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안은 통증을 참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안 될 건 없잖아요. 어차피 연신 씨 마음속에는 시연 씨밖에 없으니까. 저희만 헤어지면 세 사람 다 편안해지겠네요.”성연신은 화가 난 듯 위험하게 번득이는 눈빛으로 말했다.“하, 사과하는 게 그렇게 서러웠어요?”“네, 서러웠어요.”심지안은 진짜 성심성의껏 오레오를 돌봐줬다. 수제 간식을 만들어 줄 정도로 말이다. 퇴근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산책을 잊지 않았고, 강아지들이 아무리 사고를 쳐도 그 모습마저 귀여워 크게 혼내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나면 모든 책임이 그녀에게 돌아왔다.심지안이 원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그녀는 성연신이 의심하더라도 조사를 거친 후 결단을 내렸으면 했다. 첫사랑 앞에서 그녀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아무리 무딘 그녀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성연신은 시선을 떨궈 심지안을 바라봤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보고서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그는 입술을 파르르 떨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생각할 시간은 됐어요. 그냥 지금 헤어져요. 저랑 사귈 여자라면 널려 빠졌으니까요.”“차인 사람은 성연 씨니까 착각하지 마요.”심지안의 안색은 창백하고도 비참했다. 이 순간 그녀는 성연신이 한 번도 자신을 좋아한 적 없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이만 풀어주시겠어요, 대표님? 저는 이만 일 보러 가야 해서요.”심지안은 성연신이 움직이기도 전에 그를 뒤로 밀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정욱은 심지안이 나가는 것을 보고 당연히 두 사람이 화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찻잔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정욱의 왼발이 사무실 문턱을 넘은 순간, 성연신은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피는 손가락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나가!”성연신의 위압감에 정욱은 손을 흠칫 떨다가 자칫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와... 대표님 상태를 보아하니 이번엔 좀 심각한 것 같은데?’정욱은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최대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진현수는 심지안이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진유진의 손에서 그녀를 안아왔다. 그리고 다정한 동작으로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진유진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진현수가 그녀의 망설임을 보아내고 먼저 말했다.“길을 안내해 줘요. 저는 그냥 집까지 데려다주기만 할게요.”진유진은 머쓱한 듯 코를 쓱 만지며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지안이랑 성연신 씨는 자주 다투고 싸우니까, 이번에도 아마 그냥 잠깐 이러다 말 거예요. 그러니 지안이는 포기하고 다른 여자도 좀 만나요.”“하하,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되나요.”“하긴...”‘지안이도 참... 계약에 진심을 담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는데. 어휴, 됐어. 내가 말을 제대로 못 해서 지안이가 오해한 것도 있으니까.’진유진은 조용히 진현수를 훑어봤다. 깔끔한 정장에 우아한 모습, 어디에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사람이었다. 비록 성연신보다는 못하지만... 또다시 심지안이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에 공감하는 순간이었다.진유진은 요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심지안을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호텔을 잡아야 했다.진현수는 조심스럽게 심지안을 침대 위에 내려놓고 이불까지 덮어줬다. 그녀의 발목이 퉁퉁 부은 것을 보고서는 또 약방에 가서 파스까지 사주고 나서야 돌아갔다.진유진은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며 심지안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저녁 7시.심지안은 비몽사몽 눈을 떴다. 곁에 타자하고 있는 진유진이 있는 것을 보고서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알림창에는 세 개의 문자가 와 있었는데 그것은 전부 진현수가 보낸 것이었다. 순간 밀려오는 실망감에 심지안은 피식 웃었다. 먼저 헤어지자고 해놓고 기대하고 실망하는 자신에 대한 비웃음이었다.심지안은 몸을 일으키며 간단하게 답장 몇 마디를 보냈다.“어이, 주정뱅이. 깼어?”진유진은 기지개를 켜면서 심지안에게 파스를 뿌려줬
몸을 일으켜 문을 열러 간 진유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배달원이 건네는 배달 음식 받아서 들었다.“지안아, 네가 배달 음식 시켰어?”“아니.”“나도 아닌데...”이때 진현수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지안 씨, 제가 호텔로 배달 음식을 보냈어요.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달콤한 걸 먹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기에 마실 것도 보냈어요.”“고마워요, 현수 씨.”“별말씀을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요.”“네...”진유진은 심지안이 핸드폰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캐러멜 마키아토를 건네며 싱긋 웃었다.“성연신 씨랑 헤어졌으면 이제 진현수 씨랑 만나보는 건 어때?”“헤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계약은 유효하니까, 당분간은 계속 연신 씨 아내인 척해야 해.”“그거 어른들 속이려고 한 계약이라며? 성연신 씨 첫사랑이 돌아왔는데 계약도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니야?”“모르지, 그건 연신 씨 연락을 기다릴 수밖에.”심지안은 회사를 사흘이나 쉬었다. 발목을 접질리고 걷기가 불편한 데다가 성연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신경을 써야 하는 개와 남자가 사라지자,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이 사흘 동안 진현수는 매일 같이 심지안을 만나러 온 반면 성연신은 전화 한 통도 없었다. 그러는 쪽이 그의 성격에 더 어울리기도 했다.오후.진현수는 디저트를 사서 심지안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녀의 발목을 살펴보며 말했다.“부기가 빠진 걸 보니 이젠 걸어도 되겠네요.”“맞아요, 이제는 하나도 안 아파요. 약 사줘서 정말 고마워요.”“안 아프다니 다행이에요.”진현수는 안경을 슥 올리면서 무심코 물었다.“지안 씨, 바다 보러 가고 싶지 않아요?”