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장소월을 불렀다. 이 시간에 왜 강영수가 학교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장소월은 뒷좌석 조수석에 앉았다.차 안은 에어컨을 켜 놓아 따뜻했다.차 안에 앉아 있는 강영수는 창백하고 허약한 얼굴이었고, 주먹을 반쯤 쥐고 입에 대고 기침을 몇 번 하더니 호흡이 흐트러졌는지 좀 괴로운 듯했다.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잠시 후, 장소월이 먼저 적막한 분위기를 깼다.“여긴 어쩐 일이야? 아파 보이는데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장소월이 걱정스레 물었다.“날이 차서 그래, 별것 아니야.”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강영수가 나지막이 물었다.“어제 시윤이가 학교 끝나고 널 기다렸는데 만나지 못했다고 했어. 어디 갔었어?”“날 기다렸다고?”강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늦게 끝나서 시윤이가 연우한테 전화했다던데, 못 만났어?”강영수는 장소월의 눈을 주시하며, 그녀에게서 뭔가를 알아채려는 듯했다.‘시윤이가 그렇게 말했구나!’장소월은 한 번도 전연우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이 없었다.인시윤은 그저 장소월을 방패로 삼아, 강영수에게 핑계를 댄 것이다. 장소월에게는 별로 손해가 없는 일이니, 굳이 인시윤의 핑계를 까발릴 필요가 없었다.장소월은 덤덤하게 말했다.“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전화를 못 받았어. 어제 학교 끝나고 친구가 아파서 같이 진료소에 갔어. 그래서 못 마주쳤나 봐.”‘나한테 이거 물어보려고 온 것일까? 이런 사소한 일로 영수가 직접 와서 물을 필요는 없을 텐데. 혹시 어제 강용이랑 함께 가는 걸 인시윤이 보고 영수에게 알려줬나? 영수도 그래서 아침부터 날 찾아왔을까?’“그래서 그 친구는 다 나았어?”“많이 나아졌어.”장소월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강영수는 빙빙 돌려서 용의자를 심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장소월은 자신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몰랐다. 갑자기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숨이 턱 막혔다.“걱정해줘서 고마워. 아, 참. 나 수업 시간이 거의 다 돼서
하지만 인시윤은 이미 대단한 성적이었다. 평소 숙제를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수업시간에 가끔 오지 않았다.그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시험을 이렇게 잘 볼 수 있다니, 역시나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다.인시윤은 오늘도 올림피아드 팀에 오지 않았고, 고건우도 익숙한 듯 수업을 시작했다.마지막 수업은 학급 회의였다.한결은 이번 주 토요일에 학부모 회의가 있으니 모든 학부모가 참가하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 외에도 겨울 방학 캠프도 있으니 참가하려면 서류에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6반뿐만 아니라 제운고등학교 전체를 대상한 활동이었다.장소월은 서류를 책상 서랍에 넣었다.학부모회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장해진은 한 번도 학부모 회의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예전에는 장소월이 전연우에게 학부모로 참석하라고 졸랐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겨울 방학 캠프는 생각해볼 만 했다. 캠프 마지막 날이 바로 설 전날이었다.설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든 말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마지막 수업이 끝났지만, 다른 반처럼 일찍 수업을 마칠 수 있는 특권이 없었다.장소월은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향했다.장소월은 하얀색 롱패딩 점퍼를 입고, 예쁜 얼굴 전체가 추위에 붉게 물들여 모자 속에 숨어있었다.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모자를 벗겼고, 장소월이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곁에 사람이 서 있었다.그를 본 장소월은 별로 놀랍지 않았다.“뭐하러 가?”“밥 먹으러.”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학교 끝났는데 집에 안 가고?”강용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다. 설마 그도 식당으로 가는 길일까?장소월은 갑자기 식당에 가고 싶지 않았다.“이번 겨울 캠프 너 갈 거야?”‘나한테 이런 건 왜 묻는 거야?’장소월은 대충 둘러댔다.“몰라.”“모른다고? 대체 간다는 거야, 안 간다는 거야? 아니면 내가 갈 줄 알고 가기 싫은 거야?”‘이 자식이 지금 잰말놀이 하는 거야?’장소월
