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 심지안의 부탁을 받고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왔어요. 심지안이 너무 바빠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요. 전 현장 일을 맡은 회사 사장님의 비서예요.”정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조금 전 그는 성연신에게 심지안이 곧 도시락을 들고 올 거라 말했었다. 그 말을 들은 성연신은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책상을 깨끗이 정리했었다. 하지만 심지안을 대신해 엉뚱한 사람이 왔으니 이제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직업 정신이 투철한 정욱은 마음은 더없이 복잡했지만 겉으론 친절한 얼굴로 정중하게 연설아를 안내했다.“네. 이쪽으로 오세요.”‘모르겠다. 일단 먹잇감으로 던져줘야지.’연설아는 정욱의 등 뒤에서 기대에 찬 얼굴로 손거울을 꺼내 자신을 이리저리 비추어보았다.“대표님, 도시락이 도착했습니다.”말을 마친 뒤 정욱은 곧바로 사무실 문을 나섰다. 분노의 불길이 자신에게 덮치기 전에 일찌감치 자리를 피한 것이다.성연신은 핸드폰을 보며 나긋한 목소리로 ‘응.’이라 대답했다.그는 오늘 옅은 남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책장을 넘기는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 검은 눈동자 속 한기를 감춰주는 속눈썹이 그의 준수함과 우아함을 한층 더 밝혀주고 있었다.연설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듯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저번 쇼핑몰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아닌가.저 사람이 보광 그룹 대표였구나. 자신과 그가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연설아였다...연설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저항 없이 요동쳤으며 호흡까지 가빠졌다.그녀는 도시락을 성연신의 눈앞에 내려놓고는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채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았다.성연신은 머리를 들진 않았지만 자신을 향한 뜨거운 시선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저 여자 오늘 왜 저러는 거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저 눈빛은 좀...’잔잔했던 호수에 돌이라도 던진 듯 그의 가슴에 파도가 일었다. 그가 내심 흐뭇한 마음에 말했다. “먼저 음식을 좀 데운 다음 여기에서 같이 먹어요.
연설아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성연신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부하직원을 호되게 혼내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말이다.하지만 성연신이 풍기는 등골이 싸늘해지게 만드는 오싹한 분위기는 눈앞 이 비서보다도 훨씬 더 공포스러웠다.연설아는 결국 정욱을 한동안 쏘아보다가 씩씩거리며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연설아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현장에 돌아와 심지안을 찾아가 따졌다.“너 일부러 그랬지?”심지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깜빡였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일부러 날 성 대표한테 보내 모욕을 당하게 만든 거지?”“응? 분명 네가 먼저 도시락을 빼앗아가면서 나 대신 가져가겠다고 했잖아.”심지안이 이어 대표에게로 눈길을 돌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제 기억이 틀렸나요?”대표는 난처한 얼굴로 연설아에게 말했다.“설아야, 그만하고 우리한테 커피나 타줘.”“삼촌, 저 모욕을 당했단 말이에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라고요?”삼촌?심지안은 그제야 머릿속의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연설아의 능력으로 빽을 쓰지 않고 그 어떤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겠는가.대표는 난처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친척이라는 관계 때문에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애써 삼키고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심지안은 팔짱을 끼고 태연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옆에 앉아있던 김인정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것 같았다. 성 대표님는 평소 차갑고 무뚝뚝하긴 해도 절대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연설아가 성 대표님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도리어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다.“일단 회사 내부 직원의 문제부터 해결한 다음 상의하는 게 좋겠네요.”김인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대표가 연설아의 부모님을 끄집어내며 말했다.“내 회사에서 일하는 게 그토록 억울하고 힘들면 부모님한테 지금 당장 데리러 오라고 말해.”그의 이 작은 회사는 보광 그룹과 협력하기 위해
급기야 완전히 미쳐버린 연설아는 주위에 있는 손에 들리는 물건 모두를 심지안에게로 내던졌다.김인정은 심지안의 팔을 끌어당겨 황급히 자리를 떴고 대표도 급히 달려가 연설아를 막아 세웠다.현장을 떠난 뒤 심지안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중히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일을 망쳤어요. 제가 직접 대표님한테 얘기할게요. 언니가 아닌 저한테 벌을 내려달라고요.”김인정이 호탕하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지안 씨를 왜 탓하겠어요. 나도 그쪽 비서가 지안 씨한테 앙심을 품고 있다는 거 눈치챘어요. 사람이 화를 낼 줄도 알아야지, 아니면 바보가 돼버려요.”심지안이 눈을 깜빡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 언니가 절 호되게 혼낼 줄 알았어요.”“지안 씨가 잘못했다면 그랬겠죠. 하지만 지안 씨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왜 지안 씨를 혼내겠어요.”김인정이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탔다.“됐어요. 돌아가서 나랑 같이 성 대표님에게 설명하자고요. 별일 없을 거예요.”“정말이에요? 하지만 대표님은 워낙 막무가내라 설명한다고 될지 모르겠네요.”심지안이 안전벨트를 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성연신은 모든 일에서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말만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김인정은 그녀의 말은 듣지 못하고 어떻게 성연신에게 설명해야 할지만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이 잘못한 건 없지만 매섭고 차가운 성연신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초조해하는 김인정과 비교하면 심지안의 표정이 오히려 훨씬 더 태연하고 편안해 보였다.