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우스를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성연신은 핸드폰을 가지고 놀며 고개를 들어 심지안을 보지도 않았다. 심지안은 화가 치밀었으며 작은 손으로 그의 책상을 힘껏 쳤다.“성연신!”‘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방법도 배웠어?’나무처럼 무덤덤한 성연신은 정말 미웠다. 성연신은 몸을 움찔하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앞의 사람을 똑똑히 보고는 얼굴의 먹구름 같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왜 왔어요?”“환영하지 않아요?”“아니에요.”성연신은 살포시 웃었으며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왔어요?”“오고 싶으면 올 수 있죠. 싫으면 말하세요. 다음부터 오지 않을 거예요.”심지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쓸데없는 생각 마세요.”성연신은 기뻐했다. 여태껏 혼자 주동적으로 연락하다가 오늘 그녀가 처음 찾아오자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했다.심지안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콧방귀를 뀌었다.“언제부터 능글능글하게 말하는 방식을 배웠어요?”“억울해요.”성연신은 그녀를 소파에 앉힌 후 직접 주스를 한 잔 따라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진지하게 말했다.“내가 말한 것은 다 사실에요.”‘정말이에요?”“예전에 나는 혼자였어요. 당신을 알고 나서, 특히 우주를 가진 후에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어요.”평범한 일상이지만 행복했다.심지안의 눈빛은 멍해졌다. 성연신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왜 나를 멀뚱멀뚱하게 쳐다봐요? 지안 씨를 진심으로 대하고 더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러는 내가 싫은가요?”성연신은 웃음을 터뜨렸고,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을 애지중지 쓰다듬어 주었다.“그럼요, 제때 사랑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심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우주가 크면서 아빠 사랑이 빠져서는 안 돼요. 연신 씨는 내성적이고 냉정해서 아이는 당신이 그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할 수 있어요.”비록 사람들은 흔히 아버지의 사랑은 말이 없다고
심지안은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위로를 해주지 않아도 돼요.”“제 말 좀 들어보세요.”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나는 지안 씨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고 있어요. 불치병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마세요.”심지안은 성연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거짓말을 하는지 의심했다.“불치병이 아닌지 어떻게 알았어요? 불치병이 아니면 도대체 무슨 병이에요?”‘전에 외국에서 두통약을 가져오더니, 설마 진작에 그녀의 상태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그럼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나는 일찍이 지안 씨의 건강상태가 이상함을 발견하고 엄교진 교수를 찾아갔어요. 어르신도 당신의 병세를 알고 있어요. 당신에게 비밀로 한 건 엄 교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재차 당신을 자극할까 봐 걱정되어 말하지 않았어요.”“대체 어떤 병이길래 자극할까 봐 알려주지도 않으세요? 난 당사자이니 진실을 알아야 해요.”심지안은 격동되어 고함을 질렀다. 분명히 자신의 사생활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지라 세상 사람들에게 속히 운 것 같아 화가 났다.“엄 교수님을 믿지 못하면, 나와 어르신은 믿을 수 있으세요?”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리면 그는 지금과 같이 침착할 수 없다.그는 그녀가 자신의 세계에서 또다시 사라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가 죽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설사 세상에 다시 살아나는 약이 없다 하더라도, 그는 차라리 존재하지도 않는 기적을 만들지언정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우주가 없었다면 그는 저세상에 따라가 그녀와 함께 있었을 것이다.심지안은 힘껏 성연신의 손을 뿌리치면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당신을 믿기에 이제야 물어보고 있어요!”엄교진 교수 말대로 그녀를 위해서임을 알고 있으나 이렇게 하면 그녀는 오만 가지 생각에 더욱 힘들어진다.성연신은 눈을 감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표정이 바뀌었다.심지안은 때마침 그의 표정의 변화를 포착하고 즉시 그의 약간 거친 손을 잡았다. 부드러운
성연신과 심지안이 보광에서 나와보니 안철수와 소민정은 이미 사라졌다.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팔꿈치로 옆 남자를 건드렸다. "안철수가 유혹당한 게 아닐까요?”성연신은 실눈을 뜨고 콧소리를 냈다.“응?”심지안은 계단을 오를 때 보았던 그 장면을 그대로 들려주었다.그러자 성연신은 안색이 변하며 안철수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는 통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안철수는 서민정을 공항으로 배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가 성연신의 명령을 어긴 것은 난생처음이었다.성연신이 안철수와 소민정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술집에 있었다.어두컴컴하고 시끄러운 환경, 남녀가 댄스장에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저기에 있어요.”성연신보다 시력이 좋은 심지안은 사방을 스캔하여 구석에 있는 안철수와 소민정을 찾아냈다.철수가 손에 술잔을 들고 술을 마시려고 했다.갑자기 아름다운 그림자가 튀어나와 그의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땅에 떨어뜨렸다.'우당탕'하는 소리는 술집 안에서 주의를 끌지는 못했지만, 안철수의 분노를 일으켰다.안철수는 의아한 눈빛으로 민채린을 보았다. 