“아가씨, 만족하세요?”“난 그런 뜻이 아니야.”장소월은 가득한 닭고기를 보며 말했다. 그녀가 다 먹지도 못할 양이었다.“줘도 싫다는 거야? 쯧쯧, 시중들기 정말 어렵네!”장소월은 단지 자신의 불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강용은 어디서 공부할 힘을 얻었는지 갑자기 과외를 해달라고 했다.평소 이 시간에 그는 술집에서 미녀들과 노래하고 춤추며 유흥을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주동적으로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6시가 되자 날씨는 이미 어두워졌다.그들은 강의동으로 걸어갔다.“그냥 내일 해. 아직 몸도 낫지 않았는데 하루 쉬어.”“10분 줄게. 안 내려오면 내가 직접 올라가서 널 잡아 올 거야.”장소월은 강용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장소월은 자리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책가방을 메고 떠나려 했다. 나가려는데 갑자기 인시윤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가려고? 나 방금 연우 오빠한테 전화했어, 나랑 같이 가.”“집이 아니라 도서관에 자료 찾으러 가는 거야.”인시윤은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에이, 너희 오빠한테 이미 같이 저녁 식사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내가 중간에서 두 사람 사이 갈등을 완화시켜 줄 테니까 걱정 마. 오늘 저녁 내가 너희 오빠 제대로 혼내 줄게. 앞으로 다시는 너 괴롭히지 못하게. 여자 혼자 밖에서 얼마나 위험해? 그냥 집으로 돌아가. 우리 오빠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겠어?”‘두 사람 벌써 이 정도로 친해진 거야? 전연우가 그것까지 알려줬다고?’장소월과 전연우 사이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었다.장소월은 인시윤의 손을 빼고 말했다.“시윤아, 네가 오해했어. 나랑 오빠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어. 우리 집 아직 인테리어가 끝나지 않았고, 오빠 집에 사는 게 불편해서 따로 집을 잡은 거야. 그냥 며칠만 지낼 거야. 게다가 학교랑도 가까워서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편해. 이걸 너희 오빠가 아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나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어
“너 설마 우리 오빠와 강용을 모두 네 어장에 넣고 양다리를 걸치려는 거 아니지? 장소월...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보지 그래.”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였어?그렇다면 어젯밤 그녀와 강용이 함께 있는 걸 보았던 강영수도 그렇게 생각한 걸까? 그녀가 한쪽에 발 하나씩 걸치고 두 사람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말이다.장소월이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네 그 질문에 대해 오늘 이 자리에서 똑똑히 말해줄게.”“내가 누구를 만나 뭘 하든 다 내 개인의 일이야.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네 오빠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는 거 알아. 나도 정말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나에 대한 영수의 마음...”때문은 아니야.“강용을 멀리해야 한다고? 그건 너희 집안일이지 나 같은 외인과는 전혀 상관없어. 만약 네가 나한테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강요한다면 내 결정은 오늘과 똑같을 거야.”지금은 그녀가 강용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이다.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그들에겐 간섭할 권리 따위 없다.사실 알고 보면 강용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강용은 학교에서 돌아다니는 불쌍한 야생 고양이한테도 먹이를 챙겨주고, 음식을 담아주는 식당 아주머니한테도 매번 감사 인사를 하곤 한다.또한 아침에 채소를 팔러 나가는 할머니의 수레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는 몰래 뒤에서 수레를 밀어 할머니를 돕고 나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홀연히 사라진다...그는 절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하무인 사고뭉치 망나니가 아니다.“난 두렵지 않으니까 네 오빠한테 얘기해. 시윤아, 난 이미 내 인생의 계획을 세웠어. 그 누구도 내가 나아가는 앞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서울대에 합격하는 거, 그거야말로 내가 목표로 삼고 해야 하는 일이야.”“난 아무한테도 마음을 주지 않아. 쓸데없는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네 오빠한텐 내가 분명히 얘기할게.”“밥은... 전연우랑 둘이서 먹어! 난 두 사람을 방해
