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수는 방에서 나간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밤새 담배를 피웠다.새벽 여섯 시,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시간, 청소를 하러 온 도우미는 자욱한 안개 속에 앉아있는 강영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어제 약혼식을 치른 도련님은 응당 호텔에서 소월 아가씨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지금 몇 시죠?”강영수가 돌연 소리를 내자 도우미가 덜컥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고 말했다.“도련님, 여섯 시입니다.”날이 이미 밝은 건가?강영수는 실핏줄이 가득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소파에서 일어서자 어지러움에 온몸이 흔들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도련님!”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이내 의사를 불렀다.30분 뒤 도착한 의사가 그의 몸을 살펴보고는 말했다.“도련님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과로한 탓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입니다. 푹 주무시고 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노부인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영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도우미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사모님, 얼른 주무세요. 날이 밝았어요.”노부인이 물었다.“그 아인 알아봤어?”“조금 전 오 집사님이 CCTV를 살펴보았는데 여자 한 명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저희도 더이상의 정보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도련님께선 종래로 밖에서 여자들과 함부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닮은 아이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겁니다.”“예전 영수가 속을 썩이던 시절...”노부인의 머릿속에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사진은? 아이가 돌아가던 모습이 찍힌 사진을 가져와.”“네.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도우미는 사진을 뽑아 노부인에게 건네주었다. 노부인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중 몇 장의 사진엔 어젯밤 밤이 깊어 어두웠던 탓에 아이의 윤곽만 어렴풋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론 알아볼 수 있었다.노부인이
아침 8시, 장소월은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깨질 듯한 머리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몸에는 흰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뭐지? 왜 머리가 이렇게 아프지?어젯밤에 잘을 설쳤나?방안에는 부서진 장미꽃이 가득했고 꽃잎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멀쩡한 꽃이 왜 이렇게 됐지?난... 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종업원이 준 방 키를 갖고 방에 들어왔을 때 너무 더운 것 같아 욕실에 가서 샤워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잠든 것 같았다.그녀는 얼른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로 땅을 밟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져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랫도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아랫배가 약간 더부룩했다.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런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남자와 잠자리에 든 후에만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을.혹시 어제 강영수가 다녀갔을까?만약 영수와 관계를 맺었다면, 왜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바로 그때, 호텔 방 문이 밖에서 열리면서 한 객실 종업원이 들어왔다.“손님, 괜찮으세요?”“전 부른 적이 없는데 누가 들어오라고 했죠?”객실 종업원은 관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강 선생님께서 모닝콜을 요청하셨어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해서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어서 바로 들어왔습니다.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 이제 세 시간이 남았으니 지금 일어나셔야 합니다.”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장소월을 일으켜 세웠다.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며 떠보듯 물었다.“어젯밤에 누가 제 방에 왔었나요?”“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하지만 호텔 당직 직원에게 물어 봐 드릴 수는 있어요.”장소월은 이마를 짚고 호흡이 가빠지더니 온몸이 불편했다.“손님, 어젯밤에 술을 드셨으니 아침에 두통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이미 해장국을 준비했으니 곧 가져다드리겠습니다.”“하지만... 어젯밤에 마신 건 대부분 도수가 높지 않은 과일주였어요.”그녀는 빙그레 웃었다.“평소에
