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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일설연우
서왕 역시 자녕궁에 문안 올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황후를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소신, 형수님을 뵈옵니다.”

그는 봉구안을 황후마마라 칭하지 않고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것으로 보아 서왕과 황제 사이는 꽤 돈독해 보였다.

연상은 약간 넋을 잃고 서왕을 바라보았다.

서왕은 준수한 용모에 온화한 분위기를 가진 미남이었다. 솔직히 말해 성격 포악하고 쩍하면 사람을 죽이는 폭군보다는 서왕이 백배 낫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가씨와 혼례를 올린 사람이 전하였다면…’

곧이어 연상은 그런 황당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렸다.

황궁은 군영과 달라 후궁들은 사사로이 황제가 아닌 다른 사내와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봉구안이 자리를 뜨려는데 서왕이 관심 어린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형수님, 어제 참수 현장을 감독하였다 들었는데 놀라진 않으셨지요?”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딱딱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어제 우연히 지나가다가 형수님께서 말을 조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기마술이었어요. 사실 폐하는 말을 달래고 달릴 줄 아는 여인을 좋아한답니다. 형수님도 이쪽으로 노력하시면 폐하의 총애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서왕은 마치 친구처럼 봉구안에게 친절히 황제의 취향까지 일깨워주었다.

봉구안은 그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하얀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충고는 감사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마술을 익힌 것은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기에.

자녕궁.

태후는 봉구안에게 궁중 법도를 가르쳤다.

“무릇 황후라면 후궁의 여인과 시종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 위로는 비빈이 있고 아래로는 궁녀와 태감이 있지. 그리고 황제에게 간언을 드려야 하는 의무도 있어.”

“예를 들면 황상은 황귀비 한사람만 총애하고 다른 비빈들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넌 황후로서 각 세력의 균형을 위해 황상이 총애를 골고루 나눠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느니라.”

“후궁을 얕보면 절대 아니 된다. 궁중 비빈들의 배후에는 조정의 각 세력들이 있어.”

봉구안은 심혈을 기울여 듣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입궁한지 이틀 째,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오늘 밤, 그녀는 다시 영소전으로 가서 염탐해 보기로 했다.

그 시각 영소전.

수방에서 새로 만든 화려한 의복을 가져왔다.

시녀는 황귀비에게 아첨하듯 말했다.

“폐하께서는 정말 마마를 총애하시나 봅니다. 공물로 막 들어온 부광 비단을 전부 황귀비 마마께 하사하셨지요. 오늘 밤에 마마께서 이 옷을 입고 폐하의 앞에 나타나면 폐하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황귀비는 웃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의복에 수놓인 영란초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엇이더냐!”

“마마, 진정하시옵소서.”

“곤장 80대를 쳐서 궁에서 내쫓거라.”

황귀비는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뒤, 옷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내다버렸다.

황귀비의 측근 시종조차도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곤장 80대는 연약한 시녀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이날, 수방에서 무려 열셋이나 되는 수녀가 죽자 궁중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하지만 황귀비의 횡포에 아무도 불만을 얘기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 황제는 여느 때처럼 영소전을 찾았고 침실에서는 간드러진 교성이 새벽까지 지속되었다.

“폐하, 의복에 수놓은 자수가 너무 투박하여 신첩이 수방에 징계를 좀 내렸습니다. 어찌 그런 옷을 입고 외출할 수 있겠나요. 신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귀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비는 잘못하지 않았어. 죽일만했으니 죽인 거지.”

그러던 그가 갑자기 시선을 들고 지붕을 살피더니 옷섶에서 표창을 꺼내 지붕으로 던졌다.

표창이 기와를 관통하자 대들보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시위들은 그제야 영소전에 자객이 혼입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검을 빼들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자객을 포위했지만 자객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객은 푸른 연기가 되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위들은 처음 보는 기괴한 장면에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봤다.

봉구안의 경공은 그녀의 사부조차 극찬할 정도였다.

그녀는 삼엄한 시위들을 따돌리고 곳곳에 숨겨진 함정을 피하여 영소전에 잠입했지만 끝내 폭군의 예민한 관찰력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존재를 간파할 수 있었다는 건 소욱이 강력한 내력을 지녔다는 것을 설명했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조금만 더 가면 영소전을 벗어날 수 있던 그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장발을 흩날리고 검은색 장포를 살짝 풀어헤친 사내는 온몸으로 강압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내는 아무런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장풍으로 그녀를 공격했다.

