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아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허리를 짚고 일어섰다.“아... 아니에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요. 다른 날엔 이렇게 게으름 피우지 않아요. 저 오늘 점심밥은 집에서 가져왔으니까 다음에 같이 먹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한 듯 빠르게 빠져나왔다.그녀가 거절한 건 회사 사람들이 또 제멋대로 그들을 입에 올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저번 기성은과 함께 비상계단에 있었던 일도 한동안 시끄럽게 들끓지 않았던가. 기성은이 강압적으로 일을 덮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대표님에게 불려가 한바탕 혼났을 것이다.소민아의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그녀가 먹을 것을 사러 가던 중 화장실을 지나칠 때, 안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진 봤어요? 소민아 씨가 신 편집장님 사무실에서 자는 걸 누가 찍어 올렸잖아요. 소민아 씨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편집장님도 기 비서님도 저렇게 꽉 잡고 있는 거죠. 저번에 기 비서님이 소피아 씨를 시켜 우리한테 입 간수 잘해야 한다고 경고하셨잖아요. 아니면... 사내 연애한다는 사실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아직 기 비서님과의 사이도 명확하지 못한데 남자를 또 한 명 꼬드기고 있네요.”“그러니까요.”여자가 거울을 비춰보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아무리 봐도 내가 소민아보다 훨씬 더 나아요. 그렇게 훌륭한 남자 두 명이 그깟 소민아 한 명 때문에 애를 태우다니, 참.”“소민아 씨가 두 사람에게 무슨 독을 풀었는지 당최 모르겠네요.”소민아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순간 목소리가 끊겨버렸다.그냥 참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있든 그녀는 동료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다. 지금 비서실 모든 직원들이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보기만 하면 슬슬 피해 다닌다.평소 가장 친했던 백혜진도 요즘엔 무척이나 조심스러워하며 그녀를 대한다.소민아가 1층으로 내려가는
“이랑 씨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멀지 않은 곳 테이블에 앉은 몇 명의 직원들이 소현아를 계속 힐끔거리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을 하고 있었다.소민아는 몇 입 먹지도 않고 감자탕이 도착했다는 핑계로 얼른 자리를 떴다.역시 이제부턴 구내식당에 오지 말아야겠다.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저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송시아는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었다. 금방 오전에 왔다 갔던 사람이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다.“민아 씨 오라고 한 적 없는 거로 기억하는데요.”송시아의 날카로운 눈빛에 소민아는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코를 슥 문질렀다.“전 부대표님의 비서잖아요. 옆에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는데 제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어요. 부대표님께서 좋아하시는 감자탕 가져왔어요. 어서 맛보세요.”소민아가 그릇을 가져와 감자탕을 덜어 두 손으로 송시아에게 건넸다.“송... 부대표님, 왜...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시는 거예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송시아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어들이고 그릇을 받았다.“내 기억으로 민아 씨는 무남독녀였던 것 같은데... 언니나 오빠는 없어요?”소민아가 숨김없이 대답했다.“사촌 언니 한 명 있어요. 소현아라고 하고요. 제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어렸을 때부터 전 대부분 사촌 언니 집에서 자랐어요.”송시아가 머리를 숙이고 숟가락으로 감자탕을 한 입 떠먹었다.“그래요?”하지만 송시아는 소민아에게서 자신 여동생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아이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지금 소민아와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늘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피하곤 했다.예전 송시아가 허둥지둥하며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소민아를 단번에 선택한 것도 이 이유였다.그녀의 눈동자가 송시아에게 더없이 익숙한 느낌을 안겨준 것이다.“오늘 저녁 시간 있어요?”소민아가 대답했다.“네, 있죠!”송시아는 감자탕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저녁에 나랑 같이 파티장에 가요. 예쁘게 꾸미고
“소민아 씨 말 참 재밌게 하네요. 그냥 내 말대로 가져가서 사고 싶은 거 사요. 직원 복지라고 생각하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고요. 컥컥컥...”송시아가 기침하자 소민아는 바로 따뜻한 물을 가져다주었다.“부대표님, 먼저 목을 좀 적시세요. 잠시 뒤에 약 가지러 가야 하죠? 제가 다녀올게요.”송시아가 물을 한 모금 삼키고는 말했다.“그래요.”소민아가 병실에서 나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송시아는 몇 초 뒤에야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쓸데없는 생각일 것이다.저녁, 소민아는 송시아가 준 카드를 가지고 고급 브랜드 매장에 가서 옷을 샀다. 평소 바지만 입던 그녀는 갑자기 치마를 입으니 너무 불편해 계속 치마를 만지작거렸다.송시아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왜요? 예전 기성은의 밑에 있을 안 입어봤어요? 클라이언트 만나러 갈 때 민아 씨 안 부르던가요?”소민아가 약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부대표님, 절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거 아니에요? 기 비서님은 제가 우둔하고 느리다고 계속 차 안에서 대기하라고만 하셨어요.”송시아가 더는 말하지 않자 소민아는 연이어 말했다.“부대표님,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 나가서 사람들 만나면 몸에 무리가 갈 거예요.”“사소한 병일 뿐이에요. 천천히 다스리면 돼요. 하지만 돈은 영원히 날 기다려주지 않아요. 기회를 놓치고 나면 내 손에 돈을 쥐여주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송시아가 손을 뻗어 소민아의 벨트를 정리해주다가 그녀 손목에 난 상처를 보고는 돌연 손을 덥석 잡았다.“이 상처 어떻게 생긴 거예요?”너무나도 큰 송시아의 반응에 소민아는 깜짝 놀라 당황하며 말했다.“어렸을 때 밥을 하다가 조심하지 않아 데였어요. 부대표님, 왜 그러세요?”송시아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준비됐으면 나 따라와요.”소민아는 차를 몰다가 백미러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송시아를 보고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40분 뒤, 천추 산장에
