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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작가: 일설연우
봉구안의 얼굴 그 어디에도 초췌하거나 상심한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황후만 입을 수 있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자녕궁 대문 앞에 나타났다.

청초하지만 싸늘한 기운을 담고 있는 눈동자는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상위자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피부는 황성 여자들이 추구하는 것처럼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이 아니라 건강한 윤기가 나고 분홍빛을 띠는 홍조가 생기를 더했다.

청초하지만 귀티가 넘치는 오관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영비와 닮은 비빈들만 봐온 궁인들은 경국지색의 미모를 보자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황성 제일 미녀라는 소문에 걸맞게 그녀에게서는 비범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

반면 봉구안은 자신의 얼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강호를 떠돌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는 변장을 하고 생활했다.

미모는 그녀에게 짐만 될 뿐이었는데 특히나 군영에서 더욱 심했다.

사모는 그녀가 아까운 얼굴을 괴롭힌다고 꾸중했지만 그녀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봉구안의 뒤를 따르는 연상은 저절로 어깨가 올라가고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대청으로 들어간 봉구안은 태후의 앞에서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신첩, 어마마마를 뵈옵니다.”

태후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황후, 예의 차릴 것 없으니 편히 앉거라.”

곧이어 태후는 주동적으로 황제 얘기를 꺼내며 봉구안을 위로했다.

“황상은 정무가 바쁘셔서 황후에게 조금 소홀히 하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거라.”

봉구안은 담담히 대답했다.

“예, 어마마마.”

그녀와 대화를 나눌수록 태후는 황후가 예상처럼 살갑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안면근육이 굳은 것처럼 딱딱하고 태생이 웃을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분명 연회 때 봤을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사실 상 봉구안은 웃음이 적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그녀의 웃음 한번 본다고 사모가 짖꿎은 장난도 많이 쳤지만 그녀는 유치하다고만 느꼈을 뿐이다.

나중에 장군이 되면서 여자인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딱딱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황후, 무슨 고민이 있느냐?”

태후의 직설적인 질문에 봉구안은 단정한 자세로 담담히 답했다.

“없습니다.”

답은 그게 끝이었고 태후는 점점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재미가 없으니 황제의 마음을 붙잡기는 힘들어 보였다. 태후마저도 심심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평소에 태후의 환심 한번 사겠다고 온갖 달콤한 미소와 아양을 부리던 비빈들을 많이 봐왔기에 묻는 질문에만 딱딱하게 대답하는 황후가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어화원(御花園)에 꽃이 예쁘게 피었다고 들었다. 황후, 나랑 같이 좀 걷자꾸나.”

“예, 마마.”

태후는 바깥에 나오면 황후의 말수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으나 딱히 달라진 게 없었다.

그렇게 어화원 곳곳을 다 둘러보다가 마장 가까이까지 가게 되자 태후는 결국 포기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녕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때, 어디서 뛰쳐나온 건지 말 한 마리가 미친듯이 질주하며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태후의 호위들이 전방에 막아섰지만 곧이어 그들은 충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궁에서 호사스러운 생활만 해온 태후는 이런 장면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은 태후를 목표로 삼은 것처럼 직선으로 태후를 향해 달려왔다. 극도의 공포감에 태후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태후마마를 호위하라!”

계 상궁이 다급히 소리쳤다.

태후가 말발굽 아래 밟히기 일보직전에 누군가가 그림자처럼 신속히 움직였다.

혼란속에서 강력한 힘이 태후를 감싸 옆으로 비켜섰다.

엉거주춤 중심을 잡은 태후는 그제야 자신의 허리를 안고 있는 사람이 황후라는 것을 발견했다.

겉보기에 유약해 보이기만 하던 황후에게 이런 놀라운 힘이 있었다니!

남자에게 안겼을 때보다도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태후가 어리둥절해서 황후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황후는 바로 몸을 날려 말 등에 올라탔다.

북대영에서 말을 조련하는 기술로 봉구안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아무리 성격 고약한 말이라도 봉구안에게 고삐를 잡히면 순순히 항복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고삐를 잡아당기며 양다리로 말 배를 꽉 감쌌다. 성난 말이 아래위로 날뛰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는 중심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말을 타고 질주하는 황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 황후마마!”

태후가 다급히 소리쳤다.

“어서 가서 황후를 구출해라!”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황후는 말을 타고 어화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말은 발광을 멈추고 고분고분 황후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봉구안이 말에서 내리자 연상이 울상을 지으며 달려갔다.

