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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어차피 한번은 경험해야 할 일이었고 예상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솔직히 폭군에게 첫날밤을 바치는 것보다 차라리 이 방법이 더 나았다.

적어도 치욕스럽게 사내의 밑에 깔리지 않아도 되니까.

봉구안은 하얀 치마자락을 찢어 손수건 대신 침대에 받쳤다.

그리고 한손으로는 치마자락을 들고 한손에는 비수를 들었다.

이미 하기로 한 일이지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그냥 전장에서 부상당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어릴 때부터 수많은 부상을 이겨내며 살아온 그녀였다.

곧이어 그녀는 칼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갑자기 뻗어나온 손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봉구안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소욱은 그녀의 손에서 비수를 빼앗고 아까보다 더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군.”

챙그랑!

말을 마친 그는 비수를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다.

“어차피 네가 순결한 몸인지 아닌지 짐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렇게까지 해가며 황후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더 이상 멍청한 짓은 하지 말거라. 예를 들면 짐이 영소전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짐을 만나겠다고 거기까지 찾아오지 말란 말이다.”

봉구안은 이를 악물었다.

폭군은 그녀가 관심을 끌려고 찾아간 거라 생각하고 그녀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하기 싫은 걸음을 한 것이었다.

어차피 밤시중을 들라는 말을 강조한 것도 일부러 그녀를 농락하기 위함일 것이다.

참으로 잔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방식이 당신의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에게는 소용 있을지 몰라도 나한텐 안 통하지.’

그녀는 처음부터 황제의 총애를 바라고 입궁한 게 아니니 오히려 그녀가 원하던 상황이었다.

봉구안은 신속히 옷섶을 여미고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폐하, 신첩이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시는 폐하의 총애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폐하께서 황귀비를 애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신첩 앞으로 귀비를 친자매처럼 여기고 폐하를 대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귀비를 대할 것이옵니다.”

그녀가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예상대로 사내는 더 이상 그녀에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했다.

“봉가에서 길러낸 이 나라의 황후답군.”

그 말을 끝으로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을 나가버렸다.

곧이어 안으로 들어온 연상이 촛불을 밝혔다.

엉망이 된 침대와 옷매무새가 흐트러지고 목에 시뻘건 손자국까지 달고 있는 주인을 보자 연상은 가슴이 저렸다.

이게 무슨 황후 대접이란 말인가!

그리고 합방이 이리 빨리 끝난 것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굳이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마마, 소인이 몸을 닦아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봉구안은 싸늘한 목소리로 거절한 후, 맨발로 침대를 내려 바닥에 떨어진 비수를 주워들었다.

연상은 황제와의 합방이 신혼 첫날밤에 무산되었다는 소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비수를 들고 있는 봉구안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설마 황귀비를 척살하려고…’

그녀가 예상한 암살은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몸을 사렸다가 일격에 상대를 하늘나라로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봉구안이 하는 걸 보면 대놓고 적 동향을 관찰하고 게다가 황제 앞에서 비수까지 내보였다.

연상은 점점 더 겁이 났다.

주방.

최 상궁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왜 목욕물을 시키지 않는 거지? 폐하께서 납셨는데 왜?”

황제가 납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친히 목욕물을 준비하려고 주방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최 상궁이었다.

그런데 최 상궁의 그런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 시각 영소전.

능연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황제가 떠난 이후로 그녀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한참 후, 시종이 그녀의 침실을 찾았다.

“마마, 황후궁에서 목욕물을 시키지 않았답니다.”

능연은 그제야 어여쁜 미소를 지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폐하께서는 절대 다른 여인을 품지 않을 것이야.”

시종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황후마마의 처지도 불쌍하네요. 폐하를 오래 기다렸다고 하던데 얼마나 첫날밤을 기대했겠어요. 폐하가 오시자마자 상궁 시켜서 목욕물을 데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허탕이라니 상심이 얼마나 클까요?”

영소전 뿐이 아니고 다른 비빈들도 황후궁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황후가 황제와 합방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리자 다들 예상했다는 듯이 한숨만 쉬었다.

다음 날, 자녕궁.

어젯밤 얘기를 전해들은 태후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황상이 황후궁까지 걸음했는데 황후가 그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냐!”

계 상궁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아마 봉 부인께서 황후마마께 부부의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폐하의 마음을 다잡지 못한 거겠지요.”

태후의 두 눈이 음침하게 굳었다.

“됐다. 황상이 능연 그 계집을 총애하며 다른 비빈들을 무시한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봉장미는 영비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황상의 마음을 움직이기 힘든 건 당연하지.”

혼례를 올린 다음 날 황후는 황제와 함께 태후궁을 찾아 태후께 문안 인사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황후는 혼자 자녕궁을 방문했다.

자녕궁 궁인들도 그것에 대해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 동안 황제와 같이 출입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오로지 황귀비뿐이었다.

황귀비와 첫날밤을 치른 뒤, 황제는 그녀를 이끌고 자녕궁에 문안을 올리러 오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황제의 관심을 받지 못한 황후가 잔뜩 기죽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봉구안이 도착하자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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