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0화

Author: 일설연우
서왕 역시 자녕궁에 문안 올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황후를 보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소신, 형수님을 뵈옵니다.”

그는 봉구안을 황후마마라 칭하지 않고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런 것으로 보아 서왕과 황제 사이는 꽤 돈독해 보였다.

연상은 약간 넋을 잃고 서왕을 바라보았다.

서왕은 준수한 용모에 온화한 분위기를 가진 미남이었다. 솔직히 말해 성격 포악하고 쩍하면 사람을 죽이는 폭군보다는 서왕이 백배 낫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가씨와 혼례를 올린 사람이 전하였다면…’

곧이어 연상은 그런 황당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렸다.

황궁은 군영과 달라 후궁들은 사사로이 황제가 아닌 다른 사내와 이야기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봉구안이 자리를 뜨려는데 서왕이 관심 어린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형수님, 어제 참수 현장을 감독하였다 들었는데 놀라진 않으셨지요?”

봉구안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한 채 딱딱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어제 우연히 지나가다가 형수님께서 말을 조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말 훌륭한 기마술이었어요. 사실 폐하는 말을 달래고 달릴 줄 아는 여인을 좋아한답니다. 형수님도 이쪽으로 노력하시면 폐하의 총애를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서왕은 마치 친구처럼 봉구안에게 친절히 황제의 취향까지 일깨워주었다.

봉구안은 그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하얀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가슴에만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충고는 감사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마술을 익힌 것은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기에.

자녕궁.

태후는 봉구안에게 궁중 법도를 가르쳤다.

“무릇 황후라면 후궁의 여인과 시종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 위로는 비빈이 있고 아래로는 궁녀와 태감이 있지. 그리고 황제에게 간언을 드려야 하는 의무도 있어.”

“예를 들면 황상은 황귀비 한사람만 총애하고 다른 비빈들을 소홀히 하고 있으니 넌 황후로서 각 세력의 균형을 위해 황상이 총애를 골고루 나눠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하느니라.”

“후궁을 얕보면 절대 아니 된다. 궁중 비빈들의 배후에는 조정의 각 세력들이 있어.”

봉구안은 심혈을 기울여 듣고 있는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입궁한지 이틀 째,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오늘 밤, 그녀는 다시 영소전으로 가서 염탐해 보기로 했다.

그 시각 영소전.

수방에서 새로 만든 화려한 의복을 가져왔다.

시녀는 황귀비에게 아첨하듯 말했다.

“폐하께서는 정말 마마를 총애하시나 봅니다. 공물로 막 들어온 부광 비단을 전부 황귀비 마마께 하사하셨지요. 오늘 밤에 마마께서 이 옷을 입고 폐하의 앞에 나타나면 폐하께서는 분명 기뻐하실 것이옵니다.”

황귀비는 웃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의복에 수놓인 영란초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엇이더냐!”

“마마, 진정하시옵소서.”

“곤장 80대를 쳐서 궁에서 내쫓거라.”

황귀비는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 뒤, 옷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닥에 내다버렸다.

황귀비의 측근 시종조차도 이건 너무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곤장 80대는 연약한 시녀에게 죽으라는 말과 같았다.

이날, 수방에서 무려 열셋이나 되는 수녀가 죽자 궁중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하지만 황귀비의 횡포에 아무도 불만을 얘기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 황제는 여느 때처럼 영소전을 찾았고 침실에서는 간드러진 교성이 새벽까지 지속되었다.

“폐하, 의복에 수놓은 자수가 너무 투박하여 신첩이 수방에 징계를 좀 내렸습니다. 어찌 그런 옷을 입고 외출할 수 있겠나요. 신첩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제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귀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비는 잘못하지 않았어. 죽일만했으니 죽인 거지.”

그러던 그가 갑자기 시선을 들고 지붕을 살피더니 옷섶에서 표창을 꺼내 지붕으로 던졌다.

표창이 기와를 관통하자 대들보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시위들은 그제야 영소전에 자객이 혼입하였다는 것을 발견하고 검을 빼들었다.

그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 자객을 포위했지만 자객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객은 푸른 연기가 되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위들은 처음 보는 기괴한 장면에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봤다.

봉구안의 경공은 그녀의 사부조차 극찬할 정도였다.

그녀는 삼엄한 시위들을 따돌리고 곳곳에 숨겨진 함정을 피하여 영소전에 잠입했지만 끝내 폭군의 예민한 관찰력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존재를 간파할 수 있었다는 건 소욱이 강력한 내력을 지녔다는 것을 설명했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조금만 더 가면 영소전을 벗어날 수 있던 그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장발을 흩날리고 검은색 장포를 살짝 풀어헤친 사내는 온몸으로 강압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내는 아무런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장풍으로 그녀를 공격했다.

