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은 씨,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당신의 이런 다른 사람을 벌레 보듯 하는 오만한 태도예요. 왜 그렇게 사람을 깔봐요!”기성은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있었다. 소민아는 그가 준 야식을 보니 끓어오르던 화가 적잖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날이 거의 밝아오는데 무슨 야식이란 말인가. 곧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다.소민아는 화가 나 버리려고 했지만, 구영관의 음식인 걸 보고는 다시 손을 거두어들였다.“됐어. 공짠데 그냥 먹어보지 뭐.”“쿵...”집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소민아는 신이랑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로 알고 곧바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이랑이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침대 옆에 두었던 유리컵이 떨어져 산산조각나 있었다.“이랑 씨, 어떻게 된 거예요!”소민아는 얼른 넘어져 있는 신이랑을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신이랑은 힘없이 쿡쿡 기침했다.“난 괜찮아요. 바깥에서 말 소리가 들리던데 누가 왔어요?”소민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도둑이에요. 놀라서 도망치더라고요.”“민아 씨는 괜찮은 거죠? 신고할까요?”“괜찮아요. 얼른 쉬어요. 물이 다 끓었네요. 컵에 따라줄게요.”“네. 고마워요.”“고맙긴요.”소민아는 그가 약을 먹는 것을 지켜본 뒤 이불을 덮어주고는 말했다.“푹 쉬어요. 난 더 귀찮게 하지 않고 이만 돌아갈게요.”신이랑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그녀의 옷깃에 스쳐 지나갔고, 그의 얼굴엔 실망의 감정이 피어올랐다.소민아는 집에 가자마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기성은이 보낸 문자와 부재중 통화가 한 통 와 있었다.기성은은 늘 똑같다. 용건이 뭐든 짧게 몇 글자만 보내면 끝이다.조금만 더 길게 쓰면 죽기라도 하는지.“전화 몇 번 더 걸면 어디가 덧나요? 이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난 왜 찾은 거예요!”그녀는 분노에 차올라 핸드폰 화면에 대고 욕설을 퍼부었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음식은 확실히 그녀 입맛에 맞는 것들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기성은이 왜 야식을 가져다주었는지
마침 잘 되었다. 그녀도 어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순조로웠던 식사 자리였는데 하마터면!어쩐지 마음껏 쓰라며 카드까지 주더라니, 역시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역겹다.소민아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송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소민아가 사무실에 들어갔다.“부대표님, 부르셨어요. 오늘 아침 핸드폰이 배터리가 없어 꺼지는 바람에 출근이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엔 절대 지각하지 않겠습니다.”송시아가 들고 있던 서류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네? 걱정하지 말아요. 기성은이 민아 씨 반차 내줬어요. 이 인사발령 통지서를 주기 전에 개인적인 일에 관해 묻고 싶어요. 기성은과 지금 어떤 관계예요? 숨길 생각하지 말아요.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으니까.”소민아는 송시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부대표님, 저와 기 비서님은 아무런 관계도 아닙니다. 또한... 심지어 친구조차도 되지 못합니다.”송시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친구도 안 된다고요? 내가 알기로 소민아 씨는 기성은이 전연우 외에 유일하게 자원해 도운 사람이에요. 기성은은 자기 부하직원들에 대한 요구가 엄청 높은 사람이에요. 업무에 관해선 더더욱 엄격하죠. 누가 한번 사소한 거라도 빼먹으면 바로 해고시켰어요. 하지만 민아 씨는... 저번 회의 자료를 잘못 가져와도 하루 치 월급을 깎았을 뿐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확실히... 민아 씨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소민아는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절대요. 부대표님, 그 사람은 그야말로 정신병자예요. 사람 마음 갖고 장난이나 치고!”소민아는 홧김에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해버렸다.그녀는 이렇듯 가끔씩 자신의 입 간수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송시아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네?”“저번엔 저랑 사귀자고 했다가 바로 주가은인지 뭔지 하는 여자한테 가더라고요. 이런 바람둥이 남자 전 싫어요. 그래서 하루 사귀고 헤어졌죠 뭐.”송시아는
