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식에 참석한 강영수의 친척은 그리 많지 않았다.강일주가 왜 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강씨 저택에 살고 있는 사람 빼곤 아무도 알지 못했다.하지만 그 누구도 묻지 않았다. 예전 인정아와 강일주의 이혼 때문에 나라 전체가 들썩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도 서울 제1명문가인 강씨 집안 사생활에 대해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강씨 집안엔 강일주를 제외하고 두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여동생이 더 있었다.그들은 강한 그룹의 계열사를 맡고 있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장소월은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장소월은 연장자부터 시작해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적잖은 봉투를 받았다. 그녀는 두둑하게 받은 봉투를 옆쪽 종업원에게 넘겨주었다.그녀가 받은 축의금은 서울 중심 구역에서 별장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정도의 금액이었다.강영수는 물질적인 면에서 종래로 그녀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강영수의 방 안 금고의 비밀번호까지 그녀에게 모두 알려주었다. 안엔 금괴와 평소 편히 쓸 수 있는 현금이 들어있었다.전연우가 백윤서의 귓가에 무어라 말하자 그녀가 손에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전연우는 새 잔을 갖고 와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은 주스를 부어주었다.보기엔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으나 실상은 거친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장해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소월이는 자네한테 맡기겠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생이란 모르고 자랐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지. 때론 천방지축 날뛰더라도 자네가 이해하고 보듬어주게.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강영수가 허리를 굽혔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모습이 더없이 준수했다. 목에 남아있는 문신 자국엔 장소월이 파운데이션을 발라주어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본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해야 할 일이나 강영수가 거부하는 바람에 장소월이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강영수가 깊은 눈동자로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소월이는 이제 제 와이프입니다. 어떤 행동을
“난...”장소월은 어찌할 줄 몰라 망설였다. 강영수에게 있어 인씨 집안은 지옥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월아, 엄마와 오빠가 화해하길 원하지 않는 거야? 너도 이제 어머니라고 불러야지. 우리 다 가족이잖아. 오빠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이번 일은 반드시 우릴 도와줘야 해. 엄마랑 내가 이 은혜는 꼭 갚을게.”장소월이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윤아,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야. 이모님에 관한 건 내가 영수와 상의해볼게. 하지만 영수가 받아들일지는 보장하지 못해.”“장소월!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우리 엄마가 오빠랑 얼마나 화해하고 싶어 하시는지 몰라? 넌 우리 생각 따위 하지 않는 거지?”인시윤이 노기를 애써 꾹꾹 누르며 말했다.장소월이 예쁜 눈썹을 찌푸렸다.“시윤아, 넌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 이모님께서 우릴 축복하고 싶으시다면 우린 마음속으로 고맙게 받을게.”“왜, 누구 전화야?”강영수의 온화한 목소리가 장소월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장소월이 방금 끊긴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금 전 일을 강영수에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말이다.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지금 그 일을 언급하는 건 그를 괴롭게만 할 뿐일 테니 말이다.장소월이 고개를 저었다.“현아야.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 약혼식에 오지 못했잖아. 통화하면서 아쉽다고 울기까지 하더라고.”강영수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은 하늘에서 둥근 달과 찬란한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렇듯 밝은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극히 드물다.“소월아, 나 정말 기뻐. 넌 이제 내 것이야. 절대 너랑 헤어지지 않을 거야.”장소월도 그의 등에 손을 올려 그를 끌어안았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술 냄새가 강영수의 몸에 배어있었다.“그래.”앞으로 그녀의 인생엔 전연우도, 백윤서도, 강만옥도, 그리고... 송시아도 없을 것이다.더는 전생의 일이 반
노부인은 일찍 약혼식장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갔다.오부연이 서류 봉투를 하나 가져왔다.“이건 조금 전 누군가 도련님께서 사모님에게 전해준 것이라며 가져온 것입니다. 내용은 사모님께서 직접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노부인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너희들은 나가 있어. 나 혼자 열어 볼 테니.”오랫동안 노부인의 곁을 지키던 도우미 한 명만 빼고 모두 방에서 나갔다.노부인이 소파에 앉아 서류 봉투를 열었다. 안엔 건강검진 결과 서류가 들어있었는데 장소월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마지막 줄을 본 노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이건...”서류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사모님, 왜 그러세요?”도우미가 심장병 증세를 보이는 노부인을 보고는 재빨리 약 한 알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노부인의 호흡이 그제야 평온해졌다. 바닥에 떨어진 건강검진 결과서를 본 도우미가 아연실색했다.“뭐라고요? 소월 아가씨에게 자궁이 없다고요? 임신을 못 하는 거예요? 이렇게나 큰일을 도련님은 아시는 걸까요?”노부인이 소리쳤다.“지금 당장 전화해. 이런 일을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도우미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때, 다른 도우미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사모님, 바깥에 아이 한 명이 와있습니다. 