봉구안은 상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그녀도 전혀 뒤처지지 않고 교묘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공중제비를 하여 물고기가 수면에 떠오르듯이 몸을 솟구쳐서 사내의 등 뒤에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옷섶에서 단검을 빼들었다.

소욱의 눈매가 무섭게 빛났다.

그 역시도 자객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속도만 따지면 그를 능가할 실력이었다.

‘그렇다고 허점이 없진 않지.’

그는 몸을 기울여 단도를 피한 뒤에 장풍으로 그녀의 허리를 맞추었다.

봉구안은 앞으로 비틀거리다가 재빨리 중심을 잡고 뒤돌아섰다.

움직임이 너무 커서 묶고 있던 머리가 허공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흩날렸다.

소욱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인?’

봉구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녀는 오래 전에 허리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그걸 간파하고 정확히 허점을 노릴 줄은 몰랐다.

‘폭군 신변의 그림자 호위인가?’

시위들이 사면팔방에서 모여들었다.

봉구안은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연막탄을 사용해 압도적인 속도로 포위를 꿰뚫고 도망쳤다.

하지만 눈썰미가 빠른 소욱은 그녀가 향하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화궁.

봉구안이 궁으로 돌아오자 연상은 즉시 그녀를 도와 옷을 갈아입고 야행복을 안 보이는 곳으로 숨겼다.

“마마, 괜찮으시죠?”

“괜찮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봉구안의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조금 전 사내의 장풍을 맞으면서 부상으로 인한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그녀는 욕실로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밖으로 나온 연상은 나오자마자 문앞에 서 있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제왕의 상징인 용포를 입고 옥관으로 머리를 올린 사내는 한걸음 한걸음 위엄을 풍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제를 처음 알현하는 연상은 놀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폭군이 이런 잘생긴 외모를 가졌을 줄이야! 하지만 너무 무서워! 분위기는 염라대왕 같아!’

“소인, 폐하를 뵈옵니다!”

소욱은 곧장 내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조금 전 사라진 자객이 영화궁 근처에서 사라진 것을 똑똑히 보았다.

허리를 다쳤으니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봉구안이 눈을 감고 뜨거운 열기를 즐기고 있을 때, 사내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녀는 사내를 등진 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상황이 이래서 예를 갖추지 못하는 점 양해하여 주시옵소서.”

소욱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 시간에 목욕?’

“황후, 일어나 보거라.”

봉구안은 물 속에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날 의심하는 건가.’

“황후, 내 말이 안 들리느냐!”

남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한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봉구안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욕조에 앉아 있었다.

등 뒤에서 사내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시위만 당기면 바로 그녀를 관통할 것 같았다.

지금 일어선다면 허리에 난 손바닥 자국 때문에 신분이 바로 들통날 것이다.

소욱의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보니 황후와 그 여자객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서 봉구안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그녀를 물속에서 들어올렸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79)
goodnovel comment avatar
아름향기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goodnovel comment avatar
유효정
재미있어요 궁금해지게되네요
goodnovel comment avatar
김주희
재밌네요~~^^~~~
VIEW ALL COMMENTS

Related chapters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화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기고 욕조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봉구안은 본능적으로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하지만 그녀의 등 전체가 바깥에 노출된 상태였다.소욱의 냉담한 시선이 그녀의 허리로 향했다.허리에 손바닥 자국이나 멍은 보이지 않았다.아주 깨끗하고 매끄러운 피부가 눈앞에 펼쳐졌다.하지만 소욱의 얼굴을 맴도는 한기는 흩어지지 않았다.봉구안은 손바닥에서 열이 나고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내력으로 피멍을 흩어지게 했다.하지만 내력 소모가 심해서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폭군은 당연히 그렇게 쉽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곧이어 그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엄지손가락으로 허리에 대고 힘을 주었다.“윽!”봉구안은 갑자기 느껴진 극심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뼈가 부러지는 고통이었지만 그녀는 꾹 참고 인내했다.뒤에서 사내가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허리를 다친 것이냐?”그녀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폐하.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시옵니까?”“허리가 너무 뻣뻣해서 말이야.”사내의 손은 마치 시험하듯이 그녀의 허리 주변을 지그시 누르며 더듬고 있었다.멀리서 보면 애무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언제든 봉구안의 목숨을 취할 수 있었다.봉구안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다.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지에서 먹을 것도 없이 의지 하나로 살아남은 그녀였다.참군하여 장군이 된 후 쇠갈고리가 어깨를 관통하는 중상을 입었지만 눈물 한번 흘리지 않았던 그녀였다. 오히려 상처를 치료해 주러 달려온 사모가 대성통곡했었다.그랬기에 폭군의 이 정도 시험을 그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단지 처음 남자의 손길을 받아서 그런지 간질간질하더니 갑자기 전율이 찾아오면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하얀 피부는 홍조를 띈 것처럼 분홍빛으로 반짝였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의 손길을 피했지만 소욱은 그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그는 금세 흥미가 식었다.황후는 겉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2화