장소월은 통증을 참으며 욕실에 가서 샤워했다. 따듯한 물이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졌고 그녀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손을 뻗어 하체의 민감한 곳을 만졌지만 부은 흔적도 없었고 통증도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사실 그녀가 볼 수 없는 허벅지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다. 다만 너무 깊이 숨겨져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내가 예민했나?어젯밤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도 그녀가 또 술주정을 부린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멀쩡한 장미꽃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을까?술에 취하면 필름이 끊긴다는 뉴스에 관해 전에 본 적이 있었다.그녀는 잡생각을 재빨리 털어내고 30분의 샤워를 마친 후, 목욕 수건을 두르고 나갔다.만약 이때, 그녀가 뒤돌아본다면 거울에 비친 그녀의 가녀린 등에 남은 어젯밤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강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한참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영수야, 할머니 어떠셔?”“소월 아가씨!”전화를 받은 사람은 진봉이었다.“진 비서님?”“네, 저예요. 대표님은 회사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소월 아가씨와 함께 파리에 갈 수 없으세요. 호텔에 이미 기사를 보냈으니 아가씨를 공항까지 모셔다 줄 거예요. 파리에 도착한 후의 일정도 대표님께서 이미 안배해놓으셨어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아가씨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저희는 일주일 후에 도착할 겁니다. 대표님께서 지금 회의 중이시라 대신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괜찮아요. 회사 일이 중요하죠. 할머니는 괜찮으세요?”장소월은 확실히 좀 실망했다.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혼자 낯선 곳으로 가려고 하니 긴장되고 두렵기도 했다.“안심하세요. 어르신은 괜찮습니다.”“그럼 다행이네요. 비서님 일 보세요. 저도 출발해야 해요.”“소월 아가씨,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네.”전화를 끊은 진봉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혼자서도 괜찮으실 거예요. 경호원이 24시간 아
“너 같은 변태에게 찍힌다는 건 정말 생각만 해도 섬뜩해. 소월이는 무슨 죄로 너 같은 인간을 만나서 인생을 망치는 건지.”“네가 이 정도로 강영수를 괴롭히는 건, 설마 아직도 영수가 남천 그룹을 인수해 널 사직시키려던 일을 기억하고 보복하려는 거야?”전연우는 답이 없었고, 서철용은 이를 묵인으로 간주했다.이렇게 음흉한 사람과 적이 아니라 한 패라니. 서철용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전연우는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행여나 서철용 자신까지 다칠까 두렵기도 했다.말을 마친 그는 손을 내 흔들며 말했다.“남은 약은?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들여 개발한 줄 알아? 한 병에 50미리 밖에 없어서 나도 아까워 못 쓰고 있어.”전연우는 액셀을 밟고 핸들을 꺾어 유턴했다.“약 좋더라. 다음에 챙길게.”“그래, 전연우! 다음에 꼭 가져와!”그 약은 환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고, 먹고 나면 전날 밤의 일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전연우가 저번에 가져갈 때, 그가 분명 무슨 짓을 꾸밀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서철용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전연우의 말대로 진정한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같은 시각, 장소월은 아주 설레고 흥분되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향한다.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비행기에 오르기 전, 허 교수에게 전화해 호텔 주소를 보냈고, 소현아와 허이준이 보낸 문자에도 일일이 답장했다.서울에서 파리까지, 10시간을 넘어 달렸고, 비행기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착륙했다.마중을 나온 사람은 파리 현지인으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40대 여성이었고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그녀는 바스턴 호텔의 집사, 에리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그들의 차를 타고 함께 호텔로 향했다. 장소월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오기 전 꽤 많은 공부를 했다.장소월은 인터넷에서 이 호텔의 가격을 검색해보니 하룻밤에 거의 백만
장소월의 짐은 트렁크 하나로 그리 많지 않았다. 방에 도착하니 내부는 꽤 큰 편이었다.“정리 마치면 나랑 누구 좀 만나러 가요. 선생님과 함께 온 학생들이에요. 학번으로 따지면 소월 씨 선배들이죠.”“선생님은 어디 계시죠?”“선생님은 파리 예술 아카데미 측 지도자들과 저녁 약속이 있으세요. 아마 늦게 돌아오실 것 같아요.”이때, 누군가 호텔 방 문을 두드렸고, 서현이 다가가 열어보니 호텔의 객실 담당 직원이었다.서현은 그들과 몇 마디 주고받고, 입구에서 소월을 보며 외쳤다.“소월 씨 찾으러 왔어요.”장소월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밖으로 나갔다.서현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통역 해드려요?”장소월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영어는 꽤 하는 편이에요.”얘기를 나눠보니 그들은 장소월에게 생필품을 전달하러 온 것이다.입구에 있는 이동식 옷걸이에는 최신상 원피스부터 속옷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은 전부 그녀의 몸에 맞춰 맞춤 제작한 것이고, 화장품과 가방들도 적지 않았다.전적으로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의 기준에 맞춰 준비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물건들은 아마 이 방에 다 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장소월은 대충 옷 몇 벌을 골라 챙기려 했지만, 그들은 맞은편의 호텔 방을 그녀의 드레스룸으로 사용하라고 했다.장소월은 이 일에 너무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었다.모든 일을 정리하고 서현은 그녀를 데리고 아래층 식당으로 향했다.식당 창가 구석 자리에서 그녀는 소개했다.“이 두 분이 바로 내가 말한 선배님이세요. 주시윤, 박원근, 모두 나랑 같은 학번이고 곧 3학년생들이죠.”여자를 본 두 남자의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장소월은 그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주시윤: “소월 후배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네요.”박원근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그러게, 나중에 소월 후배가 학교에 오면 인기 짱이겠는데?”장소월은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는 테이블 아래에