“마마! 어디 다친 데 없으시죠?”

봉구안은 고개를 저으며 태후에게 말했다.

“어마마마, 걱정 마세요. 이 녀석은 제가 진정시켰습니다.”

태후는 놀랍기도 하고 감사한 눈빛을 담아 황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황후, 기마술은 언제 배웠느냐? 내 오래 살았지만 이런 장면은 처음 보는구나.”

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신첩은 어릴 때 아버지 모르게 외숙부를 따라 기마술을 배웠습니다. 어깨너머로 대충 배운 거라 내세울 것이 못 됩니다. 어마마마를 구할 수 있어서 저도 기쁩니다.”

이때, 마장 관리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황후가 발광하는 말을 복종시켰다는 말을 듣고 그 역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마, 이 녀석은 서역에서 보내온 야생 말인데 평소에 멀쩡하다가 갑자기 통제를 잃고 날뛰는 바람에 저희들도 미처...”

봉구안은 말고삐를 관리에게 건네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를 밴 것 같구나. 그래서 정서가 불안정했던 게야. 게다가 서역에서 남제까지 오느라 많이 지쳐 있었던 데다가 환경이 갑자기 바뀌어서 통제를 잃은 것 같다. 돌아가서 절대 매를 들거나 꾸짖어서는 아니 된다. 오계초를 많이 준비해 주고 혼자 지낼 수 있는 마구간을 내어주거라. 3일 정도 있으면 안정을 찾을 것이다.”

관리는 조목조목 설명하는 황후를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봉구안은 말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게 탄식했다.

“정말 좋은 말인데 안타깝구나.”

광활한 초원을 자유롭게 달려야 할 말이 남제 황궁에 갇혀 지내게 되어서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시각, 어화원과 가까운 관망대.

백색 의복을 입은 사내가 관망대 꼭대기에 서서 봉구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폐하, 황후마마는 참으로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계시군요. 소신마저 감탄했습니다.”

사내의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재주일 뿐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저 말은 참수형에 처하는 거로 하고 황후가 직접 감독하게 하거라.”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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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재미있어요..다음이야기가 계속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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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웹소설은처음인데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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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4. 12. 20. PM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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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후는 소식을 전하러 온 궁인에게 다급히 물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싸움을 먼저 시작한 자가 누구냐?”궁인이 답했다.“몇몇 비빈 마마들이… 녕비마마께 불만을 품고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는 주먹질까지 하게 되면서… 녕비마마는 다른 비빈들 틈에 끼워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 하고 계십니다….”“뭐라고!”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태후는 조카딸이 맞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다시 조바심이 났다.“황후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황후는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냐!”영화궁.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녕비는 이런 치욕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입궁한 이래 황제의 총애도 받지 못하고 꽃 같은 어린 소녀에서 점점 나이만 먹어갔다.이제 한낱 후궁 비빈들마저 자신에게 태후를 등에 업고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랐다고 손가락질하니 참을 수 없었다.누가 먼저 주먹질을 시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뭇 비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고 누군가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심지어 그녀의 얼굴에 대고 침을 뱉는 자도 있었다.녕비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봉구안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군영에서 장령들끼리 비무하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여자들 싸움도 그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연상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후궁 비빈들은 성품이 온화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원숭이 떼가 자꾸 떠올랐다.궁에만 오래 갇혀 있어서 드디어 미친 것인가?연상은 서책에 자주 나오는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야 정서가 안정된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싸움에 가담한 비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빈들은 불똥이 튈까 멀리 피해 있었다.녕비는 혼자서 여러 명을 감당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그녀를 힘껏 밀쳤고 그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뒤통수를 바닥에 찧기 일보직전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6화

    좁은 지하실에서 적을 만나면 둘 중에 한 명은 죽기 마련이다.사내는 진한 살기가 진동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봉구안은 야행복이 아닌 궁중예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만약 일격에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고 스스로 그날 밤 자객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폭군과는 달리 무고한 자를 죽이는 습관이 없었다.‘어차피 주인 명을 받고 움직이는 자야. 악하다고 볼 수 없어.’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너 누구냐? 왜 여기 있어?”순간 소욱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는 황후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고작 두 번 만난 게 다였다.신혼밤에는 촛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이니 당연히 얼굴을 못봤을 것이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욕조에 앉아 그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렇게 생각하니 황후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만 황후가 자신의 비밀을 발견한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봉구안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상대를 관찰했다.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소욱은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척, 공중에 몸을 날려 그녀에게 접근했다.봉구안은 무공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비틀던 순간, 그녀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그의 목에 그어져 있는 은빛 띠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소매에서 은침을 꺼내 그의 뒷목 풍지혈에 꽂았다.순식간에 사내는 힘을 잃은 듯,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그는 침을 제거하려고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이때,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걸 뽑으면 넌 죽는다!”소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봉구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의학을