“글쎄요. 저는 그냥 가만히 누워있고 싶어요.”심지안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오래간만에 걱정 없이 쉬는 것이라 딱히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바닷가에 간다고 해도 진현수가 아닌 지금은 연락도 하지 못하는 그 사람과 가고 싶었다.“내일 저녁 제 생일파티는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에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볼 수 있길 바라요.”성연신은 몸을 일으켜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욱에게 커피를 내려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아니다, 커피 말고 차를 내려줘.”정욱은 성연신을 힐끗 봤다. 눈빛도 표정도 전보다 훨씬 풀린 것이 아무래도 심지안과 연락이 닿은 듯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좋은 날’의 3단 고음을 지를 수 있을 정도의 기쁨을 꾹꾹 누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를 내리러 갔다.성연신은 저녁 8시까지 회사에서 심지안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가 늦게까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참다못해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은 한참 울리다가 뚝 하고 끊겨버렸다.“???”성연신의 안색은 무섭게 식어갔다. 미간은 파리도 끼어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찌푸려졌다.퍽!핸드폰을 사정없이 소파 위로 내동댕이친 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며 속으로 생각했다.‘하, 이 멍청한 여자가 제 발로 마지막 기회를 차버리네.’...시원하게 씻고 난 심지안은 예능을 보면서 배달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자기 전에 핸드폰에서 익숙한 이름으로 부재중 통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성연신은 아무래도 심지안이 샤워할 때나, 거실에서 배달 음식을 먹을 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 통으로 끝난 것을 보면 잘못 걸었을 확률이 높았다.‘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걸어볼까? 만약 할아버지가 갑자기 중정원에 갔거나 하면 큰일이잖아.’심지안은 성연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도 아닌 차가운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전화기가 꺼져있어...”심지안은 실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멀리에 두고 일찍 잠들었다. 꿈속에는 기대도 실망도 없기를 바라며 말이다....이튿날 초저녁.진현수는 약속대로 심지안을 데리러 호텔까지 왔다. 심지안은 곱게 포장한 정장을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생일 축하해요, 현수 씨. 사이즈는 눈짐작으로 고른 거라 맞
장학수는 성연신의 답장을 기다리며 핸드폰만 바라봤다. 하지만 5분이 지나서도 반응이 없자 기다리다 못해 먼저 문자를 보냈다.「혹시 야근 중인가?」「이야, 설마 네가 일 밖에 할 줄 몰라서 지안 씨가 도망친 거 아니야?」「그렇다면 바람피운 것도 이해가 가는데ㅋㅋㅋ.」...진현수의 생일파티는 별장에서 열렸다.별장 앞에 도착한 성연신은 내부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문 앞에 차를 세우고 심지안을 바라봤다.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진현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슬픔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멍청한 건 나였네. 정장이 내 것인 줄 알았다니...’성연신은 악마가 연상될 정도의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단호하게 말했다.“1분 줄게요. 지금 당장 나와요.”별장 안.심지안은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를 듣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연신 씨? 지금 어디예요?”“창밖을 봐 봐요.”머리를 돌리자 과연 어두운 안색의 성연신이 보였다. 심지안은 어쩐지 잘못을 저지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여기는 어떻게 왔어요?”“일단 나와요. 아니면 제가 들어갈까요?”“아니요, 나갈게요.”화난 상태의 성연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심지안은 남의 생일파티를 망치지 말고 자신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죄송해요, 현수 씨. 저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혹시 어디 불편해요?”“아니에요. 제 걱정은 말고 파티를 즐겨요.”심지안은 밖으로 나갔다. 진현수는 그녀의 뒷모습을 좇다가 성연신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팍 구겼다.“연신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심지안은 성연신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을뿐더러 이곳에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심지안의 질문에 성연신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제가 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요? 아, 혹시 방해됐으려나?”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얼마 전 헤어졌다는 것이 떠올라 성연신의 도발을
예상치 못한 한 방에 진현수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곧바로 이를 악물며 일어나서는 성연신과 주먹다짐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뒤엉키다가 성연신은 빠르고 정확하게 진현수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심지안은 당황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더니 앞으로 다가가서 두 사람을 말리려고 했다. 그녀의 비명을 듣고 별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나와서 두 사람을 말리는데 합세했다. 진현수는 피멍이 든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진현수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심지안은 한참 사과하고 나서야 성연신을 운전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제발 빨리 출발하라고 애원했다. 이토록 운전면허증의 중요성이 크게 느껴진 것은 또 처음이었다.성연신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창문을 통해 진현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경멸 섞인 미소와 함께 시동을 걸고 멀어져 갔다.고속도로에서 성연신의 분노는 완전히 폭발해 버렸다. 차 속은 거의 120 마일에 가까웠다. 