민채린은 깨진 유리 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마시지 마! 그녀가 안에 약을 넣었어!”소민정의 눈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더니 애꿎은 말투로 말했다.“언니 오해한 거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시치미 떼지 마세요. 당신의 수작은 다 내가 써봤던 수단이에요! 좋으면 대범하게 따르고, 저질한 수작을 부리지 마세요.”성연신을 갖고 싶으면서 안철수에게 곁눈질했다.욕심쟁이!안철수는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소민 씨가 너처럼 염치없을 줄 아니?”계집애가 한계가 없을 줄이야!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 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소민정은 보수적이고 수줍음이 많아 민채린과는 달랐다.민채린은 기분이 언짢아져서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뻔뻔해? 네가 내 물건을 가지려다 발생한 일이야!”“솔직히
말을 마치자,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 민채린은 한바탕 웃었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요염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주위 남자들까지 이쪽으로 쳐다보게 눈길을 끌었다.안철수도 포함했다.안철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니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의상실에서 그녀가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아 긴 머리를 흔들며 땀을 뻘뻘 흘리는 장면이 떠올랐다...분명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데도 그녀는 주도권을 쥐고 그를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경지로 인도했다.민채린이 이유 없이 크게 웃자 소민정은 겁이 났다. 그녀는 안철수와 함께 장소를 옮겨 계획을 계속 실행하려고 했다.그녀가 두 번이나 안철수를 잡아당겼으나 안철수는 반응이 없었다.소민정은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안철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술집의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채린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소민정은 위기를 감지하였다.소민정은 민채린을 질투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힘껏 안철수를 잡아당겼다. 안철수는 이제야 망연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왜?”소민정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을 가까스로 참으며 말했다.“철수 오빠, 난 이 여자가 무서워요. 우리 다른 곳에 가서 계속 이야기할까요?”안철수는 머뭇거리며 거절했다.“하지만 대표님께서 10시까지 공항에 데려가라고 했어. 이젠 새벽 1시가 되었어. 더는 지체할 수 없어.”안철수는 소민정의 애걸을 못 이겨 마지막 얘기를 하려고 이곳에 왔다. 그녀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며 자신과 좀 더 있고 싶어 했다. 하여 그는 명령을 어기고 승낙했다.돌아가서 처벌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공항 쪽 접선인이 소민정을 기다리지 못해 대표님에게 보고할 것이다.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신고당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다.소민정은 안철수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할 줄 몰랐다.민채린의 입술은 그녀의 뒤편을 가리키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가지 마세요, 당신의 오빠가 왔어요.”소민정은 흠칫 놀라며 몸을 돌렸
“루갈로 돌아가 채찍 100대를 벌로 내리고 올해 보너스도 차감이에요.”성연신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감정의 변화를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네.”안철수가 대답하더니 고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그럼 소민정은...”“그게 당신이랑 뭔 상관이죠?”“아닙니다. 저는 그저 소민정이 큰 병을 이겨내고 이제 겨우 깨어났으니 대표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성연신은 입꼬리를 끌어당기더니 나른한 기색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의 징조 같았다.“벌하지 않을 거예요.”안철수는 안도하더니 감격스러워 말했다.“대표님의 너그러운 아량에 감사드립니다.”소민정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하얀 얼굴에 알 수 없는 득의양양함이 피어올랐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심지안을 바라보았다.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심지안은 덤덤하게 고개를 들었다. 소민정보다 키가 큰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여유로운 자태로 말 한마디 없이 순간 소민정의 기세를 꺾어버렸다.소민정의 안색이 묘하게 바뀌더니 등을 곧게 폈다.‘키가 크면 뭐해? 남자들이 좋아하는 건 나 같은 여자인데!’민채린과 심지안은 키가 거의 170cm이 넘으니 너무 부담스러웠다.“오호?”민채린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성연신을 바라보았다. 분명 뒷말이 있을 것이다.역시, 성연신의 말에 소민정은 제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민정이는 더 이상 루갈의 멤버가 아니니 당연히 벌할 필요가 없지.”제멋대로 행동하고 조직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후과를 책임져야 하는 법이다.안철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환청이라도 들은 줄 알았다.“대표님, 그건...”심지안과 민채린은 서로를 바라보며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성연신이 소민정에 대한 인내심이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소민정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선을 넘어버렸다.지금 제경의 돈과 권세는 전부 성연신의 손아귀에 있었다.하지만 소민정은 지난날 루갈에 대한 자신의