아빠를 찾으러 왔다고 합니다.”“어느 집 아이인데 여기에 온 거야? 얼른 경찰서에 데려다줘.”도우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사모님, 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노부인이 밖에 나가보자 4,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청바지를 입고 곰 인형을 안고 서 있었다.“할머니, 엄마가 이곳에 오면 아빠를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너... 이름이 뭐야?”노부인이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정말 닮았어요. 판에 박은 듯 완전히 닮았어요. 이렇게 이럴 수가 있죠?’“아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건넸다.“영수야,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너한테 약혼 선물을 가져왔어. 너와 소월이가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구나.”“오빠, 새언니... 엄마가 두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셨어.”선물상자 안엔 정교한 도자기 그릇과 접시가 들어있었다. 이건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다. 그 가치가 고대 신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밑에서 수군거렸다.그때, 쨍그랑 소리가 약혼식장에 울려 퍼졌다. 강영수가 유리잔을 닥치는 대로 내던진 것이다. 그가 차가운 얼굴로 소리쳤다.“누가 오라고 했어요! 꺼져요!”그는 조금의 체면도 남겨주지 않았다.전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찻잔에 담긴 차를 마셨다. 본래 들썩였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부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입을 꾹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인정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자취를 감추고 슬픔이 자리 잡았다.인시윤이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새언니가 우릴 오라고 했어요. 제가 조금 전 전화했거든요.”그녀가 장소월을 쳐다보며 말했다.“새언니, 나랑 엄마가 올 거라는 걸 오빠한테 얘기 안 했어?”장소월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강영수를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인시윤의 원망 어린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이렇게 중요한 일을 오빠한테 왜 알려주지 않았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한 거야? 이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나 해?”인정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렸다.“괜찮아. 소월이도 일부러 한 일이 아닐 거야. 너무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겠지.”“영수야,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준비해줄게.”그 순간 약혼식장에 오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짝!따귀 한 대가 인시윤의 얼굴에 힘껏 내리꽂혔다. 인시윤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백윤서는 깜짝 놀라 전연우의 옆에 바
강영수는 술을 깨야 한다는 핑계로 장소월을 데리고 휴게실에 갔다.장소월이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미안해. 확실히 시윤이가 나한테 전화했었어. 난 네가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은 거야. 정말 올 줄은 몰랐어.”강영수는 술에 취해 눈동자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 종일 바삐 돌아쳤으니 말이다.장소월은 따뜻한 물을 받은 뒤 그의 옆에 앉았다. 강영수에겐 그녀를 원망할 조금의 생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아... 시윤이가 했던 말은 마음에 두지 마. 그들이 또 너에게 연락했을 때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그래. 이젠 숨기지 않을게. 넌 다른 사람이 네 앞에서 그 일을 언급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어.”“안아줄래?”장소월은 앞으로 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오늘 약혼식이 끝나면 그들은 호텔에 머물 계획이었다. 이곳은 공항과 가깝기에 이른 시간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가기 편할 테니 말이다.인정아는 잠시 자리에 앉아있다가 이내 일어서 휴게실로 향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진봉이 막아섰다.“사모님, 여긴 개인 휴게실입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영수한테 몇 마디만 하고 갈게요. 들여보내 줘요. 아니면 당신이 들어가서 말해줄래요? 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진봉이 무표정한 얼굴로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대표님께서 인씨 가문분들이 온 걸 눈감아주신 건 사모님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점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인시윤이 벌컥 화를 냈다.“진 비서! 당신은 내 오빠 옆 비서일 뿐이에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들어가서 묻지 않고도 오빠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아가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 대표님의 분부대로 행하는 한낱 비서일 뿐입니다. 절 난감하게 하지 마세요.”“당신!”그녀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씩씩거리는 모습을
