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일 동안 시윤은 산후조리원에서 재활을 하면서 도준과는 미적지근한 관계를 이어왔다.한 사람은 안방 다른 한 사람은 객실에서 지내며 싸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까이하지도 않아 겉으로는 모든 게 평화로운 듯했다.이 시각 도준은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시윤의 목덜미를 바라볼 뿐, 조금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도윤이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며 목울대를 꿀렁이며 어두운 눈으로 계속 응시할 뿐이었다.그렇게 한참 뒤, 도윤이 배부른 듯 울음을 멈추자 도준은 시윤의 원피스 지퍼를 올려주면서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더니 목덜미에 뜨거운 키스를 남겼다.그 사이 시윤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이제 나가야 해요.”시윤은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속은 생기라고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시윤을 흔들 수 있는 건 아이 외에 아무것도 없다.도준은 시윤을 놓아주는 대신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오늘 도윤이 백일 잔치인데 나 계속 무시할 거야?”시윤은 도윤을 품에 안은 채 텅 빈 눈을 하고 있었다.“내가 언제 무시했다고 그래요?”아무 흔들림도 없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없이 시윤을 제 쪽으로 돌려 단추를 채워주었다.“나 오늘 산후조리원에서 물건 가져올 테니까 앞으로 집에서 지내.”“네.”이윽고 끄덕이는 시윤의 얼굴을 문질렀다.“나가자.”...백일 잔치는 매우 시끌벅적했다. 시윤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도준과 나란히 서서 손님들의 축복을 받았다.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있었지만 시윤의 귀에는 그 축복들마저 ‘웅웅’하는 소음으로 들렸다.사람들이 앞에서 입을 뻐끔거리며 말하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애써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한 것 같았으나 그 내용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고, 마치 유리병 속에 갇혀 제 몸이 해야 할 임무를 하고 있는 걸 지켜보는 듯했다.그 사이, 사람들 속에 있던 나석훈은 계속 시윤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윤은 잠이 든 도윤을 안고 조용히 창 밖을 내다보았고 도준은 그런 시윤을 관찰하며 미간을 찌푸렸다.골든 빌라는 한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이모님이 항상 청소를 한 덕에 들어서자마자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하지만 시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꽃을 못 본 척 도윤을 안고 아기방으로 향하더니 아이가 자는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그렇게 보다 보니 반 시간이 훌쩍 흘렀다.그때 도준이 방으로 들어와 시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피곤할 텐데, 밖에서 휴식해.”“네.”도준의 품에 안겨 거실로 나간 시윤은 소파에 앉아 육아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도준은 그런 시윤의 손을 꼭 잡았다.“여보.”“왜요?”시윤이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봤다.시윤의 검푸른 다크서클을 보자 도준은 한참 동안 말을 머뭇거렸다.“집은 산후조리원이랑 다르니 내가 시영이더러 산후 도우미 알아보라고 할게. 자기가 골라봐.”그 말을 들은 시윤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부감을 드러냈다.“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도 도윤이 돌볼 수 있어요.”석훈의 말이 떠올라 도준은 시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그럼 어머님이라도 불러 여기서 지내게 해.”“필요 없어요, 혼자서 할 수 있다고요.”마치 강조라도 하듯 시윤은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또 반복했다.양현숙도 거절하는 걸 보면 상태가 많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결국 도준은 산후 도우미 대신 이모님을 모셔 청소와 요리를 돕게 하고 도윤의 일은 모두 시윤에게 맡겼다.게다가 편의를 위해 아기 침대도 안방에 들여 도윤을 안에서 자게 했다.그 덕에 아이를 낳은 뒤 처음으로 두 사람은 한 침대에서 밤을 보냈다.어둠 속에서 반듯하게 누운 시윤을 보자 도준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지만 손을 대지 않고 그저 시윤을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쓰다듬었다.시윤도 아무 말 없이 도준의 어깨에 기대, 방 안에는 고요함이 지속됐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도윤의 울음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을 깨뜨렸다. 시윤
