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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작가: 차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소피아가 자리에서 일어서 룸 밖으로 나갔다. 소민아가 한 무리 아저씨들과 친밀한 자세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몇 명은 낯이 익었다. 전에 협력한 적이 있는 회사 임원이었다.

소피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

‘소민아, 너에게도 늙은 남자들에게 농락당하는 날이 오는구나.’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소피아는 룸에 돌아와 기성은에게 말했다.

“기 비서님, 제가 나가보니까 이미 내려가고 없더라고요. 다만 제가 잘못 봤는지 모르겠는데...”

“소민아 씨를 본 것 같아요. 건중 테크놀로지 대표랑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더라고요.”

기성은이 물었다.

“소민아 씨가 여기 왜 있어요?”

소피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어요. 소민아 씨는 지금 송 부대표님의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에 왔을 리 없겠죠.”

“기 비서님, 이렇게 빨리 가시려고요? 비서님과 이 천추 산장 개발에 관한 일로 자세하게 상의드리려 했는데요.”

천추 산장의 총 책임자가 다가와 말했다.

기성은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구 선생님, 아직 이른 시간이니 얘기하시죠.”

“정말 영광이에요. 성세 그룹 같은 대단한 회사에서 저희 보잘것없는 산장에 관심을 가져줄 줄은 정말 몰랐어요.”

기성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온 건 저희 대표님 때문입니다. 결혼식을 산장에서 진행하려고 알아보던 도중 사모님께서 마침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하여 대표님께서 절 보내 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사모님께서 만족스러워하셨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완벽한 야외 결혼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절대 실망 안 하실 겁니다.’

천추 산장은 호텔과 각종 오락 시설이 갖춰진 리조트 산장이었다.

이곳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안겨준다. 들어선 순간 그야말로 천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 2층 룸 안, 신이랑도 와 있었다.