봉구안은 상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그녀도 전혀 뒤처지지 않고 교묘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공중제비를 하여 물고기가 수면에 떠오르듯이 몸을 솟구쳐서 사내의 등 뒤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옷섶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소욱의 눈매가 무섭게 빛났다.

그 역시도 자객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속도만 따지면 그를 능가할 실력이었다.

‘그렇다고 허점이 없진 않지.’

그는 몸을 기울여 단도를 피한 뒤에 장풍으로 그녀의 허리를 맞추었다.

봉구안은 앞으로 비틀거리다가 재빨리 중심을 잡고 뒤돌아섰다.

움직임이 너무 커서 묶고 있던 머리가 허공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흩날렸다.

소욱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인?’

봉구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녀는 오래 전에 허리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그걸 간파하고 정확히 허점을 노릴 줄은 몰랐다.

‘폭군 신변의 그림자 호위인가?’

시위들이 사면팔방에서 모여들었다.

봉구안은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연막탄을 사용해 압도적인 속도로 포위를 꿰뚫고 도망쳤다.

하지만 눈썰미가 빠른 소욱은 그녀가 향하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화궁.

봉구안이 궁으로 돌아오자 연상은 즉시 그녀를 도와 옷을 갈아입고 야행복을 안 보이는 곳으로 숨겼다.

“마마, 괜찮으시죠?”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봉구안의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조금 전 사내의 장풍을 맞으면서 부상으로 인한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그녀는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밖으로 나온 연상은 나오자마자 문앞에 서 있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제왕의 상징인 용포를 입고 옥관으로 머리를 올린 사내는 한걸음 한걸음 위엄을 풍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를 처음 알현하는 연상은 놀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폭군이 이런 잘생긴 외모를 가졌을 줄이야! 하지만 너무 무서워! 분위기는 염라대왕 같아!’

“소인, 폐하를 뵈옵니다!”

소욱은 곧장 내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조금 전 사라진 자객이 영화궁 근처에서 사라진 것을 똑똑히 보았다.

허리를 다쳤으니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봉구안이 눈을 감고 뜨거운 열기를 즐기고 있을 때, 사내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는 사내를 등진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상황이 이래서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 양해하여 주시옵소서.”

소욱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 시간에 목욕?’

“황후, 일어나 보거라.”

봉구안은 물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날 의심하는 건가.’

“황후, 내 말이 안 들리느냐!”

남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봉구안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욕조에 앉아 있었다.

등 뒤에서 사내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시위만 당기면 바로 그녀를 관통할 것 같았다.

지금 일어선다면 허리에 난 손바닥 자국 때문에 신분이 바로 들통날 것이다.