안철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성연신이 차를 몰고 가려하는 것을 보고 빠르게 한마디 했다.“일단 호텔 잡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시간 나면 찾으러 갈 테니까 다시 상의해봐요.”말을 마친 안철수는 곧장 뛰어가 차에 올라탔다.소민정은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얼마나 울었을까, 눈물이 마르고 나서야 멈추었다.아무도 없는 거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성연신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모두 심지안 때문이야!’소민정은 분노와 질투에 휩싸여 복수하고 싶었다.‘분명 심지안 그년이 오빠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을 거야!’소민정은 문득 한 사람이 생각났다. 그 사람도 심지안을 극도로 미워하니 둘이 손잡고 심지안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차 안, 민채린은 영어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면서 구석에 웅크려 풀이 죽은 안철수를 바라보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조수석에 앉은 심지안은 몸을 돌려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휴대폰 좀 줘봐요. 확인할 게 있어요.”민채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뭐요?”“소민정이 몰래 약을 탄 장면이요.”민채린이 그렇게 확고하다는 것은 분명 증거가 있을 것이다.이때 안철수의 눈빛이 요동치더니 고개를 들어 민채린을 보았다.민채린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오만하게 말했다.“개인 물품이에요. 지안 씨가 달라고 하면 제가 줘야 해요?”“좋아요, 그럼 차에서 내리세요. 이 차는 저희 개인 물품이거든요.”“이봐요. 지금 새벽 3시예요. 한밤중에 길에 차는커녕 귀신도 없는데 꽃다운 나를 길바닥에 버리고 간다고요?”심지안은 웃으며 말했다.“안심해요. 다음 버스정류장에 내려줄게요. 3시간만 기다리면 첫 버스 탈 수 있어요.”민채린은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참 고맙네요. 그런데 이 차는 지안 씨 소유가 아니잖아요?”심지안은 눈을 깜박이며 성연신의 팔짱을 끼더니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말했다.“제 소유는 아니죠. 하지만 우리 신이 물건은 제 거나
안철수는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더는 민채린을 상대하지 않고 말이다.영상은 길지 않았다. 2배속으로 영상을 다 본 다음 심지안은 고개를 돌려 성연신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이런 식으로 제 죽에도 약을 탔을까요?”무고한 얼굴로 그녀는 악독하고 비열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겉모습으로만 봤을 때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민정은 예전에 잘해온 전적이 있었기에 너무 설치지 않는 한 남은 생은 루갈과 함께 무난하게 살 수 있었다.성연신이 차가운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소민정을 이렇게 쉽게 루갈에서 보내줄 수는 없어요.”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결국 자신도 피해를 보는 상황인 것이다.자신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뻔하면 과거는 제쳐두고 진작 단념했어야 했다.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하리라는 것을 성연신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소민정의 변화도 불가피했다.다만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처음부터 소민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안철수도 소민정을 필터 낀 눈으로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상관없다.모든 필터는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여지를 남기지 않고 한 방에 깨져버릴 것이.심지안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핸드폰을 뒷좌석에 있는 안철수에게 건넸다.안철수는 고개를 떨구고 머리를 흔들며 낮게 말했다.“안 볼래요.”“상처받았어요?”안철수는 고개를 더 숙였다.“조금요.”소민정은 그에게 있어 늘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그가 속상해할 때, 그녀는 그를 격려해주었다.그가 꾸중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를 위로해주었다.루갈이 막 설립되었을 때, 소민정은 안철수에게 매우 좋은 사람 같아 보인다며 의지하고 싶다고 말했었다.그 뒤, 그녀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자 안철수는 거의 죽을 만큼 괴롭고 슬퍼했다. 하지만 다행히 상연신이 해외에서 유명한 의사를 데려와 그녀를 살려냈다.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 그녀는 마침내 깨어났다.하지만 눈 깜
‘여자 혼자 밤길을 걷는 건 위험할 텐데...’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미 브레이크를 밟은 상연신이 백미러를 통해 민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리셔도 됩니다.”그러자 민채린은 단호하게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상연신은 문을 닫았고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는 민채린과 동행하는 것에 전혀 이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성우주와 심지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생사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생각했으니 말이다.심지안이 말했다.“철수 씨 말이 좀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상연신은 머리를 끄덕였다.“조금 그렇긴 했어요.”안철수는 묵묵히 차 뒤를 바라보더니 이내 차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민채린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내 말이 조금 지나쳤을진 몰라도... 어쨌든 채린 씨도 좋은 여자는 아니잖아?’