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말없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더는 민채린을 상대하지 않고 말이다.영상은 길지 않았다. 2배속으로 영상을 다 본 다음 심지안은 고개를 돌려 성연신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이런 식으로 제 죽에도 약을 탔을까요?”무고한 얼굴로 그녀는 악독하고 비열한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겉모습으로만 봤을 때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기 어려워 보였다.특히 소민정은 예전에 잘해온 전적이 있었기에 너무 설치지 않는 한 남은 생은 루갈과 함께 무난하게 살 수 있었다.성연신이 차가운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소민정을 이렇게 쉽게 루갈에서 보내줄 수는 없어요.”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결국 자신도 피해를 보는 상황인 것이다.자신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 뻔하면 과거는 제쳐두고 진작 단념했어야 했다.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하리라는 것을 성연신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소민정의 변화도 불가피했다.다만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처음부터 소민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안철수도 소민정을 필터 낀 눈으로 바라보기는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상관없다.모든 필터는 그들 사이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여지를 남기지 않고 한 방에 깨져버릴 것이.심지안은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말없이 핸드폰을 뒷좌석에 있는 안철수에게 건넸다.안철수는 고개를 떨구고 머리를 흔들며 낮게 말했다.“안 볼래요.”“상처받았어요?”안철수는 고개를 더 숙였다.“조금요.”소민정은 그에게 있어 늘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그가 속상해할 때, 그녀는 그를 격려해주었다.그가 꾸중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를 위로해주었다.루갈이 막 설립되었을 때, 소민정은 안철수에게 매우 좋은 사람 같아 보인다며 의지하고 싶다고 말했었다.그 뒤, 그녀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자 안철수는 거의 죽을 만큼 괴롭고 슬퍼했다. 하지만 다행히 상연신이 해외에서 유명한 의사를 데려와 그녀를 살려냈다.그렇게 하루 또 하루가 지나 그녀는 마침내 깨어났다.하지만 눈 깜
‘여자 혼자 밤길을 걷는 건 위험할 텐데...’심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미 브레이크를 밟은 상연신이 백미러를 통해 민채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리셔도 됩니다.”그러자 민채린은 단호하게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상연신은 문을 닫았고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는 민채린과 동행하는 것에 전혀 이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성우주와 심지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생사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다 생각했으니 말이다.심지안이 말했다.“철수 씨 말이 좀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상연신은 머리를 끄덕였다.“조금 그렇긴 했어요.”안철수는 묵묵히 차 뒤를 바라보더니 이내 차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민채린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점점 사라져갔다.‘내 말이 조금 지나쳤을진 몰라도... 어쨌든 채린 씨도 좋은 여자는 아니잖아?’마음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안철수는 그걸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그럼 왜 채린 씨 내리게 그냥 놔둔 거예요?”심지안은 이해하지 못했다.“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그렇죠. 왜요? 그럼 안 돼요?”상연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지어는 정말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그러자 심지안의 입가에 있던 미소가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고는 묵묵부답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상연신도 본인 관점에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내일 엄 교수님한테 가야 하니까 오늘은 푹 쉬어요.”“알겠어요.”내일의 계획을 언급하자, 심지안은 순식간에 안철수와 민채린의 시비를 뒤로한 채 조금 긴장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그녀는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어떤 방식으로 최면을 풀어야 할지 몰랐다.‘만약 치료에 실패하면, 난 정말 정신병자가 되려나...’...오늘 밤, 심지안 뿐만이 아니라 안철수도 마찬가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는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다가는 벌떡 일어나 달빛을 올려다보기도 했다.그러다 마침내 핸드폰을 들고 소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죄송합니다,
엄 교수는 처음으로 환자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그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을 느꼈다. 심지안이 현재 상황이 되기까지, 그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었다. 만약 제자에 대한 믿음이 없었더라면, 고청민의 말만으로 절대 진료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때 도윤지가 들어와서 알렸다.“교수님, 예약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행하셔야 합니다.”엄 교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컨디션을 조절하며 진료 준비에 들어갔다....최면을 깨우는 일은 긴 시간이 걸리는 진료에 속했다.오전 내내 진료를 보고 난 후, 최면 해지술이 종료된 후에는 심리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3일 동안 병원에 머무르게 된다.성연신은 정욱에게 노트북을 가져다 달라고 하며, 밖에 앉아 업무를 보며 심지안을 기다렸다.도윤지는 진료실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탁자 앞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는 성연신을 마주하게 되었다.