소피아가 자리에서 일어서 룸 밖으로 나갔다. 소민아가 한 무리 아저씨들과 친밀한 자세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그중 몇 명은 낯이 익었다. 전에 협력한 적이 있는 회사 임원이었다.소피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소민아, 너에게도 늙은 남자들에게 농락당하는 날이 오는구나.’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소피아는 룸에 돌아와 기성은에게 말했다.“기 비서님, 제가 나가보니까 이미 내려가고 없더라고요. 다만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겠는데...”“소민아 씨를 본 것 같아요. 건중 테크놀로지 대표랑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더라고요.”기성은이 물었다.“소민아 씨가 여기 왜 있어요?”소피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소민아 씨는 지금 송 부대표님의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에 왔을 리 없겠죠.”“기 비서님, 이렇게 빨리 가시려고요? 비서님과 이 천추 산장 개발에 관한 일로 자세하게 상의드리려 했는데요.”천추 산장의 총 책임자가 다가와 말했다.기성은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구 선생님, 아직 이른 시간이니 얘기하시죠.”“정말 영광이에요. 성세 그룹 같은 대단한 회사에서 저희 보잘것없는 산장에 관심을 가져줄 줄은 정말 몰랐어요.”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 온 건 저희 대표님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산장에서 진행하려고 알아보던 도중 사모님께서 마침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하여 대표님께서 절 보내 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셨습니다.”“하하하... 사모님께서 만족스러워하셨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완벽한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절대 실망 안 하실 겁니다.’천추 산장은 호텔과 각종 오락 시설이 갖춰진 리조트 산장이었다.이곳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안겨준다. 들어선 순간 그야말로 천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그때 2층 룸 안, 신이랑도 와 있었다.여우람이 들고 있던 계약서를 신이랑의 앞에 놓아주었다.
너무나도 강경한 신이랑의 태도에 여우림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이랑 씨, 설마 성세 그룹에 들어간 이유가 소민아 씨는 아니죠?”대답이 없으니 긍정이나 다름없었다.그 순간 여우림은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차를 들이켜도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가 않았다.“소민아 씨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 거예요. 이랑 씨...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훨씬 더 긴데, 그 정이라도 좀 생각해주면 안 돼요?”신이랑은 시종일관 태연한 태도였다.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민아 씨가 이 책 좋아해요. 난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저작권 계약은 원래대로 15년에 끝마치는 거로 해요.”신이랑은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난 이만 돌아가 출근해야 해요.”“이랑 씨, 200억 어때요. 이게 내 한계예요.”룸에서 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싫어요. 이거 놔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민아 씨!”신이랑이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가 끌려가고 있는 소민아를 잡아 자신의 등 뒤에 숨겼다.“당신들 누구시죠?”“이 자식 너 뭐야?”상대방도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신이랑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신고하려고요. 천추 산장이에요.”신이랑이 신고하자 그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분분히 자리를 떴다.“당신 내가 기억할 거야!”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신이랑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신고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행동일 뿐이었다.신이랑은 고개를 돌려 소민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너무나도 얇은 그녀의 옷을 본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입혀주었다.“민아 씨,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소민아는 너무 취해 세상 모든 사물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보였다. 심지어 바로 눈앞 사람 얼굴도 흐리멍덩하게 보일 지경이었다.그때 마침 기성은도 천추 산