송시아가 말했다.“여자도 돈이 많이 있으면 남자랑 똑같아요. 모든 걸 다 가질 수 있죠. 이 인사발령... 민아 씨 생각을 듣고 싶어요. 여기 남아서 나랑 계속 있고 싶어요, 아니면 일개 산하 그룹에서 비서로 일하고 싶어요?”소민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전 부대표님의 옆에 남아 성심성의껏 제 모든 걸 바쳐 일하고 싶습니다. 연봉을 2억이나 받으니 머지않아 저도 부자가 될 테니까요.”“그 각오 좋아요. 연봉 2억은 그리 많은 게 아니에요. 날 위해 일만 잘해주면 더 올려줄 수도 있어요.”송시아는 서랍에서 차 키를 하나 꺼냈다. 그 위 람보르기니 표식을 본 순간 소민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어제 새로 뽑은 차예요. 하지만 컬러가 나한텐 어울리지 않아요. 앞으로는 민아 씨가 몰아요.”소민아는 바로 그 묵직한 차 키를 받아들었다...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멍한 얼굴로 송시아의 사무실에서 걸어 나왔다.그녀는 복도에 서서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술이 아직 덜 깬 건가? 아니면 꿈이라도 꾸는 건가? 스포츠카를 이토록 쉽게 준다고? 세상에... 송시아에게 돈이 이렇게 많았다니.”볼이 얼얼해 나서야 소민아는 결코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이 모든 건 허상이 아니라 진실이다.소민아는 사무실에 돌아오기 전 차 키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필경 이 일이 알려지면 또 사람들의 의심과 질투를 받게 될 테니 말이다.요즘엔 조용히 다니는 게 좋겠다.“저기요, 뭐 하는 거예요? 왜 마음대로 내 물건 만져요?”소피아가 말했다.“소민아 씨는 이제 우리 비서실 직원이 아니에요. 몰라요? 기 비서님이 부대표님한테도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내가 물건 정리해주고 있는 거예요. 한시라도 빨리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해서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뒷배를 믿고 뻔뻔하게 다른 사람 정직원 자리 빼앗아가는 민아 씨 같은 사람은 이곳에 있을 자격 없거든요.”소민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 두드렸다. 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소피아는 순간
기성은의 사무실에서 나온 소피아가 서류 하나를 소민아의 얼굴에 휙 던졌다.“심심해 죽겠죠? 마침 여기 소민아 씨가 흥미를 느낄만한 일이 있어요.”소민아가 말했다.“미안해요! 저 지금 좀 바빠서 다른 일 맡을 시간 없어요. 다른 사람 찾아봐요.”“비서실에서 제일 한가한 사람이 민아 씨잖아요. 그리고 민아 씨 사모님과 친하다면서요. 기 비서님이 나한테 얼마 후 있을 결혼식 예식장 준비를 하라고 하셨는데, 싫으면 그만둬요.”소월 언니와 대표님의 예식장 준비라...소민아는 바로 서류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어려운 일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맡아야죠.”소피아는 입꼬리를 슥 올리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소민아는 자신이 소월 언니 결혼식 준비를 맡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결혼식 장소는 천추 산장이었다.세상에, 여길 다 빌리면 대체 얼마야!소민아는 빙그레 웃으며 서류를 안고 조용한 베란다로 뛰어갔다.그러고는 익숙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남원 별장.장소월은 서철용이 놓아준 링거를 맞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려서 살펴보니 소민아였다.“소월 언니, 좋은 소식 있어요.”장소월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정말 좋은 소식인가 보네요.”소민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니까요! 언니, 저 언니와 대표님의 결혼식 예식장 준비를 맡았어요. 제가 총 책임자예요. 예상 못 하셨죠! 시간이 나면 와서 봐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있으면 바로 수정해 드릴 수 있어요. 반드시 언니가 좋아할 수 있게 준비할게요.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 언니 마음에만 들면... 대표님께서 분명 저한테 큰 상을 내리실 거예요.”소민아가 잔뜩 흥분한 채 말하고 있던 그때, 남자가 어느새 등 뒤에 나타나 장소월을 끌어안았다.전연우 역시 소민아의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장소월의 얼굴에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서렸다. 아무튼 별로 기뻐 보이지는 않은 표정이었다.그녀가 덤덤히 말했다.
