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은 일찍 약혼식장에서 나와 저택으로 돌아갔다.오부연이 서류 봉투를 하나 가져왔다.“이건 조금 전 누군가 도련님께서 사모님에게 전해준 것이라며 가져온 것입니다. 내용은 사모님께서 직접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노부인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너희들은 나가 있어. 나 혼자 열어 볼 테니.”오랫동안 노부인의 곁을 지키던 도우미 한 명만 빼고 모두 방에서 나갔다.노부인이 소파에 앉아 서류 봉투를 열었다. 안엔 건강검진 결과 서류가 들어있었는데 장소월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마지막 줄을 본 노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이건...”서류를 들고 있던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사모님, 왜 그러세요?”도우미가 심장병 증세를 보이는 노부인을 보고는 재빨리 약 한 알을 그녀의 입안에 넣어주었다.노부인의 호흡이 그제야 평온해졌다. 바닥에 떨어진 건강검진 결과서를 본 도우미가 아연실색했다.“뭐라고요? 소월 아가씨에게 자궁이 없다고요? 임신을 못 하는 거예요? 이렇게나 큰일을 도련님은 아시는 걸까요?”노부인이 소리쳤다.“지금 당장 전화해. 이런 일을 왜 나한테 알려주지 않은 거야!”도우미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그때, 다른 도우미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사모님, 바깥에 아이 한 명이 와있습니다. 아빠를 찾으러 왔다고 합니다.”“어느 집 아이인데 여기에 온 거야? 얼른 경찰서에 데려다줘.”도우미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사모님, 직접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노부인이 밖에 나가보자 4,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청바지를 입고 곰 인형을 안고 서 있었다.“할머니, 엄마가 이곳에 오면 아빠를 찾을 수 있다고 했어요.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너... 이름이 뭐야?”노부인이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정말 닮았어요. 판에 박은 듯 완전히 닮았어요. 이렇게 이럴 수가 있죠?’“아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건넸다.“영수야, 엄마가 늦어서 미안해. 너한테 약혼 선물을 가져왔어. 너와 소월이가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구나.”“오빠, 새언니... 엄마가 두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셨어.”선물상자 안엔 정교한 도자기 그릇과 접시가 들어있었다. 이건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다. 그 가치가 고대 신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밑에서 수군거렸다.그때, 쨍그랑 소리가 약혼식장에 울려 퍼졌다. 강영수가 유리잔을 닥치는 대로 내던진 것이다. 그가 차가운 얼굴로 소리쳤다.“누가 오라고 했어요! 꺼져요!”그는 조금의 체면도 남겨주지 않았다.전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찻잔에 담긴 차를 마셨다. 본래 들썩였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부은 듯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입을 꾹 닫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인정아의 얼굴에서 미소가 자취를 감추고 슬픔이 자리 잡았다.인시윤이 다급히 나서며 말했다.“새언니가 우릴 오라고 했어요. 제가 조금 전 전화했거든요.”그녀가 장소월을 쳐다보며 말했다.“새언니, 나랑 엄마가 올 거라는 걸 오빠한테 얘기 안 했어?”장소월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강영수를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인시윤의 원망 어린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이렇게 중요한 일을 오빠한테 왜 알려주지 않았어?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대체 뭘 한 거야? 이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나 해?”인정아가 억지로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렸다.“괜찮아. 소월이도 일부러 한 일이 아닐 거야. 너무 정신이 없어 잊어버렸겠지.”“영수야, 엄마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준비해줄게.”그 순간 약혼식장에 오싹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짝!따귀 한 대가 인시윤의 얼굴에 힘껏 내리꽂혔다. 인시윤은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백윤서는 깜짝 놀라 전연우의 옆에 바
강영수는 술을 깨야 한다는 핑계로 장소월을 데리고 휴게실에 갔다.장소월이 죄책감에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미안해. 확실히 시윤이가 나한테 전화했었어. 난 네가 신경 쓸까 봐 말하지 않은 거야. 정말 올 줄은 몰랐어.”강영수는 술에 취해 눈동자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 종일 바삐 돌아쳤으니 말이다.장소월은 따뜻한 물을 받은 뒤 그의 옆에 앉았다. 강영수에겐 그녀를 원망할 조금의 생각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아... 시윤이가 했던 말은 마음에 두지 마. 그들이 또 너에게 연락했을 때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으면 언제든 나한테 얘기해.”“그래. 이젠 숨기지 않을게. 넌 다른 사람이 네 앞에서 그 일을 언급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말하지 않았어.”“안아줄래?”장소월은 앞으로 다가서 그의 품에 안겼다.오늘 약혼식이 끝나면 그들은 호텔에 머물 계획이었다. 이곳은 공항과 가깝기에 이른 시간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가기 편할 테니 말이다.인정아는 잠시 자리에 앉아있다가 이내 일어서 휴게실로 향했다. 하지만 문 앞에서 진봉이 막아섰다.“사모님, 여긴 개인 휴게실입니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영수한테 몇 마디만 하고 갈게요. 들여보내 줘요. 아니면 당신이 들어가서 말해줄래요? 난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진봉이 무표정한 얼굴로 예의를 차리며 말했다.“대표님께서 인씨 가문분들이 온 걸 눈감아주신 건 사모님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 점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인시윤이 벌컥 화를 냈다.“진 비서! 당신은 내 오빠 옆 비서일 뿐이에요.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들어가서 묻지 않고도 오빠가 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 거죠?”“아가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 대표님의 분부대로 행하는 한낱 비서일 뿐입니다. 절 난감하게 하지 마세요.”“당신!”그녀가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씩씩거리는 모습을