그 뒤로 한 달 동안 시윤은 매일 집에 머물러 있었다. 심지어 도준이 가끔 산책하러 나가자고 할 때마다 도윤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했다.게다가 점점 말수가 줄어 도윤 앞에 있을 때만 몇 마디 하는 게 최선이었다.가끔 침대에 달린 장난감을 가리키며 ‘이건 꽃이고 이건 별이야’라며 가르치듯 말하는가 하면 가끔 이야기를 읽어주었다.그렇게 며칠이 흐르자 도준은 결국 이대로 두면 시윤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에 양현숙을 집에 불렀다.양현숙은 시윤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 듯 걱정스레 말했다.“왜 이렇게 야위었어?”임신 중에 쪘던 살이 모두 빠진 데다 눈 밑에 난 검푸른 다크서클을 보자 양현숙은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시윤은 오히려 덤덤하게 웃으며 농담하듯 말했다.“얼마나 좋아요. 다이어트했다 치면 되죠.”“그게 무슨 헛소리야? 도윤이 아직 젖도 안 뗐는데 너 이러다가 죽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가져왔으니까 점심 많이 먹어.”말을 마친 양현숙은 곧바로 주방으로 가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음식을 시윤은 몇 젓가락만 맛보고는 이내 내려놓았다.“배불렀어요.”양현숙은 거의 그대로인 밥을 보며 놀란 듯 물었다.“너 평소에도 이렇게 적게 먹어? 이러면 안 돼. 이러다 너 쓰러져. 자, 너 좋아하는 국부터 마셔.”시윤은 거절하지 않고 그릇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그걸 본 양현숙은 안심한 듯 음식을 하나둘 짚어주었고, 시윤은 여전히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먹었다.심지어 평소 먹던 양을 훨씬 초과했지만 임무 수행이라도 하듯 말이다.도준은 싸늘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인제 그만 먹어.”그동안 시윤의 이상함을 본 적 없는 양현숙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더니 맞장구쳤다.“그래, 이제 많이 먹은 것 같으니 그만 먹어.”시윤은 그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하지만 다음 순간 메스꺼움을 느낀 듯 입을 막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지켜보던 도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빠른 걸음으로
도준이 어떻게 설득하든지 시윤은 마친 듯 버둥대며 계속 낮은 소리로 중얼댔다.“아이, 우리 도윤이 울어요. 데려와야 해요...”그러다 미친 듯 밖으로 달려 나가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할 수 없이 힘으로 그녀를 눌러 소파에 앉히더니 낮게 소리쳤다.“이시윤!”그 순간 시윤은 어리둥절해서 동작을 멈췄다. 도준이 이렇게 저를 부르는 건 거의 들은 적이 없었기에 시윤은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이제야 도준을 발견한 듯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하지만 이내 도준의 팔을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우리 아이 데려와 줄래요? 우리 도윤이 매일 나랑 같이 있었는데, 젖도 먹여야 해서 내 곁을 떠나면 안 되는데.”“어머님이 젖병도 챙겨 가셨어. 게다가 우유도 있으니까 괜찮아. 자기 지금 아파, 약 먹고 치료해야 해서 젖먹이면 안 돼.”“제가 아프다고요?”시윤은 고개를 마구 저었다.“저 불편한 곳 없어요. 저 괜찮아요. 우리 도윤이가 아픈 거예요, 내 곁을 떠나면 안 되는데.”도준은 시윤의 공허한 눈을 빤히 보다가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우뚝 솟았던 도준은 쪼그려 앉아 시윤보다 낮아진 자세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여보, 우리 얘기 좀 해.”시윤은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도준의 말을 반복했다.“얘기 좀 하자고요?”도준은 시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으며 표정 하나하나 눈에 넣었다.“그날 공아름이 자기 납치했을 때 뭐라고 했어?”그 순간 마구 흩어졌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시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그녀가 열심히 쌓은 보호막을 깨뜨렸다.곧이어 시윤은 제 귀를 막으며 마구 고개를 저었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난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그 반응에서 대충 모든 걸 짐작한 도준은 시윤의 손을 잡아 내렸다.“그날 폭발 사고를 의심하는 거야? 그럼 말해줄 수 있어. 궁금한 거 다 말해줄게. 그날...”“말하지 마요!”시윤은 마치 충격이라도 받은 듯 제 귀를 막은 채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듣기 싫어요. 나가요! 나가!”이런 모습은 단순히 현실