결혼식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면 전연우는 절대 소민아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소민아를 상대하는 건 전연우에게 있어 개미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결혼식이 완벽하게 끝나면 절대 해치지 않을 거야.”부드러운 말투에 협박과 경고가 담겨 있었다.전연우가 화제를 돌렸다.“내려가서 내가 새로 만든 국수 먹어봐.”“싫어. 입맛 없어.”그날이 오기 전에는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요즘 전연우는 또 그녀에게 음흉한 행동을 시작했다. 또 그녀에게 매번 다른 맛의 반찬과 국수를 만들어줬다. 맛이 나쁘지는 않아 먹을 수는 있었다.“네가 거부할 수 있을 것 같아?”전연우는 바로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주방에서 일하던 도우미는 그들이 내려오자 음식을 장소월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친밀한 자세로 그의 무릎에 앉아 있던 장소월이 몸부림쳤다.“나 내려줘.”전연우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꽉 감쌌다.“이대로 내가 너한테 먹여줄 거야.”장소월은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전연우에게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도리어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그였다.이어 도우미가 삶은 새우를 가져왔다.전연우가 말했다.“먼저 국수 먹고 새우 먹어봐. 내가 껍질 발라줄게.”장소월은 해물 국수를 한 입 맛보았다. 밖에서 파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꽤 맛있었다.전연우는 그녀에게 반 그릇만 먹였다. 그가 껍질을 바른 새우도 먹여야 했기 때문이었다.장소월은 새우 3개를 먹으니 배가 불러왔다.“이제 더는 못 먹겠어. 여기서 더 먹으면 얼마나 살찔지 몰라.”전연우의 손에 기름이 묻어 있어 장소월은 이미 그의 무릎에서 내려왔다.“앞으로는 기름 많이 넣지 마. 위장이 불편해.”“더 먹으면 살쪄.”전연우가 느릿하게 휴지로 손가락을 닦았다.“살쪄도 괜찮아.”“짜증 나 진짜.”장소월은 바로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때, 도우미가 전연우의 곁으로 다가와 전화기를 건넸다.“대표님, 인씨 성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덧 일곱 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그때, 복도에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나가시려고요?”그 말에 장소월이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문밖으로문 밖으로 나가보니 전연우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서 소매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정말 외출할 모양이다.지금은 전연우가 별로 밖에 나가지 않는 시간이다. 장소월은 분명 무슨 큰일이 생겼을 거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장소월이 물었다.“시간이 늦었는데 이렇게 급하게 어딜 나가는 거야?”전연우가 몸을 돌려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이라 못 피해. 착하지. 집에서 나 기다리고 있어. 최대한 일찍 올게.”장소월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몇 분 뒤, 마당에서 출발한 차가 남원 별장을 나서는 순간, 장소월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떠올랐다.어제 점심, 2층으로 올라올 때 전연우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는 도우미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분명 인정아가 걸어온 것이라고 했었다.설마... 지금 인정아를 만나러 나가는 건가?장소월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엔 기필코 전연우가 뭘 하는지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도우미가 당황하며 말했다.“사모님,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 대표님께서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장소월이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려던 그때.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번뜩이더니 보라색 번갯불이 두꺼운 구름층을 찢고 지나갔다.문을 나서던 검은색 차량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장소월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큰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연이어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내 집 안에서 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장소월은 문 앞에 서서 망설이고 있었다...굵은 빗줄기가 그녀의 정교한 얼굴을 내리쳤다. 도우미가 재빨리 우산을 들고 달려와 장소월의 머리에 씌워주었다.“사모님,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이렇게 소나기가 내리면 도련님께선 너무 우셔서 달래기도 힘들잖아요. 그리고 이 추운 날에 나가시면 감기