그때, 진봉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큰일 났습니다. 대표님, 노부인께서 앓아누우셨습니다.”강영수가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무슨 일이야?”“도련님더러 집에 오라고 하십니다. 소월 아가씨는 함께 오실 필요 없고요.”장소월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왜요?”강영수가 그녀를 쳐다보았다.“잘 모르겠습니다. 노부인의 뜻입니다. 하지만 말투를 들어보니 작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소월 아가씨가 먼 길을 떠나야 하니 걱정이 되어 오지 말라고 하신 것일 수도 있습니다.”할머니가 할 만한 생각이었다.그리 간단한 일이 아님을 느낀 강영수가 이마를 찌푸렸다.“할머니는 지금 어떠셔?”“개인 주치의가 급히 갔습니다.”강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위에 놓아두었던 정장을 잡고는 장소월에게 말했다.“넌 호텔에서 쉬고 있어. 내가 다녀올게.”“나도 같이 갈게.”“내 말 들어. 지금은 이미 시간이 늦었어. 파리와는 시차가 있으니 충분히 쉬지 못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할머니 쪽은 내가 살펴보고 나서 연락할게.”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꼭 연락해. 내일 시간이 안 되면 나 혼자 가도 돼.”강영수가 그녀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마. 반드시 시간 맞춰 돌아올 거야.”“그래.”강영수가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호텔 종업원이 펜트하우스 방키를 가져왔다.진봉이 손님들을 다 보내고 나니 이미 열한 시가 거의 되어가고 있었다. 장소월은 66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들어가니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낭만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었고 은은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다만 아쉽게도...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신혼 방에 장소월 한 사람만 남게 된 것이다.침실 문을 열어본 장소월은 화들짝 놀랐다. 침대 위에 9999송이의 붉은색 장미가 놓여있었던 것이다.그가... 서울시 장미꽃 모두를 사 온 건가?방 안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디퓨저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향기가 너무 강해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어두컴컴한 방에
뜨거운 습기가 욕실을 뒤덮었다.차가운 조명이 열기로 가득한 욕조를 비추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의 소녀가 가는 팔을 욕조 밖에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어떠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몸이 물 안에서 흐느적거렸다. 전연우는 천천히, 그리고 세심히 그녀 몸 모든 곳을 깨끗이 닦아냈다.음산하고 깊은 눈빛이 눈앞의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눈빛은 사람이 아니라 완벽한 예술품을 보는 듯했다. 미칠듯한 소유욕이 여전히 그의 눈동자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욕실에서 나오니 이미 한 시간이 흘러있었다.커다란 창문에 아름다운 여자 한 명이 건장한 체격의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 비쳤다. 남자의 준수하고도 위험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침대에 눕힌 뒤 그녀의 입술부터 시작해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목, 가슴... 더 아래로...침대 위 여자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더더욱 미친 듯이 그녀의 몸을 탐했다. 장소월은 연이어 구름 위에서 뛰어노는 듯한 자극에 몸부림쳤다.“하... 하지 마.”그녀의 목소리에 울음까지 섞여 나왔다.장소월은 두 손으로 남자의 등을 끌어안았다. 호흡은 처음보다 더욱 거칠어졌다.“널 오랫동안 편히 놔뒀으니, 이제 네가 날 즐겁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응?”남자의 유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서 들려왔다.“흑흑. 하지 마! 하나도 안 편해. 나 왜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는 거야?”전연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소월아,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야.”장소월은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으나 너무 어지러워 아무것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아니, 이건 꿈이야. 가짜야. 넌 날 속이고 있어!”“오빠가 왜 소월이를 속이겠어? 앞으로 소월이는 오빠랑 사귀는 거야. 응?”“싫어.”“말을 듣지 않는 애완동물은 철창에 갇히고 말아.”“나 괴로워. 계속 움직여.”장소월이 울먹이며 손을 그의
장소월이 소리 냈다.“오빠.”전연우의 상반신 위 완벽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근육을 따라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몸을 숙여 장소월의 몸을 압박하며 그녀에게 숨을 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한바탕 휘몰아친 뒤 장소월은 잠시나마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틀어막혀버렸다. 소리조차 목구멍에서 새어 나오지 못해 그대로 삼켜버렸다.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장소월은 처음엔 신음소리를 내다가 나중엔 급기야 울며 빌기까지 했다.침대 위에서, 탁자 위에서, 창문 앞에서...방 안 이곳저곳 전체에 야릇한 분위기가 흘러 들어갔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장소월은 몇 번이고 깨어나다가 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했다.새벽 3시.방안엔 그제야 고요함이 찾아왔다. 장소월은 의식을 잃은 채 남자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온 강영수의 이름이 떴다.전연우는 힐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놔둔 채 다 피운 담배꽁초를 버렸다....강씨 저택. 창밖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노부인이 침대에 누워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소월이가 불임이라는 사실 알고 있었어?”강영수는 부인하지 않았다.“네. 그게 어때서요?”“소월이는 이미 강씨 집안의 며느리입니다. 소월이의 몸 상태가 어떻든 그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그 말을 들은 노부인은 가슴에 응어리가 들어앉아 숨을 내쉬기조차 힘겨웠다. 그녀가 창백한 얼굴로 흥분하며 말했다.“어리석은 놈! 후대를 잇는 게 강씨 집안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 예전 그 여자가 널 임신했을 때 내가 널 지켰어. 그 이유는 강씨 집안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야.”강영수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 하신 모든 일들이 강한 그룹을 위한 거였다고요? 그럼 차라리 절 낳지 못하게 하고 그 잡종에게 이어받으라고 하면 좋았잖아요.”“제 생각은 똑같아요. 소월이의 신분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임신을 하든 못하든 영원히 제 아내라고요.