석훈은 아기방에서 시윤과 대화했다. 심지어 도윤이 평소 어떤 장난감을 제일 좋아하는지와 같은 도윤에 관한 질문들만 했다.시윤도 엄마로서 아이의 얘기가 나오자 이내 자랑하는 듯 줄줄 일상을 공유했다.국내에서 최고로 꼽히는 심리상담사로써 석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윤과 대화할 매체를 찾았다.그렇게 대화를 나눈 지 반 시간이 지나자 시윤은 아기방 리클라이너에 기대 잠들었다.아기방 감시 카메라로 모든 과정을 지켜본 도준은 시윤이 잠든 걸 확인하자 그제야 다가왔다.“어때요?”“괜찮아요. 잠깐 최면을 건 것뿐이에요. 약 1시간 정도 잘 테니 밖에서 얘기해요.”시윤이 한참 동안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석훈의 확답을 들었음에도 방금 전 돌발 상황을 겪은 도준은 멀리 떠나지 않고, 아기방이 보이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었다.“현재 사모님은 현실도피 증상이 보입니다. 본인이 속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자꾸 도망치려 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많은 요소에 갇혀 모든 걸 억지로 하고 있어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되어야 하니까. 그날 먹지도 못할 음식을 꾸역꾸역 받아먹은 것도 마찬가지예요.”도준의 그윽한 눈에 그늘이 졌다.“그러니까 지금 어머님도 배척한다는 거예요?”석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요. 뜬금없이 자연분만을 제왕절개로 바꾸려고 한 것도 정신적으로 반항하는 거예요. 원래라면 자연분만으로 애를 낳고 이혼을 제안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엄마라는 책임감, 주위 친척 친구들 때문에 말을 못 꺼내고 억지로 역할극을 하고 있는 갈고 보시면 돼요.”기억을 되짚어보니 시윤은 아이를 낳고 깨어났을 때 도준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도윤의 울음에 대화가 중단되고, 수많은 검사가 이어지고, 아이를 돌보고, 또 친구와 친척들을 만나면서 점차 조용해졌다.‘그래서 그런 거였네.’도준은 시윤이 아이를 낳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그녀는 오히려 저를 가둬버렸다.그 순간 시윤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도윤의 엄마,
시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온통 흰색이었다.이불도, 벽도 온통 하얗기만 했다.눈앞의 상황에 놀란 시윤은 이내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여기 어디야? 내 가족은? 내 아이는? 나 나갈래. 내보내 줘!”“...”유리 벽을 사이 두고 겁에 질린 시윤의 표정을 본 도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석훈이 그를 막아섰다.“이건 필요한 치료 과정입니다. 사모님은 사회적 관계와 정신적인 억압 때문에 병세가 생긴 거라 반드시 새로운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다시 의식을 되찾고 원래 사태로 돌아올 거예요. 그리고 제 말 고깝게 듣지 마세요. 민 사장님이 들어가면 사모님 상태만 더 악화할 겁니다.”도준은 문고리를 꽉 잡았던 손을 스르르 풀더니 무기력하게 두리번대는 여자를 바라보며 감정을 삼켰다.“얼마나 걸려요?”“한 달 내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한 달이라는 말을 듣자 도준의 표정은 이내 어두워졌다.“한 달이나 저기 있어야 한다고요?”“보름 정도는 여기서 지내야 합니다. 나머지 보름은 상황에 따라 거의 회복한다면 가족을 만날 수 있어요. 병이 더 이상 악화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도 되고요.”석훈은 본인의 의술에 자신감을 보였다.“사실 다른 의사라면 적어도 석 달은 걸립니다. 이건 충분이 빠른 겁니다.”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 안에 쪼그리고 있는 여자를 빤히 응시했다. 심지어 감정을 억제하느라 목에는 핏줄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한 달만 고생하게 하고 병을 치료할 것인지, 아니면 바보가 되더라도 제 옆에 묶어둘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때 등 뒤에서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헐레벌떡 달려온 양현숙은 안에 있는 시윤을 본 순간 몸을 비틀거렸다.“왜 윤이 가둬요?”석훈은 이내 위로했다.“양 여사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도 일종의 치료 수단입니다.”곧이어 석훈은 시윤의 병세를 간단히 설명했다. 연유를 들은 양현숙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이게 다 내 탓이야. 내가 일찍 발견