마음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안철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그럼 왜 채린 씨 내리게 그냥 놔둔 거예요?”심지안은 이해하지 못했다.“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렇죠. 왜요? 그럼 안 돼요?”상연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지어는 정말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러자 심지안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고는 묵묵부답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상연신도 본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내일 엄 교수님한테 가야 하니까 오늘은 푹 쉬어요.”“알겠어요.”내일의 계획을 언급하자, 심지안은 순식간에 안철수와 민채린의 시비를 뒤로한 채 조금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어떤 방식으로 최면을 풀어야 할지 몰랐다.‘만약 치료에 실패하면, 난 정말 정신병자가 되려나...’...오늘 밤, 심지안 뿐만이 아니라 안철수도 마찬가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는 벌떡 일어나 달빛을 올려다보기도 했다.그러다 마침내 핸드폰을 들고 소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죄송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후, 심지안은 자신이 5년 전 해외에서 살았던 작은 별장과 흡사한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외부 경관이 달라 의아해하며 말했다.“5년 전과 똑같은 별장을 지었어요?”고청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다가 기침을 몇 번 하며 대답했다.“맞아요. 거의 차이가 없죠?”심지안은 방 안의 모든 물건을 둘러보며 고청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부드러워졌고, 마치 그를 가족으로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어떻게 하지원을 설득했어요?”그녀는 고청민이 하지원을 이용하여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못했다.“한마디 했더니 바로 승낙했어요.”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하지원은 이처럼 온 마음을 다해 고청민을 따랐다.심지안은 복잡한 마음으로 물었다.“하지원 씨에게 미안하지 않아요?”고청민은 아무런 감정 없이 말했다.“보상해 줄 거예요.”‘보상? 어떻게 보상할 건데? 여자의 청춘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심지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하지원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으니까...“밤새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죠? 지안 씨가 좋아하는 비빔면을 준비해 뒀어요. 게살 비빔면이요.”고청민은 웃으며 심지안에게 말했다.“지안 씨가 분명 좋아할 거예요.”심지안은 배가 고파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식탁에 다가가기 전, 그녀는 게살 비빔면의 향긋한 냄새를 맡았다.고청민은 게살 비빔면을 그녀 앞에 놓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먹어요. 제철 대게는 정말 맛있거든요.”심지안은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맛있었다. 커다란 게살이 면과 어우러져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고청민의 뜨거운 시선에 심지안은 불편해하며 말했다.“청민 씨도 먹어요. 나만 보지 말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으며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어 먹으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침이 그를 멈추게 했다.연달아 몇 번의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점차 그의 가냘프고 쇠약한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기침이 점점 심해지자 그
집에 돌아온 후, 성연신은 성우주를 재우고 나서 긴급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성연신은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고청민의 상황을 물어볼까 했지만, 숙면을 방해할까 봐 포기했다.다음 날 아침, 성연신은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었다. 그는 심지안이 오늘 세움의 신제품 출시 준비로 일찍 출근할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으려 했다.이때 손이 미끄러져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주어 보니 액정이 나가 있었다.갑작스러운 실수에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깨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불안감이 스며들었다.성연신은 다른 휴대폰으로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부재중으로 받지 않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성씨 가문으로 출발했다.성씨 가문에 도착했을 때, 성동철은 막 깨어나서 정원에서 산책 중이었다.성연신으로부터 두 사람이 지난밤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라 이마를 찡그렸다.‘그 녀석이 설마...’성연신은 성동철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급하게 물었다.“어르신, 혹시 지안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어디죠?”“해외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성연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무슨 말씀입니까?”성동철은 고청민이 출발 전에 했던 특별한 부탁을 성연신에게 말해주고, 동시에 고청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성연신은 주먹을 꽉 쥐고 심지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 끝에 전화가 연결되었다.“지안 씨, 어디에 있어요?”“성연신 대표님, 접니다.”고청민의 평온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성연신의 신경을 자극했다.성연신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이 자식아, 지안 씨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우리는 해외에 있어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고청민은 계속해서 말했다.“지안 씨를 며칠만 빌리는 셈이에요. 너무 무리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흥분하지 마세요