셔츠의 단추를 가장 위까지 단정하게 채운 성연신이 일에 집중한 프로패셔널한 모습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심리학 연구소 전체가 그로 인해 빛나는 듯했다.그런데 그의 안색은 어두웠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때때로 고개를 들어 심지안의 병실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미간을 찌푸렸다.도윤지는 한참 동안 성연신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고청민과 같은 따뜻한 남자를 좋아하지만, 눈앞 남자의 잘생긴 얼굴과 품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반인들이 감히 넘보지도 못할 대상이었다.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명의 뛰어난 남자의 마음은 모두 심지안을 향해 있었다.도윤지는 자기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신이 예쁘장하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 정말로 야속하다고 탄식했다.그녀는 한쪽으로 가서 휴대전화를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하지원의 SNS를 보게 되었다.며칠 동안 하지원은 몇 장의 사진을 더 업데이트했는데, 모두 고청민과의 행복한 일상을 과시하는 것들이었다. 일부는 고청민을 위해 만든 요리를
도윤지는 놀람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다.놀란 이유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고청민은 정말로 심지안을 잊지 못한 채로 지내고 있었고, 하지원과 함께한 것은 모두 연극에 불과했다.그럼에도 슬펐던 이유는 고청민의 마음속에 여전히 심지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민은 아직도 전혀 좋아할 만한 가치가 없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었다.도윤지는 쑥스러워하며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청민 선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언제부터 엄 교수님과 연락하기 시작했던 거야?”고청민은 그녀의 안부를 무시하고 바로 물었다.“음... 어제였어요.”“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고 있어?”“그 부분은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서 엿들을 기회가 없었어요. 단지 그들이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었다는 것만 알고 있어요. 심지안 씨가 떠난 후로 교수님의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로 오늘의 수술을 준비하고 수술실을 세팅하셨어요. 심지안 씨에게 직접 시술하려고 한다는 것 외에는 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어요.”그녀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선택했다. 지금까지는 업계의 엘리트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업계의 일부 전문 용어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고청민은 매우 오랫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청민 선배? 듣고 계세요?”“...”“괜... 괜찮으세요?”그의 숨결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억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태양을 가린 검은 구름이 늘어져, 한 줄기도 빛조차 새어 나갈 수 없는 영원히 어둠 속에 잠긴 사람처럼 느껴졌다. 햇빛을 보고 싶지만, 동시에 기꺼이 어둠 속에 잠식되고 싶다고 심정을 대변하듯 말했다.“괜찮아...”다음 순간, 고청민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저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욱 부드럽고,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심지안이 치료를 마치면 나에게 알려줄 수 있겠어?”고청민의 요청에 대해 도윤지
작고 습하고 낡아빠진 숙소는 꿉꿉한 냄새를 풍겼다.임시연은 회색 린넨 롱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화장기가 없는 얼굴로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미 바랜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쓸어내며 서서히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눈물이 고인 두 눈에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넘쳐났다.“심지안이 선을 넘은 거예요. 성연신을 놓아줬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지긋지긋한 이 싸움을 끝내지 않고 저와 석환 씨 사이를 강제로 갈라놓으려고 해요. 덕분에 저는 집도 없이 떠돌고 있어요. 이 세상에서 심지안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일 것입니다. 이래도 저를 믿지 못하겠어요?”소민정은 시선을 돌리며 얼굴에 두려움이 스쳤다.“당신이 심지안을 싫어하는 걸 알고 있고, 나도 그녀를 싫어하지만, 우리에겐 심지안을 적대할 만한 힘이 없어요.”“우리의 손에 피를 묻힐 필요는 없죠.”“세부적으로 말해봐요.”“안철수 씨가 민정 씨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지금 그는 성연신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부하죠. 안철수 씨를 이용해 보아요.”이 말을 들은 소민정은 단번에 임시연의 뜻을 알아챘다. 그리고 어제 안철수가 망설이던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분노를 느꼈고 경멸하는 어투로 대답했다.“안철수 씨는 그저 겁쟁이일 뿐이에요. 연신 오빠 앞에서는 방귀도 못 뀔 거예요. 그에게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어요.”“그것은 민정 씨가 그에게 준 유혹이 부족해서 성연신을 배신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죠.”“하하하, 안철수 씨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그는 연신 오빠의 하인인데, 어떤 개가 주인을 배반하겠어요?”임시연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개가 주인을 물어 죽인 사례는 끊임없이 나타났어요. 이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자신의 매력을 믿어요.”소민정은 그녀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저에게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면서 스스로는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거예요?”“그럴 리가요... 저도 안철수처