옆에 앉아 있던 주시윤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자리에 앉혔다.“후배가 밥 사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이번 활동 경비 충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식당 지배인이 다가왔고 서현이 막 지갑을 여는데 지배인이 말했다.“강 대표님은 우리 호텔의 VIP 회원이십니다. 대표님의 아내도 저희 호텔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비용은 무료이니 계산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저희 호텔의 모든 오락 시설을 즐기실 수 있으세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세 사람은 일제히 장소월을 바라보았다.장소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강영수다운 일 처리 방식이었다.하지만 강영수가 그녀를 위해 한 일이 많을수록, 마음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의 행동이 모두 당연한 것 같지만, 그녀는 여전히 빚을 진 느낌이었다.식사를 마친 후,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밥을 먹을 때부터 서현은 말이 별로 없었고, 장소월은 뒤에서 강영수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문을 닫았다.서현은 옷장에서 잠옷을 꺼내 욕실로 향했고, 장소월은 남자의 전화를 받고 혼자 베란다로 갔다.“왜 내가 준비한 방에 묵지 않았어?”그의 목소리는 피곤한 듯 보였다.“이번에 혼자 온 게 아니라 허 교수님의 다른 학생들도 있어. 전부 일반 룸에 묵고 있는데 나만 호화로운 방에 묵으면 분명 뭐라고들 할 거야.”“영수야, 너 언제 와? 보고... 싶어.”이 말을 내뱉은 장소월은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가빠졌다.강영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나도 너 보고 싶어. 여기 일 다 처리하면 당장 너 보러 갈게.”“그리고, 우리의 첫날밤도 치러야지. 응?”장소월은 부끄러워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들을 보았다. 서울은 지금 낮일 것이다.낯선 환경에서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허전했다.강영수: “일찍 쉬어. 내일 다시 전화할게.”“그래.”“잘자.”장소월이 전화를 끊고 침실로 돌아왔을 때, 방의 전등은 이미 반쯤 꺼져 있었다. 서현은 이미 샤
낯선 환경에서 잠든 장소월은 잠을 설쳤다.룸의 모닝콜이 울려서야 그녀는 일어났다. 서현은 어느새 세수를 마쳤는지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묶고 있었다.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왔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서현은 거울을 통해 그녀를 보며 귀띔했다.“오늘 학교 가는 거 잊지 말아요. 어느 반인지는 알죠?”장소월은 미간을 어루만지며 겨우겨우 대답했다.“알면 됐어요. 그럼 나도 같이 가지 않을게요. 만약 길을 모르겠으면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요.”“네.”서현은 오늘 특별히 화장으로 얼굴의 주근깨를 가리고 검은 볼테 안경을 썼다. 책상 위의 룸카드를 보며 망설이더니 챙기고는 가방을 메고 나갔다.방 입구에서 마침 주시원과 박원근을 만났다. 주시원: “소월 후배는?”서현은 안경을 밀더니 대답했다.“이제 깨났어. 우리 소월이 기다리지 말고 바로 선생님 보러 가자. 혼자 괜찮을 거야.”박원근은 머리를 움켜쥐더니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선생님께서 특별히 소월이를 안전하게 학교에 데려다주라고 하셨잖아. 혼자 낯선 땅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떡해? 소월이는 강 대표 사모님이라는 걸 잊지 마. 우리 이번에 파리에 온 것도 모두 강씨 집안 덕분이야. 우리가 푸대접해서 만약 고자질이라도 하면 우리 셋은 분명 욕먹을걸?”서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럼 네가 데려다주던가. 난 그럴 시간 없어. 우리는 대회에 참가하러 온 거지 재벌가 사모님에게 아부하러 온 게 아니잖아? 선생님이 우리에 대한 기대를 잊지 마.”떠나는 서현을 보며 주시원은 웃으며 박원근의 어깨를 툭툭 쳤다.“사실 서현이 말이 맞아. 아무리 네가 똥개처럼 따라다닌다고 해도 너에게 눈길도 돌리지 않을 거야. 이미 주인이 있는 몸이잖아. 그런 헛수고는 그만하고, 이번 대회에서 어떻게 상 받을지나 생각해. 만약 도저히 마음이 안 놓이면 여기서 기다리던가. 난 서현이랑 먼저 아침 먹으러 가야겠어.”주시원은 쏜살같이 도망쳤다.박원근은 손목시계를 보
주시원은 문 앞에 있는 의전원에게 물었다.“안녕하세요, 여기로 가려고 하는데요, 혹시 호텔 측에서 데려다줄 수 있나요?”“전용차 사용 비용은 200달러이고, 따로 서비스 비용 100달러도 지불하셔야 합니다.”“헐, 너무 비싸잖아요. 그럼 방금 떠난 친구들은요? 분명 저 친구들과 같이 온 사람들인데 왜 저희는 전용차가 없어요?”“죄송합니다, 손님. 이건 저희 호텔만의 VIP 서비스입니다. 저분은 호텔의 VIP 시기 때문에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입니다.”주시원은 호기심에 물었다.“얼마면 회원가입이 가능하죠?”상대방은 우호적인 미소를 보였다.“300만 달러, 현금입니다.”“네? 그렇게나 많이요?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소월이랑 같이 가는 건데!”태양 아래 서현의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말했다.“지금 택시를 잡기 어려우니 저희가 300달러 지불하죠. 차 한 대 불러주세요.”“서현, 정신 차려. 돈 아껴 써야지. 아직 3개월이나 남았는데, 이러다 그때 가서 거지꼴 나겠어.”“선생님께서 모든 결정은 나한테 맡긴다고 말씀하셨잖아.”박원근은 장소월을 도와 입학 서류를 다 처리한 후 떠났고, 장소월은 택시를 잡기 어려울까 봐 기사에게 그를 데려다주라고 했다.그녀가 하교할 때쯤이면 당연히 호텔 기사가 데리러 올 것이다.전 세계 최고의 전당급 미술학원은 미술계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지만, 그녀는 반드시 혼자 극복해야 한다.서울, 대표 사무실.진봉: “방금 연락을 받았는데, 소월 아가씨가 입학 절차를 마쳤다네요. 대표님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강영수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매번 혼자 떠날 때마다 일이 터졌어. 소월이에게 아무런 위험도 생기지 않게 이번에는 꼭 잘 보호해.”진봉은 고개를 끄덕였다.“안심하십시오. 몰래 보호하고 있는 경호원들이 있으니 아가씨는 안전하실 겁니다.”“사람은 찾았어?”강영수의 말투가 순간 굳어졌다.“찾았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한발 앞서 김남주 씨와