최신 챕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11화

    선성 밖에서는 매서운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수십만 남제 장병이 다양한 무기를 들고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그 소리는 선성 위를 울려 퍼지며, 마치 갇혀 있던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위압감을 주었다.성 안에서도 그 소리가 선성을 흔들 만큼 강렬하게 울렸다.봉구안은 전마를 타고 성벽을 응시하고 있었다.갑옷 아래 드러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대단한 힘이 느껴졌다.성문은 이미 단단히 닫혀 있었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상태였다.성루 위에서는 단춘이 놀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었다.그 옆의 부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장군, 저건 동방군입니다. 대체 어떻게 선성에 나타난 걸까요?! 분명 감주에 있어야 할 자들인데…”하늘에서 날아온 것도 아닐 텐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까?북연의 황제는 성 밖 동방군의 존재에 크게 분노했다.그는 단춘의 옷깃을 움켜잡고 호통을 쳤다.“감주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그런데 이게 대체 뭐냐! 단춘, 정말 잘도 해냈구나!”단춘은 당혹스러웠다.본인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이었기에 황제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그때 수화부 연합군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남제가 당신들을 속인 게 확실하군!”황제는 점점 격분하며 단춘을 더욱 매섭게 쏘아봤다.“동방군이 너희 뒤를 따라왔는데도 모르다니, 이런 실력으로 남제를 우리 북연과 나누겠다고? 정말 가소롭구나!”단춘은 황제의 손을 뿌리치며 반박했다.“폐하, 성 밖에 있는 건 일부 동방군에 불과합니다.”“게다가 우리 동부 연합군만 속은 것도 아닙니다.”“남부 연합군인 수화부는 어땠습니까? 그들이 남제군을 알아챘습니까? 똑같이 속았으면서 왜 저희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동부 연합군의 장수들도 이에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남제의 계략은 워낙 교묘합니다. 감주를 언제 빠져나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습니다.”“폐하, 북부 연합군이라고 해서 뒤따라오는 남제군을 완벽히 파악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그만들 하십시오.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10화

    강력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어리석은 동맹이었다.단춘은 선성의 옥석비를 손에 넣고 싶었지만,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그는 정정당당히 조유관을 공략하며 남제에 진입했다.그런데 수화부 연합군은 도대체 뭘 하는가?공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동부 연합군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것은 아닐까?그들의 이런 태도는 단춘을 화나게 했다.그렇다고 이미 도착한 연합군을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결국 단춘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모두 들어라. 먹을 것도 쉬는 것도 뒤로 미뤄라.”“다른 나라보다 앞서 선성에 도달해야 한다!”“예!”……감주.대하국 연합군은 성 밖에서 남제 동부군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남제 황후 봉구안이 이미 거미줄이라 불리는 비밀 통로를 통해 대군을 이끌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말이다.그녀는 소수의 병력을 남겨 감주에 대규모 병력이 주둔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이 계책에 말려든 동부 연합군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그 사이, 봉구안의 동부군은 비밀 통로를 통해 이미 묵성에 도착해 있었다.그곳에서 그녀는 동방세를 만났다.동방세는 거미줄 비밀 통로의 마지막 관문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그는 고된 작업 중에도 농담을 잊지 않았다.“이번 거미줄 개조를 위해 황제께서 이 장군의 10만 대군을 내게 맡기셨소.”“덕분에 난 한동안 대장처럼 군림하며 유세를 떨었네.”황제가 보낸 인력 덕분에 그는 북부와 동부의 거미줄 비밀 통로를 효율적으로 개조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관문만 마무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봉구안은 그의 쇠약해진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동방세, 남제 장병들을 대신해 깊이 감사의 뜻을 전하네.”“선성으로 갈 계획이오?”동방세가 웃으며 물었다.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동방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여기 작업만 끝내면 범진과 함께 선성에서 보도록 하세.”그는 선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직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9화