소욱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보니 황후와 그 여자객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봉구안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그녀를 물속에서 들어올렸다.
Comments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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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태
재미있네요. 전개가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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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oo Shin
재밌네요. 잘 읽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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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숙
잼있네요ㅡㅡ다음회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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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지하실에서 적을 만나면 둘 중에 한 명은 죽기 마련이다.사내는 진한 살기가 진동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봉구안은 야행복이 아닌 궁중예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만약 일격에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고 스스로 그날 밤 자객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폭군과는 달리 무고한 자를 죽이는 습관이 없었다.‘어차피 주인 명을 받고 움직이는 자야. 악하다고 볼 수 없어.’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너 누구냐? 왜 여기 있어?”순간 소욱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는 황후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고작 두 번 만난 게 다였다.신혼밤에는 촛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이니 당연히 얼굴을 못봤을 것이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욕조에 앉아 그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렇게 생각하니 황후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만 황후가 자신의 비밀을 발견한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봉구안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상대를 관찰했다.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소욱은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척, 공중에 몸을 날려 그녀에게 접근했다.봉구안은 무공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비틀던 순간, 그녀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그의 목에 그어져 있는 은빛 띠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소매에서 은침을 꺼내 그의 뒷목 풍지혈에 꽂았다.순식간에 사내는 힘을 잃은 듯,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그는 침을 제거하려고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이때,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걸 뽑으면 넌 죽는다!”소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봉구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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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구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는 더 이상의 해명을 생략했다.천수독은 하루아침에 해독할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데 한번의 침술로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이 독을 누구한테 당했는지부터 말해 보거라.”하지만 그런 협박은 소욱에게 통하지 않았다.그는 강압적인 말투로 말했다.“일단 독부터 해독하거라.”서로를 믿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사내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더니 말했다.“독을 해독하지 않으면 이곳을 못 나갈 줄 알아.”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켰으니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그 말을 들은 봉구안의 표정도 차게 식었다.‘은혜를 원수로 갚다니!’그녀의 시선이 백옥 침상에 닿았다.그리고 그곳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치를 발견했다.더듬어서 그것을 누르자 아니나 다를까 출구가 생겨났다.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경공을 이용해 밀실을 신속히 벗어났다.소욱은 음침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쫓아갔다.하지만 그녀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유유히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뒤늦게 소리를 들은 호위대가 달려왔다.“자객이다!”잠시 후, 추적에 실패한 호위대는 잔뜩 기가 죽어 소욱에게로 돌아왔다.“폐하, 소인들이 무능하여 또 자객을 놓쳤습니다!”그 많은 호위가 지키고 있었는데 봉구안이 밀실에 들어간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에 그들은 큰 죄책감을 느꼈다.그나마 황제가 무사하여 다행이었다.소욱은 호위가 건넨 망토를 걸치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산 채로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예, 폐하!”영화궁.돌아온 봉구안을 본 연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마께서 나가고 얼마 안 돼서 계 상궁이 왔다갔습니다.”“태후께서 보석과 장신구들을 보내셨더라고요. 전에 폐하께서 마마의 일년 녹봉을 모두 삭감하시고 외출 금지까지 당하셔서 형편이 많이 어려울 터니 보태 쓰라고 하셨습니다.”“소인은 마마께서 편찮으시어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8화

    봉구안이 알고 있는 건 혼례식 때 어머니가 잠깐 얘기해 준 게 전부였다.채월이 말했다.“아가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계속 구토를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음식물찌꺼기가 아닌 인간의 배설물인 거예요! 놈들은 아가씨에게 오물까지 강제로 먹였던 거예요.”“그리고 뻘겋게 데운 철꼬챙이로 아가씨에게… 의원이 말하기를 아가씨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대요.”남제의 여인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채월은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더니 끝내는 통곡을 터뜨렸다.봉구안은 입술을 앙다물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창박을 노려보았다.한참이 지난 후, 겨우 안정을 찾은 채월이 봉구안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소인, 외람되지만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마마, 혹시… 황귀비를 죽일 생각이신가요?”봉구안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채월이 계속해서 말했다.“마마, 아가씨가 잠깐 정신이 돌아오셨을 때 소인께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요. 장미 아가씨는 마마께서 자신을 위해 살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황귀비는 폐하의 무한한 총애를 받고 있으니 분명 그 여인이 머무는 처소도 경비가 삼엄할 테지요. 아무리 마마께서 막강한 무술 실력을 가지셨다고 해도 꼭 성공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약에 작전에 실패하거나 어떤 단서라도 남긴다면 마마는 물론이고 봉가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장미 아가씨는 혼자 죽더라도 마마께서 더 이상 이 일에 엮이는 것은 싫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는 마마께서 아가씨를 대신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어요.”봉구안은 조용히 채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미의 팔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촛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섬뜩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장미야, 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어찌 나 혼자 좋은 것만 보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겠어!’하지만 동생의 유일한 소원을 거스르기도 난감했다.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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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6화