“네. 할아버지, 그러니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지금 나와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거구나!”“할아버지, 용서해 주세요.”성동철은 입을 열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에 십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고, 무력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천천히 말했다.“해외 전문가와 이미 연락을 취했으니, 너는 안심하고 치료에 전념해라. 우리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청민은 그의 고집을 읽고 눈을 깜빡였다. 긴 속눈썹이 갑자기 젖어 들었다.사실, 그도 할아버지와 몇 년 더 함께하고 싶었다.집에 돌아오니, 성동철이 연락한 해외 전문가로부터 답변이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신의라 불리는 의사가 이미 고청민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청민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성동철을 안심시키며 주제를 돌렸다.“할아버지, 해외로 며칠 다녀오고 싶어요. 오랫동안 여행을 못 갔어요.”“안 돼. 네 몸 상태로는 그렇게 멀리 갈 수 없어!”성동철은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아직 민채린의 스승에게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청민은 말했다.“민채린이 해외에 있어요. 그녀가 옆에 있으면 할아버지도 안심하실 거예요.”“민채린?”성동철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그렇다면 민채린의 스승에게 직접 찾아갈 수 있는 거니?”“제 병에 대해 이미 채린이의 스승님께 여쭤봤어요.”“결과는 어땠니?”“스승님께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정말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래요.”성동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꼈다.결국, 그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래.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네 몸에도 좋을 거다.”게다가 민채린이 옆에 있으니, 문제가 생기더라도 신속히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오늘 바로 떠나려고 해요.”“이렇게 갑자기?”“그냥 즉흥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야죠.”고청민은 말하며 눈치를 보지 않았다
30분 후, 성동철과 고청민이 병실에서 나왔다. 성동철은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의사가 병원에 며칠 더 있으라 했잖니? 왜 말을 안 들어? 적어도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 치료 시간을 늦출 수도 있다고...”고청민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햇살처럼 부드러워 보였다.“괜찮아요. 집에 있는 의료 장비로도 충분해요.”성동철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집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집에 있으면 이 녀석을 더 볼 수 있잖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고...’성동철은 운전기사에게 차를 병원 앞에 대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병원 입구의 벤치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해했다.“지안이 여기 앉아 있지 않았니? 어디 갔지?”고청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고운 속눈썹은 한껏 아래로 드리워 있었다. 눈에 감춰진 복잡한 감정이 보이지 않게 덮여 있는 것 같았다.“그리고 지원이도 보이지 않네. 네가 전화를 걸어 연락해 봐. 이제 집에 가야 한다고...”성동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청민에게 말하며, 심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부재중이었다.고청민은 하지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 바로 말했다.“지원이 오빠가 찾으러 왔어요. 아마도 지안 씨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간 것 같아요. 저희 먼저 집에 가죠.”성동철은 방금 의사가 자신에게 따로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빨리 집에 가서 외국의 의료 전문가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 우리라도 먼저 가자.”‘성연신이 지안이를 데려갔을 수도 있어. 어쨌든 지안이는 다 큰 어른이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넓은 승용차 안에서, 고청민이 갑자기 성동철에게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죽으면 제 심장을 지원이에게 주세요.”어차피 죽으면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일 것이다.성동철은 얼굴빛이 변하며 호통쳤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심지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지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아니야.”심지안은 사랑의 위대함에 감탄했지만, 그런 희생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냐하면 난 인간미가 있고, 지안 씨는 없으니까요. 임시연이 당신 앞에서 죽었을 때, 살아있던 한 생명이 죽었는데도 지안 씨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관심했잖아요.”심지안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지금까지의 무심한 태도를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하지원을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맞아요. 