강영수는 방에서 나간 뒤 거실 소파에 앉아 밤새 담배를 피웠다.새벽 여섯 시,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시간, 청소를 하러 온 도우미는 자욱한 안개 속에 앉아있는 강영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어제 약혼식을 치른 도련님은 응당 호텔에서 소월 아가씨와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지금 몇 시죠?”강영수가 돌연 소리를 내자 도우미가 덜컥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고 말했다.“도련님, 여섯 시입니다.”날이 이미 밝은 건가?강영수는 실핏줄이 가득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소파에서 일어서자 어지러움에 온몸이 흔들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고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도련님!”도우미가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이내 의사를 불렀다.30분 뒤 도착한 의사가 그의 몸을 살펴보고는 말했다.“도련님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과로한 탓에 몸이 버티지 못한 것입니다. 푹 주무시고 나면 괜찮아지실 겁니다.”노부인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영수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도우미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사모님, 얼른 주무세요. 날이 밝았어요.”노부인이 물었다.“그 아인 알아봤어?”“조금 전 오 집사님이 CCTV를 살펴보았는데 여자 한 명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저희도 더이상의 정보는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도련님께선 종래로 밖에서 여자들과 함부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닮은 아이가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겁니다.”“예전 영수가 속을 썩이던 시절...”노부인의 머릿속에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사진은? 아이가 돌아가던 모습이 찍힌 사진을 가져와.”“네.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도우미는 사진을 뽑아 노부인에게 건네주었다. 노부인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중 몇 장의 사진엔 어젯밤 밤이 깊어 어두웠던 탓에 아이의 윤곽만 어렴풋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론 알아볼 수 있었다.노부인이
아침 8시, 장소월은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깨질 듯한 머리를 짚고 일어나 앉았다. 몸에는 흰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뭐지? 왜 머리가 이렇게 아프지?어젯밤에 잘을 설쳤나?방안에는 부서진 장미꽃이 가득했고 꽃잎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멀쩡한 꽃이 왜 이렇게 됐지?난... 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종업원이 준 방 키를 갖고 방에 들어왔을 때 너무 더운 것 같아 욕실에 가서 샤워한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잠든 것 같았다.그녀는 얼른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맨발로 땅을 밟는 순간, 갑자기 온몸이 나른해져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랫도리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아랫배가 약간 더부룩했다.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런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남자와 잠자리에 든 후에만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을.혹시 어제 강영수가 다녀갔을까?만약 영수와 관계를 맺었다면, 왜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까?바로 그때, 호텔 방 문이 밖에서 열리면서 한 객실 종업원이 들어왔다.“손님, 괜찮으세요?”“전 부른 적이 없는데 누가 들어오라고 했죠?”객실 종업원은 관례적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강 선생님께서 모닝콜을 요청하셨어요.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해서 몇 번이나 문을 두드렸는데 대답이 없어서 바로 들어왔습니다.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 이제 세 시간이 남았으니 지금 일어나셔야 합니다.”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장소월을 일으켜 세웠다.장소월은 침대에 앉아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며 떠보듯 물었다.“어젯밤에 누가 제 방에 왔었나요?”“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하지만 호텔 당직 직원에게 물어 봐 드릴 수는 있어요.”장소월은 이마를 짚고 호흡이 가빠지더니 온몸이 불편했다.“손님, 어젯밤에 술을 드셨으니 아침에 두통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이미 해장국을 준비했으니 곧 가져다드리겠습니다.”“하지만... 어젯밤에 마신 건 대부분 도수가 높지 않은 과일주였어요.”그녀는 빙그레 웃었다.“평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