화를 내며 자리를 뜨는 기성은의 뒷모습을 보며 소피아는 분노에 차올라 쿵쿵 발을 굴렀다.왜 가만히 있는 그녀에게 화를 분출한단 말인가. 이게 다 소민아 때문이다.계약서를 받은 뒤 기성은은 회사로 돌아가 이 일을 대표에게 보고했다.전연우가 말했다.“잘했어. 사람을 보내 결혼식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감시하라고 해.”“네, 대표님.”전화를 끊고 보니 책상엔 아직 검토하지 않은 새로운 계약서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음에도 기성은의 눈엔 좀처럼 글씨가 들어오지 않았다.그는 만년필을 들고 이마를 꾹꾹 짓눌렀다. 그렇게 시간이 산만하게 지나가 버렸다.기성은은 종래로 이렇게 도가 지나치게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적이 없다.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오후 3시, 소피아가 들어와 회의 시간을 알렸다.오후 4시 반, 회의가 끝났다.기성은이 전원을 끄지 않은 컴퓨터가 놓여 있는 소민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오자 백혜진은 고개를 들고 늘 그래왔듯 자연스럽게 보고했다.“저기 그... 기 비서님, 소민아 씨는 오늘 아침 일찍 외근하러 회사에서 나갔어요. 송 부대표님과 함께 병원에서 출발해 천추 산장에 가 클라이언트들과 식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제가 조금 전 문자 보내뒀어요.”그때, 백혜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들고 살펴보았다.“민아 씨 집에 돌아갔대요.”“어머! 신 편집장님이 보내온 문자네요!”늘 차분하고 느릿했던 사람이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버렸다.백혜진은 걱정스레 기성은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이미 사무실에 들어가 있었다.백혜진의 말이 퍼지자 회사 단톡방은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소민아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얼마 후 달달하고 매콤한 무언가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어서 마셔요. 더 있어요.”신이랑이 그녀를 위해 만든 해장국이었다.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까지 취했단 말인가.해장국을 다 먹인 뒤 신이랑은 소민아가 주정을 부리며 바닥에
30초 뒤, 소민아는 모든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추 산장에서 나올 때부터 신이랑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올 때까지...소민아는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어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의 옷을 헤집고 농락했던 것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소민아, 너 그렇게 남자가 고파? 드라마 주인공들은 술에 흠뻑 취하면 이튿날 아무것도 기억 못 하던데 난 왜 이렇게 하나하나 뚜렷하게 생각나는 거야. 세상에. 다 끝났어, 끝났어...”소민아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에 취하면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 타입이었을 줄이야.신이랑이 그녀에게 따지고 들면 무릎 꿇고 싹싹 빌어야 할 정도로 추태를 부렸다.같은 아파트 맞은편 오피스텔이라 방 구조는 그녀의 집과 아주 흡사했다.소민아는 침대 옆에서 가방을 들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어둡게 조명이 꺼져 있는 거실을 보니 신이랑은 아마도 자고 있는 듯했다.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려는 순간, 돌연 옆방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신이랑이 하얀색 잠옷을 입고 앞머리를 이마에 늘어뜨린 채 걸어 나왔다. 소민아를 본 순간 그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담배를 등 뒤에 숨겼다.소민아는 그의 행동을 포착했다. 또한 그의 방에서 풍겨 나오는 담배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몇 초간 멍하니 시선을 맞추었다. 소민아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이랑 씨... 깼어요?”신이랑이 담담히 대답했다.“아니요. 오늘 소설 올려야 해서요. 집에 가려고요?”소민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 마음이 저려왔다.“아직까지도 안 잔 거예요? 오늘 제가 실수해서 시간을 지체한 거죠? 미안해요! 클라이언트들이 자꾸 술을 권하는 바람에 취해버렸어요. 저 평소엔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아요.”신이랑이 눈동자를 내리뜨렸다.“괜찮아요.”“그럼 전 이만 갈게요! 이제 이랑 씨도 자요.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요.”신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럴게요.”소민아가 나가자 복도 센서 등이 켜졌다. 그녀는 빠르게 자신
소민아도 그의 두통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아직도... 머리가 아파요?”신이랑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걱정하지 말아요. 난 괜찮아요.”“집에 가서 쉬어요. 저 혼자 있어도 돼요.”그 말이 또다시 소민아의 가슴을 찔렀다.“난 아까 많이 자서 하나도 안 피곤해요.”방에 들어가 보니 컴퓨터는 아직 켜져 있었다.“앞으로는 소설 쓰느라 밤새지 말아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잖아요.”“알았어요.”“그냥 먹을 것 좀 가져다주러 온 거예요. 얼른 약 먹고 쉬어요. 이 물은 너무 차가워서 안 돼요. 제가 얼른 따뜻하게 물 끓여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그래요.”소민아는 전에 그의 집에 와본 적이 있다. 그녀가 쉬고 있을 때 신이랑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함께 먹자며 그녀를 불렀다.그렇게 한두 번 드나들다 보니 소민아는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단골손님이 되어있었다.밥, 설거지, 그리고 뒷정리까지 모두 그가 직접 도맡아 했고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었다.소민아는 물을 끓이다가 불현듯 핸드폰이 생각났다.그녀가 문을 열어보니 앞에 불청객 한 명이 와 있었다.복도 끝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순간, 소민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여... 여긴 왜 왔어요!”기성은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론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한동안 시선을 맞추고 있으니 소민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왔다.“여긴 왜 오셨냐고요.”기성은이 들고 있던 물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소민아에게 그가 말했다.“가져가요.”소민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건을 받았다. 그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기성은이 물었다.“문자 못 봤어요?”소민아는 호주머니를 더듬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핸드폰이 가방 안에 있어서요. 무슨 일로 찾은 거예요?”소민아는 차마 그를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분명 어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