    황제의 서재.상소문을 읽고 있던 소욱이 흠칫하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었다.“황후가 금인장을 요구한다고?”말을 전하러 온 태감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답했다.“예, 폐하. 마마께서 이 일로 대전 밖에서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금인장이 황귀비에게 있다는 건 온 황궁이 아는 사실이었다.황후가 대놓고 금인장을 요구한 건 모순을 크게 만들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태감은 황제가 격노하여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조마조마해서 식은땀을 훔쳤다.소욱의 음침하게 가라앉은 눈빛에서 위험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가서 내 말을 그대로 전하거라. 얌전히 있지 않고 자꾸 소란을 부리면 그 자리를 폐해 버릴 수도 있다고.”“예, 폐하!”황실 서재 밖.봉구안은 여전희 희비를 알 수 없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태감의 전갈을 듣고 있었다.“마마,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금인장은 줄곧 황귀비 마마께서 관리하고 계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절대 그분의 손에서 인장을 회수하지 않을 겁니다.”“황귀비 마마께서 스스로 포기한다면 모를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태감의 말을 전해들은 연상은 너무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금인장은 본디 황후가 관리하는 것이고 후궁 대권의 상징인 물건이었다.폭군은 법도를 어기면서 황후의 자리를 두고 넘보지 말라 협박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아마 소욱에게 있어 진짜 황후는 황귀비뿐일지도 모른다.‘이렇게까지 황귀비를 편애하다니! 마마가 무슨 수로 귀비를 꺾는단 말인가!’봉구안 역시 황제의 처사에 불만이었다.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기강이 무너지는 건 군영이나 황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정말 우매하기 짝이 없는 군왕이로군!’“연상아, 이만 돌아가자꾸나.”봉구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예, 마마.”연상은 이 걸음을 하는 게 아니었다고 속으로 한탄했다.영소전.황귀비는 기분이 좋은지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황후가 금인장을 대놓고 요구했다고? 멍청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정말 웃기는 여인이로구나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3화

    영소전, 황귀비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내전에서 태의가 통증을 완화하는 침술을 시전 중이었다.내전 밖 단나무 의자에 인상을 잔뜩 구긴 황제가 온갖 위험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앉아 있었다.“영화궁에 보낸 태감은 아직이더냐!”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전갈을 나갔던 태감이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왔다.“폐하! 황후마마께서 말씀하시길, 가진 약이 많지 않아 그냥 줄 수는 없다고 하옵니다…”소욱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황후한테 이리로 오라고 전하거라.”황제의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있는 상황이라 태감은 숨도 돌리지 못하고 바로 영화궁으로 달려갔다.그리고 잠시 후, 다시 영소전으로 돌아온 태감은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황후께서는… 이미 침소에 드셨다고 하옵니다.”쾅!소욱이 신경질적으로 상을 내려치자 여파로 상 위에 있던 유리잔이 산산이 부서졌다.그는 벌떡 일어서서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영화궁으로 간다.”한편, 황귀비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몸서리치며 황제를 찾았다.밖으로 나가려던 황제는 다시 침실로 달려가서 그녀를 달래주었다.“연아, 짐이 곧 다녀올 테니 조금만 참거라.”변덕스럽고 성격 포악하기로 소문난 젊은 황제는 유독 황귀비 앞에서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황귀비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말했다.“신첩… 기다리고 있겠나이다.”잠시 후, 영화궁.오밤중에 황실 금위군이 궁을 포위했다. 기세를 보면 마치 황후가 큰 죄를 저질러서 잡으러 온 것만 같았다.연상은 문틈으로 바깥 동향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그녀는 다급히 침상 앞으로 달려가서 아직도 기를 운용 중인 봉구안에게 말했다.“마마, 폐하께서 금위군을 끌고 이곳으로 오셨습니다! 차라리 약을 그냥 내어주시는 게…”금인장 하나 바랐다가 목숨을 잃는 것은 전혀 가치가 없었다.봉구안은 내력을 거두고 눈을 떴다.싸늘한 살기가 담긴 그녀의 시선에 연상은 저절로 오금이 저렸다.폭군도 무섭지만 지금은 자신의 주인인 황후가 더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4화

