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대표님 성함이 바로 최서준입니다.”임상아가 의아하다는 듯한 눈으로 김지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저희 최 대표님 알고 지내신 지 이렇게나 오래되셨는데, 여태껏 이퓨레 코스메틱 대표이사라는 거 모르고 계셨어요?”임상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지유의 머릿속에서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사고회로가 정지돼 바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자신이 그렇게 실물로 만나고 싶어 했던 최 대표라는 인간이 바로 같이 살고 있던 최서준이었다니.여태껏 자신에게서 온갖 무시를 당해왔던 그 바보 같은 남자가 바로 4천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위기에 처한 김지유의 회사를 다시 살려준 사람이었다.순간적으로 무언가가 떠오른 김지유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려버렸다.일전 최서준이 김지유에게 자신이 바로 이퓨레 코스메틱 대표라는 사실을 밝힌 적이 있었다.다만 김지유가 최서준의 말을 믿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허풍 좀 그만 떨라며 한바탕 최서준을 비웃었을 뿐이었다.순간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김지유는 밀려오는 수치심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 숨고 싶었다.실성한 듯한 김지유의 모습에 임상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김 대표님, 이제 계약서 작성해도 되는 거죠?”다시 정신을 차린 김지유는 테이블 위로 놓인 이퓨레 코스메틱 주식 양도 계약서를 뚫어지라 바라보다가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말했다.“부 대표님, 최서준한테 자세히 물어봐 주세요. 왜 이렇게나 많은 주식을 저한테 양도하려고 하는지.”김지유는 이미 최서준과 자신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혼 서류만 작성해서 법원까지 통과하는 순간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그런 관계인 줄로 알고 있었다.‘근데 최서준이 왜 이러지?’“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최 대표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찾아온 것뿐입니다.”임상아의 대답에 가볍게 비웃음을 날린 김지유가 아무 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만 돌아가세요, 부대표님. 저는 여기 사인 안 합니다.”“네?”예상치
집으로 돌아온 조씨 가문은 모든 수하들을 끌어모아 집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그들도 최서준이 다시 찾아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할까 두려웠다.조씨 일가의 회의실에는 고위급 관직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었다.한 여자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오빠, 그 최 대가님이라는 사람, 우리한테 3일 내로 그 남원 추모공원 찾아가서 그때 죽은 사람들한테 사죄하라 그랬다며. 우리…. 우리 그럼 이제 어떡해?”말을 꺼낸 그 여자는 조씨 일가의 다섯째였다. 즉 조훈의 다섯 번째 되는 여동생인 조문헤라는 사람이었다.조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조훈을 바라보았다.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있던 조훈이 분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지금 당장 노조한테 연락해. 빨리 귀국해서 우리 조씨 가문 좀 도와달라고.”“노조만 돌아오면 그 애송이 새끼 죽이는 건 시간 문제야. 어디 그뿐인 줄 알아? 그놈의 주씨 가문이고 뭐고 그것들 다 뒤지는 거야!”말을 하는 조훈의 얼굴은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 차 그 무엇도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하지만 곧이어 불안에 가득 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지만 보스. 만약 노조가 3일 안에 돌아오지 못한다면요? 그럼…. 그럼 우린 어떡해요?”그 말에 모두가 동의하는 듯 크게 동요했다.그렇지!최서준은 그들에게 3일이라는 시간밖에 주지 않았다. 만약 삼일 안에 추모공원으로 가지 않으면 자신들을 찾아와 전부 말살을 시키는 건 시간문제였다.만약 노조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모두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조훈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조훈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악에 받쳐 말했다.“그러니까 보험을 들어놔야지.”“명휘 엄마한테 연락해. 이혼하고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된 여자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야.”“그러니까 그 여자만 우리 조씨 가문을 도와준다면 노조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그 애송이 같은 자식은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어!”듣고 있던 조씨 가문의 다섯째 조