    남강.서왕은 수화부 연합군의 갑작스러운 철수가 단순한 계략일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밤중에 직접 확인한 결과, 그들의 철수는 패주와 다름없었다.식기조차 챙기지 못하고 떠난 흔적이 역력했으며, 모닥불조차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조사를 거듭한 끝에, 수화부 연합군이 선성의 보물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서왕은 당황스러웠다.적군이 사라졌으니, 그는 계속 방어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한편, 수화부 연합군은 선성을 향해 급히 북진하며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병사들은 강추위를 뚫고 말을 달리며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선두에서 말을 탄 장수가 외쳤다.“장군의 명령이다! 속도를 더 내라!”병사들은 지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우리가 가봤자 보물이 우리 손에 들어올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둘러야 하나?”“그러게! 선성 보물 얘기를 듣자마자 진지를 철수했지만, 보물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잖아. 그 유명한 옥석비도 하나뿐인데, 그게 우리 차지가 되겠어?”“명령이 내려왔으니 따를 수밖에. 우리가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동산국 황궁.동산국 황제는 어마장에서 여전히 기력이 넘쳤다.오십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연이어 과녁 중심을 명중시켰다.곁에 있던 신하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폐하, 수화부 연합군이 남강 공격을 포기하고 북상하여 조유관으로 향했다고 합니다.”조유관은 대하국 연합군이 최초로 돌파한 약점이었다.더 많은 연합군이 조유관으로 몰려드는 상황은 연합군에게 유리했다.그러나 그로 인해 남부 방면의 공격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황제는 활을 내려놓았다.머리칼에는 은빛이 드리워졌지만, 여전히 강인한 모습이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담대연의 소식은 알아왔느냐?”“담대연은 여전히 남제에 억류되어 천옥에 갇혀 있습니다.”황제는 다시 활을 들어 두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한 번의 발사로 과녁을 뚫자, 곁에 있던 신하가 찬사를 보냈다.“폐하, 화살로 만물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8화

    남강.서왕의 어깨는 부상으로 아파왔고, 완부옥은 표면적으로는 화목한 부부처럼 행동하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막상 군막 안에 들어가면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으로 나뉜 듯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완부옥은 저녁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배가 부른 상태였다. 갑작스런 복통에 허리를 구부린 그녀를 보자, 서왕은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유화! 군의를 데려오라!”그는 완부옥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했다. 하지만 완부옥은 그저 체한 것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필요 없습니다!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십시오.”내심 불안했던 그녀는 거짓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벌레가 최근에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태아의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군의가 와서 진찰을 하면, 모든 게 드러날 위험이 컸다.서왕은 그녀의 상태가 진정되는 것을 보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녀를 침대에 앉힌 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아이는 괜찮은가?”그의 시선은 그녀의 배로 향했다. 완부옥은 워낙 마른 체형이라 배가 불러도 잘 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느슨한 옷을 입고 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서왕은 그녀의 진짜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일반적인 임산부라면 나타날 만한 불편함이 완부옥에게는 전혀 없었다. 이런 점들이 서왕에게 의심을 품게 했다.그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졌다.“우리 아이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드디어 이 남자가 의심하기 시작한 걸까? 완부옥은 식은땀을 흘리며 속으로 초조해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을 유지했다.“어머,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제가 어미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겠어요?”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깃을 살짝 건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솔직히 말해라.”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완부옥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평소에는 성격이 부드럽던 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7화

    대하 연합군은 묵성을 함락한 뒤, 곧바로 선성을 향해 진격했다.장수들 중 신중한 성격의 인물이 말했다.“단 장군, 지금까지의 남제 원정이 너무 순조롭습니다.”“선성에서 매복을 준비한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단춘 역시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동부군은 현재 감주에 주둔 중이었다.그는 전력을 선성으로 보내면서도 일부 병력을 감주로 보내 허위 공격을 감행하고, 동부군을 묶어두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만약 선성에 매복이 있다 해도, 우리의 10만 대군에 북부 연합군까지 합하면 수십만 병력인데, 선성 하나를 못 뚫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그럼에도 신중한 장수는 여전히 망설였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남제의 전략은 적을 깊이 유인하려는 술책 같습니다.”“단 장군, 처음 계획대로 동부군을 견제하며 진격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단춘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 짜증을 드러냈다.“유인이라니? 남제가 그렇게 어리석어 감주를 내놓고 선성에 매복을 펼친다는 말인가?”“만약 남제가 유인책을 쓴다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감주로 끌어들이는 것이겠지!”“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둬라. 만약 북연이 먼저 선성에 도달해 옥석비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북연의 손발 노릇을 하게 될 거야!”“북연이 동부를 맡으라고 한 것은 그들이 다 해먹으려는 술책일 뿐이다.”“기다릴 테면 기다려 봐. 하지만 대하는 그렇게 바보처럼 속지 않는다!”선성은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북연 황제 역시 선성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그들은 남하하는 도중 남제 잔병들에게 여러 차례 매복 공격을 받았으나, 모두 격퇴시키며 계속해서 진격했다.남제군이 계속 후퇴하면서,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졌다.그러다 어느덧 설날 전야가 되었다.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달리 정적이 감돌았다.백성들은 해가 지자마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설날을 맞이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전란을 피해 숨으려는 모습이었다.황성.궁궐 안, 후궁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의지하며 밤을 지새웠다.그들은 한 손에 작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6화

