친 데다 약혼식 등 많은 일까지 겹치다 보니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깊이 잠들지 못했었다.강영수는 화장대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려서야 겨우 클렌징 오일을 찾아냈다. 그는 세심히 성분표를 살펴본 뒤 비교적 온화한 클렌징 오일을 선택해 조금씩 장소월의 얼굴을 문지르며 화장을 지워냈다.은은한 레몬 향을 맡은 장소월이 희미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뭐 하는 거야?”강영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화장한 채 자면 피부에 안 좋아. 내가 지워줄게. 금방이면 돼.”“응.”화장을 지우고 난 뒤 강영
인씨 가문.강영수가 약혼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인정아가 강씨 집안으로 전화를 걸었다.“어머님, 영수가 곧 약혼한다면서요? 왜 저한텐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전 영수의 엄마예요. 이렇게 큰일을 알 권리조차 저한텐 없는 건가요?”강씨 노부인이 말했다.“이건 영수의 결정이야. 난 간섭할 수 없어. 영수는 이제야 가까스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어. 엄마로서 정말 영수를 위한다면 조용히 있어. 너와 강씨 집안 인연은 이미 끝났어. 나 또한 네가 영수의 엄마니까 전화통화라도 해주는 거야.”“당시 영수는 고작 다섯 살이었어. 넌 그 어린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괴롭혔어. 하마터면 죽을 뻔하기까지 했지. 이제 와 자책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이제 다시는 전화하지 마. 우리 강씨 집안에선 이미 너라는 사람을 잊었으니까!”뚜뚜 통화음과 함께 전화가 끊겨버렸다.인정아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소파에 앉아 얼굴을 감쌌다.인시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엄마... 괜찮으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흥분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우리 오빠한테 차근차근 얘기해봐요. 네? 분명 용서해줄 거예요.”“오빠의 약혼식에 가고 싶으시면 제가 소월이에게 전화해 얘기할게요. 소월이가 갈 수 있게 만들어줄 거예요.”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신다면 어떻게 약혼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강영수도 마음을 내려놓을 때가 된 것이다.인시윤의 그 말에 희망이 생긴 인정아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시윤아, 이번 일은 너한테 부탁할게. 난 네 오빠한테 너무 큰 빚을 졌어.”“엄마 마음 다 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 오빠가 엄마를 용서할 날이 꼭 올 거예요.”그녀는 줄곧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는단 말인가.그녀는 이미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깨달았다.당시 그녀는 강일주의 배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강일주가 밖에서 심유와 외도하며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사생아까지 낳은
약혼식에 참석한 강영수의 친척은 그리 많지 않았다.강일주가 왜 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강씨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 빼곤 아무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예전 인정아와 강일주의 이혼 때문에 나라 전체가 들썩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도 서울 제1명문가인 강씨 집안 사생활에 대해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강씨 집안엔 강일주를 제외하고 두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여동생이 더 있었다.그들은 강한 그룹의 계열사를 맡고 있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장소월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장소월은 연장자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적잖은 봉투를 받았다. 그녀는 두둑하게 받은 봉투를 옆쪽 종업원에게 넘겨주었다.그녀가 받은 축의금은 서울 중심 구역에서 별장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정도의 금액이었다.강영수는 물질적인 면에서 종래로 그녀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강영수의 방 안 금고의 비밀번호까지 그녀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안엔 금괴와 평소 편히 쓸 수 있는 현금이 들어있었다.전연우가 백윤서의 귓가에 무어라 말하자 그녀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전연우는 새 잔을 갖고 와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주스를 부어주었다.보기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으나 실상은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장해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소월이는 자네한테 맡기겠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이란 모르고 자랐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지. 때론 천방지축 날뛰더라도 자네가 이해하고 보듬어주게.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강영수가 허리를 굽혔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모습이 더없이 준수했다. 목에 남아있는 문신 자국엔 장소월이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어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본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이나 강영수가 거부하는 바람에 장소월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강영수가 깊은 눈동자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소월이는 이제 제 와이프입니다. 어떤 행동을
“난...”장소월은 어찌할 줄 몰라 망설였다. 강영수에게 있어 인씨 집안은 지옥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월아, 엄마와 오빠가 화해하길 원하지 않는 거야? 너도 이제 어머니라고 불러야지. 우리 다 가족이잖아. 오빠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이번 일은 반드시 우릴 도와줘야 해. 엄마랑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장소월이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윤아,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이모님에 관한 건 내가 영수와 상의해볼게. 하지만 영수가 받아들일지는 보장하지 못해.”“장소월!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우리 엄마가 오빠랑 얼마나 화해하고 싶어 하시는지 몰라? 넌 우리 생각 따위 하지 않는 거지?”인시윤이 노기를 애써 꾹꾹 누르며 말했다.장소월이 예쁜 눈썹을 찌푸렸다.“시윤아, 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이모님께서 우릴 축복하고 싶으시다면 우린 마음속으로 고맙게 받을게.”“왜, 누구 전화야?”강영수의 온화한 목소리가 장소월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장소월이 방금 끊긴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금 전 일을 강영수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지금 그 일을 언급하는 건 그를 괴롭게만 할 뿐일 테니 말이다.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현아야.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 약혼식에 오지 못했잖아. 통화하면서 아쉽다고 울기까지 하더라고.”강영수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은 하늘에서 둥근 달과 찬란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듯 밝은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극히 드물다.“소월아, 나 정말 기뻐. 넌 이제 내 것이야. 절대 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장소월도 그의 등에 손을 올려 그를 끌어안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술 냄새가 강영수의 몸에 배어있었다.“그래.”앞으로 그녀의 인생엔 전연우도, 백윤서도, 강만옥도, 그리고... 송시아도 없을 것이다.더는 전생의 일이 반