여우람이 들고 있던 계약서를 신이랑의 앞에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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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강경한 신이랑의 태도에 여우림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이 역력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이랑 씨, 설마 성세 그룹에 들어간 이유가 소민아 씨는 아니죠?”대답이 없으니 긍정이나 다름없었다.그 순간 여우림은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차를 들이켜도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가 않았다.“소민아 씨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 거예요. 이랑 씨...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훨씬 더 긴데, 그 정이라도 좀 생각해주면 안 돼요?”신이랑은 시종일관 태연한 태도였다.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민아 씨가 이 책 좋아해요. 난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저작권 계약은 원래대로 15년에 끝마치는 거로 해요.”신이랑은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시간이 늦었어요. 난 이만 돌아가 출근해야 해요.”“이랑 씨, 200억 어때요. 이게 내 한계예요.”룸에서 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싫어요. 이거 놔요... 이거 놓으란 말이에요...”“민아 씨!”신이랑이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가 끌려가고 있는 소민아를 잡아 자신의 등 뒤에 숨겼다.“당신들 누구시죠?”“이 자식 너 뭐야?”상대방도 많이 취한 것 같았다. 신이랑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신고하려고요. 천추 산장이에요.”신이랑이 신고하자 그들은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분분히 자리를 떴다.“당신 내가 기억할 거야!”사람들이 모두 사라지자 신이랑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는 신고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행동일 뿐이었다.신이랑은 고개를 돌려 소민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너무나도 얇은 그녀의 옷을 본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입혀주었다.“민아 씨,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소민아는 너무 취해 세상 모든 사물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보였다. 심지어 바로 눈앞 사람 얼굴도 흐리멍덩하게 보일 지경이었다.그때 마침 기성은도 천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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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를 내며 자리를 뜨는 기성은의 뒷모습을 보며 소피아는 분노에 차올라 쿵쿵 발을 굴렀다.왜 가만히 있는 그녀에게 화를 분출한단 말인가. 이게 다 소민아 때문이다.계약서를 받은 뒤 기성은은 회사로 돌아가 이 일을 대표에게 보고했다.전연우가 말했다.“잘했어. 사람을 보내 결혼식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감시하라고 해.”“네, 대표님.”전화를 끊고 보니 책상엔 아직 검토하지 않은 새로운 계약서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음에도 기성은의 눈엔 좀처럼 글씨가 들어오지 않았다.그는 만년필을 들고 이마를 꾹꾹 짓눌렀다. 그렇게 시간이 산만하게 지나가 버렸다.기성은은 종래로 이렇게 도가 지나치게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적이 없다.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오후 3시, 소피아가 들어와 회의 시간을 알렸다.오후 4시 반, 회의가 끝났다.기성은이 전원을 끄지 않은 컴퓨터가 놓여 있는 소민아의 책상 앞으로 다가오자 백혜진은 고개를 들고 늘 그래왔듯 자연스럽게 보고했다.“저기 그... 기 비서님, 소민아 씨는 오늘 아침 일찍 외근하러 회사에서 나갔어요. 송 부대표님과 함께 병원에서 출발해 천추 산장에 가 클라이언트들과 식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제가 조금 전 문자 보내뒀어요.”그때, 백혜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녀는 얼른 핸드폰을 들고 살펴보았다.“민아 씨 집에 돌아갔대요.”“어머! 신 편집장님이 보내온 문자네요!”늘 차분하고 느릿했던 사람이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러버렸다.백혜진은 걱정스레 기성은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이미 사무실에 들어가 있었다.백혜진의 말이 퍼지자 회사 단톡방은 또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소민아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얼마 후 달달하고 매콤한 무언가가 입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어서 마셔요. 더 있어요.”신이랑이 그녀를 위해 만든 해장국이었다. 대체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까지 취했단 말인가.해장국을 다 먹인 뒤 신이랑은 소민아가 주정을 부리며 바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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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민아도 그의 두통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아직도... 머리가 아파요?”신이랑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걱정하지 말아요. 난 괜찮아요.”“집에 가서 쉬어요. 저 혼자 있어도 돼요.”그 말이 또다시 소민아의 가슴을 찔렀다.“난 아까 많이 자서 하나도 안 피곤해요.”방에 들어가 보니 컴퓨터는 아직 켜져 있었다.“앞으로는 소설 쓰느라 밤새지 말아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잖아요.”“알았어요.”“그냥 먹을 것 좀 가져다주러 온 거예요. 얼른 약 먹고 쉬어요. 이 물은 너무 차가워서 안 돼요. 제가 얼른 따뜻하게 물 끓여줄게요. 조금만 기다려요.”“그래요.”소민아는 전에 그의 집에 와본 적이 있다. 그녀가 쉬고 있을 때 신이랑은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함께 먹자며 그녀를 불렀다.그렇게 한두 번 드나들다 보니 소민아는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단골손님이 되어있었다.밥, 설거지, 그리고 뒷정리까지 모두 그가 직접 도맡아 했고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었다.소민아는 물을 끓이다가 불현듯 핸드폰이 생각났다.그녀가 문을 열어보니 앞에 불청객 한 명이 와 있었다.복도 끝에 서 있는 남자를 본 순간, 소민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여... 여긴 왜 왔어요!”기성은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론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한동안 시선을 맞추고 있으니 소민아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흘러나왔다.“여긴 왜 오셨냐고요.”기성은이 들고 있던 물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소민아에게 그가 말했다.“가져가요.”소민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물건을 받았다. 그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기성은이 물었다.“문자 못 봤어요?”소민아는 호주머니를 더듬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했다.“핸드폰이 가방 안에 있어서요. 무슨 일로 찾은 거예요?”소민아는 차마 그를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분명 어제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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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은 씨,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당신의 이런 다른 사람을 벌레 보듯 하는 오만한 태도예요. 왜 그렇게 사람을 깔봐요!”기성은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있었다. 소민아는 그가 준 야식을 보니 끓어오르던 화가 적잖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날이 거의 밝아오는데 무슨 야식이란 말인가. 곧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다.소민아는 화가 나 버리려고 했지만, 구영관의 음식인 걸 보고는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됐어. 공짠데 그냥 먹어보지 뭐.”“쿵...”집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소민아는 신이랑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로 알고 곧바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이랑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침대 옆에 두었던 유리컵이 떨어져 산산조각나 있었다.“이랑 씨, 어떻게 된 거예요!”소민아는 얼른 넘어져 있는 신이랑을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신이랑은 힘없이 쿡쿡 기침했다.“난 괜찮아요. 바깥에서 말 소리가 들리던데 누가 왔어요?”소민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도둑이에요. 놀라서 도망치더라고요.”“민아 씨는 괜찮은 거죠? 신고할까요?”“괜찮아요. 얼른 쉬어요. 물이 다 끓었네요. 컵에 따라줄게요.”“네. 고마워요.”“고맙긴요.”소민아는 그가 약을 먹는 것을 지켜본 뒤 이불을 덮어주고는 말했다.“푹 쉬어요. 난 더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돌아갈게요.”신이랑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그녀의 옷깃에 스쳐 지나갔고, 그의 얼굴엔 실망의 감정이 피어올랐다.소민아는 집에 가자마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기성은이 보낸 문자와 부재중 통화가 한 통 와 있었다.기성은은 늘 똑같다. 용건이 뭐든 짧게 몇 글자만 보내면 끝이다.조금만 더 길게 쓰면 죽기라도 하는지.“전화 몇 번 더 걸면 어디가 덧나요? 이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난 왜 찾은 거예요!”그녀는 분노에 차올라 핸드폰 화면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음식은 확실히 그녀 입맛에 맞는 것들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기성은이 왜 야식을 가져다주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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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잘 되었다. 그녀도 어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순조로웠던 식사 자리였는데 하마터면!어쩐지 마음껏 쓰라며 카드까지 주더라니, 역시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역겹다.소민아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송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소민아가 사무실에 들어갔다.“부대표님, 부르셨어요. 오늘 아침 핸드폰이 배터리가 없어 꺼지는 바람에 출근이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엔 절대 지각하지 않겠습니다.”송시아가 들고 있던 서류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네? 걱정하지 말아요. 기성은이 민아 씨 반차 내줬어요. 이 인사발령 통지서를 주기 전에 개인적인 일에 관해 묻고 싶어요. 기성은과 지금 어떤 관계예요? 숨길 생각하지 말아요.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소민아는 송시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부대표님, 저와 기 비서님은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또한... 심지어 친구조차도 되지 못합니다.”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친구도 안 된다고요? 내가 알기로 소민아 씨는 기성은이 전연우 외에 유일하게 자원해 도운 사람이에요. 기성은은 자기 부하직원들에 대한 요구가 엄청 높은 사람이에요. 업무에 관해선 더더욱 엄격하죠. 누가 한번 사소한 거라도 빼먹으면 바로 해고시켰어요. 하지만 민아 씨는... 저번 회의 자료를 잘못 가져와도 하루 치 월급을 깎았을 뿐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확실히... 민아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소민아는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절대요. 부대표님, 그 사람은 그야말로 정신병자예요. 사람 마음 갖고 장난이나 치고!”소민아는 홧김에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해버렸다.그녀는 이렇듯 가끔씩 자신의 입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송시아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네?”“저번엔 저랑 사귀자고 했다가 바로 주가은인지 뭔지 하는 여자한테 가더라고요. 이런 바람둥이 남자 전 싫어요. 그래서 하루 사귀고 헤어졌죠 뭐.”송시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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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소민아는 날이 완전히 밝아와서야 깨어났다. 그 순간 알람이 한 번 울리더니 배터리가 없어 핸드폰이 꺼져버렸다.회사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소민아는 다급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침대 옆에 올려놓고 충전 선을 꼽고는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다.핸드폰 전원이 자동으로 켜졌을 때, 소민아도 세수를 마쳤다.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아침밥을 먹으러 아래로 내려갔다.그러던 중 약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도우미와 마주쳤다.“이건 뭐예요?”“민아 아가씨, 이건 어르신에게 드릴 한약입니다. 어르신께선 아직 쉬어야 하시기 때문에 아가씨와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십니다.”소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모부 지금 많이 나아지셨어요?”“네. 이젠 밥도 드실 수 있습니다.”“다행이네요.”명세진은 완성된 만두를 들고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민아야, 깼구나. 어서 와서 아침 먹어.”소민아는 아침 상이 이렇게나 풍성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모, 너무 많아요. 저 다 못 먹어요.”“많이 먹으렴.”“네.”소민아가 반쯤 먹었을 때, 명세진의 눈에 마당에 들어오고 있는 회색 승용차가 보였다.“저거 누구 차지?”소민아도 호기심에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차 번호를 본 순간 화들짝 놀랐다.“신이랑 씨?”도우미가 문을 열려 나갔고, 소민아도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이랑 씨가... 여긴 웬일이에요. 어서 들어와요.”“민아 씨한테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없어서요.”소민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미안해요! 배터리가 없어서 지금 충전 중이에요.”명세진이 미소를 머금고 걸어왔다.“이분이 바로 네가 어젯밤 말했던 신 총편집장님이시구나. 정말 유능하고 건실한 분이시네.”신이랑은 오늘 입술에 빨간빛이 감도는 것이 얼굴색이 꽤 괜찮았다.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오늘은 민아 씨를 데리러 온 거예요. 아침밥은 이미 먹었습니다.”소민아는 그를 가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머리를 쥐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72화

