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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서왕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황제를 말렸다.

“폐하, 이건 황후께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소욱은 이미 그에게 등을 보이고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이 사내의 옷소매를 스치며 바람에 흩날리게 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어화원과 마장의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기억 속 말을 타고 달리던 소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많이 놀란 탓에 태후를 자녕궁으로 모신 뒤, 봉구안은 자신의 영화궁으로 돌아갔다.

황궁 법도대로 황후는 뭇 비빈들의 문안 인사를 받아야 했다.

물론 문안 인사를 올리러 온 비빈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빈들은 아프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오지 않았다.

봉구안은 뭇 여자들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에 대충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돌아가라고 명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의 어명이 도착했다.

“황후마마, 폐하께서는 태후를 구하신 마마의 공로를 높게 사시어 이 옥여의를 하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미쳐 날뛰던 말은 참수형에 처할 것이니 마마께서 직접 감독하라고 하셨습니다.”

연상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참수형을 황후에게 감독하라니, 이런 경우는 역사에 없었다.

게다가 회임 중인 어미 말을 참수하는 것도 처음 있는 경우였다.

연상이 폭군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은 점점 더해져만 갔다.

하지만 봉구안은 전혀 놀라거나 속상한 기색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전갈을 전하러 온 태감은 그녀의 그런 태도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인내심 깊으신 분이시구나. 하지만 이게 얼마나 갈까…’

오찬 후, 어마장.

마장 관리는 어미 말을 마구간 밖으로 끌고 나와 참수형에 처할 준비를 마쳤다.

말을 사랑하는 이들은 분분히 봉구안에게 간청했다.

“마마, 정말 명을 회수할 수 없는 것이옵니까? 이 녀석도 전장을 달리던 녀석이란 말입니다!”

봉구안은 고삐를 잡고 손으로 말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요한 눈빛으로 말과 시선을 마주한 채 담담히 말했다.

“참형을 시작하거라.”

처형자가 말을 끌고 참수대로 다가갔다. 끈만 자르면 위쪽에 달린 작두가 떨어져 말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봉구안은 참수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차갑고 고요한 눈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작두가 떨어지기 직전에 말고삐를 잡고 있던 시종이 갑자기 손목에 마비가 오면서 잡고 있던 고삐를 풀었다.

그 순간 말이 높게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미친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처형자와 시위대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서 녀석을 잡아!”

봉구안은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옆을 지키던 연상은 자신의 주인이 작두 끈이 잘리던 순간에 작은 돌멩이를 시종의 손목을 겨냥하고 던지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그 직후 황후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각도에서 시위대에게 공격을 날렸다. 물론 멀리서 보기에는 시위대가 당황하여 저절로 미끄러져 넘어진 것으로 보였다.

그 바람에 시위대는 천리마를 잡는데 실패하였고 유유하게 어마장과 잇닿아 있는 수림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서재.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용상에 한 남자가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소욱의 냉엄한 눈가에서는 짙은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

용포 위에 수놓인 금용의 날카로운 발톱은 빛을 받아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섬뜩한 건 사내의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시위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폐하… 마… 말이 어림으로 도망갔습니다. 이미…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용상 위 황제의 따가운 시선에 그들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궁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와서 아뢰었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밖에 찾아오셔서 사죄를 올리겠다 하옵니다.”

드디어 황제가 입을 열었다.

“황후는 감독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였으니 1년 봉급을 삭감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면직시키고 궁 밖으로 내쫓거라.”

어명을 전하러 밖으로 나갔던 궁인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서 아뢰었다.

“폐하, 마마께서 황은에 감사드린다고 하셨사옵니다.”

그 후 서재 안의 분위기는 점점 더 싸늘하게 식었다.

용상에 앉아 있던 황제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위압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무릎을 꿇은 시위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황후, 아주 발칙한 짓을 했군.”

황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자녕궁, 태후는 황제의 처사에 화가 나 있었다.

“황후는 입궁한지 얼마되지도 않아 아래위로 돈 들어갈 일이 많을 텐데 어찌 봉급을 삭감할 수 있단 말이냐! 황후한테 어떻게 후궁을 다스리라고!”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황명을 바꿀 수는 없었다.

영소전.

“마마, 폐하께서 황후에게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황귀비는 여유로운 자태로 의자에 앉아 보고를 듣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황제는 애정이 없는 여자에게는 항상 무자비했다.

다음 날.

봉구안은 자녕궁으로 가는 길에 백색 의복을 입은 한 공자를 만났다.

그녀는 그가 바로 혼인식 날에 황제 대역으로 자신과 혼례를 올린 서왕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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