서철용이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소월 씨, 전연우와 싸우기라도 했어요?”그가 가볍게 농담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장소월은 그의 장난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오늘 점심 전연우가 인정아의 전화를 받았어요. 지금은 밖에 나갔고요. 평소대로라면 전연우는 절대 비 오는 날에 나가지 않거든요. 또 나쁜 짓을 벌일 것 같은데 서 선생님이 미행해서 도대체 뭘 하는지 보고 저한테 알려줬으면 해서요.”서철용은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을 쳐다보고는 말했다.“전연우가 어디에 갔는지 알아요? 소월 씨... 전연우가 뭘 하든, 난 설사 그곳에 있다고 해도 막을 수 없어요.”장소월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난 막을 수 있어요!”장소월은 자신이 현재 전연우의 약점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그가 뭘 하려는 것이든, 심지어 살인이라고 해도... 그녀는 그를 제지할 수 있다.전연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일을 저지르지만, 항상 뒤처리가 깔끔해 조금의 단서도 남기지 않는다.그는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온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겨눠오는 복수의 칼날을 견뎌야 할 것이다.장소월은 그가 계속 잘못된 길로 가게 놔둘 수 없었다.그녀가 말을 이어갔다.“이런 날씨에 나가는 건 분명 좋은 일 때문이 아니에요. 저번 비슷한 상황에서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 냄새 저한텐 아주 익숙해요. 예전 장해진과 함께 파티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이 뭘 피우는 걸 똑똑히 봤거든요. 그날 전연우의 냄새가 그 사람의 냄새와 똑같았어요.”서철용이 단호히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전연우는 이미 그쪽에서 깨끗하게 손 뗐잖아요. 절대 그런 물건에 접촉했을 리가 없어요. 누가 무언가로 전연우를 협박한 게 아니라면요.”서철용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그래요. 알았어요. 내가 전연우 위치 찾아볼게요. 소식 있으면 소월 씨한테도 바로 연락하고요.”“찾을 필요 없어요. 어디에 있는지는 제가 알아요.”전연우가 그녀의 핸드폰에 GPS 기능을 설치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전연우와 장소월의 결혼 소식...간단히 손을 잡는 모습을 보고서도 인시윤의 눈동자엔 증오와 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수술을 집도하고 있던 외국인 의사가 말했다.“아가씨,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흰 지금 얼굴에 남은 흉터를 치료하고 있는 중이에요. 저한테는 아주 작은 수술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수술 뒤에 치료만 잘하면 본래 미모를 찾을 확률이 5, 60퍼센트는 돼요.”입을 움직일 수 없는 인시윤은 그 말을 듣고선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녀의 얼굴은 지금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사람을 대면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이 자신을 저며오든, 또 어떤 잔혹한 대가를 치르든 그녀는 반드시 본래의 얼굴을 찾고 싶었다.그녀는 전연우와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해보지도 못했다.장소월... 장소월이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그녀는 기필코 자신의 것이었던 전부를 다시 가져오리라 마음먹었다.문밖 도우미가 집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차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가 보고했다.“사모님, 큰일 났어요. 저번에 왔던 그 사람... 사위분 같았어요. 그분이 사람들을 데리고 왔어요!”인정아는 곧바로 도우미에게 따귀를 날렸다.“닥쳐. 그놈은 이제 우리 인씨 집안 사위가 아니라 내 원수야. 여기나 잘 지치고 있어. 아무도 이 문을 열게 하면 안 돼.”그 소리를 들은 인시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마취 때문에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떨려왔다.“안... 안 돼. 이런 꼴을 보게 할 수는 없어.”“아가씨, 움직이지 마세요. 지금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에요. 함부로 움직이면 지금까지 했던 게 모두 무너질 수도 있어요.”인시윤의 거칠고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 사람이 왔어요. 그 사람이 왔다고요. 그 사람에게 이런 모습 보이면 절대 안 돼요.”“저 데리고 나가 주세요. 얼른요!”“절대 안 됩니다. 기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엄마, 소민아가 우리 집 며느리 되는 거 막아주면 안 돼요?”유연홍이 말했다. “안심해, 설령 소민아가 우리 집에 들어온다고 해도,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공들여 쌓은 탑을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그녀는 신이랑이 아무리 청렴하고 깨끗한 사람이라도 여자의 유혹은 뿌리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서울에서 가장 호화로운 펜트하우스.한 채 가격이 몇백억 원에 달한다. 설사 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도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신군회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여자의 다리에 누워있었다. 여자는 보라색 레이스 잠옷 차림에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은 여자의 봉긋 솟아오른 가슴 위로 흩어져 있었다. “오빠, 나 보러 온 지 너무 오래됐어요.”