    광화사 밖은 황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는 그림자 호위가 봉구안을 지키려 대기하고 있었다.그림자 호위들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광화사만 주목하고 있었고 은칠만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황후께서 변장을 하시고 서여국 폐하와 야밤에 은밀한 밀회...”그가 쓴 내용을 본 은삼이 주먹을 그의 머리에 꽂았다.“밀회는 무슨 밀회야!”순식간에 은칠의 정수리가 볼록하게 부어올랐다.“왜 셋째 형님도 저한테 그러십니까?”은삼은 또 한번 주먹을 휘두르고는 소리를 죽여 말했다.“둘째 형님이 왜 널 잘 지켜보라고 했는지 알겠어! 은칠, 전에는 몰랐는데 너 소설 쓰는 재주가 있다? 너 마마께서 곤란해 지라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폐하와 마마 사이를 이간질하려고!”은칠이 울먹이며 말했다.“다들 저만 괴롭혀요! 폐하께 고발할 거예요!”그는 눈물을 머금고 한마디 덧붙였다.[은삼이 보고서를 쓰는 것을 방해하며 사실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은삼은 뒷골이 땡기는 기분이었다.“쉿! 누가 오고 있어!”은사가 낮게 말했다.시위대가 야간 교대를 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 한 시위가 황제가 있는 절당으로 아침을 가지고 갔다.모신 상궁이 밖으로 나오자 시위가 조심스레 물었다.“모 상궁님, 폐하께서는 밤새 잘 주무셨나요?”모신이 싸늘한 얼굴로 답했다.“그래.”시위가 또 물었다.“그럼 어제 밤에 방문하신 귀빈은…”그는 안을 들여다보려고 고개를 기웃거렸고 모신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절당 안.모신은 아침을 식탁에 차리고 은침으로 독을 검사했다.반찬에 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황제에게 식사하라 전했다.식탁에 마주앉은 황제가 물었다.“그자는 무사히 나갔고?”모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예, 어젯밤 소인이 광화사 밖까지 바래다드렸습니다.”황제는 죽 한숟가락 떠서 입가로 가져갔다.이틀 전, 봉구안을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저는 숙연 대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5화

    광화사.마차에서 내린 서여국 황제는 주지스님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문득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따라온 호위들 중에 몇몇 안 보던 얼굴이 있었다.아마 조여란이 보낸 자들일 것이다.서여국 황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하고 앞으로 걸었다. 황금색 용포가 햇살을 받으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방에 도착하자 문을 잠근 상궁 모신이 조심스레 말했다.“폐하, 광화사가 좀 이상합니다.”불상 앞에 마주선 서여국 황제가 싸늘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이곳은 짐을 위해 만들어진 감옥이다.”승려는 진작에 바뀌었을 것이다.승상의 영향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그날 밤, 황궁 서재.숙연은 상소문을 읽고 있는 조여란에게로 다가가 직접 포도를 입에 넣어주었다.조여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이런 거 하지 마.”이제 나이도 있는데 지금도 소녀처럼 구는 숙연이 못마땅했다.숙연은 허리를 숙이고 조여란의 목을 끌어안고는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뭘 겁내. 어차피 이 황궁과 서여국 전체가 우리의 것이 되었는데.”조여란은 굳은 표정으로 상소문에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아직 부족해. 그 여인이 살아 있는 한, 황제는 여전히 그 여인이야.”“만약 너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면 국정 감사만 맡기지 않았겠지.”“내가 보기에…”“뭐 의심 가는 거라도 있어?”숙연은 예쁘장한 얼굴로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조여란은 그녀의 턱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폐하의 몸 상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야.”“어쩌면 몰래 신의를 찾아서 아무도 모르게 치료를 받으려는 것일 수도 있어.”숙연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그렇다는 건 우릴 의심한다는 소리 아니야?”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몰래 병치료를 하려 했을 리 없었다.조여란이 차디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지. 하지만 눈치챘다고 해도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건 없어.”“광화사 안팎에 모두 내 사람들이거든. 숙연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4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태상황이 분노한 고함을 질렀다.“미친 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짐은 네 아비이자 북연의 황제란 말이다!”하지만 그의 아들이자 현임 황제는 병부에 눈이 멀어 그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태상황이 강력한 무공을 갖고 있는 것을 걱정해서 사내들은 그에게 근력을 무력화시키는 약을 먹였다.나이가 든 태상황은 결국 숫자에 밀려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그는 곧 떠나려는 신임 황제를 보고 곧 있으면 이 사내들에게 유린당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처음으로 당황했다.“아니… 아니 된다!”신임 황제는 매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병부, 내놓으실 거지요?”분노한 태상황이 포효했다.“하늘이 북연을 멸하려는 게구나!”신임 황제가 음침한 눈을 하고 말했다.“아바마마,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병부, 내놓으실 거죠?”태상황의 몸은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였다.병부를 내놓지 않는다면 오늘 밤 무슨 일을 당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이런 치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내는 없었다.하물며 그는 북연의 황제였다.태상황은 굴욕의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그래, 알았다!”일각이 지난 후.신임 황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병부를 들고 동화대를 떠났다.마차에 오른 그는 동화대 정문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짐의 아바마마도 역시 정상인이었군.”동화대.태상황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바닥에 깔린 비빈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다.불과 몇 달 사이에 그는 열 살은 더 늙은 것 같았다.그는 후회막심하여 검을 들고 자결을 택하려 했다.병부를 내놓으면 북연이 어떤 결말을 초래할지 뻔히 알면서 자신의 결백을 위해 결국 내놓고 말았으니 나라에 큰 죄를 지은 거나 다름없었다.챙그랑!검이 바닥에 떨어졌다.결국 그는 죽을 용기조차 없었다.그는 요행을 바라고 있었다. 어쩌면 하늘과 조상님들이 보우하여 협공 작전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은가?태상황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창밖의 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한편, 서여국.봉구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3화