    자녕궁.태후는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내가 뻔히 보이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황후, 이제 금인장을 손에 넣었으니 후궁 업무를 처리하기에 훨씬 쉬워졌을 게야.”“비빈들의 밤시중을 안배하는 일지를 작성하고 후궁의 기강을 잡을 때가 되었지.”“신인들이면 몰라도 입궁한지 오래된 비빈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현비와 녕비 같이 오래된 비빈들이 황실에 실망하는 일이 없게 네가 균형을 잘 잡아줘야 해.”“황상이 총애를 골고루 나눠줄 수 있게 한다면 비빈들도 자연히 너를 따르고 존경할 거야. 그래야 너도 후궁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법이고…”봉구안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어마마마.”“신첩, 친정에서 생활할 시기 어머니께서도 후궁이 평화로워야 폐하께서도 안심하고 정무에 몰두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요.”태후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황후가 그리 말하니 나도 안심이 되는구나.”자녕궁을 나오자 연상이 굳은 얼굴로 봉구안을 일깨웠다.“마마, 태후마마는 폐하의 생모가 아닙니다. 과거 영비의 죽음에 태후가 관련되어 있다는 말도 많이 돌았어요. 그래서 폐하와 태후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해요.”“태후는 폐하께서 황귀비만 총애하시는 걸 알면서도 방치하다가 입궁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마마께 이런 큰 짐을 지우는 건 너무 뻔하지 않나요!”“녕비를 굳이 꼬집어 말한 것도 그래요. 녕비가 태후의 조카딸인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조카딸을 위해 마마를 사지로 내몰다니. 폐하께서 애초에 마마의 말씀에 귀 기울일 분도 아니고. 그런 말을 무리하게 꺼냈다가 마마만 다치실 거예요.”그래도 황궁에서 태후는 인자한 웃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연상은 오늘 부로 태후에게 무한한 실망만 남았다.물론 봉구안이 태후의 속셈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솔직히 매일 자녕궁에 불려와서 가르침을 빙자한 잔소리를 듣는 것도 지치던 참이었다.태후가 대놓고 그녀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도 그녀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다음 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5화

    태후는 소식을 전하러 온 궁인에게 다급히 물었다.“대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싸움을 먼저 시작한 자가 누구냐?”궁인이 답했다.“몇몇 비빈 마마들이… 녕비마마께 불만을 품고 처음에는 말싸움으로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는 주먹질까지 하게 되면서… 녕비마마는 다른 비빈들 틈에 끼워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 하고 계십니다….”“뭐라고!”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던 태후는 조카딸이 맞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다시 조바심이 났다.“황후는?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황후는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냐!”영화궁.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녕비는 이런 치욕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입궁한 이래 황제의 총애도 받지 못하고 꽃 같은 어린 소녀에서 점점 나이만 먹어갔다.이제 한낱 후궁 비빈들마저 자신에게 태후를 등에 업고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랐다고 손가락질하니 참을 수 없었다.누가 먼저 주먹질을 시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뭇 비빈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고 누군가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심지어 그녀의 얼굴에 대고 침을 뱉는 자도 있었다.녕비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봉구안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군영에서 장령들끼리 비무하는 모습은 많이 봤지만 여자들 싸움도 그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연상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후궁 비빈들은 성품이 온화하고 행동거지가 우아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원숭이 떼가 자꾸 떠올랐다.궁에만 오래 갇혀 있어서 드디어 미친 것인가?연상은 서책에 자주 나오는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야 정서가 안정된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싸움에 가담한 비빈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빈들은 불똥이 튈까 멀리 피해 있었다.녕비는 혼자서 여러 명을 감당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그녀를 힘껏 밀쳤고 그녀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뒤통수를 바닥에 찧기 일보직전에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6화

    좁은 지하실에서 적을 만나면 둘 중에 한 명은 죽기 마련이다.사내는 진한 살기가 진동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봉구안은 야행복이 아닌 궁중예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만약 일격에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이고 스스로 그날 밤 자객이 자신이라고 자백하는 것과 같았다.그리고 그녀는 폭군과는 달리 무고한 자를 죽이는 습관이 없었다.‘어차피 주인 명을 받고 움직이는 자야. 악하다고 볼 수 없어.’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너 누구냐? 왜 여기 있어?”순간 소욱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그는 황후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순간 당황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들은 고작 두 번 만난 게 다였다.신혼밤에는 촛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방이니 당연히 얼굴을 못봤을 것이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녀는 욕조에 앉아 그를 등지고 있었기에 얼굴을 보지 못했다.그렇게 생각하니 황후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도 이해가 갔다.하지만 황후가 자신의 비밀을 발견한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봉구안은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상대를 관찰했다.죽일 생각이 없었는데 상대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황!소욱은 그녀의 신분을 모르는 척, 공중에 몸을 날려 그녀에게 접근했다.봉구안은 무공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제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사내의 손이 그녀의 목을 비틀던 순간, 그녀는 예민한 관찰력으로 그의 목에 그어져 있는 은빛 띠를 발견했다. 그녀는 곧장 소매에서 은침을 꺼내 그의 뒷목 풍지혈에 꽂았다.순식간에 사내는 힘을 잃은 듯,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그는 침을 제거하려고 뒷목으로 손을 뻗었다. 이때,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걸 뽑으면 넌 죽는다!”소욱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듯이 노려보았다.봉구안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의학을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7화