“오늘 만두를 좀 빚어놨는데, 먹을래요?”신군회가 물었다. “요즘 낯선 사람이 찾아온 적 없어?”“오빠 말대로 요즘은 밖에 나가지도 않았어요. 혹시 내가 다른 남자라도 만날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제가 아무리 간이 배 밖으로 나왔더라도 그런 일은 못 해요.”신군회는 여자가 손수 껍질을 벗긴 포도를 먹고 있었다. 여자가 입가로 포도를 가져가자 신군회는 여자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여자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손가락을 빼내며 말했다. “부끄러워요.”“어디 좀 볼까, 조금 커졌나.”신군회는 겉으로는 점잖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은 정반대였다.그 역시 여느 부패한 정치 인사들처럼 뒤에서는 돈세탁을 통해 불법적으로 수많은 돈을 벌어들였다.신군회는 여자와 노는 데도 능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여자와 잠자리를 했어도 임신한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거실에서 거의 30분 동안 뒹굴거린 후, 천미연은 머리카락이 땀에 흥건히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신군회는 곧바로 베개를 그녀의 허리 뒤에 받쳐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여보, 이번에도 임신 못 하면 어떻게 해요? 그 지긋지긋한 한약은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아요.”“마시기 싫어도 마셔야
“오...오빠...”신수지는 다급하게 신이랑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살결이 닿기도 전에 그는 매정히 떠나버렸다.그 모습을 본 신군회는 화가 치밀어 올라 다시 팔을 들어 신수지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지금 날 때렸어요? 감히 날 때려요? 왜 때리는 거예요? 억지로 예의를 갖춰줘서 그렇지, 아빠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우리 엄마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으면, 당신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친아빠도 이렇게 때린 적은 없다고요!”“여기는 엄마 집이지, 당신 집이 아니에요. 당장 나가요!”신군회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매서워졌다. “한 번 더 말해 봐.”“말하면 어쩔 건데요! 당신은 우리 집 돈이 탐나 엄마와 결혼한 거잖아요. 엄마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이 집에 발도 못 들였어요.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해서 당신은 아내와 아들까지 버렸잖아요.”“닥쳐!” 신군회의 가장 아픈 곳을 잔인하게 후벼 파는 말이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팔을 들어 그녀의 뺨을 또다시 내리쳤다. 이번에는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거의 온 힘을 실어 매를 들었다.신수지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입가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딸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시퍼렇게 멍든 자국을 본 순간, 유연홍은 다급히 달려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신군회의 뺨을 후려갈겼다. “당신이 감히 내 딸을 때려요? 신군회 씨,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 딸을 때려요? 이 집에서 당신은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거 몰라요?”신이랑은 현관 밖에 서서 그들의 소동을 들으며 냉담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신수지는 코를 훌쩍이며 얼굴을 감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감히 나한테 손을 대다니요. 당장 외할아버지에게 말할 거예요. 외할아버지가 알면 당신 가만히 안 둘 거예요!”신군회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유연홍, 이혼하고 싶으면 언제든 좋아. 네 딸이 또다시 내 일을 망치면, 그땐 절대 용서하지
소민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그래요. 저녁에는 다른 인터넷 소설 사이트 CEO들과 식사 약속이 있어요. 민아 씨도 함께 가요.”“네.”소민아의 기존 사무실은 편집장 사무실 밖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신이랑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부모님께서 웨딩 촬영할 곳을 몇 군데 골라주셨는데, 시간이 좀 촉박해서요. 민아 씨가 보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말해줘요.]소민아는 메시지를 대충 훑어보고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그녀에게 해준 신이랑과의 과거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녀의 꿈속에 나온 남자아이가 혹시 신이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대화창을 열어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세 번째 곳이요. 지금은 일 때문에 바쁘니까 퇴근하고 얘기해요.][그래요.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갈게요.]신이랑의 공무원 합격은 이미 내정되어 있었다. 