    북연.궁밖의 동화대는 황가에서 건설한 작은 행궁이었다. 압박에 의해 퇴위한 태상황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이곳에서 편히 쉬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상 구금이나 다름없었고 안팎에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내실, 태상황은 근엄한 자세로 상석에 앉아 있고 그의 앞에는 불효자식인 신임 황제가 있었다.황제는 강압적인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태상황도 화가 난 상태였다.“남제를 협공한다고? 네가 북연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구나!”태상황은 과거에 마음이 약해져서 이 불효자식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신임 황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병부때문이었다.그의 눈에는 광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마치 이 문제만 해결하면 천하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아바마마, 곧 거사가 성사됩니다. 아바마마께서는 온 천하가 북연에 귀속되는 광경을 보게 되실 겁니다. 북연이 천하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남제는 멸망하게 되겠지요! 그러니, 병부를 내어주시지요!”태상황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들을 꾸짖었다.“어리석은 놈! 넌 미친 게 틀림없어!”“남제는 하루아침에 멸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짐은 이 일에 동의할 수 없다!”인내심이 바닥난 신임 황제는 태상황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울부짖었다.“아바마마, 왜 아들을 이리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짐도 대국을 위해서란 말입니다! 아바마마께선 나이가 드셨고 북연은 더 이상 아바마마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전장에 패배한 기록이 없던 북연이 아바마마의 손에서 연속 남제에 패했습니다.”패배한 전장을 언급하자 태상황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손을 뻗어 아들의 뒤통수를 갈기며 호통쳤다.“그걸 말이라고! 이 후레자식이! 네가 아니었으면 북연은 삼십만 대군을 잃지 않았어! 네가 아니었으면 남제가 화룡을 접촉할 일도 없고 화룡을 제작해낼 일도 없었어!”“북연의 지금 상황은 다 네가 초래한 거야!”뒤통수를 맞은 신임 황제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2화

    이들은 어둠 속에서 서여국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들일 것이다.그래서 첫 대면에서도 서여국 황제는 주변을 물려달라는 봉구안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중에 바보는 없었다.몸을 일으킨 서여국 황제는 침대머리에 놓인 생화를 매만지며 말했다.“짐의 병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짐을 따라다녔지. 매년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특히나 최근 몇 달은 줄곧 병상에 누워만 있어서 제대로 정무를 처리할 수조차 없었지. 승상은 이 기회에 자신의 세력을 늘리고 있었다. 짐이 눈치챘을 때 그녀는 이미 만인지상의 위치까지 올라갔더군.”고개를 돌린 황제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봉구안을 보고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짐을 배신한 자들은 전부 죽어 마땅하다.”봉구안이 담담히 물었다.“거기에 친동생도 포함입니까?”순간 서여국 황제의 손이 흠칫 떨렸다.그녀는 봉구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동산국에서 짐에게 사람을 파견해서 같이 남제를 침공하자고 하더군. 솔직히 저들이 약속한 조건이 남제의 제안보다 좋다고는 볼 수 없어도 솔깃한 제안이긴 했어.”“남제를 몇 등분으로 나누어도 우리에게 성 몇 채가 주어지는데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황제의 눈빛이 뱀처럼 서늘하게 빛났다.봉구안이 말했다.“동산국을 선택하셨다면 첫만남에서 저를 죽이셨을 겁니다.”“하!”서여국 황제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봉구안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맞아. 짐의 마음은 남제에 좀 더 기울었어.”“동산국이 남제를 멸망시킨 후에 다음 목표가 서여국일지 어찌 알겠느냐.”“다만 서여국 상황은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연맹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지금 조정은 승상이 장악하고 있어. 그녀는 동산국과 연맹을 맺고 남제를 멸할 생각이야.”“주인을 배신한 신하라면 죽여 마땅하지요.”봉구안이 차갑게 말했다.서여국 황제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승상 하나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아. 어려운 건 모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1화