돌아가는 길 신호등 앞.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심지안이 옆에 정차되어 있는 차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얼굴을 찌푸렸다.도요타 차 안에 젊은 남녀 한 쌍이 앉아있었는데 신호등을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안에도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걸 보니 아주 친밀한 커플 같았다.중요한 건 그 남자의 목에 매어져 있는 넥타이였다. 진유진과 함께 쇼핑하던 날, 진유진이 남자친구에게 사준 그 넥타이와 완벽히 일치했다.심지안은 곧바로 진유진에게 문자를 보내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에 심지안은 부자연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그의 말에 심장 박동이 빨라졌고 옅은 기대감까지 부풀어 올랐다.“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주는 거예요?”“내가 말했잖아요. 지안 씨는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성씨 가문을 대표하기도 한다고.”“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발설하지 말라고 했잖아요...”“회사에선 안 되지만 밖에선 밝혀도 돼요.”“하지만 그러면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예요.”지금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꽁꽁 숨기는 연예인들의 열애도 밝혀지는 세상이다. 하물며 일반인인 그들은 어떻겠는가.그 말에 성연신도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너무 제멋대로라 한동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그는 이렇게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발표하지 않아도 난 지안 씨를 위해 나설 수 있어요. 지안 씨는 항상 자신이 성씨 집안의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아...”심지안의 초롱초롱하던 눈동자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역시 그는 그녀가 성씨 집안의 체면을 떨어뜨릴까 봐 걱정했던 것일 뿐, 진정으로 그녀를 걱정했던 것이 아니다.그녀 마음속에 피어오르던 실낱같은 기대가 또다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녀가 서운한 마음에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성연신이 팔에 더욱 힘을 주어 그녀를 가두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계속해요.”“뭘요?”“오늘 뭘 잘못했어요?”심지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름다운 그녀의 작은 얼굴에 아득함이 스쳐 지나갔다.“다 얘기했잖아요.”성연신이 거만함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앞으론 내 일을 첫 순위에 두어야 해요. 일은 2순위고요. 또한 내 일은 지안 씨가 직접 해주어야 해요. 오늘 낯선 여자를 보냈다는 게 난 너무 화가 났어요.”심지안이 입을 삐죽거렸다.“저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요. 일이 다 한 번에 몰리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연신 씨도 이해해 줘요.”그녀는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다. 어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했
심지안은 겁에 질린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 서류를 살펴보았다. 순간 조금 전에 있었던 불쾌했던 일이 머릿속에서 홀연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그녀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한 단계 높이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이게 홍성준이 탈세한 증거예요?”“맞아요.”“연신 씨가 고소하려고요?”심지안이 두 팔로 책상을 짚고 서서 물었다.“두 사람은 아는 사이잖아요.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겉으로 보이는 관계를 믿어요?”그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 눈엔 가소로움이 가득 담겨있었다.홍교은의 야심은 이마에 씌어있지만 않을 뿐 너무나도 투명하게 훤히 꿰뚫어 보인다. 하여 할아버지가 그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때에도 홍교은은 고려하지 않았다. 혼사를 맺음에 있어 집안 배경도 중요하지만 자칫 승냥이를 끌어들이는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심지안은 그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홍교은은 어쩌면 정말 성연신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익을 가장 중요히 여기는 그녀에게 성연신에 대한 진심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성씨 가문이나 보광 그룹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일 것이다.“언제 할 생각이에요?”“며칠 뒤로 생각하고 있어요.”“아...”심지안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홍성준에게 곧 무슨 일이 생길 거라 하지 않았어요? 그럼 그냥 기다리면 될 텐데 왜 고소하려는 거예요?”설마 저번 자선 파티에서 홍 씨 가문 남매가 그녀와 맞선 것 때문에...성연신의 손가락이 리듬을 타고 번갈아 가며 책상을 두드렸다.“마음에 안 들어요.”심지안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아주 평온했는데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됐어. 이 사람이 언제 상식대로 행동한 적이 있었던가. 그가 그녀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일은 생각만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이다. 깊게 따져 묻다간 함정에 빠지는 게 오히려 자신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심지안은 성연신의 사무실에서 나온 뒤 태