필기시험에서 10등 안에만 들면, 면접은 두말할 것 없이 통과할 것이다.그때에야 비로소 정계에 진출하는 진정한 출발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신이랑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 신군회가 정장 차림에 위풍당당하게 걸어왔다. “오늘 별다른 일 없으면, 나랑 같이 사람들 좀 만나러 가자. 나중에 공무원이 되면, 다 너한테 도움이 될 사람들이니까.”신군회는 현재 막강한 실권을 쥐고 있다. 그 자리에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라면, 모두 자기만의 인맥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흥미 없어요.”신군회가 그를 불러세웠다. “나중에 넌 틀림없이 내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거야. 이제 물러설 퇴로는 없어. 신이랑, 아버지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마.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권력을 직접 손에 쥐고 있을 때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거 명심해.”그때 아래층에서 여자의 목소리와 꽃병이 깨지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어제 나 없을 때 오빠랑 소민아 결혼식 상의 한 거예요? 엄마, 나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왜 약속을 안 지켜요. 오빠가 소
결혼식 날짜는 다음 주로 급하게 결정되었다. 소민아는 성대하게 치를 생각도, 외부에 알릴 생각도 없었다. 양가 친척들만 초대해 간단히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모든 상의를 끝낸 뒤 밥을 먹고 돌아갈 때, 엄마 아빠의 눈에는 신이랑에 대한 흐뭇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처음 선을 봤을 때 엄마 아빠가 소개한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었다.고모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와 기성은의 관계를 알지 못했다.명세진은 소민아의 불편함을 눈치채고는 손을 잡고 달랬다.“민아야, 내가 보기에 이랑이도 나쁘지 않아. 나와 네 고모부도 사랑 없이 강제로 정략결혼을 했었어. 처음엔 싫었지만, 고모부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어. 여자에게는 항상 자신을 생각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자가 제일이야.”“이랑이는 인물도 좋고, 집안도 좋고, 너한테도 잘하잖아. 어떤 사람들은 평생 죽을 때까지도 그런 남자 못 만나.”소민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알아요, 고모. 걱정하지 마세요. 이랑 씨랑 잘 지낼게요.”그녀는 단지 그들을 안심시키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차 안, 소민아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그녀에게 기대며 물었다.“엄마, 궁금한 게 있어요. 이랑 씨랑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왜 저한테 그렇게 잘해줬을까요? 이해가 안 돼요. 왜 저에게 무조건적으로 잘해주는 거죠?”소희연이 말했다. “그 일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우리가 너를 구해왔을 때부터, 너와 이랑이는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 하지만 그때 너는 너무 많이 다쳐서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어. 그때... 이랑이에 관한 기억도 함께 잊어버린 거야.”그랬던 거야?소민아가 물었다. “엄마, 그럼 저랑 이랑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소민아는 요즘 들어 자주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그녀의 꿈속에서 상처투성이의 거지 소녀가 어두컴컴한 구
소민아가 말했다. “현아 언니는 그냥 치료받으러 간 것뿐이에요. 고모,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지금으로서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현재 소씨 집안 또한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았다.신씨 본가에 도착해보니 소민아의 부모님은 이미 그곳에 와 있었다.신이랑은 소민아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말했다. “오느라 수고했어요.”소민아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답했다. “괜찮아요. 들어가죠.”그녀는 신이랑이 잡으려고 하는 손을 못 본 척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그녀가 지었던 미소는 어쩔 수 없이 짜낸 억지 미소나 다름없었다.“엄마, 언제 돌아오셨어요? 왜 저한텐 얘기 안 하셨어요?”소희연이 말했다. “네 아빠랑 내가 이랑이한테 전화했어. 너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거든. 네 아빠는 이랑이를 정말 많이 좋아해. 예전에 선봤을 때부터 엄청 기뻤는데 정말 너희 둘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어.”“너희 아빠랑 난 너무 기쁜 마음에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정말 잘했어, 우리 딸.”소민아가 소파에 앉자 도우미가 차를 가져왔다. “사모님, 차 드세요...”갑자기 바뀐 호칭에 소민아는 너무 어색해 대꾸도 하지 않았다.신이랑이 그녀 옆에 앉아 말했다. “내가 작성한 하객 명단이에요. 빠진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 봐요.”빠진 사람이라...