    군막 안.서왕은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앉아 있었고, 군의가 그의 상처에서 독을 빼내고 있었다.예리한 단검을 손에 쥔 군의가 상처를 살피자, 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두꺼운 수건을 꽉 깨물었다.그 모습을 본 완부옥이 눈썹을 찌푸렸다.“이미 독화살을 뽑아냈는데, 왜 또 칼을 드는 거죠?”호위 유화가 대신 답했다.“군의께서 남아 있는 독을 빼려면 살을 도려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듣자마자, 완부옥은 소리 내어 웃었다.“살을 도려낸다고? 군의가 혹시 적국에서 온 첩자가 아닐까요?”그녀의 말에, 군의의 손이 떨렸다.“부인, 어찌 그런 망언을!”서왕은 입에 물고 있던 수건을 깨물며 눈빛으로 완부옥에게 조용히 하라는 경고를 보냈다.그러나 그녀는 군의를 밀어내고 서왕의 상처를 살폈다.피부가 갈라지고, 독이 퍼지며 상처 주변이 검게 변해 있었다.흔한 여인이라면 얼굴을 돌리며 기겁했을 터였다.그러나 완부옥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그녀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무심하게 말했다.“이게 그렇게 심각한 건가? 별거 아니네.”그 말에 유화는 참지 못하고 외쳤다.“부인, 아직 독이 남아 있습니다! 군의께서 말하길 어서 전하의 몸을 도려내 독을 빼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완부옥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독을 빼는 방법이 꼭 살을 도려내는 것뿐인가?”그녀는 품 속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냈다.군의는 그것을 보며 해독약이라고 생각했다.유화 또한 그럴 것이라 짐작했다.그러나 항아리가 열리자, 그들이 본 것은 해독약이 아니었다.완부옥은 맨손으로 뚱뚱하고 하얀 벌레 하나를 꺼내더니, 서왕의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군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전하! 조심하십시오! 저것은 독충입니다!”유화도 경악하며 외쳤다.“부인, 대체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시끄럽다!”완부옥은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한번만 더 내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군의는 이성을 잃고 외쳤다.“남강의 독충은 맹독입니다! 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5화

    대하 사국 연합군이 묵성을 함락시키려 진격했을 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묵성은 조유관과 똑같이, 텅 비어 있었다."말도 안 돼!"단춘은 차마 현실을 믿지 못했다.이 짧은 시간 동안,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이란 말인가?그들이 모두 감주로 이동한 것일까?그때, 정찰병이 헐레벌떡 뛰어왔다."보고 드립니다! 장군! 묵성에 적군이 없습니다!"연합군은 도시 곳곳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단 한 명의 인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심지어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니..."묵성은 한때 인구가 많은 번화한 도시였다.그런데 지금은 마치 유령 도시가 되어 버린 듯했다.연합군은 묵성에 주둔했지만, 밤이 되자 몰아치는 한파와 함께 불길한 분위기가 마을 전체를 감쌌다.캄캄한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바람이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병사들은 모닥불을 피워 음식을 끓이려 했지만, 그제야 그들은 깨달았다.‘군량이 얼마 남지 않았어.’주군이 모여 있는 대장막 안.장수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단춘을 바라보았다."단 장군, 이건 분명 남제의 계략입니다!""우리가 이미 두 번이나 빈 성을 마주하면서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졌습니다.""더욱이, 우리는 전쟁을 통해 식량을 보충하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얻은 것은 없습니다!""장군! 이곳에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내일도 계속 진군하시겠습니까?"단춘의 표정은 냉랭했다.눈빛은 날카롭게 빛났고,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묵성이 비어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감주로 이동했을 것이다.""그러나 감주에 적의 매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섣불리 공격할 수 없다."그는 고개를 들어 정찰병을 바라보았다."북연은 어떤가? 북부 연합군은 어디까지 진격했지?"정찰병이 빠르게 답했다."장군! 북부 연합군은 이미 풍양까지 진격했습니다.""풍양은 작은 군현으로, 바로 인근에 있는 박주를 넘어가면, 그다음은 곧바로 선성입니다!"회의실은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북연군의 속도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4화