엄 교수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머리를 흔들었다.“환자는 치료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진정제를 주사했습니다. 정확한 상태는 깨어나서야 알 수 있습니다.”“대략 언제 깨어나나요?”성연신이 다그치며 물었다.“하루에서 사흘 정도 걸릴 수도 있습니다.”엄 교수가 말을 이었다.“여기서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 가서 쉬세요. 환자가 깨어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괜찮습니다.”엄 교수는 성연신이 쉽게 뜻을 굽히지 않을 것이라 느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도윤지에게 심지안의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지시했다.성연신은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심지안의 침대 옆으로 빠르게 걸어가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겼다. 그는 심지안의 입술이 갈라진 것을 보고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간호사에게 면봉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적셔주었다.“듣고 있어? 멍때리고 무슨 생각하는 거야?”엄 교수가 도윤지를 바라보며 언짢은 기색을 띠고 말했다.그러자 도윤지는 급히 성연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의 사항을 메모하기 위해 노트를 꺼냈다.“계속 말씀해 주세요.”“그게 다야. 주로 환자의 심전도 변화를 관찰해야 해. 이상이 발생하면 반드시 즉시 나에게 알려야 해. 약물은 세 시간마다 교체해야 하고, 탁자 위에 있는 병들을 모두 사용한 후에는 주삿바늘을 뽑아야 해.”“네, 알겠습니다.”엄 교수님은 지시를 내리고 떠났다. 그는 도윤지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도윤지도 성연신이 있는 쪽을 응시하다가 뒤이어 떠났다.휴게실.도윤지가 막 앉았을 때, 집에서 부모님이 전화를 걸어왔다.“지난번에 말한 맞선 상대는 마음에 드니? 마음에 든다면 만나보렴. 이제 나이도 적지 않으니, 결혼할 때가 되면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지 않겠니? 너희 아빠와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을 때 서둘러 결혼해야지...”“엄마, 그만 하세요. 그 남자는 서른 살이나 됐는데, 월급으로 고작 300만 원을
“아직 밥 안 먹었죠? 이건 제가 대표님에게 드린 건데, 한 그릇이 남았으니 괜찮다면 드세요. 수고스럽겠지만 심지안 씨를 잘 돌봐줘요.”정욱은 들어오는 도윤지를 보고 테이블 위에 있는 초밥 세트를 손에 쥐고 건넸다.작은 구름 모양의 마크가 붙어 있는 정교한 손잡이가 상자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도윤지는 이 가게가 제경에서 유명한 일식집인 것을 알고 있었다. 가게의 식재료는 모두 당일 외국에서 공수해 오는데, 가격도 음식 퀄리티만큼 비쌌다. 정욱이 준 이 도시락만 해도 10만 원 이상일 것이었다.도윤지는 한 번 가서 먹어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괜히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도시락을 건네받았다.“고맙습니다.”정욱은 웃으며 말했다.“참, 저번에 연구소에 왔을 때 미안했어요. 제가 너무 조급해서 태도가 좀 별로였죠.”도윤지는 눈썹을 약간 치켜세웠다가, 다시 표정을 숨겼다.“그랬었나요? 벌써 잊어버렸어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지안 씨가 아플까 봐 걱정되네요, 주삿바늘을 뽑을 때 좀 살살해 주세요.”도윤지는 정욱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가 도시락까지 챙겨준 것은 심지안에게 잘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거야…’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이렇게 챙겨주었다면 그녀는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안에게는 깊은 질투만 느꼈다.약을 갈고 나서 성연신은 눈을 치켜들고 도윤지가 떠나는 쪽을 흘겨보았다.이때 정욱이 급히 설명했다."대표님, 뭔가 언짢아 보여서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했습니다.”정욱은 보광 그룹이 발전하기 전부터 성연신과 함께 해왔고, 성연신이 처음에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니었을 때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창업 초기에는 항상 어려움이 많았다. 성연신의 오른팔로서 정욱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때로는 아부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정욱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고, 성격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상대방의 기분이 좋고 나쁨을 한눈에
정욱은 어째서인지 눈앞의 여자가 수상하다고 느꼈다. 그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도윤지는 그의 눈빛을 눈치채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요? 왜 계속 저를 쳐다보시는 거죠?”정욱은 머쓱하게 웃으며 아무 일 아니란 듯 말했다.“아니... 다름이 아니라... 너무 예뻐서 눈을 뗄 수 없었어요.”정욱은 속으로 자기 뺨을 후려갈겼다.‘양심 없는 짓이야! 눈 뜨고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양심 없는 짓이야! 벼락 맞지는 않겠지?’도윤지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얼굴에 수줍음을 띠고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자신이 심지안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고작 비서 따위는 성이 차지 않았다.“정욱 씨, 무슨 소리예요!”진유진은 언제 왔는지, 그녀는 병실 입구에 서서, 두 손을 허리에 짚고, 화난 얼굴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거의 그 자리에서 정욱을 때릴 뻔했다.‘예뻐? 어디가 예뻐! 어젯밤에 고백해 놓고 오늘 바로 딴 여자에게 작업이야? 이런 미친X!’정욱은 진유진의 눈빛을 마주치자,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스로도 이 상황을 해명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괜한 소리를 해서... 이제 어떡하지?’도윤지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지만, 오히려 허영심이 배가 되었다. 일부러 가슴을 펴고 진유진 앞을 지나가는 것은 소리 없는 자랑 같았다.“화내지 마세요, 전 이런 타입을 좋아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진유진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녀는 정욱을 내보내고 혼자 심지안을 보살피려 했다.정욱은 어쩔 수 없이 병실에서 나갔다.진유진은 의자를 끌고 심지안의 병상 곁으로 가서 하소연했다.토라진 눈빛으로 링거 튜브에 공기가 있는 것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녀는 사람을 찾기 위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문 쪽으로 향하다가 밖에서 성연신과 부딪혔다.그녀는 링거 튜브를 짚으며 말했다.“때마침 잘 왔네요. 빨리 의료진을 불러요. 링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