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그녀가 가장 아끼는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못한다. 소월 언니, 그리고 현아 언니...이런 결혼식이라면, 차라리 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당신이 결정하면 돼요.”“알겠어요.”“...이번 민아의 결혼식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할게요.” 송시아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한도가 없는 카드예요. 제가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민아만을 위해 모아온 결혼 적금이에요.”소민아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민아는 계속해서 기성은의 목숨을 빌미로 자신에게 신이랑과의 결혼을 강요하는 송시아에게 치를 떨었다. 지난번 면북에 갔을 때, 소민아는 송시아가 그곳에서 누리는 권세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곳 사람들은 그녀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심지어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무서운 상상이지만, 어쩌면 그 폭발 사고가 그녀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소민아는 답답함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울렁거림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집에 도착한 뒤, 소민아는 차에서 내렸고 송시아도 뒤따라 함께 거실로 들어왔다.명세진이 소민아를 맞이했다.“민아야, 이 녀석아, 어디 갔었어? 이랑이는...”소정국은 심장을 움켜쥐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문밖에 나타난 송시아를 보자 모든 사람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소정국이 소민아에게 다가가 말했다. “민아야, 이리 와.”소민아가 그의 말에 따라 걸어가자 명세진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당신이 여긴 왜 온 거예요. 여기엔 당신 반기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당장 나가요.”송시아는 선글라스를 벗고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민아는 제 여동생이에요. 하나밖에 없는 언니로서, 여동생 결혼 준비는 당연히 함께해야죠. 물론, 그동안 여동생을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결혼 비용은 전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결혼 이후 비용까지 모두 책임질게요.”명세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소정국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단란한 한 가족이었다. 송시아는 누가 봐도 낯설기 짝이 없는 외부인이었다.모두가 침묵하며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소민아가 돌연 입을 열었다. 소민아를 꽉 잡고 있던 명세진의 손은 땀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예전엔 당신 협박에 못 이겨서 억지로 신이랑과 결혼하려고 했었어요. 하지만 이제 마음을 굳혔어요. 신이랑과 이혼할 거예요. 더 이상 당신 뜻대로 하고 싶지 않아요.”소민아와 신이랑이 사
눈물이 예고도 없이 뚝뚝 흘러내렸다. 소민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거 믿지 않아요. 3년 뒤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기성은 씨 찾으러 갈 거예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요!”“기성은 씨, 당신이 죽었다는 말은 절대 믿을 수 없어요.”은밀하게 감춰진 공간에서 두 남자가 감시 카메라에 잡힌 화면을 보고 있었다.한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진짜 이 여자, 기성은 형 너무 좋아하나 봐. 한 달 동안 열 번 넘게 찾아왔어. 곧 결혼식까지 한다는데,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나?”다른 남자가 컵라면을 들고 다가와 말했다. “그러게. 성은이 형도 참, 여자를 너무 몰라...”소민아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울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후였다. 휴대폰에 도착해 있는 수많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를 확인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빠 엄마가 왔어. 어디 있어? 민아야, 전화해. 너무 걱정돼.]아빠 엄마가 돌아오셨다고?소민아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아파트를 나섰다.그녀가 막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빨간색 람보르기니 한 대가 그녀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고, 송시아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타, 동생.”소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당신 동생이 아니에요.”송시아가 말했다. “이미 소씨 집안에 이야기해 뒀으니까 그쪽 사람들도 내가 간다는 거 알고 있어. 지금 나 말고는 아무도 네가 여기에 있다는 걸 몰라. 지금 차에 타면 시간 낭비 없이 일찍 도착할 거야.”소민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나 감시하는 거예요?”송시아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일부러 소민아를 유혹하듯 말했다. “차에 타면 기성은에 대해 알려줄게.”그 단 한마디에 소민아는 바로 조수석에 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시선을 떨어뜨리니 약