”그쪽 아가씨가 누군데요?”미간을 좁힌 최서준이 물었다.“가보시면 아실 겁니다.”검은 정장의 여자는 시원치 않은 대답을 내놓았다.주위를 가볍게 쓱 둘러본 최서준이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안 간다고 하면요?”“스르륵….”주위에 순간적으로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르르 등장했다. 모두가 가면을 쓴 채 최서준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왜? 납치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나 보지?”최서준이 뒷짐을 쥔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물었다.눈썹을 날카롭게 치켜뜬 여자가 큰 소리로 호통쳤다.“너 이놈들! 이게 지금 감히 최서준 씨한테 무슨 무례야!”“얼른 물러나지 못해!”그녀의 호통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순간적으로 주춤하던 그 가면을 쓴 사람들이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보통 인간이 아니다.최서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이는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여자의 몸으로 내경에 들어서다니, 보통 사람은 아닌 게 분명했다.순간적으로 최서준은 눈앞의 여자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앞장서요.”여자는 최서준을 데리고 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최서준이 발을 들이는 순간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배릿까지 있네….”대충 주위를 쓱 훑어본 최서준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호화로운 저택의 정원은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밝은 조명을 켜놓았다. 자연스러운 꽃향기가 아니라 인조적인 향이 코를 찌르고 있었다.저 멀리 보이는 온천 속에는 물에 젖어 빛나는 피부를 반짝이고 있는 나체의 여자가 옅은 안개 속에서 아른거렸다.“아가씨, 최서준 씨께서 오셨습니다.”여자가 먼저 앞장서 온천 속에 있는 그 여인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넌 이만 가봐.”귓가를 간지럽히는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정장을 입은 여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갔다.“가봐, 주위에 배치해둔 킬러들도 다 철수시키고. 나랑 최서준 씨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거든.”“네, 알겠습니다!”잠시
최서준은 온천 쪽으로 걸어가 옆에 놓여있던 분홍색의 샤워 타올을 건네주었다.수건을 건네받는 최아현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교태 섞인 눈빛이 반짝였다.곧이어 그녀는 비음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한 모션을 취했다. 몸을 뒤로 젖히며 최서준의 손에 들려있던 샤워 타올을 힘껏 잡아당겨 최서준을 온천을 끌어들이려 했다.하지만 그런 최아현의 행동에 최서준은 곧바로 망설임 없이 손에서 샤워 타올을 놓아버렸다.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넘어졌다.다시 물 위로 떠 오른 최아현이 불쌍한 눈빛으로 최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최서준 씨 진짜 매정하다, 어떻게 사람이 물에 빠지는데 구해줄 생각을 안 해요? 제가 수영 못 했어 봐요, 지금쯤 이미 물에 빠져 죽었을걸요?”“죽으면 대신 경찰에 신고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최서준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최서준의 대답에 최아현은 짜증 난다는 듯 최서준을 째려보았다. 그 순간 최아현은 얻을 정보도 없겠다 본격적으로 최서준을 놀려주고 싶어졌다.최아현은 온천의 반대편으로 가 샤워 타올로 몸을 감싼 채 맨발로 온천에서 빠져나왔다.그녀는 아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얼굴로 최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최서준 씨,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최아현이라고 해요. 방금 무례했다면 사과하죠.”“대답 안 해줄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조씨 가문이랑은 어떻게 악연이 생긴 건지 물어보고 싶었어요.”“그쪽은 조씨 가문이랑 무슨 사이인데요?”최서준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최아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곧이어 입술을 꽉 깨문 최아현이 대답했다.“저도 굳이 숨기진 않을게요. 저는 조씨 가문이랑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에요. 제 가족들을 다 죽였거든요.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는 중이에요.””거짓말도 정도껏 하세요. 그게 사실이라면 방금 그 화경 대가 레벨의 여자 하나로 진작에 조씨 가문을 멸하고도 남았겠죠.”