    봉구안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그녀는 더 이상의 해명을 생략했다.천수독은 하루아침에 해독할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중독자의 상황에 따라 단계별로 치료를 진행해야 하는데 한번의 침술로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이 독을 누구한테 당했는지부터 말해 보거라.”하지만 그런 협박은 소욱에게 통하지 않았다.그는 강압적인 말투로 말했다.“일단 독부터 해독하거라.”서로를 믿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오갔다.사내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나더니 말했다.“독을 해독하지 않으면 이곳을 못 나갈 줄 알아.”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켰으니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그 말을 들은 봉구안의 표정도 차게 식었다.‘은혜를 원수로 갚다니!’그녀의 시선이 백옥 침상에 닿았다.그리고 그곳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치를 발견했다.더듬어서 그것을 누르자 아니나 다를까 출구가 생겨났다.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경공을 이용해 밀실을 신속히 벗어났다.소욱은 음침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쫓아갔다.하지만 그녀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유유히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뒤늦게 소리를 들은 호위대가 달려왔다.“자객이다!”잠시 후, 추적에 실패한 호위대는 잔뜩 기가 죽어 소욱에게로 돌아왔다.“폐하, 소인들이 무능하여 또 자객을 놓쳤습니다!”그 많은 호위가 지키고 있었는데 봉구안이 밀실에 들어간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에 그들은 큰 죄책감을 느꼈다.그나마 황제가 무사하여 다행이었다.소욱은 호위가 건넨 망토를 걸치며 차갑게 말했다.“무슨 일이 있어도 산 채로 잡아서 내 앞으로 끌고 와.”“예, 폐하!”영화궁.돌아온 봉구안을 본 연상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마께서 나가고 얼마 안 돼서 계 상궁이 왔다갔습니다.”“태후께서 보석과 장신구들을 보내셨더라고요. 전에 폐하께서 마마의 일년 녹봉을 모두 삭감하시고 외출 금지까지 당하셔서 형편이 많이 어려울 터니 보태 쓰라고 하셨습니다.”“소인은 마마께서 편찮으시어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8화

    봉구안이 알고 있는 건 혼례식 때 어머니가 잠깐 얘기해 준 게 전부였다.채월이 말했다.“아가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 계속 구토를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음식물찌꺼기가 아닌 인간의 배설물인 거예요! 놈들은 아가씨에게 오물까지 강제로 먹였던 거예요.”“그리고 뻘겋게 데운 철꼬챙이로 아가씨에게… 의원이 말하기를 아가씨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대요.”남제의 여인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채월은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더니 끝내는 통곡을 터뜨렸다.봉구안은 입술을 앙다물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창박을 노려보았다.한참이 지난 후, 겨우 안정을 찾은 채월이 봉구안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소인, 외람되지만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마마, 혹시… 황귀비를 죽일 생각이신가요?”봉구안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채월이 계속해서 말했다.“마마, 아가씨가 잠깐 정신이 돌아오셨을 때 소인께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요. 장미 아가씨는 마마께서 자신을 위해 살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황귀비는 폐하의 무한한 총애를 받고 있으니 분명 그 여인이 머무는 처소도 경비가 삼엄할 테지요. 아무리 마마께서 막강한 무술 실력을 가지셨다고 해도 꼭 성공한다는 법은 없습니다.”“만약에 작전에 실패하거나 어떤 단서라도 남긴다면 마마는 물론이고 봉가 전체가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장미 아가씨는 혼자 죽더라도 마마께서 더 이상 이 일에 엮이는 것은 싫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는 마마께서 아가씨를 대신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만 보고 자유를 만끽하며 사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어요.”봉구안은 조용히 채월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미의 팔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촛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섬뜩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장미야, 네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어찌 나 혼자 좋은 것만 보고 자유를 누릴 수 있겠어!’하지만 동생의 유일한 소원을 거스르기도 난감했다.그녀는

Latest chapter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03화

    봉 부인은 절망에 빠졌다.모신 상궁이 봉 부인이 의자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봉 부인, 괜찮으십니까?”유영 또한 놀란 척하며 다가왔다.“모신, 어서 어의를 불러!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시잖아!”얼마 지나지 않아 어의가 도착했다.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봉 부인의 상태는 점차 나아졌다.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공허했다.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듯, 깊은 혼란과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한편, 정희는 어머니 곁에서 봉 부인을 노려보았다.그녀의 눈빛 속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감히 입이라도 놀려 봐!’하지만, 설령 황제가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해도 무엇이 달라지겠는가?결국 자신과 어머니야말로 황제의 진짜 혈육이었다.이 늙은 여자는 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봉 부인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이만 저는 남제로 돌아가겠습니다.”모신 상궁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황제 폐하께 여쭙고 오겠습니다.”유영은 순간적으로 의심이 들었다.‘황제께서 왜 모신을 직접 보냈을까?’그녀는 황제가 봉 부인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곧 그녀의 의심은 사라졌다.황제는 봉 부인의 부탁을 쉽게 허락했다.봉 부인의 출궁 날.유영은 그녀를 직접 배웅했다.이별의 순간, 유영은 애써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가시는 길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방금 전 편전에서, 제가 한 말이 너무 심했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평생을 함께한 자매 아닌가요?”그러나 봉 부인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유영아, 스스로를 잘 돌보고, 이 곳에서도 잘 지내렴.”그녀는 단 한마디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유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그녀의 눈빛은 서늘했다.‘잘 돌보아야 하는 건 네 쪽이겠지.’서여국 황제의 침전.황제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오양련이 그녀 곁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황제 폐하, 틀림없습니다. 봉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02화