    은육은 지난번 천지설산에서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황후가 시킨 일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다.승상 쪽 이상한 움직임을 조사하기 위해 그는 매일 한 시진만 잠을 잤다.그러다가 드디어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마마, 어젯밤에 서여국 황제의 쌍둥이 동생이 몰래 승상부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승상과 둘이 오래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저는 너무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그들이 서여국 황제를 제거하려는 것 같습니다.”방 안의 비응군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서여국에 큰 대란이 일어날 것 같았다.비응군 수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봉구안에게 예를 행했다.“소인이 보기에 서여국 내부에 대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서여국 황제는 스스로를 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 저희의 제안에 답을 줄 수 없겠지요. 당장 남제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소식을 기다리는 건 저희들이 하겠습니다!”그들은 죽음을 각오할 수 있지만 소장군이 서여국에서 변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봉구안은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대란이 우리에겐 기회일지도 몰라.”다음 날.봉구안은 다른 모습으로 위장하여 공시를 떼고 입궁했다.같은 궁인이 천택궁으로 그녀를 안내했다.내전에서 숙연이 황제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다.“언니,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제가 만 천하에 의원을 찾는다고 공시를 냈으니…”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서서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잠시 후, 그녀에게 고개를 돌린 황제가 입을 열었다.“또 공시를 뗀 의원이 왔네?”숙연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봉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겉보기에 부드럽고 애수에 찬 눈동자에서 수상한 한기가 넘쳐흘렀다.서여국 황제는 사람을 물리고 봉구안만 내전에 남겼다.사람들이 밖으로 나간 후, 봉구안은 공손히 황제에게 예를 행했다.“폐하, 저입니다.”서여국 황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동안 그녀를 제외하고 공시를 뗀 자가 없었다.“짐의 소식을 기다리라 하지 않았느냐? 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40화

    서여국 황궁을 떠난 후, 봉구안은 바로 객잔으로 돌아가지 않았다.서여국 승상은 비겁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자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그리하여 그녀는 기루에서 남풍관, 그리고 다시 기루에 들렀다. 기회를 엿봐서 의용술로 모습을 바꾼 뒤에 떠나기 위함이고 여기서 뭔가 알아낼 수도 있었다.이런 유흥업소는 정보가 가장 빠른 곳이기도 했다.기루.봉구안은 기생을 한 명 불렀다. 기생이 손님을 받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알기에 봉구안은 보름 간 그녀를 독점하기로 하고 돈을 지불한 후에 방에서 가야금만 연주하라고 했다.이러면 그녀의 행적을 감추는데 유리할 것이다.단지 돈이 많이 들어간 것이 조금 씁쓸했다.이 기생의 일당은 은화 3냥이었는데 그녀가 묵는 객잔보다 더 비쌌다.다행히 기생이 말을 잘 듣고 아는 게 좀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공자, 그건 모르시나 봐요. 저희의 폐하께선 젊으셨을 때 중상을 입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에요. 폐하께는 쌍둥이 여동생뿐이니 아마 황위는 숙연 대인에게 물려주실 것 같아요.”봉구안은 생각에 잠겼다.“폐하의 병이 심각하냐?”“예. 이미 조회에 안 나오신지 좀 되었다고 해요. 승상께서 국무를 처리하고 계시죠.”봉구안은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며 무심한듯 말했다.“승상께서 권력을 독점하신다? 그럼 그 숙연 대인은 그걸 눈 뜨고 보고만 있었단 말이냐?”기생은 아무런 의심 없이 말했다.“소인이 여기 간판 언니에게서 들은 바로는 숙연 대인이 승상을 추천한 거랍니다. 자신은 한마음 한뜻으로 폐하를 보살피고 잠시 나랏일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면서요.”봉구안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술이 괜찮네. 한 단지 더 내오거라.”“공자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제가 같이 한잔 마셔드리겠습니다.”봉구안은 생각에 잠겼다.한쪽은 막강한 권력을 잡은 승상, 한쪽은 미래의 황제가 될 유력후보. 원래라면 서로 경쟁 관계이고 사이가 안 좋아야 마땅하지만 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39화