의사가 들어와 손이준을 진찰했다.장소월은 걱정되는 마음에 물었다. “어때요? 괜찮은가요?”의사가 대답했다.“상처 회복은 잘 되고 있습니다. 휴식만 잘 취하면 됩니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떠나자, 장소월은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때 갑자기 강용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전 씨, 그 총알 맞고 왜 안 죽은 거요.”“무... 무슨 소리야?” 이불을 덮어주던 장소월의 손이 경직되어 멈춰 섰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강용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거두려던 순간, 돌연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언제 알아차린 거야? 눈썰미 꽤 쓸만하네.”정... 정말 그 사람이었다!장소월은 충격에 휩싸여 병상에 누워 있는 낯선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잠시 저항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강용은 재빨리 그들을 떼어놓았다. 전연우가 일어나려고 하자 강용은 순식간에 그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접근하려고 정말 애썼네요.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날 죽이려고 했던 사람 누구예요?”강용의 손은 전연우의 상처 부위를 누르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전연우 씨, 내 손에 잡히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죠?”장소월은 여전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전연우였다니.그를 본 순간 도망쳤어야 했지만, 그녀의 발은 납덩이라도 매달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 거라고 했었잖아.”“소월아, 넌 내 아내야.”그 애절한 말에 장소월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고,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다.“아... 아니에요. 당신이 전연우일 리 없어요...”장소월은 뒷걸음질 치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악마와 마주치기라도 한 듯, 강력한 충격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급기야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소월아...”강용이 그녀를 재빨리 붙잡았다.전연우는 애타게 그리고 그리던 아내가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
강지훈이 명령했다.“말해.”부관은 손에 든 정보를 강지훈에게 건넸다. “최근 근처 도시에 세 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현재 저희가 일차적으로 걸러낸 상태이고, 곧 시스템으로 소현아 씨의 사진을 인식할 겁니다. 30분 안에 결과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강지훈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권총을 건네며 말했다.“지금 호텔로 간다.”“알겠습니다, 주인님.”거꾸로 매달려 있던 흑인 남자는 그야말로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곳은 사막과 가까운지라 지면에서 뜨거운 열기까지 올라오고 있었다.“가지 마세요! 형님!”“저 혼자 여기 두지 마세요. 무서워요, 아빠!”옆에 있던 규영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사람 풀어주는 게 어떠십니까.”“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덕을 쌓는 셈 치는 거죠.”“제가 옛날 어르신께 듣기로는...” 그 순간 규영은 자기도 모르게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말을 바꾸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어르신의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강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뭐라고? 계속해!”규영은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집안에 임신한 사람이 있을 때는 피를 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 재앙이 닥친다고요.”강지훈은 그 말을 듣고 황당하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미신은 대체 어디에서 주워들은 거야? 북경 감옥에서 매일같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그럼 배 속에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는 거야?”“주인님,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 믿는 게 좋습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아 아가씨 배 속에 있는 작은 주인님을 위해서라도요.”“주인님께서 좋은 일을 하시면 자연히 작은 주인님에게 복이 쌓일 겁니다. 또한 현아 아가씨께서 순산도 하실 수 있을 거고요.”강지훈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예전에는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 둘 다 옷도 입고 있었어. 그냥 너무 추워서 그랬어. 강용 몸은 뜨겁고 따뜻하더라고.”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횡설수설 변명하는 소현아의 모습이 귀여워 장소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아. 나는 단지 강용의 안전을 걱정하는 거야. 그 강지훈이라는 사람은 아주 나쁜 놈이거든. 