    소민아는 명세진에게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했다.“아니에요. 방금 통화한 사람은 제 회사 상사예요. 저 지금 구르미 시리즈라는 회사로 옮겨서 총편집장 비서로 일하고 있어요. 월급은 예전과 같고요. 제 남자친구는 성세 그룹 총괄 비서예요. 다만 요즘은 다른 일이 있어 회사를 그만뒀어요.”“총괄 비서라고? 그럼 연봉도 엄청 높겠네?”“그건 물어본 적 없어요. 하지만 고아라 옆에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냥 제가 가끔씩 가서 함께 있어 주곤 해요. 최근엔 너무 바빠서 자주 못 만났어요.”명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민아의 손을 잡고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시간 있으면 집에 데리고 와. 이 고모가 널 평생 맡길 수 있는 사람인지 봐야지.”명세진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참, 저번에 너희 엄마가 소개해준 남자는 어땠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그 질문에 소민아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최근 있었던 일을 대체적으로 나열해줄 뿐이었다.“일이 좀 복잡하게 되긴 했구나. 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내 마음이 좋다는 걸 어떻게 해. 들어보니 너 그 기성은이라는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구나.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네 속을 이렇게 태우는지 궁금하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접촉해본 명문가 도련님들도 적지 않았잖아. 성세 그룹 대표와 비교할 수는 없어도 다들 꽤 잘나가는 집안 자제들이었어.” 명세진이 말을 이어갔다.“그 강씨 집안은 어떻게 됐어? 예전 우리 소씨 집안은 강씨 집안 도움을 적잖게 받았었어. 요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분들의 소식이 들리지 않는구나. 저번... 설 인사를 하러 네 고모부와 함께 강씨 저택에 갔는데 이사를 갔는지 집은 텅 비어있었어. 그 장씨 아가씨한테 묻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줄곧 만날 기회가 없었어.”소민아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급히 말했다.“고모, 안 돼요.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라 절대 강씨 집안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입에 올리면 안 돼요. 특히 대표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71화