최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최아현의 말을 끊었다.“최아현 씨,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신경 안 씁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최서준은 최우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최아현이라는 여자,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봐 줘.”그리고는 방금 자신이 다녀간 그 별장의 주소도 함께 보내주었다.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집어넣은 최서준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최아현이라고 하는 이 여자, 보통 여자가 아님이 틀림없었다.화경 대가 정도 되는 여자를 수하로 둔 것도 모자라 어둠 속에서 그녀를 지켜주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군인이었다.그뿐만 아니라 최아현의 별장 속에서 통맥경에 유능한 고수가 숨어있다는 것도 발견했다.아무리 잘 숨었다 해도 최서준의 감각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최우빈에게서 빠르게 답변이 돌아왔다.“도련님, 이 최아현이라는 여자 말이에요. 꽤 신비한 여자 같아요. 저희 쪽 수하가 찾은 바로는 구전 골동품 센터 운영자라는 것 빼고는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습니다.”“알았어.”최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딱히 관심 없어. 하지만 내가 조씨 일가한테 복수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절대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한밤중, 몇 대의 방탄 차량이 조용히 조씨 가문의 뒷마당으로 들어왔다.조훈은 조씨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차 문이 열리자 해외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경계하며 차에서 내렸다, 모두가 실탄을 소지하고 있었다.이윽고 남녀 한 쌍이 천천히 그 차에서 내려 모습을 드러냈다.밀리터리 코트를 입고 입에는 큰 시가를 물고 있는 남자의 눈빛은 독사처럼 날카롭고 표독스러웠다.길고 하얀 코트를 걸친 채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여자는 기품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 둘은 조명휘의 외삼촌과 엄마인 도선호와 도선화였다.“선화, 선호야. 와줬구나.”조훈은 잔뜩 신난 얼굴로 둘을 맞이했다.그 순간, 수십개의 총구가 조훈을 겨누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십개의 총을 장전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여왔다.깜짝 놀란 조훈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려 그 자리에
”선화야, 그 새끼는 우리 조씨 가문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가 진작에….”조훈은 얼얼한 뺨을 감싸 쥔 채 무어라 제대로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어찌 됐든 눈앞의 여자도 조훈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니.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의 대표이사로서 골든 특수부대를 손에 쥐고 있는 마약의 여왕으로 그녀의 사업은 전 세계 곳곳에 뻗어있었다. 그런 그녀를 다른 사람들은 즐랙 위도라는 말로 암암리에 지칭하고 있었다.도선호는 그녀의 친동생으로 골든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인 부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 수하에만 수십만의 군대를 두고 있는 그였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혀왔을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조씨 가문의 주인인 조훈이 두 사람을 함부로 거역할 수 없는 이유였다.몇 년 전, 정부에 의해 지명 수배를 당하기 시작한 도선화 때문에 자신의 가문에게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한 조훈이 먼저 일방적으로 이혼을 해버렸다. 그 때문에 둘은 1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연락 한 번 주고받지 않았다.“닥쳐!”도선화는 차갑게 조훈의 변명을 차단했다.“조씨 가문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명휘 죽인 그 새끼 하나 처지 못 한다니, 그 말은 지금 나더러 믿으라고?”도선호가 비릿하게 웃으며 옆에서 거들었다.“나도 다 찾아보고 왔어. 그 새끼 고작 스무 살 언저리더만. 그런 새끼가 어떻게 무술 종사야? 니들이 너무 X밥이라 그냥 걔를 신격화시켜놓은 거겠지.”“그래, 백번 양보해서 걔가 진짜 무술 종사라고 쳐. 그래서 뭐? 무술 종사면 총 맞아도 안 뒤진대?”“난 죽어도 안 믿어. 수백 개의 총구가 그 새낄 겨눠도 살아남을까?”“됐어!”도선화가 입을 열었다.“선호야, 네 수하들 다 남양시로 불러내서 철저하게 준비시켜.””알았어 누나. 그럴 줄 알고 이미 오기 전에 이미 800명 정도 배치 해 놨어. 다 무기로 무장하고 있을 거야. 몇 명 정도 죽이는 것쯤이야, 뭐. 남양 시를 풍비박산 내고도 남을걸.””비밀 유