노부인은 일찍 약혼식장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갔다.오부연이 서류 봉투를 하나 가져왔다.“이건 조금 전 누군가 도련님께서 사모님에게 전해준 것이라며 가져온 것입니다. 내용은 사모님께서 직접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노부인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너희들은 나가 있어. 나 혼자 열어 볼 테니.”오랫동안 노부인의 곁을 지키던 도우미 한 명만 빼고 모두 방에서 나갔다.노부인이 소파에 앉아 서류 봉투를 열었다. 안엔 건강검진 결과 서류가 들어있었는데 장소월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마지막 줄을 본 노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이건...”서류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사모님, 왜 그러세요?”도우미가 심장병 증세를 보이는 노부인을 보고는 재빨리 약 한 알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노부인의 호흡이 그제야 평온해졌다. 바닥에 떨어진 건강검진 결과서를 본 도우미가 아연실색했다.“뭐라고요? 소월 아가씨에게 자궁이 없다고요? 임신을 못 하는 거예요? 이렇게나 큰일을 도련님은 아시는 걸까요?”노부인이 소리쳤다.“지금 당장 전화해. 이런 일을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도우미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때, 다른 도우미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사모님, 바깥에 아이 한 명이 와있습니다. 아빠를 찾으러 왔다고 합니다.”“어느 집 아이인데 여기에 온 거야? 얼른 경찰서에 데려다줘.”도우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사모님, 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노부인이 밖에 나가보자 4,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청바지를 입고 곰 인형을 안고 서 있었다.“할머니, 엄마가 이곳에 오면 아빠를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너... 이름이 뭐야?”노부인이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정말 닮았어요. 판에 박은 듯 완전히 닮았어요. 이렇게 이럴 수가 있죠?’“아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건넸다.“영수야,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너한테 약혼 선물을 가져왔어. 너와 소월이가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구나.”“오빠, 새언니... 엄마가 두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셨어.”선물상자 안엔 정교한 도자기 그릇과 접시가 들어있었다. 이건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다. 그 가치가 고대 신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밑에서 수군거렸다.그때, 쨍그랑 소리가 약혼식장에 울려 퍼졌다. 강영수가 유리잔을 닥치는 대로 내던진 것이다. 그가 차가운 얼굴로 소리쳤다.“누가 오라고 했어요! 꺼져요!”그는 조금의 체면도 남겨주지 않았다.전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찻잔에 담긴 차를 마셨다. 본래 들썩였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부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입을 꾹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인정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자취를 감추고 슬픔이 자리 잡았다.인시윤이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새언니가 우릴 오라고 했어요. 제가 조금 전 전화했거든요.”그녀가 장소월을 쳐다보며 말했다.“새언니, 나랑 엄마가 올 거라는 걸 오빠한테 얘기 안 했어?”장소월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강영수를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인시윤의 원망 어린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이렇게 중요한 일을 오빠한테 왜 알려주지 않았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한 거야? 이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나 해?”인정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렸다.“괜찮아. 소월이도 일부러 한 일이 아닐 거야. 너무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겠지.”“영수야,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준비해줄게.”그 순간 약혼식장에 오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짝!따귀 한 대가 인시윤의 얼굴에 힘껏 내리꽂혔다. 인시윤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백윤서는 깜짝 놀라 전연우의 옆에 바
강영수는 술을 깨야 한다는 핑계로 장소월을 데리고 휴게실에 갔다.장소월이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미안해. 확실히 시윤이가 나한테 전화했었어. 난 네가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은 거야. 정말 올 줄은 몰랐어.”강영수는 술에 취해 눈동자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 종일 바삐 돌아쳤으니 말이다.장소월은 따뜻한 물을 받은 뒤 그의 옆에 앉았다. 강영수에겐 그녀를 원망할 조금의 생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아... 시윤이가 했던 말은 마음에 두지 마. 그들이 또 너에게 연락했을 때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그래. 이젠 숨기지 않을게. 넌 다른 사람이 네 앞에서 그 일을 언급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어.”“안아줄래?”장소월은 앞으로 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오늘 약혼식이 끝나면 그들은 호텔에 머물 계획이었다. 이곳은 공항과 가깝기에 이른 시간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가기 편할 테니 말이다.인정아는 잠시 자리에 앉아있다가 이내 일어서 휴게실로 향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진봉이 막아섰다.“사모님, 여긴 개인 휴게실입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영수한테 몇 마디만 하고 갈게요. 들여보내 줘요. 아니면 당신이 들어가서 말해줄래요? 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진봉이 무표정한 얼굴로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대표님께서 인씨 가문분들이 온 걸 눈감아주신 건 사모님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점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인시윤이 벌컥 화를 냈다.“진 비서! 당신은 내 오빠 옆 비서일 뿐이에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들어가서 묻지 않고도 오빠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아가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 대표님의 분부대로 행하는 한낱 비서일 뿐입니다. 절 난감하게 하지 마세요.”“당신!”그녀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씩씩거리는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