혹시 그 사람이 강용에 대해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야 해. 강용과 모르는 사이인 척, 전혀 개의치 않는 척해야 해. 알았지?”“그럼 소월이랑도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 해?”장소월은 소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내가 방법을 알려줄게. 나중에 돌아가서 강지훈의 입에서 남자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야 해. 여자는 괜찮아.”“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널 괴롭히면 울면서 그 사람이 너를 때렸다고, 욕했다고 말해야 해. 강지훈한테 전부 고자질해.”소현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눈물이 안 나오면 어떡해? 꼭 울어야 해?”장소월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현아야, 넌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나중에 나한테도 딸이 생기면 너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그녀에게는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다.사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자신을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감옥에 가두기 십상이니까.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녀처럼 되어버리고 만다.소현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소현아는 장소월의 손을 잡고 북경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이야기했다. 장소월은 강지훈이 소현아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사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피어오르는 감정이다.왜 하필 강지훈이란 말인가!장소월은 잠들어 있는 소현아를 보며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었다.강지훈 같은 사람은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소현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꺼려질
수술실 문밖에 돌아와 보니, 강용은 여전히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월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다.“수고했어. 먼저 가서 쉬어. 나랑 현아가 근처에 방 두 개 잡아놨어. 현아는 당분간 나랑 같이 잘 거고, 이건 네 방 카드야. 현아랑 같이 먼저 가 있어.”“됐어, 너도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잖아.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나중에 그 사람이 나오면 내가 도와야할 일이 있을 거야. 여자인 너 혼자서는 불편해.”장소월은 화장실에서 꾸물거리며 나오는 소현아를 바라보았다. 손에는 간식 두 봉지도 들려 있었다. “그래... 알았어. 나는 옷이라도 좀 사러 가야겠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옷을 많이 못 챙겨왔거든.”“그래, 갔다 와.” 강용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 순식간에 모두 비웠다.장소월이 물었다. “옷 말고 또 필요한 거 있어?”“아무거나, 네 맘대로 해.”강용은 주머니에서 은행 카드 하나를 꺼냈다. “여기에 돈 좀 있어. 내 걸로 결제해.”“됐어. 이 돈은 나중에 쓸 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가지고 있어.”“너는 남자니까,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지”무거워진 장소월의 말투를 눈치챈 강용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쳇, 네 그림 한 점이 몇천만 원이나 된다고 지금 날 비웃는 거지? 어휴. 아가씨, 절 키워주시는 건 어때요?“계속 아가씨의 개가 될게요.”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개는 무슨.”장소월은 소현아와 함께 쇼핑몰에 가서 옷을 몇 벌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신분증을 등록하려고 프런트에 선 순간, 장소월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하여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 등록 정보로 사용했다.“미카엘 씨, 여기 객실 카드입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감사합니다.”원래는 저렴한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지만, 소현아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10층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열어보니 아름다운 강 풍경이 눈
아이...지금 세 사람은 확실히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다.전 부인이 말했다. “절대 월이 돌려주지 않을 테니까 내 아이 뺏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강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됐어요. 우리 셋 다 당신 아이 봐줄 시간 없어요. 당신이 준다고 해도 우리가 싫어요.”“참, 그리고 전 남편 치료비도 잊지 말고 내줘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때 부부였는데 너무 매정하게 굴지는 말아야죠.”그녀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에르메스 한정판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 던졌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준 양육비와 예전 나한테 줬던 돈 전부 갚았어요. 이제 각자 갈 길 가고 다시는 얼굴 보지 말자고요.”별이는 얼굴이 엉망이 된 채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다. 장소월은 차마 볼 수 없어 시선을 돌렸다. 필경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니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아이의 엄마다. 엄마가 데려가겠다고 하면 아무에게도 막을 권리가 없다.