방수민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를 꺼내며 그에게 차분하게 말했다.“서준 씨, 계약서 확인하시고 이의 없으시면 서명 후 지장을 찍으시면 됩니다. 문제없으면 결혼증명서 저에게 주세요.”“더 볼 필요 없습니다.”최서준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이 모든 일을 끝낸 후 그는 바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를 떠났다.방수민은 안타까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 창가에 김지유가 앉아있다.“남편분이 확인도 하지 않고 서명하셨어요.”“저도 봤어요.”김지유가 슬픈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대답했다.아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였기에 최서준이 들어올 때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모두 봐버린 그녀였다.김지유의 얼굴이 오늘따라 유난히 창백해 보인다.그녀는 최서준이 이토록 매정하고 단호한 사람일 줄 몰랐다. 이혼계약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서명해 버리다니.어쩌면 김지유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다.예전의 그녀가 최서준에게 모질게 굴었으니 지금 그가 김지유에게 매정히 대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왜인지 모르겠지만 최서준과 이혼한 이후 김지유는 마음이 훨씬 안정되었다.이혼은 그녀가 최서준을 완전히 마음에서 내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지유는 드디어 십수 년 동안 고대하며 기다려온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김지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방수민에게 말했다.“방 변호사님, 저 유언장 만들고 싶은데, 내용은 이미 써두었으니 봐주세요. 이참에 다 해결해 버리게요.”김지유가 가방에서 계약서 한 부를 꺼내 방수민에게 넘겨주었다.방수민이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지유 씨, 아직 이렇게 젊으신데 유언장은 왜 작성 하려고 하는 거예요?”“이유는 묻지 말고 해주세요.”김지유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방수민은 어쩔 수 없이 유언장을 받았다. 첫 페이지를 펼쳐 몇 번 훑어본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지유 씨, 회사 주식을 모두 최서준 씨에게 양도하시려고요? 지유 씨 명의의 부동산과 자동차들
“맞아. 지유야, 우리 집안은 똑똑하고 훌륭한 네가 이끌어야 더 번성할것 아니니.”가문의 셋째 김인걸이 맞장구를 쳤다.“지유야, 인제 그만 돌아와. 가문이 너 없이 어떻게 잘 되겠니. 할아버지 염원도 이루어 드려야지.”가문의 윗사람들이 다정한 얼굴로 그녀를 타일렀다. 거절하면 무릎까지 꿇을 기세다.“큰아버지, 아주버님들...”김지유는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그동안 자신을 원수 보듯 대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된 듯 구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가주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탁하러 왔단다.“지유야. 우리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허락해 줄 거니?”김인웅이 급기야 무릎을 꿇으려 했다.최서준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김지유가 가주가 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타의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수도 있었다.김지유가 얼른 김인웅을 제지하고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큰아버지, 가주는 할 수 있는데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건지 알려주세요.”김인웅이 갑자기 우물쭈물하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며 옆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을 보냈다.흑운리에 있을 때, 최서준이 그들에게 절대 김지유가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 그들은 최서준의 명령 때문에 김지유에게 가주 자리를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김인호가 형님의 의중을 깨닫고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지유야, 우리가 꿈에서 네 할아버지를 만났어. 할아버지께서 가주 자리는 꼭 네가 맡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 않으면 편히 눈 감을 수 없다고...”“그래, 그래. 지유야, 전에는 우리 집안 어른들이 네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께서 직접 꿈에 나타난 뒤로는 그것이 정말 네 할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김지유는 그들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일단 수긍하기로 했다.“부탁은 들어줄 수 있지만 요구가 있어요. 제가 처리할 일이 있으니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