그 깊은 밤에 잠도 자지 않고 깨어있었다니. 심연아와 헤어진 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나간 인연에겐 다시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강우석이 깊은 밤 전화해 무엇을 하려 했든 전혀 관심이 없다.심지안은 샤워를 마친 뒤 성연신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오늘은 파란 하늘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화창한 날씨였다. 사무실에서 심지안의 책상은 창가 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창문을 여니 산산이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한결 들떠 올랐다. 손가락에도 그 흥이 전해졌는지 리듬을 타며 끊임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다.“지안 씨, 아래에서 누가 찾아요.”얼마가 지났을까. 프런트에서 그녀에게 말을 전하러 왔다.심지안은 이어폰을 내려놓고 말했다.“알겠어요. 내려갈게요.”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그녀의 눈에 강우석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가 눈썹을 찌푸렸다.“여긴 왜 왔어?”“지안아, 보광 그룹에 입사하게 된 걸 축하해.”강우석은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을 뿐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크서클이 시커멓게 내려앉았고 살도 많이 빠진 듯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기운도 없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축하의 말에선 진심이 느껴졌다.“내가 여기에서 일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파혼하러 심 씨 집안에 갔을 때 연아한테 들었어.”강우석이 잠시 고민하고는 일렁이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고 말했다.“주원재와 연아에 관한 일 말이야. 사실이야?”심지안이 침묵하다가 당장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은 그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사실이야. 심연아는 흥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의도적으로 주원재에게 접근했어.”“제기랄. 나쁜 년!”그날 그토록 섹시한 옷차림으로 연설아와 쇼핑을 하러 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분명 주원재를 만나러 갔을 것이다.강우석은 주원재에게 약혼녀를 빼앗긴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그가 주혁재의 아들이라는 것 때문에 이를 악물고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안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성연신이 독차지한 층에서 멈췄다.그녀는 돌연 성연신이라는 이 남자는 성격이 거칠고 입이 독하긴 해도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해왔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이런 남자도 괜찮은 것 같다...그때 사무실에서 나온 정욱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듯 멍하니 서 있는 심지안을 보고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휘저었다.“심지안 씨, 대표님을 만나러 오셨어요?”“아... 네. 안에 있어요?”“네. 계십니다.”정욱은 말을 마친 뒤 특별히 한 마디 더 보탰다.“성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심지안 씨는 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방에 들어가면 된다고요. 번거롭잖아요.”심지안이 의아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가져다줄 때 한 번 가는 것뿐인데 번거로울 게 뭐가 있단 말인가.그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사무실 안. 성연신은 평소와는 다르게 일을 하지 않고 검은색 가죽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그런 그를 쳐다보며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가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잠시 생각해 보니 경호원을 빌리는 일쯤은 정욱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자리를 뜨려 했다.그녀가 문고리를 잡은 순간, 등 뒤에서 성연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할 얘기 있으면 해요.”심지안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심장까지 튀어나올 뻔했다. 그녀는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의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켰다.“안 자고 있었어요?”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단 말인가.“잠들었었는데 지안 씨가 들어온 뒤 깼어요.”그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이마를 쿡쿡 눌렀다.그 말인즉슨 심지안 때문에 잠에서 깼다는 것이다.“저기... 저한테 경호원 몇 명 빌려줄 수 있어요?”그 말에 성연신이 번쩍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가 위험한 빛을 내뿜
방 안.옷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물침대에 누워있던 알몸의 여자가 깜짝 놀라며 꺅 소리를 질렀다.모든 증거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심지안이 목격한 심연아와 강우석이 몸을 섞던 그 날의 광경과 정확히 일치했다.그녀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덤덤해진 줄 알았으나 같은 일이 생생히 눈앞에 펼쳐지니 또다시 위 속에서 메스꺼움이 기어올랐다.그녀가 역겨움에 헛구역질을 할 때 귓가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정욱은 성연신과 오랫동안 함께 해왔기에 일을 신속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데에 매우 능했다. 그는 곧바로 진유진과 남자를 떨어뜨려 놓고 핸드폰으로 현장에 널브러져 있는 증거 사진을 찍은 뒤 심지안과 진유진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아래로 내려가자 진유진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난 아직 저놈을 때리지도 못했어요. 왜 날 끌어낸 건데요?”“에너지를 무의미한 곳에 사용하지 마세요.”심지안이 누군가와 똑 닮은 말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심지안 씨, 대표님께서 차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친구분은 제가 택시를 태워 보낼게요.”성 대표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선 안 된다.심지안이 여전히 흐느끼고 있는 진유진을 가리키며 말했다.“전 유진이와 함께 갈 거예요.”정욱은 성연신의 말을 떠올리고는 단호히 말했다.“제가 친구분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가는 길에 조금 전 찍은 사진도 보내드리고요.”심지안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유진이 정욱의 팔에 이끌려 택시를 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효율적이다.하지만 왜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걸까.심지안이 차에 돌아가자 그녀를 한 번 슥 훑어본 성연신이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발견하고는 이마를 찌푸렸다.“얼굴색이 왜 그래요?”“아니에요... 조금 전 그 장면이 너무 역겨워서요.”성연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운전대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30분 뒤 중정원.홍교은은 성연신의 차가 보이자 멈추기도 전에 달려가 애처로운 얼굴로 말했다.“연신아, 오빠가 조사를 받으러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