    소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요즘 출근하느라 바빴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꼭 시간 맞춰 들어와 같이 밥 먹을게요.”명세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그릇에 반찬을 놓아주었다.“그래. 일이 아무리 바빠도 몸을 꼭 잘 챙겨야 해. 이젠 집에 들어와서 살아. 너랑 현아 방은 오랫동안 비어있긴 했어도 내가 아주머니한테 매일 청소하라고 했어..”“고마워요, 고모. 역시 고모가 제일 좋아요.”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만 소민아는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민아는 욕실에서 샤워를 마쳤다. 그 후 그녀는 기성은에게 오늘 일과가 모두 담긴 문자를 보냈다. 회사일 뿐만 아니라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오후엔 어떤 간식을 먹었는지까지 세세하게 담겨 있었다.역시 그 문자는 망망대해에 던져지기라도 한 듯 그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예전 기성은과 이런 문제로 심술을 부렸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너무나도 꿈 같은 시간이었다.소민아는 베란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두 팔로 다리를 감싸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았다.그녀가 혼자 중얼거렸다.“언제쯤이면 우리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요?”“기성은 씨, 너무 보고 싶어요.”며칠 전에 보낸 문자에도 지금까지 답장이 없다.그녀는 심지어 자신이 정말 기성은과 사귀고 있는 건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띠링.”기성은에게서 온 문자일 거라 생각한 소민아는 빠르게 핸드폰을 살펴보았다.신이랑의 문자였다.[언제 돌아와요? 민아 씨 주려고 삼계탕 끓여놨어요.]소민아는 문자를 쓰고 지우고 반복하다가 결국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답장했다.[오늘은 안 돌아갈 거예요. 이랑 씨, 저 앞으로 이곳에서 쭉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신이랑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민아 씨 귀찮게 해서 그래요? 미안해요.”“이랑 씨 때문이 아니에요. 집에 돌아와 고모와 고모부를 뵌 지 너무 오래돼서 그래요. 정말 이랑 씨 때문은 아니에요. 삼계탕은 내일 가서 먹을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70화

