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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자녕궁(慈寧宮), 태후의 처소.

봉가의 일을 전해들은 태후는 흐뭇한 얼굴로 계 상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년 생일 연회에서 봉장미 그 아이를 보았을 때는 성격이 너무 유약하여 황후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오늘 일은 꽤나 영리하게 대처했군. 능연(황귀비 이름: 凌燕)의 측근에게 대놓고 면박을 주다니. 내가 그 아이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구나.”

태후의 최측근인 계 상궁은 어린시절부터 궁중에서 생활한 사람으로 후궁이 얼마나 험난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태후의 찻잔에 따뜻한 차를 따르며 말했다.

“폐하께서 황귀비를 편애하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니 황후께서 아무리 영리하신 분이라 할지라도 영소전과 대항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밤에 황귀비가 또 소란을 부릴 수도 있겠군요.”

계 상궁은 어린 황후에게 딱히 거는 기대가 없었다.

태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자네 말도 맞아. 수완(琇琬,태후의 조카딸)이 입궁했을 때도 그랬지. 황상은 그 아이의 처소에 머무르기로 했는데 능연 그 요물이 아프다고 난리를 치면서 황상을 자기 처소로 불러갔었지.”

“지금 생각해도 그 아이가 안타깝구나. 고모로서 아무 도움도 못 주고.”

계 상궁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폐하는 애증이 분명한 분이고 아직까지 후궁에서 황귀비를 대적할 비빈은 나온 적이 없지요. 황후께서도 아마 오늘 밤에 독수공방하게 될 것 같군요.”

태후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태후는 황제의 생모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황제를 길러준 사람이었기에 그의 성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영비를 향한 그의 집착과 죄책감은 전부 대체품인 능연에게로 갔다.

선황의 유언장이 없었더라면 아마 황후의 자리도 진작에 황귀비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길시가 되자 봉구안은 금자수를 수놓은 혼례복에 황후의 상징인 왕관을 머리에 올리고 옥석으로 장식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복도의 끝에는 마찬가지로 옥으로 된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십보 걸을 때마다 뒤를 따르는 시위대가 혼례의 상징인 징을 울렸다.

면사포를 쓴 봉구안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제단 앞에 멈춰서 바로 선 뒤, 예를 행했다.

부부 맞절을 할 차례가 오자, 면사포가 바람에 날리면서 그녀는 폭군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얼굴에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상상하던 음침한 폭군의 얼굴과는 차이가 있었다.

봉구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사내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바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황제와 황후의 혼례는 일반인들의 혼례와는 달리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절차가 있었다.

두 시진이 지나자 봉구안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연상은 다리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신혼방에 진입 후.

대신들이 모두 물러가자 연상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봉구안에게 말했다.

“아가씨, 폐하는 제가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다른 분 같았어요. 그렇게 무서워 보이진 않던데요?”

연상은 소문만 듣고 폭군이 험악한 인상을 가진 우락부락한 사내였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궁에서 오래 일한 상궁이 다가오더니 연상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야단쳤다.

“멍청한 것, 그분은 폐하가 아닌 서왕(瑞王) 전하야. 폐하를 대신해서 혼례를 올린 것뿐이라고!”

“뭐라고요?”

연상은 너무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황제와 황후의 혼인식에 대역을 쓰다니!

황당하긴 봉구안도 마찬가지였다.

연상이 다급히 물었다.

“왜 서왕 전하께서 대신 나오신 거죠? 폐하는요?”

상궁은 자기 할 일을 끝낸 뒤에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오늘이 영비마마의 기일이라 폐하는 제사를 지내러 가셨어.”

말을 마친 상궁은 바로 내전을 나가 버렸다.

연상은 충격에 말까지 더듬으며 한탄했다.

“아가씨, 폐하께서… 어찌 아가씨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

매년 돌아오는 기일이지만 혼례식은 일생에 한번뿐이 아닌가!

게다가 조정의 대신들이 이런 황당무계한 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도 황당했다.

씩씩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는 연상에 비해 봉구안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황제의 총애를 바라고 입궁한 것도 아니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황후가 된 것이기에 황제의 태도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적은 가문을 지키고 궁중에서 힘을 키운 뒤에 동생의 복수를 하는 것뿐이었다.

황제의 마음이야 어떻든, 그건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았다.

“폐하께서는 오늘 저녁에 오시지 않을 것 같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자꾸나.”

봉구안이 말했다.

“예.”

연상이 그녀를 도와 머리에 치렁치렁 매달은 장신구를 빼고 있는데 궁녀 한 명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마마, 폐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이리로 오실 거예요.”

봉구안은 인상을 찌푸리고 화장대에 내려놓은 장신구들을 바라보았다.

‘이걸 또 머리에 얹으라고?’

황제와의 합방은 그녀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폭군이 황릉에서 하룻밤 묵고 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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