심지안은 무서운 듯 운전대를 꼭 잡으며 말했다.“속도 너무 빨라요. 저 멀미할 것 같다고요.”성연신은 심지안을 힐끗 쳐다봤다. 그녀의 안색은 멀미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하얗게 질려 있었다.다행히 차 속은 천천히 늦춰졌고 두 사람은 안전하게 중정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심지안은 이제야 시름을 놓고 성연신에게 물었다.“현수 씨는 왜 때렸어요?”“꼴 보기 싫어서요.”성연신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차가운 말투로 물었다.“설마 지금 그 자식 편을 들어주려는 거예요?”어이가 없었던 심지안은 말없이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분위기가 왜 이러냐? 혹시 저 녀석이 또 무슨 잘못을 했나?”이때 무기력하지만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수광이 거실 문 앞에 서서 놀란 듯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심지안은 흠칫 놀라더니 바로 성수관의 곁으로 다가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할아버지가 어떻게 오셨어요?”“오랜만에 한 번 와 봤다.”성수광은 예리한 눈빛으로 성연신과 심지안은 번갈아 쳐다봤다.“둘이 싸웠나?”성연
성수광이 물었다.“파티에 혼자 갔다고?”성연신의 모습은 마치 부모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르는 듯한 어린아이 같았고, 그 혼자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성수광은 바로 심지안에게 시선을 옮기며 따지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지안아, 너는 이미 연신이와 결혼하지 않았느냐. 부부는 한 몸이다. 그런데 네가 혼자 친구가 연 파티에 참석하면 친구들이 뭐라고 생각할 것 같으냐. 뒤에서 몰래 너를 보며 수군수군하겠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 있으면 연신이랑 방에서 둘이서 해결하고 결정해.”“...할아버지, 죄송해요.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심지안은 추욱 주눅이 든 모습으로 벽 끝에 바짝 붙어 서서 손만 뜯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못을 인정하는 듯한 착한 아이로 보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성연신을 엄청나게 욕하고 있었다.성수광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듯 두 사람을 붙잡고 한참이나 잔소리를 했고 그제야 두 사람을 놓아주었다.심지안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성연신이 그녀의 팔을 확 잡아당기더니 이내 안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키가 컸던 그는 심지안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할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티를 내고 싶었어요?”심지안은 불퉁한 모습으로 작게 중얼거렸다.“그냥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정적이 흐르고 그녀는 안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빈 의자에 찾아가 앉았다.방 안엔 온통 성연신의 체취로 가득했고 그녀는 ‘전여친 '이었기에 이 방이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할아버지께선 이따 저녁에 가시겠지?'‘안 가시고 계속 계시면, 난 계속 연신 씨랑 함께 있어야 하는 거잖아!'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착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고개를 떨구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심지안의 모습에 성연신은 그녀가 진현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오해해 눈빛이 확 가라앉더니 서늘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그의 서늘한 아우라에 심지안도 눈치챌 수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등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상처엔 이미 피가 딱딱하게 굳어
“아아악... 아빠! 아파요!”이유도 모른 채 머리채를 잡힌 심연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비록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심전웅이 이렇게까지 화내는 걸 보면 무언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은옥매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는 은연중에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더더욱 심전웅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세 사람은 그렇게 병원 앞에서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였다.“그래, 끝까지 안 들어가겠다는 거지? 두 사람 딱 기다려!”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심전웅은 성큼 병원으로 들어가 의사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옆에서 말리는 심연아를 무시한 채 바로 힘으로 두 사람을 병원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병원 바로 앞엔 버블티 가게가 있었다.심지안은 그곳에서 세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표정 관리하고 있었다.“유전자 검사는 어느 정도 걸리나요?”“일주일 정도 걸려요. 특히 이런 유전자 검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이라면 더 빨리 결과를 받을 수 있겠네요.”“그럼 오늘 구경은 여기서 끝이겠네요?”성연신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마음이 급한 심전웅이 유전자 검사가 아닌 혈액 검사를 먼저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혈액형으로만 봐도 친딸인지 아닌지를 추측해낼 수 있었다.심전웅이 심연아의 혈액형이 뭐여야 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심지안은 두 눈을 반짝였다. 혈액 검사는 확실히 유전자 검사보다 더 빨랐고 보편적으로 반 시간 후에 바로 결과가 나왔다.심씨 가문은 줄곧 남자들이 돈을 벌어오고 여자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다.그랬기에 은옥매가 살짝만 다른 짓을 저질러도 심전웅은 눈치를 채기가 어려웠다.심지안은 순간 마음속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녀는 얼른 몸을 틀어 옆에 있던 남자를 보았다. 성연신은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은 채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입은 호선을 그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고마워요.”“뭐가 고마운데요?”성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