    봉 부인은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정희가 황제를 탐내고, 황후의 자리를 넘보며 황족의 씨를 이으려 했다니? 이러니 구안이가 저 두 사람을 내쫓을 수밖에 없었구나.’봉 부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유영, 이 일을 너도 알고 있었니?”더 이상 미안한 감정은 없었다.대신, 단호하고 날카로운 추궁이 자리했다.유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말했다.“언니, 저희는 한 가족 아닌가요? 정희가 낳은 아이는 황후의 친조카가 될 텐데, 다른 비빈들이 황제를 차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유영, 너 미쳤구나.”봉 부인은 단호하게 내리쳤다.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자신이 알던 유영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그녀는 더욱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너희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꾸미는 거니! 구안이는 강직한 아이야. 그 아이 눈앞에서 황제를 유혹하다니, 분노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어?”그 순간, 정희는 더 이상 가식을 유지하지 않았다.비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유혹이라뇨? 웃기지 마세요! 언니의 딸이 무능한 거죠! 황후 자리를 차지하고도 무슨 소용이에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황제는 다른 여인을 찾게 될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는 건 바로 언니 딸일걸요?”유영도 나름대로 설득을 시도했다.“언니, 저는 비록 서여국 사람이지만, 우리는 거의 평생을 가족으로 지내왔어요. 제 마음속에서 언니는 여전히 제 친언니나 다름없어요. 정희가 하는 말이 거칠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황후는 아이를 낳지 못하잖아요. 그러니 정희가 대신 낳아주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겠어요? 결국 다 믿을 수 있는 ‘자기 사람’인데 말입니다.”봉 부인은 이 말에서 그녀들의 진짜 속셈을 알아챘다.‘자기 사람? 가족이라면서 황후의 남편을 탐내?’그녀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유영, 네가 봉 대인과의 혼사에서 상처받았던 건 내 잘못이야. 그래서 나는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따지지 않으마.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네 딸이 내 딸과 황제의 자리를 두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01화

    봉 부인은 유영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지금 당장 섣불리 입을 열 수는 없었다.유영과 서여국 황제가 혈육이라는 증거는 분명히 존재했다.게다가, 설령 유영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닮았다 해도, 그것만으로 반드시 어머니의 친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어쩌면, 유영이 정말 서여국 황제의 여동생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혼란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며 봉 부인은 한동안 침묵했다.그 모습을 서여국 황제는 깊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자리에서 오양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봉 부인, 그동안 숙연을 보살펴 주신 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모신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싶었을 뿐이니, 부디 서여국에서 며칠 더 머무르시는 게 어떠신지요?”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안심하십시오. 황제께서 이미 남제로 서신을 보내, 부인께서 이곳에 계심을 알렸습니다.”봉 부인은 순간 눈동자를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유영이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직접 만나야겠습니다.”다소 거친 태도였지만, 서여국 황제는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한층 관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모신 상궁에게 명을 내렸다.“봉 부인을 편전으로 모셔라.”“예, 폐하.”그렇게 봉 부인은 편전으로 향했다.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봉 부인은 그 길이 유난히 길고 험난하게 느껴졌다.마음이 복잡했다.머릿속엔 온통 유영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이, 전부 거짓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편전 내부.유영과 그녀의 어머니 정희는 속삭이며 무엇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봉 부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얼굴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빛이 공중에서 얽혔다.“아, 언니… 언니가 여긴 어쩐 일로…”유영은 감격한 듯 일부러 반가운 기색을 드러내며 서둘러 앞으로 다가왔다.그러나 정희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000화