그들이 위풍당당하게 떠난 후, 강용은 돈을 세어보았다. 몇백 달러 정도였다. “제기랄, 몇만 달러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전 남편에게는 쥐꼬리만큼도 안 주다니.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건가. 이 돈으로는 수술도 못 하겠네.”장소월이 말했다. “됐어, 강용.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는 거야. 일단 이준 씨 어떻게 됐는지부터 알아보자.”“그래.”소현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월아, 아기가 배고픈 것 같아. 들어봐... 얘네 둘이 소리치고 있어.”강용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배고픈 거면서 무슨 엉뚱한 소리야. 밥 먹을 시간이긴 하네. 넌 소현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밥 먹어. 이준 씨한테는 내가 가볼게.”며칠 동안 강용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생각에 장소월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빨리 먹고 포장해서 갖다 줄게.”“그래.”식사를 마친 뒤 장소월은 소현아를 데리고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로 향했다. 30분 후, 결과가 나왔고 예상외로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의사는 검사
바로 맞은편 길에서 또 한 무리의 차량이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규영이 돌연 즉시 차를 세우라며 소리쳤다. “...저... 현아 아가씨 목소리 들은 것 같아요.”강지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다가 그 말에 번쩍 눈을 떴다. “확실해?”규영은 확신할 수는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현아 아가씨 같았어요. 소월이라는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요. 현아 아가씨 친구분이 장소월 씨잖아요. 그냥 우연인 걸까요?”강지훈은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바닥난 듯 말했다. “얼마나 남았지?”운전석에 묶여 있던 남자는 강지훈이 꽤 많은 힘을 들여서 찾아낸 인물이었다. 소현아의 행방을 쫓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이 남자가 소현아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강지훈의 정보 조직이 오랫동안 소현아의 소식을 찾지 못했던 이유였다.강지훈은 항공편 정보를 토대로 소현아의 사진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그녀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이곳 사막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얼마 전 폭동이 일어났고, 소현아는 무사하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흑인 남자가 한 민박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깁니다, 바로 여기예요.” 사투리가 가득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강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곧이어 뒤따라오던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에서도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겨 있는 대문을 본 강지훈은 그대로 발로 쾅 하고 걷어찼다. 몇몇 사람들이 신속하게 위층으로 올라갔고, 강지훈도 천천히 소파 옆으로 걸어갔다. 규영과 미경은 주방으로 향했다.2분 후, 위층으로 올라갔던 흑인 남자가 보고했다. “위층에는 세 명이 살고 있고, 옷가지도 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떠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규영이 말했다.“주인님, 냉장고에 현아 아가씨가 좋아하는 방울토마토와 포도가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흔적도 있습니다. 나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강지훈은 베개
장소월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드리웠다. “강용, 우리 가보는 게 어때? 아직 상처도 아물지 않았는데, 그 전 부인 쪽 사람들이 또 때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죽을지도 몰라.”“젠장, 그럴 수도 있겠네.” 강용이 곧장 뒤쫓아갔지만, 어디에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근처에 있는 버스 정류장 앞, 수십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줄지어 정차되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 거만하고 제멋대로였던 여자가 한없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보스. 제가 힘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그녀는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조금 전 사나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잘했어.”“됐어, 그만 울어!” 전연우가 호통을 치자 옆에서 울고 있던 별이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도로록 굴러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삐죽 내밀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더니, 바로 꺄르륵 웃고 있었다.“어머, 너무 귀여워. 안아주고 싶네.”“다른 사람들은?”리샬이 대답했다.“안심하세요, 보스. 시장 사람들은 모두 괜찮습니다. 그냥 연기였으니까요. 제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다친 사람은 보스뿐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총까지 맞다니요.”전연우는 팔과 어깨에 일부러 총상을 입었다. 더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진통제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인이었다면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심하게 매질까지 당했으니... 그의 검은색 옷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그 강인한 의지력은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보스. 사모님이 쫓아오고 있습니다.”장소월과 강용이 걱정되어 달려왔을 때, 손이준은 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장소월이 소리쳤다.“강용, 빨리 저 사람들 말려.”“오빠, 괜찮아요?” 장소월이 상처를 확인하려고 손을 뻗었다. 몸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어 손을