그때, 진봉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노부인께서 앓아누우셨습니다.”강영수가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무슨 일이야?”“도련님더러 집에 오라고 하십니다. 소월 아가씨는 함께 오실 필요 없고요.”장소월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요?”강영수가 그녀를 쳐다보았다.“잘 모르겠습니다. 노부인의 뜻입니다. 하지만 말투를 들어보니 작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소월 아가씨가 먼 길을 떠나야 하니 걱정이 되어 오지 말라고 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할머니가 할 만한 생각이었다.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느낀 강영수가 이마를 찌푸렸다.“할머니는 지금 어떠셔?”“개인 주치의가 급히 갔습니다.”강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위에 놓아두었던 정장을 잡고는 장소월에게 말했다.“넌 호텔에서 쉬고 있어. 내가 다녀올게.”“나도 같이 갈게.”“내 말 들어. 지금은 이미 시간이 늦었어. 파리와는 시차가 있으니 충분히 쉬지 못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할머니 쪽은 내가 살펴보고 나서 연락할게.”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꼭 연락해. 내일 시간이 안 되면 나 혼자 가도 돼.”강영수가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반드시 시간 맞춰 돌아올 거야.”“그래.”강영수가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호텔 종업원이 펜트하우스 방키를 가져왔다.진봉이 손님들을 다 보내고 나니 이미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장소월은 66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니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낭만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다만 아쉽게도...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신혼 방에 장소월 한 사람만 남게 된 것이다.침실 문을 열어본 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침대 위에 9999송이의 붉은색 장미가 놓여있었던 것이다.그가... 서울시 장미꽃 모두를 사 온 건가?방 안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디퓨저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향기가 너무 강해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어두컴컴한 방에
뜨거운 습기가 욕실을 뒤덮었다.차가운 조명이 열기로 가득한 욕조를 비추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의 소녀가 가는 팔을 욕조 밖에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몸이 물 안에서 흐느적거렸다. 전연우는 천천히, 그리고 세심히 그녀 몸 모든 곳을 깨끗이 닦아냈다.음산하고 깊은 눈빛이 눈앞의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눈빛은 사람이 아니라 완벽한 예술품을 보는 듯했다. 미칠듯한 소유욕이 여전히 그의 눈동자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욕실에서 나오니 이미 한 시간이 흘러있었다.커다란 창문에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비쳤다. 남자의 준수하고도 위험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침대에 눕힌 뒤 그녀의 입술부터 시작해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목, 가슴... 더 아래로...침대 위 여자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더더욱 미친 듯이 그녀의 몸을 탐했다. 장소월은 연이어 구름 위에서 뛰어노는 듯한 자극에 몸부림쳤다.“하... 하지 마.”그녀의 목소리에 울음까지 섞여 나왔다.장소월은 두 손으로 남자의 등을 끌어안았다. 호흡은 처음보다 더욱 거칠어졌다.“널 오랫동안 편히 놔뒀으니, 이제 네가 날 즐겁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응?”남자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들려왔다.“흑흑. 하지 마! 하나도 안 편해. 나 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거야?”전연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소월아,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장소월은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으나 너무 어지러워 아무것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아니, 이건 꿈이야. 가짜야. 넌 날 속이고 있어!”“오빠가 왜 소월이를 속이겠어? 앞으로 소월이는 오빠랑 사귀는 거야. 응?”“싫어.”“말을 듣지 않는 애완동물은 철창에 갇히고 말아.”“나 괴로워. 계속 움직여.”장소월이 울먹이며 손을 그의
장소월이 소리 냈다.“오빠.”전연우의 상반신 위 완벽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근육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몸을 숙여 장소월의 몸을 압박하며 그녀에게 숨을 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한바탕 휘몰아친 뒤 장소월은 잠시나마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틀어막혀버렸다. 소리조차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지 못해 그대로 삼켜버렸다.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장소월은 처음엔 신음소리를 내다가 나중엔 급기야 울며 빌기까지 했다.침대 위에서, 탁자 위에서, 창문 앞에서...방 안 이곳저곳 전체에 야릇한 분위기가 흘러 들어갔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소월은 몇 번이고 깨어나다가 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했다.새벽 3시.방안엔 그제야 고요함이 찾아왔다. 장소월은 의식을 잃은 채 남자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온 강영수의 이름이 떴다.전연우는 힐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놔둔 채 다 피운 담배꽁초를 버렸다....강씨 저택. 창밖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노부인이 침대에 누워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소월이가 불임이라는 사실 알고 있었어?”강영수는 부인하지 않았다.“네. 그게 어때서요?”“소월이는 이미 강씨 집안의 며느리입니다. 소월이의 몸 상태가 어떻든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가슴에 응어리가 들어앉아 숨을 내쉬기조차 힘겨웠다.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흥분하며 말했다.“어리석은 놈! 후대를 잇는 게 강씨 집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 예전 그 여자가 널 임신했을 때 내가 널 지켰어. 그 이유는 강씨 집안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야.”강영수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하신 모든 일들이 강한 그룹을 위한 거였다고요? 그럼 차라리 절 낳지 못하게 하고 그 잡종에게 이어받으라고 하면 좋았잖아요.”“제 생각은 똑같아요. 소월이의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임신을 하든 못하든 영원히 제 아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