    봉구안은 힘겨운 표정으로 답했다.“나리, 소인의 의술이 부족하여 방도가 없습니다.”그 말을 들은 숙연은 눈물을 흘렸다.“자네도 방법이 없단 말인가…”봉구안은 굳은 표정으로 예를 행했다.“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숙연도 만났으니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황궁 입구에 도착하자 관복을 입은 여인 한명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궁인이 말했다.“이분은 승상 나리입니다. 예를 행하셔야 합니다.”승상 조여란은 걸음을 멈추고 봉구안을 빤히 바라보았다.“네가 공시를 뗀 의원이야?”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예.”조여란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렸다.서여국에서 여인이 사내에게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무례에 속하지 않았다.조여란은 황제보다 조금 나이도 어리고 더 말라 보였다.승상의 자리까지 올라간 여인이라서 그런지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 빨리 나온 거지?”봉구안은 침착하게 답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하여 폐하의 병을 고쳐드릴 수 없어서입니다.”조여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부족한 의술로 공시를 뗐단 말이냐? 어디서 사기나 치던 놈이 궁에 뭐 도둑질할 게 없나 하고 들어온 건 아니고?”다른 사람이었으면 그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겠지만 봉구안의 마음은 평온했다. 그녀는 땀을 닦는 척 이마를 훔치며 짐짓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폐하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기를 내본 것입니다. 다만…”조여란은 그녀를 홱 밀치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궤변은 듣고 싶지 않다. 여봐라! 이 돌팔이를 끌고 가서 몸을 수색하라! 궁중의 물건을 도둑질한 게 없나 잘 확인하고 곤장 스무 대를 쳐라!”봉구안은 곤장은 두렵지 않았지만 몸을 수색한다면 여인의 신분이 드러나서 심문을 받게 될 것이다.시위가 다가오자 봉구안은 언성을 높여 물었다.“승상 나리의 말씀대로라면 제가 도둑질한 게 없어도 곤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조여란은 거만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물론이지! 의술도 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838화

    봉구안은 멈칫하며 고개를 숙였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고개를 다시 들자 황색 침복을 입은 서여국 황제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략 사십 세 정도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약한 주름이 져 있었지만 몸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기운은 여전했다.이런 황제가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서여국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 같았다.서여국 황제는 싸늘한 눈으로 봉구안을 노려보며 말했다.“자신의 황후를 서여국에 보내다니. 남제 황제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군. 짐이 널 죽일까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었기에 봉구안은 대범하게 인정했다.“서여국 폐하를 뵙습니다. 이번에 귀국에 오게 된 건 남제의 황후가 아닌 사절의 신분으로 온 것입니다. 맹 소장군은 더더욱 아니지요.”“위장을 하고 뵙게 된 것은 국세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하지만 저나 남제는 폐하께 무례를 범할 뜻은 없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서여국 황제는 여전히 검을 겨눈 채로 비아냥거렸다.“이미 무례를 저질러 놓고 양해를 바란다? 맹 소장군의 용맹함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남제 황제가 널 사절로 보냈는데 짐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지?”봉구안은 날카로운 검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여제를 향해 예를 취했다.“소신은 저희 폐하의 명을 받고 서여국 사절이라는 중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서여국 영토이니 폐하께 사신으로서의 예를 취하겠습니다.”“혹여 폐하께선 남제와 동맹을 맺을 생각은 있으신지요?”서여국 황제의 눈빛이 근엄해졌다.그녀는 검을 내리고 외투를 걸친 뒤에 긴 머리를 위로 올려서 묶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힘없는 황제에서 여제로서의 위엄을 되찾았다.곧이어 상석에 앉은 그녀는 봉구안에게 자리를 권했다.“서 있지 말고 앉아서 얘기하거라.”봉구안은 가져온 국서를 서여국 황제에게 내밀었다.“남제가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전쟁이 터지면 서여국 병사는 남제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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