“아주 흥미진진했어. 두 부부가 오붓하게 얘기하는 거 방해하지 않도록 안 가는 게 좋을 거야.”장소월은 평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 사람... 와이프가 돌아왔다고?”강용은 웃으며 말했다. “응. 어젯밤 네가 쓰러졌을 때, 그 사람 보러 병실에 갔다가 부부가 크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어. 아이 양육권 때문인 것 같더라고.”“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어서 가면 괜히 불똥이 튈지도 몰라.”그녀는 결국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부가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끼어들었다가 전 부인이 오해라도 하면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그래. 남의 일에 우리가 간섭할 수는 없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분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줘.”“응.”지금은 이게 최선이다.이곳에는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집에 돌아온 장소월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이 옷 몇 벌과 화구 상자가 전부였다.“내일 차 오는 거 확실하지?”강용이 대답했다. “응, 현지 사람 중 한 명에게 말해놨어. 돈만 주면 내일 아침에 차로 시내까지 데려다줄 거야.”“떠나기 전에 현아를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어.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현아와 배 속의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잖아.”강용은 그녀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딴생각을 하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소현아도 마침 잠에서 깨어났다.장소월은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 내려갔다. 그때 문밖 길 건너편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별이를 안은 채 여행 가방을 끌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입에서는 험한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 뒤에 있던 경호원 몇 명은 손이준을 밀쳐 넘어뜨렸다.그녀는 또다시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놈이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장소월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남의 집안일에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 여자가 바로 손이준의 모든 재산을 빼앗고 그를 빈털터리로 만든 사람인 걸까?확실히 좀
시간은 조금씩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1분 1초가 그녀에겐 더없는 고통이었다. 왜 멀쩡하던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날이 거뭇하게 어두워졌을 때, 몽롱한 정신의 장소월의 귀에 강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살았다...”장소월이 소리쳤다.“나 여기 있어.”휴대폰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강용은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부축해 나왔다.“이준 오빠부터 먼저 살펴봐. 많이 다쳤어.”강용은 긴장한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넌?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장소월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으니까 얼른 오빠부터 병원에 데려가. 얼마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강용이 손이준을 안에서 끌어냈을 때 그의 몸은 그야말로 온통 피투성이였다. “괜찮아. 과다 출혈일 뿐이야. 밖에 의료진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강용은 그를 업고 나갔다. 장소월의 눈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부상자들이 들어왔다. 바닥은 금방 청소를 마쳤는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사방에는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었다.눈 앞에 펼쳐진 아찔한 광경에 장소월은 순간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소월아.”장소월이 다시 눈을 뜬 곳은 한 허름한 병실이었다. 그녀의 손등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옆에는 강용이 지키고 있었다.“깼어? 괜찮아?”장소월은 의식을 되찾자마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강용은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는 것을 알고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안전해.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장소월은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다. “손이준 씨는 괜찮아?”강용이 대답했다. “와이프가 데리러 왔으니까 괜찮을 거야.”장소월이 물었다. “죽은 사람 많아?”강용은 그녀가 놀랄까 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회복하는 데만 집중해. 내가 차 불러뒀어. 집에 가면 괜찮아질 거야.”현재 해외 시국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