석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잘 있어요. 며칠 뒤 사모님 증세가 호전되면 만날 수 있어요.”시윤은 예전처럼 미친 듯이 도윤을 찾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시윤도 지금 상태로 자기 자신도 돌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를 돌보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이에 시윤은 한참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제가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는 도윤이 안 볼 거예요. 아이 놀라면 안 되니까.”시윤의 말에 석훈은 미소를 지었다.“지금 상태가 날로 좋아지고 있어요. 이제 곧 가족과 만날 수 있을 거예요.”가족을 언급하자 시윤은 눈을 내리깔았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그날 저녁, 시윤은 처음으로 멀쩡한 정신으로 병상에 누워 창 밖의 달을 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정신이 다시 돌아온 탓인지 애써 외면하던 것도 하나둘 밀려오기 시작했다.가족, 아이, 그리고 도준까지...한순간 진실을 회피하려 했을 뿐인데 이성을 잃게 될 거라고 시윤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아이를 다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위해서라도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어. 이혼하든 직면하든 빨리 나아져야 해.’정신이 돌아온 뒤로 시윤은 심리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서 상태가 점차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게, 시윤의 산후 우울증의 원인은 대부분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면서 생긴 거라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데다 적극적으로 치료에 협조하니 회복 속도는 훨씬 빨라졌다.덕분에 입원한 지 보름 만에 시윤은 매일 그리워하던 도윤을 만났다.보름 안 본 사이 전보다 무거워진 도윤은 포도알 같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시윤을 바라보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해져 전보다 더 예뻐진 아이를 보자 시윤은 순간 눈시울을 붉히며 울먹였다.“아가야, 엄마 기억나? 엄마 잊지 않았지?”시윤이 우는 모습을 보자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려던 도윤은 실패하자 입으로 뭐라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천진난만한 도윤의 모습에 시윤은 이내 웃음이 터져 조심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았다
석훈은 도준을 말없이 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무의식을 건드려 결정을 바꾸도록 유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위험이 따릅니다. 사모님은 전에 본인이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해 병을 앓았기에 또 간섭하면 심리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도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리 벽 안에서 도윤의 얼굴을 문지르며 미소 짓는 시윤을 응시했다. 도윤이 태어나고 나서 도준은 시윤이 이렇게 미소를 짓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솔직히 시윤이 왜 저를 그렇게 억압했는지 도준은 알고 있다. 아마 본인이 어떻게 하든 도준한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거다.도준은 이혼도 동의할 리 없고, 시윤이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것도 동의할 리 없으니, 혼인과 아이 모두 시윤에게는 속박이나 다름없었을 테니까....그 뒤 일주일 동안, 시윤의 치료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비록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매번 완전히 회복했다고 느낄 때마다 시윤은 불안 증세를 보이곤 했다.그렇게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친 석훈은 시윤을 보며 결과를 말했다.“시윤 씨의 몸이 지금 회복하는 걸 저항하고 있어요. 무의식적으로 이곳에서 나가면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그 점이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게 막고 있어요. 이건 저로서도 도와줄 수 없는 부분입니다.”시윤은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후볐다. 확실히 석훈의 말대로 일주일 뒤면 퇴원해도 된다는 말을 들은 뒤로 시윤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누군가 아들을 꿈에서 납치해 필사적으로 찾아도 찾지 못하는 꿈은 거의 매일 반복됐다.시윤의 꿈을 얘기하자 석훈은 그걸 상세히 기록하며 건의했다.“가끔 어려움을 직면하지 못하는 건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지 그 자체를 두려워해서가 아닙니다. 그러니 되도록 민 사장님과 얘기 나눠보세요.”도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시윤은 가슴이 따끔거려 답답해나기 시작했다.그러다 결국 꽉 그러쥔 손을 풀면서 더듬더듬 대답했다.“고려... 해볼게요.”벌써 거부감을 드러내는 시윤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