    은육은 봉구안에게 밀서를 건넸다.봉구안은 급히 서신을 뜯었다.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서여국 황제의 친필이었다.[자네 어머니가 숙연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있기에, 특별히 서여국으로 초청하고자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히 돌려보낼 것을 약속하겠다.]봉구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무슨 일이냐?”소욱이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봉구안은 서신을 접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서여국의 소행입니다.”소욱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들이 부인을 납치한 이유는 무엇이지?”봉구안은 입술을 조금 열었다가 닫았다.곧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어머니를 숙연이라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그녀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서여국 황제 또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을 터.하지만, 직접 사람을 데려갈 줄은 몰랐다.그렇다면, 이 일의 목적은 봉 부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만약 황제가 어머니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것이라면 당장 목숨이 위험할 가능성은 낮았다.그러나 진짜 숙연은 누구인가?이것이 그녀가 더욱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봉구안은 곧 은육에게 명령을 내렸다.“참장부에 어머니께서는 무사하시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전하라.”“예!”소욱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내가 사람을 보내 서여국으로 가도록 하겠다. 봉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봉구안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부탁드립니다.”소욱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너와 나는 부부인데, 이렇게 예를 갖출 필요가 있겠느냐?”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봉구안은 잠시 긴장을 풀었다.소욱은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말했다.“바람이 차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예, 폐하.”보름 후.봉 부인은 공포와 당혹감 속에 서여국에 도착했다.대체 이들이 자신을 잡아온 이유는 무엇일까?그녀가 궁에 도착하자, 곧바로 황제의 침전으로 안내되었다.그리고 그곳에서, 봉 부인은 한 여인을 마주했다.화려한 금빛 장식을 두른 서여국 황제였다.그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99화

    10월 중순.무애산의 바람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겨울이 다가오며 산속의 기운도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러나 봉구안은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날이 아무리 춥더라도, 그녀는 매일 새벽 검을 들었다.그날도 그녀는 평소처럼 홀로 훈련을 하려 했지만, 우연히 현릉풍과 마주쳤다.그는 연못가에 단출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다.날카로운 찬바람이 옷깃을 휘날렸지만, 그는 마치 신선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고요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봉구안은 별 신경 쓰지 않으려 했으나, 그 순간 현릉풍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이것이 운명이라면, 피할 수 없습니다.”봉구안은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운명이라니?그가 말하는 운명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혹시…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인가?그녀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소욱이 그녀를 찾아왔다.그는 아침부터 도성에서 온 밀서를 확인하느라 늦어진 상태였다.봉구안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본 그는 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무슨 일이라도 있느냐?”봉구안은 차가운 바람을 등지고 그를 바라보았다.눈빛 속에는 한층 더 깊은 결심이 담겨 있었다.“폐하, 돌아가면 후궁을 공평하게 대하시옵소서.”소욱의 얼굴이 단숨에 굳었다.“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이냐?”그의 눈에는 불꽃이 스쳤다.그러나 이내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혹시 약이 너무 쓴 것이냐? 그렇다면 이제 그만 마시자.”“나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을 테니, 그냥 돌아가자.”그는 한숨을 내쉬며, 애써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하지만 봉구안은 한층 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폐하, 현릉풍 선생께서도 장담하지 못하셨습니다. 설령 치료가 가능하다 해도, 그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황실의 대를 잇는 것은 나라의 근본입니다.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해서, 폐하께서 양자를 들이시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그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98화

    서여국.최근 서여국에 한 명의 신의가 찾아왔다.그의 뛰어난 의술 덕분에 황제의 병세가 한결 나아졌다.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기쁜 일이 생기면 정신도 맑아지는 법이지.”황제는 오랜 세월 떨어져 있던 숙연과 다시 재회하며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편전 안.그러나 유영의 얼굴은 어두웠다.분명 황제는 오래지 않아 죽을 터였다.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갑자기 병세가 호전되다니!그 빌어먹을 의원은 대체 어디서 굴러온 자란 말인가?이대로라면 황제는 당분간 죽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렇다면… 그녀가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유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안 돼!’그녀는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유영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침전 안.황제는 막 약을 다 마신 참이었다.유영은 침상 앞까지 다가가,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언니.”황제는 그녀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숙연이구나. 무슨 일이냐?”시녀가 둥근 의자를 가져오자, 유영은 자연스럽게 앉으며 말을 꺼냈다.“언니께서 건강을 회복하셨다니,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다만, 중요한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무슨 일이냐?”유영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언니께서도 아시다시피, 이제 남제는 예전과 다릅니다. 대전이 끝난 후, 여러 나라가 남제에 영토를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며, 수많은 상업 통로가 열렸습니다.”“심지어 동산국조차도 남제와의 교역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서여국에도 절호의 기회입니다.”황제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유영은 미소를 머금고 계속해서 말했다.“상업이 활성화되면, 남제는 본국의 물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고,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건 모든 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우리 서여국 역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우리도 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97화

