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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봉구안이 신혼방으로 돌아오자 아까까지 잔뜩 인상을 쓰며 싫은 티를 내던 최 상궁은 싱글벙글 웃으며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고 시종들에게 일렀다.

그러고는 감개무량해서 봉구안에게 말했다.

“마마, 그동안 황귀비를 제외하고 폐하께서는 한 번도 다른 비빈들에게 밤시중을 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마가 그 선례를 깨신 거예요!”

연상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최 상궁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궁에서 여자의 지위는 황제의 총애와 비례한다지만 존귀한 황후마저 거기에 포함될 줄이야.

봉구안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최 상궁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연상이만 남고 다들 나가 있거라.”

내전이 조용해지자 연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마마, 폐하께서 오시기로 한 것은 우리에게 좋은 일이긴 하나, 이렇게 되면 황귀비와 완전히 척을 지게 되는 거 아닌가요?”

“부인께서는 저희에게 궁에서 적을 만들지 말고 조용히 지내라고 하셨사온데….”

“어머니께서 장미에게도 그러라고 가르쳤더냐?”

봉구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연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이런 교육 방식을 찬성하지 않았다.

사부와 사모께서는 그녀에게 은혜는 배로 갚고 원수도 배로 갚으라고 가르쳤고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유감을 남기지 말라고 하셨다.

사실 봉 부인도 봉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법도대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봉가는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과문이었기에 유독 딸에게는 요구가 엄격했다.

악기, 바둑, 그림, 서시 모든 방면에서 봉가의 딸은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명백한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어 좋은 명성을 유지해야 했다.

장미는 서신에서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언니가 부럽다고 하면서 황후가 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매번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봉장미처럼 유순한 사람이 입궁하여 황후가 되었다면 주변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연상은 봉부의 하인들 중에서 봉구안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경계하다가 다가가서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마마, 저희를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지난 일은 잊으시고 더 이상 입밖으로 꺼내지 마십시요.”

봉구안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멀리 서 있어서 안 들릴 것이다.”

무공을 익힌 그녀였기에 사람이 주변에 다가오면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 능력도 없었더라면 장군이 되기 전 강호를 떠돌던 때에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었을 것이다.

봉구안이 말했다.

“오늘 약을 전달해 주겠다는 핑계로 영소전에 가서 그곳의 호위 진영을 살펴보았다.”

연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건 왜 알아보세요? 마마, 뭘 하시러는 거예요?”

“내 손으로 그년을 죽일 것이다.”

“예?”

연상은 경악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황후가 황비를 척살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니!

한참 후, 정신을 차린 연상은 봉구안을 말렸다.

“안 돼요, 마마. 너무 위험합니다!”

봉구안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건 맞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비라서 그런지 영소전 안팎의 경계가 아주 삼엄하더구나. 처마 쪽에 다가가면 큰일 날 장치도 설치되어 있었고. 아직까진 돌파구를 찾지 못했어. 몇 번 더 가서 살펴봐야 할 것 같아.”

연상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마마, 부인께서는...”

봉구안은 싸늘한 목소리로 연상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잊을 건 잊어야겠지.”

연상은 애처로운 얼굴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봉구안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장미의 복수를 하고 싶거든 내 옆에서 날 보좌하거라.”

“만약 겁나서 나와 뜻을 함께할 수 없다면 내가 무엇을 하든 못 본 척하거라. 만약 일언반구라도 밖으로 새어나가는 날에는 내 친히 네 목숨을 거둘 것이다.”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이 그녀의 발목을 잡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연상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던 봉장미의 얼굴을 떠올리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마마, 장미 아가씨께서는 소인을 친동생처럼 아껴주셨습니다. 아가씨께서 그런 일을 당하셨을 때 소인의 마음도 편치 않았지요. 만약 아가씨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소인도 후회는 없습니다.”

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

“결정을 내린 것 같으니 앞으로는 뒤돌아보지 말거라.”

연상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에 조심스레 말했다.

“마마, 오늘 밤이 지나면 폐하께서도 아가씨가 순결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고 황귀비에게도 소식이 전해질 거예요. 황귀비가 의심이라도 하면 저희는 어떻게 하죠?”

그 점에 대해서는 봉구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일국의 황제이신 폐하께서 침실에서 있었던 일을 총애하는 비빈에게 꺼낼 이유는 없다. 어차피 꺼내 봐야 황귀비의 기분만 나빠질 거니까.”

“그리고 폐하가 그렇게 말하였다고 하더라도 황귀비는 믿지 않을 것이다. 정실이 순결을 잃었다는 건 폐하의 체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니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생각할 테지. 아니면 우리가 미리 방도를 생각해서 이 일을 무마하였다 생각할 것이다.”

“어떤 쪽이든 황귀비는 이 일을 대놓고 조사하진 못할 것이야. 그건 폐하의 체면을 짓밟는 일이니까.”

연상이 말했다.

“하지만 혼례식 전에 태감을 보내….”

“혼례를 치르기 전에는 내가 아직 황후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혼례를 치른 지금 나는 엄연히 이 나라의 국모이다.”

연상은 그제야 안심한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폐하께서 오늘 오시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자정까지 기다렸지만 황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봉구안은 비단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 담담히 말했다.

“오늘은 걸음하지 않을 것 같으니 잠자리에 들자꾸나.”

“예, 마마.”

연상은 내뱉은 말을 지키지 않는 황제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

반면 봉구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편히 누워 잠을 청했다.

자정이 지난 시각, 봉구안은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귓가에 거친 숨결이 느껴지더니 전혀 상냥하지 않은 손길로 그녀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발동한 그녀는 본능적으로 베개맡에 숨겨둔 비수에 손을 뻗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귓가에 잔뜩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후, 지금 짐을 암살하려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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