    이촌은 그야말로 유령 마을이 되어 있었다.사람의 흔적조차 없었다.연합군은 황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고, 북연 황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지막 생존자를 끌어오라 명령했다.화살에 맞은 병사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끌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폐하, 분명 이곳입니다! 바로 이 마을에서 기습을 당했습니다!”하지만 북연 황제는 차가운 시선으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귀신조차 보이지 않는구나.”조사에 나섰던 정찰병들도 나섰다.“폐하,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에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북연 황제의 손이 힘껏 말고삐를 쥐었다.“찾아라.”병사들은 마을 곳곳을 수색했지만, 백성은커녕 전날 죽은 병사들의 시신조차 사라져 있었다.그 순간, 눈보라가 더욱 거세졌다.쌓인 눈이 빠르게 대지를 덮으며 모든 흔적을 삼켰다.북연 황제의 눈빛이 점점 날카로워졌다.“행군을 계속한다.”남쪽으로 내려가는 길,남제의 백성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임현에 도착했을 때도 상황은 같았다.원래라면 사람이 넘쳐나야 할 곳,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병사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졌다.“이건 이상하다. 아무리 전쟁이 나도, 이렇게까지 흔적 없이 사라질 리가…”“설마, 남제 황실이 모든 백성을 대피시킨 건가?”전쟁이 벌어지면, 백성들은 피난길에 오르기 마련이었다.이는 그리 드문 광경이 아니었다.그러나 이번은 달랐다.정찰병들이 조사한 결과, 십 리 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그것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북연 황제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조용히 시켰다.“정찰병을 보내라.”이튿날 새벽.한 정찰병이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폐하, 확인된 바에 따르면 남제 황실은 일찍이 백성들을 남쪽으로 대피시켰습니다!”“그들이 향하는 곳은… 선성입니다!”선성.남제의 전략 요충지이자, 철벽 방어를 자랑하는 도시.이곳만 함락하면, 남제 황궁까지 진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북연 황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03화

    동방이 함락된 데 이어, 이번에는 북방까지 무너졌다.끝없는 위기였다.조정 대신들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궁중 곳곳에서는 남제가 정말 끝장나는 것이냐는 말이 오갔다.그러나 용상에 앉은 소욱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그는 남제의 황제,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질 수 없었다.조정이 파한 후, 문무백관들은 삼삼오오 모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찌 된 일인가! 북방이 무너졌다니!”“연합군은 어디까지 쳐들어온 것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방이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는가!”“황후마마께서 그토록 신중하게 군을 이끌었음에도 동부를 지키지 못했으니, 서부와 남부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겠군.”혼자의 힘으로 십여 개국의 연합군을 막는 것은 결국 무리였던 것일까.많은 대신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황궁 안.궁궐 안에도 불안감이 퍼졌다.후궁들은 벌써부터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했다.그들은 조묘의 난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성이 무너지고 적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가축과 다를 바 없어요.”“북연은 호랑이 같은 나라라더니… 그들에게 잡히면 끝장입니다.”그녀들은 북연과 대하의 야만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포로가 된다면, 그들에겐 지옥보다 더한 운명이 기다릴 터였다.자녕궁.자녕궁에서도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녕비는 잔뜩 겁에 질린 채 태후에게 물었다.“고모님… 남제는 정말 망하는 겁니까?”태후는 이미 곳곳의 정보를 통해 전황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태평성대에는 꽃이 피지만, 난세에서는 한낱 들풀에 불과하구나…”“내가 널 지키지 못할 날이 올 수도 있다. 어서 이 병을 받거라… 들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사용하거라.”그녀는 조용히 손을 뻗어, 작은 약병을 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그 의미는 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녕비의 손이 떨렸다.그녀는 약병을 쥔 채, 눈을 뗄 수 없었다.“고모님…”태후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애처롭게 미소 지었다.“내가 너를 궁에 들인 것은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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