    집에 돌아가는 길, 신이랑이 돌연 기성은을 언급했다.“그 사람이랑은 잘 사귀고 있어요?”핸들을 잡고 있던 소민아의 손이 순간 경직되었다.“네. 어젯밤 병원에서 성은 씨와 우연히 만났어요. 송시아가 총괄 비서 자리에 앉을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소민아는 그 뒤의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아직 대표님의 생사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병원에 있을 때 간호사들이 대표님의 상태에 대해 수군대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 일은 외부엔 비밀로 부쳤지만, 신이랑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신이랑이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돌아가 그 자리에 앉고 싶은 거예요?”소민아는 그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의 눈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필경 그녀는 본사에서 나와 구르미 시리즈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구르미 시리즈는 예전 대표님이 소월 언니를 위해 설립한 회사였다. 현재 드라마화가 진행되고 있는 소설 모두 소월 언니가 직접 선택한 것이었다.지금은 비록 변고가 생기긴 했지만, 그들 손에 맡겨진 일이니 멈출 수는 없다.소민아가 말했다.“아니요. 지금 맡은 일 너무 좋아요.”“월급 때문이라면 상의 가능해요.”그녀를 잡을 수만 있다면 신이랑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어줄 수도 있었다.소민아는 신이랑을 집에 데려다준 뒤 일을 처리하러 회사로 돌아갔다.설영우는 이미 사무실에 와 있었다.퇴근 시간이 거의 다가오고 있을 때, 소민아는 신이랑의 문자를 받았다.가족 모임이 이번 주말로 결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4, 5일 정도 남아있었다.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소민아가 그의 문자에 답장했다.[알겠어요.]퇴근길, 소민아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고모부가 의식을 찾았고, 고모는 그의 곁에서 간호를 하고 있다고 한다.명세진이 소민아의 손목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민아야, 우리 현아 어떻게 됐는지 알아? 강지훈은 대체 왜 그 아이를 다시 보내주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9화

    그중 살집이 두둑한 털보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했다.“누님, 이런 사소한 일에 친히 걸음하시게 했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때가 되면 저희가 이놈 껍질을 벗겨 누님의 분노를 달래드릴게요.”“전연우가 없으니까 엄청 막 나가네?”“누님, 누님도 아시잖아요. 형님은 지금 손을 씻은 상태라 푼돈을 벌 수밖에 없어요. 겨우겨우 가족들 먹여 살린다고요. 이놈이 겁도 없이 그 물건을 건드려서 저희까지 돈줄이 끊겨버렸어요. 누님... 저흰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솔직히 형님이 저희한테 추천한 일 꽤 괜찮아요. 시간도 힘도 별로 안 들어요. 하지만 벌이가 너무 적어서... 누님, 다른 방법 없을까요?”송시아가 손을 흔들자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던 간병인은 빠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병실 문이 굳게 닫혔다...소민아는 신이랑의 병실로 들어오던 중 환청인지는 모르나 송시아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송시아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머릿속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소민아는 신이랑에게 죽을 먹여주고 약을 가져다준 뒤 링거를 다 맞히고는 그의 외투를 걸치고 병실을 나섰다.신이랑이 물었다.“민아 씨, 돌아온 뒤로 계속 걱정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인데 무슨 일 있는 거예요?”그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그는 지금 몸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의 그에게는 좋아하는 일인 소설을 마음껏 쓰게 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아직 채 못한 일이 있나 고민하느라 그랬어요. 오늘 이랑 씨는 회사에 못 나간다고 말해뒀으니까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요.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제가 찾아갈게요. 이랑 씨가 저작권료 상의 때문에 출판사와 잡은 약속은 잠시 뒤로 미뤘어요.”소민아는 그를 부축해 걸어가며 핸드폰으로 메일을 보냈다.그날 있었던 일에 관해선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신이랑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말했다간 거부감만 더 살 뿐만 아니라 그녀가 천 리 밖으로 자신을 밀어낼 거라는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8화