임시연은 내 아이를 훔치고, 내 남자를 빼앗고, 내 결혼을 망쳤어요. 게다가 여러 번 나를 죽이려고 했었죠. 이번에 죽은 사람이 임시연이 아니었다면, 다음번에 죽을 사람은 나일 수도 있어요. 지금 임시연이 죽어서 폭죽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마음이니까,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런 쉬운 소리 하지 마세요!”처음에는 임시연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심지안은 깨달았다. 임시연의 죽음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그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임시연은 살아서 더 많은 사람을 해치려 했기에 어쩌면 이렇게 죽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원은 심지안의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고, 잠시 말을 잃었다.“지원 씨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아니에요. 날 냉정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심지안은 하지원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하지원도 불쌍한 사람일 뿐이었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로 들어가려 했다. 한 발을 내딛자, 하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정말로 청민 선배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거예요? 사람 하나 구한다고 생각해 줘요... 평생 고마워할게요.”심지안은 잠시 멈칫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그건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 강요에요.”심지안은 친구로
성동철은 깜짝 놀라 지팡이도 잊은 채 급히 움직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휘청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집사는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남은 하인들은 손님들을 휴식 공간으로 안내했다. 연회 내내 활기찼던 분위기가 갑자기 혼란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다.심지안은 찡그린 얼굴로 성동철의 뒤를 따라 고청민의 방으로 들어갔다.커튼은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못하게 꽉 닫혀 있었지만, 문을 열자 짙은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하인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전원 스위치를 켜자, 방 안은 갑자기 밝아졌다.우드톤 가구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옷들도 정리되어 소파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심지안은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고청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심지안은 약간 열려 있는 화장실 문을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때, 하지원이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 있어요.”성동철은 떨리는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바닥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고청민은 욕조 안에 누워 있었다. 옷은 물에 젖어 축축하게 몸에 붙어 있었고, 두 손은 욕조 가장자리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묻어 있어 원래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고청민은 말라비틀어진 채 생기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성동철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가락을 고청민의 코 밑에 대어 보았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구급차가 일찍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하인들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고청민을 욕조에서 꺼냈다.심지안은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겁에 질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녀는 혼이 나간 하지원을 바라보았다.“청민 씨...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건가요?”이 상황이 마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았지만, 하지원은 그 말을 입 밖에
심지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했다.“말 좀 해봐요. 정말 시연 씨가 죽길 바란 거예요? 시연 씨가 죽으면 속 시원할 것 같았냐고요!”변석환은 심지안에게 소리쳤다. 울부짖는 변석환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무섭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큰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변요석과 성연신이 먼저 달려왔다. 성연신은 심지안을 보호하며 변석환을 몇 걸음 뒤로 밀어냈다. 성연신의 행동은 냉담하면서도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안 씨 앞에서 임시연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마. 다시 한번 실수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하하하! 살인범을 감싸고 도는 건가요?”변석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맞아요. 시연 씨의 죽음에는 당신과 심지안 씨도 책임이 있어요.”“퍽!”변요석은 변석환의 얼굴을 한 대 때렸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정신 차려. 임시연은 원래 죽어 마땅한 여자야! 더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마!”변석환은 변요석을 바라보며, 맞은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중얼거렸다.