“민아야, 난 기성은을 제거할 생각은 접었었어. 너 때문에 기성은을 살려두기로 했거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영상도 있으니까 봐. 물론 기성은이 죽지 않았을 1퍼 센트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소민아는 마치 얼음에 갇힌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것 같이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분명히 약속했잖아, 꼭 돌아오겠다고. 그런데 왜 송시아의 입에서 폭발로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전화기 너머 송시아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바닥에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신이랑이 소민아를 찾아왔을 때, 그의 눈에 손에 휴대폰을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가 들어왔다.신이랑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 살펴보니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은 송시아였다.신이랑의 부드럽고 온화하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신이랑은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어 곧바로 병원으로 데려갔다.검사를 마친 뒤 간호사가 말했다. “축하드려요. 아내분께서 임신 6주 차예요. 아마 최근에 좀 피곤해서 쓰러지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저혈당 증세도 약간 있기는 하지만 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집에 가서 몸에 좋은 음식을 챙겨주시면 돼요.”신이랑은 아직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는 소민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는 괜찮나요?”간호사가 말했다. “정확한 상태는 초음파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냥 푹 쉬면 돼요. 아이에겐 별문제 없을 거예요.”신이랑의 눈동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알겠습니다.”소민아가 눈을 떴을 땐 어느새 아침 7시 30분이었다. 생체 시계가 작동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보고는 아무 알 없이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개는 눈물로 흥건히 젖어 들었다. 신이랑은 잡고 있던 소민아의
위층으로 돌아가자, 도우미가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아가씨, 방은 이미 정리해 두었습니다.”“네.”도우미는 손님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히 두 사람이 함께 잘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민아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방을 보고 입을 열었다.“이랑 씨...” .소민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이랑이 말을 가로챘다. “괜찮아요. 난 바닥에서 자면 돼요.”소민아가 말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오늘 밤엔 이랑 씨가 이 방에서 자요. 난 현아 언니 방에서 자면 돼요.”소민아는 침대 옆으로 걸어가 자신이 항상 베고 자던 베개를 들었다. 그녀가 신이랑의 옆을 지나칠 때, 그의 입에서 살짝 섭섭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민아 씨... 이제 나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은 거예요?”“아니에요, 이랑 씨. 그냥 이랑 씨가 바닥에서 자면 몸에 안 좋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의사 선생님이 냉기를 쐬면 두통이 재발하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신이랑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알잖아요. 난 그런 거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요. 매일 밤 차가운 바닥에서 자도, 민아 씨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난 행복해요.”소민아는 베개를 안은 손에 꽉 힘을 주었다. 마음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결국 거절했다. “이랑 씨, 저 아직은 적응이 안 돼서 그래요. 시간을 좀 줄 수 있어요?”신이랑은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한 마디 내뱉었다. “그래요.”“고마...워요...”소민아는 어쩌다 보니 신이랑과의 결혼을 결정했고, 어느새 혼인신고까지 마쳤다.기성은과의 약속을 먼저 어기는 사람이 그녀 자신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3년...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소민아는 옆방 소현아의 방으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침대 끝에 베개를 내려놓고, 발코니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 방황했다.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너무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