    “충분히 생각한 거예요? 일단 발을 들이면 벗어날 수 없어요. 위험이 닥쳐도 내가 민아 씨 안전을 완전히 보장해줄 수는 없고요.”소민아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알아요. 저 그렇게 나약한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저 운도 항상 좋았어요. 아무도 저 다치게 못 해요.”기성은이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민아 역시 단호한 눈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기성은이 입을 열었다.“그럼 나 대신 그 자리를 지켜줘요. 송시아의 손이 너무 높게 뻗지 못하도록.”“그게.. . 무슨 뜻이에요? 기성은 씨 대신 총괄 비서 자리에 앉으라는 건가요? 하지만 전 지금 회사 본사에서도 나왔어요. 안 된다고요!”“어떤 일은 자세히 말해줄 수 없어요. 때가 되면 민아 씨 스스로 뭘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소민아는 배시시 웃는 얼굴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에 키스했다.“나 걱정하고 있다는 거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고요. 기성은 씨처럼 입이 지독한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아니면...”기성은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예요?”소민아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두 글자를 내뱉었다.기성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어떻게 그런 황당한 말을. 소민아 씨,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라는 거 잊었어요?”소민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기성은 씨가 있으니까 곧 결혼하겠죠.”소민아는 굶주린 늑대처럼 기성은이 입고 있는 옷 단추를 하나씩 풀어헤쳤다.“기성은 씨, 저 남자를 한번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한테 듣기론 남자랑 자면 너무 짜릿하다고 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해봐요. 다른 여자랑 잔 적 있어요?”“솔직히 저번 기성은 씨 집에서 밤을 보낼 때부터 잠자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적극적이지 못했어요. 이번엔 꼭 할 거예요.”소민아는 허기진 암컷 호랑이처럼 차갑고 꼿꼿한 나무막대기 같은 기성은을 향해 군침을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7화

    죽 한 그릇을 먹여주는데 무려 20분이나 걸렸다.소민아는 그에게 수면 촉진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가져다주었다. 신이랑이 침대에 누워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랑 같이 있어 줘요. 안 가면 안 돼요?”소민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뭐든 이랑 씨가 몸을 다 회복한 다음 얘기해요.”옆에 앉아 신이랑이 잠드는 것을 지켜보던 중 핸드폰에 배터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천천히 손을 빼냈다. 하지만 신이랑은 그녀의 움직임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불안한 얼굴로 다시 눈을 떴다. 소민아는 환자를 보살피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지는 정말 몰랐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엎드려 잠시 잠을 청했다.창밖에서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드디어 그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그녀가 어깨를 움츠렸다.그때, 그녀의 귀에 미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뜬 순간,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휙 지나갔다.“기성은 씨, 당신이에요?”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소민아는 자신을 잡고 있던 신이랑의 손을 풀고는 바로 일어나 남자를 쫓아갔다. 그녀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은 순간 복도의 센서 등이 환하게 어둠을 밝혔다. 바깥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제가 문자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했어요?”“이거 놔요.”“설명해주기 전엔 놓지 않을 거예요.”작게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기성은은 소민아의 손을 잡고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소민아는 벽을 더듬어 조명을 켜려다 말했다.“따라와요.”이후 그녀는 옆쪽 간병인 방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의 손가락을 만져보니 얼음처럼 차가웠다.“잠시만 기다려요. 제가 뜨거운 물 가져올게요.”소민아는 따뜻한 물을 가져온 뒤 그가 손으로 감싸게 하고는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조금만 기다려요. 곧 따뜻해질 거예요.”두 사람은 함께 침대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분명 기성은이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자신과 그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다는 느낌을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6화