    자신이 또다시 이상해지고 있음을 감지한 서왕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그 순간, 완부옥이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불렀다.“전하~ 어디 가세요? 이리 와보시죠.”서왕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이 여자,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군!그는 이를 갈았다.반드시 이 ‘정충이’을 뽑아내고야 말겠다!……참장부.그즈음, 봉 부인이 장주에서 도성으로 돌아왔다.그러나 불과 두 달 사이,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그녀는 처음부터 유영이 봉 대인과 혼인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봉구안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봉 대인은 혼약을 파기했고, 유영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봉 부인은 얼굴이 굳었다.“유영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 그리고 황후는? 황후를 만나려면 어찌해야 하느냐?”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아들 봉안진을 찾았다.주씨가 그녀를 조용히 달랬다.“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이모님은 아마 강주로 돌아가셨을 거예요.”“황후마마께서는 폐하와 함께 각지를 순행 중이라 언제 돌아오실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들었어요.”“서방님께서 저녁에 돌아오시면 자세히 이야기해 드릴거예요.”……그날 저녁, 봉안진이 귀가하자, 봉 부인은 조급한 얼굴로 다그쳤다.“안진아, 솔직히 말해 보거라.”“네 아버지와 이모가 떠난 게 정말 황후 때문이냐?”봉구안은 분명 그녀에게 유영 모녀를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었다.그런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여버린 이유는 무엇인가?봉안진은 단호하게 말했다.“어머니, 후궁은 정사에 간섭할 수 없습니다.”“아버지가 강주로 부임한 것은 황후마마의 뜻이 아니라, 황제 폐하의 뜻입니다.”“그럼 이모는? 네 이모와 네 아버지는 왜 혼례를 안하기로 한 것이냐?”봉안진은 어머니의 말을 끊고 조용히 말했다.“어머니,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아버지와 이모께서 떳떳하셨다면, 황후께서 그들을 방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황후는 제 친누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친딸이죠.”“설마 어머니께 해를 끼칠 사람이라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96화

    남제 황성.봉부.임씨는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오열하고 있었다.“내 아들의 명예가 이렇게까지 추락하다니!”그녀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그런데 그 옆에서 봉명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머니, 전 죽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세요?”임씨는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소리쳤다.“네가 봉가를 떠나, 청루의 여인을 맞아들인다고?!”“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봉명헌 역시 답답한 심정이었다.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더 이상 피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영이는 그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이제 그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이 상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듯했다.겉으로는 봉가에서 쫓겨난 신세지만, 그의 몸에는 봉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언젠가 그가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면, 아버지와 형이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을 터였다.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통곡하고 있었다.임씨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서방이 떠나기 전, 그녀에게 내명을 맡기며 가정을 잘 다스리고 아들을 보살피라고 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한단 말인가?이제 그녀의 봉가 정실 부인이 될 꿈은 더욱 멀어진 듯했다.……강주의 관청을 순찰하던 봉 대인은 집에서 온 서신을 받아들자마자 눈이 뒤집혔다.“이 놈 자식이! 감히 청루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내가 죽은 줄 아느냐!”하지만 그는 강주에 있는 이상, 직책을 벗어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그날 밤, 봉 대인은 급히 서신을 써서 봉안진에게 보냈다.장남에게 꼭 이 혼사를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봉안진 역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참장부.부인 주씨는 봉안진의 옷을 정리하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서방님, 오늘 둘째 도련님의 혼례 초청장이 도착했어요. 자희도 가야 할까요?”봉안진은 묵묵히 책상 위의 초청장을 바라보았다.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에는 한숨과도 같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995화

    서녀국 황제의 밀서에는 유영에 대한 모든 의혹이 담겨 있었다.봉구안은 조용히 서신을 읽었다.그리고, 문득 눈을 들어 소욱을 바라보았다.“서녀국에서도 유영이 진짜 숙연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이 예상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며칠 전, 그녀는 이미 유씨 가문의 초상화를 받아보았다.동방가문이 각종 정보를 취합해 그려낸 초상화 속 유씨 부부와 죽은 막내아들이 있었다.봉구안은 초상화를 면밀히 살폈다.유영과 그녀의 남동생은 부모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그러나 유영의 어머니만은 달랐다.그녀는 유씨 가문의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없었다.왜냐하면, 유영의 나이는 숙연과 정확히 일치했다.과연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일까?분명, 이 안에는 숨겨진 진실이 존재할 터였다.봉구안은 조용히 서신을 접었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황궁 내부.정희는 궁을 거닐며 어머니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어머니, 다들 그러던데요.”“황제 폐하께서 황위를 어머니께 넘기실 거라고요!”유영은 미소를 머금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이미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서녀국 황제는 젊은 시절 심한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태중의 아이를 잃었다.그 후로 병이 깊어져 더 이상 후사를 볼 수 없었다.그렇기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면, 서녀국을 이을 자가 아무도 없었다.유일한 후계자는 동생 숙연 뿐이었다.그렇지 않다면 나라를 위해 재능 있는 자에게 왕좌를 물려줘야 했다.그러나, 그 어떤 황제도 스스로 권좌를 포기하지 않는다.결국 서녀국의 황위는 반드시 자신의 것이 될 터였다.그녀는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유영은 차를 천천히 마시며, 정희에게 단단히 당부했다.“이 이야기는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특히, 네 이모 앞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정희는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알아요, 어머니. 성급하게 굴어선 안 되죠.”“폐하께서 직접 선포하기 전까지는 신중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