“원래 죽어야 했고... 맞아... 나를 속이고 이용했어... 죽어 마땅한 여자야...”하지만 변석환은 스스로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 없었다.임시연이 죄를 지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석환은 여전히 너무나도 힘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를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변요석은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변석환에게 경고했다.“지금 당장 성씨 가문을 떠나. 네가 정신 차리고 지안 씨에게 사과할 준비가 되면... 그때 돌아와.”변석환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비틀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사람들 사이로 문득 익숙한 그림자를 본 것 같았다.변석환은 그 그림자를 쫓아갔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변석환은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고, 그제야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임시
자책하는 심지안을 보는 성연신은 가슴이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연히 아니죠. 임시연의 죽음은 지안 씨와 아무 상관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그런 생각 하지 마요.”심지안도, 성연신도, 그 누구도 임시연이 거기서 뛰어내릴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임시연이 심지안 앞에서 그리고 성원 그룹에서 죽은 건 심지안과 성연신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기 위해서였다.만약 제가 잘못되어 죽는다 해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니까 그걸 노리고 뛰어내렸던 것 같다.성연신도 놀라긴 했지만 직접 본 게 아니니 그리 큰 충격은 받지 않았는데 문제는 심지안이었다.물론 임시연도 죽을 줄은 모르고 뛰어내렸겠지. 그냥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감옥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뛰어내린 걸 텐데 이렇게 죽어버려서 심지안만 힘들어하고 있었다.심지안은 공허한 눈으로 성연신을 보며 웃어보려 했지만 표정이 잔뜩 굳어있어서 웃는 게 우는 것보다 더 이상했다.“당신 말이 맞아요. 임시연은 천벌 받아서 죽은 건데 내가 기뻐하는 게 맞죠.”“그래요, 안 뛰어내렸어도 경찰한테 잡혀서 자유롭진 못했을 거예요.”성연신은 심지안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지안 씨더러 임시연 잡아놓으라고 한 거잖아요. 귀신이 되어도 날 찾아올 거니까 지안 씨는 아무 걱정 하지 마요.”그때 오지석이 사실은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오려 했지만 임시연이 미리 눈치를 채고 송준에게 도움을 청할까 봐 성연신이 말렸었는데 임시연이 이렇게 극단적인 사람인 줄 알았더라면 심지안을 절대 혼자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어요.”긴장이 풀렸는지 심지안이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나 아까 제대로 못 쉬어서 좀 잘래요.”“그래요, 내가 옆에 있을게요.”“네, 할아버지랑 우주한테는 나 병원에 있단 말 하지 마요.”“네.”가족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심지안은 침대에 누웠다.제 앞에 앉아있는 듬직한 성연신을 보니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한편 성연신은
그렇게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누구는 임시연을 구하겠다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고 누구는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직 살아있어요!"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심지안은 사람들의 인영이 환영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도 어지럽고 귀에 까지 이명이 들려 온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임시연이 뛰어내리는 결말을 예상해본적은 없었는데, 3층이 아주 높진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층수도 아니었다.조금 정신을 차린 심지안은 사람들의 질책이 담긴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며 심지안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사모님도 너무 하시지, 어떻게 사람을 뛰어내릴 때까지 몰아붙여? 저러면 밤에 악몽 안 꾸나?""그리고 왜 자꾸 연다빈 씨한테 임시연이라고 하는 거야? 너무 간 거 아니야?""다빈 씨가 죽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럼 사모님이 살인자 되는 거야?""다빈 씨가 귀신 돼서 사모님한테 복수하겠다고 찾아올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심지안은 이마에 힘을 주며 소리질렀다."내가 몰아붙인 거 아니고 본인이 뛰어내린 거야. 나랑 상관 없다고."심지안의 호통에 수군거림은 사라졌지만 그녀를 보는 시선은 여전히 매정했다.다들 "연다빈"에게 일이 생기면 심지안 책임으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었다.심지안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현기증을 이겨내려 했다. 그리고 구급차를 부르려고 뒤를 돌 때 마침 이곳으로 뛰어오는 성연신과 오지석을 발견했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성연신이 빠르게 다가와 심지안의 어깨를 잡으며 주드럽게 다독였다."괜찮아, 내가 왔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속눈썹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던 심지안은 마침 다가오는 성연신을 보고 무슨 말이 라도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시간이 조금 흘러 심지안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흰 벽과 소독약 냄새, 그리고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성원 그룹 직원 자살 사건은 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