도서관.장소월은 자신이 만든 수학 시험지 한 장을 꺼내 강용에게 건네주었다. 모두 기초적인 문제로 구성되어 있어 30분이면 풀 수 있는 반 장짜리 시험지였다.그녀는 강용이 문제를 푸는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우고 논술 문제를 풀었다.강용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중도에 그의 곁으로 가지 않았다.30분이 지난 뒤, 그가 채 풀지 못한 것 같았지만 시험지를 가져와 살펴보았다. 가장 기초적인 공식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모양새였다.채점을 해보니 겨우 20점이었다. 그것도 답안지의 정연함을 높이 사 우정 점수를 준 것이었다.장소월은 점수를 시험지 오른쪽 위에 표기해놓고는 이해할 수 없음에 연속 한숨을 내쉬었다.“저기, 강용, 너 2년 동안 대체 뭘 한 거야?”강용은 펜을 툭 던지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피식 웃으며 말했다.“놀았지!”“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가 있어? 너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내준 문제는 모두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있는 문제야. 설마 책을 한 번도 펴보지 않은 거야?”“나랑 2년이나 같은 반에 다녔으면서 아직도 나에 대해 그렇게 몰라?”장소월은 당장에라도 그의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애써 참으며 하려던 말을 삼켜버렸다.강용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왼손 손가락을 뻗어 그녀를 톡톡 터치했다.“아직 반년이나 남았으니까 늦지 않았어. 네가 가르쳐줘. 난 최선을 다해 기억해볼게.”지난 2년은 그녀에게 있어 나쁜 기억만 가득할 뿐, 좋았던 기억은 이미 희미하게 사라져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숨겼다. 지금은 지난 일을 따질 때가 아니다.수능시험을 다 보고 나면 그들 사이엔 별다른 교류가 없을 것이다.장소월이 덤덤히 말했다.“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너 뭐 천재라도 돼? 지금 고작 이런 문제도 풀지 못하면서 서울대에 가겠다고? 네 성적으론 지방대도 과분해.”그에게 과외를 해주기 위해 그녀는 흥취반 수업도 빠졌다.장해진이 이 일을 안다면 또 욕
도서관에서 일렁이는 오싹함은 다름 아닌 전연우의 몸에서 풍겨 나온 것이었다.인시윤이 못마땅한 얼굴로 강용을 쳐다보았다.“과외는 무슨 과외야. 내가 보기엔 영락없이 연애를 하고 있는데. 소월아, 너 설마 정말 이 잡종을 좋아하게 되기라도 한 거야? 너 왜 내 말을 안 듣는 거야?”인시윤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 발까지 동동 굴렀다.그녀는 이어 책상 위 시험지를 보고는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20점?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강용, 넌 평생 우리 오빠 발아래에 밟혀 버러지로 살 거야.”강용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웃으며 말했다.“적어도 난 아부하며 머리를 조아리다가 도리어 처참히 배신당하진 않아.”“나쁜 놈!”인시윤이 돌연 손을 번쩍 들고 강용의 뺨을 내리쳤다.“철썩!”하는 소리가 도서관에 울려 퍼졌다.도서관엔 아직 몇 사람이 남아있었는데 소리를 듣자마자 모두 그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네까짓 게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고작 딴따라 자식놈이?”인시윤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강용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한없이 얕잡아보는 자세로 말이다.“강용도 똑같은 사람이야!”순간 장소월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강용을 자신의 등 뒤로 잡아당겼다.“이곳은 도서관이야. 너희들은 나한테 영향을 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부도 방해했어. 지금 당장 나가!”인시윤이 말했다.“너 이렇게 두둔하며 나설 정도로 강용을 좋아하는 거야? 강용, 너 대체 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그래. 난 강용을 보호하고 싶어.”강용의 옷소매를 잡고 있는 장소월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당당히 한 사람을 지키는 순간이었다.인시윤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지금 네 행동이 나뿐만 아니라 강씨 집안까지도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알아? 너희 장씨 집안은 전연우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몰락하고 말았을 거야. 그러고도 네 부잣집 아가씨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난 정말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