    하지만 기성은은 못 본 척 시선을 피해버렸다.문이 닫힌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숨이 끊어진 것 같은 사람이 병실에서 던져져 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그 충격에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소민아는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음식까지 바닥에 떨어뜨렸다.“형님, 바깥에 사람이 있습니다.”“이런 우연이 있나. 오늘 아침 만났던 여자잖아.”소민아는 그들이 다가오자 빠르게 반응하며 말했다.“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어요.”적잖은 시선이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고 지나갔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작두, 이 여자 누군지 알아?”작두라고 불리는 남자가 아래턱을 문지르며 걸어 나오고 있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형님, 이년 어떻게 처리할까요? 대체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네요.”기성은은 검은색 가죽 신발을 신고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낯선 그의 모습에 소민아는 돌연 덜컥 겁이 났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자리에 굳어버렸다. 기성은은 소민아 앞에 걸어와 손가락으로 땅에 떨어진 음식 주머니를 줍고는 그녀에게 건네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입 간수 잘해요. 얼마를 들었든, 얼마를 보았든 한 글자라도 발설하면 그 후과 스스로 책임져야 할 거예요.”소민아는 머리를 푹 숙이고 다급히 대답했다.“네... 알겠어요.”기성은이 말했다.“너희 둘은 이곳에서 잘 지키고 있어.”“네, 형님.”“왜 계속 서 있어요? 안 가요?”소민아에게 하는 말이었다.소민아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뛰어갔다. 얼마 후 병실에서 한 명이 더 나왔다.서철용이 담배 한 대를 손가락에 낀 채 말했다.“손이 너무 거치네요. 목숨이 간당간당해요. 죽이더라도 내 병원에서 죽이면 안 되죠.”소민아는 병실에 돌아와서도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침대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신이랑은 언제 깨어났는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움직이지 말아요. 바늘이 빠지면 안 돼요.”새벽 12시, 복도의

  • 환생후 사랑따윈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1165화

    간호사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남자친구분 잘 지켜보셨어야죠. 링거액이 다 떨어졌잖아요. 지금 병원이 너무 바빠서 저희 간호사들도 병실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수는 없어요.”소민아가 미안함에 말했다.“서류를 가지러 회사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저 이분 여자친구 아니고 비서예요.”간호사가 말했다.“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계속 가족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세요. 얼른 가보세요. 환자분을 혼자 오래 두면 안 돼요.”소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소민아가 병실에 들어가 보니 신이랑은 눈을 뜨고 누워있었다. 그녀가 다급히 들고 있던 물건을 내려놓고 다가갔다.“이랑 씨, 깼어요?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신이랑은 흐릿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자 소민아는 얼른 그의 손을 잡아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푹 쉬어요. 제가 옆에 있으니까 불편한 게 있으면 부르고요.”“가, 가지 말아요.”그는 꽉 잡은 손을 좀처럼 놓지 않았다.“이랑 씨, 저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요. 내일 보내줘야 해요.”신이랑이 머물고 있는 곳은 VIP 병실이라 주방에 모든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전화로 죽 두 그릇을 주문한 뒤...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저녁 10시, 신이랑의 체온은 많이 안정되었다. 본래 몸이 좋지 않긴 했지만,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하다니.소민아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배고픔이 느껴지고 나서야 자신이 아직 죽을 받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지금 시간엔 병원에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VIP 병동은 무서울 정도로 으스스하고 고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니 프런트에 놓은 음식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음식을 들고 다시 위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던 중, 왼쪽 코너 쪽 병실에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기성은이 왜 여기에?소민아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병원에 왔으면서 왜 그녀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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