장소월은 몇 명이 듣고 있든 전혀 개의치 않고 또박또박 말해나갔다.그녀는 강용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하지만 지금!이 순간만큼은... 강용의 편에 서고 싶었다.강용은 목숨까지 걸고 그녀를 구했으니, 용기를 내어 그를 보호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더욱이 그는 억울하게 인시윤에게 따귀까지 맞지 않았던가.장소월은 책을 가방에 넣고 강용과 함께 도서관을 나섰다.인시윤이 소리쳤다.“거기 서!”하지만 그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다 끝났어요?”전연우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가웠다.깊은 눈동자 속에 살을 파고들 듯한 기세의 한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인시윤은 본래 따뜻했던 도서관의 온도가 확연히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꼈다.그녀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오싹한 분위기였다.“그... 그게 무슨 뜻이에요?”전연우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그가 너무 빨리 걸어 인시윤은 뛰어서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그녀는 그가 행여 먼저 가버릴까 봐 급히 조수석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하지만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동도 걸지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난 당신을 도우러 온 거예요. 장소월을 데리고 가지 못한 화를 왜 나한테 내는 거예요!”인시윤의 목소리엔 억울함이 잔뜩 섞여 있었다.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이런 말투와 방식으로 말하는 순간이었다.그동안의 부드러운 말투는 도저히 그의 앞에서 유지할 수가 없었다.“전연우 씨... 소월이가 조금 전 했던 말이 전부 사실이에요?”그녀가 전연우의 준수하고 조각 같은 옆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그 질문의 답을 알고 싶어요?”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순간 인시윤의 심장이 요동쳤다.그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깊은 눈동자에 빠져버린 것이다.그녀가 고개를 저었다...“알고 싶지 않아요. 연우 씨 집안일이니 저랑은 상관없어요. 연우 씨... 시간이 늦었으니까 빨리 절 집에 데려다주세요. 너무 졸려요.”말을 마친 인시윤이 손으로 입을 막고 하품을 했다. 조금 전 인시
장소월이 물었다.“안 씻어?”강용이 몸을 일으키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너 뭐 하려고? 흑심은 버려! 네가 날 덮칠까 봐 겁나.”저 머리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가운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새로 산 거야. 한 번도 입지 않았어.”강용이 가운을 받으며 말했다.“핑크색이네.”장소월이 먼저 세수를 하러 들어갔다. 어제 강용 때문에 제대로 씻지 못한 탓에 오늘 학교에서 샤워를 했었다.그녀는 얼른 씻고 난 뒤 화장실을 그에게 양보했다.그녀가 방으로 돌아가 문들 닫으려고 할 때.“나도 서울대에 갈 거야.”등 뒤에서 강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의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알았어. 이제 자. 잘 자.”“잘 자.”다음 날 아침.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장소월의 눈에 주방에 서 있는 남자의 건장한 몸집이 들어왔다. 한 손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꺼내고 있었다.지금까지 강용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도련님인 줄로 여겼다.장소월은 처음으로 남자가 주방에서 밥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어떤 남자들은 뼛속 깊이 주방일은 여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그 사람 역시 단 한 번도 그녀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 적이 없다.“빨리 와서 받아.”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장소월은 책가방을 내려놓고 그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뺨에 난 손자국은 많이 옅어졌지만 다른 곳은 여전히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뭘 삶는 거야?”“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던데 내가 뭘 삶겠어!”마지막 남은 계란 하나도 어제 그가 먹어버렸다.하여 있는 거라곤 고추와 토마토밖에 없었다.장소월은 토마토의 붉은색 과즙과 어우러진 국수를 맛보았다. 조금 시긴 했지만 꽤나 맛있었다.그녀는 지금까지 토마토 고추 볶음으로 만든 국수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괜찮네. 맛있어.”“한 그릇에 천 원이야.”장소월은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했다.“너 강도야? 됐어. 돌려줄게. 안 먹어.”강용은 앞치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